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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말고 이것 만들면 지방 무조건 산다... 단, 조건이 있다

▲취임 30일 기자회견 갖는 이재명 대통령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엔 수도권 집중이 하나의 성장 전략이었지만 현재는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

"정책이나 예산 배분에 있어 지방을 배려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는 '전면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방소멸 위기의 대안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거론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예로 들면서 잠깐의 갈등은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필자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한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견해를 듣고 잠시 생각했다. '노무현 정부 때 공공기관 이전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왔는데 과연 성공적이었나?' 20년 가까이 추진한 지방 이전이 성공적이었으면 이전 지역은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달라져야 하고 지역민들의 생활이 나아져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서울에 살아본 사람은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상당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정부 청사도 서울이 아닌 세종시로 이전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기관을 옮기는 결정만으로 부족하다. 직원이 지방으로 내려와야 한다. 아니, 직원과 함께 그 가족도 지방으로 내려와야지 실질적인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인사 발령에 대부분의 직원은 마지못해 올 수밖에 없다.

내려와도 혼자 와서 원룸 생활하는 사례가 많다. 가족은 서울에 남겨두고 '기러기' 신세를 자처한다. 그리고 틈만 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궁리를 한다. 결국 주말이면 공공기관에는 건물만 남고 사람은 서울을 오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것이 진정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라 할 수 있을까?

지방 교부세나 예산 배정 등을 지역에 가중치를 두는 방안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인구 소멸 지역에 "향후 지방 교부세와 예산 배정 등에서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에 가중치를 두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라고 했는데, 많은 예산이 지역에 내려오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세금을 내려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세금에 의존하면 지역 발전은 뒷일이 된다. 지역에 내려오는 세금만큼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야 하는데, 지역민으로서는 피부에 닿지 않는다. 물론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지방 교부세 증액 등은 지역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필요없다'라는 소리가 아니다.

사실 공공기관이나 공장이 지방에 이전하고 그곳에 직원 가족들이 내려와 지역민과 함께 살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런데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에 남고 싶어 한다. 당초 서울이나 수도권에 직장을 잡았는데 하루아침에 지방 이전이나 발령 나면 본인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회사가 가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라'는 강요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라는 소리로 받아들인다. 지방 소도시가 좋고 전원 생활을 꿈꾸거나, 서울 생활이 진저리 나서 지방 이전이 더없이 반가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서울에 살아본 사람들은 서울 땅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자리가 있고, 사람이 있고,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 가진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눈만 뜨면 억대가 뛰고 내 집이 수십 억 원에 달하고 계속 오른다고 하는데 그 누가 집을 팔고 서울을 떠나겠는가? 게다가 낯선 지방에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지방 이전으로 인한 자녀 교육 문제가 또한 큰 딜레마다. 남들은 좋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옮기는 마당에 자신은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면 부모로서 할 일이 아니다.

물론 지방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람이 있고 문화가 있고 교육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지방에서 그만큼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장도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공장을 운영하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세금을 깎아준다', '부지를 싸게 지원한다', '직원 복지를 지원한다' 등 부산을 떨지만 공장주는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직원들의 반대가 한몫 하지만 물류 등 감당해야 할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기관 대신 사람을 보내라

▲도산서원 전교당안동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신 곳으로 지금도 아카데미 등 강학이 이뤄지고 있다. ⓒ 이호영

노무현 정부 당시 공약사항이던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도 사실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이전한다면 가장 큰 전환점이 되겠지만 현실로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역에 유동 인구를 늘리는 방안, 생활 인구를 늘리는 방안으로 정책을 바꿔보면 어떨까. 굳이 서울에서 잘 사는 사람을 '기관이나 공장 이전' 혹은 '인사 발령'을 빌미로 억지로 지방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를 해치는 일이다.

지방에 유동 인구를 늘리는 방안으로는 '관광하기'가 좋을 것 같다. 필자가 사는 안동 등 경북 북부지역은 지난 3월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대책으로 '관광이 기부다'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 덕분에 안동의 경우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 산불이 나지 않은 관광지에는 4월부터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7월 무더위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다 산불 피해지라고 일부러 찾았다는 관광객도 많다. 다 고마운 일이다. 이들이 다녀가면 지역에 많은 도움이 된다. 밥을 먹고, 음료수를 사고, 잠을 자는 등 모든 행위가 소비로 연결된다. 이런 소비를 연중 계속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면 지역마다 유동 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경주 황리단길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 특정 마을은 지금도 사람으로 붐빈다. 이들처럼 다른 지역도 사람들로 붐비게 해야 한다. '전 국민 관광 명소 찾기'나 '도시민 고향 방문하기', '경상도의 전라도 알기', '전라도의 경상도 알기' 등의 정책을 펴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기름값', '밥값', '숙박비' 등을 지원해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지역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는 제도를 연중 시행하면 어떨까. 전국 초·중·고·대학생들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필자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각 지역 문화 탐방을 숙제로 제출했다.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경북에서 경남으로, 충청도로, 강원도로 다니며 숙제용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지도를 들고 각 지역 문화 유적지를 찾았다. 길을 잃거나 잘못 들어가 우회하는 등 낭패가 일쑤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어떤 추억을 만들었을까 싶다.

지금 젊은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우리보다 더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휴가는 물론 휴가비까지 보장해주면 좋을 것이다.

직장인에게도 휴가철은 물론 비휴가철에도 '다른 지역 관광하기'를 권장하며 휴가 날짜를 더 주거나, 휴가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 물론 '기업체 직원 휴가 주기'는 정부에서 각 기업체에 대체 인력이나 휴가비를 일정 부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할 수 있다.

지역민이 쓰는 화폐 말고, 하나 더 만들자

이재명 대통령이 6월 20일 울산 울주군 언양알프스시장을 방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지역화폐를 더욱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이재명 정부서 조만간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준다고 한다. 소비 진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각 지자체에서 할인해주는 지역화폐도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지자체 화폐는 지역의 돈을 지역에 돌리는 수준에 그친다. 그 지역 사람이 쓸 현금을 지역화폐로 바꾸어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지역화폐와 함께 지자체 관광 화폐를 발행하면 어떨까 한다. 안동을 예로 들면, 안동 진입 고속도로에서, 주요 전통시장 입구에서, 관광지 입구에서 현금을 일정 할인이 들어간 관광 화폐로 바꿔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재화나 서비스를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니 관광객에게 이득이 된다. 지역화폐는 그 지역 안에서 모두 소진해야 하기에 지역 경제 진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대통령은 일머리가 있는 대통령이라고 한 유명한 보수 논객이 말했다. 그가 일을 잘하는 모습을 임기 내내 보여준다면 경제 난국을 이기고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처럼 제발 관광객이 이제 그만 오면 좋겠다는 관광지 주민의 볼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 소멸 지역은 사라지고 지역에 살고 싶은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면 서울로 이전했던 지방민이 지역으로 되돌아와 관광 산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지금의 관광지 위주의 관광 정책을 관광객과 지역 중심의 정책으로 과감히 바꿔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지역살리기#유동인구#이재명#관광객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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