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03-22 오후 6:56:49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이래, 한국 대통령 선거의 화두는 변함없이 경제 성장이었다. 이 열망이 유난히 두드러졌던 2007년 대선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대선 보수 정당도 선취하려 애썼던 복지 국가라는 이슈 역시 우리를 둘러싼 맥락 속에서는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유혹이라 읽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았을까?
가질 몫을 정하는 방법은 차치하고 경제를 더 크게 발전시키고 성장시켜야지만 잘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한국에서 좌우를 막론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에서 태어난 이 학자는 이런 믿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제목 그대로의 질문을 진지하게 검토한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최성현·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77)다.
정치학자이자 평화 운동가인 러미스는 이 책에서 우리의 생존 기반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진단하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풍요로워지리란 믿음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따라잡을 목표로 제시되는 선진 공업국의 발전 속도와 규모는 이미 오래 전에 지구의 허용 능력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주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파이 크기를 늘려 빈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바로 그 빈부 격차야말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며 달콤한 거짓말임을 까발린다. 이렇게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낱낱이 지적하면서 그는 인간이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살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 '시장과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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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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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인 러미스는 1960년에 미 해병대에 입대하여 오키나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곳에서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을 포함한 사회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독특한 인물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시작된 일본에서의 생활은 이제 40년이 넘는다. 생태주의적 기반 위에서 평화, 전쟁, 민주주의, 국가의 폭력,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헌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저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2년 출간, 2011년 개정판 출간)와 쓰지 신이치와의 대담집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김경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이 소개되어 있다.
그가 책 제목과 같은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백석동에 위치한 '나눔문화 카페 라'에서 강연을 가졌다. 이 강연은 비영리단체 나눔문화의 시민 강좌인 '평화나눔아카데미' 20기 과정의 첫 시간이었다.
이날 그가 말한 내용은 책의 주장보다는 '경제 성장'의 방법 중 하나인 전쟁을 비판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부터 10년이 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강연 하루 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이라크 국민에 사죄하라'는 평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명분 없는 전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는 "즐겁지 않은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서 잊힌 기억을 불러왔다. 그는 미국이 벌인 전쟁을 명백한 실패로 규정하고 그 부당성을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이 국제 법을 위반한 '전쟁 범죄' 행위였으며 군사적으로는 패했지만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군산복합체에는 이득을 가져다주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청중들에게 주문한 것은, 우리가 누리는 풍요 밑에 존재하는 경제의 정체가 전쟁을 함으로써 유지되는 '군사 기지 경제'가 아닌지 의심해보라는 것이다.
어두운 이야기였지만 러미스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낙관도 할 수 없다"며 정확히 아는 것과 작더라도 진실된 실천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레시안 books'는 이날 진행된 강연 내용을 정리해 전한다. (동시 통역=정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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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글러스 러미스. ⓒ평화나눔아카데미 |
10년 전 오늘은 무슨 날이었나
여러분 반갑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주제는 결코 즐겁고 행복한 주제가 아닙니다. 저는 10년 전 오늘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우선 이는 국제 법을 위반한 전쟁 범죄였습니다. 유엔 헌장은 한 국가에 대한 다른 국가의 침략을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정부가 좋은 정부인가 나쁜 정부인가와 무관하게, 미국은 이 나라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라크 정부에는 미국을 침략하려는 의도도 가능성도 그럴 만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고 도조 히데키를 포함하여 전쟁 범죄를 일으킨 이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전쟁 범죄에 대한 원칙을, 재판의 이름을 따 뉘른베르크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의 기본적인 토대는 전쟁이 없는 곳에서 전쟁을 계획·준비·개시 또는 수행하는 '평화에 대한 죄'를 국제법상의 범죄로 간주하고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유가 불분명한 침략 행위 즉 전쟁 범죄였으나, 후에 이와 관련하여 어느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국제 법은 매우 나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판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라 이야기되는 미국이 국제 법을 위반했음에도 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것이 새로운 기준에 영향을 줄 위험이 높아지게 됩니다.
미국 정부는 이 침략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합리화시켰습니다. 하나는 이라크 정부가 알카에다와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미국은 사전에 이 주장이 명백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거짓말입니다. 이라크 정부는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고 유엔 사찰단의 조사에서도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유엔의 조사를 담당했던 한스 블릭스가 이 사실을 보고하자, 그때서야 미국은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모순된 상황입니다.
