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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포격사건과 흡수통일구상, 시계추 외교행보와 ‘작계 5015’

 
 
한호석의 개벽예감 <17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10/26 [10: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주한미국군이 단독 조사한 8.20포격사건의 진상 
2. 긴장감 느끼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
3. 평화통일 간판 아래서 추구하는 체제흡수통일구상
4. 박근혜 대통령의 ‘시계추 외교행보’에 숨겨진 사연
5. ‘작계 5015’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인 믿음 
6. 조선인민군의 제3전선 구축과 미일동맹군의 한반도전선 출병 

 

▲ <사진 1> 한국군 합참본부는 조선인민군이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4.5mm 고사총 1발을 쏘았다고 주장하였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14.5mm 고사총은 4열의 총신에서 총탄 4발이 한꺼번에 계속 발사되는 반항공무기이므로 1발만 쏠 수 없게 되어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주장이어서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자, 스캐퍼로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에게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하였다.     © 자주시보

 

 

1. 주한미국군이 단독 조사한 8.20포격사건의 진상

 

<경향신문> 2015년 10월 19일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발생한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단독으로 조사하였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으므로,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조사하였다는 말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조사하였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 공보관의 말에 따르면,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M. Scaparrotti)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이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도록 직접 명령하였다고 한다.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사태를 조사하면서 한국군을 배제한 것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2년 동안 처음 보는 놀라운 사건이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왜 미국군이 단독으로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을까? 그 까닭은 2015년 8월 20일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9분 시차를 두고 14.5mm 고사총 1발과 76.2mm 견인포 3발을 각각 쏘았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14.5mm 고사총은 4열의 총신에서 한꺼번에 총탄 4발이 계속 발사되는 반항공무기이므로 1발만 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4열 고사총을 1발만 쏘았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주장이어서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이 진상을 조사하였더니,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은 조선인민군이 발사했다는 포격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포격증거가 없다는 말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탄착점으로 지목한 곳에 76.2mm 포탄이 떨어진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이 14.5mm 고사총으로 사격하는 총탄은 소구경이기 때문에 사격한 이후 탄착흔적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76.2mm 포탄이 떨어진 탄착흔적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당시 14.5mm 고사총 1발과 76.2mm 견인포 3발을 쏘지 않은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은 조선인민군이 14.5mm 고사총과 76.2mm 견인포를 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증거를 더 찾아냈는데, 한국군 합참본부가 포탄탄착점이라고 지목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경계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한국군 병사가 사건 당시 “폭음을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 것과 한국군 합참본부가 한국군의 열영상관측장비(TOD)에 촬영되었다고 주장한 포연이 연기인지 포연인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진상조사결과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런 까닭에,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자기들의 조사결과를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나도록 발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왔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진상조사결과를 보면, 당시 조선인민군이 14.5mm 고사총 1발과 76.2mm 견인포 3발을 남쪽으로 발사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조선인민군이 남쪽으로 고사총 1발과 포탄 3발을 발사한 것으로 오인한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의 고사총 1발이 발사되었다고 오인한 시각으로부터 1시간 11분이 지난 뒤에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공터를 향해 155mm 자주포 29발을 조준사격하였다. 한국군 포병부대가 자주포 29발을 북쪽으로 사격한 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아야 할 한국군 합참본부가 그의 작전통제도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저지른 매우 위험천만한 모험행동이었다. <사진 2>

 

▲ <사진 2>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8월 20일 조선인민군은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사격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상황을 오인한 한국군은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비무장지대 공터를 향해 위의 사진에 보이는 155mm 자주포 29발을 조준사격하였다. 그들의 오인사격은 조선인민군을 자극하였고, 전쟁위험을 일촉즉발상태로 격화시켰다. 아직은 반미통일전쟁의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조선인민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고 무력시위로 대응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조선인민군이 평소에 예고해온 '불소나기 집중사격'으로 대응하였더라면 그 이후 전개될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은 당시 사격을 하지 않았으므로, 한국군이 갑자기 자기들을 향해 선제사격을 감행한 것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당시 조선인민군은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확성기를 사용하는 대북심리전방송을 중단하라는 최후통첩을 한국군에게 보낸 바 있었고, 조선의 전방작전구역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어 그 지역의 군대와 인민들이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조선인민군이 최후통첩에서 통보한 시각을 약 48시간 앞둔 초긴장된 시각에 한국군은 전투동원태세에 있는 조선인민군을 향해 155mm 자주포 29발로 오인사격을 감행한 것이다.


2013년 3월 7일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서해 전방작전구역에 있는 장재도와 무도의 방어대들을 시찰하면서,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멸적의 불줄기를 날릴 수 있게 경상적인 전투동원태세를 더욱 빈틈없이 갖추고 있다가 적들이 우리의 령해, 령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호되게 답새기고 다시는 움쩍하지 못하게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군이 155mm 자주포를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에 29발이나 쏘았으니, 조선인민군은 선제사격도발을 감행한 한국군에게 그들이 이전부터 예고해온 ‘불소나기 집중사격’을 퍼부었어야 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은 ‘불소나기 집중사격’은커녕 1발의 대응사격도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첫째, 당시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의 29발 포사격이 오인사격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한국군이 어떤 작전의도에 따라 선제사격을 감행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조선인민군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초소나 진지를 향해 사격하지 않고,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의 공터를 향해 사격한 것은, 조선인민군의 대응사격을 유도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이 더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한국군이 선제오인사격을 감행한 8월 20일은 한국군 5만 명과 미국군 3만 명이 출동한 대규모 대북전쟁연습이 나흘째로 접어든 날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군이 대규모 대북전쟁연습 중에 선제사격을 감행한 것은 자기들의 대응사격을 유도하여 전쟁을 도발하려는 유인전술로 보였을 것이다.


둘째, 조선에서 말하는 반미통일전쟁은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의 유인전술에 말려들어 시작되는 국지전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결정적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는 어느 시점에 시작되는 전면전이다.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의 선제오인사격을 받은 8월 20일은 조선인민군에게 반미통일전쟁을 개시할 결정적인 날이 아니었고, 되레 한미연합군의 대규모 대북전쟁연습으로 조선인민군에게 불리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조선인민군은 섣불리 대응사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대신, 잠수함연합부대, 공격헬기부대, 무인정찰기를 각각 출동시킨 강력한 무력시위를 전개하면서 한미연합군을 전방위로 위협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5년 9월 7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알려지지 않은 8월위기사태의 급박했던 3일’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3500


한편,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자신의 작전통제를 벗어나 자칫 대규모 무력충돌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오인사격을 감행한 한국군의 위험천만한 행동을 보고 노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주한미국군에게 한국군을 배제하고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는 매우 이례적인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2. 긴장감 느끼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이 상황을 오인하고 위험천만한 선제사격을 감행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동아일보> 2015년 5월 17일부에 실린 보도기사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2014년 하반기 이후 군사분계선에서 5건의 총격사건이 있었는데, 그 총격사건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선제사격으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선제사격으로 총격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위험한 사태와 관련하여 주한미국군은 “실무조사작업을 진행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이를 근거로 한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군의 대응태세가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지적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엄청난 무력충돌사태를 불러올 뻔한 8.20포격사건은 2014년 후반기부터 일어난 일련의 총격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군의 경직된 태도가 촉발한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의 그런 경직된 태도는 그들이 극도로 긴장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을 상황오인으로 이끌어가고, 위험천만한 선제사격을 감행하게 만든 원인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긴장감인 것이다. 2014년 하반기 이후 한국군은 왜 그처럼 긴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240km의 군사분계선 일부구간을 촬영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구축해놓은 콘크리트 분단장벽이 보이고, 그 앞에 이중 철책이 보이고, 멀리 경계초소가 보인다. 2014년 하반기 이후 군사분계선에서는 한국군의 선제사격으로 5건의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다. 스캐퍼로티 사령관마저도 한국군의 대응태세가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지적할 만큼 한국군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첫째, <국방일보> 2013년 12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현 상황의 엄중함과 예측불가능성을 감안할 때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민관군이 함께 항시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였고, 같은 날 진행된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도 “현재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하면서 “강력한 대응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위의 보도기사에 서술된 박근혜 대통령의 상황인식은 급박해 보인다. 당시 그는 2014년에 전쟁위험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2013년 12월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급박한 상황인식을 드러내 보였다. 그 무렵 그는 2014년에 전쟁위험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한 국정원의 보고를 받고 그처럼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자주시보


박근혜 대통령의 그런 예상은 국가정보원의 2013년도 대북정보평가에 근거한 것이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국정원의 2013년도 대북정보평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이 2014년 중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2013년 10월 8일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대북정보보고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말했고,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2013년 12월 31일에 발표한 정세전망보고서에서 2014년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끝난 뒤 “(한미연합군의) 대북경계태세가 이완된 시점에 (조선인민군이)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였던 것이다. 국정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위와 같은 대북정보평가는 2014년 3월 이후 어느 시점에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예고한 것이었다.  
국정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2014년 전쟁위기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이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그처럼 바짝 긴장하는 판이었으니, 전쟁문제를 전담하는 한국군 지휘부가 긴장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그런 긴장상태가 2014년에 끝난 게 아니라 2015년 10월 하순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 <사진 5> 2015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위원장이 되고 각계각층 인사 149명이 참가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면서 '통일대박론'을 주장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현상이다.     © 자주시보
▲ <사진 5> 2015년 3월 10일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통일준비위원회가 체제흡수통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연구하고 있다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발언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자 그는 용어선택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변명으로 자기의 비밀누설행위를 덮어버리려고 했다. 위의 사진은 체제흡수통일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그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변명하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앞에서는 평화통일을 말하면서 뒤에서는 체제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체제흡수통일은 체제흡수무력통일이다.     © 자주시보

 

 

3. 평화통일 간판 아래서 추구하는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통일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꺼내놓은 특이한 대통령이다. 6.15공동선언이나 10.4선언이 발표되어 한반도 전역이 조국통일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통일대박론’도 그의 창작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입으로만 통일을 외우는 게 아니라 실제행동으로 나아갔다. 그는 2014년 7월 15일 자신이 위원장으로 되고 각계각층 인사 149명이 참가한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창성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진 5>


<한겨레> 2014년 12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통일준비위원회는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1월 중에 남북당국회담을 개최하자고 북측에 공식 제안하였는데, 이런 대북제안은 “청와대의 뜻에 따라 서둘러” 나온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뜻에 따라 남북당국회담 개최문제를 서둘러 제안하였다는 말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당국회담 개최를 서둘렀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월 2일 정부요인들, 여야지도부, 장관급 각료들, 청와대 비서진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정부는 통일이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와 실천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드러냈다. 
대통령이 그처럼 통일의지를 드러내는 판이니, 정부기관들도 덩달아 통일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를테면, 2015년 1월 1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남북국회의장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발언한 것이나, 국방부가 2015년 1월 5일 ‘통일준비 워크숍(토론회라는 뜻의 외국어-옮긴이)’을 개최한 것이나, 범정부차원에서 ‘평화통일기반구축법(가칭)’을 2015년 안에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한국은행이 한반도경제통합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말하는 통일은 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와해시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단일화하는 체제흡수통일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 3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합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통일도 준비하고 있다. 통일과정에는 여러 가지 로드맵(추진경로라는 뜻의 외국어-옮긴이)이 있으며, 비합의통일이나 체제통일에 대한 팀(실무반이라는 뜻의 외국어-옮긴이)이 우리 조직에 있다. 통일준비위는 평화통일을 전제로 한 조직이지만 밖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 내 다른 조직에서도 체제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체제흡수통일은 우리가 하기 싫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문제 관련 발언들 가운데서 가장 자극적인 발언은 2015년 7월 10일 비공개로 진행된 통일준비위원회 집중토론회에서 나왔다. 그는 “독일경험 등에 비춰보면 며칠 또는 몇 달 뒤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명백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체제흡수통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인식이 아니라 믿음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주목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체제흡수통일론을 꺼내놓기 시작한 시점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2014년 중반부터 체제흡수통일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러한 행동은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이 2014년 3월 이후 어느 시점에 일어날 것이라고 2013년에 예고했던 국정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대북정보평가내용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에 맞서는 방책으로 체제흡수통일구상을 가다듬으며 통일준비위원회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통일은 평화통일이 아니라 체제흡수무력통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체제흡수무력통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전시에 10개 향토사단을 민사작전부대로 전환시켜 점령지역 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화”하는 “수복지역 민사작전”을 “안정화 작전”이라는 명칭으로 준비하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4. 박근혜 대통령의 ‘시계추 외교행보’에 숨겨진 사연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이상한 외교행보로 국제사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시각각 침몰하는 한국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서, 또는 조선의 ‘핵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의 ‘시계추 외교행보’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의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오락가락하는 그의 특이한 외교행보에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첫째, 2015년 9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방문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긴장상태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런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 귀결점은 평화통일이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그렇게 이야기가 된 것이고, 그래서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건가에 대해서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그의 진짜 속셈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자기의 체제흡수통일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둘째, 2015년 10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직후 열린 백악관 공동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향후 한반도 상황전개와 평화통일과정에서 상호조율된 대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평화통일여건조성을 위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심화키로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서도 평화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그가 언급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라는 것은 평화통일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와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를 뜻한다. <사진 6>

 

▲ <사진 6> 미국과 중국을 번갈아 오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락가락 외교행보'가 국제사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위의 사진은 2015년 10월 16일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건에서 두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작계 5015'에 관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뜻을 담은 발언을 꺼내놓았다.     ©자주시보


구체적으로 말하면, 2015년 4월 한미통합국방협의체는 확장억제정책위원회(RDPC)와 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CMCC)를 통합하여 한미억제전략위원회를 결성하였는데, 이 위원회에서는 방어(Defense),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를 뜻하는 이른바 4D작전개념을 대북전쟁계획으로 가다듬고 있다. 이런 정황은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과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2015년 6월에 서명한 새로운 대북전쟁계획인 ‘작계 5015’의 내용이 4D작전개념을 들고 나온 한미억제전략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보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5년 10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에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평화통일여건조성을 위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심화키로 했다”고 말한 것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작계 5015’에 관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자신의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작계 5015’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시계추 외교행보’에 숨겨진 사연이라고 결론할 수 있다.

