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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릴 수 없는 부정선거 의혹

[다시 음미하는 4.13대첩] 2. 가릴 수 없는 부정선거 의혹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6/05/01 [19: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박근혜 대통령의 부당한 선거개입이 도를 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8일, 청주와 전북 등 여야 후보의 접전지역을 방문해 국회와 야당을 비난하는 발언을 반복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빨간 옷’을 입고, 여야의 접전지역인 청주를 방문해서는 “이번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20대 국회는 확 변모되기를 여러분과 같이 기원하겠다.”고 밝히고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가 출마한 전북 전주를 방문했는데, 이것은 누가 보아도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며 새누리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입니다. 정운천 후보는 결국 당선되었습니다. 언론은 또한 총선 하루 전인 4월 12일의 국무회의를 미리 예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할 때 명분은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발언조차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말 한마디가 문제되어 실제 탄핵되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와 유사한 선거개입을 벌써 여러 차례 반복한 것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편파선거, 부실선거도 문제입니다.

 

선관위는 애당초 4월 4일에 투표용지를 인쇄할 예정이었으나 야권연대 논의가 활발해지자 갑자기 일부 지역의 투표용지 인쇄를 앞당겨 야권연대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야권연대 이전에 모든 후보자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인쇄해 야권연대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야권연대도 더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각계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는 명백한 편파적 관권선거입니다. 

 

 

4월 9일 인천 남동구 논현2동 사전투표소 관내투표함의 경우, 선관위에서 투표소에 투표함이 설치될 당시에는 봉인이 정상적인 상태였으나, 사전선거를 마친 오후 6시 남동구선관위에 회송된 후 확인결과 봉인이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봉인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관위 직원이 착각해서 봉인을 뜯은 것으로 확인되었다.’며 ‘투표함의 봉인지는 뜯어졌지만 투표지 투입구는 봉인되어 있고 자물쇠는 정상적으로 잠겨있었다’고 하여 마치 문제가 없다는 듯 얼버무리려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은평구 신사2동사무소와 성남시 분당구, 세종특별자치시, 전북 임실 등 4곳에서도 사전투표함에 미봉인 투표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투표관리 소홀이며 부실선거입니다.

 

<SBS>는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인 4월 12일 오후 5시경에, 개표방송 '2016 국민의 선택' 공식 홈페이지에 당선자와 득표율을 허위로 게시하는 초대형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당시 화면에는 무소속 유승민 17.4%, 대구 수성갑의 김문수 75%, 김부겸 25% 등 실제 표심(유승민, 김부겸 당선)과 전혀 다른, 그야말로 청와대가 흡족해 할 결과가 게시된 것입니다. 이는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KBS>의 출구조사 허위 공개를 떠올리게 합니다.

 

총선 당일인 4월 13일 오후 2시 22분부터 25분까지 3분 동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디도스 공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2012년 19대 총선과 2011년 10.26재보선의 디도스 공격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종의 세력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에서, 선관위를 공격한 것 아닌가요? 중앙선관위는 이번 공격을 의도된 것으로 보고 이날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수사결과는 아직 잠잠합니다.

 

개표과정의 문제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서울 서초을 개표소에서는 새누리당 박성중 후보의 투표지 다발에 다른 후보와 무효표가 섞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그대로 둘 경우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가 실제보다 더 올라가게 됩니다. 서초구선관위는 '미분류표'를 일반 투표지 다발에 잘못 넣은 것 같다고 하였지만 부정의혹이 명쾌하게 사라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한편 진주시 수곡면 사전투표함은 개함 결과 177명 전원이 모두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에게 몰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후보별 투표 결과는 새누리당 후보 113표, 더불어민주당 42표, 무소속 12표, 무효 3표인데 어떻게 정당투표는 새누리당이 177표 몰표를 받을 수 있나요? 게다가 비례대표 용지(177장)와 후보별 투표용지(170장)도 7장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진주선관위는 재검표 결과 수곡면과 명석면의 비례대표 투표지가 섞였으며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표가 수곡면으로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부실선거입니다.

 

 

전북 남원시 개표소에서는 관외사전투표 용지를 개표하던 중 황당하게도 전북 익산시장 재선거와 전북도의회 익산 제4선거구 보궐선거 투표용지가 두 장이나 나왔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은 그런 선관위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기 남양주 진접읍 제15 투표소에서는 유권자 7명이 투표용지를 받지 못해 정당투표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전남 여수에서는 선거인수와 투표용지교부수가 일치하지 않는 개표상황표가 발견되었습니다.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선거구는 한 건물에 제3투표소와 제5투표소가 한꺼번에 설치돼, 일부 유권자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상의 상황을 종합할 때, 20대 총선은 박근혜 정권의 부당한 선거개입, 편파, 부실선거로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만일 총선이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면 새누리당은 122석이 아니라 100석을 얻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나라의 공직선거를 부당하고 편파적으로 운영한 대통령과 정권은 탄핵되어 마땅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던 4.19 혁명도 이승만 정권의 도를 넘은 3.15 부정선거가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청와대의 선거개입, 선관위의 편파선거는 필연코 민심의 분노에 맞닥뜨리고 말 것입니다.

 

공정하지 못한 선거는 그 결과가 어떠하든,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4.19혁명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정신입니다.

 

이제 대선입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부정선거, 부실선거가 사라질 수 있게끔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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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

 

민주노총, 세계노동절대회 개최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 막아내자”김수정·박장준 기자 | 승인 2016.05.01 18:24
 

“오늘 민주노총은 2016년 세계노동절대회를 맞아 노동자의 명운을 건 투쟁을 선포합니다.
이 투쟁은 경제위기를 불러오고도 책임을 회피하며,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전담시키려는 재벌에 맞선 투쟁입니다. 이 투쟁은 몰염치한 재벌을 옹호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의 삶을 팽개치는 박근혜 정권에 맞선 투쟁입니다. 이 투쟁은 구조조정에 신음하고 저임금에 고통 받는 모든 노동자를 구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이 투쟁은 노동기본권 말살과 민주노조 파괴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입니다”
_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세계노동절대회 대회사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맞아 민주노총이 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세계노동절대회 <또 다시 앞으로>를 개최했다. 2만여명(수도권 대회 주최측 추산)의 노동자들이 모인 이날 대회에서는 노조와 노동자를 옥죄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맞아 민주노총이 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세계노동절대회 <또 다시 앞으로>를 개최했다. ⓒ미디어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20대 총선 결과는 총파업부터 총궐기까지, 노동개악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온 노동자 투쟁의 결과다. 세월호 진실규명을 외면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던 정부의 반민주-반민생 정책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며 “정리해고-구조조정은 경제위기를 불러온 정부와 자본에겐 면죄부를 주고,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가 그 책임을 모두 지라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최종진 직대는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 칼춤이 아닌, △주35시간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나누기 △제조업강화특별법 제정과 같은 적극적인 고용친화 정책”이라며 “썩은 재벌 체제를 갈아엎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조조정이다. 노동자는 죄가 없다. 서민이 배고플 동안 750조가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온 재벌의 책임을 묻고, 미어터지도록 가득 찬 재벌 곳간을 당장 활짝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직무대행이 2016 세계노동절대회 대회사 후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디어스

지난해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에 맞아 아직도 혼수상태인 백남기 농민이 속해 있는 전국농민회총연합의 김영호 의장도 “국가폭력 책임지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힘찬 구호로 연대사를 시작했다.

김영호 의장은 “노동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다. 이 세상에 하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딱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밥이고 하나는 노동이다. 그러나 현재 밥이 하늘이고 노동이 하늘인가. 하늘은커녕 지하세계에 갇혀 있지 않나. 하늘에 있는 노동자는 오직 수백일째 고공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밖에 없고 대부분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며 “정부는 세계 위기 책임도, 경제개혁 걸림돌도 노동자에게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대표를 감옥에 가둬버리고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노동자의 목을 죄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이치가 뒤집어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고 있다. 2015년 민중총궐기는 그 희망을 만들었다. 올해는 더 큰 힘으로 민중총궐기를 실현해서 반노동 반농민세력에게 철퇴를 놓자”고 외쳤다.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로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기업 옥시를 언급하며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공공부문 성과 퇴출제’를 비판했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이용한 국민이 800만명이고 200만명이 피해자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민들은 사과와 보상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옥시에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시험도 하지 않고 안전하다고 인증서가 붙어 있는 것을 방치한 정부당국이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의 규제를 완화한다고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인증과 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공공기관을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만들었다. 따라서 공공부문 성과 퇴출제는 한국사회를 더 위험한 사회로 몰아가는 악셀레이터가 될 것이다. (…) 한국사회 공공기관에는 성과퇴출제가 아니라 일자리 만들기가 필요하다.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을 위한 노정교섭에 즉각 나오길 바란다”

금속노조 김상구 위원장은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의 노조 압박에 지난 3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아산지회 고 한광호 조합원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43살 한광호는 병든 노모를 모시고 일밖에 몰랐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민주노조를 했던 그가 죽었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 바로 유성기업 사장 유시영과 정몽구가 죽였다”며 “이런 재벌들을 놔두면 그 다음엔 제가, 그 다음엔 여러분이 죽임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손으로, 노동자의 힘으로 재벌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그 길에 15만 금속노조가 당당히 진군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총선 민심’ 수렴해 노동개악 멈춰야”

금속노조 조합원이자 안산 단원고 2학년 9반 고 임세희 학생 아버지인 임종호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9명의 미수습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년은 저희에게도 길지만 미수습 가족들에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9명은 분명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끝까지 책임져야 될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임종호 씨는 “요즘은 분향소에서 유가족들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마주치는 얼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아픔을 누가 만들었나. 정부와 국가를 믿고 살았던 선량한 국민들이 힘들게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정권이었다. 분명히 그 치유는 국가의 책임일 것”이라며 “이 나라 이 땅의 수많은 선한 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그런 20대 국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면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 보장 △안산 단원고 교실 존치 등을 요구했다.

총선 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이 작동할 수 없는 수준인 180석까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 나온 것과 달리 4·13 총선은 집권여당이 1당을 뺏긴 수준까지 참패했다. 이날 노동자대회에서도 박근혜 정부가 이번 총선으로 드러난 ‘민심’을 읽고 국민의 ‘심판’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의당 노회찬 당선자(경남 창원성산, 오른쪽에서 2번째)가 연대사를 하고 있다. 비례대표 추혜선, 이정미, 김종대(왼쪽부터) 당선자도 함께 했다. ⓒ미디어스

정의당 노회찬 당선자(경남 창원성산)는 “4·13 총선은 무엇보다도 그간 반노동적이었던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런 민심을 수렴하지 않는다면 그 앞날을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표심을 제대로 받아들여 4대 노동개악법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노동운동하다 억울하게 구속 수감된 사람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회찬 당선자는 “조선업종 위기 등으로 촉발된 구조조정 바람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어버이연합 뒷돈이나 대 주는 썩어빠지는 전경련이 아니라 노동계 지도자와 만나 대화하고 경제난국을 풀어갈 지혜를 모아내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민주노총과 함께 정의당은 노동자 권익 지키고 함께 투쟁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집회를 마치고 오후 4시 50분께부터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노동절대회를 통해 △노동개악 폐기-노동부 장관 퇴진 △경제위기 주범 재벌책임 전면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주35시간 노동제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나누기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 및 교사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 등 5대 투쟁 요구를 밝혔다.

세계노동절대회 <또 다시 앞으로!>가 열린 서울 종로구 대학로 외에도 인천 부평역 쉼터공원, 충북 상당공원, 대전시청 남문광장, 충남 온양온천역 광장, 전북 새누리당 전북도당, 광주 5·18 민주광장, 전남 순례 조례호수공원 및 목포 노동청 앞, 대구 반월당 네거리,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부산역 광장, 울산 태화강역, 경남 창원 정우상가, 강원 원주역 광장, 제주 탐라문화광장에서 노동절(5월 1일) 전후로 크고 작은 집회와 행진이 이루어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카트를 세계노동절대회에 참석했다. ⓒ미디어스
정의당은 '최저임금 1만원 노동개악 폐기'라고 쓰인 애드벌룬을 띄웠다. ⓒ미디어스
반올림은 삼성이 언론,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을 마리오네뜨로 조종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미디어스
집회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이라고 쓰인 손피켓을 들고 있다. ⓒ미디어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도 노동절 집회에 참여했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청계천으로 행진을 이어가던 중 마이크를 들고 KBS가 어버인연합 게이트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며 권력에 대한 KBS의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꼬집었다. ⓒ미디어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카트를 끌고 행진했다. ⓒ미디어스
   
현대차의 노조파괴 공작이 있었던 유성기업에서 또 한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금속노조는 노동절 집회와 행진에서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미디어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며 노동개악과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디어스
금속노조가 방송차량에 붙인 선전물. “재벌 곳간 열어라” ⓒ미디어스

 

 

 

김수정·박장준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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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재선생 <미국이 지휘할 수 없는 시대 오고있다>

  • 이천재선생 <미국이 지휘할 수 없는 시대 오고있다> ... 이어 코리아연대탄압규탄 행진!
  • 임진영기자
    2016.04.30 01:14:52
  •  

    코리아연대(자주통일민주주의코리아연대)는 29일 오후5시30분 광화문 미대사관앞에서 <사드배치반대·북미평화협정체결·개성공단폐쇄철회·박근혜정권퇴진>을 촉구하는 12번째 거리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연사로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이천재고문이 나섰다. 

     

    이천재고문은 <마치 망나니춤 같은 공포의 전쟁연습이 내일이면 끝난다. 자그마치 30만이 동원된 지상최대의 핵전쟁연습이 두달이나 진행됐다.>면서 <이것은 우리 자존심을 무시하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보여준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지금 코리아반도에서 핵전쟁을 할 수 없다는 오바마의 솔직한 고백은 한국사람의 안전 때문이 아니라 북의 핵능력 때문>이라며 <코리아반도에서 핵전쟁을 하면 미국본토가 잿더미로 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세가 여기까지 왔으면 적어도 남측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전쟁할 수 없는 미래가 어떻게 발전할지 자기견해가 나와야 한다. 그게 통치자다.>라며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남북이 적대적관계가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인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심지어 국제사회에 돌아다니며 북의 비핵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북의 비핵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어떻게 남과 북이 평화를 만들고 미래를 만들 것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고문은 <1950년 전쟁때부터 북을 핵으로 공격해야 한다며 미대통령은 핵카드를 들었다놨다 해왔다. 적어도 유엔안보리에서 북이 수소탄으로 무장했다고 하면 유엔총회에서는 핵으로 무장하지 않은 나라는 핵으로 협박해서는 안된다라는 내용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비핵화돼있는 국가에 핵공격한다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서 북이 핵보유국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계속해서 <북의 핵능력이 미국놈들로 하여금 코리아반도에서 전쟁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나온 것은 현실적인 균형이 무너지는 현실적 조건에서 나온 것이지 미국사람들의 인도주의적 양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고문은 또 남북간의 문제는 철두철미하게 마주 앉아야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남북은 마주 앉아야 한다. 남과 북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했던 소중한 기억은 김대중대통령이 북을 방문해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한 때이고, 노무현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서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합의한 때>라면서 <남과 북이 마주앉기만 하면 어쨌든 남북평화와 민족문제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 합의와 가능성이 열린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커다란 역사의 큰길을 억지로 외면하고 남북대결로 계속 전쟁의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기회만 있으면 북을 치려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통령>이 청와대를 지키게 하는 것도 그렇지만 하는 짓도 시원치 않다.>며 <백성들이 경제 때문에 어려워하고 있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비박, 친박 이라는 말만 한다. 적어도 어떻게 잘해야 훗날 역사에서 평가를 받을 것인가 생각을 해야 대통령>이라고 힐난하고, <<대통령> 하나를 잘못 둔 것은 우리모두의 치욕이다. 이것이 모두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 백성은 전부, 주머니가 텅텅 비어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맨날 하는 이야기가 북비핵화>라고 꼬집었다.

