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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황태성 평전 출판..손녀 황유경 씨, 명예회복 요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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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30  16: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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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성의 일대기를 다룬 책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출판기념회가 29일 저녁 서울 인사동 한 식당에서 열렸다. 진혼굿이 진행되면서 남측에 남겨진 유일한 혈육인 손녀 황유경(왼쪽) 씨가 눈물을 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가 되도록 하려던 내가 이렇게 가야했느냐. 날 잊지말라."

만신의 몸을 빌어 베를 찢으며 저승길로 향하는 황태성의 목소리에 손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분단이후 최대 거물급 남파 공작원이라던 황태성은 과연 간첩인가. 밀사인가. 그를 형님처럼 따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를 왜 죽여야 했는가.

한국 현대사 미스테리 중 하나인 '황태성 사건'의 전모와 인간 황태성을 조명한 책『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김학민.이창훈 공저) 출판기념회가 29일 오후 서울 인사동 한 식당에서 열렸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황태성의 넋을 달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공동저자인 김학민 씨는 "황태성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거의 52년이 지났다"며 "이분의 일생을 더듬어서 일제시대의 삶을 다시 연구해보고 말이 많은 1961년 소위 간첩사건의 진상은 무엇이고, 남북 현대사가 어떻게 흘렀는가를 추론해 본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간첩인가 밀사인가의 논란만있지, 이 분이 일제시대 항일운동하면서 독립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를 몰랐다"라며 "이 책은 황태성 선생의 행적과 생각을 드러내고 정리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아닐까 자부한다"고 말했다.

   
▲ 책『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공동저자인 김학민, 이창훈 씨(오른쪽부터).[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황태성의 조카사위로 간첩사건에 연루된 권상능 씨는 "내가 할 수있는 모든 사실관계를 증언해주고 저자들의 애국적인 정신, 조국통일을 위한 정신이 이 책을 통해서 온 국민들에게 알릴 수있는 계기가 된다면 고인 정신 기리는데 도움된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손녀 황유경 씨도 "저는 너무 어려서 할아버지 기억은 그리움밖에 없는데 애써주신 데 대해서 부끄럽고 감사하다"며 "앞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살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념회는 양춘승 씨의 사회로 곽한나 연주가의 피리연주에 맞춰 박종순 씨가 시가창으로 고혼을 했으며, 오우열 만신이 진혼굿을 맡았으며, 1백여 명이 참석했다.

   
▲ 책『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황태성(1906~1963)은 경북 상주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와 연희전문을 다닌 엘리트였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인 교사 배척 동맹휴교, 광주학생운동 서울지역 전파 등에 앞장섰으며, 1935~1940년 항일조직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 투옥됐다.

그리고 신간회 김천지부 대표, 조선공상단 경북도당 조직부장,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 전국인민위원회 후보위원, 경북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았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 임종업 건준 김천군 인민위원장과 함께 경북지역 사회주의 3인방으로 불렸다.

1946년 11월 월북한 그는 당 중앙위원, 산업성 지방산업관리국장, 무역성 서리 겸 부상 등 고위인사였으나 1961년 5.16쿠데타는 안락할 수 있던 삶을 바꿔놓았다. 같은 해 8월 김일성 수상의 남북협상 밀명을 받고 남파, 박정희를 만나려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돼 1963년 12월 57세의 나이에 간첩죄로 처형됐다.

이러한 그의 일생을 황태성의 남측 혈육인 손녀 황유경 씨, 조카 임미정.권상능 씨 부부, 김민하 씨등의 증언과 역사자료 등을 토대로『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가 빛을 봤다. 특히, 알려지지 않은 황태성의 항일운동활동도 담겼다. '푸른역사'에서 출판했고 가격은 2만원이다.

   
▲ 곽한나 연주가의 피리연주에 맞춰 박종순 씨가 시가창으로 고혼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1백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황태성의 손녀 황유경(왼쪽)과 조카사위 권상능 씨.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미니인터뷰] 황태성의 남쪽 손녀 황유경 씨.

황유경 씨(67세)는 황태성이 남쪽에 남긴 맏아들 황경옥의 외동딸이다. 황경옥은 1948년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됐다. 황태성의 둘째 아들 황기옥은 세브란스 의대 재학 중 함께 월북, 평양의대를 졸업했으나 현재 생사를 알 수없다.

남쪽을 내려온 황태성은 1961년 손녀 황유경을 만났다. 황유경은 당시 동덕여중 1학년생이었으며, 훗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내가 황태성씨의 손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미국 샌디에고에 거주하고 있다.

   
▲ 황태성의 손녀 황유경 씨. 뒷편 할아버지의 사진과 닮아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중학생 시절 어떻게 할아버지를 만났는가.

■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처음으로 임미정 고모(권상능 씨 부인)가 학교를 찾아왔어요. 할아버지 친구분이 보자고한다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고향에서 오셨다면서. 그래서 따라갔죠. 김민하 씨 집에. 그때 처음 뵜어요.

□ 처음 만났을 때 할아버지는 어떤 인상이었나.

■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어려서 외갓집에서 자랐거든요. 외할머니가 시골에서 서울에 오셨어요. 그래서 저는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싶은데 고모 손에 끌려왔으니까. 저녁먹고 가라고 해도 마음이 외할머니한테만 있어서 할아버지가 붙잡는데도 뿌리치고 집으로 왔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자꾸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아무래도 할아버지 보통 분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고모한테 가서 친할아버지인 줄 알았죠.

□ 할아버지를 자주 만났는가.

■ 같이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라고 알았을 때는 이미 중앙정보부에 계셨어요. 거기가 동대문 전차역 종점인데. 제가 동덕여중 다녀서 걸어서 왔다갔다하면서 매일 만났어요. 거기서 저녁도 같이 먹고. 기간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

■ 우리 할아버지니까 물론 좋죠. 인자하시고 선하시고..그런 모습만 기억나요.

□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아깝죠. 저하고 조금이라도 살다 가셨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도 있구요. 속상해요 한마디로. 안타깝게 가신 분이죠.

□ 할아버지를 죽인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현재 대통령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저는 그 분들에게 큰 감정없어요. 할아버지도 입장이 있고, 그 분들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다고 봐요. 그저 바람은 할아버지의 명예회복이죠. 간첩 타이틀을 떼고 역사에 남게해주길 바래요.

□ 간첩이 아닌 명예회복은 어떤 의미인가.

■ 밀사가 될 수도 있죠. 그냥 찾아온 것 아닌가요? 재심을 해서 죄가 없다라고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하신 일이 없잖아요. 간첩활동하신 것도 없고. 그런 면에서 무죄판결을 다시 내려주시든가 밀사가 되어주시든가. 역사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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