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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떠난 일심단결이란 있을 수 없다”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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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6 07: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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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6일 당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당중앙위원회 비서 및 부장급 간부)들과 만나 담화를 나눴다. 김정은 부위원장을 당 제1비서로 추대하는 당대표자회를 5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민심을 떠난 일심단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라며 “민심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현상들과 강한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심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선언이자 ‘인민을 위하지 않는 일꾼(간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한 첫 공개연설에서도 그는 간부들이 “신발창이 닳도록 뛰고 또 뛰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꾼과 인민’ 관계 전환 모색

 

   
▲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2년 5월 초 만경대유희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직접 뽑고 있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의 관리일꾼들의 복무자세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구도경고로 끝나지 않았다. 5월 초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의 놀이공원인 만경대유희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작심한 듯 관리일꾼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5월 9일 <로동신문> 등 북한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직접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뽑은 후 “만경대유희장은 인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이렇게 방심해 두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일꾼, 인민들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일꾼들이 천만명이 있은들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타한 후 “이 기회에 (일꾼들의) 인민들에 대한 복무정신을 똑바로 간직하도록 경종을 울려야 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언론매체들은 이날 화난 표정으로 발언하는 김 제1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그의 발언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대단히 이례적일 일이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김 위원장의 질책내용을 공개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같은 발언과 행보는 고질화된 간부의 부정부패, 관료화․귀족화된 간부들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모든 간부들이 “일군(일꾼)을 위하여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일군(일꾼)이 있다”는 사상관점을 가지고 “낡은 사상관점과 뒤떨어진 사업기풍, 일본새(작업태도)와 단호히 결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도 사설을 통해 “만경대유희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우리 일꾼들 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관점, 낡은 일본새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일꾼들이 인민의 복무자로서의 숭고한 사명과 본분을 훌륭히 수행해나가도록 하는데서 전환적 계기로 된다”라고 강조하면서 간부들이 ‘특전과 특혜’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내걸어도 간부가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집단의 동력은 상실된다는 점도 강조됐다.

 

간부의 ‘귀족주의’‘형식주의’, ‘책상주의’ 비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6월 2일 <로동신문>은 정론을 통해 “지금은 밖에서 밀려오는 적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회주의 요람 속에서 성장한 일꾼(간부)의 관료화.귀족화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형식주의자’, ‘책상주의자’, ‘기술실무주의자’ 등도 주요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됐다. 간부들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민심과 관리들의 기장 확립을 강조하는 김 제1위원장의 발언들은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졌다. 한 사례로 북한은 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연령을 50세에서 40세로 낮췄고, 주민들에게 관행적으로 부과되던 각종 세외부담금을 대폭 없앴다.

올해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혁명무력 건설 병진노선’이 채택된 후에는 더욱 간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새로운 병진로선을 높이 받들고 나라의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전환을 일으키자면 책임일군들이 발이 닳도록 뛰여야 한다”는 점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또한 고위간부들이 먼저 경제현장을 직접 찾아 솔선수범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주로 평양에 집중했던 현지지도에서 벗어나 각 지방을 돌며 경제현장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박봉주 내각 총리와 군을 대표하는 최용해 인민군 총정치국장도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을 부지런히 ‘현지요해’(시찰)를 다니고 있다. 과거 주로 대외활동에만 주력해온 85세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까지 경제현장을 단독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북한 지도부의 공식서열 1~4위가 모두 단독으로 현장 시찰에 나선 셈이다.

