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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와글와글~ "막장!" "사기!"

"지난 대선은 '개콘 황해'다"... 왜?
누리꾼 와글와글~ "막장!" "사기!"

[독자들과 함께 만드는 뉴스] '대선 부정' 인포그래픽에 댓글 달아주세요

13.10.28 08:41l최종 업데이트 13.10.28 11:10l
이 기사는 시민기자와 독자 여러분들이 만들어갑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너무나 많은 부정 사건이 터져서 정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아래 인포그래픽을 본 뒤 하시고 싶은 말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기사에 반영하겠습니다. 현 상황에 대한 기탄없는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 주십시오. 많은 참여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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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다?' 엄지뉴스 공모에 막내아들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결론은, 지난 대선은 개콘의 '황해'다!
ⓒ 한.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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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28일 오전 10시 35분]
지난 대선은? "막장드라마" "짜고 치는 고스톱"

국가정보원에 이어 국방부, 국가보훈처까지 대선개입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들이 지난 대선 기간에 저지른 '선거부정' 증거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개입 시비의 진원지인 지난 18대 대선을 시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엄지뉴스와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대선은 □□□다' 공모를 진행 중입니다. 28일 오전 10시 현재 많은 독자들이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요.

엄지뉴스 회원 '한.밝.우'님은 "지난 대선은 '황해'다"라고 적은 종이를 인증사진으로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여기서 '황해'는 KBS <개그콘서트>에서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너의 제목을 가리키는 겁니다. 이 회원은 "극중 사장 이상구 밑에서 일하는 정찬민과 이수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지난 대선 때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이 특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일련의 과정과 100% 닮았다"고 설명했습니다.

'6748'님은 중립을 지켜야할 정부와 국가기관이 선거운동의 한복판에 뛰어든 지난 대선을 "범죄스릴러영화"라고 평가했습니다. '9008'님은 "난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많은 분들이 이벤트에 참여해주셨는데요. 특히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진 지난 대선을 두고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페이스북 회원 이남희님은 "지난 대선은 '똥밭에서 뒹구는 민주주의'다"라고 힐난했습니다. 김혜원님은 "끝이 없는 막장드라마"라고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이외에도 김수철님은 "지난 대선은 '성형수술'됐다"고, '파즈'님은 "지난 대선은 '눈 뜨고는 못보겠다'"고 비꼬아 말했습니다.

몇몇 독자들은 <오마이뉴스> 메인화면에 게재된 이벤트 홍보기사 속 소셜댓글을 통해 참여해주셨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soju_jjoa'님은 "지난 대선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라고 힐난했습니다.

"지난 대선은 '이심박심'이다"('pnajana')라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대선개입 사태와 박근혜 정부가 무관치 않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평가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등 속속 밝혀진 불법 선거개입 행위들을 근거로 '18대 대선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이외에도 페이스북 회원 지창기, 이경희님 등은 "지난 대선은 '대국민 사기극'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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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28일 오전 9시]
"한국은 독재해야... 아멘?" 참, 기가 막힙니다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원들이 밀실에서 댓글공작을 벌였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사이버 군사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동원됐습니다. 뒤늦게 이를 수사하려는 경찰과 검찰 수사 책임자들은 무장해제 당했습니다.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는 박근혜 정부가 한 일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근조 민주주의'라는 말이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데도, 국민의 알권리를 지킨다는 방송사들은 '단풍놀이'를 톱기사로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추모 예배장에서는 "한국은 좀 독재를 해야 한다"는 기도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기막히지 않습니까?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말문이 막힌 누리꾼과 댓글러, 페이스북 친구들, 트위터리언에게 오늘의 톱 기사를 개방하겠습니다. 또 상근 기자들도 현장에서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시민기자와 독자 여러분들이 만들어가는 지면입니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는 음지에서 댓글을 달았지만, 우리는 '양지 댓글'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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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개입사건 주요 일지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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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침묵한다면, 탄핵이든 하야든 끝까지 간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0/28 11:31
  • 수정일
    2013/10/28 11: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8대 대선이 끝난 지도 벌써 10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18대 대선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유는 국정원,사이버사령부,국가보훈처 등의 국가기관이 대선 기간에 개입한 댓글 의혹과 관련 범죄를 수사해야 할 경찰,검찰,법무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나오는 충격적인 증거들은 여야의 '불공정한 선거 VS 대선 불복'을 넘어 국민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점점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점점 사그라지지 못하고 격렬한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18대 대선 관련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방법론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18대 대선무효소송,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국민의 태반은 모르고 있지만, 현재 제18대 대선 선거무효확인 소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18대 대선선거무효소송인단' (공동 대표 한영수,김필원, 1997명의 시민으로 구성)이 원고가 된 선거무효 소송의 피고인은 김능환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선거무효소송인단'이 제기한 소송은 크게 ① 전자개표기 (투표지 분류기)의 부분과 ② 수개표 확인 부분입니다. 소송인단은 18대 대선에서 이러한 불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선거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인단이 제기한 무효소송이 힘을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개표 과정의 문제점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여러 개표구에서 선거개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천시 선관위 개표상황표를 보면 투표지 분류 종료시각이 12월 19일 20시 57분이었는데, 위원장의 공표시각은 21시 18분이었습니다. 불과 21분만에 3,127매의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확인한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관위는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월 17일에 국회에서 개표시연회를 했습니다. 이날 투표용지 6천 매 확인에 2시간이 넘게 걸렸던 점과 비교하면, 21분 만에 이루어진 위원장 공표시각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투표용지는 3,126매였지만, 투표수는 3,127매가 됐던 부분과 이런 현상이 구미,안동,강동구 등 전국 여러 곳에서 발견됐던 점은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소송인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선거무효 소송인단은 투표함,투표지 등에 대한 증거보전과 수개표 재검증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투표지 증거보전과 재검증 신청 등에 대해 '각하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각하결정 이유로 '투표지 증거보전과 재검표 신청은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과 후보자에게만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의 이런 결정을 2002년 제16대 대선과 비교해봐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2002년 16대 대선이 끝난 5일 후인 12월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의 요청에 대법원은 전국 35개 지방법원에서 총 1,104만 9,311장에 대한 수작업 재검표를 진행했다. 수작업 재검표 결과, 당시 노무현 후보는 816표가 줄었고, 이회창 후보는 단 88표가 늘었으며, 한나라당은 대국민사과를 했다.


민주당이 대선 직후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2002년 한나라당의 과정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와 단순 의혹을 쟁점화하기 어려운 증거수집에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지금 새누리당이 뻔뻔하게 '대선 불복'이냐는 정치 공세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의 선거무효 소송의 한계에 민주당이 어떻게든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노무현처럼 박근혜도 탄핵당할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2월 24일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하며,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중앙선관위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공직선거법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며 대통령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습니다.


2004년 3월 9일 한나라당 의원 108명과 민주당 의원 51명이 서명한 <대통령(노무현)탄핵소추안>이 발의됐으며, 3월 12일 국회의원 195명이 투표에 참여, 찬성 193명, 반대 2명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사이버사령부,경찰,검찰 등의 대선 개입에 대해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탄핵사유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장은 어렵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석을 보면 새누리당이 153석으로 과반수 (51.3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127석(42.62%)과 통합진보당 6석,정의당 5석을 합쳐도 탄핵소추안을 발의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은 탄핵소추가 어렵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이후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합니다. 선거 전 47석에서 탄핵 사건 이후 무려 105석이나 얻은 것입니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2016년에 시행되는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 이상을 확보하고, 다른 야당과 합쳐 200석이 넘으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불과 1년 앞두고 총선에서 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이 의미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사망,사퇴 사유가 없는 한 지속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현상에서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또한, 임기를 1년 앞두고 있더라도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19대 대선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도 있습니다.

'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국민, 박근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봤던 여러 가지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을 계속 지키고 있을 경우입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투명하게 18대 대선과정에서 벌어졌던 불법적인 국가기관 개입과 새누리당의 문제를 처벌하면 대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수혜자였던 사건을 쟁점화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수사방해'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승만 정권에서 벌어졌던 4.19혁명을 다시 재연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부정선거 사범 처벌'을 외치는 전국적인 시민의 목소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승만을 '국부'로 미화하는 사람들 중에는 4.19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었던 1960년 4월 12일 국무회의록을 통해 이승만이 '하야'를 결심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승만이 4.19혁명 전에 하야를 결심했다면, 박근혜 대통령도 이승만의 뒤를 이어 '선거에 문제가 있으니' '하야'를 하는 일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의 정치적 멘토 '박정희'를 본다면 아마 이것은 어려울 듯싶습니다. 박정희는 1979년 벌어졌던 부마항쟁 당시에도 국민과 대화가 아닌 총칼을 동원한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열흘 뒤에 죽지 않았다면, 캄보디아와 같은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박정희식 통치를 재연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스타일로 봐서, 이번 18대 대선 해결 방식도 박정희식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18대 대선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민은 그에 맞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그 누구도 대한민국이 혼돈에 빠지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집주인 또한 없습니다. 경찰이 도둑을 잡아 법원이 정당한 처벌을 내린다면 집주인은 수긍하겠지만, 경찰이 그 도둑을 놔둔다면 스스로 도둑을 잡아 범죄 행위를 낱낱이 밝혀낼 것입니다.

국민에게는 18대 대선에 대한 선택의 폭이 그리 넓거나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선거무효소송','탄핵','하야' 그 무엇이 됐든 국민은 나설 것입니다.

기나긴 싸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무서운 일도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이 늘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켜왔듯이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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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경핵병진노선이 일으킨 놀라운 변화

북, 경핵병진노선이 일으킨 놀라운 변화
 
한호석의 개벽예감 <85>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10/28 [09:49] 최종편집: ⓒ 자주민보
 
 


✦배출구에서 온배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북의 현실을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는 미국 언론과 남측 언론의 ‘시계차단’에 가려 북의 실상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요즈음 북에서는 처음 보는 특별한 현상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다. 그런 현상들 가운데는 2013년 8월 31일에 일어난 매우 특별한 현상도 있다. 2013년 8월 31일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은 평범한 날로 지나가버렸는데, 그 평범한 날에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일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나온 목격담에서 시작된다.

2010년 11월 16일 미국 한미경제연구소(KEI) 잭 프릿처드(Jack Pritchard) 소장은 워싱턴 주재 남측 특파원들과 만나 자신의 방북에 대해 말하면서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핵시설단지를 방문하였을 때 보고 들은 목격담을 전해주었다. 그의 목격담에 따르면, 당시 착공한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경수로건설공사현장을 방문한 자신에게 북측 관계자는 “(경수로건설이)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어떤 장애물에 부닥칠지 알 수 없다. 모든 건설이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인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북이 2010년 10월 말에 착공한 경수로건설을 초고속으로 다그쳐 2012년 말까지 완공하려는 목표를 세웠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북이 녕변경수로건설에 착공한 때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2012년 3월 26일 북측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리기성 교수는 <교도통신> 기자와 진행한 대담에서 녕변경수로가 2012년 말까지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프릿처드 소장은 3년 전 녕변경수로건설현장을 방문하고 미국에 돌아와 남측 특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이 녕변경수로건설공사를 2012년 말까지 완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수로를 처음 만든다는 북이 어렵고 방대한 경수로건설공사를 착공의 첫 삽을 뜬 날로부터 불과 2년 2개월 동안에 끝내겠다고 하였으니 어찌 그 말을 선뜻 믿을 수 있었겠는가. 2009년 4월 14일 북의 위성발사를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규정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전면 거부한 북이 그런 부당한 조치에 맞서 자력으로 경수로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하였을 때,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박군철 교수는 “북한이 가진 원자로가 영변의 5MW급 흑연감속로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직접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하면서 회의적 전망을 꺼내놓은 적이 있다. 남측 핵과학자들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북정보에 밝다는 미국의 정부관리들과 전문가들도 북이 경수로를 2년 2개월 만에 건설하겠다고 말한 것은 북의 핵과학기술수준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희망사항’을 언급한 것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완공예정시점으로 정해졌던 2012년 말보다 8개월이 늦은 2013년 8월 31일 녕변경수로가 마침내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15년 전 북이 첫 자국산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던 바로 그 날, 이번에는 자국산 경수로를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미국상업위성이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밝혀졌다. 2013년 9월 11일과 10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미국-코리아연구소(US-Korea Institute) 웹사이트 <38노스(North)>에 그 위성사진이 각각 실렸는데, 그 위성사진에서 녕변경수로 가동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위성사진은 2013년 8월 31일 녕변핵시설단지에 신축된 경수로발전시설에서부터 인근에 있는 구룡강으로 길게 뻗어나간 대형 지하배수로의 배출구에서 많은 양의 온배수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경수로발전시설에서 많은 양의 뜨거운 물이 배출되는 것은 경수로가 가동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비록 완공예상시점보다 8개월이 늦어졌지만, 북이 처음으로 건설한다는 경수로를 불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것은 믿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이다. 요즈음 북의 건설현장과 생산현장 그 어디서나 ‘마식령속도’를 강조한다는데, 경수로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것을 좀 과장한다면 ‘마식령속도로 창조한 기적’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북에서 말하는 ‘마식령속도’란 해발고가 너무 높아 말도 쉬어 넘는 높은 고개라는 뜻으로 옛날 선조들이 그 이름을 지은 마식령 정상에 “세계 일류급”이라고 하는 스키장(ski resort)을 건설하는 초대형 공사를 고속으로 진척시킨다는 뜻이다.

