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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판과 韓·美·中의 오판이 만나면…

[한반도 브리핑] 냉철함을 유지하고 파국 막아야

김준형 한동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13 오전 7:56:06

 

북한이 마침내 핵실험을 했다. 지난 2월 9일 북한언론은 중대조치가 핵실험이 아닐 수 있다는 언급을 함으로써 중단가능성도 제기되었었지만, 결국 강행하고야 말았다. 이로써 20년 북핵 난제가 중차대한 변곡점에 서게 되었다. 포용과 협상에서 강경과 제재까지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북핵문제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지 현재의 전개상황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불안정한 시점에서는 성급한 해결책 제시보다는 유관국들이 파국을 막기 위해 피해야 할 오판을 우선 따져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북한의 오판

체제유지라는 큰 맥락 속에서 북한이 현시점에서 3차 핵실험을 결행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김정은 체제의 권력 강화, 핵탄두 소형화와 위력 강화라는 기술적 필요, 그리고 유엔제재에 대한 항의성 대응 등이다. 특히 동북아 유관국들에서 공통적으로 새 리더십이 출범한 시점에서 강경한 행보를 보임으로써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내부역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먼저 에너지확보나 대외위협에 대한 자위권 확보 등 부분적으로 수긍할 수 있었던 그동안의 주장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미국의 대북압박과 한국의 강경책에 대응하는 방어적 핵개발의 명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해온 세력 및 인사들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키고,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지난 3일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동안 북한의 유일한 지원자였던 중국도 전례 없이 강하게 반대해왔다. 북한당국은 지금까지 로켓발사와 1,2차 핵실험을 중국이 반대하고, 제재에 동참하는 듯 했지만 결국엔 북한 편으로 돌아섰던 패턴을 반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중국이 보인 압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경했다는 점에서 이런 북한의 기대가 빗나갈 수도 있다. 3차 핵실험은 북한의 핵능력이 더욱 파괴적이고 공격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이 더 이상 편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북핵위기 심화가 미국의 대중봉쇄전략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국의 새 지도부가 북한입장을 고려할 여지는 더 작아졌다. 러시아마저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사면초가에 몰릴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년간 벼랑 끝에 서서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과시하는 방법으로 주도권을 유지해왔지만, 점점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도 과거만큼 반응하지 않고 있다. 3차 핵실험이 최대의 효과를 가지도록 하고 싶겠지만, 이후엔 카드가 점점 소진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핵실험 강행으로 경제제재가 가중될 경우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핵실험과 미사일개발을 통해 경제문제를 은폐하고 주민을 통합시키려는 방법은 곧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오판

로켓 발사와 핵실험은 오바마 정부 1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2기 정부 대외정책의 첫 시험대로 떠올랐다. 지난 4년간 부시 행정부의 강경압박정책을 폐기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을 천명했던 오바마였지만, 북한의 도발과 산적한 국내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했었다. 소위 '전략적 인내'는 상황을 악화시키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無)전략에 가까웠으며, 문제 해결엔 실패했다. 대화를 위한 몇 차례의 소극적인 시도가 있었지만 국면을 전환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북한의 자발적 변화 또는 붕괴를 기다리는 희망적 사고에 불과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번 핵실험으로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문제 해결 의사도 전혀 없다고 단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임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역사유산 남기기에 주력할 것이라는 점과, 외교안보팀에서 협상파를 전진 배치한 것을 미루어 변화를 기대했지만 1기의 반복이거나 더 악화될 가능성이 커져 버렸다.

미국정부가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봉쇄와 협상 사이에서 표류하면서 또 다른 오판의 가능성이 우려된다. 즉 대북 유엔제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중국과 러시아마저 등을 돌려 북한이 사면초가에 몰리는 것을 미국외교의 승리로 간주하여, 더욱 강력한 압박정책으로 나갈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단견이며, 북한이 포위된 것처럼 상황을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퇴로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는 법이다. 북미간 적대 관계가 강화될수록 핵보유와 핵공격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북한의 의지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압박보다 정교한 외교력이다.

한국의 오판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역설적 공헌은 강경책으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보수 세력의 재집권임에도 정책변화를 시사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치된 결론에 이르는데 매우 비싼 수업료를 치렀음에도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새 정부가 북한을 탓하면서 대북정책 변화의지를 스스로 꺾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당선자가 내세우는 소위 '신뢰프로세스'가 이명박 정부의 선(先)핵폐기론을 절대적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보다 분명 유연하다. 그러나 여전히 목표에 비해 그에 이르는 구체적 방안제시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핵실험 이후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이 다분하다. 즉 대화 재개와 신뢰구축이라는 좋은 의도를 북한이 저버렸으니 모든 책임을 북한이 져야 한다는 식의 결론에 이르기 쉽다는 것이다.

북한의 행동이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등가성의 원칙이 다시 제기될 조짐이 크다. 물론 우리가 한만큼 상대방도 해야 한다는 등가적 상호성이 외교의 기본이다. 그러나 과거 동서독도 그랬듯이 남북한이라는 특수 관계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등가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엄격한 등가성의 원칙이 명분은 세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해결은 요원하게 만드는 것을 지난 20년간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나쁜 행동을 보상하면 더 나쁜 행동을 낳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파국이 올 경우 우리가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것이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3차 핵실험이 긴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임에는 분명하고, 이를 국제공조동원해서 대응해야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마치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나, 섣부른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의 오판

중국은 지금까지 대북정책에 가장 일관성이 없었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이어갔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북한이 핵을 가지는 것이 원하지 않지만, 핵보유보다 북한체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더 우려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엇갈리는 행보 속에서도 북한의 유일한 지원국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내부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9년 2차 핵실험 직후 유엔제재에 찬성했다가 결국 북한에 대한 지원을 결정함으로써 제재를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격렬한 내부논쟁이 있었던 것은 이를 반영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초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추가도발을 억제하는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고, 한·미·일 3국도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중국이 북미 관계개선을 위한 중재역할은 등한시하고 미국의 압박에 편승만 한다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을 압박하면서 6자회담 재개를 포함하여, 북미대화의 고리를 이어주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갓 출범한 시진핑 정권도 권력 공고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강경한 대외정책의 유혹이 있을 것이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에 강경입장을 보이고, 미국의 대아시아 동맹 강화를 북한을 이용해서 막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의 대중봉쇄 네트워크 결성에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 북한이 12일 3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구글 어스가 지난해 11월 13일 촬영한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 모습 ⓒ구글=연합뉴스


지금까지 북한 핵실험 여부를 둘러싸고 각국이 피해야 할 오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실험을 결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하더라도 냉철함을 유지함으로써 파국으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탄생으로 북한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로켓 발사와 비핵화 포기선언, 핵실험 등으로 연이어 긴장수위를 높이며 김정일의 족적을 따라가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안타깝다. 그러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한 김정은이 냉전붕괴의 위기를 넘어 20년 이상 생명줄을 유지해온 전략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란 너무도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체제를 위협하는 적대적 환경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체제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적대적 환경을 조성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결코 쉽지 않지만 적대적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서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당분간 최악의 대립국면이 전개되겠지만 북한의 도발목적 중에 극적 대화재개가 포함되어 있다면, 이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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