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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인 ‘박근혜’ 피고소인 ‘주진우’

 
[인터뷰] 3년 만에 재개된 이상한 명예훼손 수사… "총선 앞두고 손발 묶으려는 것"
 
입력 : 2015-10-16  14:20:39   노출 : 2015.10.16  15:55:35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3년 만에 재개된 ‘이상한 명예훼손 수사’의 피고인이 됐다. 고소인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의 운전기사 김아무개씨는 2012년 5월7일 업로드 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 무렵 박태규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수차례 만났다고 주장했다. 주진우 기자는 “그 당시는 박태규씨가 부산저축은행 구명을 위해 광범위한 로비를 하고 있었을 때”라고 언급했다. 

박근혜 의원은 김씨와 주 기자 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박 의원이 기자를 고소한 첫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지난 10월1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관정)는 주 기자가 이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3년 만이었다. 15일 만난 주진우 기자는 3년만의 검찰 소환을 두고 “총선을 앞두고 기자의 손발을 묶고 싶은 것”이라며 “무죄까지 가는 길이 험난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주진우 시사인 기자. ⓒ주진우
 

운전기사 김씨의 주장은 구체적이었다. 그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털 호텔 앞에서 박태규가 차에 타 ‘지금 박근혜 대표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태규와 박근혜 의원의 동선을 분석하고 박 의원 비서실장의 신용카드 영수증 등을 조사한 결과 김 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기소했다. 김씨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됐으나 절도죄가 추가돼 양형이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 기자는 “2012년에 많은 언론에서 박태규와 박근혜가 만났다는 보도를 했는데 유독 나꼼수에 소송을 걸었다. 선거철에는 고소고발이 많았고, 처벌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해 잊어버렸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말한 시점에 두 사람이 안 만났으니 허위사실로 유죄를 받았고, 그래서 허위사실을 보도한 주진우 기자도 유죄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2012년에 2010년 일을 증언한 박태규 운전기사는 날짜에 있어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기자 입장에선 취재원과 인터뷰를 하며 취재원의 주장을 100% 검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언론보도의 경우 사실로 믿을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으면 설령 허위보도로 판명 나더라도 공익목적의 보도일 경우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된다. 그러나 고소인이 현직 대통령이어서 재판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주 기자는 “박근혜 지지자였던 운전기사가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봤다고 구체적으로 말했고 나는 그걸 믿었다. 나는 만났다고 말한 증인이라도 데려왔지만, 검찰은 박근혜‧박태규가 안 만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증명했나. 과연 검찰이 박근혜 후보의 대포폰과 박태규의 대포폰을 수사했을까”라고 되물은 뒤 “이번 일에 대한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박태규와 박근혜는 분명히 만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일가와의 법정 악연은 계속되고 있다. 주 기자는 악연의 시작을 2012년 10월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긴급 기자회견으로 꼽는다. 박근혜 후보는 주 기자의 질문에 “(김지태씨의 헌납에)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있다”고 말했다가 사실과 달라 “강압이 없다고 말한 것은 잘못 말한 것”이라고 정정하며 굴욕을 겪었다. 

주 기자가 이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집행유예 같은 형을 선고받을 경우 총‧대선을 앞두고 권력비판 기사를 쓰는데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집행유예 기간 중 기소를 당해 범죄사실이 인정되면 양형이 가중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 기자는 “나는 모든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한 번만 삐끗하면 끝이다”라고 말한 뒤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대다수 언론은 3년 만에 재개된 검찰수사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방송사의 한 법조출입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서 특별히 도는 이야기는 없다”고 전했다. 주진우 기자는 “검찰 기자들 중에서 3년 만에 수사가 시작 된 건 이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기자가 없다. 법률가와 언론인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힐링캠프’ 통편집 논란, “제작진 이해한다”

   
▲ SBS '힐링캠프' 5일 방송 예고편.
 

주진우 기자는 통편집 논란이 불거졌던 SBS ‘힐링캠프’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힐링캠프’는 이승환 with 프렌즈 편으로 진행자 김제동과 가수 이승환‧영화감독 류승완‧만화가 강풀, 주진우 기자가 출연했다. 그런데 본방송에서 주 기자는 거의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마이크 잡은 장면이 나왔지만 정면이 아닌 옆얼굴이었다. 방송 이후 실시간검색어에 ‘주진우’가 오르며 통편집 논란이 불거지자 SBS제작진은 “주 기자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며 “녹화 당일에도 주 기자는 이승환 씨의 공연장 대관에 대해서만 자세히 말했다”고 해명했다. 

주 기자는 그날 녹화현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편집된 내용이 궁금했다. 주 기자는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을 응원 간 것이었다. 정치적 발언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FTA를 추진하고 있다. 아마 타결이 될 것 같은데 최근 일어나는 한중 연예계의 빈번한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고 전했다. 채림씨와 중국배우 가오쯔치씨의 결혼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는데, ‘박근혜’란 단어가 나오자 순간 녹화장이 술렁였다는 후문이다.

이날 녹화에서 만화가 강풀은 “우리 다섯 명이서 친하게 지내는데 요새 만화도 너무 잘되고 영화(‘베테랑’)도 잘 되고 공연도 잘 되고 제동이도 잘하고 있다. 다섯 명 중에 제일 잘 된 사람은 진우 형이다. 감옥에 안 갔다”고 말했는데 이 멘트도 편집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 기자는 “승환 형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편집 논란에 대해서는 “제작진을 이해한다. 방청석에 있게 해준 것도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힐링캠프’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2011년 6월 MBC다큐타임 ‘간첩’편에서 류승완 감독과 함께 ‘간첩 찾기 프로젝트’를 벌이는 코믹 캐릭터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주로 뉴스에서 피고소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주 기자는 “지금은 권력자들이 보기 싫은 사람들은 방송에 나오면 안 되는 그런 시대”라고 말했다. 한편 주 기자는 군사정부 시절 비자금과 이명박정부 시절 비자금을 수년간 취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몇 개의 문을 더 열었다. 진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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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월간조선 조갑제 ‘김창룡이 박정희 살려주지 않았다면?’
 
‘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임병도 | 2015-10-16 08:47: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TV조선이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동영상을 왜곡하여 보도했습니다. TV조선은 10월 13일 ‘더 일찍 죽었어야… 엇나간 역사수업’이라는 제목으로 한홍구 교수가 2014년 강연한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 동영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왜곡 편집, 보도했습니다.
 
앵커는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어야 한다는 성공회대 교수의 동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한 겁니다.’라면서 마치 한홍구 교수가 박정희를 살해했어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다른 언론들도 사실관계는 확인하지 않고 앞다퉈 왜곡보도를 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을 일찍 죽였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한홍구 교수의 동영상”(<동아닷컴> 10월 14일 자 보도)
“ ‘박정희, 만주서 죽였어야…’ 막장 수업 논란”(<채널A> 10월 14일 자 보도)
“강남 고교 교사 ‘박정희’ 과격 동영상 논란”(<중앙일보> 10월 14일 자 보도)

과연 이들의 보도가 사실일까요?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박정희 살해? 김구는 죽이고 박정희는 살려준 김창룡’

 
한홍구 교수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김창룡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주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홍구 교수가 했던 발언 원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영상(29분 50초 부분)에서 한홍구 교수는 1948년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 이후 군내에서 벌어진 좌익 수사에서 남로당 프락치로 검거된 박정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가 살려줬는지 말합니다.
 
“저 놈(김창룡)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죽여도 될 사람을 하나 살려줬어요. 남로당이 한국군부에 침투시킨 최고위 프락치였으니까 그때 기준으로 치면 뭐 죽여도 여러 번 죽였어야 할 자인데 그자를 만주에서 같이 놀던 놈이라고. 그놈이 잡히니까 ‘김창룡을 만나게 해달라.’ ‘김형 나 좀 살려주쇼.’그랬더니 이제 살려줬어요.

아 그때 딱 죽여 버렸으면 우리 역사가 조금은 바뀝니다. 대통령이 두 자리는 확실하게 바뀌어요. 박정희니까. 박정희 그때 죽여 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죠. 우리 언니(박근혜)는 태어나기도 전이에요.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거였는데 살려 줬습니다. 오늘의 박근혜를 있게 한, 오늘의 박근혜가 있기까지는 뭐 이런 분들의 다 은덕이 있는 거죠.”
 
한홍구 교수의 이 발언은 김창룡이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배후세력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전이었습니다. 즉 김창룡이 당시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박정희는 살려줬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워

―金昌龍대위는 金安一 과장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했습니까?

『그는 1연대 정보주임이었는데 저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거쳐서 하였습니다. 행정적인 처리는 저를 거쳐서 하였습니다. 朴正熙 등 육군 사관학교 내 세포에 대한 수사를 金昌龍이 한 것은 1연대가 그 학교와 가까운 태릉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꼭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기가 곤란했고, 꼭 잡아야 할 사람은 잡아놓기가 힘들었습니다. 수사에 협조하여 이제는 풀어주어도 공산주의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살리자고 건의하면, 위에서는 여순반란 사건 때문에 내 부하가 얼마나 희생되었는데 살려준단 말이냐고 하면서 난색을 표했고, 친한 부하를 구속시키려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변호를 해주고… (월간조선 1989년 12월호, 조갑제)

1989년 12월 조갑제씨가 쓴 월간조선에서도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워’라는 소제목이 나옵니다. 박정희가 죽었어야가 아니라, 원래 박정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습니다.


‘영남유격사력관 박정희? 특무과장 김창룡이 박정희 살리자고 했다’

한홍구 교수는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는 진짜 남로당 프락치였을까요? 조갑제씨와 이동욱 월간조선 기자가 쓴 ‘박정희 전기’에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아니, 남의 교수부장을 빨갱이라고 잡아가면 어떻게 하오?’ ‘아닙니다. 그놈은 빨갱이가 틀림없습니다.’ ‘증거가 있소?’ ‘예, 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김창룡이 차트를 펼쳐 보였다. 웬만한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큰 차트에는 남로당 수뇌부를 정점으로 하여 밑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퍼져 나간 남로당 군사조직표가 그려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조직원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박원석 대위의 이름은 박정희 소령 밑에 올라 있었다.

‘아니, 박원석이가 무엇을 했길래?’ ‘드러난 것은 없지만 박정희의 세포입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일본육사 57기 유학생대에 다닐 때 박원석이 58기로서 그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같은 세포라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김정렬은 몇 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항공사관 학교 창설을 주도할 간부 7명이 육군사관학교에서 15일간 교육을 받는데 담당 중대장이 박정희 소령이었다. 박 소령은 일제시대의 군경력이 훨씬 선배인 김정렬과 박범집을 매일 저녁에 숙소에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을 알고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명망대로의 인물됨이었다. 그런데 그가 좌익이라니.

김정렬이 ‘박원석은 물론이고 박정희 소령도 내가 보기엔 빨갱이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김창룡은 ‘아닙니다. 그는 확실합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조갑제 출판부부국장·이동욱월간조선기자)

박정희가 공산주의를 잘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로당 사람들과 접촉했고, 숙군 수사를 통해 체포된 사람들과 연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사람 대부분도 무죄라고 밝혀야 할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를 수사했던 김안일 소령은 박정희의 구명을 김창룡 대위가 직접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안일 소령은 나중에 백선엽 당시 육군본부정보국장에게 박정희의 구명을 건의했다고 밝혔고, 백선엽은 김안일 소령의 주선으로 박정희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朴正熙가 나를 통해서 白국장을 만났다는데 그런 기억은 없고 朴소령 수사담당자인 金昌龍(김창룡)대위가 나를 찾아와 수사에 협조해준 朴대위를 살려주자고 해서 내가 직접 朴소령을 만난 뒤 金대위와 둘이서 白국장에게 구명을 건의한 기억은 납니다』 (박정희 수사 책임자 김안일 특무과장)

숙군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구명된 유일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朴正熙소령이었다. 방첩대(CIC)의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인 李在福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사관학교의좌익조직수사에서 용의자의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은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고 당시 육본작전교육국의 과장이던 박정희소령이었다.

