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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실패 가능성 앞에 직접 선 윤 대통령…박정희 ‘석유 소동’ 데자뷔

‘매장 가능성’은 데이터 분석 결과일 뿐, 시추 성공률은 20%…정치권, ‘국면 전환용 아니냐’ 질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첫 국정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6.03. ⓒ뉴시스

 

 

정부가 동해에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실제 석유가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정부가 제시한 성공 확률은 20%다. 80%의 실패 가능성 앞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발표에 나섰다. 박정희 정권에서의 ‘석유 소동’이 재현될 우려가 작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국면 전환용 발표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4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통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가능성의 근거는 실제 실추 결과가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이다. 그간 한국석유공사는 영일만 인근에서 지질 조사를 진행해 왔다. 심해로 탄성파를 발사해 되돌아오는 시간으로 해저 지하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쌓았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축적한 데이터를 미국의 심해 평가 업체인 지오액트에 넘겨, 심층 분석을 맡겼다. 지오액트는 약 1년간 분석을 거쳐 석유와 가스가 보존되기 좋은 지질 구조, 즉 ‘유망 구조’가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정부는 지오액트 결과를 놓고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이 5개월가량 검증했다며 신뢰성을 부여했다.

분석에 대한 검증을 거쳤다고 하지만, 분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정부는 시추 성공률이 20%라고 했다. 석유 탐사 분야에서는 준수한 수치라는 평가이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증권가는 신중한 모습이다. 메리츠증권은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보고서에서 “시추 이전까지는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정부는 해저 지하에 실제 시추공을 뚫어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에 돌입한다. 윤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지금부터는 실제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탐사 시추 단계로 넘어갈 차례”라면서 “오늘(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을 계획이다. 시추공 깊이는 수 km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시추 지역 수심은 약 1km다. 여기에 지층 약 2km 깊이로 구멍을 뚫는다. 대규모 비용이 소요된다. 정부는 시추공 하나당 1천억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 예산과 석유공사 자금을 활용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해외 자원 개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첫 번째 시추공 작업은 올해 말에 착수해, 내년 상반기에 결과의 윤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원 매장이 확인돼도, 대규모 생산까지는 10년 이상 걸린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실제 매장이 확인되면 2027년 내지 2028년쯤 공사를 시작해, 상업적인 개발은 2035년쯤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오액트가 추정한 동해의 석유와 가스 매장량은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이다. 가스 75%, 석유 25%로 예상했다. 최대치 기준으로 가스는 한국이 30년간 사용하는 분량, 석유는 4년간 사용하는 분량에 해당한다. 안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은 140억 배럴을 얘기하고 있는데,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정도가 된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삼성전자 시총은 453조원 수준으로, 유전과 가스전 가치는 약 2,265조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오액트가 제시한 수치는 시추 전 단계에서의 추정치에 불과하다. 실제 생산 가능 물량은 시추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메리츠증권은 “발표된 자원량은 액트지오에 의뢰한 결과로, 실제 매장량(회수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양)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경제성도 따져봐야 한다. 10여 년 뒤 석유와 가스 가격으로 채굴 원가를 상쇄하고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자원 매장량이 예상보다 적거나, 채굴 비용 부담이 클 경우 경제성이 떨어져 개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수 있다.

 

 

 

 

석유개발 계통도 ⓒ대한석유협회


윤·박, 탐사 초기 직접 발표 나서 “차분하게 기다려달라” 판박이
야권 “지지율 올리기용 정치쇼 아닌가” 한 목소리


한국의 석유·가스 개발 시도는 60여 년간 이어져 왔다. 1966년 포항 앞바다를 시작으로 해저 자원에 대한 탐사를 진행해 왔다. 1979년에는 자원개발 공기업으로 석유공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대륙붕 탐사를 추진했다.

유일한 성과가 동해 가스전이다. 1998년 발견해, 2004년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2021년까지 생산량은 4,500만 배럴로, 수입 대체 효과는 2조 7천억원으로 평가된다. 개발에는 총 1조 2천억원이 들었다.

흑역사도 있다. 1976년 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해당 발표는 영일만 인근 시추공에서 원유로 추정되는 액체가 나왔다는 중앙정보부 보고에서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의 발표 이후 전문가 분석을 거쳤고, 그 결과 문제의 석유는 원유가 아니라 경제성 없는 정제된 경유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석유 소동’이 겹쳐 보인다. 언행불일치가 반복됐다. 불확실성이 농후한 상태에서 직접 발표에 나선 두 대통령은 공히 “차분하게 지켜봐 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 발표가 취임 2년 만의 첫 국정브리핑에서 이뤄졌다는 점은 대통령 본인이 석유 매장 가능성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 발표 내용과 준비 과정은 허술했다. 브리핑은 사전 예고 없이, 시작 10여 분 전에 일정이 공지됐다. 윤 대통령은 4분 만에 자리를 떴고, 기자단 질문은 동석한 안덕근 장관이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국면 전환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급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고자 하는 지지율 올리기용 정치쇼는 혹시 아닌가”라며 “과거 박정희 대통령도 동해 유전을 발표했지만, 1년 만에 사업성이 없는 곳으로 확인됐다. 그야말로 희망 고문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특검과 탄핵이 두려워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꼼수는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시추 확인도 아닌 물리 탐사 결과를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으로 발표할 사안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보수진영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 소재가 ‘영일만 앞바다에 석유 있다’라니, 뜬금없다”며 “돋보일만한 대목에는 대통령이 나서고,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대목에는 철저히 숨어 있는, 참으로 비겁한 대통령”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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