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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천~맹골도 선회지점까지 개략적인 검토

(WWW.SURPRISE.OR.KR / 분석관 / 2014-04-22)


당국이 선회각도를  110도에서 45도로 교정했고, 선회 전에 전체 정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침몰의 결정적인 이유가 조타와 상관 없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죠. 전체 정전 때문에  전기신호와 동력장치로 움직이는 조타시스템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 전부터 점점 커지는 기울어짐과 지그재그 운항, 선회 지점까지 예정시간보다 연착을 일으킨 운항속도감소나 항로길이 증가, 선회 전의 전체 정전을 설명할 수 있는 상식적인 추론은 큰 구멍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좌측의 파공에 의한 지속적인 침수에 의한 치우침과 부력감소가 가장 유력할 수 밖에 없겠죠.

그 전에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지그재그 항행을 반복했다는 것은 상당 지점에서부터 지속적인 침수가 일어나서 좌우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현상으로 추정할 수 있죠. 즉, 좌측 치우치는 쪽으로 YAWING이 교정되지 않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항행하다고 다시 방향을 반대로 교정하는 행위를 반복한 것이죠. 따라서 항로길이도 길어지기 때문에 정상속도를 유지했더라도 연착을 일으킨 이유가 되겠죠.

맹골수도를 지날 때 평소  항로보다 병풍도로 치우친 항로선택도 침수에 의한 좌측(관매도 쪽) 경사 때문에 좌측으로의 YAWING을 미리 감안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전기 등을 침수시킬 정도의 한계에 이르자 정전이 되면서 동력장치에 의해 불균형을 보상해왔던 ANTI-ROLLING(스태빌라이저), ANTI-YAWING 작용들이 동작을 멈추면서 급격히 경사가 악화되면서, 왼쪽으로 자빠지는 힘에 의해 우선회가 일어났고 이후 45도 우선회와 2차적인 침몰요인이 촉발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맹골수로 이전의 이벤트와 항적이 밝혀지고 더욱 명백해지겠지만, 5명의 제주출신 콘테이너 기사 생존자의 말은 출발 밤 10~11시 쯤에 덜커덩하고 15도정도 기울어졌다가 정상을 회복한 이벤트가 있었다라는 증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세월호 구조자 "전날 밤 1차례 좌로 15도 기울었다"

 

지난 15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는 안개 때문에 당초 예정시각보다 2시간 늦은 오후 9시에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인솔 교사 1명, 일반 탑승객 73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4명, 기타 승무원 5명 등 총 475명(17일 오후 3시 현재 기준)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20년 가까이 트레일러 특수차량을 몰아 온 서씨, 양씨, 이씨는 제주도로 납품할 기계를 실은 총 20t 트레일러 3대를 가지고 평소에는 잘 타지 않았던 대형 카페리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비료공장에 납품하는 기계와 기계를 옮길 크레인 싣고, 8명짜리 방에 크레인 기사까지 4명이 들어갔다.

 

배에 오른 이들은 맥주를 사다 마셨는데 오후 10시~11시쯤 서씨는 순간적으로 배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배가 15도 정도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원상 복귀됐는데, 맥주캔이 방 한 쪽 구석으로 굴러갔어. GPS를 봤더니 군산 앞바다라고 나오더라고."

이게 침수의 원인이 되는 작은 파공을 일으킨 원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죠. 이때는 좌측에 충격을 받고 아마도 우측으로 15도 기울고 회복됐을 겁니다.

이 때 콘테이너 기사가 휴대한 GPS위치정보를 보니 군산 앞바다였다고 합니다. 이는 시간과 맞지 않은 위치인 셈인데 GPS보다는 출발후 1~2시간의 기억이 더 신뢰도가 높겠죠. 