 

 

5. ‘작계 5015’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인 믿음


체제흡수무력통일을 목표로 하는 공격형 전쟁계획인 ‘작계 5015’를 처음으로 적용한 한미연합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2015년 8월 20일, 상황을 오인한 한국군은 155mm 자주포를 동원한 29발의 선제오인사격으로 조선인민군을 심하게 자극하였고 전쟁위험을 일촉즉발상태로 격화시켰다. 아직은 반미통일전쟁의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조선인민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고 무력시위로 대응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조선인민군이 평소에 예고해온 ‘불소나기 집중사격’으로 대응하였더라면 한국군 전방부대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에 집착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절대적으로 믿는 대상은 미국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그들의 눈에 체제흡수통일구상을 실현해줄 것으로 보이는 미국군의 작전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믿는 대상은 전시에 동서횡단 249km의 전선을 한국군과 함께 방어해줄 주한미국군, 그리고 일본자위대와 함께 한반도전선에 긴급히 투입될 주일미국군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합세한 북진공격으로 전쟁에서 이겨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미국군이 작성한 ‘작계 5015’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게 그런 전쟁승리의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런 믿음을 가졌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7월 10일 비공개로 진행된 통일준비위원회 집중토론회에서 “며칠 또는 몇 달 뒤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인 '작계 5015'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일동맹군이 한반도전선에 투입되어 방어를 공격으로 역전시키고 북진하여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은 요즈음 미일동맹군의 전투력을 급속히 강화시키고 있으니, 그것을 본 박근혜 대통령이 '작계 5015'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2015년 4월 29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미일정상회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모습이다.     © 자주시보


전시에 ‘작계 5015’에 따라 작전하게 될 미국군에게 전쟁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은 미일동맹군을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한반도전선에 투입하여 방어를 공격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미일동맹군이 한반도전선에 투입되면 한미연합군의 방어전이 북진공격전으로 전환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작계 5015’가 가리키는 대북전쟁의 기본방침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미일동맹군 투입으로 전세역전이 일어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줄줄이 패전해온 군대를 과연 믿을 수 있으며, 그런 군대가 작성했다는 전쟁계획 ‘작계 5015’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6. 조선인민군의 제3전선 구축과 미일동맹군의 한반도전선 출병 


미국군에게 ‘작계 5015’가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군에게도 반미통일전쟁 작전계획이 있을 텐데, 반미통일전쟁 작전계획은 존재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반미통일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이 미일동맹군을 격파하기 위해 자기의 전투력을 일본에 긴급히 투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것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 후방지역에 제2전선을 구축하는 동시에 일본에 제3전선을 구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자위대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이 바다를 건너와 자기들을 공격하리라고 오래 전부터 예상해왔다. 이를테면, 일본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03년 2월호가 보도한, 일본자위대의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 그런 예상이 반영되어 있다. 일본은 그 전쟁계획을 1994년에 작성하였다고 하는데, 21년 전에 작성된 전쟁계획이므로, 오늘날 전체적으로 변모된 작전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전쟁계획의 내용을 수정, 보충하면서 서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이 일본 공격에 많은 전투역량을 투입하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일본에서 비정규전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 예상에 따라, 일본자위대는 조선인민군이 1개 특수전여단 10,000명 병력으로 일본육상자위대 150,000명과 싸우는 전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이 일본에서 15 대 1일의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일본자위대가 언급한 조선인민군 특수전여단은 전시에 지상, 지하, 해상, 공중, 수중을 포괄하는 5차원 특수전을 입체적으로 전개할 ‘폭풍군단’에 배속된 여러 여단들 가운데 하나다. 
<데일리NK> 2009년 3월 26일부 기사에 따르면, 원래 ‘폭풍군단’은 총 12개 여단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2개 여단이 1999년에 항공군으로 이전되어 ‘폭풍군단’이 10개 여단으로 되었다고 한다. 1999년에 항공군으로 이전된 2개 여단이 전시에 각종 수송기를 타고 제2전선과 제3전선에 공수투입될 항공륙전려단들이다. 항공군으로 이전된 1개 여단에는 6,000명 병력이 배속되었으므로, 전시에 항공륙전병 12,000명이 제2전선과 제3전선에 각각 공수투입되는 것이다. 이들 전원은 육탄자폭정신으로 무장한 최정예 특수전병력이다. 그러니 일본자위대를 상대로 15 대 1의 전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60주년 열병식에 참가한 항공륙전병들이 수송차량을 타고 주석단 앞을 지나고 있다. 이들은 육탄자폭정신으로 무장한 최정예 특수전병력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한번에 항공륙전병 2,600명을 일본에 구축될 제3전선에 투입하여 미일동맹군을 공격할 수 있는데, 그들 가운데는 핵배낭특전병들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그런데 전시에 일본에 구축될 제3전선에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병을 공수투입하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항공륙전병을 실어 나르는 수송기들이 일본 영공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일본의 방공망부터 무력화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조선인민군이 일본의 방공망을 선제공격으로 파괴해야 하는데, 조선인민군에게는 그런 선제공격전을 수행할 강력한 미사일부대가 있다. 21년 전에 작성된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서는 전시에 일본에 대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이 스커드미사일이나 몇 발 쏘는 것으로 아주 과소평가되어 있지만, 오늘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력은 2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강되었다. 미사일의 파괴력, 타격정밀도, 발사방식, 보유수량 등이 전체적으로 수 십 배 증강된 것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미사일로 일본의 방공망을 공격한 뒤에 공습을 시작할 것이다. 조선인민군에게는 일본을 타격할 공습능력이 있다. 일본이 21년 전에 작성한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을 보더라도, 조선인민군은 경폭격기 약 65대, 전투기 약 125대를 동원하여 일본을 공격할 것으로 일본자위대는 예상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인민군의 공습능력은 2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강되었으므로, 미사일공격에서 살아남은 일본의 방공망을 공습으로 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투기들이 주일미국군기지를 공격하는 공습훈련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2015년 4월 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19621


다음으로, 조선에서 일본까지 항공륙전병을 공수할 중거리 수송능력을 가진 수송기들이 필요하다. 현재 조선인민군이 전시에 제3전선에 투입할, 중거리 수송능력을 가진 수송기는 21대인데, 그것을 모두 동원하면 한 번에 항공륙전병 2,600명을 제3전선에 공수투입할 수 있다. 
제3전선에 공수투입되는 병력 가운데는 극소형 전술핵탄을 원격조종으로 폭발시켜 주일미국군기지들과 일본자위대기지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조선인민군 핵배낭특전병들도 포함될 것이다. 조선인민군 핵배낭특전병에 대해서는 2013년 8월 4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전설 속의 핵배낭이 나타난 사연’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셋째,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잠수함 약 10척과 소수의 소형함정으로 일본을 공격할 것으로 일본자위대는 예상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21년 전에나 들을 수 있었던 ‘옛날이야기’다. 오늘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는 일본의 주요항만을 모조리 봉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었다.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23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세계가 놀랄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의 위력’에서, 그리고 2015년 8월 31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8월위기사태는 어떻게 평정되었는가?’에서 각각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사진 9>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3414

 

▲ <사진 9> 오늘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는 일본의 주요항만을 모조리 봉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었다. 전시에 조선이 제3전선에 잠수함연합부대를 투입하면, 그 부대는 수중매복구역에서 매복하였다가 미일동맹군이 한반도 출병에 이용할 해상수송로를 봉쇄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2015년 5월 9일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지도 밑에 진행된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 참가한 전략잠수함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 날 이 전략잠수함에서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장착하는 최첨단 잠대지미사일 북극성-1호 2발이 수중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해상자위대도 잠수함 전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잠수함 50여 척으로 편성되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할 것이다.     © 자주시보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미일동맹군이 한반도전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그들의 기지들을 맹렬한 동시다발식 공격으로 파괴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미일동맹군을 한반도전선에 긴급히 투입하고, 한국에 체류하는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을 일본으로 긴급히 대피시키려는 ‘작계 5015’는 실현될 수 없는 전쟁계획인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전시에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이 제대로 작동되어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은 미국군이 외우는 ‘작계 5015’라는 이름의 주술에 홀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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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대 <박근혜퇴진, 미군떠나라> 동시다발 1인시위투쟁 156일차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0/26 09:56
  • 수정일
    2015/10/26 09:5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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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아연대 <박근혜퇴진, 미군떠나라> 동시다발 1인시위투쟁 15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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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156일째 코리아연대 <박근혜퇴진, 미군떠나라> 동시다발1인시위투쟁이 미대사관앞과 미대사관정문맞은편광화문광장, 서울구치소앞 등 3곳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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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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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정화 TF 비밀리 운영하며 '청와대 일일보고'

 
9월부터 이미 가동 중… 야당 교문위원 현장 긴급 방문
서어리 기자 2015.10.26 02:10:16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위한 '비밀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공식 조직 체계에 없는 비선 조직으로, 국정화 발표 전인 9월부터 청와대에 일일보고하는 등 밑작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 전망이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5일 "교육부가 지난 9월 말부터 국정화 추진 작업을 위해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교육부 산하 국제교육원 건물에 TF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며 'TF 구성 운영계획(안)'을 공개했다.

이 TF팀은 단장 1명, 기획팀 10명, 상황관리팀 5명, 홍보팀 5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돼 있다. 단장은 오석환 충북대학교 사무국장, 기획팀장은 김연석 교육부 교과서정책과 역사교육지원팀장이 맡고 있다. 오 사무국장은 교육부의 정식 파견 발령도 받지 않은 채 TF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국정화 TF 운영계획안.


문건 내 '담당업무' 항목에는 팀별 소관업무가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기획팀은 '집필진 구성 및 교과용도서 편찬심의회 구성' 등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기로 한 업무와 '교과서 분석 및 대응논리 개발' 등 업무를 맡았다.

상황관리팀 업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BH 일일 점검 회의 지원'이다. BH, 즉 청와대가 국정 전환 작업을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보팀 업무 내용에는 온라인 동향 파악뿐 아니라, '기획 기사 언론 섭외, 기고 칼럼자 섭외' 등이 명시돼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8일 국감 때까지도 국정화와 관련돼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문건 내용이 사실일 경우 정부의 발표는 거짓으로 드러나는 셈이어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굳게 닫혀있는 국립국제교육원 건물. ⓒ프레시안(서어리)

 

 

ⓒ프레시안(서어리)


"청와대 수석, 차관도 다녀갔다는 제보 있어"

야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TF 구성원들이 일요일에도 근무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TF 업무 공간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방송통신대학교 국제교육원을 방문했다. 도 의원을 비롯해 김태년,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오후 8시께 도착해 내부 직원들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건물 내 직원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불을 끄고 침묵을 지켰다.

현장에 있는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국회 교문위원 신분을 밝힌 뒤 국정화 TF 운영에 대한 제보 내용을 확인하고자 왔다고 했지만 묵살 당했다"며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간 직원들은 우리가 왔다는 소식에 사라졌고, 나머지 직원들은 그대로 건물 안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은 "청와대 수석도 다녀갔고, 어제는 차관도 왔다 간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 건물 안에는 직제 안에 있는 21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오후 9시경에는 1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출동해 야당 의원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후 10시경에는 정청래, 박홍근,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다른 야당 의원들도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25일 국정화 TF 운영 제보를 받고 국제교육원에 방문한 국회 교문위원들이 현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행정예고 기간 중 국정화 작업? 행정절차법 위반 소지"


현장에 있는 야당 의원들은 오후 10시 반경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밀리에 국정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부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도 의원은 "지금은 행정예고 기간인데도, 이미 (정부가) 9월 말부터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며 "이렇게 사무실을 마련해서 몰래 비밀스럽게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법 위반 소지도 문제 삼았다. 도 의원은 "행정절차법에는 (행정예고 기간에) 국민 여론을 충분히 듣고 공청회도 하고 난 뒤에 확정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며 "현재 행정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실질적인 일을 집행하는 건 행정절차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김태년 의원은 "계속 떳떳하다면 문을 열고 그런 작업하지 않았다든지 얘기를 할 것"이라며 " 보시다시피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불까지 꺼놓고 있다. 떳떳하지 않은 작업을 한 걸로 보인다"며 즉각 해명을 요구했다.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 장관, 기조실장 등에게 수 차례 전화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결국 새벽 1시 10분께 최소 인력만을 남겨둔 채 귀가했다. 도 의원은 "교육부 대변인이 밝힌 입장만을 전해들었는데, 이팀이 내부 인력이 부족해서 필요한 TF고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고, 앞으로도 계속 운영할 거라고 한다"며 "그렇다면 내일 오전에 다시 와서 사무실에 들어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 내부의 불은 모두 꺼졌으나 불 꺼진 방 안에서 사람이 오가는 모습이 기자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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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막내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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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서 몽둥이로 연어 50만마리씩 잡았다

 
황선도 2015. 10. 23
조회수 10363 추천수 0
 

황선도 박사의 연어 이야기 ③ 세계적 식품 연어

조선 때 함경도 토산품으로 유명, 그물 들면 작살과 몽둥이로 잡아

오메가3 지방산 많아 건강식으로 인기, 원주민에게 삶의 뿌리

 

04668464_R_0.jpg» 우리나라의 연어는 주로 노르웨이에서 수입한다. 사진은 노르웨이 트롬쇠 살마르 연어 양식장에서 직원이 다 자란 연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미향 기자
 
우리나라 연안에서 연어 어획량은 저조하며 다른 대상종을 어획할 때 부수적으로 잡히는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연어는 주로 노르웨이를 비롯한 알래스카와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sa1.jpg» 바다에서 부수어획으로 잡힌 연어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FIRA) 정순봉 조사원
 

■ 연어에 관한 과거 기록
   
연어는 최근에 노르웨이나 러시아 등지의 서양에서 수입되어 들어온 생선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연어가 없었던 걸까? 
 
고전을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연어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훈몽자회>에는 연()자를 ‘련어 련’이라고 적고,<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연어를 ‘魚’라고 쓰여 있으며,<난호어목지>에는 연어를 ‘年魚’라 하는 등 한자로 연어를 魚 또는 年魚라고 적은 것으로 봐서 그 당시에도 연어라는 존재가 명확하였음을 말해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중국 사신이 건어물 무역을 의뢰하여 함길도(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에 건연어를 때맞추어 준비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함길도에서 어류, 육류, 진상품 등을 맡아보는 조선의 관청인 사재감에 연어를 바쳤다는 기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동해의 북쪽 바다에서 연어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또 두만강 지류인 함경도 고원군 덕지강은 연어가 많이 나기로 유명하며, 연어가 토산품으로 들어 있는 지방이 함경도에 많고 강원도와 경상도에도 몇몇 지방이 있다고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연어는 어전(漁箭, 고기잡는 대나무살)을 설치하여 잡았으며, 어리(漁利, 어업상의 이익)가 전국에서 함경도가 최고라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동해안에서 연어가 어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DSCN0159_zps651e8f09.jpg» 미국 오리건 주의 원주민 치누크 족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잡는 모습을 담은 그림.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방법으로 잡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허균의 문집<성소부부고>에서는 ‘연어는 동해에 있는데, 알젓은 좋은 안주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서유구의<난호어목지>에는 연어에 대하여 ‘동해에 일종의 물고기가 있는데 큰 것은 길이가 두서너 자이고 비늘은 가늘며, 청색 바탕에 고기의 빛깔은 담적색이다.’라고 하였으며, 그 알을 설명하여 ‘알의 모양이 명주(明珠, 밝은 구슬) 같고 빛깔은 담홍색인데, 소금에 절이면 심적색이 되고 삶으면 다시 담홍색이 되며 빛깔 중에 심홍색의 한 점이 있다.’라고 하여 연어 고기와 알을 매우 세심하게 관찰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 알은 서울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다.’라고 하여 연어의 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 이미 연어를 건제품이나 염장품으로 가공하였고, 알은 젓갈로 가공하여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90년대 초의 한 조사에 의하면, 원산 앞 영흥만과 연결되는 여러 하천에 연어가 많이 소상하는데 작살로 찔러 잡는 어법만으로도 하루에 2000∼3000마리를 어획할 수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한말 자료에는 두만강에 소상하는 것이 가장 많으며 하천에 어망을 설치해 놓고 연어가 그물에 들면 작살이나 몽둥이로 이를 잡아냈다고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당시 어획량은 두만강에서 연간 50만마리이고, 덕지강과 용흥강에서 2만∼3만마리였다고 하나 연어가 어획량이 많은 생선으로 취급되지는 않은 양이었다. 오늘날에도 강원도와 경상도의 하천에 올라오고 있기는 하나 그 수가 많지 않다.
 
■ 연어 치어의 인공생산과 방류 역사

sa2.jpg» 모천으로 회귀한 연어 맞이하기. 사진=FIRA 양양연어사업소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인공부화하여 겨우내 키운 어린 연어를 방류하고 있으나, 어미 연어의 회귀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어가 회귀는 하천의 물이 오염되고 골재 채취로 산란장소가 사라지는 것이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수변이 점점 도시화하면서 울창했던 숲이 줄어들어 계곡과 하천의 수온이 높아지게 되니 냉수성 연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고 모천회귀도 점차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연어의 보존 대책이 시급하나 도시의 끝없는 현대화와 인간의 탐욕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딜레마이다. 
 
현재 과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산란하러 올라온 어미 연어를 잡아 알을 짜내 인공적으로 수정과 부화를 시켜서 어느 정도 자라 생존율이 높아지는 크기까지 안전하게 키운 다음, 자연에 대량 방류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일련의 기술개발을 과거에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그 기반을 만들었고,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FIRA) 양양연어사업소에서 지속적으로 자원을 증식하고 있다.
 
연어의 인공채란과 치어생산은 1758년 오스트리아의 육군사관 루드윜 야콥(Rudweek Yacobe)이 송어 알을 인공수정시켜 부화하는 데 성공한 이후, 200년 넘게 유럽과 북미의 연구자들에 의해 부화기와 부화기술이 개발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854년 니오루스크(Nieorusk)라는 곳에 부화장을 설치하여 1859년에 라스키(Rasky)에 의해 종래의 습식 수정 방식을 건식으로 개량하여 수정율을 높였다. 미국에서는 1871년 박스포드(Baxford)에 처음으로 부화장을 만들어 운영하였는데, 아트킨스(Atkins)에 의하여 개발된 아트킨스식 부화기는 부화율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sa3.jpg» 인공생산된 어린 연어. 사진=FIRA 양양연어사업소 김주경 연구원
 
우리나라 연어 치어 생산·방류에 대한 역사를 통해 연어자원조성의 노력을 살펴보았다. 1913년 함경남도 고원군에 일본인이 관영 연어인공부화장을 건립한 것을 시초로 1920년에는 금강산에 민영 송어인공부화장이 설립되었다. 
 