3년 전 녕변경수로건설현장을 방문하고 미국에 돌아와 남측 특파원들과 만났던 프릿처드 소장은, 19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채택된 북미기본합의의 경수로건설공약에 따라 미국이 지어주겠다는 말만 꺼내놓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구덩이만 파놓은 채 결국 2003년 11월에 공사를 중단하였던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에 사용된 중장비나 자재는 (녕변경수로 건설공사에서)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프릿처드 소장의 이 말을 새겨들으면, 북은 경수로를 자력으로 설계, 제작하였고, 경수로발전시설도 자력으로 설계, 시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발전시설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장비와 자재도 자체로 마련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녕변경수로는 북이 100% 자력으로 만든 경수로이며, 북에서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사회주의자력갱생의 조선형 경수로’라고 할 수 있다.


✦제논 검출과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

미국의 몇몇 분석가들은 2013년 8월 31일 녕변핵시설단지의 지하배수로 배출구에서 온배수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분석한 글에서 그 온배수가 녕변경수로에서 배출되는 게 아니라 녕변흑연감속로에서 배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녕변경수로 가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그런 주장이 미국 언론과 남측 언론에 그대로 실리는 바람에 녕변경수로가 가동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녕변흑연감속로는 2013년 8월 31일에 재가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재가동되었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2013년 4월 2일 북측 원자력총국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총국 대변인은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경핵병진노선에 따라 “원자력부문 앞에는 자립적 핵동력공업을 발전시켜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푸는데 적극 이바지하며,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고 하면서, “현존 핵시설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 변경해나가기로” 하였는데, 우선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우라늄농축공장과 흑연감속로를 “재정비, 재가동하는 조치”부터 “지체 없이”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의 담화에 따르면, 북은 녕변우라늄농축공장 재정비와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을 지체 없이 실행한다는 것이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를 즉각 재정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래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우선 녕변흑연감속로를 즉각 재가동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측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8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2013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포집한 기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방사능핵종인 제논(Xe)이 세 차례나 검출되었다. 제논이라는 기체는 자연상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핵실험을 실시하였을 때나 원자로를 가동하였을 때만 대기 중에 방출되는 방사능핵종이다. 그러므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2013년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포집한 기체에서 제논이 세 차례나 검출된 것은 녕변흑연감속로가 6월 21일부터 재가동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사진 1>은 녕변흑연감속로가 들어있는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 <사진 1> 녕변흑연감속로가 들어있는 대형 건물에는 뾰족하고 높은 굴뚝이 설치되어 있다 ©이창기 기자, 한호석소장 사진제공
2013년 4월 2일 북은 녕변흑연감속로를 “지체 없이” 재가동하겠다고 원자력총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혔는데,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반밖에 지나지 않은 6월 21일에 녕변흑연감속로가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북의 건설자들이 아무리 ‘마식령속도’로 일한다고 하지만, 2007년 10월 6자회담 합의에 따라 가동을 완전 중지한 이후 5년 동안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어 녹슬었던 흑연감속로를 2개월 반 만에 재가동한 것은 착공 3년 만에 경수로를 완공한 것만큼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것도 북미 합의 이행 차원에서 냉각탑까지 폭파시킨 상태에서 말이다. 녕변경수로만이 아니라 녕변흑연감속로에서도 어떻게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을까?

남측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10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북미합의이행을 위해 가동을 중지했던 녕변흑연감속로를 원상복구하는 작업을 2009년 초부터 시작하였는데, 2009년 10월 5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 관계자들은 녕변흑연감속로의 원상복구 진척상황에 대해서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바 있다. 이런 정보를 통하여 북이 2009년 초부터 녕변흑연감속로 원상복구작업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상복구작업이 2009년 초부터 시작되었고,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이 2013년 6월 21일에 시작되었다면 재가동을 위한 원상복구작업에 4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녕변흑연감속로 원상복구작업에 왜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2009년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남측 국방부와 합참본부 관계자들은 북이 녕변흑연감속로를 원상복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원상복구가 아니라 새로운 설비로 개조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2005년 11월 9일 <AP> 보도기사에서 미국의 저명한 핵전문가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북측 관계자가 녕변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기 위해 아예 “일신하겠다(refurbish)”고 자기에게 말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은 원상을 복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설비로 완전히 개조한다는 뜻이다.

녕변흑연감속로를 새로운 설비로 완전히 개조하였다면, 그 발전용량은 얼마나 증대되었을까? 이 물음에 답해주는 자료는 아직 찾을 수 없지만, 북이 녕변흑연감속로를 4년 6개월 동안 새로 개조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북이 녕변흑연감속로를 새로운 설비로 개조하여 2013년 6월 21일부터 재가동을 시작하였다면, 녕변경수로와 마찬가지로 녕변흑연감속로에서도 온배수가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2013년 10월 17일 헥커 박사가 미국 원자과학자협회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북은 녕변흑연감속로를 개조하고 녕변경수로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배수시설을 건설하였는데, 그 두 원자로에서 나오는 온배수를 한 군데로 모아 배출하는 지하배수관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8노스> 웹사이트에 게시된 위성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녕변경수로가 가동되기 시작한 2013년 8월 31일 이전에도 지하배수로 배출구에서는 온배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8월 31일부터 배수량이 갑자기 폭증하였다. 이러한 배수량의 갑작스러운 폭증현상은, 녕변흑연감속로가 2013년 6월 21일부터 재가동되면서 온배수를 배출하던 중 8월 31일에는 녕변경수로까지 가동되어 배수량이 폭증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은 대형 경수로건설에 곧 착공할 것이다

지금 녕변핵시설단지에서는 종류가 서로 다른 두 기의 원자로가 돌아가고 있다. 2013년 6월 21일 북이 재가동을 시작한 흑연감속로는 직사각형 건물 안에서 돌아가고 있고, 2013년 8월 31일 가동에 들어간 경수로는 거대한 반구형 지붕을 씌운 건물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경수로(light water reactor)의 영어머리글자를 따서 ‘LWR’이라고 써넣은 반구형 지붕의 건물이 경수로가 들어있는 건물이고, 오른 쪽에 ‘5MWe Reactor’라고 써넣은 직사각형 건물이 흑연감속로가 들어있는 건물이다.
▲ <사진 2>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의 위성사진에는 경수로와 흑연감속로가 보이고, 경수로에서 구룡강으로 뻗어 나간 지하배수로가 설치된 매설공사흔적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위의 사진에서는 지하배수로를 '경수로 냉각관(cooling pipes for LWR)'이라고 표기되었다. 사진에는 온배수를 배출하기 위한 '양수장(pump house)'도 보인다. (image credit=getty images) © 이창기 기자, 한호석 소장 사진제공

그렇다면 녕변경수로는 용량이 얼마나 큰 원자로일까? 3년 전 북측 관계자는 경수로건설공사현장을 방문한 프릿처드 소장에게 녕변경수로 용량이 100메가와트급이라고 말한 바 있다. 메가와트(MW)는 발전시설의 열출력을 표시하는 단위인데, 녕변흑연감속로 열출력은 25메가와트이고, 녕변경수로 열출력은 100메가와트다. 열출력을 전기출력으로 환산하면, 녕변흑연감속로 전기출력은 5메가와트(MWe)이고, 미국 핵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녕변경수로 전기출력은 30메가와트(MWe)다. 30메가와트는 30,000킬로와트(KWe)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3년 전 착공 당시 경수로를 처음 건설해본다고 하였던 북이 불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불가사의한 현상은 북이 미국 정찰위성의 감시를 벗어난 은폐공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또 다른 경수로를 비공개로 가동해왔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은폐공간에서 소형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지방언론지인 <디머크랫 앤드 크로니클(Democrat and Chronicle)> 2012년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업체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이 소형 원자로를 지하실에 설치해놓고 30년 이상 가동해왔다고 하는데, 일개 민간기업체가 하는 일은 어찌 북이 할 수 없었겠는가. 그러므로 북이 녕변경수로를 그처럼 짧은 기간에 완공한 것이야말로 오래 전에 북이 비공개로 건설한 경수로가 그 동안 가동되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북이 미국의 집요한 봉쇄, 제재,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력으로 경수로를 건설하고 가동하는 높은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확보하였음을 말해준다.

3년 전에 녕변경수로 건설공사현장을 방문한 프릿처드 소장에게 북측 관계자는 “우리가 짓는 경수로는 실험용 경수로이며, 건설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비교적 소규모의 경수로를 우리 힘으로 지으려 한다”고 말하였다. 경수로건설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소형 경수로를 자력으로 건설한다는 그의 말은, 비공개경수로를 가동해오던 중에 이번에는 경수로건설역량을 외부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소형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그 북측 관계자가 프릿처드 소장에게 “녕변경수로를 완공하면 그보다 큰 대규모 경수로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세워두었다”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북이 대형 경수로 건설계획을 2010년에 세워놓았으므로 언제든지 착공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소형 경수로를 2년 10개월 만에 완공하는 능력을 과시한 북은 이제 대형 경수로 건설공사에 곧 착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형 경수로는 또 얼마나 짧은 기간에 완공될 것인가?

핵은 불이다. 녕변경수로 완공은 열핵이라는 불을 다루는 첨단과학기술을 자력으로 확보한 북이 그 열핵의 불길이 솟구치는 경핵병진노선을 따라 그들이 목표로 내세운 사회주의기술강국건설에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고성능 원심분리기 4,000대 돌아가는 녕변우라늄농축공장

지금 가동되고 있는 녕변경수로에는 녕변핵시설단지의 우라늄농축공장에서 생산된 저농축우라늄이 연료로 장입된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은 2009년 4월에 착공되었고 2010년 10월 말에 완공되었는데, 북은 공장가동을 시작한 직후인 2010년 11월 12일 그 공장내부를 헥커 박사에게 보여준 바 있다. 북이 녕변우라늄농축공장 건설공사를 시작하였던 2009년 4월은 북측 외무성이 2009년 6월 13일 핵무기추가생산과 우라늄농축개시를 공개적으로 언명하면서 대미협상을 완전히 중단하였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헥커 박사가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깜짝 놀랐던 것처럼, 녕변우라늄농축공장에서는 고속회전하는 초경량 원심분리기인 알멜로(Almelo) 원심분리기와 같은 급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만들려면, 희토류로 만드는 특수자석, 초강도 마레이징강(maraging steel), 진공펌프, 고속회전동체, 분리기 고속회전을 제어하는 동력제어장치 등을 만드는 핵심기술이 필요한데,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은 북이 그런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의 존재가 헥커 박사의 현장방문으로 세상에 알려졌을 때, 세계 각국 전문가들은 북이 그런 첨단핵기술을 몇 해 사이에 개발할 수 없으므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라늄농축기술을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유엔안보리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1년 2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유엔전문가집단은 북이 우라늄농축을 이미 1990년대에 시작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북이 우라늄농축부문에서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경험을 축적해왔음을 말해준다.

헥커 박사가 2011년 1월 24일 <연합뉴스> 기자와 대담한 기사에 따르면, 그가 녕변우라늄농축공장에서 목격한 것은 고성능 원심분리기 2,000대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에서 대북제재조정관 기술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스캇 켐프(R. Scott Kemp) 교수는 2012년 3월 22일 <동아일보> 기자와 대담하면서 북의 원심분리기가 2,000대가 아니라 6,700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그런 추산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2013년 8월 7일 미국의 핵군축연구소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이 불과 6개월 만에 두 배 이상 확장되었고, 그로서 고성능 원심분리기 4,000대가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2013년 8월 초 녕변우라늄농축공장 능력확장공사를 끝낸 북은 그 공장에서 4,000대에 이르는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가동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2010년 11월 19일 과학국제안보연구소는 북이 25∼30메가와트급 녕변경수로를 가동하려면 저농축우라늄을 해마다 약 1t씩 추가로 장입해야 하며, 저농축우라늄을 해마다 1t씩 생산하려면 원심분리기 1,000대를 돌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고성능 원심분리기 1,000대만 있으면 녕변경수로에 장입할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데, 북은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왜 4,000대로 증설한 것일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북은 고성능 원심분리기 1,000대에서 나오는 저농축우라늄을 녕변경수로 장입연료로 사용하고, 나머지 3,000대의 고성능 원심분리기에서 나오는 저농축우라늄을 고농축하여 무기급 핵물질인 고농축우라늄(HEU)을 대량생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녕변우라늄농축공장에서 돌아가는 고성능 원심분리기 4,000대 가운데 녕변경수로에 장입할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원심분리기 1,000대 이외에 3,000대의 원심분리기에서 생산되는 저농축우라늄을 순도 90% 이상으로 고농축하면 연간 60kg의 고농축우라늄이 나온다. 그것만이 아니라, 녕변흑연감속로에서 나오는 폐연료를 재처리하면 연간 6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나온다. 이러한 정황은 올해 하반기부터 북이 무기급 핵물질을 대폭 증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의 무기급 핵물질 대량증산과 지하핵실험 준비

녕변경수로 완공과 녕변흑연감속로 재가동을 바라보는 미국은 무거운 침묵에 빠져있다. 하지만 미국의 무거운 침묵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을 무거운 침묵으로 몰아넣은 물체는 녕변경수로와 녕변흑연감속로 이외에도 두 개가 더 있다. 그에 대한 사연은 아래와 같다.