     

    계속해서 <억압과 통제, 백성의 입을 틀어막는 독재시대인 70~80년대 역사가 우리모두를 바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미국이 더는 이 코리아반도를 지휘할 수도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미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변화를 개척하고 추동할 수 있는 그 주체는 우리다. 이 시대의 주인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리강연이 끝난후 코리아연대는 <코리아연대회원구속규탄·공안탄압중단·박근혜정권퇴진>을 촉구하는 행진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자주통일·민주주의 위해 헌신한 코리아연대 이동근회원 석방하라! 보안법 철폐하고 보수대 해체하라! 박근혜파쇼폭압정권 퇴진하라!>·<지영철석방! 박근혜퇴진!>·<이동근석방! 박근혜퇴진!>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코리아연대탄압중단!>·<국가보안법철폐!>·<북미평화협정체결!><미군떠나라!> 등의 구호가 적힌 가로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미대사관앞을 출발해 세월호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코리아연대 지영철·이동근회원은 지난 28일 열린 국가보안법위반혐의에 대한 1심선고재판에서 각각 징역2·1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이동근회원은 법정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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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지율 0.76% '백 년 정당'입니다!"

"우리는 지지율 0.76% '백 년 정당'입니다!"
 
2016.05.01 09:31:24
[이 주의 조합원] 녹색당의 '국회의원 후보' 하승수 조합원
이번 20대 총선은 민심의 여당 심판이라는 이야기를 낳았다. 이 극적인 이야기에 묻혀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 진보 정당의 부진이다.
 
프레시안 협동조합에는 (당연하게도) 진보 정당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이 많다. 특히 프레시안 조합원에게 친숙한 인물을 만나봤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이번 '이 주의 조합원' 코너의 주인공이다.
 
하승수 조합원은 공인회계사로 일하다 1998년부터는 변호사로도 일했다. 이후 그는 시민운동에 눈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초대 소장을 맡았고, 이외 숱한 시민단체를 다지는데 힘을 보탰다. 그가 본격적으로 삶의 궤도를 바꾼 건 녹색당 창당 과정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가장 신생 진보 정당인 녹색당은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다. 그러나 득표율 저조를 이유로 정당 해산이 결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새로 창당했다. 하승수 조합원은 2년 임기인 녹색당의 공동운영위원장을 연임 중이다. 녹색당은 선출직인 공동운영위원장과 공동정책위원장을 남녀 동수 2인으로 구성하고 있다. 
 
탈성장, 생태, 여성 인권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당이라서 그럴까. 우리나라 어느 정당보다 젊고, 여성 비중이 크다. 현재 녹색당 당원의 평균 연령대는 만 40~41세 수준이고, 특히 서울의 경우 30대다. 당원 중 여성 비율이 55% 정도 된다.
 
하승수 조합원은 프레시안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2005년부터 <프레시안> 지면에 소중한 글을 여럿 실은 대표 필자다. 무엇보다 그는 프레시안 협동조합 전환을 승인한 발기인이자, 초대 소비자 조합원 대표 이사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서울시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이사직을 관뒀다. 
 
'국회의원 후보 하승수'로서 직접 선거에 참여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25일 서울 종로구 녹색당사를 찾았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18만2301표를 받아 0.76%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보다 0.01%포인트 오른 결과지만, 목표였던 원내 진입에는 실패했다. 진보 정당이 하나같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기에, 조금은 우울한 마음일 터다.
 
"선거 제도 개혁이 정말 중요해요" 
 
하 조합원에게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얻은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물어봤다. 녹색당은 광화문에 천막 선거사무소를 만들어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하 조합원은 '하승수' 홍보보다 녹색당 정책 홍보를 하는데 더 집중했다. 
 
그는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직접 시민을 만나면서 민심이 어떠했는가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에 관한 불신, 혐오가 정말 강하더라고요. 보통 투표는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표를 준다'는 식으로 진행되리라 생각하기 쉬운데,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어떤 사람, 어떤 정당이 싫어 투표한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새누리당 180석' 이야기가 안 믿기더라고요." 
 
다만 그만큼 한계도 절실히 느꼈을 터다. 녹색당의 당 색은 녹색이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 국민의당과 같다. 실제 많은 시민이 "안철수당 아니냐"고 물어 당황하는 당원이 많았다고 했다. 소수 정당으로서는 어려운 대목이다. 
 
선거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고 물어봤다. 아픈 대목이다.
 
하 조합원은 "최소 1~2%는 얻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게 안 됐으니 아쉽다"며 "선거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당은 현재 선거 결과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5월부터는 각 지역을 돌며 상향식 의견을 받고, 이를 당 차원에서 최종 정리할 예정이다. 
 
다만 이번 선거로 얻은 것도 많다고 하 조합원은 강조했다. 무엇보다 당원이 늘어났다. 선거 기간에만 2500여 명이 새로 당원으로 가입했다. 조만간 당원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당원 사이에서 당에 관한 자긍심이 커졌고, 현실 정치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진 것도 긍정적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를 치르며 당 내에서 선거 제도의 불합리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 하 조합원은 인터뷰 중 이 부분을 가장 강조했다.
 
"1인 2표제를 실시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유권자가 많아요. 그러니 정당 투표에 집중하는 녹색당은 더 힘들죠. 이런 간단한 사실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문제죠. 이상한 광고나 만들어서 논란만 일으키고 말이에요." (웃음)
 
선거 제도 개혁 이슈는 앞으로도 녹색당이 관심 가질 문제가 됐다. 녹색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유권자의 표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거 제도 개혁을 주장해 왔다.
 
"정치에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내 정당 진입 장벽으로 3%를 정해뒀는데, 이게 곧 철칙은 아니거든요. 네덜란드에서는 이 비율이 0.67%에 불과해요. 세계에 다양한 선거 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이런 논의를 너무 안 해요. 그러니 돈 없는 사람은 선거에 나갈 수 없고, 공천 못 받으면 선거에 나가기 힘든 구조가 이어지죠."
 

▲하승수 조합원. ⓒ프레시안(최형락)

"녹색당은 다릅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 적잖은 이는 소수 정당이 연대하거나, 합당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합치면 원내에 더 많은 진보 정치인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다. 
 
하 조합원은 곧바로 "워낙 많이 받은 질문"이라며 녹색당이 따로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들어 설명했다. 
 
우선, 당의 지향점이 다르다. 녹색당은 생태주의 정당이다. 탈핵, 탈성장이 당의 지향점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해 노동자 권익을 옹호하겠다는 '친성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이념을 가진 정당이다. 
 
"저는 '탈성장'을 국가 경영 목표에서 '경제 성장률 몇 퍼센트' 개념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제 성장률 올리는 게 우리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경제는 중요하지만, 경제 성장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탈성장을 이야기하면 다른 진보 정당 관계자도 '녹색당은 따로 가는 게 좋겠네요' 하세요." (웃음) 
 
당의 운영 방식도 다르다. 녹색당은 당내 민주주의 관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도입된 제도가 대의원 추첨제다. 다른 정당과 녹색당을 가장 차별화하는 요소다.
 
녹색당은 평균적으로 당원 30명 당 한 명의 대의원을 뽑는다(지역, 성별, 연령별 안배로 정확한 대의원 대상을 정한다). 이들은 제비뽑기로 뽑혀 임기 1년의 대의원직을 지낸다. 당원이라면 누구나 현재는 198명인 대의원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심지어 광주녹색당, 전남녹색당의 경우 운영위원장도 제비뽑기로 선택한다. 이와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사견입니다만, 저는 우리나라 시민운동 사회, 진보 진영에 엘리트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전문가주의가 남아있다고 봅니다. 녹색당은 이를 탈피하고자 합니다. 정치란 몇몇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가치와 지향을 공유하는 당원이라면 누구나 녹색당 운영에 참여하고, 누구나 선거에 나갈 수 있어야죠. 프레시안 협동조합도 대의원 운영에 추첨제를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요?" 
 
하 조합원은 녹색당이 필요한 이유로 후쿠시마 사고를 꼽았다. 우리나라에 녹색당이 생긴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기존 정치에 관한 생각을 바꿨어요. 우리가 아무리 정치와 따로 떨어져 산다고 해도, 국가 정치가 풀뿌리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핵발전소는 국가 정치에 떼놓을 수 없는 문제잖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코너의 공통 질문인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놓칠 뻔했다. 하 조합원은 프레시안이 "지금처럼 꿋꿋하게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립 언론은 사회의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 비유했다. 있을 때는 공기처럼 필요성을 모를 수 있지만, 없으면 답답한 존재. 녹색당도 어느새 우리 사회의 공기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큰 착각일까.
 
마지막으로 녹색당 홍보를 한 마디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백 년 가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잖아요? 녹색당은 진짜 백 년 가는 정당입니다. 백 년을 고민해야 할 이슈를 의제화하고, 진짜 백 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는 보통 사람이 모인 정당입니다. 그러니 프레시안 조합원 여러분도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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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네 쌍둥이 치료 보도를 보고

북, 네 쌍둥이 치료 보도를 보고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4/30 [23: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5개월이 넘게 평양산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건강한 몸으로 지난 4월15일 태양절날에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 네쌍둥이들     © 자주시보

 

▲ 네 쌍둥이는 최소 4kg에서 6kg 정상 체중을 찾아 청진시 육아원으로 떠났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연합뉴스는 1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지난 16일 '비약하는 조국에 기쁨을 더해준 네쌍둥이 소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5개월여 동안 평양산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네쌍둥이가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탄생일, 4월15일)에 건강히 퇴원해 비행기를 타고 귀가했다”고 전한 소식을 보도하여 본지에서도 이를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관련자료를 검색해 보니 유튜브 등에 보도 내용이 동영상으로도 올라와 있었다. 아이들이 전형적인 조선인 골격의 아버지에다가 고운 어머니를 많이 닮아 한결같이 곱고 예뻤다.

 

네쌍둥이의 어머니는 리봄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교동 22인민반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말 도의 산원에서 네쌍둥이 임신부로 진단받은 즉시 헬기도 아닌 비행기로 평양산원에 입원, 출산일을 포함해 퇴원까지는 무려 7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다. 갈 때 타고가는 비행기를 보니 작은 세스나가 아니라 거센 기류에도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대형항공기였다.

 

지난해 11월 태어난 네쌍둥이는 당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딱 봐도 성별이 여아들로 같고 닮은 것을 보니 일란성 넷쌍둥이인데 엄마의 몸은 날씬이 미녀였다. 얼굴은 갸냘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태어났을 때 상태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치료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만 300여 차례, 치료일 160일, 전담 의사와 간호사 8명이 밤에도 항상 곁에서 돌보며 치료를 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검사, 기구봉사, 실험실 검사에 친어머니, 친혈육 못지 않은 정성을 기울여준 간호사와 의사들... 

 

결국 퇴원하는 날 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리며 뜨겁게 말했다. "정말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친혈육 친언니들이 되어 따뜻이 보살펴주셨습니다. 은혜에는 보답이 따라야 합니다. 당의 참된 딸들로 굳세게 키워나가겠습니다."

아버지도 물기어린 굳센 음성으로 "고마운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네쌍둥이 부모는 선군조선의 효녀로 훌륭히 키우겠다"며 네쌍둥이의 이름을 각각 김선은, 김군은, 김효은, 김녀정이라고 지었다

 

북에서는 셋쌍둥이 넷쌍둥이는 네살(우리나라 5살)까지 전적으로 국가가 맡아키워준다. 북의 방송보도를 보니 청진시에서는 벌써부터 네쌍둥이 맞이에 흥성이고 있다며 책임자가 퇴원하는 평양산원에까지 달려와서 어서 데려다가 돌보고 싶다며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아마 애육원 육아원 관계자인 것으로 보였다.

 

▲ 세쌍둥이 후원을 부탁     © 자주시보

 

우리 보도를 보면 점점 출산율이 떨어지고 결혼 연령도 늦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남녀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혼자살기도 힘든데 가족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것이며 여성들은 무보수 가정부로 전락하기 싫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결국 인구의 노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제 장기 침체는 백약이 무효임은 아베노믹스의 실패로 다시 증명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 경제가 북보다 수십 수백배 높다는 통계수치가 있는데 왜 남측이라고 얼마되지 않은 네 쌍둥이 세쌍둥이에 대한 지원을 북만큼 못하겠는가. 국회의원들의 의지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지금도 편부모 아이들에 대한 양육비를 나라나 지방에서 지원해주는 등 날로 보육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혼부부들은 육아를 큰 부담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치료가 힘든 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이나 셋, 넷 쌍둥이 부모들은 현재 국가의 지원만으로 턱없이 부족하여 언론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후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새로 국회의원들도 뽑았으니 법을 다듬어 다른 복지도 늘력가야 하겠지만 정말 아이들에 대한 건강복지, 교육복지, 학교급식 등 영양공급복지만은 가장 우선시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신혼부부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 낳아 기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엠알아이도 첫번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만 두번째부터는 중증환자도 자비부담이라는 사실을 최근 본사기자 치료과정에 알게 되었다. 이런 의료복지에서는 육아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전면적인 육아복지 덕에 줄어들던 출산율이 다시 오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라고 못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는 국방비 비리를 근절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회복시켜 한반도의 위기를 줄여 국방비 자체를 줄여갈 방도를 찾는 것도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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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접 사과' 이끌어낸 집회, 정말 고맙습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5/01 09:22
  • 수정일
    2016/05/01 09: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주장] '촛불 재판' 그 후 8년... 집회의 자유 옭아매는 법은 '현재진행형'

16.04.30 19:31l최종 업데이트 16.04.30 19:3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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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 항쟁 기념일인 지난 2008년 6월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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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복학생이었다.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대학 도서관은 늘 학생들로 북적였다. 전공이 정치학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TV와 신문, 인터넷으로만 보던 촛불집회에 막연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눈앞의 시험이 더 급했다. 

하지만 6월 10일에 대규모 집회가 치러질 것이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를 조바심에 시험공부도 그만둔 채 2008년 6월 10일 오후, 무작정 광화문으로 나갔다. 

