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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검사와 길 위의 목사, 그리고 유신의 그녀

도가니 검사와 길 위의 목사, 그리고 유신의 그녀
(블로그 ‘사람과세상사이’ / 오주르디 / 2012-09-14)


 

▲<임은정 검사와 박형규 목사>

 

5.16과 유신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귀에 거슬려도도 참으려 했다. 역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여당의 대선후보에 실망하면서도, ‘자식이 어찌 대놓고 부모를 비난할 수 있겠느냐’며 그나마 분을 온정으로 삭이려 했다. 많은 국민들이 이랬다.


진실 앞에 고개 돌리는 여당 대권 후보

맞아 보니 별것 아니다 싶었나. 정신 줄 놓은 듯 한참 더 나가고 말았다.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 있다고 주장했다. 무죄를 선고한 재심판결을 부정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는 말이다. 유신반대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날조한 것으로 결론이 난 사건을 마치 실체가 있는 간첩사건인 것처럼 말해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1974년 4월 박정희 정권은 ‘민청학련’이 ‘인혁당 재건위’의 배후조종을 받아, 반정부 운동을 전개해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며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1024명을 체포한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이들 중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불과 18시간 후인 4월 9일 새벽 사형이 집행된다. 억울한 시민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울부짓는 유족들/1975년 4월 9일>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탄압위해 날조된 사건으로 밝혀졌다. 2007년 이후 올해까지 재심을 통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던 피해자들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07년 8월 서울지방법원은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총 637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04년 8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인혁당 사건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형판결 등은) 법적으로 결론이 난 사항들”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건이 날조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검사가 선고공판에서 “무죄 내려달라”, 사법사상 초유의 일

지난 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 받았던 박형규 목사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검사가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임은정 검사는 검사의 직분을 망각한 양 재판장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청했다.

임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며 한 말이다. 매우 감동적이다. ‘권력의 검’이 아닌 ‘정의의 검’을 쥔 검사를 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기뻤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몸을 불살라 칠흑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무죄를 내려달라.”

 

재판부도 임 검사와 뜻을 같이 했다. 재판부는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울였을 노력 등이 이 판결을 가능하게 하였음을 고백한다. 이 판결이 부디 피고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우리 사법에 대한 안도로 이어지길 소망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임은정 검사, 그는 ‘도가니 검사’였다

임은정 검사.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 2011년 9월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전국을 후끈 달구던 때,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라온 글 하나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사건의 1심 공판검사가 그 영화를 본 뒤 수사 당시(2007년)에 썼던 일기를 공개한 것이다.

 

 

▲<PD수첩 화면 갈무리>

 

“어제 도가니를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습니다”는 말로 착잡한 심경을 밝히며 공개한 임 검사의 일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2007년 3월12일

....법정을 가득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성을 본다.
변호사들은 그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내가 막을 수가 없다.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만 한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

2009년 9월20일

도가니가....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익히 들었지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기에...서점에 들렀다가 결국 구입하고 빨려들듯 읽어버렸다.
가명이라 해서 어찌 모를까? 아 ! 그 아이구나. 그 아이구나....
신음하며 책장을 넘긴다....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는 뉴스를 들었다.
...정신이 번쩍든다. 내가 대신 싸워줘야 할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아우성이 밀려든다.
그날 법정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말려가며 한 다짐을 다시 내 가슴에 새긴다.
...정의를 바로 잡는 것. 저들을 대신해서 세상에 소리쳐 주는 것.

난 대한민국 검사다.

 

임 검사는 2011년 10월 국회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공판 분위기와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아동 성폭력 수사에 대한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증인 심문과정에서 피해자 아동이 ‘거짓말쟁이’로 몰려 억울해 하는 것을 제대로 살펴주지 못해 아쉬웠다고 술회했다.


검사로부터 ‘무죄’ 구형받은 박형규 목사, 그는 누구?

그런 그가 사법사상 초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피고인 박형규 목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를 ‘길위의 목사’로 부르기도 한다. 현대사의 아픈 현장에서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4.19혁명 즈음 결혼식 주례를 보고 오던 길에 피 흘리는 학생을 보고 “엉터리 목사로 살아온 것을 뉘우치고 진짜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박 목사. 그의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에서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에게서 나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었다.”

 

 

유신 반대 투쟁에 앞장서 1973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을 주도했다. 4월 22일 새벽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에 6만 여명의 신도가 운집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의 부활은 대중의 해방” “주여 어리석은 왕을 불쌍히 여기소서” 등의 민주회복과 언론자유를 호소하는 전단을 살포했다. 이는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박 목사는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됐고, 이후에도 반독재 투쟁을 벌여 6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평생 인권과 민주운동, 깡패 동원 예배 방해해 6년간 노상예배 드리기도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박 목사는 정권으로부터 감시당하던 학생들에게 마음껏 ‘거사’를 도모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했다. 그와 학생들이 모였던 곳은 서울 변방의 한 신학교. 고 김근태 고문 등이 그곳을 자주 들락거렸다. 박 정권은 시위하다 붙들린 젊은이들을 고문하는 현장에 그를 불러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했다. 이렇게 말하며 말이다. “당신 때문에 저렇게 당하는 거야!”

 

 

▲<끌려가는 박형규 목사>

 

아흔을 바라보는 노목사와 그 신학교와의 인연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지난 4월 박 목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장로교 교단 소속 목사가 성공회대 최초의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박 목사가 아예 목회를 하지 못하도록 탄압을 했다. 매번 깡패를 동원했다. 그가 목회하고 있던 서울제일교회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고 마구 폭력을 휘둘렀다. 교회에서 예배할 수 없게 되자 서울 중부경찰서 앞에서 교인들과 일반인까지 참여하는 노상 예배를 서울 6년 동안 드렸다. 이 사실이 외신에 의해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MB는 기독교 욕되게 했다” “박근혜 지지는 독재정권 다시 보자는 것”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도 따금하게 일갈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였을 때 박 목사를 만나 “나도 민주화 운동을 했고, 나도 크리스천이다”라고 자랑했단다. 하지만 박 목사는 이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한다 “크리스천이라는 간판만 달고 기독교를 욕되게 했다.”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그를 지지하는 건 독재정권의 그림자를 다시 보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긴급조치 구속자 석방을 위한 기도회/1975년 2월>

 

달라도 참 다르다. 한쪽에서는 과거의 암울한 역사를 치유하고, 그를 교훈삼아 더 나은 민주사회를 만들려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어떻게 하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고 안달이다. 한쪽은 시대정신에 철저하고, 다른 쪽은 시대정신에 역행한다.


저들의 눈에 임 검사와 박 목사는 어떻게 보일까?

‘도가니 검사’와 ‘길 위의 목사’는 인권과 정의라는 시각으로 과거를 보는데, 박근혜 후보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박정희 프레임’에 갇혀 뒤집힌 시각으로 과거를 본다.

진실은 하나다. 대법원 판결이 하나인 것처럼 진실도 두 개가 될 수 없다. 극과 극을 형성하는 두 시각, 한쪽이 진실이면 한쪽이 거짓일 수밖에 없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게 옳은 일인가? 어느 쪽이 거짓인지 또렷해도 너무 또렷하다.

5.16쿠데타, 유신독재,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장준하 선생의 죽음 등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보는 저들의 눈에 임은정 검사와 박형규 목사가 어떻게 보일까?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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