<교도통신> 2005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1985년에 착공하였다가 1994년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건설공사를 중단했던 녕변핵시설단지의 50메가와트(MWe)급 흑연감속로 건설공사를 재개하였을 뿐 아니라, 1989년에 착공하였다가 역시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건설공사를 중단했던 평안북도 태천의 200메가와트(MWe)급 흑연감속로 건설공사도 재개하였다. 이처럼 녕변과 태천에서 대형 흑연감속로 두 기를 건설하는 공사가 동시에 재개되었다는 정보는, 2005년 5월에 방북하였던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존 루이스(John W. Lewis) 교수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신의 방북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것이다.

대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데 걸리는 공사기간은 6∼7년이므로, 북이 2005년에 녕변과 태천에서 대형 흑연감속로 두 기를 건설하는 공사를 동시에 재개하였으므로, 2013년 10월 말 현재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정찰위성을 동원하여 녕변과 태천의 대형 흑연감속로 건설공사현장을 지난 7년 동안 줄곧 감시해왔으면서도 사안이 너무 심각한 까닭에 그 두 곳의 공사진척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완공을 앞두고 있는 5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와 20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공사를 완료하고 가동되면, 그 두 곳에서만 연간 30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5메가와트급 녕변흑연감속로와 30메가와트급 녕변경수로에 이어 50메가와트급 녕변흑연감속로와 200메가와트급 태천흑연감속로까지 모두 가동되는 경우, 북은 연간 366kg의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미국 정찰위성이 포착하지 못하는 다른 비공개시설에서 생산되는 무기급 핵물질까지 더하면 북은 연간 약 400kg의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게 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북이 대량생산하는 무기급 핵물질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각종 핵탄을 만드는 데 사용할 것이다. 북이 생산하는 연간 약 400kg의 무기급 핵물질을 전량 핵무력증강에 투입하면, 핵탄두, 핵어뢰, 핵가방 같은 각종 핵탄을 연간 약 50기씩 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증산추세를 보면, 북이 세계의 비핵화를 위한 핵군축회담을 미국에게 제의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북이 이전에는 무기급 핵물질을 지하시설에서 비공개로 생산해왔는데, 지금은 미국 정찰위성이 감시하는 지상시설에서 보란듯이 공개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3년 8월 북이 녕변우라늄농축공장을 두 배 이상 늘리는 능력확장공사를 끝내고 곧이어 녕변경수로를 완공한 것은,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핵병진노선에 따라, 그리고 2013년 4월 1일에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 따라 각종 핵탄을 기하급수적으로 증산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 법에 따르면, 북은 “가중되는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위험의 엄중성에 대비하여 핵억제력과 핵보복타격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다.

북이 경핵병진노선과 핵보유국지위 공고화 법령에 따라 급속도로 밀고 나가는 핵무력증강사업은 무기급 핵물질 증산과 핵탄 증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하핵실험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북의 핵무력증강과 지하핵실험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6월 25일 <38노스>가 발표한 위성사진 분석결과에 따르면, 북은 이미 2013년 4월 말부터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지하핵실험장에서 새로 갱도굴착공사를 시작했고, 2013년 10월 23일 <38노스>가 발표한 위성사진 분석결과에 따르면, 그 지하핵실험장 서쪽과 남쪽에 각각 새로 뚫어놓은 두 개의 갱도입구가 보이고, 갱도굴착과정에서 파낸 거대한 흙더미가 갱도입구 밖에 쌓여 있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이 불시에 제4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북이 제4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목적은 미국을 북미협상으로 다시 끌어내는 초강경한 압박을 가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경핵병진노선에 따라 핵무력을 증강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9.19공동성명 등 북미 사이에 합의한 미국의 자기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북을 핵포기로 유인하려는 데만 집착하였던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의 경핵병진노선 추진에 의해 완전히 파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핵병진노선 추진은 미국이 자기에게 제기된 북의 평화협정 체결요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으면서 북의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요구해온 대북협상전략이 결국 어떻게 파산되고 말았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파산된 대북정책을 복구하지 못하게 된 미국은 침묵에 빠졌고, 대미협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북은 사회주의기술강국을 건설하기 위한 경핵병진노선을 선포하고 인민생활향상과 핵무력증강을 ‘마식령속도’로 병진시키고 있다. 북과 미국이 이처럼 극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을 각각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전면전을 촉발할 무력충돌위험이 전례 없이 고조되었고, 미국은 일본자위대의 교전권을 인정해주면서 3자연합 대북전쟁체계 수립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고, 그에 맞서 북은 ‘조국통일반미대전’을 잠시 유보한 채 제4차 지하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 한반도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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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는 장민호씨 가족들 마음 알아주기를

애타는 장민호씨 가족들 마음 알아주기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3/10/27 [03:3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보안법으로 7년 옥고를 석방되자마자 외국인 보호소에 다시 구속수감된 장민호 씨, <구속노동자회 소식지 펌> ©자주민보


구속노동자후원회 이광열 집행위원장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장민호 양심수를 외국인보호소가 아닌 집에서 가족과 보내며 정부의 해외로 추방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결과를 기다릴 수 있게 해달라는 청주 외국인보호소 보호일시해제조치를 바라는 청구서를 보호소에 제출할 때, 청주보호소에서는 가급적 25일 토요일까지 결정을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어 장민호 씨는 계속 또 다른 감옥인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어 있고 기다리는 가족들은 더욱 애가 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관련기사: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4128&section=sc4&section2=)


“아마 정부에서도 고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청주 외국인보호소는 환경이 열악해서 한 방에서 열 명도 넘는 사람이 기거하고 있고 날씨도 추워지는데 난방 등도 부족하며 생필품 구입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장민호 씨도 보호소 생활을 감옥 못지않게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특히 난치병으로 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장민호 씨 어머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디 하루빨리 가족들과 만날 수 있게 정부에서 인도주의적인 결정을 신속히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사실 장민호 씨 가족들은 하루를 천년처럼 느끼며 장민호 씨가 석방되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려왔다. 그 마음이 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 ‘구속노동자’ 2012년 6월호(68호)에 잘 실려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소개한 내용 중에 국정원의 협박으로 장민호 씨 아내가 급히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귀국했고 바로 이혼장을 감옥에 있는 장민호 씨에 보내게 되었다는 가족들의 입장은 사실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없지는 않다.

필자도 국정원 수사를 받아보았지만 국가기관답게 인권을 잘 보장해 주었었다. 아내의 방은 여성 수사관들이 와서 조사하고 변호사 접견과 가족 면회도 자유롭게 보장해주어 국정원 면담실에서 장인 장모님께 큰절까지 올리며 안심시켜 드릴 수 있었는데 왜 장민호 씨의 아내는 국정원을 갔다 온 후 넋이 나가 안절부절 못하고 바로 짐을 싸서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넘어갔으며 가자마자 감옥에 있는 남편에게 첫 편지이자 마지막 편지가 된 이혼장을 보내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관타나모 수용소를 들먹이며 협박을 한 것이 맞는지 믿기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의 입장이 있다면 그것도 충실히 보도할 생각이다.


이런 논란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장민호 씨의 구속기간 심장병 수술을 했음에도 아들이 걱정할까봐 알리지 않고 감옥 안이지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는 어머니의 그 절절한 자식사랑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어, 정부에서 이런 가족들의 마음을 좀 헤아려 달라는 취지로 소개하게 되었다.

일일천추 석방을 기다려온 어머니가 7년만에 감옥에서 나온 아들에게 밥한끼 따듯하게 해먹이지 못하고 또 다른 감옥인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동네에서 착하기로 소문난 동생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누이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면 어찌 하늘이 무심타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부디 정부에서 이런 가족들의 마음을 고려하여 인도주의적인 결정을 하루 빨리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가슴에 한 맺힌 걸 어떻게 다 푼대”
-국가보안법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장민호 님 가족 인터뷰
<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 ‘구속노동자 2012년 6월호(68호)에 실린 글>


전국교사대회와 쌍용차 범국민 대회가 있던 지난 5월 19일, 오전에 국가보안법(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장민호(마이클 장) 동지의 어머님 성경완 님(80)과 누님 장화옥(57) 님이 살고 계신 일산 댁을 찾았다. 5월 18일 민주화 항쟁 다음날이기도한 이 날,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명 아래 여전히 국가의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동지의 가족을 만나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두 분께서는 친히 마중까지 나와 주시며, ‘먼 길 오느라 애썼다’며 두 손을 맞잡아 주셨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누이는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면서도, 동생의 신념에 반하거나, 다른 가족들에게 누가 될 것을 염려하시며,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 구속 수감 당시 장민호 씨에 대한 탄압을 규탄하는 가족들 ©자주민보, 민중의소리 제공

누나 : “저희 가족들도 동생 생사를 며칠 동안 몰랐어요. 애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나, 행방불명이 됐나 걱정을 하다가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그래서 너무 놀랐죠. 우리 민호가 뉴스에서 총책(총책임자 : 편집자 주)이라고 나오는데, 저희는 총책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제 입장은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고, 동족인데, 그것을 가지고 대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하필 ‘내 동생이 왜 그 길에 앞장섰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국가보안법 같은 것도 없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잖아요. 미국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포섭됐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동생이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만나 얘기를 해 본 것도 아니에요. 항상 곁에 누군가 있는 감시받는 상황 속에서 접견을 해서 지금껏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적이 없죠. 저희로서도 언론보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믿고 싶지는 않지만…….”


어머니 : “아주 혼이 빠졌어. 뉴스에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다고 딱 나오는데, 장 마이클이 국정원에서 말이야, 그래서 변호사들이 쳐들어가니, (누나 : 얼마나 겁박을 했겠어!) 변호사들을 못 들어가게 막았다고 하잖아. 뭐 꾸미느라고. 검찰에서 국정원한테 빨리 넘기라고 하니, 일주일만 더 여유를 달라고 해서, 일주일 더 연기돼서 얼마나 당했는지. 검찰에 와서 면회했는데 애가 이상해.”


누나 : “국정원에서 너 어서 고해라, 안 불면 미국의 부인이랑 관타나모 수용소라 했나? 감옥에 보낸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벌벌 떤 거죠. 미국에 간첩들만 보내는 곳이라며.”


어머니 : “그 당시에도 우리 아들이 나한테 직접 말할 기회도 없고, 가면 (손으로 면회하는 곳을 그리시며) 너 잘 있었니? 잘 있어라 밥 잘 먹고 있어라. 엄마도 조심하고 누나도 조심하고. 그 말 하면 시간이 있어야지! (흐느낌) 가서 일심회가 뭐냐? 이랬더니 ‘나도 몰라!’ 지도 모르는데 검찰이 붙인 것인지…….”


누나 : “그때 당시에 애가 넋이 나간 거야. 정신이 없던 거야. 그 착한 애가…….”


장민호 씨는 어릴 때부터 약자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고 한다. 누이는 장민호 씨가 미국에 유학을 간 것도 집안이 부유해서 간 게 아니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가슴에 한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었다.


어머니 :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좀 특이했어요. 우리 남편이 일찍이 간경화로 고생하셔서, 일을 못하고 제가 대신 나가서 생활을 꾸렸어요. 민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녁 늦게 들어왔어요. 목욕을 시키는데, 온 몸이 시뻘겋게 피멍이 들었는데 걔는 말을 안 해. 그래서 계속 왜 그러냐고 채근하니, 싸움을 했대. 왜 네가 매를 맞았니? 생전 싸움도 안 하는데……. 그래서 내가 학교에다 전화를 걸어서 엉엉 울었어요. 알고 보니, 지금으로 말하면 왕따인 어떤 애를 급우들이 괴롭히니, 우리 아들이 역정 내서 싸움을 한 거야.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라더라고. 민호가 통일운동을 한 계기도 의로운 마음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그때는 학생들이 다 데모했잖아요. 우리 아들은, 마이클은 성균관대학교였는데, 대학을 다니면서…….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어머니는 장민호 씨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고 하셨다. 신림동 산꼭대기 마을에서 용산까지 학교를 다녔는데, 먼 거리라 일찍 나와야 하는데, 남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버스에서 무거운 짐을 이고 내리는 분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도와줬다고 하셨다. 생선장수 아주머니들이 책가방을 옆에 두고 그 짐들을 다 받는 모습을 떠올리면 왜 이리 애가 착하기만 하고 미련하냐고 말씀하시며, 그런 아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Q 그렇게 반듯하고, 착한 장민호 씨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가족들, 당시 집안 상황은 말도 아니었을 것 같네요.


누나 : “그렇죠. 회사에서 쫓겨났지, 집도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부인은 미국으로 애 데리고 가 버리고……. 누구를 시켜서 접견하며 이혼 신고를 하더라고요. 더 황당한 것은 감옥으로 서신이 왔는데, 이혼장인 거예요.”


어머니 : “그 아이는 제 것이라는 게 없어. 그렇게 산 애가 왜 피붙이들이랑 생이별을 하고 감방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지. 난 너무 무서워. 세상에 그런 보도가 나고, 난리가 나서 동네에서 내가 걸어가면 사람들이 다 외면하는 거야. (사람들이) 신문이랑 방송에 난 것을 그대로 믿더라고. 한번은 며느리는 나가고, 애들은 학교에 있는데 동아일보 기자가 우리 집에 왔어요. 그 기자에게 불리지도 말고, 줄이지도 말고 ‘고대로’ 쓰라고 말했지. 그 기자는 며느리도 만날 요량이더라고.