본보기가 될만한 간부들의 활동 사례도 언론매체를 통해 자주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에는 박태덕 황해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가 모내기철에 협동농장을 자주 찾았다고 칭찬하는 등 간부들이 ‘농업전선’에서 활약한 사례가 소개됐다. 간부가 현장에서 솔선수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근로 의지를 유도해 경제적 성과를 내고 주민과 접촉을 강화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중간간부들 중에서는 황해북도 연탄군당 리항걸 책임비서의 사례가 <근로자>와 <로동신문> 등에 소개됐다. 지난 5월 15일 <로동신문>은 “당의 의도대로 책임일군들이 발이 닳도록 뛰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며 리항걸 책임비서의 활동을 모범사례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리항걸 책임비서를 모범사례로 소개

이 기사에 따르면 7년 전 연탄군당 책임비서에 임명된 리항걸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일꾼들의 인민에 대한 관점’이었다. 그는 “인민들이 생활상 불편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받지 않는 무관심성, 무엇을 새롭게 하자고 하면 ‘경험’을 꺼들며 새것을 보지 못하는 경직된 관념, 애써 노력하면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도 애당초 해보려고 하지 않고 주저앉는 패배주의,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무엇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발이 닳도록 뛰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두 가지 문제를 중시했다고 한다. 하나는 책임비서 자신이 “생눈길을 헤치며 대오의 앞장에서 발이 닳도록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일군이 발이 닳도록 뛰면 아래일꾼들도 자연히 발이 닳도록 뛰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목표가 뚜렷하고 일감이 많아야 누구나 발이 닳도록 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세로 그는 군당위원회의 다른 간부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식료공장.종이공장.화학일용품공장.버섯공장.가구생산협동조합의 낡고 실리에 맞지 않는 건물들과 생산공정들을 통 채로 들어내고 개건하는 사업을 비롯해 인민생활과 관련된 50여 개 대상건설을 한꺼번에 건설하는 사업을 진행해 불과 6개월 남짓한 기간에 모두 끝냈다.

간부가 먼저 뛰어야 인민성도 높아지고, 스스로 실력 있는 간부가 될 수 있으며, 대중 속을 뛰어 다녀야 필요한 인재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결론이다. 재정과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패배주의’와 ‘책상주의’에 물들지 않고 간부가 솔선수범하면 대중이 따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자력갱생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동신문>은 리항걸 책임비서의 실천사례를 통해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도 애당초 해보려고 하지 않고 주저앉는’ 패배주의와 ‘입이 닳도록 말하기를 즐기는’ 책상주의자를 비판하며 ‘대중과 함께 실천하는 간부’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역으로 리항걸 책임비서의 사례는 그만큼 북한의 간부들 사이에 ‘패배주의’와 ‘책상주의’가 만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2013년 6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강은 강계뜨락또르(트랙터)종합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이 공장이 혁명사적관을 잘 만들어 교양사업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칭찬하며 “며칠 전에 돌아보며 비판한 공장(1월18일기계종합공장을 지칭)과는 완전히 대조된다”라고 말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이것은 지난 6월 중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자강도에 있는 1월18일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간부를 질책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공장을 방문한 김 제1위원장은 공장일꾼들이 ‘기술실무주의’에 빠져 ‘노동자들의 정신력을 발동’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생산을 늘리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라고 질책하며 간부들의 사업방식과 사업태도의 혁신을 강조했다.

 

김 제1위원장은 먼저 “혁명사적 교양실이 아직도 구내에 골조만 서 있는 건물로 남은 채 2년이 넘도록 건설을 끝내지 못한” 것을 두고 “어렵고 방대한 공사도 아닌 2층짜리 건물을 2년 동안이나 완공하지 못하고 있는 이 공장 일꾼들의 심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영도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이려는 자각이 바로 서있는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김 제1위원장이 “혁명사적 교양실 건설현장에 들러 여기저기 쌓여있는 골재더미와 블럭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한심하다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는 내용까지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김 제1위원장은 “당에서는 생산에 앞서 생산자 대중의 열의를 높여주기 위한 사상교양 사업을 첫 자리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공장 당위원회에서는 당의 방침을 사상적으로 접수하지 않았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현지지도 후에 이 공장의 주요 당간부들은 인사조치 됐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난 시기 나라의 기계제작 공업발전에 적극 이바지해 온 역사가 있는” 이 공장의 간부들조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현지지도하면서 과업으로 지시한 ‘혁명사적교양실’을 2년 동안이나 완공하지 못했고, 생산계획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공식 취임한 후 “수령님식, 장군님식 인민관을 지니고 인민을 위하여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며 낡은 사고방식과 틀에서 벗어나 모든 사업을 끊임없이 혁신하고 대중을 불러일으켜 대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는 일군이 바로 오늘 우리 당이 요구하는 참된 일군”이라며 김정은시대의 ‘간부상(像)’을 제시하며 여러 차례 질책도 했지만 간부들의 변화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와 사회주의권의 붕괴,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고난의 행군’, 제대로 생활비를 보장하지 못하는 재정난, 비공식적인 시장영역의 확대 등은 간부들의 부정부패를 구조화시켰고, 간부들의 관료화 및 귀족화와 패배주의를 만연시켰다. 이러한 근본적인 조건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간부 혁신’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정부패 차단, 세대교체 단행

