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 수백 명이 갑작스럽게 단속되고 구금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장을 급습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짓는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300여 명의 한국인을 군사작전처럼 체포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나 임시 노동자가 아니었다. 대부분 한국 본사에서 기술지원을 위해 파견된 전문 엔지니어들이었고, 설비 설치와 시운전, 공정 조율 등 핵심 기술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미국 당국은 이들이 소지한 상용(B-1) 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가 수행 중이던 전문 기술 업무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체류를 '위법'으로 간주했다. 이들은 고도의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들이었고 이민 의사도 없었다. 동맹국의 산업 프로젝트를 위해 투입된 후,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사전 경고도, 한국 기업과의 조율도 없이 단행된 이번 조치는, 오히려 '합법성'을 앞세운 강제력의 전시처럼 보였다. 기술 협력의 현장은 하루아침에 단속의 현장으로 바뀌었고, 미국의 '동맹국' 국민은 자신이 일하던 자리에서 손발이 묶인 채 연행되었다.
그들은 '불법'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었다는 뜻일 뿐이다. 그 경계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지워지고 다시 그어진다. 미국의 집권 세력은 법이라는 도구를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결과의 책임은 '동맹국' 국민에게 전가된다.
더 넓은 차원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영화 〈만남의 광장〉에서 선의로 철조망 설치를 도와주다 남북으로 갈려 생이별하게 되는 마을 주민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정치적 경계가 흔히 그렇다. 내가 그은 선도 아닌데 그것을 넘었다는 이유로 범법자가 된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는 '누구에게, 어떤 자유를 허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비대칭적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국경과 비자, 그리고 법의 잣대마저도 그 구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우리는 결국, 특정 주체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자유가 선별·배분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자유'는 인간을 위한 자유인가, 자본을 위한 자유인가. 자본의 무한한 자유 보장을 위해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를 통제해가는 세상. 자유를 외치며 걸어온 길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구속하는 체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자본의 무제한 이동을 견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은 1970년대, 투기적 외환거래에 소액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이른바 '토빈세'를 제안했다. 그러나 금융 권력의 거센 반발에 밀려 이 구상은 좌초됐고, 그 이후 세계는 더더욱 자본 이동의 자유를 향해 가속해 왔다.
자본이 광속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이, 국가 간 착취와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지 못한 채, 목숨을 건 월경(越境)으로 내몰리고 있다.
법이 아니라 권력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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