숙군의 일단계 작업이 완결된 즈음인 49년 초 어느 날 방첩대의 金安一소령이 나에게 『박정희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 말이 있다고 간청하고 있으니 면담을 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김소령은 아울러 박정희 소령이 조사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꼭 만나 봐줄 것을 요청했다. (전쟁과 나, 백선엽)

 

결국, 박정희는 1949년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습니다. 이후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가 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나 강제 예편됐다가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나자 소령으로 현역에 복귀합니다. 박정희처럼 남로당 프락치로 연루된 사람이 현역으로 다시 복귀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박정희가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군내 좌익 숙군 수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만주군에서 활동했던 만주군 인맥 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의 구명을 건의했던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 보조원으로 출발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공산주의자를 잡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라면 이를 갈았던 그가 유독 박정희는 살려줬습니다. 박정희의 구명을 도와준 백선엽 또한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 만주군 중위였습니다.

박정희 수사 책임자였던 김안일 당시 특무과장은 백선엽과 김창룡이 박정희의 구명을 위해 연대보증을 섰다고 밝혔습니다. 박정희, 백선엽, 김창룡은 모두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만주군 출신이었지만 숙군 수사로 처형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달리 박정희는 남로당 조직 명단을 털어놓았고, 전향했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백하고 만주군 인맥의 도움으로 박정희는 살아남은 것입니다.

1989년 12월 월간조선에서 조갑제씨는 박정희 수사 책임자였던 김안일 당시 특무과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김창룡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박정희의 쿠데타와 4.19혁명도 불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조갑제씨는 그런 이야기보다 ‘김창룡이 박정희 소령을 살려주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가 더욱 흥미있는 가상을 부를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당연히 박정희는 죽었고, 5.16쿠데타는 발생하지 않았고, 육영수 여사와 결혼하지 못했으니 박근혜 대통령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의 발언이 이 말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친일파 헌병 출신 김창룡은 김구 선생 암살을 주도하면서 민족지도자는 살해하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독재자는 살려줬습니다. 조갑제씨의 말처럼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역사에서 만약은 없겠지만, 국사 역사교과서 논란의 과정에서 나왔던 한홍구 교수 사건을 따져본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가정입니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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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이상준공동대표 탄압 ... 내일 박근혜 백악관방문 사전정지작업 ?

  • FBI, 이상준공동대표 탄압 ... 내일 박근혜 백악관방문 사전정지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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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현지시간) 평화미국원정단은 미백악관앞에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피켓시위를 전개했으나 FBI 등이 나서 탄압했다.
     
    평화미국원정단의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이상준공동대표가 피켓시위를 하던중 워싱턴경찰2명과 FBI요원2명이 이공동대표에 접근해 신원확인을 요구하는 등 원정단을 압박하며 피켓시위를 방해했다.
     
    그러나 이상준공동대표가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워싱턴경찰들과 FBI요원들은 별 소득없이 돌아가고 말았다.
     
    경찰들은 내일 다시 오겠다고 밝혔다. 요원들은 이공동대표의 11월초 미국체류마감시한을 상기시켰다. 요원들은 이공동대표의 입출국일을 알고 있었다.
     
    평화미국원정단은 백악관앞에서 오늘로 60여일이 넘게 시위를 진행해 왔으나 오늘같은 일은 처음이다.
     
    박근혜<대통령>의 백악관방문과 오바마대통령과의 16일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일어났다. 그래서 오늘 이례적으로 무리하게 이공동대표의 시위를 탄압하며 사전정지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연대는 내일 12시 미백악관앞에서 여러 동포단체들과 함께 <박근혜<대통령>방미, 사대굴욕외교 규탄 시위>를 개최한다.
     
    아래 사진들의 선글라스 쓴 사람들은 워싱턴경찰들이며 FBI요원들은 사진은 못 찍고 명함만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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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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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이어 온 미국 역사

미 제국의 두 기둥 - 미국이 숨기고 싶은 전쟁이야기 - 4
 
전쟁으로 이어 온 미국 역사
 
최천택. 김상구 공저 
기사입력: 2015/10/15 [16: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아메리카 영토 확장과 전쟁

 

18세기 초중반 북아메리카는 캐나다 동부 퀘벡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놓여있었다식민지는 영국에 조세를 납부했으나 영국의회에 대표자를 파견하지 못했다당시 북미는 이주민의 대량 유입과 정착민들의 증가로 전반적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60, 1770년대 북미 식민지와 영국 간에 본격적인 대립이 일어난다그 무렵 영국은 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과도한 세금을 거두려했고이에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본국의 정책에 식민지 미국 시민들은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대표적인 사례가 보스턴 차 사건이다.

 

1773년 4월 영국의회가 차조례를 통과시켜 대중 음료인 차에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식민지인들이 강력히 저항한다미국의 식민지 반군들은 보스턴 항구에서 어둠을 틈 타 인디언으로 위장하여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의 값비싼 차가 실려 있던 배를 파괴했다.

 

그 보복으로 영국의회는 손상된 차를 배상할 때까지 보스턴 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는 보스턴 항구 폐쇄법(Boston Port Bill)을 포함하여 식민지들 사이에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으로 알려진 일련의 징계조치를 통과시켰다이 사건은 미국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미국독립전쟁(1775-1783)이 일어나자 미 식민 반군은 1775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회의에서 조지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대륙군을 창설했다뒤이어 1776년 74대륙회의는 토마스 제프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을 선언한다그리고 1777년 연합헌장을 채택하여 다소 느슨한 형태의 연합정부를 설립해 1789년까지 존속했다.

 

이후 미국은 강력한 국가의 창설을 원하는 자들이 주축이 되어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조직했으며 격론 끝에 1789년 미합중국 헌법이 비준되었다그 후 공화국의 연방 상하 의원이 출범하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이후 내정이 안정되자 연방정부는 본격적인 영토 확장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첫걸음은 1780년 이후 추진한 프런티어 라인이었다미국은 이 라인을 확장하여 미동부의 장벽이었던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섰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걸림돌로 간주된 원주민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이에 따라 원주민들이 대량 학살되는데 서부로 영토가 확장되는 만큼 원주민들의 수는 감소되었다일부 생존한 원주민들은 소위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 가두어 버렸다미국인들은 원주민들의 투쟁사를 인디언 전쟁(INDIAN WARS)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원주민 학살사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 전쟁은 1622-1794 사이에 23, 1811-1854에 40, 1855-1868에 37, 1868-1898에 46건 등 276년 동안에 146 차례에 걸쳐 미국과 원주민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말이 무력사용이지 이건 전쟁도 아니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침략과 학살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전쟁 중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경우는 1812년 영국과 전쟁, 1846년 멕시코전쟁,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등 5개의 전쟁뿐이다미국이 침략한 나라의 형편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미국에 비하여 인구나 국력이 매우 약하다.

둘째미국에 반격을 가할 무기나 수단이 전혀 없다.

셋째미국을 침략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편미국이 침략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스페인전쟁월남전 같이 전쟁 원인을 조작하여 침략한다.

② 매우 드물지만 전쟁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여 도전하게 한다.

③ 침략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예고 없이 무조건 쳐들어간다.

 

의 방법은 매우 자주 쓰인 방법으로 조작공격 작전 또는 위장공격 작전이라 부른다.

 

이 작전은 원래 선박에 다는 국기를 적국의 기로 바꾸어 달고 공격을 한데서 유래한다.미국이 미-스페인 전쟁을 유발하기 위하여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 군함 메인호(USS  Maine)사건을 조작한 일이나, 1964년 8월 2일 미국이 월남전을 유발하기 위하여 조작한 미 군함 매독스(USS Maddox)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 최초 독립 당시 13개주의 넓이는 독일,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의 합계와 비슷하다.     © 이정섭 기자

 

 

 

여기서 잠깐, 13개주가 독립을 선언할 당시의 미국 영토를 살펴보기로 하자. 1776년 독립을 선포할 당시 미국은 필라델피아조지아 등 13개의 독립국이 연대한 연합 국가였다.면적은 940.963이고 인구는 약 250만 명 정도였으며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된 1783년에도 400만을 못 넘겼다초기 아메리카합중국의 면적은 현재 미국의 넓이 9,826,675의 10%정도인 셈인데남북한의 4.3배나 되는 크기다.

 

독일·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스위스·벨기에·네덜란드의 합계 면적인 941.694와 유사하다그러나 신생국 미국은 이 정도의 넓이로 만족하지 않았다미국이 영토 확장 야심을 본격적으로 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프슨부터였다. 1803년 제프슨은 1800년 프랑스가 스페인으로부터 할양받았던 미 대륙 중앙부 210의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사들여 단숨에 국토를 2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그 후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재차 점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했다특히 주목할 것은 멕시코와의 전쟁이다미국-멕시코전쟁(1846.4-1848.2)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미국과 멕시코가 영토분쟁을 한 전쟁이다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멕시코는 지금의 뉴멕시코 주유타 주네바다 주애리조나 주캘리포니아 주텍사스 주서부 콜로라도 주의 거의 모든 영토를 미국에 양도했으며미국은 이 대가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인 1,500만 달러를 지불했다그리고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의 영토를 넓혔다많은 이들이 이 전쟁을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 부른다.

 

비폭력 시민 불복종을 주장하여 간디와 톨스토이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데이비드 소로(H. D. Thoreau 1817-1862)는 이 전쟁에 반대하여 세금을 내지 않고 저항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이 전쟁으로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아직도 이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전쟁

 

미국은 자국의 영토 확장이 끝난 후로도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하지만 미국은 침략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2차 세계대전 때 일본으로부터 하와이 침공을 당했지만 하와이는 그 당시 미국의 식민지였을 뿐공식적인 영토가 아니었다.

 

그러면 건국 후 지금까지 미국은 얼마나 전쟁에 관여했을까? 1993년 10월 7일 워싱턴 시 소재 미의회도서관 의회연구원 외교국방분과 미국외교정책 전문가 콜리어(Ellen C. Collier)는 미국의 전쟁, 1798년부터 1993년까지 미합중국 군대에 의한 해외 무력사용 사례들이라는 목록을 작성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195년 동안 234건의 전쟁에 개입했다물론 1993년 이후에도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의 데이터는 34건이다. 14년 동안 34건인데 1798년부터 셈을 하면 210년 동안 268건의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1년에 1건 이상의 전쟁에 참여했다는 뜻이다콜리어가 작성한 문서의 출발 시기인 1798년 이전에도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문서에 누락된 전쟁도 상당히 많다미국은 전쟁으로 시작하여 전쟁과 함께하는 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아래는 클리어 문서 중 일부다.

 

○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기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 스페인령 서부 플로리다 강탈 (18121814),

○ 말카스제도 누크 히버섬 상륙침공 (1813), 알제리 전쟁 (18161818)

○ 옐로우스톤 원정 (18191829),

○ 쿠바푸에토리코산토도밍고멕시코의 유가탄 반도 침공 (18191825),

○ 하와이 제도 침공 (1826), 그리스 미코노스섬앤드로스섬 침공 (1827),

○ 포클랜드 군도 침공 (18311832), 수마트라섬 쿠알라토르 침공 (1832)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33), 사모아 제도 침공 (1835),

○ 수마트라섬 침공 (1838), 피지 군도 침공 (1840),

○ 길버트 군도의 드래몬드 제도 침공 (1841), 리베리아 침공 (1843)

○ 멕시코와 전쟁(18471848), 아이티의 사마나만 점령(1847),

○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521853), 니카라과 침공 (18531854),

○ 중국 상해광동 침공 (18541856), 피지 군도 침공 (1858)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551858), 뉴 그레네이더 하나마 침공 (1858)

○ 니카라과 침공 (1857), 유이하 제도 침공 (1858), 파라과이 침공 (18581859)

○ 중국 상해 침공 (1857), 판 데트카 해협의 산판섬 침공 (1859),

○ 멕시코 침공 (1859),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 키센보 침공 (1860),

○ 일본 시모노세키 침공 (18631864),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65),

○ 중국 침공 (18631864), 멕시코 침략(1866), 대만 침공 (1867),

○ 조선 침공 (18671872), 우르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68),

○ 일본 침공 (1868), 콜롬비아 침공 (1868), 멕시코 침공 (18701873),

○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70), 하와이 군도 호눌룰루 침공 (1874),

○ 멕시코 침공 (1876), 이집트 침공 (1882), 파나마 침공 (1885),

○ 아이티 침공 (1888), 조선 상륙(1888),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륙 (1890), 아이티 침공 (1891),

○ 칠레 침공 (1891), 호눌룰루 상륙하와이 제도 점령 (1893)