남쪽에는 1925년에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소월동의 강구 오십천변에 강구어업조합에서 연어인공부화장을 시설하여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시설물이 파괴될 때까지 30년 넘게 20만마리의 어미를 포획하고 760만개의 알을 채란해 535만마리의 치어를 방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인 1949년에는 진해양어장(현 국립수산과학원 내수면양식연구센터)에서 우리 손으로 처음 연어 알 10만개를 채란하여 부화하였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최초 연어자원조성사업은 1957년부터 1961년까지 5년간 중앙수산시험장 주관으로 진해양어장에서 경남 밀양강과 경북 강구 오십천에서 연어 소상조사와 함께 인공부화·방류를 실시하였다. 
 
이후 1968년 9월에는 삼척연어부화장(현 삼척시 내수면개발사업소), 1969년에는 밀양과 강구에 3개 부화장을 설립하여 미국으로부터 발안난을 가져와 부화시키는 등 연어자원조성을 위한 본격적인 사업을 했다. 밀양 연어부화장(현 경남 민물고기연구센터)은 낙동강의 오염과 하굿둑 공사로 밀양강에서의 어미 소상량이 격감함에 따라 1983년 연어사업을 중단하였으며, 최근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사업을 재개하였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연어 회귀량은 1988년부터 1만마리 이상으로 증가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정치망에서 연어어업이 가능하게 되어 연평균 9만마리 이상을 어획하고 있다. 1997년에는 21만마리가 잡혀 기록을 세웠다.
 
방류량도 1990년 이후 1000만 마리 이상 방류되었으며, 2014년에는 2800만 마리 이상을 방류하여 최고 많이 방류한 해가 되었고, 방류 하천도 울산 태화강과 전남 섬진강 등이 추가되어 18개 하천으로 확대되었다.

 

sa4.jpg» 우리나라 연어 방류량과 및 포획량
 
■ 연어 치어생산·방류 과정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양양연어사업소에서는 매년 10월11일부터 11월30일까지 산란하러 모천회귀하는 ‘어미 연어 맞이하기’ 생태체험행사를 한다. 이때 잡은 어미 연어로부터 인공적으로 알을 수정·부화시켜 연어 치어를 만들어 이듬해 3월 봄이 되면 ‘어린 연어 보내기’ 방류체험행사를 한다. 연어 자원조성과 관리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sa5.jpg» 산란회귀한 어미 연어 잡기. 사진=FIRA 홍관희 양양연어사업소장
 

sa6.jpg» 어린 연어 보내기 생태체험 행사 포스터. 사진=FIRA 양양연어사업소

sa7.jpg» 어린 연어 방류. 사진=FIRA 양양연어사업소

 
■ 연어의 영양성분
   
연어는 단백질과 지질의 함량이 높고,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칼슘도 골고루 함유하고 있다. 또한, 고도불포화지방산인 DHA, EPA 등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sa8.jpg» 연어의 영양 성분


이러한 영양분 덕택인지 연어는 기능성이나 신물질 개발에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동맥경화,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당뇨병 등의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라고 하니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장생의 식품이 아닐까. 
 
특히, 오메가3 지방산은 중성지방을 낮추고,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어 심장병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연어에 많은 붉은 색소 즉 천연 카로테노이드의 일종인 아스타크산틴을 원료로 드링크제가 출시되어 노화방지, 피로회복, 시력 개선에 도움을 되는 건강기능성 음료로 개발되었다. 
   
연어의 껍질에 있는 콜라겐은 사람의 피부에 스며들기 쉬워 주름개선에 탁월하며 살갗 거친데 특효이다. 오메가3 지방산은 다크써클에도 효능이 있어 최고의 화장품 재료로 알려져 있어 캐나다와 일본 경우에는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어에서 추출한 특정 성분을 함유한 창상치료제가 출시되고 있으니, 수산물이 주는 혜택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겠다.

04669661_R_0.jpg» 연어 초밥. 사진=박미향 기자

   
그러나 그 무엇보다 연어는 식품으로 이용되는데, 국내의 한 수산기업에서는 알래스카 자연산 연어를 이용한 가공식품을 출시하였고, 연어 식품은 앞으로 1000억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어는 좀 특이한 생선이다.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서양인들이 즐기는 몇 안 되는 생선 중의 하나가 연어이다. 그래서 훈제연어나 연어스테이크 등 요리법도 서양에서 주로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어가 흔한 생선이 아니었으나, 몇 년 전부터 외국에서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레스토랑은 물론 가정에서도 요리해 먹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식감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성에 연한 연어가 입에 맞을까 하는 의구심과는 달리 급속도로 애호가가 많이 지고 있다. 
 

스테_이04782219_R_0.JPG» 연어 스테이크. 사진=이병학 기자


역시 우리나라는 먹방의 천재이다. 뒤늦게 먹기 시작한 연어를 가지고 서양보다 더 다양한 요리를 개발했는데, 연어회, 연어초밥, 연어버터구이, 연어꼬치, 연어샌드위치 등이 그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내가 해주는 연어샐러드를 좋아한다.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실험하고 얻어온 생연어를 요리해 먹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아련하다. 지금은 훈제연어를 썰어 그 위에 여린 잎 채소와 채 썬 양파, 양상추, 케이퍼를 놓고 소스를 뿌려 만든 연어샐러드를 곁들여 와인 한잔에 한입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연어감자샐05369644_R_0.jpg» 연어감자샐러드. 사진=박미향 기자
 
이제 포도주가 보편화하면서 어울리는 안줏감으로도 연어의 소비는 계속 늘어날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음식의 사대주의 때문일까? 경험의 다양화 때문일까?
 
우리나라 식단은 식물성 기름에 주로 들어 있는 오메가6 지방산은 풍부하지만, 등푸른 생선에 많이 든 오메가3 지방산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인이 생선을 많이 먹긴 하지만 지방산 함량이 적은 흰살 생선을 많이 먹기 때문에 오메가3 지방산 섭취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식단이 점점 서구화하면서 튀김이나 가공식품을 많이 먹어 그로 인한 심혈관 질환을 예방해주는 오메가3 지방산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 연어와 문화
   
사실, 내가 연어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2005년 캐나다 박사후과정 공부할 때였다. 그 전까지는 연어가 서양에서나 먹는 생선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수입한 훈제연어 한 조각을 맛보는 정도였다. 내가 근무하던 캐나다 뱅쿠버 섬에 있는 태평양생물연구소의 많은 연구과제가 연어에 관한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보고서나 논문들을 접하게 되었고, 승선조사를 하면서 채집된 연어를 실험하게 되었다.

 

sa9.jpg» 캐나다 뱅쿠버 섬에서 연어조사 중 잡은 왕연어. 
 
이웃집 파티에 초대받아 가 보면 항상 연어 바비큐와 연어 샐러드가 나오고, 심지어는 딸아이 초등학교 문학책과 수학책에도 연어가 주제로 나왔다. 심지어 과정을 마치고 귀국할 때 연구소와 이웃이 만들어준 환송파티에서 준 선물도 연어 목각이었다.

 

sa10.jpg» 어린이용 연어 정보 딱지
 

sa11.jpg» 연어 목각.


sa12.jpg» 연어를 다룬 영어 동화책.  
 

sa13.jpg» 성기백이 지은 연어 생태 책.  
 
읍내 미술센터에 걸려있는 작품에도 연어가 그려져 있고, 상가에도 연어를 소재로 한 기념품들이 즐비하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의 전통적인 기하학적 연어 형상은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실제로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바다와 강에서 쉽게 연어를 어획하여 먹어 왔으며, 이들에게 연어는 생활 그 자체였던 것이다. 원주민들은 연어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경이로운 마음을 가졌고,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연어를 어획하였고 함부로 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캐나다 수산자원관리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이들 원주민들에게는 관대하다. 원주민은 원래부터 바다와 연어를 근간으로 살아왔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sa14.jpg» 캐나다 뱅쿠버섬 서부 해안의 누카 섬(Nootka Island)에서 만난 동네 아이들과 원주민 예술가. 
 
이 시기에 이웃에 사는 네오탁이란 이름의 교포를 만났는데, 이분은 산림학자로 벰필드라는 뱅쿠버 섬 서부의 오지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태적 삶을 살고 계셨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분이 <숲은 연어를 키우고 연어는 숲을 만든다>를 쓴 탁광일 박사이다. 그는 연어와 숲과의 관계를 어떠한 과학적 설명보다도 감동적으로 표현하였다. 

 

sa16.jpg» 탁광일의 연어 책.  
 
"숲과 연어의 관계는 사실 이곳 원주민들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조상의 지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들은 나무나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영성을 지니고 있으며 숲은 연어의 양부모라고 믿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보살핌 아래 안전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새끼 연어는 부모 없이 불안하고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다. 개울 주위의 나무들은 어린 연어를 가엾게 여겨 낙엽이나 잔가지를 떨어뜨려 줌으로써 연어가 먹을 양분을 대주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개울물에 던져 물 웅덩이를 만들어 은신처를 마련해 준다. 
 
숲이라는 양부모의 보살핌을 받은 어린 연어는 바다로 나가 몸집을 크게 불려 돌아온 다음, 다시 숲에다 기꺼이 자기 몸을 바침으로써 양부모의 은혜를 갚는다."
 
숲이 우거진 하천은 그늘을 만들어 강물을 차게 유지시켜 냉수성 연어에게 산란장과 어린 연어의 보육장을 제공하고, 모천회귀해서 산란하고 죽은 어미 연어는 숲에 자양분을 제공하여 숲을 유지시켜주는 공생과 환류의 세상을 설파하였다. 이것은 원주민의 순환하는 원 사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결국 연어도 숲도 다 자연의 일부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sa17.jpg» 캐나다 뱅쿠버 섬에 서부해안에 있는 뱀필드 바닷가.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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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어”


(추가)이산가족 2차 상봉, 금강산서 첫날 단체상봉 마쳐
금강산= 공동취재단/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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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4  18: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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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남측 상봉 신청자가 북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 첫 만남이 24일 오후 3시 30분부터 금강산에서 시작됐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남측 상봉 신청자가 북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 첫 만남이 24일 오후 3시(현지시간, 서울시간 3시 30분)부터 시작됐다.

‘반갑습니다’ 노래에 맞추어 북측 방문 가족들이 2시 35분께부터 상봉장인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 입장을 시작했으며, 이어서 남측 상봉 가족들이 10분쯤 뒤에 들어왔다.

북측 할머니들은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들어왔으며, 날씨가 포근해진 탓인지 할아버지들은 1차 상봉때와 달리 바바리코트와 중절모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1층 로비에서 나선형으로 올라오는 중앙계단을 통해 2층 연회장으로 남측 상봉 가족이 올라오자 북측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각자 가족들을 찾았다.

남북 가족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으며, 상봉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아이고’ 등의 소리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옛날 흑백사진을 꺼내들고 기억을 더듬으며 가족 관계를 확인하고 최근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근황과 친적, 가계도를 설명했다.

이번 상봉에서는 6.25 전쟁 당시 납북된 오빠를 만나러 온 가족과 1972년 납북된 ‘오대양호’ 선원 아들을 만나러 온 어머니 등 납북자 가족 2명과 65년만의 부부상봉 1가족, 부자상봉 2가족, 모자상봉 4가족 등이 만나 가슴 아픈 사연들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봄타령, 밀양아리랑, 고향의 봄 등이 상봉 시간 내내 배경음악으로 흘렀으며, 시간이 갈수록 점차 차분해 지는 가운데 사진을 찍거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가족이야기를 나누었다.

2차 상봉행사 첫날 첫 단체상봉은 2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5시에 끝났다.

▶ “좋은 세상에서 살았어. 근심 걱정 없어”

   
▲ 지난 1972년 오대양호 선원이었던 정건목씨가 43년만에 어머니 이복순씨를 만났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복순(여, 88) 할머니는 지난 1972년 12월 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쌍끌이 어선 오대양호의 선원이었던 아들 정건목(64)씨를 43년 만에 만났다.

북측 가족들 사이에서 입구쪽을 응시하고 있던 건목씨는 10분 뒤 먼저 입장하는 큰 누이 정매(66)씨와 여동생 정향(54)씨를 보고는 양팔로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 없이 울던 건목씨는 곧 도착한 어머니를 알아보고는 휠체어에 탄 채 앉아 있는 어머니를 껴안고 “엄마”라고 외치고는 옆의 아내를 가리키며 “며느리야, 며느리”라고 소개했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울고, 건목씨는 큰 누이와 여동생을 끌어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아 건목씨는 어머니에게 “내가 다 알아. 사니까 이렇게 만나네요. 보세요.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지”라고 말했다.

21살 때 가족과 헤어진 건목씨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그렇게 어머니 앞에 섰다.

며느리 박미옥(58)씨는 처음 보는 시누이 정매씨에게 “우리 빨리 힘을 합해 통일돼서 함께 삽시다. 통일될 때까지 어머니 잘 모셔달라”고 말했다.

건목씨는 아내를 사이에 두고 한 칸 건너 자리에 있는 어머니쪽으로 몸을 쭈욱 내밀고 어머니는 손을 뻗어 아들 얼굴에 손을 대고 쓰다듬었다. 아들은 그 손을 아래로 내려 꼬옥 꼬옥 눌러가며 안마를 해주었다.

어머니는 “네가 나이를 먹으니까 큰 형을 닮았구나”라고 그윽하게 아들을 쳐다보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의 입에 과일을 직접 먹여주기도 했다.

▶ “미안하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어”

황해북도 개풍군이 고향인 전규명(86) 할아버지는 65년 만에 만난 부인 한음전(87) 할머니에게 “난 전규명. 한음전?”이라며 확인부터 하고는 “예쁜데 키가 작아. 컸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손으로는 부인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인은 남편의 귀에 대고 “(당신) 동생 이름 기억 안나?”라고 묻고는 남편이 “규태, 규현이...”라고 확인하자 모두 사망했다고 소식을 알렸다.

한음전 할머니와 함께 온 아들 완석(65)씨는 쑥스러운 듯 옆에 서서 “아버지 제가 아들이에요”라고 말했다. 조카 천석(75)씨는 전규명 할아버지의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할머니(전규명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몇 년 안됐다. 할아버지는 53년전에 돌아가셨다”고 전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전날 속초 한화 리조트에서 회색 정장에 중절모 차림으로 휠체어에 앉아 등록 절차를 밟으면서도 곧 만날 가족들 생각에 손수건으로 간간이 눈가를 닦았다.

부인을 만나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미안하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어”라고 말했다.

▶ 행방불명된 21살 청년이 32살 딸을 데리고 아버지 앞에 서게 된 사연

   
▲ 여동생 순옥씨가 "오빠가 최고 잘생겼고 노래도 잘했다"며 손가락을 치켜들고 오빠 배상만씨를 칭찬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배양효(92) 할아버지는 작은 아들 상석(60)씨와 딸 순옥(55)씨를 데리고 북의 아들 상만(65)씨와 손녀 은희(32)씨를 만났다.

지난 1972년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행방불명된 북의 아들은 43년만에 32살의 딸을 데리고 나와 아버지와 동생들을 만났다. 상만씨는 “아버지 만나서 얼마나 좋나”며 쌍둥이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들과 딸을 두고 동생이 사망했다는 것. 아버지는 혼자 지내고 있는 북의 아들이 안쓰러워 “남북 통일되면 부부끼리 와야 내가 받아주지”라며, “너 오면 줄려고 2천만원 들여서 깨끗이 청소해 놨어”라고 아쉬움 가득하게 말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온 동생들은 상만씨에게 노래를 청하고 그렇게 시작된 ‘고향의 봄’을 상만씨와 동생들은 아버지 앞에서 신명나게 불렀다.

여동생은 “오빠가 돈 벌어서 옷 사준다고 해놓고 연락이 없었어”라며 어리광을 부리다가 “오빠가 최고 잘 생겼고 노래도 잘했다”며 손가락을 치켜들고 오빠의 기운을 돋구기도 했다.