우리 며느리가 이 사람이랑 만나고 있다고 전화가 왔는데, 밤10시가 돼도 안 들어와요. 그래서 제가 기자한테 전화를 걸어서 며느리랑 있느냐 했는데, 헤어진 지 오래됐다고 해. 그래서 제가 늙은이한테 거짓말 하지 말라고, ‘우리 며느리 해코지 하지 말고, 어디 가두거나 이러면 나 이 세상에 편지 쓰고 자결할 거야’ 이러니까, 그 기자가 ‘어머니 저 믿으세요. 손 끝 하

나 대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이 있겠죠.’ 이러는 거예요. 그날 12시 쯤 며느리가 들어오더라고요. ‘너 왜 이제 들어오니?’ 이러니 애가 말을 안 해요. 애가 제정신이 아니야. 뭘 집으려고

해도 손을 덜덜 떨고, 안절부절 못하는 거야. 그리고 열흘 후에 짐 같은 것도 어디다 부탁을 했는지 사람들이 짐을 다 꾸려서 다 가져가. 저녁 때 오더니, 애가 반죽음이야. 우리 손녀가 그때 여섯 살이었는데, 나를 막 껴안고 ‘엄마 무서워!’ 이러는 거야. 그러더니 ‘어머니 얘 옷 좀 입혀 주세요!’라고 하고, ‘저 어디 다녀올 테니, 형님 집에 좀 계세요’라고 말하고 큰 가방을 놓고 나가며, 집안 세간을 다 버리래. 나가기 전에 뭘 싼 것을 나에게 주면서 ‘이거 가지고 고모네 집에 가 계세요! 제가 다시 갈 테니까!’ 이러는 거야. 그때 내 생각에 이제 난 죽었구나. 국정원에 갔다 와서 그렇게 된 거예요. 가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애가 정신을 못 차려요. 집이 텅텅 비어서 너무나 무섭잖아요. 얘(누이)한테 전화를 건 거예요. 그리고 싼 게 뭔지 봤더니 돈이더라고요. 내가 걸을 수가 있어야지. 무서워서. 심장이 떨려서. 얘(누이)한테 전화를 하니, ‘엄마 택시 타고와!’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넘어졌어. 밤중이라 눈도 어둡고. 그래서 이튿날, 얘(누이)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비행기 타기 직전에, 그것도 얘(누이)네 신랑에게 얘기한 거야. 집을 청산한 거야. 아니, 열흘 안에 집을 파는 게 어딨어? 난 집 판지도 몰랐지. 열흘 후에 집을 내주래. 그 말 딱 하고 소식이 없는 거야.”



Q 장민호 씨는 부인에게는 어떤 남편, 아이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였나요? (어머니께서 보청기를 끼고 오셨다.)


어머니 : “잘했지. 며느리는 영어 강사를 했는데, 주로 저녁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아마 좋은 남편은 못 됐을 거요. 저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더라고요.”


누나 : “애들 안 예뻐하는 아빠가 어디에 있겠어? 부인이 직장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니까. 애들 데리고 호수 공원에 가서 자전거 타고, 나보고도 호수공원 앞이니까 오라고 하고, 같이 저녁 먹고, 헤어지고 그랬는데, 그 아이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다는 거야~! 이해가 안 가고 (허탈한 웃음) 예전에도 그렇지만, 집권당이 뭔가 크게 터뜨리는 희생양이 그 시기에 필요했던 것 같아.”



Q 장민호 씨처럼 부인이나, 자제 분들도 미국 국적인가요? 면회는 종종 오나요?


누나 : “조카들은 어리죠. 17~18살이에요. 면회는 안 오죠. 아이들도 상처가 큰 것 같은데, 이혼은 했지만, 그래도 고모니까 아이들에게 이메일도 보내고 그러면 답장이 오기는 와요. 한 다섯 통 보내면 한 통 오나? 아마 그곳에서도 굉장히 살기가 힘들 거예요.”


어머니 : “며느리는 미국 사고방식이었어. 국적도 미국이고, 깊은 말뜻도 모르고, 무슨 일 있으면 폴리스 부른다고 하고……. (한국식으로) 싹싹하지는 않았지만, 잘했지. 어서 다 만나야 하는데……. 한국에 있는 우리가 면회를 가기는 하는데, 자주는 못 가지. 그때 최기영, 이정훈 그 양반들은 형량도 3년 정도 나와서 나왔는데, 우리 아들은 아직도 있고 말이야, 왜 우리 아들이 주도했다는 건지…….”



Q 면회 때마다 마음이 힘드시겠네요.


누나 : “밖에서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죠. 인권 침해는 이루 말할 것도 없어요. 매년 8월 달에도 온 가족들이 대전을 가요. 작년에는 못 갔는데, 왜 그랬냐면 접견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안 되냐?’ 물어 보니, 이유를 말할 수 없대요. 우리는 일단 대전 근처에 온천에 갔어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마이클 장이 가족들에게 접견을 요청했는데, 너희는 아느냐’고 하며, 그 안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예요. 제 동생이 미국 국적이라 대전 외국인 수용소(편집자주: 대전교도소 외국인 사동)에 있는데,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니, 교도관이랑 싸운 거예요. 중국동포 그런 사람들을 교도관이 인권 탄압을 한 거예요.(옷 벗겨서) 남자 같은 경우에도 성기 같은 곳을 잡고 그랬대요. 동생이 그것을 못 참은 거죠. 제 동생이 교도관이랑 싸우고 교도소장 나와라 했는데, 걔네들은 항상 그렇잖아요. ‘지금까지의 관행이다’ 그래서 싸움이 붙은 거예요. 밉보인 거죠. 그래서 독방에 가뒀다는 거예요.”


어머니 : “저는 나이 팔십이 먹도록 옥안에 옥방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어.”


누나 : “옥 안에 기대지도 못하게 똑바로 앉게 했어요. 조금이라도 자세가 틀어지지 않게 감시하고 말이죠. 특별 사면은 형량의 3분의 2를 하고 나면 자격이 주어진대요. 그래서 ‘올해 혹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게다가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랑 관련해 뉴스에 일심회 얘기가 다시 나오고……. 아, 사면이 되겠어요? 안 되지. 그나마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되면 될까 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거 보면…….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냈어요. 국가보안법으로 들어가 있는 장 마이클 누나다, 사면이 그동안 많이 있었는데, 국가보안법은 사면이 없었던 것 같다. 7년을 받았고, 올해가 지나면 6년이 돼 간다. 형량의 3분의 2가 지났는데, 사면해 주면 감사하겠다. 어머니도 연로하시고, 꼭 제 동생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으로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도 사면되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랬는데, 편지가 오더라고요. 말하기를, ‘귀하가 보내신 편지는 저희가 잘 받았다’ 걔네들은 늘 같은 말이고, 그렇게 대처하는 매뉴얼이 있나 봐요. 이 민원에 관해서는 잘 해놨다가, 사면에 참작을 하겠다. 그런 식으로 답변 오고 끝이 더라고요.”


어머니 : “내가 공부를 해서 유식하면 소설을 썼으면 좋겠어. 어휴. 가슴에 한 맺힌 것을 어떻게 다 푼대.”


어머니는 장민호 씨가 미국에 있을 때 가족들 곁으로 오려고 미군에 입대해서 4년 동안 복무하며, 그 안에서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미군의 병영 문화를 바꿨다고 했다. 또, 한국(의정부)으로 파견돼, 일산 집도 오가면서 매달 생활비를 300달러 이상씩 부쳤던 아들을 떠올리며 눈가에 엷은 촉촉함을 내보였다.



Q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는 아드님께, 누님 분께서는 동생에게, 혹은 양심수·구속노동자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요?


어머니 : “난 우리 아들이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해요. 살아서 우리 아들 보는 것만 해도 너무너무 고맙고……. 제발 딴 생각하지 말고, 만날 때까지 그저 무사하길 바래요. 저희 어린 가족들 불쌍한 것들이 무슨 죄야. 그것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가 빨리 나와야 할 거 아니야. 그게 부탁이야. 제발. 그저 무사히 나와서 얼른 어린 것들 만나고, 제 누나도 만나야지. 벌써 몇 년 동안이야. 내가 몇 년 동안 입원하고 퇴원하고 입원하고 퇴원하고 검사비가 얼마야?

2008년에는 심장 수술까지 했잖아. (가슴을 치면서) 우리 아들은 그것도 몰라. 그것을 알면 가슴 아파할까 봐……그저 딴 생각하지 말고, (흐느끼면서) 무사히 저희 가족 만나고, 엄마 품으로 돌아오길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그렇게 전해 줘요.”


누나 : “민호 힘내고! 출소할 때까지 운동도 잘 해서 몸 건강히! 양심수나 구속노동자 분들도 건강하셔야 되는데…….

(아휴) 구속노동자후원회 다음 카페도 가 보니 여러 분들이계시더라고요. MB 정권에 맞서서, 부당함에 투쟁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정권이 바뀌어서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편안히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정리-김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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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10.26과 김재규의 10.26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9> 안중근의 10.26과 김재규의 10.26

강응천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25 오전 8:20:02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1990년대부터 <한국생활사박물관>, <라이벌 세계사>, <지하철 史호선>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만 30세의 한국인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68세의 일본인 노정객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와 약 5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사된 세 발의 총탄은 정확히 급소를 꿰뚫었다. 안중근은 이토의 수행원들을 향해 세 발을 더 발사한 뒤 러시아 말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라고 외친 뒤 러시아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토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고 안중근은 일본 측에 넘겨져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서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 검찰관의 심문을 받았다. 안중근은 메모지조차 들고 있지 않았지만 막힘없이 열다섯 가지 거사 동기를 열거했다. 명성황후 살해 지휘, 을사조약 체결, 군대 해산, 의병 탄압을 빙자한 양민 학살, 한국의 정치 기타 권리 박탈, 동양 평화 유린, 한국 보호를 위장한 불리한 정책 시행…….

"한국은 무사하다고 세계를 속였다"는 것을 이토의 열다섯 번째 죄목으로 제시한 안중근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바로 일본 천황에게 알려달라고, 그렇게 해서 동양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하얼빈은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이 만나는 제국주의의 교차로였다. 일본 역사학자 나카노 야스오[中野泰雄]에 따르면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는 고무라 지타로[小忖壽太郞] 외상과 가쓰라 타로[桂太郞] 수상이 입안한 '한일합병' 계획을 승인하고 그 정지 작업을 위해 그곳에 왔다. 그러나 하얼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만이 아니었다. 무명의 젊은 한국인도 환영 인파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세계를 속이고 동양 평화를 해치는 범죄를 저질러 왔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침착하게 총을 빼들었다.

일본 응원에서 이토 사살로…동양 평화를 갈망한 안중근의 변모

당시는 러일전쟁이 끝난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러일전쟁은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영국과 대립하던 러시아가 힘에 부쳐 동쪽으로 전력을 돌리자, '큰형님' 영국이 동방의 '중간 보스' 일본에게 그 처리를 맡겨 일어난 청부 전쟁이었다. 그러나 당시 적잖은 아시아인에게 이 전쟁은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서구 제국주의와 이에 맞서는 동양의 작은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대한의 개화파 청년 안중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개화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쳐 동양 평화를 공고히 하고 한국의 독립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일본은 개전 직후 강제로 대한제국 정부와 맺은 한일의정서 제3조에 "일본 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확실히 보증할 것"이라고 명시해 이러한 안중근의 기대를 부추겼다. 그를 가톨릭 신자로 받아들인 빌렘 신부는 "한국은 일본이 이기면 일본의 속국이 되고, 러시아가 이기면 러시아의 속국이 될 것"이라 경고했지만, 안중근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1905년 5월 대한해협 해전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일본군에게 무참히 패배하면서 전세는 일본의 승리로 기울었다.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환호했다.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영국 유학 중에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꼈고, 인도인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는 "일본의 승리가 사방 곳곳에 뿌리를 내려서 이제 그 열매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한다. 런던에서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국부 쑨원도 뜨거운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배를 타고 귀국하다가 그를 일본인으로 오해한 아랍인 노동자에게서 축하를 받았다고도 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의 총성은 이런 아시아인들에게 짧은 사자후를 던졌다. "당신들은 속았소!"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는 동양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던 일본은 사실 또 다른 제국주의였을 뿐이며, 침략과 강탈의 전선에 동과 서의 구분 따위는 없었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은 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해 외교권을 박탈하고 침략자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을사조약 후 한국에 설치된 통감부의 초대 수장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안중근은 배신감을 느끼고 항일 구국 투쟁의 길에 올랐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거점을 옮겨 대한의군이란 의병 부대를 창설하고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쳤지만, 적은 수의 군대로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중근은 그를 처단하고 일본의 정체를 만천하에 알리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 안중근 의사. ⓒ독립기념관


그해 11월 4일 일본 도쿄의 히비야 공원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는 가운데, 안중근은 아직 이토가 절명한 것도 모르는 채 뤼순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잇단 심문에서 그는 이토를 동양 평화의 적으로 규정하고 평화란 모든 나라가 자주 독립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일갈했다. 이듬해 2월 7일부터 벌어진 공판은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진군할 때 염두에 둔 최후·최대의 전장(戰場)이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판을 지켜보고, 재판정에서 자신이 폭로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정확히 깨달아 참된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안중근의 기대는 좌절되고 말았다. 일본은 안중근의 고발이 한국과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인 재판관, 일본인 검사, 일본인 변호사로 진용을 꾸려 재판을 진행하고, 대외적으로는 철저하게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몰고 갔다. 일본 정부는 제2, 제3의 안중근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안중근을 극형에 처하라고 뤼순의 사법 당국을 압박했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자신의 사상을 담은 '동양평화론'만이라도 다 쓰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사 5개월 만인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뤼순 감옥의 좁고 더러운 형장에서 31년의 거룩한 생애를 마쳤다.