북한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2009년부터 ‘간부 혁신’을 위해 여러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첫째, 간부들에 대한 강도 높은 검열과 인사조치를 실시했다. 중국의 한 대북소식통은 “북한은 권력 변동 및 교체기에 대대적인 검열을 단행한 바 있는데, 김정은 후계자 등장이후에도 강도 높은 검열이 이뤄졌다”며 “해외 파견 간부의 경우 해외체류 전 기간의 활동내역에 대해 검열이 진행됐고, 각 부서 간부의 경우 재직기간 전반에 대해 강도 높은 검열이 이뤄져 상식선을 벗어난 횡령과 부정부패가 적발된 간부는 모두 인사조치됐다”라고 말했다.

둘째, 2010년 9월 당대표자회 개최를 전후해 노동당과 내각,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이동과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노동당의 경우 당중앙위원들이 새롭게 선출됐고, 각 도 및 직할시당 책임비서가 전면 교체됐다. 이후 중앙 및 지방의 중하급 간부를 전면적으로 교체해 젊은 30~40대를 등용하는 등 간부 세대교체도 동시에 진행됐다. 군부의 경우 군단장들이 40대의 젊은층으로 교체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 공식취임 이후 김정은 제1위원장은 현지지도 때 50대 전후의 비교적 젊은 당과 군 간부들을 주로 대동하고 있다.


   
▲ 조선무역은행이 발행하는 ‘나래’카드 설명서. 북한은 주요 간부들의 외화사용 투명성을 높이고, 개인 및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나래’카드 사용을 장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료사진 - 민족21]
셋째, 구조적 또는 관행적으로 부정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조치들을 도입하고 있다. 당과 군의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무역회사들을 내각으로 이관해 국가 재정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고, 각 부서나 개인이 관리하고 있던 외화를 반드시 은행계좌에 입금해 사용하도록 해 개인 유용 가능성을 차단했으며, 당과 정부 및 군의 고위간부들의 공금사용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카드 사용(‘나래’ 카드 지급)을 권장하고 있다.

이같은 조치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김정은체제가 안정화되면 될수록 향후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강조하는 ‘지식경제시대’에 맞고, ‘세계적 추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젊은 간부층이 부상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1974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확정된 후 ‘혁명2세대’에 속하는 리길송 당시 함경남도 당책임비서는 <근로자>에 기고한 글에서 김정일시대의 간부상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날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총을 잘 쏘고 적들과의 싸움에서 용감한 사람이 혁명에 충실한 사람으로 되었다면 우리 당이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높은 정치실무적 자질을 가지고 대중의 앞장에 서서 그들을 능숙하게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위대한 수령님과 영광스러운 당에 끝없이 충직한 주체형의 혁명가로 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3~4세대가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 김정은시대는 1970년대와는 달리 내부 체제개선과 대외개방에 적극적이고, 국제적 마인드를 가진 새로운 간부를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발창이 닳도록 뛰고 또 뛰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라며 지난해부터 간부혁신을 화두로 내세운 북한이 지난해 20년 간 간부층에 고질화된 ‘관료주의’, ‘귀족주의’, ‘패배주의’, ‘형식주의’, ‘책상주의’를 어느 정도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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