▶ 남측 언니와 만난 북의 유쾌한 세 자매

   
▲ 언니 조순전(맨 오른쪽 앉아있는 이) 할머니를 만난 북의 여동생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1남 5녀의 다복한 형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남쪽에 살던 오빠와 북의 언니를 잃고 4자매만 남게 됐다. 조순전(83) 할머니는 마치 세쌍둥이 같이 닮은 북의 여동생들 서분(79), 성녀(76), 귀녀(75)씨와 만나 알콩달콩 옛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언니가 “이렇게 만나다니 이제 만나니”하고 말문을 열자 막내 동생 귀녀씨는 고향인 황해도 벽송군 영호리에서 멀지 않은 벽송읍에 살고 있고 성녀씨는 “청단으로 시집가서 내가 친정 어머니·아버지 다 모셨어”라고 도란도란 봇물터진 듯 말이 이어졌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큰 조카 홍용기(61)씨가 “동생들 만난다고 어머니가 한 잠도 못 주무셨어요. 이모님들이 건강해서 좋아요”라고 말하자 “조카는 무슨 일 해”라며 근황을 묻기도 했다.

▶98살 아버지, 70살 아들·41살 손자 만나다

   
▲ 최고령 상봉자인 이석주 할아버지가 아들 동욱씨(왼쪽)와 손자를 만났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최고령 상봉자인 이석주(98) 할아버지는 북의 아들을 만나자 마자 “이동욱이 맞냐”고 물었다.

북의 아들 동욱(70)씨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참기로 결심한 듯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행한 남쪽 아들 동진(61)씨를 가리키며 “니 동생이다. 올해 환갑이야”라고 알려주었다.

동욱씨는 데리고 온 아들 용진(41)씨를 소개했고 손자가 큰 소리로 “할아버지”라고 하자 100세가 내일 모레인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계속 아들을 부르며 4살 위인 맏딸 금자씨가 왜 오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누나가 있는데 이번에 못 왔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운신을 못해요”라고 동욱씨가 말하자 아버지는 금세 눈물이 가득했다.

동행한 딸 경숙(57)씨가 “아버지는 휠체어까지 타고 오셨는데, 휠체어도 타고 못 오셔요”라고 재차 묻자 “운신을 못하니까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또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품에서 코팅된 사진 6~7장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젊을 때 엄마 사진이에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이 양반하고 내가 스물여덟하고 서른 넷에 헤어져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고령의 아버지는 시종 아들을 “야”라고 부르며 며느리 사진도 보아주고 아들이 광산에서 일한다는 소식도 들어주었다.

손자 용진씨는 “할아버지 오래 사셔야죠. 그리니까 나쁜 놈들 쫓아내고 조국통일을 해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가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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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식에 나타난 핵무력 종결자

열병식에 나타난 핵무력 종결자
 
한호석의 개벽예감 <17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10/23 [12:57]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기사 담당자의 외국 취재로 월요일에 도착한 글을 이제야 올리게 되어 필자와 독자들에게 죄송합니다. 다음엔 더 대책을 잘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차례>
1. 핵탄보다 더 강한 무한대의 힘이 있다
2. ‘불새-3’ 2발을 장착하고 나타난 ‘천마-216’
3. 평택기지 30초 만에 날려버릴 300mm 8관 방사포
4. 조선은 왜 고폭실험을 하지 않는가?
5. 열병식에 나타난 화성-14호는 핵무력 종결자

 

▲ <사진 1> 조선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은 201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대규모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진행되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5분 간 연설 중에 인민이라는 단어를 무려 97차례나 사용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 말하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연설에서 천명한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사상으로 더욱 강화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1. 핵탄보다 더 강한 무한대의 힘이 있다

 

조선에서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은 2015년 10월 10일 평양에서는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대규모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진행되었다. 그것은 군인 2만명과 평양시민 13만명이 한 덩어리의 거대한 응결체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놀라운 장면들을 연속 펼쳐놓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성대한 정치행사였다.


한국과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의 열병식에 어떤 신형 무장장비들이 등장하는가 하는 데만 관심의 초점을 모았지만, 정작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육성연설에서 천명한 정치사상과 13만 군중시위에서 과시된 조선의 민심이다.


첫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5분 간 연설 중에 인민이라는 단어를 무려 97차례나 사용하였다. 사회주의집권당의 70년 역사를 총화하는 연설이 그처럼 인민으로 시작하여 인민으로 끝난 것은, 조선에서 말하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연설에서 천명한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사상으로 더욱 강화발전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 이외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조선의 시각으로 보면, 조선로동당의 70년 역사는 당과 인민이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며 혁명의 길을 개척해온 역사로 보이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1991년 5월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립한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의 정치로선을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사상으로 더욱 심화발전시켰음을 이번 연설을 통해 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진 1>


둘째, 누구나 아는 것처럼, 열병식은 한낱 구경거리가 아니라, 군대의 훈련강도와 규율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군사훈련이 미숙하고 규율이 흩으러진 군대는 수만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대규모 열병식을 진행하지 못한다. 군단급 열병식을 진행하는 군대는 전세계에서 조선인민군, 중국인민해방군, 러시아연방군밖에 없다. 미국군은 ‘세계 최강’이라고 자처하지만, 이제껏 대규모 열병식을 단 한 차례도 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군사훈련이 미숙하고 규율수준이 낮은 군대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 <사진 2> 각계각층 인민 13만명이 참가한 초대형 군중시위는 누가 강제로 동원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의 각계각층이 단일한 생명유기체처럼 생활하며 집단주의정신을 체득한 나라에서만 할 수 있다. 평양시민 13만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초대형 군중시위는 조선인민이 축적한 무궁무진한 힘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핵탄보다 더 강한 힘이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셋째, 조선의 열병식이 중국의 열병식이나, 러시아의 열병식과 다른 점은, 열병식과 군중시위를 함께 진행한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열병식만 진행할 뿐, 군중시위는 진행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두 나라에서는 13만명이 참가하는 초대형 군중시위를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13만 군중시위는 누가 강제로 동원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의 각계각층이 단일한 생명유기체처럼 생활하며 집단주의정신을 체득한 특이한 나라,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당과 인민이 혼연일체로 살며 투쟁하는” 특이한 나라에서만 13만명이 자발적으로 군중시위에 참가할 수 있다. 평양시민 13만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초대형 군중시위는 조선인민이 축적한 무궁무진한 힘의 발현이라고 설명하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3만 군중시위는 핵탄보다 더 강한 무궁무진한 힘의 존재를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사진 2>

 

▲ <사진 3> 이 사진은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을 촬영한 것이다. 근위대라는 글씨와 붉은 별을 새겨넣은 방패 모양의 금빛 휘장이 포탑에 부착된 것이 보인다. '천마-216'은 조선이 생산한 여섯 유형의 천마계열 전차들 가운데 최신형이다.     © 자주시보

 

 

2. ‘불새-3’ 2발을 장착하고 나타난 ‘천마-216’

 

조선의 열병식을 대하는 세계 언론매체들의 관심사는 어떤 무기들이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번 열병식에는 30여 종, 250여 대에 이르는 각종 무장장비들이 동원되었다. 조선의 무장장비에 정통한 군사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이나 미국에서 조선의 열병식에 등장한 30여 종의 무장장비들에 관해 보도한 내용은 부정확하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보도기사는 다시 써야 한다. 하지만 조선의 열병식에 등장한 무장장비 30여 종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글의 길이가 제한된 조건에서 불가능하므로 그 가운데서 특별히 주목되는 몇 가지 무장장비들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첫째, 이번 열병식에는 여러 유형의 전차들이 등장하였다. 내가 2013년 6월 5일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할 때 중무기전시실에서 직접 관찰한 세계 정상급 첨단전차 ‘주체98년식 선군-915’가 이번 열병식에 등장하는지 지켜보았는데, 그 첨단전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군-915’는 조선에서 2009년부터 생산되는 최신형 전차이므로, 그 실물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여러 유형의 전차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이 전차는 조선에서 2004년부터 생산되고 있다. 조선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 전차들 가운데 천마계열의 전차는 여섯 유형이다. 조선은 1976년, 1992년,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에 각각 천마계열의 전차들을 생산하였는데, ‘천마-216’은 천마계열 전차들 가운데 최신형이다. <사진 3> 


그런데 ‘천마-216’은 지난 시기 열병식에 등장하였을 때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번 열병식에 나타났다. 포탑 정면 상부에 대전차미사일 2발을, 포탑 후면 상부에 저고도지대공미사일 1발을 각각 장착하고 나타난 것이다. ‘천마-216’이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에 등장하였을 때는 대전차미사일이나 저고도지대공미사일을 장착하지 않았고,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식에 등장하였을 때는 대전차미사일과 저고도지대공미사일을 포탑 위쪽에 높이 장착하였는데, 이번에는 대전차미사일을 레이저거리측정기 바로 위쪽에 장착하고, 저고도지대공미사일을 포탑 뒤쪽에 높이를 낮춰 장착하고 나타났다.


조선에서는 대전차미사일을 반땅크로케트라고 부르는데, 조선에서 생산되는 반땅크로케트의 고유명칭은 ‘불새’다. 2013년 6월 5일 나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을 참관할 때 중무기전시실에서 불새계열의 대전차미사일 세 유형을 직접 관찰하였다. 사거리가 2km인 ‘1968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1’, 사거리가 3km인 ‘1973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2’, 그리고 사거리를 공개하지 않은 최신형 반땅크로케트 ‘불새-3’을 관찰한 것이다.

 


2008년 11월 27일 당시 조선을 방문하고 있었던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은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을 견학하였다.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기록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이 관찰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직경 12cm, 중량 26kg, 사거리 3km이고, 레이저로 유도되는 미사일이다. 당시 조선인민군 병사들은 ‘불새’를 발사하여 2km 밖에 놓인 가로, 세로 2m의 표적을 명중시키는 시범사격을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 앞에서 진행하였다.

 

 
▲ <사진 4> 위의 두 사진들 가운데 윗쪽 사진은 2013년 전승절 열병식에 참가한 '천마-216' 포탑 상부를 확대한 것인데, 대전차미사일 '불새-2' 2발이 포탑 윗쪽 높이 장착되었다. 아랫쪽 사진은 이번 열병식에 참가한 '천마-216' 포탑 상부를 확대한 것인데, 대전차미사일 '불새-3' 2발이 레이저거리측정기 바로 옆에 낮게 장착되었다. 지난 시기 최신형 첨단전차 '선군-915'에만 장착되었던 '불새-3'이 이제는 '천마-216'에도 장착된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차부대가 레이저거리측정기로 조준하여 '불새-3'을 쏘면 5.5km 밖에 있는 교전상대의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한국군 전차는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하지 못하였다.     © 자주시보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이 관찰한 ‘불새’는 조선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러시아에 3,250발을 수출한 ‘불새-2’다. 조선은 미얀마 고위군사대표단에게 최신형 반땅크로케트인 ‘불새-3’을 보여주지 않았다. ‘불새-2’와 ‘불새-3’은 외형부터 다르다. 사진에 나타난 모습을 비교하면, ‘불새-3’이 ‘불새-2’보다 조금 더 크다. ‘불새-2’의 사거리는 3km이고, ‘불새-3’의 사거리는 5.5km다. <사진 4>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식에 나타난 ‘천마-216’의 포탑 위쪽에 높이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2발은 ‘불새-2’였고, 이번 열병식에 나타난 ‘천마-216’의 레이저거리측정기 바로 위쪽에 낮게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2발은 ‘불새-3’이다. ‘천마-216’은 ‘불새-2’를 ‘불새-3’으로 교체한 모습으로 이번 열병식에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는 최신형 첨단전차 ‘선군-915’에만 장착되었던 ‘불새-3’이 이제는 ‘천마-216’에도 장착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차부대가 레이저거리측정기로 조준하여 ‘불새-3’을 쏘면 5.5km 밖에 있는 교전상대의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중앙일보> 2013년 6월 21일 보도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군 전차는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진다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고, “재래식 무기로 치부됐던 북한 전차가 이젠 기술적으로나 수적으로 (한국군 전차보다) 우위를 차지해 우려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 <사진 5> 조선은 이번 열병식에서 300mm 8관 방사포를 처음 공개하였다. 이 최신형 방사포의 사거리는 230km다. 300mm 방사포탄은 길이가 7m이고, 중량이 1t에 가깝다. 20초 안에 8발을 모두 발사할 수 있고, 재장전시간은 8분이며, 파괴면적은 0.32평방km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전방작전구역에서 이 방사포를 쏘면, 평택과 오산의 미국군기지들은 물론, 한국군 3군지휘부가 있는 충청남도 계룡대도 집중타격할 수 있다.     © 자주시보

 

 

3. 평택기지 30초 만에 날려버릴 300mm 8관 방사포

 

조선의 열병식에서 세계 언론의 시선을 집중시킨 무장장비들 가운데는 이번에 처음 공개된 300mm 8관 방사포도 있다. <문화일보> 2015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300mm 8관 방사포의 사거리는 최장 230km인데, 이 사거리는 “미 정찰위성 등 한미정보자산을 토대로 분석된 추정치”라고 한다. 조선이 실전배치한 300mm 방사포탄은 길이가 7m이고, 중량이 1t에 가깝다. <사진 5>


러시아의 최신형 방사포인 토네이도(Tornado) 300mm  8관 방사포는 20초 안에 8발을 모두 발사할 수 있고, 재장전시간은 8분이며, 파괴면적은 0.32㎢인데, 조선의 최신형 300mm 8관 방사포도 그런 성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의 열병식에 등장한 300mm 8관 방사포는 다른 방사포들과 달리 8개 포구마다 원형 덮개가 한 개씩 씌워졌다. 덮개를 씌운 까닭은, 조선의 최신형 300mm 8관 방사포가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되는 방사포이기 때문이다. <사진 6>

 

▲ <사진 6> 이번에 조선의 열병식에 등장한 300mm 8관 방사포는 다른 방사포들과 달리 8개 포구마다 원형 덮개가 한 개씩 씌워졌다. 이것은 이 최신형 방사포가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되는 방사포라는 것을 말해준다. 위성항법유도식 방사포는 타격정밀도를 결정적으로 높인 최신형 방사포다. 원래 방사포는 강력한 화력을 집중시키는 연속타격에 쓰이는 무기인데, 이제는 타격정밀도까지 높아졌으니 그 위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것이다.     © 자주시보


중국의 최신형 300mm 8관 방사포에도 포구마다 덮개가 씌워졌는데, 이 방사포도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된다. 전세계에서 300mm 8관 방사포를 독자적인 기술로 생산하는 방사포강국은 조선, 중국, 러시아밖에 없는데, 이 세 나라가 생산하는 300mm 8관 방사포들은 모두 위성항법유도식 최첨단 방사포들이다.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된다는 것은 타격정밀도를 결정적으로 높였다는 뜻이다. <사진 7>

 

▲ <사진 7> 2014년 중국 광둥성에서 진행된 주하이 전람회에 출품된 중국의 300mm 8관 방사포에도 포구마다 원형 덮개가 씌워졌다. 이 최신형 방사포도 조선의 최신형 방사포와 마찬가지로 위성항법장치로 유도된다. 전세계에서 300mm 8관 방사포를 독자적인 기술로 생산하는 방사포강국은 조선, 중국, 러시아밖에 없다.     © 자주시보


만일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전방작전구역에서 사거리 230km의 위성항법유도식 방사포를 발사하면, 경기도 남부에 있는 평택미국군기지와 오산미공군기지를 집중타격할 수 있으며, 한국군 3군지휘부가 있는 충청남도 계룡대도 집중타격할 수 있다. 평택미국군기지의 면적은 26.6㎢이고, 300mm 방사포탄 1발이 파괴하는 면적은 0.32㎢이므로, 전시에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300mm 8관 방사포 14대로 집중사격하면 30초 만에 평택미국군기지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다. 미국은 미사일공격을 차단할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을 평택미국군기지에 구축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을 구축한다 해도 방사포탄을 요격하지 못한다.


또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전방작전구역에서 사거리 230km의 위성항법유도식 방사포를 발사하면, 대구공군기지와 광주공군기지를 제외한 한국의 모든 공군기지를 집중타격할 수 있다. <뉴스1> 2014년 3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300mm 8관 방사포로 한국군 공군기지 활주로를 집중타격하면 활주로를 복구하는데 최소 2일이 걸리므로, 그 동안 한국 공군은 꼼짝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투기들이 2일 동안 출격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탄도미사일 1발 가격은 20억원인데 방사포탄 1발 가격은 1,500만~2,000만원밖에 되지 않으므로, 조선인민군으로서는 300mm 방사포를 집중사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4. 조선은 왜 고폭실험을 하지 않는가?   