처음 나가본 집회 풍경은 놀라웠다. 종로부터 광화문까지,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물결이 모든 거리를 가득 메웠다. 다들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피켓을 들었다. 더러 아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기도 했다. 종로와 광화문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가득 메웠을 차량 행렬도 이날 만큼은 시민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마치 휴일에 공원으로 소풍을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집회의 내용과 구호는 엄중했지만, 내 옆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광화문대로를 가로막은 '명박산성'도 사람들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진 못했다. 그들은 명박산성을 무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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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2008년 6월 22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48시간 비상국민행동' 사흘째인 46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여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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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가 처음이었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새벽녘 텅 빈 대로를 걸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평범한 복학생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간혹 촛불집회에 나갔던 시민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연행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별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그 때 나와는 달리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나긴 촛불재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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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6월 29일 새벽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들이 경찰들과의 격렬한 대치를 벌이던 가운데 경찰의 강제진압이 시작되자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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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4일 촛불집회에서 36명이 연행된 이후, 매일 수십 명의 연행자가 발생했다. 연행된 시민들은 여러 경찰서로 나뉘어 조사를 받았다. 민변 변호사들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맡게 되었다. 민변은 2008년 5월 25일부터 쇠고기 촛불집회가 사실상 마무리된 8월 26일까지 총 183회에 거쳐 1398명의 연행자를 접견하였다. 
 

연행자 대부분이 불구속 수사를 받았는데, 2008년 하반기 이후 검찰의 약식기소와 약식명령 발부가 집중되면서 수백 건에 이르는 변론 사건이 한꺼번에 민변에 접수되었다. 민변은 총 939명(약식명령사건 858명, 정식기소사건 81명), 사건으로는 총 300건(약식명령사건 246건, 정식기소사건 54건)을 무료로 변론하였다. 총 83명의 변호사가 참여하여 이후 8년간 계속될 '촛불 법률지원단'의 시작이었다. 

2008년 당시의 구 집시법(정식 명칭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해가 진 이후의 옥외집회 및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음에도 검찰은 위 규정을 근거로 수백 명에 이르는 시민들을 일괄적으로 기소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집시법에 의하면 집회·시위의 자유는 단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보장되는 반쪽짜리 기본권이었다. 

해가 진 이후에 집회·시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집회·시위의 참가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구 집시법 제10조가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인식이 법률지원단에 참여한 변호사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이에 따라 법률지원단은 집시법 제10조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된 형사재판의 재판부에 이 법이 위헌이라는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집시법 제10조를 적용하여 기소된 시민들의 재판이 모두 중단되었다. 

먼저 구 집시법 제10조 중 일몰 후 옥외집회 부분이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반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서도 "입법자가 2010. 6. 30. 이전에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적용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09. 9. 24.자 헌재 2008헌가25결정). 

이후 국회가 2010. 6. 30.까지 위 규정을 개정하지 않고 기한을 상실하자,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형벌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의 변형된 형태이므로 위헌결정과 동일하게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고 일몰 후 옥외 집회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대법원 2011. 6. 23. 선고 2008도7562 전원합의체 판결). 

이 대법원 판결 이후, 해가 진 이후 옥외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안에 대해 검사는 공소를 취소하거나, 일몰 후 옥외시위로 공소장을 변경하였다. 

구 집시법 제10조 중 나머지 옥외시위 부분은 그로부터 6년 뒤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위 규정에 대하여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를 금지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4. 3. 27.자 2010헌가2 한정위헌결정). 여전히 자정 이후의 시위는 금지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 이후 '해가 진 이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 부분에 한해서만 무죄라고 선고하였다. 

도로에서 집회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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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렸던 지난 2008년 6월10일 저녁. 경찰이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세종로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에 시민들이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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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시민들 중 대다수가 일반교통방해죄(형법 제185조)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법정형으로만 따져보아도 '영아살해'(10년 이하의 징역), '존속상해'(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강제추행'(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야간주거침입절도'(10년 이하의 징역)와 비슷하고, '과실치사'(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와 같은 죄에 비하면 그 형이 훨씬 무거운 죄가 단지 도로에 나가 평화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시민 수백 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된 것이었다.

유사한 조문을 갖춘 도로교통법과 비교하여 보자.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교통에 방해되는 방법으로 눕거나 앉거나 서있는 행위"를 "벌금 2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라는 경범죄로 규율하고 있다(도로교통법 제68조 제3항, 제157조).

평화적인 집회에 참가하여 도로를 일시 행진, 연좌하는 행위를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굳이 처벌해야 한다면 도로교통법 조항을 적용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검찰은 일반교통방해죄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였다. 

특히 검찰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집회나, 집회 개최를 신고하였으나 경찰이 금지한 집회를 무조건 불법 집회로 간주한 후 참여한 시민들을 일반교통방해죄로 일괄 기소했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검찰은 도로에서 진행된 미신고집회(또는 금지통고된 집회)의 참가자들은 모두 범죄자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기소방침은 집회에 참여하려는 시민이 그 신고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만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이를 뿐만 아니라, 집회·시위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과도 맞지 않는 태도였다. 

위와 같은 검찰의 무차별 기소를 막기 위해 법률지원단에서 일반교통방해죄의 위헌성에 대해 검토하던 중, 다른 집회 관련 사건에서 법원이 위헌제청결정을 하여 위 규정도 헌법재판소로 올라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0. 3. 25.자 2009헌가2 결정). 이에 따라 단순히 집회에 참가하여 도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처벌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기소된 시민 한 명 한 명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밝혀짐에 따라, 검찰의 기소·법원 판결의 일정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집회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기소 및 처벌이 이루어졌다. 인권침해감시활동을 벌이던 활동가, 의료봉사단 간호원은 물론,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옷에 물대포에 섞여있던 색소가 묻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된 경우도 있었다. 다른 시민을 연행하는 경찰관에 항의하다 체포되어 기소된 경우도 여럿이 있었다. 집회를 촬영하던 시민, 촛불예비군,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엄마들이 줄줄이 기소되었다. 

또한 자정 이후 5분~10분 동안만 집회에 참여했는데도 처벌된 경우가 많았다. 새벽에 체포된 경우 뚜렷한 증거도 없이 그 이전 시간 시위에 계속 참여하였다고 간주되어 처벌받은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인도에 있었던 사람도 연행되어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이미 시위 이전에 경찰 차벽이나 경찰에 의하여 도로와 인도가 차단된 상태에서 집회에 참가한 시민에게도 법원이 일괄적으로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여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 역시 지나치게 높았다. 평화적인 집회에 단순 참가한 시민에게도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이 선고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오히려 형량이 너무 적다고 항소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검사의 무리한 무차별적 기소를 법원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때 그 촛불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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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이틀째인 지난 2008년 6월 6일 저녁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대형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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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시민·변호사 모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직장인이 되었고, 가정을 이룬 경우도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시민과 변호사가 울고 웃으며 함께 재판을 치러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대학생에서 만 2년차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촛불 법률지원단의 마지막 사업인 두 번째 촛불백서(법률지원단에서는 2010년 첫 번째 촛불백서를 발간하였다) 제작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8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법률지원단의 막내로 사업을 마무리 지으며, 자연스럽게 집회·시위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회·시위는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알릴 수 있는 최후의 통로다. 헌법재판소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대의제를 보완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필수적 요소이자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으로 인정하고 있다(헌법재판소 2014. 4. 24. 2011헌가29 한정위헌결정 등). 

시민이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려는 정부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내보이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시민들이 없었다면, 이명박 정권은 급히 협상을 재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권과 주권을 외치며 집회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이나 되는 평범한 시민들이 8년 넘게 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100만 원 내외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촛불재판은 마무리되었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민변은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들을 모아 오는 5월 2일 오후 2시, 두 번째 촛불백서를 발간하고 이를 기념하는 보고대회를 서울변호사회 조영래홀(광화문)에서 개최한다. 이 글에 담지 못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백서와 보고대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서 발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애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가 2015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열렸고 수많은 시민들이 2008년 촛불집회 때처럼 거리로 나왔다. 또 다시 단지 도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시민이 입건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기소되어 재판 계속 중이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도 비슷한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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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대포에 실신한 농민, 생명 위독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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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의 자유를 옭매는 집시법과 일반교통방해죄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완고한 검찰과 법원의 태도를 바꾸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싶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의 완고한 보수성만큼이나 민주주의와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도 바뀌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와 민중총궐기 집회에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손에 든 것이 촛불에서 노란 리본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결국 촛불을 들고 함께 손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실제로 집회에 나와서 앞장서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고귀함을, 헌법상 기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던 이름 없는 수많은 촛불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그들은 국민이 곧 주권자이고 정부는 단지 선거로 그 주권을 위임받았을 뿐임을, 헌법에 쓰인 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우리에게 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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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의 목소리 대변할 살아있는 언론을"

"기층의 목소리 대변할 살아있는 언론을" 5.1절 창간하는 <민플러스> 조헌정 이사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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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30  23: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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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플러스>를 창간하는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와 28일 향린교회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민플러스> 언론이 흩어진 민주.진보세력들의 목소리를 서로 함께 모으고, 함께 나누는 장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다.”

5월 1일 세계노동절에 창간하는 진보적 인터넷언론 <민플러스>(www.minplus.or.kr)를 이끌고 있는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는 28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어떤 중심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헌정 목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언론협동조합 담쟁이’가 발간하는 <민플러스>는 시험판을 가동하고 있고, 1일 오전 9시 일반인에게 오픈됨으로써 공식 창간한다.

조헌정 이사장은 “한 6개월 전부터 민주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을 모았다”며 <민플러스>를 “새로운 진보 현장언론”으로 규정했다.

“특별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민중, 즉 노동자, 농민, 빈민, 기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론”을 지향하면서도 “기층민중과 어떤 미래적 방향을 설정하는 (지식인의) 목소리, 이 두 흐름이 합류가 되는 언론기관”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것.
 

   
▲ 새 진보 인터넷언론 <민플러스> 시험판 첫 화면. 1일 오전 9시 일반인에게 오픈될 예정이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인터뷰에 함께 자리한 류경완 <민플러스> 운영위원장은 “광고 없이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게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단순 후원만이 아니라 지역이나 단체, 해외, 부문, 세대, 이런 다양한 소모임들을 담쟁이의 특성처럼 밑바탕에서 조그맣게 예쁘게 조직하면서,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같이 손을 잡고 거대한 벽을 넘는’ 철학까지 공유하면서 조합을 운영하고 언론을 경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 운영위원장은 “가장 기본은 현장 소식과 민족.국제 두 축”이라며 “국내 정치나 경제, 이런 부분들은 속보성들이 거의 없고, 사건 사고나 가십, 연예도, 스포츠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의 현장소식을 전할 예정인데... 현장소식들은 아마 우리가 가장 빠를 것”이라고 자부하고 “다음 한 축은 민족과 국제다... 해외교포들이나 진보적인 세계석학들, 전 세계의 진보언론들과 기사공조나 전략적인 제휴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헌정 이사장은 오는 3일 오후 7시 30분에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릴 예정인 창간기념식에서 발표할 창간사를 통해 “지금 우리 국민은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담쟁이와 민플러스는 일하는 사람들이 헌법에 보장된 자기 권리를 온전히 누리며 행사하는 새 세상을 여는데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힐 예정이다.

<민플러스>는 고광헌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과 유영구 전 중앙일보 기자, 브라이언 베커 미 평화단체 엔써 대표 등 10여명의 국내외 자문위원과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램지 클락 전 미 법무부 장관 등 10여명의 국내외 고문을 위촉했다.

또한 정용일 편집장을 비롯한 상근 기자단과 12명의 편집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전문필진을 갖춰 나가고, 각 부문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기자(통신원)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다음은 28일 오후 5시 향린교회에서 조헌정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과 류경완 <민플러스> 운영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가장 기본은 현장 소식과 민족.국제 두 축”
 

   
▲ 조헌정 이사장과의 인터뷰에는 류경완 <민플러스> 운영위원장이 함께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5월 1일 <민플러스>가 창간하는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민플러스> 창간에 대해 알려 달라.

■ 조헌정 이사장 : 물론 몇 개 진보언론들이 그동안 쭉 활동을 해왔는데, 한 6개월 전부터 민주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을 모았다.

그래서 새로운 진보 현장언론, 특별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민중, 즉 노동자, 농민, 빈민, 기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론을 만들어내자는 뜻을 함께 모아서 6개월 이상 준비를 해서 이번 5월 1일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 통일뉴스 : 창간일은 5월 1일은 메이데이다. 연관이 있나?

■ 조헌정 : 원래는 4월 19일에 맞춰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내부 사정이 있어서 5월 1일에 창간하고 3일에 창간기념식을 여기 향린교회에서 갖기로 했다.

□ 통일뉴스 : 5월 1일 창간이라고 하면, 온라인 매체 개통일 텐데, 준비는 잘 되고 있나?

■ 조헌정 : 그렇다. 지금 굉장히 바쁘게 뛰고 있다. 일단 시험버전은 나와 있다.

□ 통일뉴스 : 준비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을 텐데, 예상대로 잘 되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 조헌정 :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직접 뛰는 현장 직원은 아니다. 가끔 물어보면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 류경완 운영위원장 : 상근기자들은 대체로 채용했고 5월 중순 추가될 예정이다. 나머지 실무적인 부분이나 행정적 절차는 다 끝났다.

언론사 등록증도 지난주에 나왔고, 협동조합 설립과 법인 등기, 사업자 등록증, 언론사 등록증까지 갖추는데 2달 정도 걸렸다.

5월 1일 창간을 위한 홈피를 시험가동하고 있다. 지금 조합원 대상으로 오픈해서 체크하고 있다. 5월 1일 09시에 일반인에 공개하면서 창간하고, 5월 3일 창간기념식을 한다.

□ 통일뉴스 : 주요한 취재 영역이나 기사 방향을 소개해 달라.

■ 류경완 : 가장 기본은 현장 소식과 민족.국제 두 축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의 현장소식을 전할 예정인데, 기층 단체들하고 여러 가지 MOU나 제휴도 맺어서 현장소식들은 아마 우리가 가장 빠를 것이다. 전국적으로 노.농.빈은 물론 청년학생들까지 포괄할 계획이다.

국내 정치나 경제, 이런 부분들은 속보성들이 거의 없고, 사건 사고나 가십, 연예도, 스포츠도 없다. 과감히 포기해버리고 현장 쪽에 집중한다.

그 다음 한 축은 민족과 국제다. 통일 쪽하고 국제정세 부분, 남북.북미관계를 축으로 한다. 해외교포들이나 진보적인 세계석학들, 전 세계의 진보언론들과 기사공조나 전략적인 제휴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미 많은 연대사나 축사가 이미 들어와 있고, 창간식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해외언론들, 또 해외 진보적인 교포들과 상당히 협의를 많이 하고 있다.

□ 통일뉴스 : 창간기념식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 조헌정 : 3일 오후 7시 반 향린교회 3층 대회당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200명 정도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함께 모이고 우리가 초청한 언론인들, 사회지도인사들이 함께 모여서 창간을 축하할 예정이다. 해외의 진보인사들의 연대사와 축사도 발표된다.