○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침공 (1894), 니카라과 상륙 (1894),

○ 조선과 중국 상륙 (18941896), 콜롬비아 상륙 (1895),

○ 니카라과 상륙 (1896), 하와이 제도 병탄 (1898), 니카라과 상륙 (1898),

○ 미서전쟁쿠바필리핀푸에토리코 점령 (18981899)

○ 니카라과 상륙 (1899), 피지 제도 군사원정 (1899), 사모아 침공

○ 추추라이섬 점령 (1899), 필리핀과 전쟁 (18991902),

○ 중국 의화단 진압 군사원정 (19001901),

○ 파나마콜롬비아 상륙 (19001902),

○ 사마르섬필리핀 레에테섬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군사작전 (19031904)

○ 파나마 운하 영구점령 (1903), 산토도밍고 침공 (19031904),

○ 파나마 상륙 (1904), 조선 상륙 (1904), 쿠바 점령 (19061909),

○ 니카라과 침공 (1910), 온두라스 침공 (1910-1911)

○ 중국 상륙베이징 침공 (19111912), 파나마 침공 (1912), 쿠바 상륙 (1912)

○ 터키 상륙 (1912), 니카라과 침공 (19121915), 멕시코 상륙 (1913),

○ 아이티 상륙 (1914), 멕시코 침공 (19151916),

○ 산토도밍고 점령 (19161925), 1차 세계대전 참전 (19171918),

○ 파나마 치리키 점령 (19181920), 신생국 소련 침공 (19181920),

○ 온두라스 상륙 (1919), 코스타리카 침공 (1919), 과테말라 침공 (1920),

○ 파나마코스타리카 침공 (1921), 중국에 무력개입 (19221941),

○ 온두라스 침공 (19241925), 파나마 침공 (1925),

○ 니카라과 침공 (19261933), 온두라스 침공 (1931), 쿠바 연안 정찰 (1933),

○ 중국 양자강 연안 점령 (1937), 중국 광동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938),

○ 2차 세계대전 참전(19411945)

○ 그린랜드 항구 점령 (1941), 아이슬랜드 점령(1941),

○ 코리아 전쟁 (19501953), 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1953),

○ 과테말라 군사개입 (1954), 중동 위기 선동 (1958),

○ 케모이섬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958),

○ -2 첩보기 소련 영공 정찰 (1960),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선동 (1960), 피그만 침공 (1961), 베를린 위기 선동(1961), 통킹만 무력도발 (1964),

○ 베트남 전쟁 (19641972), 도미니카 공화국 내정개입 (1965),

○ 엔크루마 정권 전복 (1866), 라오스캄보디아 무력개입 (1970),

○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9741975),

○ 케냐의 무왕기 카리우기 암살 (1975),

○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권 전복 (1975), 콩고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1977),

○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 카다피 암살계획 (1981), 파나마의 토리호스 암살 (1981),

○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 잠비아 대통령 암살계획 (1981)

○ 폴란드 내정간섭(19801984), 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 (19801984),

○ 엘살바도르 내전 군사개입 (19811983),

○ 니카라과에서 군사도발 (19811983),

○ 시드라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도발 (1982),

○ 그레네이더 침공 (1983), 걸프전 (1990-1991),

○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1994년 6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침략기도 무산

○ 수단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

 

오늘도 미국은 지구촌 어느 곳에선가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전 세계의 국가 중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은 나라는 과연 몇 개 국 정도 될까아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

 

전쟁이 발생하면 당연히 인명 피해가 따르기 마련이다그렇다면 미국이 개입한 전쟁에서 미군이 사망한 수자는 어느 정도 될까먼저 미국의 피해를 살펴보자아래 표는 미 육군 군사 역사 연구소(U.S. Army Military History Institute)에서 작성한 것이다.

 

전쟁 및 전투

기간

사망자

RevolutionaryWar

1775-1783

25,000

Northwest Indian War

1785-1795

~1,056

Quasi-War

1798-1800

514

War of 1812

1812-1815

~20,000

1st Seminole War

1817-1818

36

Black Hawk War

1832

305

2nd Seminole War

1835-1842

1,535

Mexican-AmericanWar

1846-1848

13,283

3rd Seminole War

1855-1858

26

Civil War

1861-1865

~62,5000

Indian Wars

1865-1898

919

Great Sioux War

1875-1877

314

Spanish-America War

1898

2,446

Philippine-American War

1898-1913

4,196

Boxer Rebellion

1900-1901

131

Mexican Revolution

1914-191

9 ~35

Haiti Occupation

1915-1934

148

World War 1

1917-1918

116,516

North Russia Campaign

1918-1920

424

AmericanExp.ForceSiberia

1918-1920

328

Nicaragua Occupation

1927-1933

48

World War 2

1941-1945

405,399

Korean War

1950-1953

36,516

Vietnam War

1955-1975

58,209

El Salvador Civil War

1980-1992

37

Beirut

1982-1984

266

Grenada

1983

19

Panama

1989

40

Gulf War

1990-1991

258

Operation Provide Comfort

1991-1996

19

Somalia Intervention

1992-1995

43

Bosnia

1995-2004

12

NATO Air Campaign Yugoslavia

1999

20

Afghanistan

-2001

1,893 (02/2012)

Iraq

2003-2011

4,484 (02/2012)

합계

 

624,679

주요 전쟁 미군 사망자 수

 

1775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이 개입한 주요전투에서 미군의 사망자 수는 약 625,000명이다수없이 많은 전쟁 중 미군이 1만 명 이상 사망한 경우는 내전이라 할 수 있는 독립전쟁미영전쟁남북전쟁을 제외하면 멕시코와의 전쟁1차 세계대전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뿐이다.

 

그렇다면 상대국의 사망자 수는 어느 정도일까그리고 상기 전쟁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미국인 희생자 수는 몇 명 정도가 될까아쉽게도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그러나 몇 가지 다른 데이터를 활용하면 추정치를 예상해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1천백만여 명추축국은 57십만여 명이 사망했다그 중 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나라는 소련중국독일일본 등이다그러나 미국의 사상자 수는 사십만 명이 조금 넘을 뿐이다미 본토에선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만일 미 본토에 까지 전쟁이 확대되었다면 적어도 4-5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연합국

11,033,779

남한 소계

988,403

미국

405,399

사망

227,748

벨기에

7,760

부상

717,083

소련

7,500,000

실종

43,572

영국

329.208

유엔군 소계

157,807

호주

23,365

사망

36,813

중국

2,200,000

부상

114,816

캐나다

37,476

실종

6,178

폴란드

320,000

북한 소계

611,306

프랑스

210,571

사망

294,151

추축국

5,708,493

부상

225,949

독일

3,500,000

실종

91,206

루마니아

300,000

중국군 소계

921,826

불가리아

10,000

사망

184,128

오스트리아

380,000

부상

715,872

이탈리아

77,493

실종

21,826

일본

1,219,000

사망합계

742,840

핀란드

82,000

부상합계

1,773,720

헝가리

140,000

실종합계

162,782

 

 

(합계)

(2,679,342)

 

 

남한민간인

990,995

 

 

북한민간인

2,680,000

 

 

(합계)

(3,670,995)

(총합계)

(16,742,272)

(총합계)

(6,350,337)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희생자 수

 

상기표의 제2차 세계대전데이터는 민간인 사망자를 뺀 숫자다2차 세계대전은 중립국이 별로 없고 더욱이 유태인 학살 사건을 포함해야 되기 때문에민간인 희생자는 통계를 낼 수 없다고 한다만약 예상 민간인 희생자 수를 더하면 미국인 희생자 수는 어느 정도일까게다가 최근 들어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례가 대거 발굴됨으로써 민간인 희생자 수는 짐작도 하기 어려운 지경이다필리핀 전쟁한국전쟁월남 전쟁 등에서 학살된 민간인 수 역시 추측만 무성했었지만최근 들어 그 실체가 조금씩 들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이 참전했던 모든 전쟁이 미 본토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하면미군의 희생자 수는 적어도 천만 명을 웃돈다고 보아야 될 터이다여기에 민간인 희생자 예상치를 덧붙이면 현재 미국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결국 결론은 자명하다미국이 수많은 전쟁을 저지르고 현재도 미래의 전쟁을 계획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그들의 본토와 전쟁은 무관하다는 확신 때문임에 틀림없다이것이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일과성으로 그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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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달러에 배를 전세 내 유람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0/16 10:06
  • 수정일
    2015/10/16 10:0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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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삿갓 북한 방랑기> 동포시인 정찬열과 떠나는 북한 여행 (6)
정찬열  |  noproblem101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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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5  08: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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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열 / 재미동포 시인

 

연재를 시작하면서

 지난 해 10월, 3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을 비롯, 개성, 사리원, 묘향산, 원산, 금강산, 함흥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북녘 동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생생한 이야기를, 앞으로 스물한 번에 걸쳐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이다.  분단 70년을 맞는 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해가 되길 바라면서 얘기를 시작한다. / 필자 주

 

향산읍 풍경- 향산역 광장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붐벼


10월 9일(목) 맑음. 북한 방문 6일째다. 5시 기상.  6시에 읍내 산책을 나갔다. 새벽달이 떠 있다. 무슨 미련이 남았기에 저렇게 머뭇거리고 있을까.

읍내가 새벽 어스름에 잠겨있는데 김일성 동상이 서 있는 곳만 불빛이 환하다. 저 앞쪽에 큰 건물이 보이기에, ‘저게 무슨 건물일까’혼자 말 비슷하게 했는데, 마침 내 곁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들었던지 ‘고등학교 건물’이라고 말해 준다. 80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이 새벽 어느새 그분이 내 곁을 지나게 되었는지 사실은 좀 놀랐다.

그 분에게 초등학교는 어디쯤 있냐고 물었더니, “난 외지 사람이래요, 딸내 집에 와 있시유.”대답한다. 몇 발자국을 걸어가니 로라스케트장이 있다. “와우, 이 시골에 로라스케트장이 다 있네”했더니, 그 할머니 내 말을 받아 ”모두가 우리 원수님 덕택이디요“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저쪽으로 총총 사라져가신다.

   
▲  아동공원, 어린이 놀이터다. [사진제공-정찬열]

아동공원 앞을 지난다. 어린이 놀이터다. 여러 가지 놀이 기구가 설치되어있다. ‘생선국집’간판이 전광판이라 멀리서도 보인다. 새벽 식사를 파는 집인지 모르겠다.

향산 식료품 상회를 지나니 역전이 나온다. 역 광장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백여 명 남녀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잠바 깃을 세우거나 보자기로 머리를 싸매며 쌀쌀한 새벽을 견디고 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수학여행을 왔다고 한다. 어제 밤새워 기차를 타고와 새벽에 내렸단다. 밤새 기차에서 시달렸을 텐데, 별 대단찮은 얘기를 하면서도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웃어대는 저들의 얼굴에 행복이 넘쳐난다.

아, 수학여행. 저맘때쯤의 내가 생각난다. 당시 우리도 중 2학년이 되면 수학여행을 갔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석에 누어계시는데 수학여행 가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지는 서울. 다음에 크면 서울이야 가볼 수 있는 곳 아니냐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지만, 며칠을 풀 죽어 지내야 했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수학여행이 끝난 다음, 아이들이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화제로 삼을 때, 그리고 여행 중 찍은 사진을 나누어 갖거나 돌려보던 때였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오래가는가 보다. 그런 일들은 잘 잊혀지지도 않는다.

역전 사진관, 공업품 상점이 보인다. 공업품 상점의 간판 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현지지도하신 공업품상점 주체58(1969년)7월 21일”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최고 권력자가 다녀가는 곳은 저렇게 역사가 되는 모양이다. 국토종단 때 문경 새재를 넘어가는데, 문경 시내에 20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하숙 했던 집을 ‘청운각’이란 표지판을 붙여,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던 것을 보았다.

향산군 체신소 간판이 눈에 띈다. 우체국인 모양이다. ‘오늘의 신문’간판이 눈에 띄는데 지방 신문사인 모양이다. 향산군인민병원 앞을 지난다. 일찍 일어난 아주머니 한 분이 리어카를 끌고 지나간다. 리어카에 꽉 차도록 무언가 실었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집 앞을 비로 쓸고 있다. 멀리 묘향산 봉우리들이 산중턱에 낀 안개 띠를 뚫고 봉긋하게 솟아있다.

