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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없이는 못살아!' 박근혜 정부 또 대국민 사기극

[기고] '핵발전소 비중 20%'는 핵발전소 확대 정책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15 오전 8:12:08

 

제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은 일반 시민에게는 생소한 얘기이다. 2035년까지 우리나라 에너지 장기 전망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이게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큰 관련이 있다.

지금도 23개나 되는 핵발전소를 늘려나갈지 줄여나갈지에 이 계획에서 큰 그림을 잡는다. 핵발전소확대를 계속할수록 사고 위험은 높아진다는 점에서 이 계획은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다.

늘어나는 전기 소비, 특히 산업용 전기 소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이 계획에서 다룬다. 지금처럼 정부가 산업용 전기 요금을 싸게 해서 전기 소비가 계속 증가하도록 놔두면,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 발전소를 계속 더 짓게 된다. 그것은 핵발전소와 기후 변화의 위험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일이다.

지금 밀양에서 문제가 되는 송전탑도 계속 더 지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지을 송전탑은 강원도, 경기도, 충청남도 등 곳곳을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전기 소비를 어떻게 묶을 것인지가 중요하고, 이것은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프레시안


민관 워킹 그룹 논의도 안 된 내용을…

제2차 에너지 기본 계획 초안이 발표된다는 소식을 며칠 전부터 들었다. 민관 워킹 그룹이라는 것을 구성해서 그동안 논의해 왔는데, 여기서 논의한 초안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말이 민관 워킹 그룹 초안이지, 실제로는 이 초안 내용이 거의 정부안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연히 며칠 전에 민관 워킹 그룹에 참여한 분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더니, 핵발전소 비중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전기 수요 전망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고 했다. 수요 전망에 대해 가닥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핵발전소 비중은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민관 워킹 그룹 내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핵발전소 비중 중심으로 논의를 몰고 갔다고 했다.

얘기를 듣고 나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체 전력 소비 규모가 어느 정도 될 것인지를 먼저 잡고, 그 중에 핵발전소로 얼마의 전기를 해결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핵발전소 설비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계산이 된다.

그런데 전체 전기 수요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정하지 않고 핵발전소 비중부터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 의문은 정부가 국회에 따로 배포했다는 자료를 보자 곧바로 풀렸다.

이들은 전력 소비 규모를 엄청나게 부풀려 잡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핵발전소 비중을 곱하면 핵발전소를 엄청나게 더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쉽게 생각해서 '전체 전력 수요×핵발전소 비중'을 해서 필요한 핵발전소 설비 용량(필요한 핵발전소 개수)가 나온다고 할 때에, 앞부분의 '전체 전력 수요'를 부풀려 버리면 핵발전소 비중을 낮춰도 핵발전소는 더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2035년의 전기 수요 예측치를 2011년에 비해 80%나 높게 잡아 놓았다. 2011년에는 석유로 환산했을 때 3910만 톤이었던 전력 수요가 2035년에는 7020만 톤으로 증가한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핵발전소 개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민관 워킹 그룹이라고 만들어 놓고,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 내부에서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내용을 정해서 다른 부처와 협의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민관 협력이니 거버넌스니 하는 것은 공허한 말에 불과했다.

어제 정부는 언론을 통해 핵발전소 비중을 제1차 에너지 기본 계획 당시의 41%에서 22~29%로 줄인다고 발표했지만, 이것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사실 41%라는 수치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설정된 것이다. 지금 핵발전소 설비 비중이 24%(정격 용량 기준)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늘어나는지 아닌지는 현재의 설비 비중과 비교할 문제이지, 41%라는 비현실적 수치와 비교할 일은 아니다. 이것 자체가 시민들에게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정부의 에너지 수요 전망 기준치. ⓒ산업통상자원부


핵발전소 추가 건설이 12~18개!

그런데 기가 찰 노릇인 것은 대부분의 언론이 핵발전소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도하고, 심지어는 '탈(脫) 핵발전소' 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의 보도 자료를 보고 받아쓰더라도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최소 12~18개의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국회 김제남 의원실 자료). 어쨌든 핵발전소 개수가 지금보다 많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하다. '탈(脫) 핵발전소'가 아니라 핵발전소 확대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직 착공을 안 한 신고리 5, 6호기뿐만 아니라 영덕과 삼척에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를 확보해 핵발전소를 지어야 하고, 그 외에도 더 지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시민들 입장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것은 핵발전소 비중이 몇 %인지가 아니라 핵발전소 개수이다. 핵발전소 비중을 줄인다고 해서 핵발전소 개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하는 것처럼, 전체 전력 수요를 조작하면 얼마든지 핵발전소 개수를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마치 핵발전소 확대 정책에서 핵발전소 축소 정책으로 돌아선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고, 언론은 무비판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는 '우민 정책'이다.

이런 정부의 정책 방향은 내용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정부는 경제 성장 둔화로 전체 에너지 소비 증가 속도는 매년 0.8%일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전력 소비는 그보다 3배 이상인 2.5%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 소비는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정부가 애초부터 전기 소비가 많이 늘어날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한다면, 전기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전기 소비는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일본이나 유럽의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 이것은 가정용 전기 때문이 아니다. 가정용 전기 소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용 전기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핵발전소와 석탄 화력 발전소를 더 짓기 위해 공급확대 중심으로 정책을 펴 왔다. 그렇게 생산한 전기를 싸게 공급해 왔다. 그 혜택은 산업용 전기에 집중되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원가 이하로 산업용전기가 공급됨으로써 기업들이 얻은 이득은 5조23억 원에 달한다.

가장 큰 수혜를 받아온 것은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들이다. 철강, 석유화학, 전자 등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 소비량은 엄청나다.

10개의 에너지 다소비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량은 우리나라 5000만 인구가 가정에서 쓰는 전기량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감사원조차 우리나라의 낮은 산업용 전기 요금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 요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일본 244, 독일 214일 정도로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 요금이 싸다는 것이다(2010년 기준).

사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쓰는 산업용 전기 요금을 당장 60~70% 정도 올려도 1990년대 중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1995년도에 대기업들의 제조 원가에서 전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4%였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 요금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면서, 2011년도에는 이 비중이 1.17%로 줄어들었다. 엄청난 혜택을 받아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60~70%올려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럴 의지가 없다. 전기 요금을 올려도 질금 올리는 시늉만 할 것이다. 그러면서 전기 소비가 계속 늘어나도록 조장할 것이다. 그것을 명분으로 핵발전소들 더 지으려 할 것이다. 23개인 핵발전소 개수는 40개 남짓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낡은 노후 핵발전소도 폐쇄하지 않고 계속 가동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의도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이후 핵발전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한 것을 의식해, 자신들의 의도를 애써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밖에 안 된다. 2차 에너지 기본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정보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2차 에너지 기본 계획 초안이라고 발표하면서 달랑 몇 장짜리 문건만 공개한 상태이다. 한마디로 공개적인 토론을 하겠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

시민들에게도 호소하고 싶다. 핵발전소를 확대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 부담, 수명 끝난 핵발전소 폐쇄 부담을 떠안게 되어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과 미래세대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핵발전소 확대에 목을 매는 박근혜 정부와 몇몇 관료들, 이해관계 있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게 놔둘 수는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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