9.11 이후의 '제국'
국제 법 위반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미국이 '테러에 대한 전쟁'이란 명분 아래 한 국가를 부수거나 근본적으로 바꾸려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동시 다발 테러 사건(이하 '9.11') 이후 스스로 다섯 가지의 새로운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하나는 이라크를 침략한 것처럼 다른 나라를 침략할 권리입니다. 두 번째는 그 나라의 체제를 바꿀 권리입니다. 정권이 미국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침략을 통해 교체시켜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미국 법이 미치지 않는 영토 바깥에서도 미국 법을 위반한 사람을 체포할 권리입니다. 네 번째는 외국인 용의자를 기한 없이 감금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다섯 번째는 이국땅에서 용의자를 암살할 권리입니다. 로봇 비행기로 누군가를 사살했다는 뉴스를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시작한 것이었지만 정권이 버락 오바마로 바뀐 뒤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바마는 용의자의 프로필 문서를 돌려보면서, '이 사람은 아니야, 이 사람으로 하지' 하면서 암살 대상자를 직접 고르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권리라 할 수 있는 것은 방금 설명한 모든 권리들이 미국 아닌 다른 국가에는 주어지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 즉 권리를 배타적으로 누린다는 사실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은 한 나라가 갖는 권리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그 나라의 법을 집행하고 범죄자를 감금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미국이 자국의 무기를 가지고 이라크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 정부 누구의 허락도 없이 범죄자들을 죽인다면, 이는 그 나라 정부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입니다. 이는 미국이 '제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해 없이 들어주세요. 이때의 제국은 매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전문적이고 중성적인 용어입니다.
사실 9.11 이전까지 미국에서 제국이란 말은 일종의 터부였습니다. 정부의 비판자들은 미국 정부를 가리켜 '제국이다, 제국주의 정부다'라고 욕했고, 정부의 옹호자들은 아니라고 변명했습니다. 즉 그들은 제국주의를 부정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인식은 제국이 '나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9.11 이후 이것이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제국? 제국이 뭐 어때서? 제국 맞아. 좋은 제국이지. 미국은 충분히 제국의 자격을 가지고 있어'라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제국"이라는 선언이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나오지 않았을 뿐 정부를 둘러싼 정책 관련자들은 '미국은 좋은 제국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지한다'라는 입장에서 책을 써내곤 했습니다. 제국주의를 비판해 왔던 사람들은 이제 제국이 왜 나쁜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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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
9.11 사건 직후인 9월 13일,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것이 미국 외교 정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사실 테러와 싸운다는 것은 새로운 개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테러는 특정한 나라도, 조직도 아닌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전술에 맞서 전쟁을 할 수 있을까요?
테러는 자신의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한 전술로, 반군 집단뿐 아니라 국가를 포함해 그 누구든 사용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거기에 누가 있든' 관계없이 어떤 지점을 공격해 무작위로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라는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술입니다. 가령 전시에는 대개 전장에 있는 군인들만 죽고 그 바깥에 있는 민간인들은 비교적 안전하기에 공포를 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앉아 있을지 모르는 레스토랑이나 버스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누가 희생되었든 아무리 적은 사람이 희생되었든 간에 상관없이 그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테러는 이처럼 공포를 유발시키는 군사 기술적인 용어입니다. 반정부 집단만 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영국이 독일의 여러 도시에 폭격을 가했을 때도 처칠은 이를 '테러 폭격'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미국 정부는 테러를 반정부 집단이 특히 '미국을 상대로' 쓰는 무차별 살상 전술을 말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바꾸려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법 집행과 관련된 문제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비정부 조직의 테러가 범죄 행위로 간주되어 경찰 관할로 처리되던 종래와는 달리, 그것이 군사 관할에 걸쳐지면서 생긴 일입니다.
경찰은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자를 찾아내 사회에서 분리한 뒤 재판에 넘기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경찰이 즉각 총을 꺼내 범인을 사살하는 장면이 자주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경찰이었는데요. 용의자를 향해 총을 겨눈 적이 없고, 증거를 가지고 뒤에서 접근해 '너 범인이지?'라고 묻고 잡아갔다고 합니다. 각설하고, 테러 용의자가 경찰 관할이었다는 이야기는, 테러 행위가 법 집행 규칙을 따라야 했다는 뜻입니다. 수사관들은 증거가 있어야만 테러 행위로 인한 체포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체포된 사람은 용의자 신분으로 변호인을 세우거나 증거를 요구할 권리 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사 관할에서는 다릅니다. 군대에서는 수사 훈련을 받지 않습니다. 전쟁의 규칙 아래에서는 전투 중 누군가 적군의 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이 두 시스템의 혼합입니다. 법 집행의 규칙 아래에서는 그럴 수 없었지만, 이제는 용의자를 즉각 사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테러리스트처럼 생겼고 행동하고 걷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쏩니다.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국이 얻은 가장 큰 혜택입니다.