안중근의 큰 뜻을 뤼순 감옥 뒤편 광야에 묻어 버린 일제는 이토 히로부미의 유지를 받들어 그해 8월 29일 한국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안중근의 조국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비참한 운명을 안겨주었다. 큰아들 중생은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고, 둘째 아들 준생과 딸 현생은 일제의 공작에 넘어가 지금의 서울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박문사(博文寺)를 참배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분키치에게 '부친의 죄'를 사과하는 치욕을 당했다. '박문사'는 이름 그대로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이었다. 동생 정근과 공근은 형의 뜻을 이어받아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평화란 모든 나라의 자주 독립이라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안중근의 사상은 이처럼 그와 그의 일가를 풍비박산케 했다. 그러나 그의 동양평화론은 3.1운동을 비롯한 식민지 피압박 민중의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장엄하게 부활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황해도 해주 지역의 소년 접주로 반동학군의 안중근과 적으로 맞섰던 김구는 그의 넋과 화해하고 그 희생정신을 기리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안중근의 조카 안미생은 김구의 며느리가 되어 시어머니가 돌아간 후에는 임시정부의 퍼스트레이디 노릇까지 하며 성심껏 시아버지를 도왔다.

두 번째 10.26…군부 독재 무너뜨린 건 '외로운 총'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안중근의 숭고한 희생과 그 뜻을 이은 민중의 역사적인 항일 투쟁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그런 나라의 국민을 상대로 독재를 휘두르다 못해 영구 집권을 꾀한 이승만은 정말 무모한 사람이었다. 나라의 자주 독립을 위해 외세와 싸운 국민이 어렵게 세운 나라 안에서 국민의 주권과 자유를 유린하는 독재자를 용납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심판하고 축출한 4.19혁명의 대의를 계승하겠다고 해 놓고 이승만과 똑같은 길을 걸어간 박정희는 더욱더 무모한 사람이었다. 그런 무모함이 1979년 또 한 번의 '10.26'을 낳았다.

그해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책임자였던 김재규는 서울 궁정동의 안가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당시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를 맞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독재 시위로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다. 김재규는 온건 대응을 주장했지만 박정희는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김재규는 임박한 유혈 참사를 막고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거사를 도모했다고 진술했다.

같은 10월 26일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김재규를 안중근과 비교할 수는 없다. 김재규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20년에서 25년을 앞당겨 놓았다는 자부심을 안고 세상을 하직한다"고 밝혔지만, 그는 이미 유신 정권의 앞잡이로 너무나 많은 때를 묻힌 인물이었다. 안중근의 10.26은 아시아인들에게 그릇된 환상을 불러일으키던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을 폭로했지만, 김재규의 10.26은 그의 말대로 자유민주주의를 앞당긴 것이 아니라 몇 년을 더 늦춰 놓았다. 그의 거사로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국민을 상대로 한 유혈 참극은 몇 개월 뒤 광주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김재규는 국민이 자기 손으로 해야 했고 또 할 수 있었던 일을 미리 막아 버린 꼴이 되었다.

박정희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군부 독재를 결국 역사의 유물로 만들어 버린 것은 국민의 힘이었다. 그 힘은 10.26과 같은 비극이 이제는 불필요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도처에서 두 차례 10.26의 교훈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고 독재자를 찬양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언동들이 도를 넘은 것 같다. 김재규라면 몰라도 안중근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들을 보고 어떤 결심을 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안중근이 부활한다면, 그 '안중근'은 권총 한 정에 모든 것을 의지하던 외로운 의사(義士)가 아니라 이미 승리를 경험하고 역사의 주인이 되어 있는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일 것이다.

 
 
 

 

/강응천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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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그런 기자 한명쯤은 있어야 된다

국민참여재판 당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최후진술
 
페북뉴스 | 등록:2013-10-26 11:56:40 | 최종:2013-10-27 10:06: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및 주진우 시사인 기자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당시 김어준 총수의 최후진술의 요지가 언론을 통해 일부 알려진 바 있습니다만, 대하여 페이스북의 이상곤님이 당시 재판에 참여한 방청객들이 메모한 것을 취합하고, 방청객 가운데 지인분들에게까지 물어가며 정리한 전문입니다. 이상곤님의 열정과 수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편집자주>

 

 

지난 국민참여 재판 당시 김어준 총수 최후 진술입니다. 여러 사람이 받아 적은걸 모아 제일 비슷한걸 정리해서 올린다고 좀 늦었습니다. 이미 개략적인 내용을 보신 분들은 뒷북이 되겠지만 전 전문을 올리는게 가장 좋을듯해서 당시 방청한 지인들에게 묻고해서 정리해서 올립니다. <페이스북 이상곤님>

 

 

 

 

 

 

김어준 총수 최후 진술

네. 고민이 많았습니다.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지 이 재판이 우리에게 유리할까 검찰 측 주장에 허점을 반박해 볼까 혹은 공직선거법위반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볼까 아니면 살인현장 자살현장의 의문점들을 나열해 볼까 그거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살현장 또는 살인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가 알고 있는가 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정말로 박용수가 박용철을 죽이고 자살했는지... 아님 제3자가 개입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만 모르는 게 아니고 사실은 저희에게 계속해서 죄가 있다고 거짓말 한다고 주장하는 검찰 측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잘 모릅니다. 왜냐면 그날 우리 모두 거기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는 제가 모르는 이야기를 저한텐 유리하게 할 게 아니라 제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자 언제 어디서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문제가 된 나꼼수 방송은 2007년 4월 방송을 처음 했습니다. 제가 그 방송을 한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도 그 이야기를 대신해 주지 않았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방송을 직접 만들자고 생각 했어요 처음에는 세 명이 했습니다. 낙선한 전직 국회의원, 라디오에서 시사평론을 하는 친구, 저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에 2만원을 주고 골방에서 첫 방송을 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에 2만원을 주고 첫 방송을 하고 난 뒤 5천원짜리 백반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가 필요하다, 팩트가 필요하다 그 생각을 하자 가장 먼저, 저 이 바닥에 꽤 오래 있었습니다. 한 10여년 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자가 주진우 기자였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주진우 기자가 다뤘던 기사들, 예를 들어, 주진우 기자가 삼성 이건희 회장의 개인문제 기사를 쓰려고 하다가 쓰지도 못했어요. 발행 되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회사 전체가 공중분해 되어버립니다. 기자들이 다 길바닥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그 기자들이 일 년 동안 길바닥에서 돈을 모아 만든 매체가 <시사IN>입니다.

그리고 주진우 기자는 세상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알려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개인 비리를 찾아내 기사를 씁니다. 그리고나서 만명 신도들의 항의 방문을 받습니다. 기사를 쓰고 누군가의 항의방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5명,100명이 아니고 만명의 신도들이 찾아옵니다. 주진우 기자를 따라 다니며 사탄이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번 거론 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 노건평 기사를 특종보도합니다. 그때도 진보진영으로부터 진보적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다고 진보진영으로부터도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가장강한 경제권력, 가장강한 종교권력, 가장강한 정치권력 즉 가장 힘센 사람들과 싸워왔어요. <나는꼼수다>는 어떤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달랑 4명이 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그정도 배포가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주진우 기자가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기자사회에서나 좀 알려졌는데, 그것도 뭐 독종 그런 정도 였어요, 그런데 저는 일반인들에게도 좀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주진우 기자보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중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보시다시피 제가 올해 47입니다. 한국나이로 그런데 저도 세상에 태어나 이때까지 살면서 누구한테 기죽지 않았고, 또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행색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진우 기자를 만나고 나서 물론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방송을 본격적으로 하며 주진우 기자한테 물어봤습니다. 나도 내 맘대로 살았는데,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살았는데, 그 정도 힘센 사람들 불편하게 하는 기사를 쓰면 그 보복이 두렵지 않냐고 말입니다.

주진우 기자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무섭다. 특히 혼자 집에 돌아갈 때 밤에 으슥한 곳에서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장면을 항상 생각한다. 근데 즉사하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내가 빗맞아서 살아서 식물인간이 되어 남은 가족들에게 평생 짐이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그게 가장 두렵다고 합디다. 그 이야기 있고나서 한참 있다가, 그런데 왜 월급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기사 썼다고 갑자기 부자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 짓을 계속 하느냐" 그랬더니 한참동안 이야기 하지 않다가.. 그런 질문 처음 받아 본거죠. 자기도 그런 생각 안해본거죠. "뭐, 기자 잖아요" 주진우 기자가 한 말은 그게 다였어요. 맞죠. 그러라고 기자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기자 잘 없어요 잘 생각해 보시면 그런 기자 잘 없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요청합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의심이 가면 끝까지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기자로, 주진우 기자로 남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제2, 제3의 주진우 기자 나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기자 한명쯤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기자가 대한민국에 한명쯤은 필요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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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자주민보 청문회 우려되는 상황

자주민보 서울시 청문회에 대한 변호인단의 의견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3/10/27 [05:3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서울시에 자주민보에 보낸 청문회 관련 공문 © 자주민보
 
▲ 변호사가 알려준 서울시에서 거론한 자주민보 청문회 관련 법조항 ©자주민보
 
▲ 변호사가 알려준 서울시에서 거론한 자주민보 청문회 관련 법조항, 서울시에서 직권으로 자주민보 폐간을 결정할 수 있는 23조도 있는데 이는 자주민보에 해당 사항이 전혀 없다. 그래서 22조 2항 2호를 들어 청문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자주민보
▲ 자주민보 발행 목적이 명시된 등록증 © 자주민보


청문회 준비를 위해 만난 본지 자문변호인단은 청문회의 근거가 된 문화관광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 22조 2항은 해당 기관인 서울시가 자주민보에 대해 6개월 이내의 발행정지나 법원에 등록취소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이라고 말했다.

즉, 청문회에서 바로 폐간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고 청문회 후 문제가 있다고 심의위원들이 판단하면 서울시가 법원에 자주민보 고발하여 등록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관련 법에는 발행정지도 있지만 공문에서는 청문회 목적이 자주민보 등록취소 행정소송 제기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서울시 자체가 자주민보를 불법적인 언론사로 보고 있음이 공문에 드러나 있고 행정심판을 담당할 사법부의 최근 흐름을 보면 공안광풍의 한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어 사실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법원에서는 3개월 이내에 등록취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자주민보 대표가 그 기간 법원에 불려 다니고 재판장에 서야하는 것도 무척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취재만 한 번 나갔다고 와도 한동안 힘들어 운신을 못하는 등 활동성 B형 간염과 당뇨병이 겹쳐 건강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서울시에서 자주민보를 불법적인 언론사로 보고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추측이기는 하지만 몇 달 전 새누리당 모 국회의원의 자주민보 발행정지 요구에 대해 서울시에서 자주민보 발행정지를 명할 결격 사유가 없다고 발표하자, 보수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자주민보를 감싸고 돈다고 박원순 시장도 종북시장 아니냐며 극악스럽게 현수막 시위를 열고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언론에서 또 이런 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니, 그러면 사법부에서 결정해 달라 떠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보수세력들이 서울시의 입장을 들어보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주민보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종북시장이라는 말도 안 돼는 논리로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상황이라 서울시가 해명하고 설득하면 할수록 더욱 종북시장이라는 공격 빌미만 제공하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울시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덩달아 이에 편승하여 자주민보가 현저하게 법을 위반했다며 자주민보를 폐간해달라고 사법부에 고발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부디 청문회에서 자주민보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 행정소송까지 가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말 서울시는 자주민보가 설립목적인 '민족의 통일과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는데 일조할 수 있는 언론을 세우고자 함' 뜻을 어떻게 현저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위반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지금까지는 서울시에서 보내온 공문에는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다만 위반 사유가 발생했다는 판단과 관련 해당 법조항만 보내왔을 뿐이다.

청문회에서 서울시가 먼저 이를 잘 지적해주길 바란다.