향산 소학교에 도착했다. 3층 건물인데 기와지붕이다. 내려 쓴 학교 이름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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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만명 영향권에 세계 최대 원전단지 웬 말”

그린피스 “원전 말고 딴거”, 부산항 입항

김정수 2015. 10. 14
조회수 1011 추천수 0
 

"아름다운 나라, 멋진 사람들 위험 놓여 안타까워요" 활동가 선원 입 모아

“340만명 영향권에 세계 최대 원전단지 웬 말”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를”

gr1.jpg» 그린피스의 레인보워리어호가 13일 고리원전 부근 해상에서 시위를 벌이자 해경이 이를 가로막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한국은 정말로 아름다운 나라이고, 한국인들은 정말 멋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와 멋진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진국 중 하나인 한국이 높은 기술력을 통해, 위험한 원전이 아닌 안전하고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 안젤로 무스코는 13일 아침 고리 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뒤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는 한국,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터키 출신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고리원전 앞바다에 닻을 내린 레인보워리어호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신고리 3·4호기 앞 해안에 상륙해 ‘인자 원전 고마 지라, 쫌!(NO NEW NUKES)’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펼치는 시위를 벌였다.
 

05416968_R_0.jpg» 그린피스의 레이보워리어호가 반핵 펼침막을 달고 고리원전 단지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날 상륙 시위의 모선이 된 레인보워리어호는 그린피스 국제본부가 운영하는 3척의 환경감시선 가운데 하나다. 그린피스가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으로 원전에서 벗어나자며 시작한 ‘딴거하자 캠페인’에 반핵 시위와 일반인들에게 배 내부를 공개하는 ‘오픈 보트’ 등을 통해 참여하려고 지난 9일 부산항에 들어왔다. 무스코는 이 배의 2등항해사다.
 

반핵을 핵심 활동으로 삼는 그린피스에 한국은 감시 대상 1호 국가다. 한국 원전 산업의 ‘세계적 위상’ 때문이다. 한국은 6기 이상의 원자로가 한곳에 집결된 세계 11개 원전 집적단지 가운데 4개를 보유한 나라다. 이미 완공된 신고리 3·4호기가 내년까지 모두 가동에 들어가면 고리 원전단지는 캐나다의 브루스 원전단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전단지가 된다.

 

gr0.jpg» 11일 레이보워리어호 선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린피스의 숀 버니 수석 원전 캠페이너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고수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활동가는 11일 레인보워리어호 선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전단지 반경 30㎞ 안에 사는 사람이 브루스 원전단지는 3만여명에 불과한 반면, 고리 원전은 340만명이 넘는다. 이런 곳에 신고리 5·6호기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뱃머리에 무지개와 흰 비둘기가 그려진 레인보워리어호는 그린피스의 움직이는 상징물이다. 1985년 프랑스 정보기관에 의해 폭파돼 침몰한 환경감시선의 이름, ‘무지개 전사’를 이어받은데다, 닻과 돛은 물론이고 나사 하나까지 전세계 10만명이 넘는 후원자들의 기부를 통해 갖춰졌기 때문이다.

 

05416983_R_0.jpg» 그린피스의 반핵 운동을 상징하는 레인보워리어호. 주 동력은 2개의 돛이며 친환경적으로 설계됐다. 사진=김봉규 기자
 

레인보워리어호는 다른 용도로 지어진 선박을 개조한 앞선 환경감시선들과 달리 그린피스가 직접 설계해 2011년 건조했다. 그러다 보니 동력원은 물론 배 외부에 칠하는 페인트에서부터 화장실과 주방에서 나오는 오폐수 처리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선박에서 가능한 최고 수준의 친환경 요소가 적용될 수 있었다.
 

총톤수 855t, 선체 길이 58m의 레인보워리어호의 주 추진장치는 54m 높이의 돛대 2개에 펼쳐지는 1255㎡의 흰 돛이다. 디젤엔진도 물론 달려 있지만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람이 없거나 급히 속력을 올려야 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gr2.jpg» 11일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레인보워리어호 갑판에 모인 선원들과 자원봉사자. 왼쪽부터 선장 피터 윌콕스(미국), 기관정비사 자비네 슈타이너(독일), 요리사 루슬란 야쿠셰브(우크라이나), 1등항해사 페르난도 로모(스페인), 무선통신사 요르단 제오르지에브(루마니아), 갑판원 로사노 필리피니(이탈리아), 자원봉사자 카이제 첸(대만), 갑판원 아피살로메 와카니사우(피지). 나머지 선원들은 ‘오픈 보트’ 행사를 진행하느라 함께하지 못했다.사진=김정수 기자

 

피터 윌콕스 선장은 11일 부산항 제1부두에서 열린 오픈 보트 행사에서 “레인보워리어호는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온난화와 해양 산성화를 피하기 위해 항해 거리의 80%가량은 엔진을 끈 상태에서 돛으로만 항해한다”고 소개했다.

 

배 기관실을 안내한 콜롬비아 출신의 2등기관사 루이스 바스케스는 “대부분의 배가 먼바다에서는 오폐수를 그대로 바다로 쏟아버리지만, 레인보워리어호는 생물학적 방식으로 정화한 뒤 자외선으로 살균 처리해 방류한다”고 말했다. 염소 소독제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해양 생태계에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려다.

 

레인보워리어호는 미국 플로리다 출신인 윌콕스 선장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루마니아, 스페인, 콜롬비아, 피지 등 14개국에서 온 16~18명에 의해 움직인다. 이 가운데 자원봉사자 2~3명을 뺀 나머지가 그린피스 활동가인 정규 선원이다. 좀더 가치있는 일을 찾아 상업용 선박에서 일할 때보다 30%가량 낮은 급여를 받고도 즐겁게 일하는 이들이다.

 

05416979_R_0.jpg»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13일 오전 일반인들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발전소 신고리 3·4호기 앞 해안방벽 근처 철조망 앞에서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 계획 철회 등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 콜럼비아,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터키 출신 활동가들은 2개 원전이 추가되는 것을 반대하는 의미로 ‘인 자 원전 고마 지라, 쫌!’이라고 쓴 펼침막을 펼쳐보였다. 부산/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985년 폭파된 첫번째 레인보워리어호의 선장이기도 했던 윌콕스 선장은 “미국, 러시아,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사고가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반경 30㎞ 안에 300만명 이상이 사는 곳에 원자로를 집결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원전 확대 정책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다른 활동가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배의 전기설비를 책임지고 있는 플로린 포페스쿠는 “사고가 아니라 폐기물 처리 문제만 보더라도 한국 정부가 점점 더 많은 원전을 선택하는 것은 나쁜 선택”이라며 “한국 정부가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동안 상선에서 근무하다 “좀더 세상을 위해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5년 전 그린피스에 합류했다.
 

1등항해사 페르난도 로모 역시 “원전 확대 정책은 한국이 미래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출신인 로모는 상선과 유조선 등에서 일하며 그린피스를 후원해오다 2007년에 아예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으로 일터를 옮겼다.

 

gr3.jpg» 9일부터 부산항 제1부두에 정박해 있는 레인보워리어호. 배 위 갑판에 보이는 사람들은 11일 열린 오픈 보트에 참석한 시민들이다. 사진=김정수 기자
 

레인보워리어호는 20일까지 부산항에 머물며 17~18일 한차례 더 오픈 보트 행사를 열고, 22일 인천항으로 이동해 24~25일 오픈 보트 행사를 한 뒤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오픈 보트에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누리집(www.greenpeace.org/korea/shiptour2015)을 통해 사전 신청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부산/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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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군사 쿠데타, 딸은 역사교육 쿠데타’

[논평] 정부-여당은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뉴스프로 | 2015-10-14 19:59:3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논평] 정부-여당은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드시 심판 받을 것

Wycliff Luke 기자

사진 : SBS 화면 캡처

난데없는 역사전쟁이다. 교육부가 지난 10월12일(월) 전격적으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전쟁을 주도한 장본인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이들을 뭉뚱그려서 집권세력이라고 하자.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추진하는 의도는 명백하다. 먼저 국정화 시도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에 두고 있다. 지난 9월 한국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42%로 36%에 그친 여당 지지론에 비해 우위를 보였다. 사실 이런 여론은 사필귀정이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부터 지금까지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원정 성추행을 신호탄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국정원 도·감청 의혹 등등 국가기강을 뒤흔드는 파문이 하루가 멀다하고 불거져 나왔다. 이런 와중에 정권은 철저한 사실규명 및 반성, 재발방지 약속보다 대립을 부추겨 위기를 모면해왔다. 현 정권의 국정화 시도 역시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총선 정국을 이념대립으로 몰아가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국정화 시도의 두 번째 의도는 집권세력 수뇌부의 과거 세탁이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천황에게 개와 말처럼 충성하겠다는, 이른바 ‘견마지로’의 충성서약을 한 뒤 일군에 입대해 독립군을 토벌한 이력의 소유자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이후 18년의 집권기간 동안 철권통치로 일관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김 대표는 당 지도부에 오르는 순간부터 부친인 김용주(일본명 가네다 류조)의 친일 행적 논란이 고개를 들다가 급기야 <뉴스타파>의 심층 보도로 그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살아 있는 권력인 박 대통령과 차기 대권을 넘보는 김 대표 공히 부친의 친일행각을 미화할 나름의 필요성이 있는 바, 이번 정부와 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강행처리는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임이 명백하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발표되기 무섭게 어버이연합 등 그간 정권의 보위부대를 자처해 오던 극우 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이에 앞서 정부-여당은 기존 검인정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낙인찍으며 군불을 땠다. 이런 양상들은 과연 이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역사는 해석의 문제다. 과거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고 역사라고 하지 않는다. 특정한 관점에 따라 과거 사실을 면밀히 따져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선별하고 기술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다. 이런 맥락에서 E.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시각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게 마련이다. 더 확대해서 우리 민족이 걸어온 지난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모름지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런 다양성을 용인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존 교과서가 잘못됐다고, 국가가 나서서 관점을 하나로 모은 다음 이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 군주가 절대권력을 가진 조선 시대에서도 임금은 사초(史草)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조선 시대보다 진보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다른 한편으로 교과서 국정화는 대외관계, 특히 한일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위안부 등 과거사를 빌미로 아베 일본 총리와 그 어떤 접촉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박 대통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이런 행태는 1930~40년대 자신들이 벌인 침략전쟁을 미화하려고 ‘자학사관’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극우세력과 다를 바 없다. 일본과 국제사회가 타자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라고 강요하면서 아버지와 관련된 어두운 과거를 세탁하려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볼까?

역사는 정파를 초월해 존재한다. 만약 정부-여당의 정치적 계산대로 교과서를 뜯어 고치겠다면, 앞으로 계속 이 나라의 역사는 정권의 향배에 따라 수정될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이 나라는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젊은이들은 일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땅에 발붙일 곳이 없어 목숨을 걸고 공장 굴뚝이나 전광판, 크레인에 오른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가족들은 1년 넘게 거리에서 방황 중이고,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들은 혹시 우리 아들이 군에서 횡행하는 가혹 행위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이런 와중에 난데없는 역사전쟁이라니, 정부-여당 모두 무슨 생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지 모르겠다. ‘위기’를 뜻하는 영어 낱말 ‘crisis’는 그리스어 ‘크리시스’(κρίσις)에서 유래했다. 이 낱말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손대려는 세력은 심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이제 심판만 남았다.

 


 

NYT,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 딸은 역사교육 쿠데타’
-박근혜 정권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민사회 반발 자세히 전해
-박정희 일군 복무 등 특권층 은폐, 군사독재 미화 의도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에 대해 세계 각국 언론들의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영국의 BBC에 이어 세계적인 권위지인 뉴욕 타임스도 이 문제를 주목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12일 ’South Korea to Issue State History Textbooks, Rejecting Private Publishers-
한국 정부, 검정 교과서를 거부하고 국정교과서 발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 정부가 한국 독재시대의 과거로 교육을 되돌리고 있다’고 비난하는 시민사회와 역사학계 등 한국 국민들의 반발을 전하며 이러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는 배경을 상세하게 전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쟁이 주로 20세기 초의 일본의 식민 통치, 그리고 결코 평탄치 않고 때로 피로 물들기도 했던 한국의 민주화를 향한 행보를 포함한 한국 근대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지적하고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1979년까지 고문과 계엄령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를 포함한 한국의 과거 군사독재자들에 대해 서술한 방식에 특히 불만을 갖고 국정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독재와 유사하다며 “부친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제 딸은 역사교육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이것은 친일협력과 과거 독재를 지지하는 자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준비해온 역사 쿠데타이다”라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의 말을 그대로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검정 역사교과서가 ‘자학적 역사관’을 가진 좌편향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입장도 소개하며 이 교과서들이 일본 식민주의자들과 협력, 한국 전쟁 기간 중 양민 대량학살 및 독재자들 지배하의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같은 최근 과거사에 대한 숨겨진 측면 등을 깊이 파고들어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고 분석했다.