또한 이로 인해 아무 권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전쟁의 규칙 아래에서 생포된 적군은 범죄인이 아니라 전쟁 포로로 취급되며, 이 포로들도 제네바 협정에 따른 일정 권리를 가집니다.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 하에서는 전쟁 포로들에게 그 어떤 권리도 주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이들은 어떤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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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뉴딜 정책?
테러와의 전쟁은 매우 중요한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끝낼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 간 전쟁의 경우 어느 한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그래서 승자가 패자를 항복시키고 패전지를 점령하는 것으로 끝이 날 수 있습니다. 또는 양국이 정전협정이나 평화조약을 맺음으로써 종결될 수 있지요. 그러나 테러는 침략할 특정 영토도 중앙 본부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협정을 맺거나 항복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누구도 끝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출구가 없는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경제적 이유라고 봅니다. 군사 경제는 미국 경제 전체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1929년 주식 시장의 붕괴와 함께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정부 지출을 늘리면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케인즈 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뉴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정부는 거액을 지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큰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미국 경제를 살린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2차 대전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뉴딜 정책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투자를 감행한 결과 미국은 경기를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미국은 이 전쟁에서 여타의 참여국들과는 다른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 땅에서 전투를 치른 나라들은 처참한 경제 상황을 겪어야 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미국인들은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전쟁은 이라크 전쟁을 위시한 2000년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 경제 체제는 1941년부터 오늘날까지 굳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진정한 뉴딜 정책이 된 셈입니다.
미군 기지는 왜 존속되는가
1945년 이후 미국은 군사 기지로 제국을 형성해 왔습니다. 숫자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세계적으로 대략 1000곳이 넘는 군사 기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문명과 사회의 아주 큰 일부분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오키나와는 아주 작은 땅이지만, 엄청나게 큰 미군 기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기지는 오키나와 땅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국에 있는 미군 기지를 통해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기지는 도시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가족이 함께 와 살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의 교육 시설, 경찰, 법원, 감옥, 병원, 레스토랑, 골프장, 미식 축구장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끔 군 기지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알래스카나 하와이 등지에 있는 '군 리조트' 광고가 나옵니다. 아마 오키나와 바깥 지역이었다면 오키나와에 대한 광고도 들을 수 있겠지요? 한마디로 기지는 일종의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도 구성원들이 굉장히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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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평화네트워크(정욱식) |
이러한 군 기지 사회 안에 단 한 가지 없는 게 있다면 바로 생산적 노동입니다. 누구도 무엇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제조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군 기지의 목적인 '전쟁 준비'를 위한 것이라 엄밀한 의미에서 생산적 노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군 기지들을 포함해 군사 경제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만, 만드는 것이라곤 폭발과 함께 사라질 로켓이나 무기뿐입니다. 이 생산은 아무런 결과도 도출해내지 못합니다.
군산복합체를 후원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세금이 필요하고, 따라서 정부는 이 예산의 필요성을 합리화해야 합니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납세자들은 군 기지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고, 왜 자기 돈이 들어가야 하냐며 반발하게 되겠지요. 그렇기에 군산복합체의 생존을 위한 전쟁 혹은 그에 상응하는 두려움을 유발시켜야만 합니다. 이로써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군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합리화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전도가 일어납니다.
이렇듯 군대는 전쟁 가능성이 주는 두려움으로 유지되고, '테러와의 전쟁'은 이것을 위한 완벽한 논리를 성립시켜 줍니다. 테러라는 전술은 시간적, 지리학적 한계가 없기 때문에 전 세계에 펼쳐진 미군 기지의 존속을 합당하게 해 주는 것이지요.
미국의 군사비용 지출은 세계 모든 국가의 그것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베트남에서는 쫓겨났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는 전쟁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군사적 관점에서 명백히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강함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에서 지는 걸까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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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눔아카데미 |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전쟁에서 이기고 지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승패와 상관없이 군산복합체는 돈을 법니다. 군사들은 다치거나 미치지만 않는다며 월급을 받고 승진을 합니다. 즉, 미국은 미국 땅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는다는 조건 하나만으로 전쟁을 통해 번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은 왜 없어져야 하는가', '전쟁은 합리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윤리적 관점에서 던지곤 합니다. 윤리적 판단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전쟁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제국의 기지를 용인하고 그들의 전쟁에 파병을 하는 데 어떤 이유가 있는지, 무슨 이득이 있는지, 한 나라의 국가 경제라는 관점에서도 진지하게 성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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