정말 도대체 자주민보가 국가보안법 위반도 아닌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현저하게 반복한 점이 무엇이라고 보는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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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28일 자주민보 폐간 청문회를 앞두고 애독자에게 드리는 호소문
 
금강산에 오면 ‘통일’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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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대회 시민 1만5000명 모여 '성토'

"박근혜 대통령, '워터게이트' 닉슨의 길로 가고 있다"

[현장]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대회 시민 1만5000명 모여 '성토'

13.10.26 22:49l최종 업데이트 13.10.26 22:49l
김동환(heaneye) 이희훈(leeheehoon) 소중한(extremes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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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법외 대통령 통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자신의 태블릿PC에 '박근혜 법외 대통령 통보'가 적힌 문구를 입력해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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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자 기온이 섭씨 10도로 떨어졌다. 시민들은 연신 손을 비비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대선개입 진상규명'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사가 진행되는 2시간 여 동안 아스팔트 바닥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26일 저녁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공약파기 노동탄압규탄 범국민촛불대회'를 열었다. 당초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으로 시작했던 촛불대회가 대선 공약 파기와 노동계 규탄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날 촛불대회에는 주최측 추산 1만 5000명(경찰 추산 2500)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최근 날씨가 쌀쌀해지며 감소세였던 시민참여가 다시 늘어난 것이다. "한동안 안 나왔는데 윤석열 국정원 특별수사팀장 수사배제 보도를 보고 오랜만에 나왔다"는 시민들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워터게이트' 닉슨 닯았다"

이날 촛불대회 무대는 '박근혜 정부 10개월'에 대한 성토장 분위기였다. 가장 먼저 나온 주제는 역시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이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검찰총장이 댓글 수사 지시하다 사생활 털려가며 쫓겨났고 수사팀장도 공소장을 변경하려다가 외압으로 쫓겨났다"면서 국정원 사건이 점점 박근혜 정부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원래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실무자들이 도청사건을 벌인 게 문제였는데 닉슨이 그것을 은폐하면서 결국에는 닉슨 자신의 하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무처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닉슨이 비슷하지 않느냐"고 주장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윤석열 수사팀장의 배제를 언급하며 "이제 댓글 수사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공소 유지가 될 수 있을지 너무 불안하다"면서 시민들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박 대통령, 공약은 안 지키고 전교조 죽이겠다는 약속만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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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하야하라"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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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장 스피커에서는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해놓고 약속을 어긴 내용들에 대한 비판도 여과없이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파기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시민 9명은 직접 손팻말을 들고 올라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자신을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밝힌 한 시민은 박 대통령이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4년 예산안을 보면 4대 중증질환 100% 공약 관련 예산은 반의 반토막이 났다"면서 "원칙과 신뢰를 말하던 박근혜 어디갔느냐"고 꼬집었다.

목동에서 온 한 장애인은 휠체어를 이끌고 무대로 올랐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장애인 등급제 폐지하고 장애인 연금 두 배로 올린다고 했지만 내년 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선근 민생연대 대표는 정부출범 3개월 만에 끝난 경제민주화 공약을 거론했다. 경제민주화가 매우 오랜 기간이 필요한 작업인데도 3개월 만에 끝났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공약 파기라는 것이다.

고현정 노인유니온 사무처장은 "박근혜 정부가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준다고 해놓고 차등지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고 질타했다. 고 사무처장은 "올해 3월 8일에 박근혜 대통령 사기죄로 고발했는데 검찰이 기각하길래 9월에 또 고발했다"면서 "박 대통령 당선 1등 공신인 노인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지급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날 발언자 중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을 지켰다고 고백한 시민도 있었다. 이영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전교조를 죽이겠다고 선언해왔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면서 "24년 전교조가 고용노동부 공문 팩스 한 장으로 법외노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으로까지 노동자들을 탄압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니 저항하지 않는 나 때문이라는 답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제 촛불 들지 말자. 입만으로 투쟁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촛불대회에 앞서 오는 11월 10일에 전국노동자회의를 열고 총파업을 준비할 뜻을 밝혔다.

"윤석열 수사배제·사이버사령부 개입, 최근 사건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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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민주노총과 각 시민단체가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주최측 추산 1만5000명 (경찰 추산 2500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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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당선 박근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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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촛불대회에는 차가운 날씨를 무릅쓰고 많은 시민들이 찾아 자리를 빛냈다. 대학생 박정순(28, 서울 동작구)씨는 "최근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이 수사에서 배제되고,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화가 많이 났다"며 "요새는 촛불대회에 잘 나오지 않았는데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두터운 파카를 입고 촛불을 든 채 서울역 계단에 앉아 있던 조아무개(65, 서울 송파구)씨는 "어버이연합도 가보고 촛불대회도 가봤는데 두쪽 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촛불대회)에서 하는 이야기가 더 사실에 가깝고 생기발랄하더라"며 "어떤 사람들은 이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두고 영향력이 없었다고 하는데 10문제 중 1문제 컨닝한다고 해서 잘못을 안 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자녀의 손을 잡고 촛불대회를 찾은 이들도 많았다. 중학교 3학년 아들과 서울역을 찾은 김희진(51, 경기도 일산)씨는 "요새 젊은이들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과정을 잘 모를테지만 30여 년을 공들여 만든 민주주의가 이렇게 후퇴하는 걸 보니 소름이 돋는다"며 "자식들이 살아갈 나라가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에 아들 손을 잡고 나왔다"고 말했다.

손을 꼭 잡고 촛불대회를 찾은 연인도 눈에 보였다. 김경환(30, 서울 강동구)씨는 "국정원과 군대가 대선에 개입한 잘못된 모습에 분노해 여자친구와 함께 촛불대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여자친구인 이해정(28, 서울 강동구)씨도 "남자친구의 말에 공감해서 함께 손을 잡고 왔다"며 "날씨도 춥긴하지만 이런 곳에서의 데이트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가 "어떻게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나"라고 묻자 이씨는 "법대로, 법대로요"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촛불대회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25일 사업차 한국을 찾은 중국인 우빈(Wu bin, 52)씨는 "중국에선 이렇게 인민들이 나와 시위를 하면 매우 위험하다"며 "이런 한국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역을 맡은 중국인 유학생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대응도 하고 있지 않다"라는 설명을 듣더니 우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는데요?"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정부는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잘못된 것은 정부가 빨리 나서 교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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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연 장미들고 "관권선거, 부정선거"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에 참석한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한손에는 장미와 다른 한 손에는 '관권선거, 부정선거'가 적힌 휴대전화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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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

5. 평화협정에 대한 몇 가지 논쟁 지점들

불철주야2013/10/25 15:59Posted by 동북아의 붉은_달

기획연재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

 


* 이 글은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 소식지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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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전협정 어떻게 체결됐나

2. 정전협정 어떻게 파괴됐나

3.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1)

4.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2)

5. 평화협정에 대한 몇 가지 논쟁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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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수언론들은 청소년들이 한국전쟁 발발일을 모른다며 역사교육이 어떻고 안보관이 어떻고 개탄합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만큼이나 중요한 전쟁 중단에 대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습는다. 정전협정 체결일이 몇 일인지는커녕 몇 년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19537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지금까지 한반도 질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합의입니다. 그리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 역시 60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반도 질서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에 정전협정이 어떻게 체결되었고,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그리고 평화협정 논의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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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화협정에 대한 몇 가지 논쟁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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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 체결은 이제 대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난관이 가로막고 있어 언제 체결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평화협정 체결을 가로막는 각종 논쟁 지점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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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이 요구하는 것으로 이를 주장하면 이적행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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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게 우리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지 단순히 북한의 주장과 같은지 다른지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어떤 전쟁이든 종료 시점에서 강화조약 혹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상식이며,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 전쟁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평화협정은 당연히 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강령 4항을 보면 정전체제를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한다고 하여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하고 있으며, 구 국민참여당 정강정책 중 통일·외교·안보 분야 1항에도 정전협정을 남북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으로 대체함으로써 항구적 평화체제를 도모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역시 강령 44조에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6자회담 9.19공동성명이나 10.4선언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고 하였으며,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도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외교부장관들도 비핵화를 전제로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화협정 체결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선의 수단이며, 전제조건이나 내용에 대한 다양한 입장은 있지만 평화협정 체결 자체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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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평화협정 내용에 주한미군 철수가 들어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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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이므로 정전협정 60조에 규정된 것처럼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문제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물론 평화협정 협상 과정에서 당사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는 알 수 없지만 평화협정의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 입니다. 진보적 시각에서 보면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높이며 주권훼손 문제도 있기 때문에 당연히 철수해야 하지만, 보수적 시각에서는 주한미군이 전쟁 억지력을 발휘하므로 평화 유지군으로 남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북한은 물론 중국을 견제하는 주요 수단이며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수단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한미군 주둔을 원합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역시 미국과 같은 입장입니다.

반면 주한미군이 보유한 무기나 연례 합동훈련의 성격과 규모 등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자극하고 있어 동북아 군비경쟁을 유발하고 전쟁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북한, 중국, 러시아는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평화협정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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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평화협정 체결 당사국은 어디인가. 이 문제는 연재 글 세 번째 평화협정 어떻게 논의되어 왔나 (1)’에서 다루었으므로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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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평화협정이 과연 전쟁을 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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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역사상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도 전쟁이 재발한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국제 관계는 힘의 논리가 좌우하며 생각만큼 신사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다만 평화협정이 전쟁 재발을 까다롭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단 평화협정은 의회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전쟁을 재발하기 위해서는 역시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현 정전협정 체제에서는 현지 사령관의 판단만으로 전쟁을 재개할 수 있으니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분명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평화협정의 내용에는 전쟁 위기를 줄이기 위한 대책들이 들어갑니다. 정전협정 60조에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논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해방 후 이루지 못한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의미합니다. 또 상호 군축 문제나 적대행위 금지 같은 내용도 들어갈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쟁 위기를 낮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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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불가침조약, 종전선언, 잠정협정 등과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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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침조약은 서로를 침략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1962620일 최용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처음 제안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남북무력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했는데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197274일 남북공동성명 2항에서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라는 문구와, 1991년 체결한 남북합의서 제2장 남북불가침 제9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는 문구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남북공동성명은 의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며, 남북합의서는 북한만 최고인민회의에서 비준 동의를 했을 뿐, 한국 정부는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라며 국회에서 비준 동의를 하지 않아 조약의 성격을 갖지 못합니다. 원래 조약은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야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불가침조약은 남북 사이에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북미 사이에 해야 의미가 있는데(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으므로) 아직까지 북미 사이에는 이러한 내용의 합의나 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평화협정에는 상호 불가침 내용이 들어갈 것이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불가침조약을 별도로 체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둘을 따로 체결할 수도 있습니다.

종전선언은 200611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언급하면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2007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4항에도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쟁의 종료를 선언하는 것으로 법적인 효력이 있지는 않고 다만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더 빨리 체결하도록 하는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잠정협정은 19962월 북한이 제안한 것입니다. 원래 잠정협정(modus vivendi)이란 일시적, 임시적 성격의 협정으로 비공식적이고 비준 대상도 아닙니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까지 과도적 단계로서 잠정협정을 요구했습니다. 따라서 잠정협정은 종전선언과 유사한 성격을 갖지만 더 구체적이고 평화협정을 끌어내는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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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정전협정의 체결 과정과 평화협정 논의 역사와 쟁점들을 살펴봤습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우리는 년 초에 있었던 전쟁 위기를 언제든 다시 겪어야만 합니다. 물론 전쟁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통일을 실현해야 합니다. 또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도 바뀌어야 합니다. 평화협정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까지 담길 것입니다. 정전협정 체결 60, 인류 역사에 유례없이 장기간 지속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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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불복' 협박하는 새누리당, 대체 무슨 속내일까요

[오마이 댓댓글] 내밀 카드가 없어서? 건망증이 심해서?

13.10.25 21:03l최종 업데이트 13.10.25 21:28l
이주연(ld84)

 

 

<오마이뉴스>가 '찾아가는 댓글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도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으셨나요? 꽉 막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으시다고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정치부 기자들이 댓글을 선정해 직접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오마이 댓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가려운 속, 정치부 기자가 시원하게 긁어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국정원 직원 체포 필요성을 보고하니) 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주기냐'며 격노했다."

지난 21일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발언에 국감장이 발칵 뒤집어졌었죠.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팀에 현 정부 윗선의 '외압' 이 있었다는 내용의 폭로는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21일 <오마이뉴스> 안홍기·박소희 기자가 쓴 "민주주의 국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수사팀 검사들 트위터 보고 상당히 분노" 이 기사에 독자 '퉁산'님이 "이래놓고 대선불복이냐고 협박하는 새누리당은 도대체 뭘까요?"라는 댓글을 남겨주셨는데요, 답변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는 마당에, 더군다나 현 정권에서 댓글 사건 수사를 막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 시점에, '부정선거'를 얘기하는 민주당을 향해 새누리당이 '대선 불복'이냐고 따져 묻는 이유가 궁금하신 건데요.

이건 말이죠, 새누리당이 내걸 카드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해 "고작 73개 댓글"이라며 의미를 깎아내렸으나, 5만 5689개의 트위터 글이 새로이 밝혀지자 할 말을 잃은 거죠.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그래서 대선 불복 하자는 거냐"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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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4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대선 불공정' 성명에 대해 "이런 분을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은 우리 국민이 참으로 현명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최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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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말합니다. "대선 불복의 유혹은 악마가 야당에 내미는 손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요.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응수합니다. "민주당의 요구는 대선 승패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라고요.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새누리당은 변명 거리가 없어지자 대선 불복할 셈이냐고 말을 바꿨다"고 꼬집었습니다.

새누리당이 내세우는 또 다른 논리는 이겁니다. '한강 물에 물 한 바가지 부은 격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말합니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5만5천여건의 트위터는 4개월 동안 생산된 트위터의 0.02%에 불과하다. 그런 미미한 양으로 대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라고요. 그러나 '양'이 문제가 아닙니다. 국정원 직원 혹은 군 사이버 사령부 요원이 '몇 개'의 대선 개입 글을 남겼냐는 중요한 지점이긴 하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그들이 국민의 세금을 받고 한 일이 '불법 선거 개입'이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단 한 건만을 남겼어도 그건 '불법'이거든요.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말마따나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 7조와 군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 5조를 각각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기에 문제인 겁니다.