□ 류경완 : 아프리카에서까지 축사가 오고 있다. 그 중에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식전에 영상자료로 틀고, 국내에서도 담쟁이 조합원들의 여러 가지 동정이나 인증샷, 응원, 이런 것들도 쭉 편집해서 한편의 영상을 틀 거다.

축사나 일반적인 식순은 가능한 간단하게 하려고 하고, 마지막에 축하공연을 한다.

“흩어진 민주.진보세력 목소리 함께 모은다”
 

   
▲  조헌정 이사장은 “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바꾸는 일”이라고 <민플러스>창간의 변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진보언론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성직자로서 언론사 이사장을 맡게 된 소명의식이나 필요성을 설명해 달라.

■ 조헌정 : 사실 종교와 언론이 기본 성격상 비슷한 점이 있다. 일단 대중을 상대로 어떤 의식들을 개발해 가는,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가는데 기능상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론에도 진보, 보수가 있고 종교에도 진보, 보수가 있듯이 결국 기득권 세력들에 그냥 따라가는 보수종교나 보수언론도 있지만 본래의 종교와 언론의 첫 출발은 결국 둘 다 이 사회를 새롭게 평화와 생명으로 인도하고, 또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지향점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과 함께하는 타락의 길을 걷는 것이 대다수 언론과 종교의 모습이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는 향린교회 목사로서 지난 13년 동안 활동해 오고 또 많은 진보.통일 세력들과 함께 해오면서 이것을 함께 묶어내는 중심 역할이 없다고 느꼈고,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시작하는 담쟁이 언론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에도 총선을 앞두고 서울민주행동이라든가 전국민주행동, 또 야권연대와 통합을 위한 조직들에 사회의 대표적 인사들이 많이 모였지만 사실 그들이 모여서 전부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어떤 중심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민플러스> 언론이 그런 흩어진 민주.진보세력들의 목소리를 서로 함께 모으고, 함께 나누는 장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다.

□ 통일뉴스 : 그 같은 문제의식은 보통은 연대조직으로 많이 구현이 되는데, 이런 온라인 인터넷매체를 대안으로 구상한 이유는?

■ 조헌정 : 이건 조직이라기보다는 기층 민중들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적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밑바탕에 흐르는 하나의 사회적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변혁 세력으로 등장하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예전 70년대에 한완상 교수가 ‘즉자적 민중, 대자적 민중’ 표현을 썼는데, 즉자적 민중만으로 역사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대자적 민중, 소위 말하는 엘리트 사회계층이 함께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루는 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민플러스> 언론을 통해서 기층민중과 어떤 미래적 방향을 설정하는 목소리, 이 두 흐름이 합류가 되는 언론기관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 통일뉴스 : 담쟁이 협동조합이 결성됐는데, 협동조합 형태의 언론사가 최근 몇 개 생긴 것 같다. 협동조합 형식을 취한 이유와 실제 추진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 조헌정 : 사실 협동조합은 우리 교회도 몇 개 교회들이 합쳐서 우리 교회가 주도적으로 하는 길목이라는 협동조합도 있어서 내가 옆에서 보고 있는데, 굉장히 주체적 의식을 갖는, 주인의식을 갖는 점에서 협동조합이 상당히 바람직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담쟁이 협동조합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담쟁이 협동조합이 먼저 만들어진 다음에 <민플러스>가 생긴 셈이다. 원래 함께하는 동지들이 모여서 새로운 언론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힘을 합쳤기 때문에, 언론이 먼저 생기고 그걸 보조하기 위해서 담쟁이가 생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언론의 방향성과 주인의식을 담지하는, 일종의 단순한 재정적 후원조직이 아니라 언론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주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언론이 소수의 몇 사람만이 끌어가는 전통적 언론이었다면, 지금 만들어지는 것은 담쟁이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생각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언론의 흐름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 류경완 : 우리가 광고 없이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게 준비를 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밑바탕에 담쟁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결합, 후원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

단순 후원만이 아니라 지역이나 단체, 해외, 부문, 세대, 이런 다양한 소모임들을 담쟁이의 특성처럼 밑바탕에서 조그맣게 예쁘게 조직하면서,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같이 손을 잡고 거대한 벽을 넘는’ 철학까지 공유하면서 조합을 운영하고 언론을 경영할 계획이다.

“담쟁이 현장 기자들 전국적 네트워크 만들어 갈 것”
 

   
▲ 종교인으로서 언론사 이사장을 맡은 조헌정 목사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과 함께하는 타락의 길을 걷는 것이 대다수 언론과 종교의 모습”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조합원들이 어느 정도 모였고, 출자금이나 조합비는 어떻게 되나? 소개할 수 있는 만큼 소개해 달라.

■ 류경완 : 지금 조합원과 후원회원이 230명 정도 모여 있다. 연말까지 상근체계 유지와 여러 경상비와 운영비들을 감안하면 예산이 2억 5천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조합원들이 출자금과 회비를 약정하고 있고,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준비절차에 치중했기 때문에 조합원 모집이나 홍보는 거의 없었다.

창간을 계기로 온라인상이나 오프로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작해서 단기간에 조합원들을 대폭 확충할 계획을 잡고 있다.

□ 통일뉴스 : 내부 체계는 편집국과 사업국 체계로 보면 되나? 신생 온라인 매체로서 어떻게 편집역량을 확보하고 있나?

■ 조헌정 : 편집국과 운영위원회 두 축이다. 그 위에 이사회와 이사장이 있다.

■ 류경완 : 편집국 상근인원은 최소한으로만 잡고 있다. 그러나 내년에는 대선이 있고, 넓은 의미의 정권교체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올해 연말까지 운영해 보고 기자단을 대폭 늘리는 걸 고민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가 기자단이 적기 때문에 정부부처 출입이나 국내 속보성 경쟁은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미디어오늘>이나 비슷한 범 진보계의 형제언론들과 같이 기사공유나 교류, 전략적인 제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치.경제, 문화.예술 이런 부분의 약간의 공백들은 외부 전문가 필진을 구성해서 돌파해 나가는 걸고 계획하고 있다. 국내에 100명 정도 전문가 필진들을 구성하기 위해 계속 분야별로 섭외 중이다.

조중동에 끌려가는 여론지형에서 근본적인 성찰이나 사고의 전환을 고민하게 하는, 그런 기획물이나 정론 형태의 큰 시야의 기사들을 많이 기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장 소식이 전국적으로 가장 빠를 것이라고 말했는데, 담쟁이 현장 기자들, 통신원 형태로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전문적인 부분은 100인 필진들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국내외 진보언론들의 기사를 서로 교차해서 실을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 기사도 계속 번역해서 내보내고, 국제팀에서 해외언론들의 좋은 기사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싣고 하면서 지면들을 채워나갈 계획이다.

편집국 안에 15명 내외의 섹션별 전문가들로 편집기획위원회를 두고, 그들이 필진을 섭외하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국내의 숨은 고수들도 찾을 것이다.

아울러 SNS 홍보는 요즘은 모든 언론들이 다 기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나 밴드들, 트위터, 파워블로거들, 이런 쪽도 우리가 SNS홍보단이나 특별팀들을 꾸려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류경완 운영위원장 “TV까지 구상 중에 있다”
 

   
▲ 정용일 편집장과 쌍두마차로 <민플러스>를 이끌어 갈 류경완 운영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외부 필진들에게도 고료가 지급되나?

■ 류경완 : 일단 계획은 공식적으로 지급된다. 살림 형편이 쉽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타 메이저 언론사만큼의 고료는 못 주더라도 대략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의 고료는 책정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초기부터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 통일뉴스 : 최근 보수 종편들에 맞서 진보 종편의 필요성도 거론되는데.

■ 류경완 : 우리 협동조합의 중장기 사업 중에는 팟캐스트나 여러 가지 영상 프로그램, 결국 마지막에는 TV까지 구상 중에 있다. 아직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초기에는 일단 조합원들을 안정적으로 확충해서 뒷심을 키우는 게 운영위원회 쪽에서 해야 할 제일 큰일이다.

□ 통일뉴스 : 사무실은 어디에 있나?

■ 류경완 : 서대문역 인근 통일의길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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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 승리는 각하 덕분, 삽질 열심히 해주시길”

[인터뷰] 개사료 퍼포먼스 박성수씨와 ‘박근혜 탄핵’ 후보 김수근씨… 우리가 청와대·국정원으로 진격하는 이유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6년 04월 30일 토요일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을 내걸고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 김수근(32)씨와 검‧경 앞 ‘개사료 퍼포먼스’로 유명한 ‘둥글이’ 박성수씨(43). 일면식도 없는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김씨는 “둥글이랑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아내가 몹시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후배님이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김 후보처럼 젊은 분들이 치고 올라와야 퍼포먼스 활동 영역이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언론자유지수가 70위까지 추락하고 대통령 비판을 ‘종북’이라며 척결 대상으로 삼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국정원‧청와대, 검·경을 상대로 풍자 퍼포먼스를 보란 듯이 펼쳐왔다. 

김씨는 이번 총선에서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서울 서초을에 출마해 화제가 됐다. 선거 벽보로 자신의 얼굴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내걸었다. <관련기사 : 선거 벽보로 등장한 ‘박근혜 탄핵소추안’> 

 

▲ 김수근씨가 4·13총선에서 내건 선거 벽보.
김씨는 2742표(득표율 2.3%)를 얻었다. 그는 “이번 총선이 정권심판 선거라는 것과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출마했던 것인데 2700여 표나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행동하는 서울지역 청년모임 새바람 대표로 사회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인터뷰가 진행된 날(27일)에도 ‘피켓 제작’ 걱정이었다. “비가 내리는 건 상관없는데 바람이 불면 피켓은 무용지물”이라는 것. 박씨는 지난해 4월28일 ‘검찰이 권력의 주구가 됐다’는 항의 표시로 대검찰청 앞에서 ‘멍멍’이라고 외치다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구속됐다.

1년을 맞아 28일 박씨는 서울 서초 대검찰청 앞에서 “7개월24일간 구속시킴으로 본인이 뉴욕타임즈(2016년 3월6일자)에 대서특필돼 유명해지는 데 일조했다”고 적힌 감사장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개사료 10포대와 교환할 수 있는 ‘개사료 교환권’도 증정했다.

앞서 박씨는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집회 사주 의혹이 터지자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가 사주한 관제데모, 공작정치! 한 달 묵힌 음식물쓰레기도 박근혜 정권처럼 역겹진 않다”는 피켓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 둥글이 박성수씨는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집회 사주 의혹이 터지자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가 사주한 관제데모, 공작정치! 한 달 묵힌 음식물쓰레기도 박근혜 정권처럼 역겹진 않다”는 피켓 1인 시위를 펼쳐 주목받았다. (사진=둥글이 페이스북)
이들의 투쟁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성수역 인근에서 박씨와 김씨를 만났다.

 

- 4‧13 총선 어떻게 지켜봤나? 김수근 후보는 누구를 찍었나? 

김수근(이하 김) : “서초가 아닌 용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김수근’을 찍고 싶어도 찍을 수가 없었다.(웃음) 지지자에 대한 죄송한 마음 때문에 투표하고 인증사진도 못 올렸다. 서초구 내곡동에 국정원이 있기 때문에 서초에 출마했던 것이다. 강남이 새누리당 텃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유세기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이 공약이었다.

김 : “이번 총선이 야권심판이 아니라 정권심판 선거라는 것과 세월호 진상규명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출마했던 것인데 2700여 표나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박성수(이하 박) : “나는 투표권이 박탈돼 투표도 못했다. 비리 혐의가 있던 인사가 군산시의원에 출마해 이에 저항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이 부과됐고 노역을 했다. 그래도 선거가 여소야대로 끝나 지금보다는 덜 시달릴 것 같다. 제주‧군산‧대구 등 쌓인 송사가…. 그래도 반응하는 민심을 보니 대선 때까지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 둥글이 박성수씨는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폭력은 쓰지 않고 입으로만 조진다”라며 자신의 퍼포먼스 준칙을 밝혔다. (사진=김도연 기자)
-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터졌다. 1인 시위·퍼포먼스 전문가들로서 평가한다면?

 

박 : “예전에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가서 피켓을 든 적이 있다. 할아버지들이 피켓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대충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 같으니 ‘어디서 왔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애국 청년’이라고 대꾸했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더니 ‘애국은 우리가 하는 건데’라고 말씀하시더라.(일동 웃음) 국가가 노인 분들을 조종해 ‘방패막이’로 삼는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현 정부는 정치 깡패 집단의 행태랑 다를 바가 없다.”

박씨는 28일 서울 종로 어버이연합 앞 인도에서 “2만 원짜리 노인알바 웬말이냐! 최저임금 보장!”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가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했다. 

박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땅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것을 인식하고 자기들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음을 깨달을 때까지 어버이연합에 찾아가 규탄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박씨는 28일 서울 종로 어버이연합 앞 인도에서 “2만 원짜리 노인알바 웬말이냐! 최저임금 보장!”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돌입했다가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했다. (사진=미디어몽구 영상 캡처)
김 : “국정원이 개입된 2012년 부정선거와 관련해 이듬해 ‘국정원국민감시단’을 꾸린 적이 있다. 2013년 국정원 앞에서 2주간 노숙하며 집회를 연 적이 있는데 어버이들 300명이 어떻게 알았는지 훼방 놓으러 왔더라. 10일째 되던 날 우리도 300명 정도를 모아 촛불집회를 열었다. 어버이들은 그보다 더 많이 왔다. 확성기도 엄청 큰 거 쓰고 입은 어찌나 험하던지. 쌍욕하고. 국정원 앞에서 퍼포먼스할 때 성공 척도의 기준은 어버이들이 ‘오나 안 오나’였다. 그들이 나타나면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움직인 거라고 생각했다.”

 

- 두 분이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흥미로웠다. 어떤 계기로 이런 활동에 입문하게 된 건가?

김 :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너 말 못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너무 수치스러웠다. 친일 매국노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 아닌가. 부정선거 규탄 싸움을 하던 중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여기서 이 정부를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지난 6‧4 지방선거 때는 ‘박근혜 퇴진’을 걸고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박 : “나는 김 후보처럼 과격하거나 반국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일동 웃음) 사랑으로부터 행해지는 활동일 뿐이다. 참된 복지세상을 만들고자 배낭 메고 유랑을 다니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거다. 환경운동 관점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검·경에 개사료를 뿌리더라도 다 주워간다. 사실은 새로 사려면 돈이 들기도 하고 또 청소는 의경들이 해야 하지 않나? 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세기의 명저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를 읽어보시길.(웃음)”

<관련기사 : “8개월 동안 이 갈았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 지난 4·13 총선에 출마해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수근 무소속 후보. 그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너무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친일 매국노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사진=김도연 기자)
- 퍼포먼스를 할 때 스스로 생각하는 준칙이 있나?