박근혜와 친일 매국 세력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영국 BBC도 한국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통제하려 한다고 보도하고 나서는 등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역사왜곡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근혜와 그 정권 하수인들의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오히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일본제국군인 복무와 독재를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리고 친일 청산이 되지 못한 채 친일의 후손들이 특권층으로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확인시켜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친일청산의 독립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LJwk4S

South Korea to Issue State History Textbooks, Rejecting Private Publishers
한국 정부, 검정 교과서를 거부하고 국정교과서 발행

By CHOE SANG-HUN
OCT. 12, 2015

Students at a high school in Seoul, South Korea. The government’s administrative directive to wrest control over history textbooks from private publishers comes after months of heated public debate over how to teach children history. CreditEd Jones/Agence France-Presse — Getty Images
한국 서울의 고교생들. 사설 출판사들로부터 역사교과서의 집필권을 빼앗아오겠다는 이 행정지침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 것인지를 두고 지난 몇 달 동안 뜨거운 공개 토론이 계속된 후 발표됐다.

SEOUL, South Korea — South Korea said on Monday that beginning in 2017, its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would be taught history from government-issued textbooks, prompting criticism that President Park Geun-hye’s conservative government was returning education to the country’s authoritarian past.

한국, 서울 – 한국 정부는 월요일 2017년부터 중고교 학생들이 정부가 발행한 역사교과서로 배우게 될 것이라고 발표해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 정부가 한국 독재시대의 과거로 교육을 되돌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The administrative directive to wrest control over history textbooks from private publishers comes after months of heated public debate over how to teach children history. The controversy has focused largely on how to characterize the history of modern Korea, including Japan’s colonial rule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South Korea’s tumultuous, often bloody march toward democracy.

사설 출판사들로부터 역사교과서의 집필권을 빼앗아오겠다는 이 행정지침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 것인지를 두고 지난 몇 달 동안 뜨거운 공개 토론이 계속된 후 발표됐다. 이 논쟁은 주로 20세기 초의 일본의 식민 통치, 그리고 결코 평탄치 않고 때로 피로 물들기도 했던 한국의 민주화를 향한 행보를 포함한 한국 근대사에 초점을 맞춘다.

For years, conservative critics have charged that left-leaning authors poisoned the current textbooks and students’ minds with their “ideological biases.” The critics were especially upset with the way the textbooks described North Korea and the military dictators who once ruled South Korea, including Ms. Park’s father, Park Chung-hee, who seized power in a 1961 coup and remained in control using torture and martial law until 1979.

지난 수년 동안 보수 측 비평가들은 좌 편향 저자들이 현 역사교과서와 학생들의 정신을 자신들의 “사상적 편견”으로 오염시켰다고 비난해왔다. 비평가들은 이 교과서들이 북한에 대해, 그리고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1979년까지 고문과 계엄령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를 포함한 한국의 과거 군사독재자들에 대해 서술한 방식이 특히 불만이었다.

But opponents of Ms. Park, including some civic groups and regional education leaders, vowed to protest the government’s move, which they said would embarrass the country globally by creating a textbook system similar to the one in North Korea.

그러나 시민단체들과 지역 교육계 지도자들을 포함해 박 대통령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저항하겠다고 선언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은 북한과 유사한 교과서 제도를 만들어내 전 세계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The main opposition party said it would work on a bill to ban the government from writing textbooks. But Ms. Park’s party, which dominates the National Assembly, supports government-issued textbooks.

제1야당은 정부가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여당은 국정교과서를 지지한다.

“The house is not just leaking or requires small repairs here and there, but its very foundation and design are wrong,” the vice prime minister and education minister, Hwang Woo-yea, said during a nationally televised news conference on Monday, explaining why textbooks written by the government should replace the current books.

“집이 단순히 물이 새거나 여기저기 작은 수리를 요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근간과 디자인이 잘못됐다”고 황우여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월요일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발행한 교과서가 현 교과서를 대체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며 말했다.

Ms. Park’s critics said the idea smacked of her father’s dictatorship, during which the government wrote history textbooks and used them to glorify his coup as a “revolution” and to justify his prolonged rule. These critics fear that Ms. Park’s government will use the new textbooks to stifle opinion and whitewash the legacy of the old conservative elites, including her father, who served as an officer in Japan’s colonial military before overseeing South Korea’s rapid economic growth.

박 대통령에 대한 비평가들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집필해 자신의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시키고 장기 집권을 정당화하는 데 이를 이용했던 박 대통령 아버지의 독재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박 정부가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데, 그리고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진두지휘하기 전 일본 제국 군대의 장교로 복무한 바 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 오랜 보수 특권층의 행적을 은폐하는 데에 새 교과서를 사용할 것을 우려한다.

“The father staged a military coup, and now the daughter is engineering a coup in history education,” said Park Han-yong, a chief researcher at the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 based in Seoul. “This is a history coup that supporters of pro-Japanese collaboration and the past dictatorship have been preparing for 10 years.”

서울의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부친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제 딸은 역사교육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며 “이것은 친일협력과 과거 독재를 지지하는 자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준비해온 역사 쿠데타이다”고 말했다.

The center recently revealed documents that it said showed that the father of Kim Moo-sung, leader of the president’s party, was a rich businessman and pro-Japanese collaborator who once urged Koreans to make donations to finance warplanes for Japan’s World War II military.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통령이 속한 당의 대표인 김무성의 부친이 부유한 사업가로서 과거 한국인들에게 2차대전 일본 군대가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기부를 촉구했던 친일 협력자였음을 보여준다는 서류를 폭로했다.

Reflecting a prevailing conservative view here, Mr. Hwang said on Monday that textbooks should focus on teaching “the proud history of South Korea, which has achieved both democrat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in the shortest time in the world history.” His deputy, Kim Jae-choon, said that current textbooks uncritically cited North Korean propaganda and failed to make it clear that the Korean War was started by the North.

일반적인 보수 측의 시각을 반영하며, 황 장관은 월요일 교과서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둘 다 이뤄낸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춘 차관은 현 교과서가 비판 없이 북의 선전 문구를 인용하고 한국전을 북한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One textbook, for example, used the term ‘dictatorial’ only twice when writing about North Korea but as many as 28 times about South Korea” under its military rulers, Mr. Kim said.

“예를 들어 한 교과서는 북한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용어를 단 두 번 사용하면서 군 출신 지도자의 집권하에 있던 한국에 대해서는 28회나 사용했다”고 김 차관은 말했다.

Under President Park Chung-hee, South Korea required schools to use a single government-issued history textbook. But since 2010, schools have been free to choose among several privately published textbooks, although the Education Ministry still has to approve the books.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학교들은 정부가 발행한 단 한 가지의 역사교과서만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로 각 학교는 사설 출판사에서 발행하고, 그렇지만 여전히 교육부의 승인을 거친 몇 가지의 교과서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Some of the books delved into long-hidden aspects of the recent past: collaboration with Japanese colonialists, mass killings of civilians during the Korean War and the abuse of political dissidents under the dictators. Conservatives criticized what they called “masochistic historical views” in the books and accused the authors of inculcating youngsters with “left-leaning nationalism” that they said emphasized ethnic affinity with North Korea while casting an unfavorable eye on the role of the United States in modern Korean history.

역사교과서들 중 일부는 일본 식민주의자들과 협력, 한국 전쟁 기간 중 양민 대량학살 및 독재자들 지배하의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같은 최근 과거사에 대한 숨겨진 측면 등을 깊이 파고들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학적 역사관”이라고 부르며 이들 역사교사서의 내용을 비난했고, 이 교과서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인 시각을 보여준 반면 북한과의 민족적 동질감을 강조한다고 주장하며 “좌 편향적 국가주의”를 청소년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고 저자들을 비난했다.

Last year, Ms. Park warned against “ideological prejudices” in the current textbooks. The Education Ministry has since asked the publishers to make many changes in the texts, but their authors filed lawsuits against the interference.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교과서들이 가진 “사상적 편견”에 대해 경고했다. 이후 교육부는 교과서의 많은 부분을 수정하라고 출판사들에 요구했으나 교과서 집필진들은 그런 간섭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The political opposition said the government’s decision deviated from the standard practice in advanced countries. They called on Mr. Hwang to step down.

야당은 정부의 결정은 선진국가들의 통상적인 관례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그들은 황우여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On Monday, Mr. Hwang said his ministry would soon invite a panel of historians to write new textbooks, as well as a broad range of people to review them, to ensure that the books would be “objective and balanced.”

월요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곧 교육부가 새로운 교과서를 집필할 일단의 역사학자들을 인선하고 각계각층의 인사를 초빙해 새 교과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BBC, 한국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보도
– 야당 및 단체들,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 미화 왜곡
– 역사 교과서 국정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 위반한 것
– 새누리당과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좌편향적 반미-종북 사상 막으려 해


영국 BBC는 12일 한국 정부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2017년부터 국정화한다고 발표했음을 보도했다.

기사는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많은 야당의원들과 학생 단체 및 학계에서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새누리당과 정부가 현재 8종의 역사 교과서는 좌편향적이며 반미 및 종북 사상을 고무시킨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국정 역사 교과서는 정부가 지목한 교사와 학자들이 집필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는 한국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이라는 야당과 시민 학생들의 주장도 함께 보도했다,

BBC는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문제는 지역적 분쟁과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는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BBC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bc.in/1jjZ5so

South Korea to control history textbooks used in schools
한국 정부, 중고교 역사교과서 통제

Opposition politicians have protested against the plans. The placards read: “Objection to history textbooks that distort history”
야당 정치인들이 역사교과서 통제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펼침막: “역사 왜곡 교과서 반대!”

South Korea’s government has announced controversial plans to control the history textbooks used in secondary schools.

한국 정부는 중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를 통제하겠다는, 논란 많은 계획을 발표했다.

Currently, secondary schools can choose from textbooks published by eight different publishing companies.

현재 중고등학교들은 8개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교과서들 중에 선택할 수 있다.

However, the government says that from 2017, all secondary schools must only use history textbooks issued by the state.

그러나, 한국 정부는 2017년부터 모든 중고등학교가 국가에서 발행한 역사교과서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The move has sparked fierce criticism from academics and opposition parties.

이 움직임은 야당과 학계에서 맹렬한 비난을 불러일으켜 왔다.

The government has argued that current history textbooks are too left-leaning and encourage anti-American and pro-North Korea feelings, the BBC’s Kevin Kim in Seoul reports.

한국 정부는 현재 역사 교과서들은 너무 좌파 성향이며 반미, 친북 감정을 고무시킨다고 주장해왔다고 서울에 있는 BBC의 케빈 킴이 보도한다.

‘Distorting history’

역사 왜곡

The new textbook, which will be called The Correct Textbook of History, will be written by a government-appointed panel of history teachers and academics.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불릴 새 교과서는 정부가 지목한 역사 교사들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집필될 것이다.

Opposition politicians and some academics have protested against the move, accusing the government of “distorting history”.

야당 정치인들과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에 반대해왔다.

A student group also held a rally on Saturday, telling the Korea Times: “Such a textbook will allow the government to interfere with the interpretation and teaching of history… This infringes on the independence and political neutrality of education guaranteed by the Constitution.”

학생 단체 또한 코리아 타임스에 “그러한 역사 교과서는 정부가 역사의 해석과 교육을 간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며…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는 것이다”고 말하며 토요일 집회를 열었다.

Hwang Woo-yea, chairman of the ruling Saenuri Party, said in September that the government-issued textbooks would be “neutral” and that the change was necessary because “students and their parents are discontented with the current textbooks”, Yonhap news agency reported.

집권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역주: 황우여는 교육부 장관)는 지난 9월 국정교과서는 “중립적”일 것이고 교과서 변경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현재 교과서들에 만족스러워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했음을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History is a frequently contested issue in East Asia – often fuelling territorial disputes and diplomatic rifts in the region, including in China and Japan, our correspondent says.

