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인생 학교
조현 지음/휴 출판사
1만6000원
신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느렸다. <한겨레> 조현 종교 전문기자가 쓴 <그리스 인생 학교>는 신과 인간의 성지를 한 바퀴 돌아가는 그리스 순례기다. 그 발걸음이 더딘 것은 생각과 역사의 무게 탓만은 아니다. 아기아나 수도원으로 향하는 가파른 경사로에서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떠올리고, 제우스 신화의 땅에선 붓다와 공자, 소크라테스와 예수 들의 도덕적 가치를 곱씹는다. 몸의 여정에 수많은 마음의 길이 더해진다.
짐승이라고 해도 암컷은 들어갈 수 없다는 금녀의 땅 아토스 산에서 순례가 시작된다.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쉽지 않은 절벽 갈피갈피에 그리스 정교회의 오랜 수도원과 암자들이 웅크린 곳이다. 수도 동굴에서 명상과 기도에 40년 세월을 바친 성인도 있었다. 동양에서 온 순례객은 이곳에서 성인의 자취를 쓸어보며 그들이 굳이 땅의 끝자락을 찾아 끊어버리려고 했던 욕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자연 발은 벼랑 위 조그만 동굴에 있으되 마음은 프란체스코 성인과 <그리스인 조르바>와 <탈무드>의 경구를 오간다. 애욕을 이기지 못해 성기를 잘라버리거나 석 달을 여자와 한방에 틀어박혔던 불교의 비구승들도 생각의 나래를 펴고 그곳까지 찾아든다. 바다에 갇힌 수행처에서 욕망의 헛됨을 깨닫고 대해로 나아갈 길을 찾는 마음이 날개를 편다.
여행 초입에서 일찌감치 “비가 올 때는 비를 피할 곳이 가장 중요하더니 배고플 때는 이 기로스 피타 집이 나의 중심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터다. “사람 마음이 이와 같은데 과연 어디에서 중심을 찾고 어디에서 내 운명을 구할 것인가”는 질문을 지고 수도원에서 시작한 길은 알렉산드로스의 기도 신전이었던 고대 디온을 거쳐 예언 신전 델포이, 히포크라테스의 고향 코스로 내처 향한다.
사람들이 분주한 저잣거리로 내려가 보자. 지은이가 그리스 여행을 떠난 때는 마침 그 나라에 재정 위기가 시작된 무렵이라고 한다. 그가 도착하기 며칠 전 한 은퇴한 약사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영적인 경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했던 수도사들이 사는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수도사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차를 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에겐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여유 있는 마음이 두루 서식하는 동네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우리와 비교해보려는 마음이 또한 잘못인지도 모른다.
“지금 그대 안에 있는 최상의 자아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보려는 갈망을 이제는 멈춰라.” 책 곳곳에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갈망, 죽으려고 했던 위기의 순간, 갑자기 찾아온 병 등 자신의 이야기를 떨구며 ‘우리는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는지’ 묻던 지은이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입을 빌려 남긴 당부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그리스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은 델포이. 델포이신전에 기둥엔 고대 7개 현인들의 지혜를 종합해
1.너 자신을 알라 2.중용을 지켜라 3.집착하지 마라 이 세가지 격언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사진 조현
에개해의 한 섬 사모스. 사모스에선 피타고라스와 에피쿠로스가 태어나 자랐고, <이솝우화>의
이솝이 살았던 곳이다. 작은 섬에 세계 최고의 지식인들이 나고 자라고 살았다. 그래서 아리스트텔레스는
<사모스 연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사진 조현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 슐리만의 발굴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같은
신화가 역사임이 드러났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써서 서양문명의 서막을 열었다. 사진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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