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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무신론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휴심정 2014.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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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의 편지 표지사진.JPG 

책 표지

 

 

프란치스코와 에우제니오.JPG 

프란치스코 교황과 언론인 에우제니오 스칼팔리 

 

 

무신론자의 불온한 질문…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은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교황 프란치스코·에우제니오 스칼파리 외 지음, 최수철·윤병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신앙인과 무신론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1936년생.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1924년생. ‘띠동갑’ 두 사람이 신문 지상을 통해 대화를 펼쳤다. 베르골리오는 누구인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난해 3월 로마의 대주교, 곧 교황이 된 사람. 그가 취한 이름 프란치스코는 역사상 어떤 교황도 택하지 않았던,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에게서 따온 것이다. ‘청빈’에 살고 ‘불의’에 눈감지 말 것을 온통 삶을 통해 요구했던 이의 이름이다.

 

스칼파리는 이탈리아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1976년 이 신문을 창간해 96년까지 이끌며 우파 성향의 다른 일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지로 키워낸 언론인이다. 스칼파리는 지난해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스칼파리는 “신이란 인간의 마음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창조한 매력적인 발명품”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 같은 무신론자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는 너스레도 곁들였다.

 

한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교황이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인간 존재와 공동선에 관한, 이른바 세속 식자층을 대변하는 무신론자 지식인과 교황의 흉금을 튼 대화. ‘세기의 대화’라 함직한 이 만남은 교황이 보낸 편지 한통에서 시작됐다. 이 책은 이 논전을 담았다.

 

“신앙은 다름을 존중하는 공존 속에서 성장하죠”

 

한 무신론자 언론인이 교황에게 물었다. ‘교황은 인류도 다른 존재처럼 언젠가 소멸할 것이라 했다. 우리가 사라지면 생각 또한 사라지고 아무도 신을 생각지 않게 된다. 그러면 신도 함께 죽는 것인가?’ 이에 교황이 답장을 보내왔고,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애초 제기한 질문은 지난해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회칙 ‘신앙의 빛’에 관한 것이었다. 기독교 신앙과 근대적 이성의 충돌을 짚으면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 교리의 여러 논점을 질문 형식으로 지적하고, 왜 이 회칙에서 신앙심과 이성 사이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았는지를 교황에게 물은 것이다. 진리가 하나인가라는 질문에 가톨릭 교회가 비켜가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신은 정중하면서도 진솔했다.

진리는 하나인가?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고 신자들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를 벗어나 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신도 사라지느냐는 질문에는 “하느님은 인간 사유의 결과가 아니다. 대문자로 시작되는 궁극적인 실재다”라고 답하고,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른다”고 했다.

 

스칼파리는 1962년 소집됐던 가톨릭교회의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기한 과제를 거론했다. 이 2차 공의회는 진리와 자유의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을 뿐 아니라 교회와 근대성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겠다고 천명했다. 쉽게 말하면, 교회의 사명을 선교(개종)가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과 공동선 실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가톨릭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2차 공의회 정신은 이후 좌초했다.

 

스칼파리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발표 무렵에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을 치른 것을 짚고 넘어간다. 요한 23세는 2차 공의회의 초석을 놓은 반면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퇴행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러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둘 중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

 

이에 교황은 편지 서두에서부터 그 회칙은 “귀하의 표현처럼 자신을 ‘오래전부터 나사렛 예수의 행적에 관심을 두고 경탄해온 무신론자’로 규정하는 분들과도 진지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쓴 것”이라고 답한다. “신앙이란 비타협적인 것이 아니며 외려 타자를 존중하는 공존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류의 공동선 추구와 이를 위한 대화 의지의 강한 표명인 셈이다.

 

교황이 언론인이 쓴 칼럼에 답한 건 전례없는 파격이었는데, 편지가 끝이 아니었다. 얼마 뒤 스칼파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이렇게 ‘편지 논전’은 교황의 소박한 거처 ‘산타 마르타’ 작은 방의 ‘대담’으로 이어졌다.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최수철 윤병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한 언론인에게 답한 교황의 편지로 말미암아 벌어진 지상 논전과 이후 직접 만나 행한 대담, 그리고 그에 뒤이은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주제 삼은 릴레이 글을 책으로 엮었다. 여기엔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파문당한 신학자 매슈 폭스를 비롯한 저명 학자와 문필가 13명이 참여했다. 신학자 보프는 2차 공의회 정신을 잇는 3차 공의회 개최가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교황은 스칼파리와의 대담에서 2차 공의회 정신을 되살려 적극 펼치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2차 공의회는 “현대적인 정신으로 미래를 보면서 (교회가) 현대의 문화에 문을 열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우리는 그분들이 제시한 방향으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했”지만 “이제 저는 다시 그 일을 해내고 싶은 겸손함과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강인함과 끈기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가닿는 공통지점은 인류를 위한 공동선의 추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자기에 대한 사랑(나르시시즘)과 타인에 대한 사랑(아가페)이라는 사랑의 두 측면이 어느 쪽이 앞서지 않고 적어도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교회의 현실태와 교회 밖 현실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기왕에 많은 언론에 보도됐듯이 이 책 안에도 곳곳에 박혀 있다. 스칼파리가 “바티칸의 벽들 사이에서, 교회의 제도조직 속에서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사랑이 여전히 무척 강한 것 같다”고 하자 교황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줄고 에고이즘(이기주의)이 늘어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의 경제 현실을 두고는 ‘야생적 자유주의’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저는 야생적 자유주의라는 것이 강자를 더 강하게 하고 약한 자를 더 약하게 할 뿐이어서 결과적으로 소외를 더 심화시킨다고 생각한다. (…) 지나치게 벌어진 격차를 바로잡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라면 정부의 직접 개입도 허용해야 한다.”

 

스칼파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꿈꾸는 교회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의 소명은 혁신적인 두 메시지 위에 기초한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청빈한 교회와 (마르티니 추기경이 추구했던) 수평적 교회다. 여기에 더해, 세 번째는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하느님이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청빈한 교회를 내세우는 교황의 행위가 이 세상에 공동선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또하나의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국춘심 옮김, 솔 펴냄)도 나왔다. 예수회 신부인 안토니오 스파다로가 지난해 8월 역시 교황의 거처 ‘산타 마르타’에서 세 차례 만나 대화한 책이다. 교황은 교황 관저를 거절하고 ‘산타 마르타’의 작은 방을 택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황궁 안에 자리한 교황 관저는 깔때기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에요. 커다랗고 널찍하지만 입구가 정말이지 좁아요. 사람들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듯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 아니에요. 사람들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해요.”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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