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거주자 평균 54살, 점점 늙어가는 반지하의 삶

 

등록 :2022-09-03 20:01수정 :2022-09-03 20:12 
[한겨레S] 이원재의 경제코드

서울시 ‘반지하 퇴출 발표’ 논란
주로 월세 내며 근근이 사는 이들
거주자 평균 나이 15년새 12살↑
서울서 반지하 갑자기 사라지면
더 먼 곳, 비싼 곳 가야 할 수도
지난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 비가 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지난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 비가 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모든 재난이 그렇듯, 8월 폭우도 가장 낮은 곳을 먼저 덮쳤다.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순식간에 밀려들어온 수재를 피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 불행한 재난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서울시가 발빠르게 대책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 반지하 주택은 주거용도로 건축을 불허하고 기존 반지하 주택은 유예기간을 준 뒤 차츰 없애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반지하 퇴출’ 선언이었다. 빠른 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궁금했다. 반지하 주택을 없애면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반지하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예전에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반지하에 살고 있는 것일까? 반지하 퇴출로 이들의 삶은 더 나아질까?

 
더 비싸거나, 좁거나, 먼 곳 가야 하나


반지하 거주자 통계는 많지 않다. 그나마 거주가구 실태를 가장 자세하게 보여주는 조사가 5년에 한차례씩 진행되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다. 전국 가구의 20%를 대상으로 직접 방문해 진행하는 큰 조사다. 그 데이터 중 거주 층을 ‘지하’(반지하)라고 응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정확하게 실상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들을 ‘반지하 거주 가구’로 부른다. 가장 최신인 2020년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반지하 거주 가구의 55.7%가 서울에, 32.1%가 경기도에 산다. 10가구 중 거의 9가구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셈이다.

 

반지하 거주 이유를 물어보니, 3분의 1이 ‘일자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반지하 거주 1인가구에게 물으니 그중 3분의 1은 ‘독립생활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정이 있거나, 사별해서 반지하에서 혼자 산다는 사람들 등이 나머지 3분의 1가량이었다. 반지하 거주 형태는 월세가 압도적이었다. 전체 중 55%가 월세살이를 하고 있었다. 자가는 19%에 그쳤다. 지상 거주 가구 중에는 자가가 59%, 월세가 23%였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일할 만한 곳이 서울에 몰려 있어서, 서울에서 그나마 살 만한 데를 찾은 곳이 반지하다. 독립적으로 살고 싶은데, 그나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이 반지하다.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 두 집 주거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나마 혼자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반지하다. 큰돈을 갖고 있지 않아도, 한달 벌어 한달 월세를 내면서 지낼 수 있는 곳이 반지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반지하 주택을 퇴출시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서울 반지하 거주자가 경기도로 이사 가서 반지하 거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2010년에 반지하 거주자 중 60%가 서울에 살았으나, 2020년에는 55%만 서울에 살았다. 2010년에는 경기도에 25%가 살았는데, 2020년에는 32%가 경기도에 살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에서 반지하 주택이 계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터 근처에 더 싼 대안은 없을 테니, 지역을 옮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돈이 없는 가구가 많으니 월세살이는 이어질 것이다. 두 집 주거비용을 내면서 비싼 곳에 살 수는 없고, 여유가 없는데 독립생활을 고집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너무나 당연히도, 반지하 주택이 없어지면 거기 살던 사람들은 더 비싸거나 더 좁거나 더 먼 곳에서 살아야 한다. 독립적인 생활의 꿈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 미디어에 비친 ‘반지하’의 이미지는 이랬다. ‘20대 청년 때 아르바이트하며 잠시 지내는 곳’, ‘가진 것 없는 신혼부부가 힘들게 아기를 키우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꾹 참고 성실하게 사는 곳’.

 

이런 스토리는 결국 취업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어엿하게 아이를 키우며 아파트에 입주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젊어서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는 아련한 추억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곳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지하가 없어져도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내고 일어서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도 갖게 된다. 정책당국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데이터는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반지하는 고령화된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다. 신혼부부가 아니라 1인가구의 터전으로 바뀌고 있다. 반지하 거주자 연령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60대 이상 가구 비중은 2005년 14%에서 2020년 36%로 늘었다. 30대 이하 가구는 같은 기간 42%에서 12%로 줄었다. 반지하 거주자 평균(중위) 연령은 2005년 42살에서 2020년 54살로 올랐다. 2005년에는 지상층 거주자보다 5살 어렸지만, 2020년에는 연령이 같다.

 

대안 없이 거주 공간 없애면…

 

반지하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 비중은 절반으로 줄었다. 대신 1인가구가 38%에서 59%로 늘었다. 반지하에 사는 어린이가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대신 반지하는 주로 노인과 1인가구가 사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반지하 관련 정책은, 1인가구 정책이면서 동시에 노인 정책이어야 한다. 그저 집을 없애기만 하고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1인가구와 노인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지게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반지하 주택을 퇴출시킨다고 반지하의 삶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책 결정에는 늘, 실험과 숙고와 숙의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나 1인가구와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소외계층이다. 이들의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제대로 된 사회보장 정책만이 그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재난의 원인인 기후위기 역시, 우리 눈앞의 현실이 됐고 점점 더 커지고 중요해질 것이다. 근본적으로 재난을 막는,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책이 절실하다.

 

주택 인허가 정책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고, 관행이 된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연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연구활동가. 다음세대 정책싱크탱크 ‘LAB2050’ 대표. <소득의 미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등의 저서가 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