 

2015년 9월 10일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이 흥미로운 사실에 대해 언급하였다. <연합뉴스> 2015년 9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이 날 국방부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은 올해 조선에서 고폭실험이 한 차례도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동아> 2009년 7월호 기사에 인용된 한국 정보당국의 정보평가에 따르면, 조선은 1980년 초부터 2009년까지 고폭실험을 140차례 이상 실시하였다. 조선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기간에도 고폭실험을 계속 실시하였을 것이므로, 지난 30여 년 동안 고폭실험을 200여 차례나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고폭실험은 핵탄개발을 위한 옥외폭발실험이다.  
그런데 조선은 지난 30여 년 동안 200여 차례 지속적으로 실시해온 고폭실험을 2015년에는 실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위에 인용한 <신동아> 기사에 실린 한국 정보당국의 정보평가에 따르면, 핵탄기폭장치를 개발하기 위한 고폭실험이라면 30~40차례만 실시해도 충분한데, 조선에서 1995년부터 2009년까지 기간에 실시된 100여 차례의 고폭실험은 핵탄기폭장치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이 아니라 핵탄소형화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조선의 고폭실험장들에 생겨난 움푹 파인 폭파구를 촬영한 위성사진들에는 크기가 작은 분화구가 많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고폭장약을 적게 장입한 소형핵탄을 개발하기 위한 고폭실험 흔적들이고, 조선은 그런 핵탄소형화고폭실험을 1995년부터 계속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조선은 지난 30여 년 동안 고폭실험을 200여 차례 실시하였다. 고폭실험은 핵탄개발을 위한 옥외폭발실험이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거대한 폭파구는 1962년 미국이 네바다사막 핵실험장에서 104킬로톤급 핵탄을 폭발시킨 실험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조선의 고폭실험장을 촬영한 위성사진들에는 크기가 작은 폭파구가 많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핵탄소형화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고폭실험이 계속 실시되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그러나 파키스탄의 핵탄개발 총책임자였던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한국 정보당국의 위와 같은 정보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칸 박사는 자신이 1999년에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평양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어느 지하시설에서 핵탄 3발을 관찰하였는데, 그 핵탄들은 직경이 약 60cm인 소형핵탄들이었다는 것이다.

 

▲ <사진 9> 파키스탄의 핵탄개발 총책임자였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회고담에서 자신이 1999년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어느 지하시설에서 핵탄 3발을 관찰하였는데, 그 핵탄들은 직경이 약 60cm인 소형핵탄들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만든 전략핵탄 W52는 직경 60.96cm, 길이 144.28cm, 무게 430.91kg, 폭발력 200킬로톤의 소형핵탄이다. 미국은 그 핵탄을 위의 사진에 보이는 MGM-29 써전트(Sergeant) 단거리탄도미사일에 장착하였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35km다. 칸 박사가 1999년에 조선에서 소형핵탄 3발을 관찰한 것은, 조선이 이미 그 당시 핵탄소형화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1990년대 중반에 핵탄소형화기술을 완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핵탄소형화기술을 완성한 조선은 그 이후에도 고폭실험을 계속하면서 그 기술보다 한층 더 높은 고난도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약 15년 동안 노력하였다.     © 자주시보


직경이 약 60cm인 소형핵탄은 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이다. 미사일에 탑재하는, 직경이 약 60cm인 소형핵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미국이 만든 전략핵탄 W52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소형핵탄은 직경 60.96cm, 길이 144.28cm, 무게 430.91kg이며, 폭발력은 200킬로톤이다. <사진 9>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런 소형전략핵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향해 1발만 발사해도, 거대한 군사기지 20개소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조선이 그처럼 초강력한 소형전략핵탄 실물을 16년 전에 외국인 핵전문가에게 공개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200킬로톤급 전략핵탄은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서 실전에서 사용하기는 어렵고, 전시에 적국의 보복핵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핵억제수단으로 사용된다. 실전에서는 5킬로톤급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 전술핵탄이 사용될 수 있는데, 조선은 그런 전술핵탄들을 많이 만들어 실전배치하였다. 


위에 인용한 칸 박사의 회고담에서 주목하는 것은, 외국인 핵전문가에게 소형핵탄 3발을 보여준 1999년 당시에 조선은 이미 핵탄소형화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이미 1980년대 실시한 40여 차례의 고폭실험으로 핵탄기폭기술을 완성한 조선이 1990년대 전반기에 실시한 40여 차례의 고폭실험으로 핵탄소형화기술도 완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1990년대 중반에 핵탄소형화기술을 완성한 조선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14년에 이르는 기간에 무슨 목적으로 140여 차례의 고폭실험을 계속 실시해온 것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핵탄소형화기술을 완성한 이후에 그보다 한층 더 높은 고난도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약 15년 동안 140여 차례의 고폭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의 국감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약 15년에 걸친 노력 끝에 마침내 그 고난도기술을 완성한 조선은 2015년에 고폭실험을 실시하지 않는 것이다. 
조선이 약 1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한 고난도기술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놀라운 장면은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펼쳐졌다. 조선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4발이 8축16륜 자행발사대 4대에 각각 실려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사진 10>
 

▲ <사진 10> 조선이 약 1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한 고난도기술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놀라운 장면이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펼쳐졌다. 조선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4발이 8축16륜 자행발사대 4대에 각각 실려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4호다.     © 자주시보

 


5. 열병식에 나타난 화성-14호는 핵무력 종결자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4호다. 조선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열병식에서, 그리고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식에서 화성-13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각각 6발씩 공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화성-14호 대륙간탄도미사일 4발을 공개하였다. 한국 언론매체들은 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화성-13호의 개량형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그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3호의 개량형이 아니라 화성-13호와는 차원이 다른 최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핵탄공학에 관련된 기술정보를 아는 전문가들은 조선의 열병식에 나타난 화성-14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이제껏 두 나라만이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핵무력 종결자’가 조선의 열병식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열병식에서 촬영된 화성-14호 영상자료를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화성-14호의 길이는 17m다. 그 길이는 자행발사대의 길이를 알아보고 산정한 것이다. 화성-14호를 실은 8축16륜 자행발사대의 길이는 20.11m인데, 첫째 바퀴의 중심점에서 후미 끝부분까지 길이는 15.8m이고, 각 바퀴의 반지름은 0.8m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화성-14호의 탄두부 꼭지점이 첫째 바퀴를 약 40cm 벗어난 곳에 위치하므로, 화성-14호의 길이를 17m로 산정할 수 있다. <사진 11>

 

 
▲ <사진 11> 위의 두 사진 가운데 윗쪽 사진은 화성-14호를 실은 8축16륜 자행발사대의 길이를 표시한 것이다. 첫째 바퀴의 중심점에서 후미 끝부분까지 길이는 15.8m이고, 각 바퀴의 반지름은 0.8m다. 그런데 아랫쪽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화성-14호의 탄두부 꼭지점이 첫째 바퀴를 약 40cm벗어난 곳에 위치하므로, 화성-14호의 길이를 17m로 산정할 수 있다.     © 자주시보


길이가 20.7m인 화성-13호에 비해 3.7m가 짧아진 화성-14호의 사거리도 짧아졌는데, 화성-13호의 사거리가 12,000km이므로, 화성-14호의 사거리는 11,000km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 워싱턴 D.C.까지 거리는 10,500km이므로,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수도를 타격할 능력을 가져야 하는 조선으로서는 사거리가 11,000km 이하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만들 필요가 없다. 


둘째, 화성-13호 탄두부는 뾰족하게 생겼는데, 화성-14호 탄두부는 뭉툭하게 생겼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화성-14호의 뭉툭한 탄두부에는 핵탄 여러 발이 장입된다. <뉴시스> 2015년 10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몇몇 인터넷 언론매체들은 그들이 “개량형 KN-08”이라는 미국식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 화성-14호가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열병식을 생중계한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은 화성-14호라는 명칭을 언급하지 않은 채,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들을 탑재한 위력한 전략로켓”이라고 해설하였다. 다종화라는 개념은 화성-14호가 화성-13호와는 다른 유형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뜻이다. <사진 12>

 

▲ <사진 12> 화성-13호 탄두부는 뾰족하게 생겼는데, 화성-14호 탄두부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뭉툭하게 생겼다. 이것은 화성-14호의 뭉툭한 탄두부에 핵탄 여러 발이 장입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화성-14호에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들이 탑재되었다고 언급하였고, 중국의 인터넷 언론매체들은 화성-14호가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놀랍게도, 화성-14호 탄두부에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 여러 발이 장입되는 것이다.     © 자주시보



화성-13호와 화성-14호는 어떻게 다른가? 화성-13호의 핵탄은 다발식 재진입체이고, 화성-14호의 핵탄은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다. 
다발식 핵탄(다탄두 핵탄)은 소형핵탄 여러 발을 탄두부에 장입한 것을 말하는데, 미사일이 일정한 궤도에 도달하였을 때 탄두부에서 분리, 사출된 여러 발의 소형핵탄들이 타격대상을 향해 극초음속으로 내리꽂히면서 광범위한 구역을 초토화하는 것이다.


그와 달리,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은 미사일이 일정한 궤도에 도달하였을 때, 탄두부에서 분리, 사출된 여러 발의 소형핵탄들이 위성항법으로 유도되는 극초음속 하강비행을 하면서 제각기 지정된 타격목표들을 향해 각개돌진하여 동시다발로 타격하는 것이다. <사진 13>

 

 
▲ <사진 13> 위의 두 사진 가운데 윗쪽 사진은 미국이 만든 다발각개조준식 핵탄 8발이 장입된 탄두부를 촬영한 것이고, 아랫쪽 사진은 소형핵탄 8발이 장입된 탄두부에 덮개를 씌운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화성-14호 탄두부의 모양과 흡사하다.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은 미사일이 일정한 궤도에 도달하였을 때, 탄두부에서 분리, 사출된 여러 발의 소형핵탄들이 위성항법으로 유도되는 극초음속 하강비행을 하면서 제각기 지정된 타격목표들을 향해 각개돌진하여 동시다발로 타격하는 것이다. 그런 최첨단 핵탄을 장착한 화성-14호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핵무력 종결자다.     © 자주시보


지난 반세기에 걸쳐 미국, 러시아, 중국의 핵탄공학기술은 단발식 재진입체(Reentry Vehicle, RV)→다발식 재진입체(Multiple Reentry Vehicle, MRV)→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MITRV)로 발전되어왔는데,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만들면 핵탄공학기술의 최고봉을 정복한 것이므로 더 이상 정복할 대상이 없게 된다. 


나는 2015년 6월 8일 <자주시보>에 실린 ‘미태평양사령관은 요즈음 밤잠을 설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발식 재진입체 개발을 2002년에 완료한 조선이 다발각개조준식 재진입체를 2013년경에 개발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그 때만해도 화성-14호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화성-14호가 실물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보유한 5대 핵강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으로 알려졌는데, 그 가운데서 미국, 프랑스, 영국은 전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만 보유하였고, 러시아와 중국은 8축16륜 자행발사대에서 발사하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과 전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모두 보유하였다. 
러시아의 최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각개조준식 핵탄 10발을 장입한 RS-24 야르스(Yars)다.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11,000km이며,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한다. 러시아는 2007년 5월 29일 RS-24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하였고, 2011년 8월부터 실전배치하였다. 
중국의 최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둥펑(東風)-31A다.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11,200km이며,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한다. 중국은 2015년 9월 3일에 진행된 전승절 열병식에서 둥펑-31A를 처음 공개하였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둥펑-31A에 각개조준식 핵탄 3~5발이 장입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조선은 중국보다 한 발 앞선 핵탄공학기술로 화성-14호를 만들었으므로 그 탄두부에 각개조준식 핵탄 5~6발이 장입된 것으로 보인다. 핵탄공학기술에서 조선이 중국보다 한 발 앞섰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자세히 논증해야 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조선은 2015년 5월 9일 전략잠수함에서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장착하는 최첨단 수중발사전략미사일 북극성-1호를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고,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장착하는 최첨단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를 세상에 공개하였다. 그로써 조선은 러시아, 중국과 함께 자행발사대에서 발사하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과 전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모두 보유한 세계 3대 핵강국으로 되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연설하면서 “우리 당은 오늘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 수 있으며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당당히 선언할 수 있습니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조선을 세계 3대 핵강국으로 끌어올린 강력한 핵무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조선이 이번에 진행한 열병식을 영상을 통해 주의 깊게 지켜본 미국은 열병식에 대해 논평 한 마디 내놓지 못했다. 워싱턴 D.C.에 주재하는 한국 특파원이 논평을 요청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3년 전 조선의 열병식에서 화성-13호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그것이 종이로 만든 가짜 미사일이라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미국의 군사전문가들도 이번에 화성-14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미국은 자기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력 종결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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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위대 입국은 허용, 독재자 비판 작가는 불허

 
 
세계 문학가들이 대한민국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임병도 | 2015-10-24 10:45: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89세 고령의 김석범 작가는 한국에서 열릴 국제적 학술 포럼인 ‘재일 디아스포라문학과 글로벌리즘’ 행사를 위해 주일 대사관에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습니다.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김석범 작가 부모님의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어린 시절 제주에서 자란 김 작가의 국적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입니다. 한국 국적이 없어 한국에 올 때마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던 김 작가는 1988년 노태우 정권 이후 13차례나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김석범 작가는 제주4.3사건을 문학적인 소재로 한 장편소설 ‘화산도’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사히 신문의 ‘오사라기 지로상’과 ‘마이니치 문예상’을 받은 인정받는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김 작가는 ‘간수 박 서방’(1957), ‘까마귀의 죽음’(1957), ‘관덕정’(1961), ‘만덕유령기담’(1970), ‘만월’(2001) 등 제주 4.3사건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아 인간의 갈등과 삶을 표현했습니다. 장편소설 ‘화산도’는 주인공 이방근의 눈을 통해 독립운동과 친일파, 좌익과 우익 등 여러 가지 삶을 보여주면서,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자주 다니지 못하는 고향 땅이지만 제주도에 가면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밑, 서귀포 정방폭포 밑 깊은 물 속, 여기저기에 아직도 떠도는 원혼(寃魂)의 환청(幻聽)에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까마귀의 죽음’ 이래 ‘화산도’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4․3을 문학적 테마로 다뤄온 나는 지금, 망각이 기억으로 재생하는 아주 극적인 시대의 흐름을 눈부시게 바라본다.”(동아일보 2003년 4월 12일 자)

 

재일작가 김석범의 한국 입국 거부에 대해 주일 한국대사관은 ‘김씨가 한국에서 한 반국가적 발언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문제를 삼은 반국가적 발언은 제1회 4.3평화상 수상식에서 그가 했던 수상 소감입니다.

 

“과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었겠느냐. 여기서부터 역사의 왜곡, 거짓이 드러났으며 이에 맞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투쟁이 일었고 그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4ㆍ3사건이다.” (제1회 4.3평화상 수장자 김석범 작가의 수상소감 중에서)

 

당시 4.3평화상 수상식 이후 모 국회의원이 문제를 제기했고, 보수단체가 기자회견까지 벌였습니다. 급기야 행정자치부는 행정감사까지 했지만, 별다른 지적사항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입국이 허용됐지만 10월에는 불허된 김석범 작가의 입국 거부는 국정교과서 강행 이후 벌어지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에 대한 정책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교안 총리는 일본 거주민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경우 일본 정부와 협의해 자위대 입국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일본인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자위대의 입국까지 허용하겠다면서, 독재자를 비판한 재일동포 작가의 입국은 거부한 한국 정부의 모습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 문학가들이 대한민국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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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2차 범국민대회

어린 학생들이 정치질?
'국정 반대' 여중생 "선동되지 않았다"

[현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2차 범국민대회

15.10.24 21:06l최종 업데이트 15.10.24 21:06l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범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권우성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범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권우성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범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권우성
중학교 3학년생 김은솔(15)양이 촛불집회 무대에 올랐다. 은솔양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현재 저희들 교과서를 읽어보셨나요? 국정교과서 거부합니다'라고 쓴 스케치북을 치켜들었다. 촛불집회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이후 은솔양의 발언에 더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은솔양은 "정부는 저희가 직접 배운 교과서가 좌편향됐다고 주장하는데, (스케치북 문구는) 저희 교과서를 보고,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을 같이 읽고 내린 제 판단이다. 저는 선동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은솔양은 일주일 전에도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때도 같은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저희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라고 썼다. 은솔양이 스케치북을 든 모습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부천여고 2학년생 김혜인(17)양도 큰 박수를 받았다. 교내 역사 국정교과서 찬반투표 결과를 담은 팻말을 소개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혜인양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어린 학생이 역사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정치질을 하느냐'고 했다. 어른들에게 부탁한다. 우리의 권리를 막지 말아 주세요"라고 외쳤다.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범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권우성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범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권우성
촛불문화제를 마친 학생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권우성
'아버지 탄생 100주년에 훌륭한 역사책을 가지고 만나자꾸나'

24일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 인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시민 4000여 명(주최 추산, 경찰 추산은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2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많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교사 출신인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초·중·고딩만 있다면 우리는 무서울 게 없다. 우리에게 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에 다니면서 전국 대학생 대자보 붙이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성치화(24)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현재 전국 60개 대학에 100개가 넘는 대자보가 붙었다. 성씨는 "각 대학에서 대자보가 떼어지는 상황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경찰이 국정교과서 반대 행사를 주최하는 학생들에게 배후를 캐기도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왜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막으려 하나. 막는다고 해서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 목소리가 커질 수 있도록 대학생이 앞장서서 선두에 서서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직접 만든 대자보를 가져왔다. 한 학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가상 편지 형식으로 국정교과서를 비판했다. 대자보에는 '근혜야. 이틀 남은 아버지 기일을 위해 멋진 선물을 준비하고 있구나. 아버지 탄생 100주년에 훌륭한 역사책을 가지고 만나자꾸나'라는 내용이 담겼다. 오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6년이 되는 날이다.