역사는 동아시아에서 빈번하게 논쟁이 되는 문제로서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이 지역에서 종종 지역적 논쟁과 외교적 마찰을 야기시킨다고 BBC 통신원은 말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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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 씨를 가족의 품으로

 
 
 
반인권 반인륜적 행위 책물어야
 
권오헌 명예회장 
기사입력: 2015/10/14 [20: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기고>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지난 8월 27일. 종로 탑골 공원 앞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민가협 1039회 목요집회’가 열렸다. 양심수가족들의 모임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주최하는 목요집회는 부당하게 구속된 양심수의 전원 석방과 양심수를 잡아가두는 반민주적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목표로―1993년부터 이어지고 있는―정의·평화·인권을 지키는 파수대 역할을 해오고 있다.

 

목요집회는 또한 양심수 석방과 반민주 악법철폐 촉구 말고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민중의 생존권과 사회 진보를 위한, 갈라진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 각계의 지향과 요구를 받아 안아 이를 세상에 알리고 추동하며 고발하고 호소하는 신문고 현장이기도 하다.
“저는 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요?”

 

그런데 이날 목요집회에서 예정에 없던 특별한 여성발언자의 가슴 울리는 호소를 듣게 되었다. 바로 탈북자 아닌 탈북 신분으로 강제된 채 가족과의 생이별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디고 있는 김련희 여성이었다.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들은 이 특별한 발언자를 처음 보았지만, 그의 절규를 들으면서 이미 <한겨레신문>에서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란 제목으로 상세히 보도되었고(7월 4일), 기독교회관에서의 ‘김련희 송환촉구 종교인 기자회견’(8월 3일)을 통해 많이 알려진 또 다른 분단시대의 억울한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다.

 

김 여성은 차분하게 기막힌 사연을 말했다. 2011년 여름 중국에 친척방문 여행 중 탈북 브로커의 유혹에 속아 본의 아니게 남한에 끌려온 일과 도착하자마자 국정원에서 ‘본의 아니게 속아서 잘못 왔으니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단식을 하며 요구했지만, 끝내 거부당했을 뿐 아니라 ‘신원특이자’라며 ‘여권’도 내주지 않았던 일, 함정에 빠진 절망감으로 한때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던 일,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이 날벼락 같은 현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어떻게든 가족이 있는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집념으로 ‘밀항’을 시도하고 ‘위조여권’을 만들려 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 일들을 말했다.

 

▲ 강제로 유인 된 김련희 여성을 돌려보내는 것은 인권과 인도주의적 원칙에 의해 너무도 당연하다.     © 지줏;보 이정섭 기자

 

마침내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이 나라 법을 전혀 모른 채 ‘간첩’이라도 되면 ‘강제추방’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17명의 탈북자들의 주소·성명을 수집하곤 경찰에 전화를 걸어 ‘북측에 보낼 정보를 수집했으니 빨리 멈춰 세워 달라’고 스스로 간첩신고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과 그 때문에 국가보안법에 걸려 간첩 감투까지 쓴 채 법정에 세워지게 된 사연들을 말했다.

 

김련희 여성은 이 같은 자신의 처지와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밝힌 바 있었다.

 

“늙으신 부모님은 죽기 전에 딸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며 아픈 몸을 하루하루 악착같이 버티고 계시고, 딸자식은 4년 세월을 돌아오지 않는 야속한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요? 왜 사랑하는 부모님과 딸을 만날 수 없는 걸까요?

 

우리 민족은 왜 이토록 가슴 찢어지는 생이별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으로 태어나 자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이것을 가로막는 것은 반인륜적, 반인권적, 반민주주의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어떤 자유나 물질적 유혹이 온다 해도 내 가족과 가정보다 소중하지 않습니다. 저는 남북의 체제·이념을 초월해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통일부의 합법적인 절차 허가를 받아 가족의 품으로 가고 싶습니다. 이 땅에 인권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정의와 민주주의가 존재한다면, 부디 제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목요집회에서의 발언 요지도 이와 비슷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종로 거리를 지나다 집회를 지켜보며 김 여성의 사연을 듣고 있던 시민들도 “사람 세상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혀를 찼다.

 

<CNN>에서도 관심

 

이 같은 김련희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과 호소에 언론들도 나라 안팎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외신 <CNN>은 9월 24일 평양에서 김 여성의 딸과 남편을 취재한 영상과 그 영상을 보고 오열하는 남녘에 묶여 있는 김 여성의 모습을 방송하며, 단란했던 가정에서 딸과 어머니가,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생이별되어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김 여성의 평양에 있는 딸, 리연금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왜? 왜? 왜 어머니가 돌아오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요?”라고 절규했다. 남편 리용금 씨는 “부모님과 딸 그리고 사회주의 조국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돌아오라고 당부하고, 여러 번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사무치게 그리웠던 가족의 애끓는 모습을 본 남쪽의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이틀 동안을 몸져누웠다고 했다. 김 여성은 말했다. “<CNN> 기자가 북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4년 만에야 영상으로 가족들 모습을 보았던 심정을 털어 놓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누가 감히 남의 일이라며 못 본 체 할 수 있으랴! 분단시대에기에 감내해야 한다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 시기도 아닌 21세기 문명 시대, 인위적으로 가족을 생이별시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지우게 하는 이 반인권·반인륜 행패를 어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당장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본인 의사에 반하여 불법적으로 끌려오기 전 상태로 당장 원상 복구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부당국은 김 여성의 호소에 대해 “한국 정착 의사를 밝혔다”며 송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8월 5일 정계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기본적으로 탈북민인 이분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에는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고, 그 의사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그 뒤에도 “법을 새로 만들면 모를까. 현행법 체계에서는 송환시킬 수 없다. 탈북과정에서 보인 의사를 수차례 확인했으므로 이를 뒤엎을 근거가 없다”고 억지 대한민국 국민임을 주장했다.

 

“나는 보호받는 게 아니라 억류되어 있다”

 

과연 그러한가? 김련희 여성이 탈북하여 정착하려 했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련희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한국에 입국한 정황은 김 여성 자신의 한결같은 언론사 등 인터뷰 말고도 국가기관인 법원의 판결문, 중국에서 함께 입국한 탈북자 등 여러 증언으로 입증된다.

 

먼저,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범균)는 김 여성의 이른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위에서 말한 탈북자 주소, 성명 수집 관련으로) 항소심 선고에서 “피고인은 입국 과정에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 재입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국하자마자 국가정보원을 찾아 재입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국으로부터 재입북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피고인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고 하여 김 여성이 국정원에 오자마자, 본의 아니게 속아서 왔음과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국정원도 김 여성의 본국 송환 요구에 ‘재입북 제도 장치가 없어 보낼 수 없다’고 한 점으로 보아 김 여성이 본의 아니게 한국에 왔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김련희 여성과 함께 입국한 탈북자 ‘ㅈ’씨의 증언이다. 김 여성과 함께 중국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오며 김 여성을 지켜본 탈북자 ‘ㅈ’씨는 “련희는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도로 북한으로 가겠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브로커가 련희의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브로커들은 문을 잠그고 지켰다. (련희가) 도망칠 형편이 못되어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온 것이다. 련희는 다른 탈북자와 다르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7월 4일)

 

또한 국정원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ㅇ’씨의 증언도 있다. 그는 “김련희가 여권이 안 나와서, 국정원에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국정원은 김련희가 합동신문센터에 있을 때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 해서 여권발급이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증언했다(한겨레신문, 7월 4일). 이 증언이 확인해주듯이, 국정원은 김련희 여성이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으므로, 여권을 내주면 외국으로 나갈까봐 ‘신원특이자’로 규정,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

 

다른 한편 이 같은 김련희 여성의 신병처리를 두고 국정원도 무척 고민했던 것으로 <한겨레> 취재진은 밝히고 있다. 그밖에도 김련희 여성을 ‘하나원’에서부터 돌보아온 적십자사 관계자도 “김 씨가 남한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다. 브로커에게 속아서 왔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한겨레신문 7월 4일).

 

이처럼 김 여성이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하려 했다는 통일부의 주장을 뒤엎을 반증들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김련희 여성은 “처음부터 남한에 체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기에 (자신은) 보호받는 게 아니라 억류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 본인 의사에 반하여 억지로 끌려와 사실상 억류되어 있다면,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이성적 판단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야만 시대가 아니라면, 인권을 보장하고 인륜을 어기지 않으려면, 여권을 빼앗기고 사실상 감금과 감시 속에 끌려오기 전 상태로 원상회복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김 여성이 죽어서라도 가겠다는 북녘 고향,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 품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북으로 송환시켜야 할 몇 가지 당위성

 

김련희 여성을, 북으로 송환시켜야 할 이유와 명분 등 그 당위성은 충분히 많다.

 

먼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을 인권 차원에서 송환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3조)고 했다. 또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나라(자국을 포함한)에서든지 떠날 수 있으며,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13조 2항)고 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도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든지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억류되지 아니한다’(9조 1항)했으며,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해서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자유로이 퇴거할 수 있으며(12조 2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자유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12조 4항)고 했다.

 

우리 헌법에서도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10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14조)고 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해외 이주의 자유, 바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여행하거나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거주 이전에 대한 권리 등 국제법 또는 국내법 조항을 열거하기 전에 인권이 옳게 보장되려면, 본인 의사에 반하여 억지 입국시킨 반인권, 반인륜 행패에 오히려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며, 피해자는 조건 없이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의 평등한 인격과 그 존엄성을 중시하면서, 인간애를 바탕으로 인종, 종교. 국적 등의 차이를 초월한 인류전체의 복지를 지향하는 그리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인도주의 정신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김련희 여성에겐 사경을 헤매며 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늙으신 부모님,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딸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마음을 단단히 하고 건강을 챙겨 가족과 조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남편이 있다. 부모자식 사이, 부부사이는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천륜이기도 하다. 어찌 사람 세상에서 천륜을 어길 수 있단 말인가.

 

전쟁터에서도 인도주의와 박애주의가 있다. 자연 재해로 흩어진 가족들도 아니다. 인간의 비인간적 행위로 가족들이 생이별되어 고통 받고 있다. 더구나 김련희 여성은 간경화의 어려운 투병을 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불안정하여 병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인도주의 정신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가족들에게 다시 행복의 웃음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참고로 북측은 자진 입북하여 북에서 살겠다고 하는 남쪽 주민을 설득시켜 가족과 친척이 살고 있는 남측지역으로 돌려보낸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마지막으로, 동포애 정신으로 보내주어야 한다고 한다. 비록 오늘 우리 민족은 본의 아니게 남북으로 갈리어 수많은 가족 친척들이 남북으로 흩어져 고통을 안고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니 빠른 시일 안에 자주통일 세상을 이루어야 할 수천 년을 한 핏줄로 살아온 혈연공동체이다.

 

남에 살든 북에 살든 해외에 살든, 그 어떤 이유로도 같은 동포로서의 유대감은 억지로 떼어놓을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끝내는 함께 나누어야 할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 같은 인도주의 실천을 통해서 남북관계 발전의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게 동포애 정신으로 송환시켜야 할 것이다.

 

리인모 노인과 비전향 장기수 63명 등 북송 사례 있어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송환시킬 수 있을까?

 

앞에서 보았듯이, 통일부는 ‘법을 새로 만들면 모를까, 현행법 체계에서는 송환시킬 수 없다’고 했고, 국정원은 ‘재입북 시킬 제도적 장치가 없어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정부 당국에서는 김련희 여성의 북송에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그러나 법이 없으면 새로 만들면 된다. 법이 먼저 있어 인간이 그 틀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인간의 필요 때문에 법을 만드는 것이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일을 하는 것도 구성원의 각종 활동의 필요 때문에 그러한 입법 활동을 하는 것이다. 현행법 체계에서 송환방법이 없다면, 법을 만들면 된다.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 1993년 3월 전쟁 포로였던 인민군 종군기자 리인모 노인을 북송할 때 ‘북한 방문증’을 이용했으며, 2001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송환 할 때도 ‘북한주민접촉 신고서’를 이용했다. 리인모 노인이나 63명 비전향 장기수가 남쪽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북송을 목적’으로 그 같은 형식을 빌렸던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구차한 변명을 할 게 아니라 문명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도주의 정신, 그리고 동포애 정신으로 김련희 여성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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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황교안 ‘日 자위대 한반도 진출 가능’ 발언 파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15 05:10
  • 수정일
    2015/10/15 05: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부득이한 경우 진출 허용?.. 네티즌 “반복되는 역사 무섭다”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황교안 국무총리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군 자위대의 진입과 관련해 “일본이 우리와 협의를 해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부터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벌어져 미국이 자위대 파견을 요청하면 거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같이 답했다.