 

박 : “폭력은 쓰지 않고 입으로만 조진다. 우리 같은 빈약한 사람들이 몸으로 해봤자 효과도 없고.(웃음) 발이 뜬 채 동동 끌려갈 뿐이지. 몸으로 싸우는 데는 비교우위가 없다. 적이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검경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면 경찰‧검찰 직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권력에 충성하는 행동을 하면 국민들에게 욕먹을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것이지 ‘야 X새끼들아. 다 죽어’ 이런 마인드는 아니라는 거다.”

김 : “상식은 지키되 우리가 넘을 수 있는 선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라는 의혹에 대해 말하면 바로 음모론이라고 하지 않나? 선거 때도 그런 것들을 과감 없이 말하려고 했다. 언론도 박근혜 쪽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런 의혹들은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속이 될 때까지는,(웃음) 계속 과감하게 하려고 한다.”

 

-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나?

 

김 : “지난주 아이가 태어났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1년여 스태프로 활동하다가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사진 작가였는데 세월호 때 그만두고 4‧16연대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둘 다 돈 벌 생각이 크진 않다. ‘안 벌고 안 쓰자’는 주의랄까. 저소득 신혼부부인 셈인데 결혼하니까 축의금을 받기도 했다.(웃음) 아직까지는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것 같다.”

박 : “배우자를 찾기 위해 불순하게 운동판에 뛰어든 분과 저를 엮지 말아주세요.(일동 웃음)”

김 : “왜 그러세요. 모태솔로로 33년을 살았어요.”

박 : “아가씨들과 데이트도 못해보고 외국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로 위안을 얻곤 했는데.(일동 웃음) 나는 뭐 개털이다. 작년 압수수색을 당하고 구속되기 전까지 모 시민단체 사무실 한 쪽 구석에서 기생했다. 기생 생활이 끝났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판이다. 예전에도 아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덜 먹고 덜 쓰는 저소득의 삶을 살아왔다.(박씨의 저서 부제목은 ‘자발적 가난과 사회적 실천의 여정’이다) 막일을 할 때도 있고 조금씩 지원을 해주시는 분도 있다. 단체에서 들어오라고도 하는데 어디에 발을 들여놓으면 타성에 젖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살다갈 인생, 빌빌거리면서 살고 있다.”

 

▲ 지난 4·13 총선에서 서초을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김수근씨가 방송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화면)
- 기존 집회와 차별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워낙 퍼포먼스가 화려하기도 하지만.

 

박 : “이런 퍼포먼스를 하면서 느끼는 게 있다. 기존 시민운동은 타성에 젖어있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집회 때 발언 기회를 주지 않으면 연대를 거부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 마인드로 조직을 운용하면 시민들이 참여하겠나? 조직에 묶여있는 활동만 하니까 사람들이 참여를 주저한다. 시민운동 진영의 내분도 심하다. 유랑을 다니는 것도 스스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하는 거다.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활동들이 절실한 것 같다.”

김 : “공감한다. 우리 청년회도 회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상시적 참여가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다. 각자 집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등 현안과 관련해 1인 시위를 하고 직장에 출근하는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투쟁이 중요하다.”

 

- 두 분의 공통점은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 아닌가?

 

박 : “무슨 소리인가. 이번 총선 승리는 각하 덕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탈당은 절대 생각하지도 마시고 임기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삽질 열심히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우리 중에 누가 새누리당 표를 깎아먹을 수 있나. 오직 그분뿐이다.”

김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발언 하나로 탄핵될 뻔했다. 국회가 지난 3년 동안 탄핵안 한 번 고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득권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우선 퇴진 운동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의 임기를 다 마치게 한다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끝내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벌여놓은 일들을 바로잡고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박 : “김재규의 총에 맞지 않았어도 박정희 정권은 무너졌을 거다. 박정희의 죽음이 후광을 만들었다. 만약 박 대통령에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는 ‘박정희-박근혜’ 후광을 등에 업고 사익을 취하겠지. 보수표 다 깎아먹을 때까지 둥글이가 박 대통령을 지켜드리겠다고 말씀드리겠다.(일동 웃음)”

 

▲ 박성수씨와 김수근씨가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마치고 대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도연 기자)
- 각자가 꿈꾸는 사회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아니면 활동 계획이라도.

 

김 : “분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상식적인 나라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조중동을 욕하면서 그들이 보도하는 북한 얘기는 전부 믿는다. 평화통일만 꺼내도 ‘종북’으로 낙인찍는 세상이다. 박근혜-국정원,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면서 통일 문제도 청년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노숙자가 없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사회적 모순이 거리에 있다.

박 :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예수 가르침을 듣고 6일 동안 전혀 실천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지 않나? 일상의 장에서 사람들이 용기낼 수 있도록,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다. 기본적으로는 배낭 메고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계속할 거다.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는 차원이다. 전국 지자체 190여 곳을 다녔는데 나머지 지역까지 유랑하려면 몇 년 더 걸릴 것이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다. 1인 시위, 전단지 활동을 하고 싶은데 쑥스러워 못하겠으면 말씀해 달라. 언제든지 찾아가겠다.”

 

▲ 둥글이 박성수씨가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전단지. 박씨는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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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충돌, 한반도 전쟁으로 가나?

미‧중 충돌, 한반도 전쟁으로 가나?
 
2016.04.29 15:34:58
북핵의 뿌리는 정전체제가 빚은 냉전구도

'종교·문명의 대전환과 큰적공'을 주제로 원광대학교와 원불교가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의 발제문을 전문 게재합니다.

 

진 교수는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의 본질을 '미국과 중국의 충돌'에서 찾습니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북핵 문제를 다뤄왔으며 이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까지 파생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 교수는 북핵 문제가 북미 갈등을 넘어 중미 갈등의 한 복판에 있으며, 중미 갈등의 집약체인 북핵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반도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같은 "화약 냄새 풍기는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강대국들의 전략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된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북핵 문제에 해법은 없는 걸까요. 북한에 더 많은 제재를 가하라고 중국을 압박하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진 교수는 "우선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지를 맞바꾸고, 나아가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출구를 제안합니다. 

  

긴 분량의 글이지만 중미 관계와 북핵 문제의 역사를 심도 깊게 다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 핵실험 정국의 본바탕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원제는 '중미관계와 북핵 문제'입니다. 

  

 

▲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양자회담을 가진 버락 오바마(왼쪽 끝)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오른쪽 끝) 중국 국가 주석 ⓒAP=연합뉴스

 

  

들어가는 말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중국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여 북한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반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悍然)핵실험을 실시했다"고 하면서 중국은 이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사용한 "悍然"이라는 단어는 지난시기 미국과 같은 적대국에나 사용하던 언어이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북한이 2차, 3차, 4차 핵실험을 했을 때 중국은 이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고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핵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이 흔들림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핵실험이 도를 넘게 진행되면서 본래 북한과 미국에 의해 불거진 북핵문제가 점차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번졌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부터 한미일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북핵 문제 해결의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고 하였다.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전례 없이 냉각시키면서까지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를 이행하였지만 한미일은 여전히 중국에 북한에 대해 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은 본격적으로 북핵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북핵 정책이 실패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양국은 책임론 공방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핵실험은 북한이 하고 타깃은 중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왜 북핵 문제가 종당에는 중미간의 갈등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중미관계는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근대사 이후의 동북아역사를 보면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늘 당대 주요 강대국들의 갈등과 충돌이 굴절되어 왔다. 이른바 G2로 불리는 중미갈등 역시 예외 없이 한반도 문제에서 부딪치며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하겠다.  

  

본론은 중미관계의 역사와 현실에서 중미갈등의 근원을 밝히고 한반도 지정학적 특성에서 북핵 문제의 근원을 찾으면서 북핵이 중미갈등의 매개로 떠오르게 된 원인과 북핵 문제 해결의 전망을 살펴보려한다.  

  

중미관계의 역사와 현실 

  

일찍 1940년대 중일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때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항일전쟁을 돕고 있는 미국과 연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1944년 7월 미국 정부는 미군 관찰조를 중국 공산당의 근거지인 연안에 파견하였는데 중국 공산당은 이를 중국 공산당의 "외교사업의 시작"이라고 평가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파견한 특사 헐리가 연안을 찾아 마오쩌둥과 회담을 하였으며 쌍방은 국민당 정부를 모든 항일 당파와 무소속 정치인 대표들이 참여하는 연합정부로 개편하며 중국 공산당의 합법적 지위를 승인하는 등 "다섯개 조항 협의초안"을 체결하였다.  

  

이것은 항일전쟁 후기 중국 공산당과 미국의 협력과 연계가 가장 좋았던 표징으로 되었다.  마오쩌둥은 이에 중미 양대 민족이 "세계의 영구적인 평화와 민주중국을 건립하는 사업에서 영원히 손을 잡고 전진하자"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 "협의 초안"은 장개석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의해 폐기되였다. 미국은 2차 대전 종전 막바지에 장개석 정부만 지지하고 다른 모든 당파는 승인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제7차 당대표 대회에서 마오쩌둥은 "미국정부가 장개석을 부추기며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으로 미국 반동파의 창궐함을 보여주었다"고 하면서 미국이 중국의 내전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1945년 일본이 투항한 후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내전으로 치닫자 미국은 최신식 무기로 국민당군을 무장시키며 장개석의 내전을 물심양면으로 전폭 지원하였다. 마오는 "모든 반동파들은 모두 종이범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장개석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과 끝까지 싸울 결의를 다진다. 마오는 "중국의 반동파들을 깡그리 소멸하고 미국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중국에서 내쫓아야 중국은 독립하고 민주를 할 수 있으며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중국 공산당과 미국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당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마오는 새 정권을 건립하기에 앞서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진영으로의 "일변도"정책을 선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영국과 같은 나라들과의 수교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하였다. 1949년 5월과 6월에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정부의 미국 대사로 있은 존 레이턴 스튜어트(John Leighton Stuart)와 두 차례의 회담을 갖고 미국과의 수교 문제를 토의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선제 조건은 미국 정부가 장개석 정부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결과적으로 국민당 정부와의 관계를 끊으려 하지 않았고 또한 중국 공산당이 건립하는 정부를 즉각 승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중국 공산당과 미국 정부의 수교 탐색전은 무위로 끝난 것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장개석이 쫓겨 간 대만이 중국과 미국관계에서 하나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은 즉각 제7함대로 대만해협을 봉쇄하여 중국 공산당의 대만 해방을 차단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만 문제는 늘 중미간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자리잡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과 미국의 악연은 한국전쟁에서의 대결로 이어져 양국이 관계개선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양국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 국회는 일련의 반중 결의를 통과하였으며 중국에 대한 억제 정책을 도식화, 영구화, 절대화로 끊임없이 강화하였다. 미국은 공산당의 중국을 장기간 승인하지 않고 중국이 유엔의 합법적 지위를 회복하는 것을 저지하고 중국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면서 대만에 대한 대규모의 원조를 회복하였다. 한국전쟁 후 중국 역시 전민적인 반미 정치운동을 벌였다. 미국은 중국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불공대천의 원수로 등장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중국은 소련 진영에 몸을 담고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양국은 1955년 8월 1일부터 1970년 2월 20일까지의 15년에 무려 136차 되는 대사급회담을 진행하였다. 양국이 외교관계가 없고 상호 요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미 대사급회담은 중국과 미국이 직접 접촉하며 상호 요해를 하고 각자의 입장을 표명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였다. 비록 대사급회담에서 중미가 격렬하게 부딪치고 논쟁하였지만 양국은 점차 상대를 요해하고 이해를 하게 되였으며 결과적으로 이 회담은 1972년 중미 양국이 관계개선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1971년 미국과 중국이 관계개선을 모색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중국과 미국이 소련이라는 강대한 전략적 적수를 두고 협력하여 함께 대결할 필요성을 느끼면서였다. 양국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관계개선을 이루지만 대만 문제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수교 문제에서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1978년 역시 소련과 미국의 관계, 소련과 중국의 관계가 가일층 악화되자 중미 관계는 다시 한 번 동력을 얻게 되여 수교에까지 간다.
   

그렇지만 1979년 1월 1일부터 수교를 한 양국은 여전히 대만 문제에서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은 중국 정부의 거듭되는 반대에도 불과하고 대만과 실질적인 당국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대만에 대량의 선진 무기들을 끊임없이 판매하였다.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수년간 담판을 하였으며 결국 1982년 8월에 중미 <8.17공보>를 발표하여 양국관계를 상대적으로 안정시켰다.    

  