사회를 맡았던 진영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 정책국장은 "나치 교육강령에는 '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국정교과서 문제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싸움이다. 파시즘이냐, 민주주의냐의 기로에 섰다. 함께 싸우자"라고 강조했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촛불집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이후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행진에 나섰다. 

한편,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 수백 명은 동아일보사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한국사는 전교조와 전보좌파 사학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국정교과서 도입을 주장했다. 다행히 이들과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시민 사이에 충돌은 없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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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을 바라보는 진보의 시선

‘역사전쟁’을 바라보는 진보의 시선
 
우리사회연구소  | 등록:2015-10-22 11:18:16 | 최종:2015-10-22 11:25:5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보수 세력의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8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굵직한 사회적 의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에 몇 차례의 이념전쟁이 벌어졌다. 복지, 인권, 노동, 통일 등을 둘러싼 ‘프레임 전쟁’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보수 세력에게 번번이 선수를 빼앗겼다. 보수 세력의 주장이 옳아서라거나, 논리적인 타당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보수 세력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사람들에게 보수의 색안경을 씌워 사회를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베스트 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유명한 정치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커뮤니케이션학의 개념인 ‘프레이밍 이론’을 통해 현실 정치에서 보수 세력이 어떻게 진보 세력을 압도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보수 세력은 치밀한 프레임을 고안해 대중들이 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수적인 시각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의제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그동안 각 의제별로  ‘보편적 복지는 공산주의다’, ‘노동귀족 때문에 경제가 어렵’', ‘흡수통일이 대박이다’ 등의 구호를 선점해 효과적으로 홍보해왔다. 이런 구호들은 보수가 장악한 매스 미디어와 ‘종북 프레임’에 의해 뒷받침되며 진보 세력의 대응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종북 프레임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모든 의제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기능을 했다. 진보 세력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종북’ 딱지가 붙으면, 대중들은 물론 진보 지식인들까지 그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은 진보가 표방해야 할 큰 틀의 사고체계, 가치체계에 머무른 나머지 보수 세력이 쏟아내는 파상적인 공세 앞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87년 이후 이데올로기 분야에서 이뤄낸 한국사회의 여러 민주적 성과물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벌어진 보수 세력의 공격에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역사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이런 ‘프레임 전쟁’에서 그나마 진보가 보수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던 분야가 바로 역사 담론이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는 일제 식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해방 후 미소군정의 한반도 분할통치는 분단을 고착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38선 남쪽을 점령한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 정책 등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등장한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은 한국 사회에 권위주의와 재벌 독점이라는 기형적 정치/경제 구조를 뿌리내리게 했다. 그러나 항일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은 이런 모순을 극복해가는 주요한 원동력이었다’는 진보의 운동사 중심 사관은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기도 하려니와 민주화 과정과 맞물려 보급되면서 학계와 대중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역사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여당은 그간에도 진보 세력의 마지막 남은 보루인 역사 분야를 보수적 시각으로 재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이명박 정부 때 등장한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의 경제 발전을 실증했다며 항일운동 중심의 근현대사 서술을 비판했고,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시장경제적 성과에 주목하여 반독재 민주화 운동 대신 ‘대한민국 건국사’를 역사 서술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뉴라이트 사관은 당시에도 학계와 시민사회의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은 보수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과 정권 차원의 비호를 받으며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역사관을 공론화시켜 왔다.

학계에서는 소수에 불과한 이들 뉴라이트는 학계 내에서의 논쟁 대신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편승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왔다. 이들이 역사전쟁의 주요한 전장으로 삼은 곳은 대학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실이었다. 뉴라이트는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며 정부의 검정 교과서에 빨간색 낙인을 찍어 버렸으며, ‘좌편향’교과서 필진과 역사교사 그리고 전교조에 대한 색깔론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쿠데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사회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가 강화되고 ‘종북좌파’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심화되자 역사전쟁은 한층 적극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때 한 번 실패한 바 있는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제작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교학사 교과서’로 부활했다. 물론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함량 미달의 편집 내용과 논란이 되는 역사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검정에 통과해 일선 학교에 배포되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정식 교육과정에 편입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계와 일선 역사교사 그리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와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찬 저들의 선택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라는 역사쿠데타로 귀결되었다.

이상과 같이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단순히 교과서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기획 속에서 다듬어져 온 역사전쟁의 일환이다. 복지, 노동, 통일 의제에서 경제민주화, 노동개혁, 통일대박 등의 선전구호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 역사전쟁 과정에서도 보수의 프레임 만들기는 매우 치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보수 세력은 수년째 한국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며 진보 세력을 옥죄고 있는 종북 프레임을 이번 역사전쟁의 주력전선으로 설정하고 모든 선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역사전쟁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을 친일파 후손들이 선대의 잘못을 덮기 위한 공작이라거나 ‘제사’라고 보면서 권력집단의 개별적 행위로 치부하는 태도나, ‘국정화’에만 주목하여 이번 시도가 교과서 시장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만 비판하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전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전쟁의 본질을 비켜가는 분석이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든지, ‘한국의 산업화 역사를 패배주의 역사로 가르치고 있다’든지 ‘특정 정파의 역사관을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저들의 주장에 대해 ‘주체사상은 박근혜 정부 들어 가르친 것이다, 원래는 안 가르쳤다’ 거나 ‘패배주의가 아니다, 산업화 역사도 위대하다고 가르쳤다’거나 ‘편향적이 아니다, 획일화가 더 문제다’라고 사안별로 변론하는 것은 보수 세력이 짜 놓은 전략 속에서 싸우는 꼴이며 또다시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다.

그렇다면 진보 세력이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할까. 우선 보수 세력이 역사전쟁을 추진하는 본질적인 의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보수 세력이 역사전쟁을 벌인 의도는 단지 교과서 국정화에만, 친일파와 독재자를 미화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종북 프레임에 편승한 보수세력이 펼치는 역사전쟁은 복지, 노동, 통일 의제를 선점해 한국사회를 보수화하려는 치밀한 각본 속에서 추진되는 전략적인 공세다. 각 의제에 대한 보수 세력의 논리를 종합해보면 저들이 만들고 싶은 세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의 역사전쟁이 전략적인 공세라면 진보의 대응도 사안별 반박 논리를 넘어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는 효과적인 구호

‘교과서 국정화 =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만들기’라는 구호에 사람들이 큰 호응을 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의 진보 세력과 역사학계가 이룩한 이데올로기적 성과임을 부정해선 안 된다. 국정화 대응 논리를 ‘역사 교육의 다양성’이나 ‘교과서 시장의 공정한 경쟁’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전략적인 사고가 아니다. ‘친일, 독재 미화도 문제지만 종북도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은 더욱 경계해야 하는 태도다. 야권은 절대로 역사전쟁을 종북 프레임 속에서 치르고 싶어 하는 보수의 미끼를 물어서는 안 된다.

한편 진보개혁 세력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정화 저지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많은 교수학술단체와 진보 세력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에 참가하고 있으며, 캠퍼스 내에서도 역사학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대자보 행동과 다양한 방식의 시위 및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활동 덕분에 국정화 저지 운동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점점 많은 세력이 결집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광장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대학생들의 이순신 동상 시위를 시작으로 10월 17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범국민대회에는 천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역사전쟁에서만큼은 결코 밀려서는 안 된다는 진보 세력의 절박함도 매우 크다. 

10월 17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진보 세력의) 사슬이 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깰 수 없는 현실에서 국정을 채택하게 됐다”면서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번 정국을 평하면서 “좌는 분열하고 있지만 우는 단결하고 있다”고 보고 “이대로 단결하면 다음 총선에서 180석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이번 역사 전쟁이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정치판을 이념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역사전쟁은 박근혜 정권의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전쟁은 박근혜 정권의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학계와 대학 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며, 교육의 당사자인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또한 이번 역사전쟁을 제대로 이겨내고 향후 정치 지형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진보세력의 의지도 점차 결집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과서 국정화 정국은 여야의 정쟁으로 장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수 세력을 장외로 끌고 나와 ‘친일,독재 대 항일,반독재’의 프레임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이 논쟁의 구도를 ‘친일=독재=이승만,박정희 지지자=어버이연합’에 맞서 ‘항일, 반독재를 외치는 청소년, 대학생’들의 싸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강력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사회를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지만, 마지막에 ‘인두세’를 도입하겠다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국정화’가 박근혜 정부의 ‘인두세’가 되어 수세에 몰린 진보 세력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사회연구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80&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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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 직원의 하소연 "우리가 불구덩이에…"

 
"교과서 책임편찬, 국편 위상 높이기보단 조직 망가뜨릴 수도"
서어리 기자 2015.10.22 10:03:27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각계에서 반대 운동, 집필 거부 선언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정 교과서 책임 편찬기관으로 지정된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이 접촉한 국편 직원들에 따르면, 국편 내부에서도 국정화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잖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편은 최근 정부 국정화 발표 직후 편사부 산하 '교과서 전담(TF)'팀을 개편하고 담당 직원을 기존 6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TF팀 소속 직원들은 향후 국정 교과서 집필들을 관리하고 관련 자료 수집 등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이같은 조직 개편에 대해 또 다른 직원 B 씨는 "편사연구관들은 달가워하지 않고, 관련 업무를 맡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TF팀에 발령받은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직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내부 편사연구관들이 직접 교과서 집필 작업을 맡게 되는 것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이 대거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에 참여하면서 국편 내부에서는 집필진 구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국편 직원들은 만일 집필진 공백이 생길 경우 내부 인원으로 충당하지 않을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편 편사연구관은 역사 관련 학과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이들로, 교과서 집필 자격 조건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B 씨는 "1년 6개월도 안 걸려 교과서를 만든다는데, 이미 원고를 써놓지 않고서야 졸속이 되지 않겠느냐"며 "TF원이 아니라도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직접 원고를 쓰고 고쳐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집필진 구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김정배 위원장은 진보와 보수, 노장청을 아우르는 '균형 있는 집필진'을 자신했지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 B 씨는 "국내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확신하는 분들이 과연 역사 전공자에게 집필 의뢰를 하겠느냐"고 했다.

이처럼 국정화 작업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에 대해 국편 직원들도 인지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상 나서서 문제제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A 씨는 "국정 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많은 만큼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여러모로 여건이 받쳐주지 않은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연합뉴스


"국편, 1년 전부터 국정화 모드… 불구덩이 뛰어들었다"

이들은 국정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편은 적어도 1년 전부터 국정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는 것.

일례로, 지난해 12월 정부는 편사연구관만 임용하도록 했던 국편 실무진 자리에 일반행정직도 갈 수 있도록 자격 조건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려다 중단한 바 있다. 당시 국편 내부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계획이 국정화를 위한 밑 작업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프레시안> 보도 직후 정부는 이같은 계획을 접었다. (☞관련기사 : [단독] 행정직이 국사편찬?…'국정화' 수순 논란)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뉴라이트 교과서'로 알려진 교학사 교과서 옹호에 적극 나선 전력이 있는 김정배 신임 위원장이 지난 3월 취임하면서 국정화에 대한 내부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국편 직원들은 그러나 김 위원장이 취임 초기에는 국정 교과서에 대해 지금과 같은 강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12일 발표 직전까지 편수 강화 방향이 많이 거론됐으나, 언제부턴가 위원장이 언론 등에서 '강력한 국정론자'로 비쳐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아마도 청와대 뜻이 워낙 강고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추측했다.

B 씨는 "(국편이 국정 교과서에 적극 나설 경우) 이로써 조직이나 예산 지원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고, 김 위원장은 교과서 편찬을 국편 기능으로 가져오는 것이 국편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경고했다.

A 씨는 "교과서 문제가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2010년 교육과정평가원이 맡고 있던 교과서 검정 업무가 이관될 때 '왜 불구덩이에 뛰어드냐'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질 줄 몰랐다"며 "국편은 학계와 전문가들을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하는 기관인데, 학계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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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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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이 전투식량에 입맛을 맞춰야 하는 한국군의 현실

문형철 2015. 10. 23
조회수 29 추천수 0
 

  가을은 그 어느때 보다 먹거리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수확의 기쁨은 잠시일뿐, 군대는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한다. 특히 비상사태를 대비해 전투원의 전투력 보존을 위한 식량과 식재료를 어떻게 가공하고 보존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한 식사와 영양공급 없이 군인들이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스코티? 비스켓? 전투식량의 유래
 
 정확한 전투식량의 유래를 말하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건빵과 같이 현대에 까지 내려오는 가공식 전투식량을 이야기한다면, 고대로마의 비스코티가 유명하다. 비스코티는 오늘날의 건빵과 달리 비스켓의 형태에 가까은 바삭한 빵의 한 종류이다.
 비스코티는 빵처럼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드는데, 일반적인 빵과 달리 두 번 구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라틴어로 비스(bis)가 두 번 이란 의미고 켓 또는 콕(coctus)은 굽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비스켓의 어원이 비스코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비스코티는 물과 밀가루, 소금이 주 원료로 맛은 오늘날의 비스켓처럼 좋지 않았다. 딱딱한 특성으로 인해 물에 불려먹거나, 오트밀같은 죽처럼 끓여먹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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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코티: 오늘날의 비스코티는 비스켓 처럼 견과류와 설탕을 첨가해 커피와 잘 어울리는 형태로 발전했다
 

 로마제국의 영역이 넓어지자 갈리아지역에 살고있던 골족과 게르만 용병이 로마군으로 유입되었다. 곡물과 치즈, 생선을 주식으로 하던 로마인과 달리 유입된 이민족 군인들의 주식은 육류가 많았으며, 이 육류를 보존하기 위한 염장식품이 로마군의 주된 전투식량이 되기도 했다.
 동양의 경우는 서양과 달리 쌀과 콩과 같은 곡물이 주식이었기 때문에 쌀을 주원료로 한 보존식이 전투식량으로 사용되었다. 찐쌀을 말려서 데운물에 풀어서 먹거나 쌀과 콩을 등을 빻아 미숫가루 형태로 휴대하기도 했다. 맛을 내기 위해 베와 같은 섬유에 간장을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한 천을 물에 풀어 맛을 내기도 했다. 몽고가 중국과 유럽을 휩쓴 중세에는 육포와 같이 말린 육류가 전투식량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식초와 소금에 절인 밥이 급조된 식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사들의 문제는 균형잡힌 영양의 제공이 어려워 괴혈병과 같은 질병을 불러오기도 했다. 물론 맛 또한 엉망이었다. 과학기술과 함께 근대화된 군 장비와 함께 전투식량도 발전하게 된다.