황 총리는 “기본적으로 국익에 합당한 결정을 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리와 충분히 상의를 하지 않고 국제관계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며, 구체적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다만 그는 “다른 의도가 보인다면 그때는 또 우리 국익에 맞게 필요한 의견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이 “아주 심각한 말을 했다. 필요하면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라고 재차 묻자 황 총리는 “우리가 판단해서, 필요한 범위 안에서 부득이한 경우 상의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황 총리의 이같은 답변이 논란이 되자 그는 “정부 입장은 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일본 자위대의 입국이 용인되지 않는다고 하는 게 기본입장”이라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비판 반응들을 쏟아냈다,

한 네티즌(천년**)은 “정말 뼈 속까지 친일들이구나. 역사는 반복된다. 무섭다 무서워”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네티즌(고**)은 “그렇게 한국은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고 비꼬았다.

   
   
   
   

이 밖에도 “정말 노답이다”(이누**), “할말없네요 정말!”(twi**),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역사를 모르는 나라에는 미래가없다”(인**), “이 정권의 본색을 이제야 드러내는구나”(q**), “해방 후 친일파 척결하지 않은 결과”(ar***), “이게 무슨 소리야. 군 복무하신 분으로 총리 교체해주세요”(kevin****),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ser***), “일본군 부활→국정교과서→일본군 진출 허용. 누가 친일파 아니랄까봐 딱딱 맞네”(끼**) 등의 비판 반응들이 잇따랐다. 

 

[관련기사]

 
나혜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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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여성본부, 통일부 규탄 1인시위 나선다

6.15여성본부, 통일부 규탄 1인시위 나선다정부, '5.24조치 적용' 6.15남측위 대북접촉 불허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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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4  18: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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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열린 '남북해외 여성 통일대회' 이후 남북 여성들은 수시로 만남을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뒤 남북 간 민간교류가 시작되고 있지만 통일부가 6.15남측위원회 소속 부문본부들의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불허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여성본부’(이하 6.15여성본부) 상임대표인 안김정애 평화여성회 상임대표는 14일 “통일부에 두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접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원칙적인 입장이라고 들었다”며 “내일부터 통일부 앞에서 출근, 점심, 퇴근 시간에 1인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여성분과위원회’는 지난달 18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평화여성회 등 4개 여성단체 앞으로 팩스를 통해 ‘남북여성 공동모임’ 추진을 위한 실무접촉을 10월 1일 개성 또는 금강산에서 갖자고 제안했고, 이들 단체들은 이에 호응해 실무접촉을 추진하려 했지만 통일부는 이를 불허했다.

안김정애 상임대표는 “불허 당시 통일부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즈음하여 인공위성 발사 여부 등 정세를 지켜보자고 했는데 별 탈없이 지나갔고,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도 추진되는데 여성들의 만남도 승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2008년 5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언론인대표자회의 이후 남북 언론인들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같은 사정은 6.15언론본부 역시 마찬가지다. 6.15언론본부 관계자는 14일 “어제 북한주민접촉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통일부가 반려하겠다고 해서 공식 불허 통보를 하라고 했다”며 “지난달에도 북한주민접촉 신고를 하려했지만 6.15남측위를 통한 팩스 전달을 통일부가 불허해 실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14일 오후 “기존 5.24조치로 북측 파트너와 간접접촉을 하려면 6.15남측위를 통하도록 돼 있다”고 전제하고 “당국회담이 벌어지면 그런 분야까지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검토될 것이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긍정적 검토를 지시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는 승인하고 6.15남측위 부문본부들의 공동행사는 불허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당국자는 “약간 차이가 있다. 양대 노총은 작년 하반기부터 예선, 결승전을 거쳐 대표팀을 선발하는 과정이 쭉 있었고, 순수 축구교류에 한정한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다”고 해명했다.

또한 “여성본부의 경우 공동모임을 하겠다는 내용 밖에 없는데, 사업계획을 일반 민간단체들이 하는 것처럼 구체화 시켜야 할 것”이라며 “가급적 민간단체들의 순수한 사회문화분야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환 6.15남측위 대변인은 14일 “남북이 8.25합의에서 민간교류 활성화를 합의했는데, 그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민간단체들과 간담회를 갖는다든가 하는 노력은 전혀 없고, 기존과 동일한 기준으로 불허하고 있다”며 “정부 스스로 남북 당국간 합의 정신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승환 대변인은 “6.15남측위는 민간교류가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해 왔는데, ‘정치적’, ‘비정치적’이라는 정부의 자의적 기준으로 기존과 같이 통제 위주로 가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며 “6.15남측위도 6.15북측위와의 실무접촉에 대해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대응 방침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간 전문가는 “현 정부가 6.15 타이틀을 붙인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정치적’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있다”며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을 포괄하고 있는 6.15남측위와 소속 부문조직들을 민간교류에서 배제하려 할 경우 큰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수정,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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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일본에 할 말이 없다

아베 닮은 박근혜? NYT "한국, 권위주의 교육 회귀"
[정욱식 칼럼] 박근혜, 일본에 할 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땅에 '역사 전쟁'의 씨앗을 뿌려놓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대표언론 <뉴욕타임스>는 박 대통령의 방미 소식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비중 있게 실었다.

이 신문은 13일자 보도에서 "박근혜의 보수 정권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교육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작년 1월에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왜곡 시도를 강력히 비판해, 박근혜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자국의 고교 역사 교과서에 자신들의 정치관을 반영해 재기술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고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 두 나라가 역사를 개정하려는 위험한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왜곡시킬 위험이 크다"고 일갈했다.
 

▲ <뉴욕타임스>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사 ⓒnytimes.com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외교부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교육부도 "박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사설에서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한국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역사 교과서 발표로 박근혜 정부는 <뉴욕타임스>에 할 말이 없게 됐다. 정부·여당은 국정 교과서를 2017년 3월에 배포라는 목표 시한까지 제시하면서 이를 밀어붙이려고 한다. 박 대통령 임기 내에 "자신들의 정치관을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또 한국 국민들에게 또 다른 가해자였던 친일파와 독재자의 역사를 미화하거나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명백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국내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선 한국의 국격 추락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 보도를 접한 외국인들이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 맞나'라는 의문과 더불어 '한국이 일본을 비판할 자격이 있나'라는 냉소 어린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정부·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또 하나의 친일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에 가장 반색할 사람은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정화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 통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선 분단 체제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력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남남 갈등과 이념 대결이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기존 교과서를 '친북숙주'라고 망언을 일삼는 모습에서 그 징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국정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에 대한 서술을 줄이거나 미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높이려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 사이의 역사 인식의 간극은 더더욱 벌어지게 된다.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통해 대결과 반목에서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북돋았던 것과는 상반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북한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정화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지름길은 북한이 뭔가 문제를 일으킬 때 열릴 수 있다. 국정화 논란을 덮는 효과도 있을뿐더러,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친북이나 종북으로 몰아붙이기에 좋은 소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이러한 유혹을 갖게 되면 최근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반도 정세도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국정화 논란은 박 대통령이 작년 2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또한 13일에는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을 "정쟁과 이념대립"으로 폄하했다.

그렇다면 앞서 소개한 <뉴욕타임스> 기사와 사설은 어떤가? 제3자의 시선과 평가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갖는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미국행 비행기에서 이 신문을 꼭 읽어봤으면 하는 까닭이다.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핵의 세계사>, <글로벌 아마겟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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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민간위원, “천안함은 물기둥도 고열 흔적도 없어”

합조단장, “호주 군함 폭발 절단면과 천안함이 비슷”
[천안함 공판] 윤덕용 민군 공동 합조단장 주장… 
 
입력 : 2015-10-13  10:53:57   노출 : 2015.10.13  13:07:08
 

천안함 합동조사단을 이끈 윤덕용 전 단장이 법정에 출석해 호주의 군함 폭파 실험 결과를 소개하며 천안함과 손상상태가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나서 논란을 낳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피고인 측은 전형적인 사실왜곡이자 물타기라고 반박했다. 이 실험 동영상은 그동안 천암함이 폭발로 침몰한 게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돼 왔다.

윤덕용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 조사단장은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신상철 전 합조단 민간위원(서프라이즈대표)의 천안함 관련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윤 전 단장은 이날 오후 검찰 신문을 받던 중간에 합조단 조사단장으로서 조사결과 개요를 프리젠테이션 형식으로 설명하면서 호주 군함의 폭발실험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을 제시했다.  윤 전 단장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폭발실험을 한 영상 자료로, 천안함 보다 좀 더 큰 배인 토렌스함”이라며 “(폭발로 침몰했다고) 상상할 수 있는 비슷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윤 전 단장은 “(토렌스함도) 함미가 먼저 침몰하고 함수만 남아있는 사진”이라며 “손상상태가 천안함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토렌스함과 같은) 손상상태로 볼 때 (천안함도) 좌편 수중에서 비접촉으로 폭발이 일어나 이런 손상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폭발량과 위치 알아내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20m 정도에서 TNT 300kg 폭발시 절단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윤덕용 전 합조단장이 지난 12일 법정에 제출한 호주 토렌스함 폭발 실험 동영상 캡처자료.
 

그러나 윤 전 단장이 제시한 호주 토렌스함 어뢰 폭발 동영상을 보면 어뢰폭발시 수면 아래서 두차례의 진동과 폭발을 일으킨 직후 200미터에 가까운 물기둥이 솟구쳐 오른 뒤 함수와 함미가 절단된다. 또한 토렌스함의 함미가 침몰한 뒤 동영상에 잡힌 함수 절단면의 형태는 뭉게져 있을 뿐 아니라 고온의 영향으로 검게 그을려 녹아내린 듯한 흔적이 보인다. 이에 반해 천안함의 함수 좌현 절단면은 찌그러져 있기만 할 뿐 열기에 녹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합조단 역시 보고서에서 절단된 전선에서 열흔적이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호주 토렌스함은 2700톤급 구축함이며, 폭발에 사용된 어뢰는 Mark 48로 TNT 295kg 규모였다. 합조단이 발표한 1번 어뢰(CHT-02D)의 폭발규모(고성능 폭약 250kg 또는 TNT 250~360kg)는 비슷하지만 폭발의 효과는 현재까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나있다. 물기둥이 없을 뿐 아니라 엄청난 폭음과 폭발 직후 해상의 부유물도 찾을 수 없었다.

윤 전 단장의 법정 프리젠테이션을 본 피고인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13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토렌스함 폭파장면이야말로 천안함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장면인데, 오히려 이를 천안함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신 대표는 “토렌스함 절단면을 면밀히 보면 뜨거운 열기 때문에 시커멓게 녹아내린 모습이 나타날 뿐 아니라 물기둥이 200미터 가까이 올라갔다. 이는 폭발이 있으려면 토렌스함처럼 돼야 한다는 반증이었다”며 “이것이 천안함과 똑같다는 것은 물타기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덕용 전 합조단장이 지난 12일 법정에 제출한 호주 토렌스함의 절단면 영상 캡처 자료 확대.
 
   
유투브 동영상 중 폭발직후 토렌스함 절단면이 자세히 나와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방송영상 캡처.
 
   
천안함 함수의 절단면. 사진=조현호 기자
 

이밖에도 윤덕용 전 단장은 과거에 하지 않았던 일부 주장을 펴기도 했다. 수출용 북한 어뢰 소책자에 실린 어뢰 모형의 페인트 색깔과 천안함 1번 어뢰추진체에 남은 페인트 조각이 일치한다는 주장이었다.