<8.17공보>가 발표된 1982년부터 1989년 천안문 사건에 이르기까지 중미관계는 밀월을 누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원만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양국 무역은 1971년 1억 달러가 채 안되던 것이 1982년에는 54억 달러, 1989년에는 187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이 시기 중국은 개혁개방에 들어섰으며 미국은 그런 중국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하고 지원하였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이 희망하는 궤도에서 발전하기를 바랐다. 즉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로 나아가고 정치적으로는 서방 민주제도에 접근하며 사회적으로는 끊임없이 개방을 하여 국제 사무에서 미국의 "리더 지위"에 지지를 하고 보조를 맞추기를 바랐다. 한마디로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리더"를 받아들이는 "민주국가"로 전변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사실 중국이 현대화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미국 요소의 영향이란 어디에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의 강력한 "외부의 힘"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미관계는 1989년 천안문 사태 후의 진통을 겪은 후 1992년 미국이 대만에 150대 전투기를 수출한 문제, 1995년 대만영도자 리덩후이 미국 방문, 1996년 대만해협 위기, 1999년 미국이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을 폭격한 문제 등으로 계속 갈등을 빚어왔다. 아들 부시는 집정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클린턴 시기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전략적 경쟁 관계"로 되돌려놓았다. 그럼에도 양국관계는 곡선으로 줄곧 오름세를 보여왔다. 양국은 지역안보, 아태지역 안정 등 여러 가지 국제안보 문제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전개하였다. 경제무역 영역에서는 큰 발전을 가져와 양국 무역액이 1991년의 252억 달러로부터 2001년의 1214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중미관계가 새로운 밀월관계로 들어선 것은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나면서였다. 미국은 냉전 후 미국에 대한 주요 위협은 국제 테러리즘과 각종 비전통 안전 위협이라고 인식하면서 전략관을 조절하였다. 이 시기 미국은 대국들 속에서 전략적인 경쟁자와 대상자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미국은 미중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중국을 미국의 반테러 파트너로 인정하고 중국의 지지를 바랐던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전략적 자리매김을 "전략 경쟁 대상자"로부터 "전략적 파트너"로 다시 되돌려 놓았다. 중국은 범세계적 반테러 전쟁이 가져다 준 전략적 기회를 잘 포착하여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전방위적인 관계개선을 이루었다. 미국은 중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로 부상하였다. 이 시기는 닉슨의 방중 이후 가장 좋은 단계이자 가장 안정된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기는 바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열리면서 중국이 의장국이 되어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협력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이 개혁개방 후 가장 급속한 성장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중국을 서방 가치관념을 받아들이고 국제적 규범을 준수하며 미국 주도의 체계에 융합되는 나라로 이끌어가려 하였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중국이 여러 국제조직에 융합되면 미국과 함께 세계를 다스리는 책임을 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현 국제질서에 도전할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중국이 예상을 깨고 급부상하고 미국과의 차이가 급격히 축소되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 규모 차이를 보면 미국은 1980년대에는 중국의 15배 이상, 1990년대에는 10배 이상이었고 2000년에도 8배가 되던 것이 2005년에는 5.8배로 좁아졌고 2009년에는 2.9배로, 2014년에는 1.8배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바로 2005년을 전환점으로 미국은 중국과의 "접촉" 전략을 끝내고 "경제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지만 서방 민주와 인권기준을 계속 거절하는 중국"에 대해 배척하고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키신저가 말했듯이 "미국 공화당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중국을 이미 무너진 소련처럼 생각하며 줄곧 소련을 해체했던 방법으로 중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대결하고 경제적으로 배척하면서 의식형태 싸움을 하려 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많은 사람들은 마치 미국이 유일한 목표가 중국에 미국의 체제와 원칙을 복제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미국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고 중국의 전 세계적인 정치, 경제 지위가 두드러지고 미국과의 실력 차이가 급격히 좁아지면서 미국은 점차 중국을 배척하고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하였다. 중국과의 관계를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관계로부터 제로섬 관계로 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미국에 의해 서방 규범체계의 수용의 대상으로부터 점차 견제를 받는 대상으로 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아태 재균형" 정책을 펼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아태 재균형" 정책은 아태지역 각국 간의 군사안전 요소를 두드러지게 강조하면서 중국을 포위하고 새로운 전략 충돌 태세를 조성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렇게 됨으로써 냉전 후 상대적인 평화발전을 이루어왔던 아태 지역이 또다시 새로운 집단 대결로 갈 위험을 안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신형 대국론"을 내놓았고 아시아를 상대로 신안보관을 내놓으면서 공동, 협력, 종합, 지속가능한 안전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실크로드" 정신으로 "일대일로"의 새로운 협력을 창도하면서 아시아 이익공동체와 운명공동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시진핑은 "태평양은 넓고 넓어 중국과 미국을 용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태평양을 절반씩 나누어 관리하자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그것은 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시진핑의 이 말은 "일산불용양호"(一山不容二虎), 즉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의 중국 속담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중국과 미국이 태평양에서 협력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중국이 창도한 "신형 대국론" 역시 신흥대국으로서의 중국은 신흥대국이 필연적으로 수성대국에 도전하던 역사를 깨뜨리고 새로운 신흥대국과 수성대국의 관계를 창조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중국이 바라는 "신형 대국론"이 무색할 정도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중국주변의 남해, 동해, 대만해협, 황해에서 전면적인 대결로 들어간 태세이다. 동북아 나아가서 아태 지역의 주요 모순으로 떠오른 중미관계는 역시 한반도에서 북핵을 매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역사적 패턴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지정학적 특성상 역내 주요 모순으로 떠오른 중미관계는 한반도에서의 힘겨루기로 새로운 자리매김을 도모하면서 동북아 나아가서 아태 지역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지향해 나갈 것이다.

  

동북아 지각 변동의 진원지 

  

근대사 이후 한반도의 지정학 특성은 한반도가 "고래싸움의 장"으로 되어온데 있다. 동아시아국제정치를 주름잡은 강대국들의 갈등은 예외 없이 한반도를 무대로 전개되어 왔으며 한반도에서 시작된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이 그 절정이였다. 이 전쟁들은 한반도에서 발생하였지만 모두가 대국 간의 전쟁이었다. 그것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자기들의 전략에 편입시키면서 갈등과 충돌을 빚은 결과였다. 
     
19세기 말 해양 세력의 대륙 진출은 한반도를 지정학적으로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각축장으로 변화시켰다. 대륙 진출을 꿈꾸어 "정한론"을 내걸고 한반도를 자기전략에 편입시킨 일본, 태평양 진출을 목표로 남하 정책을 펼치며 한반도를 자기 전략에 편입시킨 러시아, 한반도에서의 전통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한반도를 자기 전략에 일찍 편입시킨 중국, 러시아의 남하를 한반도에서 저지하기 위한 영국, 한반도의 문호 개방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영향을 확대하려 한 미국, 바로 이러한 대국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이익, 전략관계가 한반도에서 교차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에는 중일, 중러, 러일 나아가서 영러, 미일 등의 이익관계와 갈등이 굴절되기 시작하였고 한반도는 점차 "동방의 발칸"으로 떠올랐다. 구라파에서의 러시아와 영국의 대립이 한반도에 굴절되어 일어난 "거문도(巨文岛) 사건"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한반도는 지정학 전략으로 부득불 "제1의 적대국"과 "제1의 협력국"을 가르는 패러다임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루어진 이 패러다임은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은 격변기의 근대에 "이이제이(以夷制夷)", "이화제이(以华制夷)", "인아거일(引俄拒日)" 등 지정 전략으로 구현되어 왔다. 물론 유길준(俞吉濬)의 "중립론" 같은 것도 있었지만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상황에서 중립의 길은 없었다. 러일전쟁 전 한국은 엄정 중립을 선언하였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결국 한반도를 무대로 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동북아시아는 승자인 일본이 패권을 추구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일본이 실현하고자 하는 질서는 바로 "대동아공영권"의 질서였다.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동북아시아는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 최강자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은 모두 자기가 주도하는 질서를 추구하였다. 그것은 미소 대립을 불러왔고 동북아시아에서는 즉각 한반도에서 그 갈등이 굴절되어 한반도분할 점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불과 3년 만에 한반도는 미소 분할 점령으로부터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세계적인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과 소련에 있어서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미소 양군은 비록 철거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한반도에 남긴 것은 방대한 군사고문단, 그리고 남북의 불신과 갈등이었다.

  

분열된 한반도가 통일을 강력히 지향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구라파에서 첨예하게 대립 양상을 맞은 미국과 소련은 구라파가 아닌 다른 변두리 지역에서 미소 전쟁이 아닌 대리인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결국 한국전쟁이라는 국제전쟁의 대결로 미소의 대결은 한 단락 매듭지었으며 그로인하여 동북아 국제질서가 최종 확립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세계적인 동서 냉전질서를 최종 고착시켰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동서냉전의 전초선으로 세계의 냉전질서에 편입하게 된다. 
     
상술한 두 차례의 동북아 질서 전환기에 한반도는 예외 없이 초점으로 부상하였고 그것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이라는, 한반도를 무대로 하는 전쟁을 통해 구질서를 붕괴시키거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의 비극은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전략에 편입되면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어간데 있는 것이다. 이 강대국들은 예외 없이 당대 주요 강대국들이였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작금의 주요 강대국인 중미가 북핵 문제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을 "역사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의 발단과 미국 요소 
    
 
세계적인 동서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소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나라간의 실력 대비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동북아시아는 또 한 차례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냉전의 종식은 한반도 냉전 구도를 함께 거두어가지는 못했다. 반면 한반도 냉전 구도는 균형이 깨뜨러지면서 그 축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1960-1970년대 한반도 분단 구도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북한은 열세에 처하기 시작하였다. 남북한 간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북한 앞에는 세 가지 선택이 가로놓였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앞세우고 일본과 서방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을 이루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보다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여 힘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물론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수단일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개혁개방을 통한 국력의 신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선택한 전략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병진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의 종식에 앞서 북한은 이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어 "대치 상태에 있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미국과의 화해 공존"을 제기하였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북한은 미국과 일본,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발 빠른 행보를 보여 왔다. 북미 고위급회의, 북일 국교 정상화 담판, 남북의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 등이 잇달았고 남과 북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졌다. 
    
북한의 전략은 북한 대 미일한의 냉전구도를 탈피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반도의 냉전구도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중국이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북한에 통보할 때도 김일성 주석은 한반도가 미묘한 시기에 처해 있기에 중국이 중한관계와 북미관계를 조화하여 고려해 줄 것을 희망하였다. 한마디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북한의 이러한 지정 전략과 생존 전략은 미국의 대동북아 지정 전략과 상충되는 것이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세계 유일의 초대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국제 권력 체계에서의 유일한 초대국의 실력과 지위로 미국 주도 하의 헤게모니 체계를 가일층 강화하여 이른바 미국 주도하의 평화를 실현하려 하였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구상에 의한 세계질서의 개편"  을 지향하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리더"로 자처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총체적인 구상은 동북아에서 미일동맹을 축으로 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지위에 도전하는 나라를 견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불확실한 변수에 대해 확실하고 명확한 구상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이 한반도 냉전구도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냉전구도를 유지하려 하고 북한은 냉전구도를 탈피하려 하였다. 결국 미국과 북한의 지정 전략은 충돌을 불러오게 되었다. 그 충돌의 매개 역할을 한 것이 북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는가 하면 북한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려는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대일 교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91년부터 시작된 북일 수교 본회담에서 일본은 미국의 제의에 의해 수교 교섭 초기에는 전제로 제기하지 않았던 핵문제를 국교 수립의 실질적 전제로 제시하였으며 이 면에서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바로 이 핵사찰 문제가 결국에는 북일 8차 회담이 중단된 원인으로 된 것이다. 이 역시 북한이 대외 전략을 미국과의 단독 협상으로 바꾸게 된 하나의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핵 위기 역시 제1차 핵 위기와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북한과 한국, 북한과 일본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실현할 무렵에 불거진 것이다. 미국은 한 면으로는 김대중 정권에 TMD 구상으로 압력을 가했으며 다른 한 면으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일본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후 케리가 평양으로 가면서 제2차 핵 위기가 터졌다. 한국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을 빈다면 "미국은 남북관계가 호전될 때마다 북핵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즉 "핵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을 묶어" 두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루는 카드로, 즉 냉전구도를 탈피하는 카드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에 있어서 핵은 기울어진 균형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마주 앉는 카드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북핵 카드란 결국 북핵+지정학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로 그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북핵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져가면서 주변국의 안보에 심각한 우려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국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러한 무엇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핵 문제는 또다시 동북아 역사를 재현하면서 냉전 종식 후 동북아 여러 나라들의 모순과 갈등을 집약적으로  반영해 나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핵을 둘러싼 중미관계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미국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하여 왔다. 이 시기는 바로 제1차 북핵 위기와 겹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클린턴 정부 시기 중국과 미국은 "건설적 전략 파트너 관계"를 맺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목표로 이루어진 "4자회담"에 함께 참여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협력과 대결을 시작하였다 할 수 있다.

  

북미 갈등으로 시작된 제1차 북핵 위기 시 미국은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힘을 빌리려하면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려 하였고 중국은 북한 문제에 한해서 전통적 관계를 유지하는 독자적 정책을 펼쳐왔다. 미국은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KEDO, 세계식량기구의 대북 원조, 북한 미사일 문제 등에서 중국이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중국의 "독자적 행위"가 미국의 정책에 도전이 된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중국과 미국은 1996년의 대만해협 위기, 1999년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 폭격 사건을 겪으면서 심각한 갈등을 빚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은 인권 문제, 파룬궁 문제, 티베트 문제로 급부상하는 중국을 "악마화"하면서 "중국 위협론"을 잔뜩 부각시켰다. 9.11 사건이 나던 해에는 중미 군용기 충돌 사건까지 터졌다. 미국은 유아독존(唯我独尊)식 일방주의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중미간의 이러한 갈등은 "4자회담"에 굴절되어 중미 간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중국의 역할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들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중관계를 "파트너 관계"로부터 "경쟁자" 관계로 돌려세우면서, 또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함으로써 중미관계, 북미관계는 또다시 냉각기에 들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을 돌려세운 것이 바로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사건이었다. 9.11 사건 후 미국의 세계전략 목표는 선차적으로 잠재적인 경쟁대상을 견제하는 것으로부터 세계 범위에서 테러의 위협을 근절하는 데로 옮겼다. 미국은 다른 대국들과의 합작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중미관계는 새로운 밀월관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중국 주도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한반도 문제의 전개는 이제 역내 주요 모순으로 떠오른 중미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른 한 면으로 볼 때 6자 회담은 미국이 역내 질서를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을 만큼 이 지역의 역학 관계가 크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중국의 부상에 따른 변화인 것이다.  

  

사실상 6자회담이 개최되면서부터 2008년까지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이 역내 역학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던 시기이자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한 것이다. 6자회담이 이를 계기로 200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을 닫았다는 것에는 음미할 바가 있는 것이다.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근대사 이후 동북아의 역사를 보면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늘 역사전환기의 소용돌이에 있으면서 동북아 질서 전환의 장의 역할을 하여왔으며 한반도 문제는 바로 그 전환을 위한 힘겨루기의 매개 역할을 하여왔다. 

  