 

 병조림에서 3분요리까지

 

 1804년 나폴레옹은 맛과 영양을 제공하면서도 식품을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12,000프랑의 상금을 걸고 기술공모를 했다. 당시 제과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는 유리병에 조리한 음식물을 담아 코르크 마개로 덮고, 파르핀으로 밀폐시켜 비교적 장기간 음식물을 보관 할 수 있는 병조림으로 공모에 당선되었다. 보관기관이 길었던 병조림 효과는 컸다. 프랑스군이 뛰어난 기동성과 원활한 보급을 통해 각 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는 한 요인이 되었다.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였던 영국은 병조림 보다 뛰어난 전투식량을 개발한다. 피터 듀런트(Peter Durand)는 주석을 이용해 깡통을 만들어 통조림의 발명 특허를 낸다. 통조림은 병조림보다 장기간 음식물 보관이 가능했고, 파손되기 쉬운 병과 달리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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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식 건빵의 원조인 건면포와 구일본군의 주먹밥 

 

  이후 통조림은 병조림을 대체해 각국의 전투식량이 되었고 전선을 넘어 가정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비스코티의 발전형태인 건빵 또한 비슷한 시기에 전투식량에 포함되게 된다. 건빵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고, 수분이 매우 적어 보존성이 좋아 선원들과 각국 해군에서 애용되었고. 1801년 미국으로 건너간 건빵은 남북전쟁 당시 규격화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고, 북군에 배급되면서 전투식량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오늘날 우리군이 사용하는 건빵은 유럽과 미국의 건빵과 달리 말린 빵의 형태로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사용하던 말린 떡에서 유래된 것이다. 초창기 일본군의 건빵은 쌀과 밀의 가루를 반죽으로 빚어 말린 것이었으나 파손되기 쉬워 이동 중에 가루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물을 부어 죽처럼 먹어야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빵에 구멍을 뚫어 말린 형태로 만들게 되었고 건빵과 함께 별사탕을 보급하기도 했다. 
  별사탕은 원래 1569년에 포르투갈인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ís Fróis)가 선교 허가를 위해 오다 노부나가에게 이를 선물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고 포루투갈어로 사탕을 의미하는 confeito가 일본식 한자(金平糖:コンペイト) 콘베에토로 변환되었다. 

  통조림과 건빵이 전투식량으로 보급되면서 전투식량은 세트로 패키지화 되게 된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통조림과 사탕, 쵸콜렛, 비스켓, 인스턴트 커피와, 캔따개와 성냥 등이 포함되는 레이션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통합전투식량은 군인 이외에도 식량과 물자가 부족하던 민간인들에게 구호물품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군의 C 레이션은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 개발에 표준 모델로 자리잡게 되고, 이후 미군 전투식량은 명칭이나 메뉴 구성품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C 레이션의 기본 구성 자체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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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도에 개발하여 1980년까지 보급했던 미군 전투식량 MCI(Meal Combat, Individual) 2차 세계대전때의 C-Ration(Combat Ration)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12가지의 메뉴로 돼 있었다

 

  통조림 전투식량은 무게가 무거워 병사 개인이 전체를 휴대하기 힘들었다. 특히 통조림은 제작 단가도 비쌌다. 이러한 문제점을 최초로 해결한 것은 스웨덴 군이었다. 레토르트라고 불리는 주머니 형태의 용기를 끓는물에 넣어 데워먹는 방식은 전투식량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통조림의 등장으로 스팸이라는 인스턴트 햄이 나왔듯, 레토르트 전투식량은 오늘날 ‘3분요리’라고 부르는 레토르트 식품을 민간에 상용화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게되었다. 일본의 오오츠카 식품(大塚食品)은 1968년 본카레를 출시하면서 세계최초로 민간에 판매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와 함께 미군은 1960년대부터 통조림을 대체하면서 음식을 장기간 보관 할 수 있는 신형 용기 개발에 나선다. 1981년 미군은 레토르트 식품을 응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투식량 MRE(Meal, Ready to Eat)를 개발했고, 1992년에는 물만 부으면 발열이 되는 발열 팩이 추가되면서, 불 없이도 따뜻하게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전투식량은 맛이 없어야 하는가?


 미군의 이 전투식량(MRE)은 다양한 메뉴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첫 등장 당시에 12가지 메뉴였지만, 그 종류는 갈수록 늘어 2000년대 들어서는 24종류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채식주의자용 메뉴나 회교도용 메뉴 등 병사 개개인의 개성을 고려한 메뉴까지 선보이고 있다. 전투식량은 전투를 하기 위해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단순히 영양만을 제공하는 식사는 전투에 지친 전투원의 사기를 올리기에는 부족하다. 미군의 MRE는 종교와 식성을 고려한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요리사와 미군들의 평은 그리 좋지 못하다.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의 지역 일간지인 <솔트레이크 트리뷴(The Salt Lake Tribune)>의 조사에 따르면 요리사 3명에게 미군 MRE 18종을 10점 만점으로 평가를 하도록 했는데 5.7점을 받은 것이 최고점이었고 최하점은 1.3점이었다고 한다. 군대 짠밥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국민성의 영향인지, 삶은 감자 정도의 당도를 유지하면서도 고칼로리를 지닌 맛 없는 쵸콜렛을 전투식량으로 채택했었다. 하지만 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한 이탈리아군은 자국의 식문화 탓인지 2차대전 당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전투식량을 보급했다. 롬멜장군의 부관이었던 슈미트 중위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군이 젤라또(아이스크림)를 즐기는 모습은 충격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는 총탄보다 와인의 보급을 중요시 할 정도로 군인의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두 가지 있다.
  이탈리아군의 주요보급품으로 와인을 이야기하는데, 이탈리아군의 와인에는 이런 경고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한 잔의 와인은 우리를 용감하게 한다. 하지만 취하지는 마라” 또 다른 일화는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힌 영국군 파일럿의 이야기다. 영국군 파일럿이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영국군 파일럿은 자신에게 제공된 식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양질의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다니, 이것이 나의 최후의 만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탈리아군 장교가 급하게 찾아와 그에게 “미안하다. 장교에게는 장교용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실수로 병사의 음식을 제공했다. 우리의 실례를 용서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는  패전국가였지만, 자국의 식문화를 반영한 훌륭한 식사를 통해 장병의 사기를 증진했었다. 현대 이탈리아군 역시 프랑스, 스페인과 함께 최상의 군대식사를 누리는 군대로 유명하다. 이탈리아군의 전투식량 중에는 코르디얼 샷이라는 술이 든 디져트가 포함돼 있다. 전세계 전투식량중 단연 1등의 맛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는 전투식량에 민간에서 인기가 많은 제품들을 활용하고 있다. 스페인 군도 모츠라고 불리는 내장요리와 마드리드풍 먹물조림 등 자국민의 인기요리를 전투식량으로 제공하고 있다. 고된 군생활을 식사를 통해서 풀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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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식량 중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프랑스군 전투식량(RATION DE COMAT)

 

  맛 대신 전투적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미국도 전투식량의 맛을 꾸준히 개선하고있다. 미국의 매사츄세스주에 위치한 나틱(NATIC) 연구소는 1954년부터 군이 사용, 소비하는 아이템의 대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급양감독부는 레이션(전투식량)을 포함한 포장기술, 제조설비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미군의 전투식인 MRE도 매년 이 연구소에서 메뉴를 변경하고 장병들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맛을 개선하고 있다. 최근에는 ‘TTI’라고 불리는 회기적인 기술로 전투식량을 열지 않고도 취식 가능여부를 알수 있는 소형 칩을 부착하고 있다. 나틱연구소는 또 전투식량의 질과 맛 개선을 위해 매년 장병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장병 입맛은 고려하지 않는 업체선정

 

 한국군은 어떤가? 지난 9월10일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국방위)은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국군복지단이 2013년 육군훈련소 장병 증식용(간식) 단팥빵 업체 선정과정에 비리혐의가 드러났음에도,  국군복지단 담당 기무사 정 모 중령과 국군복지단 업체관리과장 곽 모중령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업체선정 과정 당시 육군훈련소는 ‘여름철 내용물(단팥 등)로 인한 변질 우려가 있는 품목 제외’라는 요구조건을 내세웠지만 업체 관리과장 곽 중령은 이를 무시하고 임의변경했고  맛 40, 중량 40, 기타 20으로 수치화된 평가방식을 임의 변경하여 무자격 업체가 단팥빵 납품에 선정되게 했다. 선정업체는 당시 단팥빵을 생산하지도 않았고 자격조건도 없었지만 문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국군복지단 담당 기무사 정 중령이 입찰에 개입했다. 정 중령은 자율적 납품수량 주문방식을 20% 이상 이상 납품이라는 터무니 없는 규정으로 바꿔 장병의 선호도와 관계없이 주문량을 확보하도록 특혜를 주었다.
 그나마 기무사 정 중령은 위계공무집행방해, 방실침입 등으로 고작 벌금100만원의 의견으로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이지만, 곽 중령은 국군복지단의 제 식구 감싸기 식 처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비록 전투식량은 아니지만, 훈련중에 허기를 달래며 고된 훈련의 위안이 되는 장병용 간식이 이렇게 허술하게 선정된다는 것은 군의 사기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이적행위다. 군이 앞장서서 장병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는 외국의 군대와  달리 장병들이 업체에  입맛을 맞추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군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비롯 단팥빵 뿐만이 아니라 PX에 불량식품을 납품하거나 납품기일을 지키지 않음에도 대표자 이름만 바꿔 납품하는 실체가 없는 군출신 통판들의 횡포도 무시 할수 없는 상황이다. 장병의 높은 사기와 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장병의 먹거리부터 확실하게 바뀌어야 한다. 업체선정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미군처럼 장병 선호도 조사와, 민간평가단의 공정한 평가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나틱연구소 처럼 장병들이 소비하는 물자에 대해서는 군이 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문형철 기자 captin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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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는 과격하다'고? 직접 타보니 이랬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23 04:14
  • 수정일
    2015/10/23 04: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그린피스 '레인보우 워리어'호 무지개 전사 3인방

15.10.22 21:51l최종 업데이트 15.10.22 21:51l

 

 

국제적인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지난 19일 오후 8시 부산에서 출발해서 꼬박 3박 4일을 항해한 후 22일 낮 12시경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원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원전 2기 추가건설을 막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이 배에는 현재 나를 포함해서 총 33명이 승선하고 있다. 이 중 다국적 선원이 17명, 이번 캠페인의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관계자와 한국 시민을 합쳐서 16명이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네덜란드 국적의 선박으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이 있는 암스테르담을 출항해서 전 세계 곳곳을 돌며 그린피스 지역사무소와 함께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인다. 선원들의 국적도 정말 다양한데, 전 세계 곳곳의 14개국(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불가리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미국·콜롬비아·호주·터키·인도네시아·대만)에서 모인 17명의 선원이 배의 운항에 필요한 각자의 임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에 있던 레인보우 워리어 호를 무사히 부산으로 인도하라는 특명을 받고, 지난 9월 25일에 한국에서 파견된 사람도 있다. 그는 바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박태현(26) 해양보호 캠페이너다. '딴거하자 투어'(원자력과 석탄 발전 대신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캠페인)를 위해 지금까지 꼬박 한 달간 환경 감시선에 탑승 중이라는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과학자를 꿈꾸던 학생',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박태현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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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박태현 해양보호 캠페이너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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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현 캠페이너는 그린피스에서 일한 지 이제 10개월째에 접어든 젊은 활동가다. 중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독일·스페인·벨기에 등지에서 해양생물 다양성과 보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원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관련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지구의 해양환경에 대해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환경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고, 올해부터 그린피스 캠페이너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

최근까지 원양어선 선원의 인권 문제와 대만 참치 어선 실태조사에 참여했고, 이번에는 레인보우 워리어 호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간의 소통을 담당하고 있다. '딴거하자 투어'의 지향점에 대한 물음에 그는 "위험한 원전이나 시대착오적인 석탄이 아니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수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박태현 캠페이너는 한국의 해양자원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해양보호구역 설정'이라며, "연안자원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지만, 원양어업은 지금도 허점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속 가능한 원양어업 정책과 불법어업 근절 캠페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태현 캠페이너는 한국의 대표적인 참치 기업들이 원양어선 선원 학대로 국제사회에서 큰 문제가 된 사례를 들며, "영국은 모든 참치를 채낚기로 공급하는 100% 지속 가능 어업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한국에서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항해에서 자신도 "환경 파괴의 현장에서 직접 행동을 하며 가는 곳마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선원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세계적인 환경 감시선의 수장, 피터 윌콕스 선장의 얘기도 들어봤다.

북극해 지키려 시위하다 두달 구금, 피터 윌콕스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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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선장 피터 윌콕스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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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윌콕스(Peter Willcox, 62)는 그린피스 환경 감시선의 역사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985년 7월 10일 프랑스의 정보기관이 침몰시킨 첫 번째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선장도 그였으며, 당시 사건이 있기 3개월 전 미국의 피폭 실험(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사능의 1000배 이상에 노출) 대상이었던 300명의 원주민을 이주시킨 마셜 아일랜드 이주작전도 주도했다. 그가 환경보호 활동을 한 지도 이제 42년이나 됐고, 그린피스에서만 1981년부터 지금까지 35년을 일했다.

최근에는 2013년에 북극해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직접행동에 나섰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억류되기도 했다. 피터는 북극을 지키려는 지구촌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비폭력 시위를 벌이다 2달 넘게 감옥에 구금됐고, 전 세계적인 석방운동을 통해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말하면서도 피터 윌콕스 선장은 "감옥에 간 게 이슈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감옥에 가는 건 정말 피하고 싶다"는 농담까지 했다.

미국 뉴욕이 고향인 그는 언제나 항해와 함께하는 가문에서 태어났고, 물 위에서의 삶인 '항해' 자체가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그린피스는 '3개월 근무-3개월 휴식'이 원칙인데, 피터 선장은 쉴 때조차도 (항해가 취미인) 95살의 아버지를 돌보며 요트 경주를 즐길 정도로 천부적인 바다 사나이다. 그는 유머감각도 뛰어나지만, 선장으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도 남다른 인물이다.

피터 윌콕스는 당사자 앞으로 가서 대놓고 얘기하는 그린피스의 '직접행동'이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린피스가 과격하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시선을 이해는 하지만, 비폭력에 기반한 활동이다. 그린피스의 직접행동에는 나름대로 제한과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 선장으로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건 모두의 안전과 승선한 구성원의 협력이다. 또한 즐기면서 일하는 환경이 되면 다른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피터 선장의 배에 타보니,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장녀 역시 환경단체에서 일하고(얼마 전 뎅기열에 걸려 스페인에서 치료 중이라고 한다) 차녀는 해양생물학을 공부했다. 둘 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승선한 적이 있고, 피터 선장은 아이들의 미래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고민하며 그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한다. 이미 40년 넘게 활동한 그는 향후 10년은 더 활동하길 원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모라는 것. 그것이 바다에 나가서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바로 이 피터 윌콕스의 후예가 한국인 중에도 있다. 곧 그린피스의 다른 환경 감시선인 '에스페란자' 호의 항해사로 일하게 될 김연식(33)씨를 인터뷰했다(그는 한국인 최초로 환경 감시선의 정식 선원이 된다).

환경 감시선 최초 한국인 정식 선원, 김연식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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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호의 선원이 될 김연식 항해사
ⓒ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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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에는 총 3대의 환경 감시선이 있는데(레인보우 워리어, 에스페란자, '쇄빙선' 악틱 선라이즈), 이 중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가 에스페란자 호다. 김연식 항해사는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그는 20대 중반에 <인천신문> 기자로 3년간 일했다고 한다. 이때 "해양경찰청에 출입하면서 선원 출신의 해양경찰들을 자주 만났는데, 이들이 뱃사람의 삶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고, 새로운 인생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피터 윌콕스가 천부적인 바다 사나이라면, 김연식씨는 20대 후반에 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우선 그는 부산 영도에 있는 한국 해양수산연수원에 들어가 해기사 양성과정을 마쳤고, 이어서 12개월의 상선 실습에 나섰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김연식씨는 자신의 목표로 이 길을 선택했고,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을 더 부정기 화물선 선원으로 보냈다. 총 36개국 48개 항구를 다니며 '잃어버리는 시간이 없는' 배에서의 24시간에 큰 매력을 느꼈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하게 됐다(그의 항해기록은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2015, 예담)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러던 중 김연식씨는 항해하며 전 세계 시민들과 가까이서 어울렸다. 그러면서 환경 이슈를 피부로 느끼며 활동할 수 있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에 관심을 두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이 배의 항해사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도 합격 통지를 받는 데 성공한다. 이와 동시에 김연식씨는 '1등 항해사'로 진급을 포기했으며,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이 끝까지 망설일 '절반 이하의 연봉'을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잠깐 탑승한 김연식씨는 이 배가 인천에 도착하면 곧바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사무실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환경 감시선 항해사로 정식 계약을 하고, 에스페란자 호 승선을 위해 멕시코 시티로 간다. 앞서 말했듯 그린피스의 '3개월 근무-3개월 휴식' 원칙에 따라, 2016년 2월쯤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환경 감시선의 항해사로서 앞으로도 계속 일하길 원하며, 적어도 자기 삶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잃어버리는 시간이 없이" 살아갈 준비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린피스, 24일 인천항 제1부두서 행사 예정

나는 지난 19일 저녁에 부산에서 인천을 향해 출발하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에 탑승했고, 세월호 침몰현장 부근을 지나서 계속 항해 중이다. 현재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지극히 평온하며, 문제의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나의 마음도 이제 평화를 되찾았다.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는 지구가 파괴되는 날 이를 구하기 위해 '무지개 전사들(Warriors of the Rainbow)'이 나타난다는 북미 원주민의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이 배 선원들의 밝은 얼굴과 건강한 에너지를 통해서 긍정적인 자극과 치유를 느꼈다.