김 대표는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은 명백한 헌법 불복행위이며, 이를 비호하고 은폐하는 행위 역시 헌법 불복"이라며 "헌법 수호 세력과 헌법 불복 세력 간 한 판 승부가 대한민국 미래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인데요. 김 대표는 "댓글과 트위터에 의한 여론조작은 국민들이 마시는 우물에 독극물을 풀어 놓은 것으로, 한 바가지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역대 대선 불복 사례가 없다"입니다. 대선 불복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새누리당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아마도 10년도 넘은 일이라 까맣게 잊은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재검표와 선거 무효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57만 표로 지자 '전자 개표 조작설'이 튀어 나왔습니다. 결국 재검표를 했습니다. 그 결과 노무현 후보 표는 816표 줄고 이회창 후보 표는 88표 늘게 됐습니다. 어떻게 됐냐고요?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야 했습니다. 수개표 작업에 소요된 비용 5억 원은 누가 보상해 줄까요.

이런데도, 새누리당은 도돌이표처럼 "민주당이 이번 국감을 대선 불복 국감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죽하면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나섰습니다. 그는 "여당을 책임진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가려서 하는 '절제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며 여당 수뇌부에 '말을 자제하라'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대선 불복' 레퍼토리,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몽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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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폐간청문회 자체를 6.15시대 민족의 이름으로 준열히 규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0/26 11:09
  • 수정일
    2013/10/26 11: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성명서] 자주민보폐간청문회 자체를 6.15시대 민족의 이름으로 준열히 규탄
 
 
 
재독동포단체
기사입력: 2013/10/26 [01:3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우리는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훼손, 말살하라는 극우보수우익단체들의 집요하고도 의도
적인 반민주적 폭언과 압력에 의한 자주민보 폐간 청문회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이며 세계 공통의 보편적 권리인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주적이며 정의와 진실에 반하는 부정의한 행위로 자주민보 폐간 청문회 자체를 6.15통일시대 민족의 이름으로 준열히 규탄한다.

민주주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극우보수정치세력들에 의한 심각한 공정성, 중립성의 훼손과 국가기관들의 독립성마저 거침없이 위협하는 극우정권국정원에 이어 국방부 심리전단까지 18대 대선에 노골적으로 불법적으로 개입한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민족적 분노가 포기할 수 없는 주권 회복에 대한 민족사적 열망의 불길이 해외에서도 시대적 과제와 소명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 엄중하고 준엄한 시국에 역행하여 인터넷 신문 자주민보의 입에 재갈을 물려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반민주적인 청문회자체가 민주주의의 정의와 양심에 따라 무효임을 우리는 역사와 민족 앞에 당당히 선언할 수 있다.

오로지 6.15 통일시대를 이행, 실천하려는 언론인의 양심을 세기적인 악법, 유엔 인권위에 서조차 반인륜적 악법으로 폐지를 수차례 요구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한 언론인의 양심을 또다시 마녀사냥을 하려는 청문회는,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어긋나는 권력의 폭력이고 오만과 독선적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백보, 천보를 양보해 자주민보가 종북 성향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모조리 부인, 부정하고 있는 극우정치정당들과 극우보수세력들이 헌법보다 우선하지 않는 이상, 기형적이고 편향적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쇼독재일 뿐이 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사상과 정견이 다르다 해서 서로 반복, 질시 음해하지 않고 치열한 대화로 소통하고 이해 포응하며 서로 다른 모습에서 배우는 유럽의 보편적 화해와 관용사회에서의 의식구조로서 는 도저히 용인, 용납은 고사하고 인류 보편적 질서에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언론사냥을 무조건 멈출 것을 우리는 세계의 보편적 민주주의의 정의와 진실로 강력하게 요구한다.

2013년 10월25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지역본부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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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범국민대책위' 단체 개인 속속 가입(25일 현재)
 
[매일기획-북쪽단신종합] 1.26 북쪽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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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통 기술협의 남아..'첨단기술개발구'에 촉각

통일부 "경협보험금 상환 유예 안된다..제도 취지 살려야"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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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25 16: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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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최대 이슈인 통행.통신.통관(3통문제)과 관련해 기술적 협의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측 근로자의 신변안전보장 마련에는 이견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북측이 최근 밝힌 '개성첨단기술개발구'에 촉각을 세우는 반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요구 사항인 경협보험금 상환 유예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개성공단 3통문제에 대해 남북간에는 기본적인 합의는 완료됐다. 기술적 사항만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현재 남북은 3통 문제와 관련해 전자출입체계(RFID) 구축과 인터넷 연결 등 기술적 협의만 남겨두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남측이 기술적 지원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전자출입체계 구축의 경우, △사업계획안 수립, △우리측 사업자 선정, △프로그램 개발 등 남측이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한 연내 전자출입체계를 통한 상시 통행 실시합의가 이행될 수 있도록 준비가 한창이다.

인터넷 연결의 경우도, 개성공단 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KT)를 통해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며, 100mb 수준의 인터넷망 연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남북은 3통 분과위원회를 열고 관련 협의를 지난 9월 26일 열 예정이었으나, 북측의 연기 통보로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오래지 않아 북측에서 답이 올 것"이라며 "합의에 따르면 월 1회 분과위를 열기로 했다. 그렇기에 10월 중에 분과위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반해 우리측 인원의 신변안전보장을 위한 출입체류 분과위는 의견 차가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 출입체류합의서 부속합의서'를 만든다는 것까지 합의는 했다"면서 "구체화하는 내용 중에 기본권 보장 중 몇 가지 사안이 있다. 적용 범위나 기간 등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분과위를 통해 출입체류 부속합의서를 지속해서 협의하고 북측에 신변안전과 관련한 진전된 입장을 촉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보호 및 관리운영과 관련해서는 오는 2014년 3월 상사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3통문제 진척되면 공동 해외투자설명회 개최 논의..개성첨단기술개발구에 촉각"

개성공단 국제화와 관련해, 통일부는 무산된 '공동 해외투자설명회'를 3통 문제 협의가 진척이 있을 경우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개성공단에 투자를 의뢰한 외국기업은 10여개 곳"이라며 "이들은 주로 리스크와 인터넷 연결 여부에 관심이 많다. 3통 문제가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면 외국기업도 관심을 가질 것이고 투자설명회 개최도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이 개성공단 국제화를 합의했지만, 최근 북측이 개성을 첨단기술개발구로 선정했다는 발표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지난 1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보도를 통해, 외국기업들로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이 '개성첨단기술개발구' 건설을 위해 합작하는 방안에 대해 유관기관들과 합의했으며 곧 이행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싱가포르 주룡회사, OKP 부동산회사, 홍콩 P&T건축 및 공정유한공사 등이 참여한 것을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지금 북한이 하고 있는 것이 김정은 이전에 했던 특구들과 구별되게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각 도에, 각 지역에 실정에 맞는 경제 개발구를 하겠다는 것이고 지역에 맞는 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개성에 첨단 개발구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 첨단개발구를 담당하는 것은 기존 특구 담당 기관과 다르다. 기관도 다르고 근거가 되는 법령도 다르다"면서도 "그런데 왜 이것을 개성에 하는지가 궁금하다.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북한이 밝힌 바 없다. 이 부분은 국제 경쟁력 분과위가 열리면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경협보험금 상환 유예 안 된다.. 제도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최근 경협보험금 상환 유예를 요구하는 데 대해, 통일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경협보험금은 기업간 형평성, 보험의 이중수혜 방지, 약관 등에 따라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며 "경협보험금이 첫 적용된 사례이고 제도를 만들었던 취지가 있다. 보험 제도 자체의 틀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경협보험금 외에 기업들이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관계부처와 협의를 할 수있다"면서도 "보험 자체를 놓고 취지가 퇴색되는 것은 좀 생각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8월 109개 업체 2천809억원의 보험금 지급 결정 이후, 9월 현재 총 59개사 1천761억원이 지급됐다.

그리고 10월 현재 총 14개사 446억원이 반납됐으며, 미반납 업체는 △30일 이내 연3%, △90일 이내 연6%, △90일 초과 연9%의 연체금을 부과받는다.

한편, 10월 현재 개성공단은 총 123개 업체 중 119개 업체가 가동, 약 80%의 가동률을 보이나 부품소재 45개 업체의 경우 47%만 가동돼 정상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그리고 북한 근로자는 4만4천명이 출근하고 있으며, 연장근무 근로자는 1만5천360명으로 지난 3월 평균 2만5천명에 비해 낮아 바이어 이탈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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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님 5차 단식 기자 간담회

 

 

(좌로부터 춘몽, 필자, 한영수소송인단 공동대표)

 

2013년 10월 23일,여의도 새누리 당사 앞에서 10일 동안 물도 안 마시는 단식을 하면서 부정 선거 무효를 외치는 춘몽과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필립: 우리가 춘몽의 높고 깊은 뜻을 이행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기자회견을 하고 간담회도 이제 두 번째 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안 온다는 것은 서글프고 처량할 정도야. 나는 얘기 끝났어. 이제 하고 싶은 얘기 해.

춘몽: 저는 애초 시작이… 제가 먼저 번에 문재인의원 사무소 보좌관들에게 실망했던 것이 뭐냐 하면 제가 어떻게든지 문재인의원하고 부정선거를 밝히려는 사람들하고 만남을 주선하려고 그렇게 했는데, 그 사람들이 계속 피하더라고요. 피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 하면, 이 사람들이 내가 유명해지려고 이러는 걸로 생각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윤관영 보좌관에게 물었어요.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유명해지려고 이러는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아니라는 거예요. 근데 하는 행동은 그거예요. 자기네들 이용해서 이 새끼가 유명해지려고 한다,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썩어빠진 생각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가 그걸 보고 그 뒤로는 제가 연락을 안 했어요. 그게 올해 제가 국회 앞에서 단식하기 전 5월쯤이었을 거예요. 정말로 한심하고, 이 나라 대한민국이 희망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는 자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만들더라고요. 그래도 이번에 물도 안 먹는 단식을 하는 동안,물론 저 때문에 이런 영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좋은 징조가, 여러 사람들이 여러 국회의원들이 불법 부정 선거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을 받고 그나마 안심을 하면서 이번 단식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필립: 아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한영수: 춘몽씨가 단식한 만큼 오늘 뉴스에도 좋은 내용이 많이 나왔어요. 윤석렬 검사 건도 계속 퍼지고 있고, 그 다음에 새누리당에게 민주당이 공격을 받았어요. 왜 불복하면 정식 재판을 청구하든지 해야지, 당선 무효소송도 하지도 않고 어떻게 불복을 하느냐? 진짜 어처구니 없이 민주당이 옆구리를 찔려버렸어요. 민주당에서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 했어요. 그리고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한 자체도 양정당에서 모르고 있다. 그러면, 지금 이 나라는 갈 때까지 갔다, 사실상 이 나라는 일당 독재였다. 왜냐하면 민주당이 손을 놓아 버리고 야당이 손을 놓으니 새누리당 판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곧 망하는 길로 갔다는 증거. 이미 (부정 선거의) 증거는 다 나왔고 국회에서 공론화되었기 때문에 부정선거 이 불은 끌 수 없는 불이 되지 않았나. 오늘까지 춘몽씨는 여러 번의 단식으로 하실 만큼 하셨고, 정치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세월을 기다리면 좋은 세월이 올 거 같습니다.

이필립: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34일간 견뎠다는 것은 이건 기네스북에 올라가야 될 해외 특종인데, 이 특종을 놓치는 우리나라에 있는 외신 기자 놈들은 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춘몽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왜냐? 이런 불의를 보고 단식을5차례를 하고, 1인 시위를 계속 하고, 세 번째 (물 안 마시는) 단식을 열흘 동안 하고 이건 놀라운 일이야, 보통사람은 삼일, 닷새, 일주일 만에 다 기절하고 쓰러진다고. 춘몽이 14일, 10일, 또 오늘도 10일 이렇게 34일 (물도 안 마시는) 단식 했다는 것은 기네스북에 올라가도 모자랄, 그럴 정도로 소중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해. 오늘은 기자 간담회답지 못 하게 되고 있는 거 같지만, 일단은 우리가 편집을 해서 여러 군데 올릴 거니깐, 이걸 잘 편집하길 바랍니다.

한영수: 우리가 사실 언론에 많이 알렸음에도 오지 않는 것은 그 내부가 심각하게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 선거를 한 세력들이 준동을 해가지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이 치닫기 때문에 그런 세력들이 더 빨리 망해서 좋은 세력이 나오면서 좋은 세상이 될 겁니다.