냉전이 종식된 후 불거진 북핵 문제 역시 이러한 힘겨루기의 매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동북아 주요 모순으로 떠오른 중미관계 역시 북핵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게 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줄다리기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중미 역학 관계가 변화를 보이면서 본격적인 태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1차 북핵 위기 시 북핵이 중미 갈등의 매개로 떠오르지 못한 것은 바로 중미의 역학관계가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고 미국이 중국에 대해 "억제"보다 "접촉"에 초점을 둔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북핵의 프로세스는 중국의 부상, 중미 갈등의 심화와 같은 맥락으로 흐름을 보여 오면서 북핵과 중미관계를 보다 긴밀히 얽어매기 시작하였다할 수 있다. 위에서 밝혔듯이 중미관계가 미국의 "9.11" 사건으로 새로운 밀월관계에 들어가면서 6자회담이라는 동북아 초유의 장이 이루어졌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을 맡았고 미국은 중국에 역내 질서 구축의 주도권을 맡기는 듯 했다. 6자회담은 열린 지 불과 2년 만에 "9.19 공동선언"을 도출해 새로운 동북아의 밑그림을 그렸다. "밀월"의 중미관계가 동북아에 훈풍을 몰고 오는 듯 했다. 그렇지만 국제적인 반테러 전쟁이 막을 내리는 시점이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겹치면서 미국은 중국을 포위, 견제하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펼치고 북핵 문제에서는 이른바 "인내 정책"을 실시하면서 자기는 뒤로 빠지고 중국을 앞에 떠미는 태세를 보여왔다. 바로 이 시점부터 6자회담이 문을 닫게 된 데는 물론 여러 가지 요소의 원인이 있지만 중미관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사 이후 동북아 주요 강대국들의 전략적 갈등이 한반도 문제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한반도에서의 충돌과 전쟁을 불러왔다면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갈등 역시 북핵 문제에서 집약적으로 표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핵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아태 전략에서 지탱점으로 되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아태 회귀전략"을 펼칠 수 있는 데는 북핵에 힘입은 바가 없지 않은 것이다. 사실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북핵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관계 개선", "평화협정 체결", "안보우려 해소"를 모두 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은 이 문제들을 전략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세 가지 요구를 충족시킬 경우 동아시아에는 미국이 한미동맹, 주한미군, 미일동맹, 주일미군 등 문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적대국"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 시각에서는 북한의 "붕괴"와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모두 북한이라는 "적대국"이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같은 개념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핵 문제의 핵심은 미국이 북핵 문제를 자기전략에 편입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중미관계가 북핵에 미치는 결정적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6자회담을 살펴보면 우리는 6자회담이 이룬 "9.19 공동성명"에서 내놓은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동북아 신질서의 밑그림이 현실로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의 과정이 필요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겪어왔듯이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봉합 단계가 아니라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3차, 4차 핵실험 후의 중미 관계가 그것을 증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3차, 4차 핵실험은 중미, 중한 관계에 계속 파장을 몰고 왔으며 중국은 계속 주요한 타깃이 되어왔다.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비록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찬성하고 엄격하게 이행하면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냉전이 종식된 후의 가장 엄중한 냉각기를 겪었지만 한미일은 여전히 중국에 압력을 가해 중국이 북한에 대해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바랐다. 그 영향력이란 다름 아닌 북한에 대해 보다 더 강한 제재를 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인 것이다. 또한 북핵 해결의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고 하면서 계속 중국을 앞으로 떠미는 형국이 되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튿날 미 국무장관 캐리는 중국외교부장 왕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의 대북정책은 실패를 했으며 지금은 북한에 대해 더는 과거의 방식으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한반도 핵문제의 유래와 매듭은 중국에 있지 않으며 문제 해결의 관건도 중국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중미양국은 3차 핵실험 때보다 더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의 근원은 북한과 미국에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명백히 밝히면서 미국의 책임론으로 반론을 펼쳤다. 중국 언론은 오바마 임기 7년 동안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하면서 미국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은 북핵 문제를 이용하여 미일동맹과 한미동맹 이 두 전략적 지주를 강화하여 상호 지지하는 삼각체계를 이루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전략적 지탱점을 이루려는데 있다고 비난하였다. 중미간의 책임론공방은 한미가 사드 배치라는 카드를 꺼내면서 사드 정국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공론화하면서 중국은 즉각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 일환으로서 사드 문제는 결국 중미문제인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함으로써 미중 갈등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은 협력은 한반도 밖에서 이루고 있지만 갈등과 충돌은 한반도를 매개로 이루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중국은 미국과 한 달이 넘는 협상과 조절을 거쳐 미국이 내놓은 유엔 안보리 제재안을 조절하였다. 중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대북 제재안에 찬성하면서 제재안을 참답게 이행할 것임을 거듭 밝혀왔다. 표면상 이것은 중미가 북핵 문제에서 협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유엔 제재안에 찬성을 표하면서 다른 한 카드를 내놓았다. 바로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협정 체제의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을 병진하여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중국의 외교부장 왕이는 작금의 세계에서 어떠한 이슈도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 없으며 군사적 수단은 더욱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므로 더더욱 취할 바가 아니라고 하였다. 중국이 내놓은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북핵 문제의 근원이 바로 정전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냉전구도에 있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중국의 주장은 표본겸치(标本兼治), 즉 표면적인 것과 근원적인 것을 함께 치유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뿌리는 바로 한반도가 정전체제 하의 냉전구도를 유지하는데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체제와 구도가 있기에 강대국들의 이익관계, 갈등관계, 협력관계, 전략관계가 한반도에 집약되어 상호 작용하고 상호 영향을 주면서 갈등과 충돌을 파생하고 있는 것이다. 

  

핵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북한은 지난 6자회담에서 "선 평화체제 후 핵 포기"를 주장하여 왔고 미국은 "선 핵 포기 후 평화체제"를 주장하여 왔다. 중국은 이 선후 관계를 동시적 병진 관계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전쟁도 아니고 북한 붕괴도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자면 이 표본겸치의 목표를 참답게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나오는 말 
     
위에서 서술했듯이 중미 관계는 사실상 지난 세기 40년대 중반에 시작된 약연으로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갈등과 충돌에 전쟁까지 치렀다. 1970년대 초반 관계 개선을 이룬 후 양국은 대결 일변도로부터 대결과 협력이 교차된 관계를 이루었으며 개중에는 밀월관계도 누렸다. 그렇지만 중국의 급부상과 역내 역학관계의 변화는 중미 관계를 또다시 대결 위에 세워놓고 있다. 미국은 양국 관계를 수성대국에 대한 신흥대국의 도전으로 받아들여 "아태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하고 있다. 중미 간의 이 갈등은 예외 없이 한반도에 굴절되어 북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 오늘도 한반도는 예외 없이 동북아 전환기마다 강대국들의 전략 갈등이 집약되는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북한의 생존 전략이 충돌하여 빚어진 북미의 북핵 게임은 이제 눈덩이처럼 부풀러 동북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북핵은 미국의 아태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빌미를 제공하여 오면서 한미일 동맹 관계를 전례없이 강화하여 중국에 직간접적인 큰 압력으로 다가왔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은 이제 중미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으며 한미와 중국의 갈등을 빚어오는 사드 정국까지 불러오고 있다. 결국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역내에는 냉전시기로 회귀하는 듯한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방의 발칸으로 불리는 한반도에 다시 또 화약내가 풍기는 사태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것이지만 엥겔스의 "합력론(合力论)"대로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국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러한 무엇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작금의 중미 관계는 헨리 키신저의 말을 빈다면 "불확실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대립이냐 아니면 협력이냐 아니면 대립과 협력의 병존이냐에서 불확실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매김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의 모색이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중미 관계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 역시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중국이 내놓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역시 상당한 기간의 진통을 겪으며 추진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제기한 목표는 두개의 단계로 추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첫 단계로는 북핵 동결과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빅딜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로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을 맞바꿈 하는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의 정국은 전쟁이나 동란, 핵 도미노 현상으로 동북아시아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가능성도 없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현재 무엇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생이나 혼란 발생을 막자고 하는 현실 이유일 것이다. 이제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 문제로 갈등을 빚는 예의 태세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에서부터 협력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미가 협력하여 작금의 긴장 국면을 통제 가능하게 관리하는 것일 것이다. 그 기초위에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협력을 도모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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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집단탈북 종업원' 단식으로 생명위독 주장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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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4/30 13:44
  • 수정일
    2016/04/30 13: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충격] 북, '집단탈북 종업원' 단식으로 생명위독 주장
 
 
 
nk투데이 김준성 기자 
기사입력: 2016/04/29 [21: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한 적십자회의 리충복 중앙위원장이 집단 귀순한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의 가족 대면과 송환을 요구하는 통지문을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보내왔다고 통일부가 29일 밝혔다.

노동신문은 이 통지문을 29일 보도했다.

 

▲ 본 사진은 이 기사와 무관합니다.     ©

 

북한 적십자회는 "북측 가족들이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나가 납치된 자식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실무적 조치를 즉각 취할 것"을 거부하는 남측 당국을 비판했다.

이어 "남측 당국이 납치한 북측 주민들을 독방에 따로따로 가두어 넣고 외부와 철저히 격리한 상태에서 갖은 회유와 기만,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귀순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측은 현재 남측에 와 있는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조국으로 당장 보내달라고 강력히 항의하면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나이어린 처녀들은 실신 상태에 빠져 생사기로에 놓여있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가 이번 사건을 수수방관 하는 것은 숭고한 적십자정신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반인도주의적인 처사라고 비난했다.

 

더불어 이번 사태를 계속 방임할 시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후과가 닥쳐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은 독방에 감금돼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는 등의 허위 주장과 도발 위협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맞대응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일부는 집단탈북자 의혹 해명을 위해 공개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주장이 허위라면서도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김준성 수습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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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잠적, 2가지가 불안하다

 

'어버이연합-청와대-전경련' 커넥션의 열쇠... 증거 인멸하거나 희생양 되거나

16.04.30 10:38l최종 업데이트 16.04.30 11:58l

 

그가 사라졌다. 일주일이 넘었다.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걱정이 앞선다. 대중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던 그였다. 사람들 앞에서 호기롭게 목소리를 높여왔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당황스럽기는 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스포트라이트는 아무리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라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는 바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다. 추 사무총장은 지난 22일 '어버이연합 게이트' 해명 기자회견 이후 종적을 감췄다.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불과 며칠 사이에 이런 신세가 될 줄을.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처지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극심한 두려움에 이성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거칠 것이 없었던 그였다.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와 국정원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그였다. 여기에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전경련으로부터는 자금까지 지원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최고의 권력과 조직에 자본까지 곁에 있었던 셈이다. 무서울 것도,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대중의 손가락질과 경멸? 그런 것들은 애당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충성심과 애국심만 있으면 세상 못 할 일도, 못 갈 데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국정교과서 등 인류 보편적 가치가 녹아있는 의제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오직 박 대통령과 국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단지 그들을 위한 부속일 뿐이었다.

추선희 사무총장에게 정의란? 애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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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오전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추선희 사무총장이 '전경련과 재향경우회 등에서 뒷돈을 받았다' '청와대 행정관 지시로 친정부 시위를 벌였다' 등 각종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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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회란 집회는 빠지지 않고 모조리 찾아다녔다. 특히 박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염치와 체면조차 불문했다. 단식을 벌이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 퍼포먼스도 마다치 않았고, 돌 맞을 각오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 타결 찬성 집회도 열었다. 여당 정치인이라고 절대로 봐주지 않았다. 김무성·유승민은 물론이고 이재오·김문수·정몽준에게도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에게 박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자들은 모두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을까. 그것이 애국이고 충성이며 정의라고 믿었던 걸까.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전경련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화근이었다. 언론은 집요했고 날카로웠다. 지난 25일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명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언론에 의해 속속 공개됐다. 언론은 애초 불거진 1억2000만 원뿐만 아니라 이전에 받았던 4억 원의 행방까지도 찾아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국정원으로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그에게 청와대가 집회를 지시한 것인지 아닌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런데 '지시가 아닌 협의를 했을 뿐'이라는 그의 발언이 오히려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지시든 협의든 청와대와 관변단체의 사무총장이 만난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정원과의 관계도 집중 추궁을 받고 있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국정원이 어버이연합을 관리해 온 배후라고 보고 있다. 국정원의 작품으로 의심받는 '박원순 제압 문건'대로 움직였던 것이 문제였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시절 국정원이 보수단체의 신문광고와 전단지 배포, 1인시위의 피켓문구까지 관여했던 사실도 도매급으로 엮여 나오고 있다.

언론은 이제 '청와대-국정원-전경련-어버이연합'이 얽혀있는 커넥션을 '게이트'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이 커져도 너무 커져 버린 탓이다. 덩달아 그에게도 게이트가 활짝 열리게 됐다. 이름하여 '헬게이트'(지옥문)다.

'찾아야 한다'... 사라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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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과 어버이연합 지난 22일 오전 종로구 인의동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추선희 사무총장이 '전경련과 재향경우회 등에서 뒷돈을 받았다' '청와대 행정관 지시로 친정부 시위를 벌였다' 등 각종 의혹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선희 사무총이 기자회견을 위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어버이연합 사무실에는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사진액자가 곳곳에 걸려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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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핵심 인물이며, 경실련과 청년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한 피의자다. 이번 게이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인물이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앞두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가 사라졌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다. 이번 게이트는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전경련까지 연계된 초대형 게이트다. 정권의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묘연해진 그의 행방이 증거를 인멸하는 한편, 윗선과 말을 맞추기 위한 작업일 가능성이 큰 이유다.

반대로 그가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엄청난 사안에 청와대와 국정원, 전경련이 손을 놓고 있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합당한 인물을 물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게이트의 실체를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청와대와 국정원, 전경련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제3의 인물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방이 묘연해진 걸 두고 '불길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가 사라진 것과 이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모처에서 증거 인멸을 하고 있든, 아니면 희생양을 찾고 있는 정치권력의 표적이 됐든,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실마리를 풀 가장 중요한 단서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하루빨리 그의 소재를 찾아야만 한다. 전자라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가 위험해지고, 후자라면 그가 위험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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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노총, 서울 8.15 남북노동자통일축구 제안

5.1절 공동성명, 6.15계기 행사추진위 발족..정부 팩스 교환 불허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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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9  20: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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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남북 노동자들은 올해 8.15를 즈음하여 서울에서 제2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자고 기약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26돌 5.1절(세계노동절)를 맞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노동본부'(6.15노동본부)는 오는 8.15 광복절에 서울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북측 조선직업총동맹과 지난해 10월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양대 노총이 소속된 6.15노동본부는 29일 미리 배포한 ‘5.1절 126돌 기념 공동성명’을 통해 “다가오는 6.15공동선언 발표 16돌을 계기로 광범위한 행사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8.15에 즈음하여 서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성대히 성사시키기 위한 실천과 투쟁을 백방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성명은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6.15공동선언의 변함없는 생활력과 전민족의 자주통일에 대한 의지를 만방에 과시한 축제의 장이었다”며 “남과 북의 노동자는 올해 서울에서 다시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자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앞서, 북측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는 28일 5.1절 126돌을 축하하며, ‘이미 협의한 문제들을 실천으로 옮겨지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자’는 내용의 인사말을 양대 노총 앞으로 보내왔다.

이에 대해 양대 노총은 감사를 전하며, 작년 평양에서 합의한 서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개최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의 답신을 보내고자 했으나, 통일부의 불허 방침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양대 노총은 답신에서 “우리는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8.15를 즈음하여 서울에서 제2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자는 제안을 드린다”며 “이를 위해 6.15공동선언 발표 16돌에 즈음하여 <(가칭)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자는 제안도 함께 드린다”고 밝혔다.

남북의 노동 단체들이 5.1절을 앞두고 팩스 교환을 금지당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며, 따라서 5.1절 기념 공동성명도 북측 6.15노동자분과위는 빠지고 남측 6.15노동본부의 명의로만 발표됐다. 지난 1월 북측의 실무협의 제안에 대해서도 남측은 정부의 불허로 답신을 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29일 오후 “북한의 핵실험과 도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민간교류를 잠정중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고, 언제 이같은 민간교류 중단이 풀릴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6.15노동본부는 이 외에도 공동성명을 통해 6.15북측위원회 노동자분과위원회와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에 5.1절 축하인사를 보내고 “그 어떠한 정세가 도래한다고 해도, 지금껏 남북 노동자가 쌓아온 신뢰와 우애, 연대와 단합의 정신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 노동자간의 만남과 대화, 연대와 협력을 실현하는 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민족의 공멸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는 한반도 평화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에 적극적인 실천과 투쟁으로 맞싸워나갈 것”이라며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6.15노동본부는 “남북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공존, 공생, 공영”이라며 “우리는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온갖 반목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6.15공동선언에 기초한 대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는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5월 1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2016 세계 노동절 대회’를 진행할 계획이며, 한국노총은 5월 1일 오후 1시 서울시청광장에서 ‘5.1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5.1절 126돌 기념 공동성명 (전문)]

역사의 주인으로써 노동자의 실천과 투쟁은 구성원 모두의 지향을 대변하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지금껏 전세계의 노동계급은 자본과 권력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부당한 착취와 차별을 부수고 사람이 주인인 세상,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 왔다.
특히 식민과 분단이라는 굴곡진 역사를 거쳐온 이 땅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처지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헌신해 왔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모든 한국 사회 격변기의 경험은 자주와 민주, 평화통일이 우리 노동자의 가장 최우선적 과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있다.
이에 우리는 통일의 이정표 6.15공동선언의 이행, ‘우리민족끼리’ 정신의 구현이야말로 노동자가 앞장서서 열어가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하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노동본부는 5.1절 126돌을 뜻깊게 맞이하며,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로동자분과위원회와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의 모든 성원에게 진심어린 축하와 연대의 인사를 보낸다.
그 어떠한 정세가 도래한다고 해도, 지금껏 남북 노동자가 쌓아온 신뢰와 우애, 연대와 단합의 정신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가 앞장서서 조국을 통일하자’는 어제의 약속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남북 노동자간의 만남과 대화, 연대와 협력을 실현하는 길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둘,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앞장설 것이다.
오늘 한반도 정세는 최고조의 위기에 다다르고 있다. 동북아 패권장악을 목적으로 한 강대국의 경쟁과 대립은 한반도 주변을 심각한 군사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수많은 최첨단 무기가 한반도 주변으로 배치되고 있으며, 위험천만한 군사훈련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공멸이다. 민족의 공멸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는 한반도 평화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에 적극적인 실천과 투쟁으로 맞싸워나갈 것이다. 나아가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전개해 나갈 것이다.