윤 전 단장은 1번어뢰를 애초 전쟁기념관에 전시했을 때 촬영했던 사진들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어뢰에 칠해진 페인트 색이 빨갈, 초록 검은색 등 여러 가지”라며 “(누군가가 어뢰) 사진을 찍었는데, (정밀하게 촬영된 것에) 굉장히 작은 조각이(있)었다. 손상된 날개에도 초록색이 묻은 흔적이 나타난다. 파란색이 페인트 조각같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벌건색과 파란색의 이 어뢰 사진은 북한 것이 맞으며 (어뢰추진체의) 검은 색과 흰 부분은 알루미늄이 벗겨진 부분이며, 페인트의 작은 조각들이 남아서 붙은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추측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이와 함께 어뢰 설계도면에 대해 윤 전 단장은 영어로 된 것을 봤으며, 민감해서 공개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도면이) 수출 목적으로 자세히 기술했고, 성능도 자세히 설명돼 있다”며 “수거된 모양과 도면의 모양과 일치했다. 어뢰 기능, 성능에 대한 도표가 나와있는데, 영어로 된 것을 저도 봤다. (설계도면이) 영문으로 존재하는 자료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컴퓨터(파일)로 돼 있다. 한글 랭귀지가 아니어서 보는데 고생을 했다”며 “거기서 (나는) 프린트된 것을 봤다. 민감하기 때문에 영문으로 된 카피를 공개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단장은 1번 글씨가 왜 지워지지 않았는지에 대해 “충격을 축방향으로 받았는데, (1번이 쓰여진 디스크후부가) 숨겨진 방향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충격손상이 덜했다”며 “허연 부분이페인트같이 코팅한 재질인데, 이는 100도에서 분해되고 200도(가까이)에선 완전히 분해된다. (1번글씨가 남아있다는 것은) 200도까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손으로 촛불을 빨리 지나가면 손이 별로 안뜨겁다는 원리와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1번 어뢰추진체를 수거하게 된 계기가 에클스 미국 조사단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윤 전 단장은 “에클스 단장이 ‘어뢰 개발하는 분들이 어뢰 실험했는데, 비접촉 폭발이 일어났을 경우 일부가 남을 수 있을 것이며, (어뢰) 뒷부분 정도는 어떤 형태로든 남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그래서 ‘한 번 찾아보자’고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랬더니 ‘무기가 남아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세계에도 전례가 없다.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자 잔해 수거한 적이 거의 없다. 잔해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만큼 어려울 수 있다’고 에클스가 얘기했지만 우리는 한 번 해보자는 결론을 내고 쌍끌이 어선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뢰 추진체의 부식기간 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윤 전 단장은 “정밀검사 생각도 했으나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강철 재질이 열처리 조건 마다 다르고, 절대적인 부식 정도로 어느 기간 동안 부식 진행됐느냐 하는 것은 결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덕용 전 민군합조단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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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효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낳다

 
 
 
저들의 국정교과서, 이미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어
 
육근성 | 2015-10-13 15:08: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5.16과 유신은 매도 당해 왔다’며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말했던 박정희의 딸. 그가 대통령이 되는 날, 이런 걱정을 해봤다. 아버지처럼 권력을 휘둘러 국정교과서를 만들지 않을까? 그래도 설마 했다. ‘효도’를 하기 위해 교과서까지 뜯어고치지는 않겠지. 그러지는 못할 거야.


꼬리표 떼고 싶었던 박정희, 그의 국정교과서

그러나 그녀의 ‘효심’은 예상보다 독했다.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을 ‘거사 디데이’로 잡은 것이다. 출국 후 발표하면 ‘부재중’을 노렸다는 비난에 부닥칠까 봐 그런 모양이다. 발표 직후 쏟아질 강한 반발은 언론에 도배될 ‘오바마와의 기념사진’으로 얼추 가려질 거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두 가지 ‘꼬리표’를 떼고 싶어 했다. 첫 번째 꼬리표인 ‘정통성 결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찍힌 낙인이었고, 두 번째 꼬리표는 ‘독재자’라는 비난이었다. 이 둘은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에게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교과서 국정화는 일련의 '꼬리표 제거 공작' 중 하나였다. 결국, 박정희는 자신의 입맛에 딱 맞게 기술된 ‘정권홍보용 교과서’를 만들었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국정교과서는 폐지됐다. 그 대신 다른 움직임이 표면화된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뉴라이트가 역사교과서를 이슈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를 ‘의미 있는 근대화 과정’으로 둔갑시키고,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5.16과 유신독재의 결과물로 미화한 대안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출간(2008년)까지 했다.

친일독재교과서 등장, ‘국정시절’의 향수

당시 박근혜 의원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출판 기념회에 직접 참석해 진심어린 축사도 했다. 뉴라이트 운동의 정점에 박 대통령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본 우익과 언론은 쌍수를 들고 환호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은 대안교과서를 “균형 잡힌 역사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 “(한국의 학자들이) 일본을 찬미하고 있다”고 반색했다.

요미우리가 말한 ‘균형’이란 뭘까? 국정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황우여 교육부장관도 ‘균형’이란 말을 6번이나 썼다. 일본이 말하는 ‘균형’은 일제 식민지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황 장관이 강조한 ‘균형’은 친일과 독재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인정을 뜻한다. 일본 우익과 한국 정부가 그리는 궤적이 매우 비슷하다.

대안교과서 발행으로 워밍업을 마친 뉴라이트 진영은 전열을 강화하고 재공습에 나선다. 2011년 ‘대안교과서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학회’가 결성됐다. 그리고는 검정교과서 집필에 들어간다. 2013년 12월 교육부가 이들이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를 최종 승인했다. 오류투성이인 친일-독재교과서가 ‘교육부 검인정교과서’가 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정부여당이 전폭 지원한 교학사교과서 채택률 0%대

정부와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 대통령도 거들었다. ‘교학사교과서’가 검인정을 준비하던 2013년 6월, 박 대통령은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인정 통과를 우회적으로 지시한 셈이다.

새누리당과 극우단체는 ‘친일독재교과서 판촉사원’을 자처했다. 일선 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교육 양심’과 ‘국민의 상식’은 친일독재교과서를 철저히 배격했다. ‘채택률 0%대’라는 지극히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정부여당과 극우세력은 분기탱천했다.

“어떻게 채택률이 1%도 안 되나… 비통하게 보고 있다.”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

“좌파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 (김무성 의원)

“애국세력이 나서 교학사 교과서 사주기 운동 펼쳐야 한다.” (보수논객 조갑제)

분기탱천한 정부여당, 국정화 발톱 드러내

박 대통령은 교학사교과서 반대 여론이 들끓을 때에도 “역사교과서의 이념편향은 안 된다(2014년 1월 신년기자회견)”며 몽니를 부렸다. 하지만 정부-여당-뉴라이트-수구단체 등이 총동원돼 진행됐던 ‘친일독재교과서’ 채택운동은 완전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러자 드디어 교과서 국정화라는 숨겼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일제 식민지배 당시에는 친일파가 돼 호의호식하다가,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독재권력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들이거나 그들의 후손들이다. ‘친일독재’라는 꼬리표를 붙여준 게 역사교과서라고 단정하고, 교과서 기술만 바꾸면 꼬리표는 사라지게 될 거라고 보는 모양이다.

새누리당에는 친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친일재산환수법’ 제정이 논란이 됐던 16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70%가 이 안에 반대한 바 있다. 17대 국회에 이 법안이 다시 상정되자 한나라당은 총력을 기울여 저지하려 했다. 한나라당 의원 100%가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저들의 국정교과서, 이미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어

저들이 만들고자 하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대체 어떤 것일까? 교육부장관과 국사편찬위원장의 발언에 확실한 단서가 나온다. ‘국정화 전환’을 발표하면서 “다양한 전문가(역사가만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를 초빙해 집필진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친일독재교과서(교학사교과서) 집필진도 그랬다. 이 교과서를 집필한 ‘한국현대사학회’의 구성을 보면 한국사 전공자는 20%도 안 된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분야가 절반 이상이다. 한국근현대사를 역사적 관점이 아닌 정치, 경제, 안보의 시각에서 보겠다는 얘기다. 박정희를 미화하기 위해서다. 교학사교과서를 그대로 카피하려 들지 않을까? 다면 저들의 국정교과서는 이미 완성돼 있는 거나 다름없다.

모두가 국정교과서는 이미 관속에 들어갔으니 다시 살아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그 관 뚜껑을 열어젖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대로라면 2017년에는 국정교과서가 부활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박정희 탄생 100주기가 되는 해다. ‘국정역사교과서’는 딸의 아버지에게 헌상하는 ‘100주기 선물’인 셈이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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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 배우고 있다고?…새누리당 현수막 논란

 
SNS “광폭한 사기가 백주대낮에 펄럭…곧 빨갱이 사냥 나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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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새누리당 현수막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누리당이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까지 걸었다”면서 “(새누리당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선거에 이기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새누리당이 이 난리를 치는 부분을 찾아보자”면서 고등학교 금성교과서 내용을 예로 들었다.

그는 “북한 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이어 “그러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한 뒤 “주체사상에 대한 북한학계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기술한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냐”면서 “그럼, 새누리당은 주체사상에 대해 위와 같이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같은 당 김광진 의원도 새누리당의 이 같은 주장을 지적하고는 “그럼 왜 국정원은 전국의 교사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지 않습니까”라면서 “그리고 지금 사용되는 검인정 교과서의 검인은 현직 교육부장관이 한 것인데 교육부장관이 주체사상교육을 승인한 것이냐”고 질타했다.

   
 

또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이런 사기로 가득찬 선전물을 보면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만들겠다는 교과서가 어떤 기준으로 올바른지 알겠다”면서 “이렇듯 광폭한 사기가 백주대낮에 펄럭입니다. 또 내일은 어떤 흉폭한 거짓말이 나부낄까요”라고 개탄했다.

   
 

해당 현수막을 접한 네티즌들도 “이게 집권 여당에서 내건 현수막이 맞느냐”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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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지사 유양원선생 별세

 
 
자주 통일 민중운동에 헌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12 [16: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국의 자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한생을 헌신해 온 유양원 선생이 조국통일을 보지 못한 채 타계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자주와 통일을 염원하며 한생을  통일운동과 민중운동에 헌신하셨던 애국지사 유양원 선생이 타계했다.

 

민권연대 고문인 유양원 선생(향년82세)이 지난  11일 오후 4시 45분 운명했다. 
유양원 선생은 17세 청년 의용군, 빨치산 활동을 시작으로 민족문제 단체 활동을 하시며 애국적인 삶을 살아왔다.

 

민족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던 유양원 선생님은 2003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기위해 동경 도착 “일본이 한국을 멸시하는 모든 면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하면서 “미국의 힘을 믿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을 단죄했다.

 

유양원 선생의 추도식은 오늘 12일 오후 8시 서울 연세세브란스 1층에서 갖게 된다.

통일애국지사 유양원 선생 약력
 

전북 고창 출생(1934년)

 

1950년 조선인민의용군 입대, 빨치산 활동

 

1970년대 한양대, 청량리 과일시장 등 노동운동

 

1990년대 민화련(민족화합운동연합), 연방통추(우리민족 연방제 통일추진위원회), 역사문제연구소 활동

 

 2010년 민권연대 고문 활동, 통일운동에 헌신


통일애국지사 유양원 선생을 기리며 민권연대가 추도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전문을 게재한다.

 

[추도성명] 갑오항쟁의 후예, 통일애국지사 유양원 선생님을 기리며

 

언제나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실천의 현장에 항상 서 계시던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고문 유양원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높은 학식과 유머로 동지들을 일깨워주시던 그 소년처럼 순수한 미소가 아직 동지들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유양원 선생님은 17세 청년 의용군, 빨치산 활동을 시작으로 민족문제 단체 활동을 하시며 애국적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민족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던 선생님은 2003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동경에 가셔서 일본이 한국을 멸시하는 모든 면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하시면서 미국의 힘을 믿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을 단죄 규탄 하셨습니다.

 

이거시통일(夷去始統一 : 오랑캐를 내쫒는 것이 비로소 통일), 유양원 선생님이 생전에 서예로 썼던 이 글귀에 80여 성상을 제국주의와 싸워 오신 선생님의 반외세 민족자주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도맡으셨던 선생님. “너무나 자기선전만 하면 안 된다. 내가 엎드려 주고, 들러리라도 서줘야 한다” “자기가 똑똑하다. 자기가 한일이 훌륭하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늘 겸손함을 강조하셨던 선생님.

 

유양원 선생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낙관과 신심을 지니며 웃는 모습으로 동지들을 찾으셨습니다. 
민족 앞에, 민중 앞에, 동지 앞에 늘 겸손하신 유양원 선생님의 높은 뜻을 이제 동지들이 이어 받겠습니다. 실천의 현장에서 더 낮은 자세로 헌신하는 모습으로 선생님을 기리겠습니다.

 

유양원 선생님의 민족사랑 민중사랑 정신은 통일 조국으로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통일애국지사 유양원 선생님 부디 영면하십시오.

 

2015년 10월 12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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