 

당국은 맹골수로에서의 항적만 밝히고 그 이전의 항적에 대해서는 숨길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죠. AIS정보와 관제 레이다 항적정보, 항적 정보에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흘수선자료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전 새벽부터 신호 끊겨…항로 ‘미궁’

세월호의 운항경로를 파악하는 선박 자동식별장치 즉 AIS 신호가 사고가 일어나기 약 6시간 전인 새벽 3시 40여분경부터 끊긴 것으로 채널A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항적도 한 때 파악 못해”…급선회 사고원인 무게

 

기자> 네 채널A취재 결과 사고 전인 새벽 3시 46분부터 AIS 신고가 끊긴 것으로 확인된는데요. 다시말해 이 이후부터 사고 전까지는 정확한 운항경로를 알 수 없게 된 겁니다.

 

하지만 해수부는 채널A 보도에 대해 시스템 오류로 한때 AIS 신호가 끊겼던 것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몇시간 뒤 복구해 모든 AIS신호 기록을 찾았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해수부 관계자는 여전히 AIS 신호가 끊긴 곳이 있다고 말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채널A는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취재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채널A에서만 보도하고 해수부 부인에 의해 확대되지 않은 뉴스이죠. 찾았다는 AIS기록들에 대한 자료공개가 되지 않고 있죠. 인천과 맹골수로이전 상황에 대한 항적과  8시 50분 이전의 관제센타와의 교신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죠. 마린트랙픽 사이트에 부분적으로 노출된 세월호의 항적을 보면,

 

http://www.marinetraffic.com/jp/

표준시를 한반도시간으로 바꾸면, 오전 1시 41분까지 표시되고 이 때 이미 보령 앞바다까지 항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때까지 운항 속도는 평균 19노트의 속도인데 초기 20노트에서 18노트로 점차 감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평소 세월호의 평균운항속도는 17노트이죠.

 

만약 20노트를 전항로에서 유지하면 2.5시간 늦은 9시에 출발한 세월호는 2시간정도 단축하여 제주항에 8시 30분에 도착할 수 있죠.

 

13.5(평소운항시간)*(17/20)==>11.5시간

 

그런데 목적지인 제주항에서 90KM떨어진 맹골수로 선회지역에 8시50분에 도착하는데 이는 초기 20노트운항속도를 유지했다면 오전 6시 쯤에 도착해야하는데 3시간가량이나 늦은 셈이 됩니다. 정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운행했다면 지그재그운항에 따른 항속거리 연장과 침수에 의한 부력감소에 따른 물의 저항증가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겠죠.

 

동거차도 미역따는 주민들은 맹골수로에서 세월호가 오랫동안 정지되어 있었다고 증언했는데 이를 증명하는 생존자의 증언이 없기 때문에 배제해야 합니다. 맹골수로에서 오랫동안 정지했다는게 사실이면 생존자의 증언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주출신 콘테이너 기사가 언급한 출항후 1~2시간 후에 10~11시 사이에 덜커덩하면서 15도 기울었다가 다시 회복된 지점을 추정해볼 수 있겠죠.

 

10~11시의 덜커덩이벤트에 의해 "즉시 침몰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침수되는 상대적으로 작은 파공"이 생겼다면 그 원인 물체는 무엇이었을까요?

 

1. 당국의 전체항적이나 관제레이다정보, 관제교신정보에 대해 숨길려는 경향과 뻔한 상황의 자료를 매우 선택적으로 부분적으로 내놓거나 없다가 복구가 반복되는 상황.

 

2. 초기에 안보실 김장수의 총괄 발표후 흐지부지

 

3. 군함의 대거 출동, 하지만 현장화면에서는 별로 안보이는 현상, 어디로 갔나?

 

4. 세월호 항로가 15~16일 서해 한미해상군사훈련 항행금지구역 사이로 난 항로라는 점이고 지도 상에 표현된 모양은 적의 잠수함에 대한 A2/AD(ANTI-ACCESS/AREA DENIAL, 반접근/접근거부)훈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내해와 외해의 이중 방어망을 훈련했고, 인천항, 평택2함대사령부, 군산항을 보호하는 훈련을 했다는 점이다.

 

5. 오바마가 첫날 2번 애도를 표현한 점

 

6. 구조과정에서 엉성함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돌출된 암초와의 충돌 뿐만아니라, 국방부가 어설프게 종북몰이에 나선 수중함선과의 국소적인 충돌도 배제 할 수가 없는 정황단서들을 엿볼 수 있다.

 

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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