셋, 우리는 남북간 관계 개선을 위한 실천과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 역시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최대의 위기 국면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뿐인가, 남북 당국간 모든 채널은 전면 중단되었고, 민간 차원의 연대교류 역시 모두 끊기고야 말았다.
갈등과 대결은 남과 북 모두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남북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공존, 공생, 공영이다. 이에 우리는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온갖 반목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6.15공동선언에 기초한 대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는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넷, 우리는 올해 서울에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다.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6.15공동선언의 변함없는 생활력과 전민족의 자주통일에 대한 의지를 만방에 과시한 축제의 장이었다. 평양의 하늘가에 울려퍼진 ‘조국통일’의 함성은 노동자가 앞장서서 제2의 6.15시대를 열어내자는 결심이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남과 북의 노동자는 올해 서울에서 다시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자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나아갈 것이다. 다가오는 6.15공동선언 발표 16돌을 계기로 광범위한 행사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8.15에 즈음하여 서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성대히 성사시키기 위한 실천과 투쟁을 백방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2016년 8월 서울의 하늘가에 ‘조국통일’의 함성이 다시 한 번 울려퍼지게 할 것이다.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을 완수하자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우리 노동자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남북 당국간 관계에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것임을, 나아가 오늘의 갈등과 대결 국면을 화해와 협력의 국면으로 전환시킬 계기가 될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다시 한 번 5.1절을 맞이하는 북녘의 모든 노동자에게 축하와 연대의 인사를 전하며, 8월 서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

2016년 5월 1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노동본부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앞 (전문)]

6.15공동선언 이행, 민족의 자주와 평화, 대단결을 위해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위원장님과 귀 조직 성원께 굳은 연대의 인사를 보냅니다.

양대노총 앞으로 보낸 전송문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우리는 남측 천삼백만 노동자를 대표하여, 전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적 명절인 5.1절에 즈음한 귀측의 인사에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평화와 통일의 길에 함께 하는 귀측의 모든 성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또한 6.15공동선언 이행과 남북 노동자 3단체의 연대와 단합의 길에 변함없이 함께 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전합니다.

올해 남북 노동자 3단체의 어깨에 지워진 과제는 막중합니다.
민족의 맏아들인 우리 노동자는 이 땅에 드리워진 대결과 위기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자주적이고 항구적인 평화 실현을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또한 그 어떠한 정세가 도래한다고 해도 6.15공동선언이야말로 통일의 이정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남북해외 7천만 겨레의 연대와 단합을 강화하기 위한 길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8.15를 즈음하여 서울에서 제2회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이를 위해 6.15공동선언 발표 16돌에 즈음하여 <(가칭)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자는 제안도 함께 드립니다.
우리는 8.15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의 서울 개최가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하고, 남북해외 온 겨레 앞에 ‘우리민족끼리’의 생활력을 뚜렷이 밝혀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비록 정세는 어렵지만, 남북 노동자의 하나된 염원과 의지는 그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남측 천삼백만 노동자 역시 8.15 서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의 성사를 위한 모든 실천과 투쟁에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5.1절을 맞이하는 모든 북측 노동자와 동포들께 축하와 연대의 인사를 전하며, 위원장님을 비롯한 모든 성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16년 5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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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가난이 개인만의 잘못이라고요?
 
현대인들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김용택 | 2016-04-29 08:57: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201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난해 연봉은 149억 5,400만 원이다. 시간당 745만 원을 번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월 소정근로시간인 월소정근로시간인 209시간 일을 했을 때 노동자들이 받는 최저임금은 126만 270원으로 시급으로 계산하면 6,030원이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1,515,240원이다. 연봉이 149억 5,400만 원과 1,515,240원 받는 사람. 시간당 745만 원을 받는 사람과 6,030원을 받는 사람… 사람의 능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현대인들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양반과 노예는 피가 다르고 뼈가 다르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요즈음 이런 소릴 하면 미친 사람 취급 받는다. 그런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못 배우고 못났으니 천대받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위의 사례에서 본 삼성전자 부회장과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차이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런 현상도 당연한 일일까?

삼성그룹 이건희회장 13조 2870억 원이다. 이건희회장의 나이가 74세다. 우리나라에 1조원 이상의 부자들만 35명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이건희회장은 태어나자마자 돈을 벌기 시작했다 치더라도 일 년에 무려 180,000,000,000원씩 번 셈이다. 물론 이재에 밝은 사람이니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쉽도록 되어 있다 하더라도 1조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35명이나 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1조 원 이상 부자가 35명인 나라에 1000명 중 165명은 연 소득이 1,068만 원(월 89만 원)이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 물어보면 ‘가난’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가난을 극복하려면 자신이 왜 가난한지 극복할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난이 못 배우고 못난 탓이라고 신앙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대안이 없다.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혹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운명론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난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가난이 자신의 팔자라느니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자본이 만든 이데올로기다. 정말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을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책임을 정부가 제대로 이행했었다고 해도 이런 양극화와 현상이 나타날까? 양극화니 빈부격차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형상이요, 구조적인 모순이다.

가난이 개인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개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날린 사람도 있고 투자를 잘못하거나 도박이나 낭비벽이 심해 패가망신한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허덕이는 사람은 왜일까? 농민들을 보자. 그들이 세상 사람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일한다. 그런데 그들이 가난한 이유는 무엇일까? 농민이 가난한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정부의 농업정책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FTA로 수입농산물이 밀려와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가난을 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2016년 한 해 동안 나라 살림살이 할 돈이 386조 4천억 원이다. 이 돈으로 공무원 월급도 주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의 임금이니 무기를 구입하고 교육을 위해 학교를 짓고 도로를 만들고, 나랏빚도 갚고 한다. 보건, 복지, 노동, 산업, 문화, 환경… 등에 얼마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농민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재벌이 유리한 정책을 펴면 월급을 받고 사는 노동자들이 불리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상식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세금을 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할 사람들이 있지만, 상품에 매기는 세금이 그렇다, 간접세라는 세금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세금을 낸다면 믿어질까?

실제로 소주 한 병에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소주의 세금은 530원이다. 소주 한 병의 출고가격이 1,000원이면 제조원가는 470원으로 주세 338원(주세율 72%), 교육세 101원(주세의 30%), 부가세 91원 등 세금은 모두 530원인 셈이다. 연봉이 1억인 사람과 연봉이 1,000만 원인 사람이 똑같은 세금을 내면 어떻게 될까? 연간 주세는 약 2조 ,5000억 원.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세를 합하면 4조 원에 이른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어디 소주가격뿐일까? 우리나라는 소주에 붙는 세금처럼 간접세가 직접세의 4배다. 아침에 마시는 차 한 잔, 점심때에 먹는 된장찌개, 아메리카노, 스파게티… 에는 모두 10%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부가가치세와 담배소비세, 교육세, 폐기물 부담금, 국민건강진흥기금(준조세)을 합쳐 총 ,2772원이 붙는다. 영화를 봐도 버스비를 내도 따라 붙는 게 간접세다. 간접세의 비율이 직접세 대비 52.1%다.

교사들이 정치를 말하면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고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라’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정치는 정치인들만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에서는 사는 사람들… 정치란 밥을 먹는 것도 정치요. 길을 걷는 것도 정치다.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 하나를 사는 것도 정치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것도 정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공부도 것도 정치요. 젖먹이가 우유를 먹는 것도 정치다. 정치가 없이는 그 누구도 한순간도 꼼짝하지 못한다. 세금에서 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가난을 운명이라고 신앙처럼 믿고 사는 사람들… 그들의 믿음이 바뀌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경제 민주화도 없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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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고아들을 위한 원산초등학원과 중등학원도 준공

북, 고아들을 위한 원산초등학원과 중등학원도 준공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4/29 [01: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부모 없는 애어린 아이들을 위한 애육원과 육아원을 전국적으로 새로 건설하여 거의 다 준공을 완료하자마자 북에서 그 다음 연령대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원과 중등학원도 새로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북 보도가 나왔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통일방송에서 소개한 28일 북 중앙텔레비젼은 같은 날 강원도 원산에서 새로 건설한 원산초등학원과 원산중등학원 준공식을 진행했다며 "원산초등학원과 중등학원의 준공으로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늘 마음 쓰시던 위대한 수령님들의 평생 소원을 또 하나 풀어드릴 수 있게 되었으며 강원땅에 원아들이 부르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 노래 소리가 더 높이 더 우렁차게 울려퍼지게 되었다."고 보도한 것을 보니 고아들만을 위한 초등, 중등 학교를 새로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은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군인건설자들이 수행했으며 준공식에는 원아들은 물론 그 군인건설자들과 원산시 책임일꾼 등이 참여하였고 준공테이프는 이 학원의 주인공들인 원아들이 가위를 직접 들고 끊었다.

 

보도를 보면 준공식에서 연설자는 "이세상 천만부모의 정을 다 합쳐도  비기지 못할 위대한 사랑으로 원아들을 한품에 안아 따뜻하게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원아들과 강원땅 인민들에게 안겨주신 또 하나의 은정어린 선물"이라며 "가장 숭고한 후대관 미래관을 지니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신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후대들에 대한 사랑의 힘 후대들에 대한 헌신으로 당의 후대중시 사상을 빛나게 구현해 나갈데 대해서 강조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순서로 원아들과 관계자들이 학원을 둘러보았는데 보도는 "원산초등학교 중등학원에는 교실들과 실험실습실들, 체육관, 야외수영장, 기숙사, 식당을 비롯하여 원아들의 교육교양과 지능개발, 체력단련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조건과 환경이 최상의 조건에서 훌륭히꾸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북이 고아들만 애육원부터 중등학원을 졸업하고 군대와 대학, 사회로 진출하기 전까지 따로 학교를 다니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이 원아들에게 더 긍정적인지 아닌지는 남과 북이 교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부모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의 그늘을 최대한 없애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북의 영화를 보면 이런 고아원에서 자라나 입대한 병사들이 더욱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이 각별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 지도자를 더욱 육친적으로 친부모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다음은 관련 보도 사진들이다.

 

▲ 원산초등학원과 중등학원 준공식   보도 화면들, 체육시설과 실험실습실, 식당 등이 매우 현대적이고 야외잔디구장과 실내농구장도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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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박근혜, '나쁜' 대통령도 될 텐가?

 
[기자의 눈] 세월호 진상 규명이 '세금' 아낄 일인가
 
| 2016.04.28 14:57:45

26일 청와대에 갔었다. 취임 첫해 편집국장.보도국장 오찬 간담회 이후 3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박 대통령은 여전했다. 어색한 웃음, 딱딱한 말투, 이런저런 그래서 등 군더더기가 많이 들어간 만연체 화법, 무엇보다 총선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강경한 내용. 

지난 4.13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여당 지지자나, 야당 지지자나, 무당파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일반적인 예측과 너무나 벗어났기 때문에 충격적인 결과였다. 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아버지 박정희가 심판받은 선거"로 평가했다. 아버지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였던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박정희 스타일'로 대한민국을 통치하지 말라는 민심의 명령인 셈이다. 김태형 심리학 박사는 지지자들이 갖고 있던 "박근혜에 대한 심리적 애착관계"가 대통령이 된 이후 실정으로 끊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4.13총선 결과에 대해 두 시간이 넘는 간담회에서 단 한 마디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다. 심지어 두 번이나 거듭 물었는데도 흔들림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보기에 이번 총선은 19대 국회에 대한 심판이었을 따름이며, 이는 본인이 총선 전 직접 '빨간 옷' 입고 당부했던 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또 "대한민국이 대통령 중심제라는데, 정작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통과시켜 국회가 만든 법을 무력화시키는 등 '삼권분립'의 원칙까지 깨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권한 없음'을 탓하다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이지, 왕정 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뿐 아니라 행정도 끊임없는 협의와 합의가 필요한 과정이다. 국회에서 서로 다른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여당과 야당의 의견 대립과 이를 조정하는 정치 과정을 박 대통령은 '싸움질', '국정 발목잡기'로만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치 질서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1년 10개월 남았다. 차기 대선을 기준으로 하면 1년 8개월이다. 지난 임기 때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던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많은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특히 6월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여소야대 국면을 본격적으로 맞게 된다. 총선 이전처럼 대통령이 '오더'를 내리면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원하는 법을 통과시킬 수 없게 된다. 야당과 어떤 식으로든 '협치'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준비하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박 대통령이 26일 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이 '꼼수'로 1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유승민 등 탈당파의 복당을 거부하고 나선 것을 보면 안다. 앞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총선 결과로 반쯤 결론이 내려진 '실패한 대통령'이 최종 결론이 될 가능성은 짙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지지층의 와해와 탈출이 진행될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를 통해 새누리당은 차기 대권주자들이 날아가면서 새로운 구심점조차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박 대통령에게 해야만 하는, 또 할 수 있는 일을 알려 드리고 싶다. 노동 개혁(악)이니, 구조조정이니,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의지만 보이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다. 바로 박 대통령 임기에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인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문제다. 세월호 참사는 '내 아이였다면', '내 동생(내 언니 오빠)이었다면', '나였다면'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에 공감하는 문제다.  

 

박 대통령 머릿속엔 '사고'이기 때문에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박 대통령은 26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임기 보장과 추가적인 조치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것 같다. 사고의 발생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사고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충분히 지금과 다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정치적이며 행정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한 번만 만나서 얘기를 들어 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여당의 세월호 특위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방해 공작에 대해서도 눈감아 줬다. 해양수산부를 포함한 공무원들의 태업도 방관했다. 여당과 공무원은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 움직이는 집단이다. 국가적 재난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국민의 세금을 안 쓰면, 세금은 어디에 써야 하는 돈인지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7시간'을 포함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숱한 의혹들을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기고 싶은 것인가? 박 대통령이 끝내 '실패한 대통령'에 '나쁜 대통령'이라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지 않기를, 마지막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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