 

단식 10일째 호흡곤란이 온 춘몽님은 여의도 성모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응급 치료를 받은 후 현재 신촌연세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춘몽님 일인 시위 이력

- 2012년 1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18대 대선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일인 시위

- 2013년 3월 4일부터 3월 17일까지 14일 동안 새누리당사 앞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물도 안 먹는 단식을 하다가 쓰러져 보라매 병원으로 후송 (1차 단식)

- 2013년 4월 2일부터 4월 11일까지 10일 동안 부산 사상구 문재인 의원 사무소 앞에서 부정선거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물도 안 먹는 단식 (2차 단식)

- 2013년 4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44일 동안 세종로 4거리에서 부정선거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1인 시위

- 2013년 6월 3일부터 7월 18일까지 45일 동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정선거 무효를 외치면 단식 (3차 단식)

- 2013년 8월 5일부터8월 19일까지 시청광장 앞에서 부정선거 무효를 외치며 1인 시위

- 2013년 9월 2부터 9월 17일까지 16일 동안 시청광장 앞에서 부정선거 무효를 외치며 단식 (4차 단식)

- 2013년 10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대법원 앞에서 선거무효소송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면 일인시위

- 2013년 10월 14일부터 10월 23일까지 10일 동안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부정선거 무효를 외치면서 물도 안 마시는 단식 후에 병원으로 후송 (5차 단식)

- 2013년 10월 24일 현재 여의도 성모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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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사건, 사람들은 왜 화를 내지 않을까?

국정원 리트윗 55,689개의 의미
 
정주식 | 2013-10-25 13:02: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사람들은 왜 화를 내지 않는가?

국정원사건이 터진 이후 줄곧 머리속에 맴도는 의문이다. 지난 주말에도 수만명의 성난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분노를 표하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의문스럽다.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정원과 국방부, 보훈처가 동원되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법무부장관과 경찰조직이 동원되었던, 이 초유의 사태를 대하는 대중의 분노는 충분한 것일까? 광장의 촛불이 뜨겁긴 하나 이정도 블록버스터급 선거범죄에 대한 반응 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가. 분노의 실종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국정원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보다는 냉소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동안 시민들의 분노와 각성을 요구하는 ‘격문’들은 수없이 보아 왔지만, 사람들이 왜 분노하지 않는 지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토록 분하건만 다른 사람들은 왜 화를 내지 않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쉽게 떠오른다. 우선 새누리당 지지자 중 상당수는 평생 댓글이란걸 한번도 안달아본 사람들이다. 이중에는 아예 ‘댓글’ 자체가 뭔지 알지 못하는 고령층도 많다. 그들이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지 못한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또 그들은 그게 뭔지 안다해도 분노할 가능성이 극히 낮은 정치적 고착세력이다. 때문에 이번 분노이야기에서 배제해도 좋을 부류라고 생각한다.

댓글이 뭔지 아는, 댓글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남는다.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기에는 ‘댓글’이란 것 자체가 너무 가볍고 찌질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댓글+공작>이라는 낯말의 조합은 마치 김정은의 손에 들려있는 코카콜라만큼이나 어색하다. 이 어색함은 국정원사건에 대한 첫인상을 진지함보다는 기이함, 황당함으로 다가가게 한다. 처음 ‘댓글공작’이란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자. 그 느낌이 엄중함, 심각함이었을까? 아니다. 황당함과 유치함, 찌질함이었을 거다. 더욱이 이 찌질한 행위로 인해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설명은 뭔가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 찌질함을 이성적인 분노로 환산하기까지는 꽤나 복잡한 사고과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부정선거’라는 말에서 투표함 바꿔치기나 정적 암살 같은 고전적 부정행위를 연상한다. 공작이란 말을 붙이기도 민망한 국정원의 댓글작전에서 사람들이 그런 스펙터클을 연상하기란 불가능하다. ‘고작 댓글’ 따위가 얼마나 중대한 헌정파괴행위이고 반민주적인 야만인지를 설득하려면 적지 않은 인고의 설득과정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른다. 민주주의를 ‘실체’로서 학습하지 않고 '추상적 개념'으로 들었기 때문” - 오찬호, 사회학자

‘과정의 문제는 곧 결과의 문제이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배울 법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 정도도 모르는 어른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교과서를 벗어난 현실세계에는 이 간단한 원칙조차 이해하지 못하는(외면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찬호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추상적 개념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그 개념이라는 것은 ‘민주주의=다수결’이라는 단순한 등식이다. 대중의 이해가 여기에 머물러있는 이상 이나라의 민주주의는 국정원사건 같은 내부적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틈새를 잘 이해한 새누리당은 대중에게 영리한 질문을 던진다.

“그깟 댓글 몇개로 대통령이 바뀌었을까?”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보수층은 물론 이른바 중도-무당파를 표방하는 이들에게도 이 질문은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일반 대중에게는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지적보다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개량적 판단이 더 합리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발표된 검찰수사결과는 이 질문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검찰은 국정원사건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발견된) 1760개 게시물 중 불과 67개 게시글에 대해서만 선거개입 혐의를 인정했다. ‘그깟 몇개’라는 부분을 검찰이 승인한 셈이다. 3천만 유권자가 참가한 선거에서 고작 67개의 댓글이 미쳤을 영향력을 상상하게 하는 것, 새누리당 전략의 완벽한 승리다.

알만한 사람들이야 저 숫자가 빙산의 티끌이라는걸 모를 리 없지만, 여당의 질문이 ‘공신력’을 얻은 이상 야당은 저 질문을 공식적으로 반박하는데 한계가 생겼다.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숫자’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저 질문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 나왔다. 그것도 다름아닌 검찰에게서.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나요?”

국정원 리트윗 5.5689개의 의미

18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심리전담반 요원들이 대선관련 글들을 5만 5천689차례에 걸쳐 리트윗한 혐의를 추가하기 위해 법원에 공소장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느닷없다. 나는 윤석열이라는 인물과 수사팀의 ‘의기’만으로 67개→5.5689개로 이어진 극적인 변화를 설명해내지 못하겠다. 윤 검사는 ‘67개’ 발표 당시에도 수사팀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대강 몇십개로 정리하면 그뿐 아니었는가. 4개월 사이에 수사팀의 심경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어떤 계기가 있었던게 분명하다.

각설하고, 그들이 작성-리트윗했던 트윗의 내용들은 그들이 작성했던 개차반 같은 댓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댓글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숫자다. ‘5,5689’라는 숫자는 댓글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트위터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뭔가 엄청나 보인다. 실제로 엄청나기도 하다. 어지간한 파워트위터리안도 리트윗 천개를 넘기는건 흔한 일이 아닌데 무려 5만5천개라니, 저건 도저히 일반적인 트위터 사용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다수 대중이 국정원사태의 위중함을 깨닫기 위해서는 댓글공작이 얼마나 위험한 패악질이며 그 효과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5만 5천이라는 숫자는 이 답답하고 따분한 과정을 충분히 대체할 만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사실 검찰의 발표는 새로울 것이 없다. 이번에 발표된 트위터 리트윗건은 <뉴스타파>가 지난 3월부터 줄기차게 보도해왔던 내용과 대동소이한 것들이다. 그저 검찰이 공소장에 몇자 새로 적어 넣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몇 글자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모든 언론이 다시 그 일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여당은 전에 없이 긴장했으며, 야당과 시민사회의 태도도 한결 결연해졌다. 이 반전이 말해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걸 남들도 다 알고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명명백백해 보이는 사실도 ‘민간’에서 구전되는 것과 수사기관이 공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제 ‘그깟 댓글 몇개’라는 일축이 불가능해 진 것이다. 새누리당은 ‘한강에 물 한바가지’라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 그들이 ‘필살기’ 대선불복프레임을 다시 꺼내 든 이유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너무나 명백하고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라서 오히려 말로,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이 그랬을테고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이 그랬을 거다. 나는 작금의 국정원사건 역시 그것들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꼬리가 밟힌지 10개월,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지쳤다. 답이 없으니까, 피곤하니까, 그거 아니라도 당장 먹고 사는데 지장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화를 내고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다. 아직도 입만 열면, 펜만 들면 그 일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면에서 뻔하고 식상하다. 그런데, 존경스럽다. 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중요한 문제란걸 알면서도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입을 다문 기억이 많은 것 같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비겁하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어찌될까 생각해보니 아찔해진다. 여전히 사건의 전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만한 진상이라도 밝혀질 수 있었던 건 끈질기게 같은 문제와 씨름해 온 ‘뻔한’ 사람들의 활약 덕분이다. 앞으로 무엇이 얼마나 밝혀질지, 밝혀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거악에 맞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화내지 않은 모두가 무임승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했던 사람들의 노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갈지 무임승차자로 살아갈 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화내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이시대의 의인이라는 사실이다. 동참하지 않는다 해도 기억만은 해두자.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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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일 만의 기적... 곱창집 부부가 '철거왕' 이겼다

북아현 강제철거 반대 마지막 농성 타결... 박원순 서울시장 중재로 성과

13.10.25 12:13l최종 업데이트 13.10.25 14:54l
유채림(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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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시청 앞에서 마지막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북아현 철거민 이선형씨.
ⓒ 이선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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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아현동 철거농성을 끝낸다. 왕복2차선 도로가에 천막을 치고 농성한 지 718일 만이다. 먼지구덩이에서 잠들고 먼지구덩이에서 아침을 맞았다. 영하 17도를 오르내리는 눈보라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영상 37도를 오르내리는 살인더위에 살이 짓물렀다. 끈질기게 내리는 장대비에 온몸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실상 자연현상은 견딜 만했다.

철거용역업체 다원의 '깡패'들은 프리모 레비의 말대로 이게 인간인가 싶었다. 2011년 11월 11일 다원의 용역직원들은 영업 중인 곱창가게로 쳐들어와 모든 걸 으깨어 놓았다. 심지어 아직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포클레인으로 가게 옆구리를 쳤다. 벽돌더미에 사람이 깔려 비명을 지르자, "엄살떨지 마, 죽여버려" 하면서 더욱 악을 썼다. 다원의 용역직원들은 딱 한 곳만 무자비하게 철거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긴다는 철거의 황금률에 따랐다.

표적 철거를 당한 곱창집 부부는 718일이나 천막 속에서 버텼다. 수도도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도로가의 천막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의 얼굴도 볼 수 없는 먼지구덩이의 천막이었다. 그 천막에서, '보상협의체를 꾸리겠다던 문석진 구청장은 약속을 지켜라', '감정평가를 했다면 그걸 공개하라', '포클레인 기사와 철거업체 다원의 깡패들을 구속하라', '빼앗은 생계터전을 돌려다오', 그렇게 비장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절규는 늘 허공을 쳤거나 보복만을 불러왔다. 다원의 용역직원들은 새벽을 이용해 주먹을 휘둘렀다. 한낮을 이용해 조합간부들을 대동하고 겁박을 하거나 희롱을 일삼았다. 공포와 모욕, 그건 2년의 철거농성을 대신하는 명사가 되었다.

올해 7월 초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북아현동을 방문해 주민간담회를 가졌다. 천막농성 중인 부부는 그 자리에서 농성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읍소했다. 박원순 시장은, 내게 전권을 위임한다면 사태 해결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원순 시장은 약속을 지켰다. 7월 말 강영진(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장) 조정관을 보내주었다. 강 조정관은 농성사태 해결을 위해 부부의 얘기를 먼저 들었다. 이어 재개발조합 사무실에 들러 조합 측 얘기도 들었다. 그때부터 기나긴 합의조정기간이 있었다.

'구청장 사과·사업자금 대출 보장' 조건으로 합의안에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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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현1-3지구 강제철거 반대 농성장
ⓒ 이선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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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측의 완강함은 농성부부에게 굴욕적이었다. 철거업체 다원을 끌어들여 한 가족의 생계터전을 파탄 낸 장본인 치고는 도대체 몰염치했다. 조합은 개발사업비 절약 운운하면서 합의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런가 하면 철거농성의 불법성 운운하면서 말끝마다, '법, 법, 법'이었다. 뇌물의 조합, 철거용역을 동원한 폭력의 조합 치고는 낯바닥이 '악어가죽 저리 가라'였다.

10월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격히 돌아갔다. 강 조정관은 몰아치거나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면서 조합을 으르고 달랬다. 하지만 조합은 자신들의 합의안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돌파구는 농성 중인 부부에게서 나왔다. 보상협의체를 꾸리기로 한 약속을 어긴 문석진 구청장의 사과, 서울신용보증기금의 사업자금 대출 보장이 선행된다면 합의안에 동의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건 철거농성부부의 피어린 양보였다. 비록 대출금에 힘입을지라도 생계터전인 곱창집을 다시 열 수 있다면, 구청장의 사과로 부부의 자존감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족하다는 거였다.

농성부부와 조합과의 합의는 10월 24일 목요일 오후에 이뤄졌다. 남편인 이선형씨는 그동안 시청 앞에서 지속적으로 해온 1인시위를 10월 25일 금요일로 끝내겠다고 했다. 마지막 1인시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와 축하인사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3시 30분에 718일의 철거농성을 끝내는 조촐한 잔치를 현재의 농성장에서 열기로 했다. 이선형씨는 말한다.

"718일 동안 함께해주신 혁명기도원, 나라사랑청년회,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약속을 지켜주신 박원순 시장님, 강영진 조정관님께도 감사합니다. 10월 26일 토요일, 함께해주신 분들과 작은 잔치를 열고나면 이제 북아현1-3구역 철거농성은 끝납니다. 그러나 잊지 않겠습니다. 더는 막개발로 쫓겨나는 일 없는 세상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다시 마련하는 생계터전 역시 잘 지켜내고 꿋꿋이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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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현1-3지구 강제철거 반대 농성장
ⓒ 이선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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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소설가로, 서울 홍대 앞에서 재개발 강제철거 반대 투쟁을 벌인 식당 '두리반'의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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