그린피스는 24일(토)과 25일(일)에 인천항 제1부두에서 오픈 보트 행사를 열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직접 승선하여 갑판·조타실·선미 등 배 안의 주요 시설 관람, 환경 티셔츠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공연 등). 행사에 시민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니, 가족·친구들과 함께 무지개 전사들의 힘을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요즘 한국에서 평소에 일상생활을 하며 접하기 쉽지 않은 좋은 에너지를 다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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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Kang 방북기57]모란봉에서 만난 친절한 인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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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전쟁 와중에 ‘비밀 광복군’ 둔갑 박정희

이장우“박정희 비밀광복군” 정운현 “어불성설”
 
역사왜곡의 극치, 역사교과서 전쟁 와중에 ‘비밀 광복군’ 둔갑 박정희
 
임두만 | 2015-10-22 08:43: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 ‘역사전쟁’으로 명명했다. 지난 17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발대식 축사에서 “이제 역사전쟁이 시작됐으며, 우리 학생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이 자리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면서 “그들에 의해 쓰인 중·고교 교과서는 현대사를 부정적 사관으로 기술하고, 패배한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강변하여 국사학자들과 국사 교사들에게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친일’로 압박했다”며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대변인은 “야당이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고수하기 위해 10여 년 전과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새누리당은 현존하는 그 어떤 정당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를 존중하고 있음을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강변했다. 따라서 이들의 교과서 국정화 목표가 무엇인지 그 검은 속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이장우 대변인의 논평이 나오자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전 언론인 정운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정희의 비밀광복군 설에 대해>라는 글을 올려 이 대변인의 논평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1959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했으나 대구에서 성장,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정운현 전 사무처장은 출신성분으로 보면 TK다. 이런 그는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오마이뉴스 편집국장까지 약 20여 년을 기자로 살았다.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뒤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 등을 지내는 과정에서 특히 한국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인 친일파문제와 일제 강점기 역사 등을 추적, 이에 대한 글을 발표했으며 여러 권의 현대사 관련 저서를 냈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친일파-그 인간과 논리>(김삼웅/정운현 공저, 학민사)를 시작으로 <친일파 2> <친일파 3> <창씨개명> <친일파 죄상기> 등을 공저 또는 편역의 방법으로 출간하여 후세들에게 친일파의 역사를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에도 그는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 <중국대만 친일파재판사> <호외, 백년의 기억들>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잃어버린 기억의 보고서-증언 반민특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실록 군인 박정희> 등을 펴냈으며 최근에도 <임종국 평전>을 펴내는 등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의 근대사를 계속 추적, 책으로 남기고 있다.

따라서 정운현씨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 비밀광복군’설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역사왜곡이며 특히 자신이 사무처장을 지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박정희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면죄부를 줬다는 발표는 더욱 그를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정운현 전 처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박정희의 ‘비밀광복군’설에 대해 -정운현->

이런 주장이 왜 안 나오나 싶더니 결국 나오는군요. ‘박정희 미화’의 극치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이런 식으로 ‘거짓 역사’가 ‘사실’로 둔갑되고 또 특정인 영웅 만들기에 악용되기도 합니다.

저는 현역기자 시절 박정희의 해방 전후 친일 및 좌익 활동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관계자’랄 수 있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박정희의 '비밀광복군 설'에 대한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간단하게나마 몇 자 적습니다.

1.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친일'로 압박했다”며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맞습니다. 당시 친일규명위에서는 박정희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하는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군인은 '소위 이상'이었기에 해방 당시 만주군 중위였던 박정희는 당연히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만 최종 선정 때 박정희는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친일규명위가 ’증거주의‘를 엄격하게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의 만주군 장교 복무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독립군을 사살한 행위와 같은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친일행적은 분명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최종 선정에서 제외시킨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원회가 최종 선정한 명단에 박정희가 빠졌다고 해서 그의 친일 행적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박정희는 친일파 맞습니다.

2. 이장우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조경한’이 맞음)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을 했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 백강 선생의 발언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저로선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생전에 ‘국립묘지에는 친일파가 여럿 누워 있다’며 국립묘지 안장조차도 거부하신 백강 선생께서 언제 어디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 대변인은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의 ‘비밀광복군’ 설은 박정희가 집권한 1960년대 이후부터 제기돼 오다가 1984년 장창국(전 합참의장)씨가 <육사졸업생>이란 책에서 ‘광복군 비밀요원설’을 주장하면서 처음 활자화됐습니다. 이어 2년 뒤 <월간조선> 1986년 8월호에 실린 ‘박정희의 만군인맥’이라는 기사에서는 박정희가 버젓이 비밀광복군으로 둔갑했습니다.

위 두 글의 출처는 박영만이 1967년에 출간한 <광복군>(상·하 2권, 협동출판사)이 그 원전이랄 수 있습니다. 지난 97년 박정희 취재과정에서 저는 이 책의 내용이 거짓임을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박정희조차도 이 책의 저자 박영만에게 호통을 쳤겠습니까? 이런 점에서는 박정희가 일말의 양심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진출처 : 정운현 페이스북

 

위 사진은 ‘박정희 비밀광복군’ 설을 처음 유포시킨 문제의 책 <광복군>(상.하 2권, 협동출판사). 이 책은 박영만이란 자가 1967년에 펴낸 것으로 97년 박정희 취재과정에서 우연하게 입수했습니다. (<광복군> 책 사진 '펌' 무방함)

아래 사진은 필자가 2004년에 펴낸 <실록 군인 박정희>(개마고원) 표지이며, 다음 사진은 이 책에 실린 <월간조선> 86년 8월호 기사인데요, 박정희를 비밀광복군으로 둔갑시킨 엉터리 조작기사입니다.

 

▲사진출처 : 정운현 페이스북

 

 

▲사진출처 : 정운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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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외교, 널뛰기도 이런 널뛰기 없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미국 가서 중국 자극…이게 균형외교인가?
이재호 기자 2015.10.21 11:54:01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두고 정부와 일부 언론은 한국이 중국에 경도돼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을 해소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이 너무 과도하게 미국에 경도된 언행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한-미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발언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이 미국을 최상위에 두고 그 아래 중국을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건데, 여기에 한 축이 되겠다고 이야기했으니 중국에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따져 물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미국 편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 전 장관은 지난 9월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가까워지려는 한국에 미국이 발끈했고, 이런 미국을 달래기 위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그런데 중국이랑 가까워지는 것처럼 비춰진 것이 뭐 그렇게 대역죄인가?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균형 있게 가져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 동북아 외교의 기조 아닌가"라며 "중국 경사론을 적당히 불식시키면되는데, 이걸 불식시킨답시고 너무 미국에 경도된 셈이다. 앞으로 중국에 가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을 채택한 것을 두고 "북한만을 다룬 최초의 양국 공동 성명"이라면서 그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이 성명이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먼지만 털고 난 뒤에 새로운 물건인 것처럼 속인 것에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이 성명을 6월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이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로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6월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이후 남북은 8.25 합의를 이뤘고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10일 연설을 통해 주변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에 이러한 변화된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채 예전에 작성했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진단이다.

그는 "최근 북한의 메시지는 6자회담을 하고 평화협정을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이라며 "문제는 미국과 우리가 이 행간의 뜻을 읽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한-미가 북한의 뜻을 이해하고 6자회담 추진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중국에 치우쳐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외교'를 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인데요.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이 "나 중국 편 아니야. 미국 편이야"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미국에 간 건 맞습니다. 그런데 퍼포먼스를 너무 세게 했습니다. 널뛰기도 이런 널뛰기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 중 지난 14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우호의 밤' 행사에서 "한-미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뭡니까?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재조정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미국이 최상위에 있고 그 밑에 중국을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 아시아 재균형의 핵심인데, 여기에 한 축이 되겠다고 자진해서 이야기했으니 중국에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참 난감해졌습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미국 '전략 국제문제 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미 동맹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이건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올라가자는 이야기인데, 북한이 놀랄만한 발언이기도 하지만 중국도 대단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언입니다. 

여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쐐기를 박았습니다. 16일(현지시각)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에 줄 서지 말고 자기 쪽으로 오라는 메시지입니다. 

대체 박 대통령은 왜 중국이 발끈할만한 발언들을 쏟아낸 것일까요? 일단 미국에서 중국 경사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보수 중심으로 중국에 경도돼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보수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다 보니 집토끼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미국에 경도된 발언을 내뱉은 것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승절 참석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올랐는데요. 미국이 여기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가깝다고 불만을 제기했을 겁니다. 미국에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중국 경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먼저 나서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입장에 동참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랑 가까워지는 것처럼 비춰진 것이 뭐 그렇게 대역죄입니까?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균형 있게 가져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 동북아 외교의 기조 아닙니까? 중국 경사론을 적당히 불식시키면 되는데, 이걸 불식시킨답시고 너무 미국에 경도된 셈입니다. 앞으로 중국에 가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의도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저 발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좌충우돌한 것일까요? 

정세현 : 미-중 간 균형을 잡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저런 발언이 엄청난 후과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사실 대통령보다는 참모들의 책임이 큽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어떤 이야기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 것인지 상세하게 알기는 힘듭니다. 결국 연설문을 써주고, 예상 질의 응답을 작성한 참모들이 잘못한 겁니다. 왜 모범답안을 저렇게 써줬느냐는 겁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곧 정책입니다. 따라서 대통령 자료를 챙기는 수석 비서관들은 정말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강릉에서 "쌀 시장 문제는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고 연설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미국의 압력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쌀 시장을 개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연설문에 원래는 '대통령 직을 걸고'라는 표현이 없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들어간 건데요. 김 전 대통령은 이런 표현을 쓴 사람이 누구냐면서 관계자를 색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방미 당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을 기분 나쁘게 했습니다. 향후 외교·안보·경제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속 조치 계획을 가지고 있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부분을 생각했을 때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보통 수준의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각) 정상 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미 공동 성명? 유통기한 지난 상품에 불과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부에서는 "북한만을 다룬 최초의 양국 공동 성명"이라면서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성명의 내용을 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먼지만 털고 난 뒤에 새로운 물건인 것처럼 속인 것에 다름없습니다. 

정부는 이 성명을 6월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에 맞춰 장거리 로켓이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로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6월과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도 발사하지 않았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할 하등의 상황적 근거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성명에서 8.25 합의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8.25 합의를 이뤄낸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합의를 풀어나갈지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후속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통일부와 외교부 간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에 대한 반응 역시 성명에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겠다'는 식입니다. 

미국 역시 전혀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이라 정책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략적 인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북한을 압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습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경제 발전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주변 정세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이 정도까지 나왔다면 미국과 한국은 "그래 그럼 6자회담 하자. 대신 6자회담 하려면 최소한 너네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문턱을 좀 낮춰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명을 보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까 봐 겁이 나서 사전에 조치를 취하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갈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도록 사방에 장벽을 쌓고, 오히려 반발을 유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계속 평화협정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종료 이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외무성 성명을 냈는데, 여기에서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에 대한 내용은 일체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평화협정 이야기를 한 것인데, 이는 비핵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바꾸기로 했었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미-북 수교와 일-북 수교를 하기로 했는데, 미-북이 수교하려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전쟁 상태를 끝내지 않고 수교할 수 없지 않습니까?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2007년 2.13합의가 나오기 전에, 미국과 북한은 2006년 11월 사전 합의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판을 짜놓고 6자회담의 나머지 국가들에게 사후 승인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순위로 해서 미-북 간 협상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2009년 오바마 정부 1기 때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1년 동안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방법입니다. 힐러리는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할 용의가 있다면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 논의를 우선적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메시지는 바로 이때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핵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있지만 6자회담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한-미 공동 성명이 6자회담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으면서도 6자회담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인 핵 문제에 대해 굉장히 강하게 북한을 압박해 들어가듯이, 북한 역시 이런 식으로 6자회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겁니다. 

문제는 미국과 우리가 이 행간의 뜻을 읽어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미가 이렇게 세게 나갔는데, 북한이 이렇게 나온 것은 6자회담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6자회담 추진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만나서 평화협정을 논의하고 비핵화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것 없이 김 제1위원장이 연설에서 밝힌 주변 환경이 안정되기 힘들고, 그러면 경제 발전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북한 내부의 이같은 절박한 필요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도, 남한과도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맞장구를 쳐줄지는 미지수입니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6자회담이 의미가 있으려면 미-북 간 사전 밑그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재 오바마 정부는 그럴 겨를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임기가 채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정세현 : 그런 측면도 있지만 부시 정부도 임기 말을 코앞에 두고 2.13 합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어 집권한 오바마 정부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부시 정부 때 만들었던 9.19 공동성명의 틀 안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내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정책의 연속성은 가져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갚아야 할 '외상'이 있습니다. 2009년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연설로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디딤돌이라도 놓고 가야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좁은 문이라도 열어놓고 나가야지, 안 그러면 노벨 평화상 반납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오바마 대통령을 움직이려면 남한이 움직여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이번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계속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는 것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냐, 그대로 두면 우리는 어떻게되냐, 미국이야 북핵이 늘어나도 걱정할 건 없지만 우리는 북핵 능력이 높아지면 그만큼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절박한 상황이다"라고 호소했어야 합니다. 

북한이 핵 폐기 의지를 표현하는 수준에서 6자회담을 시작하도록 문턱을 낮추자고 미국에 제안하고 설득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철 지난 성명만 발표하고 온 겁니다. 

이산가족 이후 남북관계는? 

프레시안 : 우려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이번 상봉은 무난히 치러질 것 같은데요. 상봉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정세현 : 북한은 이번 상봉을 무사히 끝내고 8.25 합의에서 약속했던 남북 당국회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남북 당국회담이 돼야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은 뉴욕 채널 통해 혹시라도 미국이 자신들의 제안에 호응해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은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한도 별다른 반응이 없고 미국도 호응이 없다면 북한은 남한과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악을 쓰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남한이 8.25 합의에 근거한 당국 회담을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북한에 제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한-미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분명 남한, 미국과 대화 의지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당국 회담을 제안해서 남북, 미-북 대화가 같이 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진해야 합니다. 

실제 이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임기가 2년 남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 1년이 남은 오바마 정부를 끌고 가야 합니다. 오바마 정부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인식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만들어 놓으면 다음 정부가 최소한 북핵문제 해결의 문은 열린 상태에서 집권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 지난 20일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65년 만에 다시 만난 남측 부인 이순규(왼쪽) 씨와 북측 남편 오인세 씨 ⓒ연합뉴스


통일부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실제 실행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세계 평화회의 같은 학술행사를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남북문제, 북핵 문제 해결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무슨 세계 평화를 논하고 있는 겁니까? 

예전에 남북 대화가 한창일 때, 1년에 서른 번 이상 회담을 했을 때는 회담 사무국 예산이 모자라서 정책실, 교육원 등등에서 가져다 쓴 적도 있습니다. 통일부가 세계평화회의를 한다는 걸 보니, 예산에서 불용액 남기지 않으려고 그런 것 같은데, 예산을 거기에 쓸 것이 아니라 당국회담을 열어서 실제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에 써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은 여전히 이산가족 상봉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상봉 정례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북한이 여기에 호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20일부터 시작된 1차 이산가족 상봉 인원을 보면, 남한은 389명인데 비해 북한은 141명입니다. 총 96가족 만남에 141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동반하는 가족이 없이 혼자 오는 사람이 적어도 절반은 된다는 뜻입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굉장히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북쪽 가족들이 남쪽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민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북한의 행정력으로는 쉽지 않고, 또 설사 만나고 싶어한다고 해도 북한은 아무나 내보내지는 않습니다. 내보낼 수 있는 상태가 돼야 명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상봉 대상자의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 북한은 절대 내보내지 않습니다. 상봉 나가는 가족들 옷도 따로 준비해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남한의 대북 지원이 없지 않았습니까? 없는 돈 모아서 억지로 상봉을 준비하는 것이라 북한은 반대급부가 없다면 정기적인 상봉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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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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