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안철수 후보 사이에) 단일화 될것으로 보구요. 만약 그것을 깨는 쪽으로 가면 국민들이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요. 1987년엔 국민들이 그냥 좌절하거나, 한탄으로 끝났지만...이제는 아마 촛불 들고 일어날 거예요. 돌팔매질을 받을지도 모르죠.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도 없을 거예요."
의외였다. 그동안 그의 입에선 '센' 용어를 듣기란 힘들었다. 각종 세미나 자리가 됐든, 청와대 시절에 만났던 그는 그랬다. 차분하고 논리정연했다. 사람들은 그를 '선비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이정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경제민주화위원장 이야기다.
5일 저녁 늦게 그와 오랜 만에 마주앉았다. 문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포럼 서울 사무소에서였다. 그는 전과 달리 '센' 발언을 꽤 쏟아냈다.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를 이야기할 때,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을 강조할 때 특히 더 그랬다. 그만큼 절박했을까.
당초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까지만해도 문재인-안철수 후보 회동이 정해지기 전이었다. 이 위원장 역시 두 후보의 전격회동 확정에 사뭇 놀란 눈치였다. 우리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 내일(6일)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회동을 언제, 어디서 하나?
"난 잘 모른다. 기자들이 더 잘 알지 않나요?"(인터뷰 도중에 두 후보가 6일 오후 6시 백범기념관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두 후보의 회동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굉장히 잘됐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후보) 대리인들이 먼저 만나고, 맨 마지막에 후보들이 만날 줄 알았는데... 안 후보쪽이 이번 회동을 두고 정권교체 의지를 분명히 한 점에 크게 안심이 된다. 또 앞으로 단일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이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원래 이 위원장은 지난 2일 "단일화 상관없이 공동비전을 위한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었다. 그 말대로 대리인들이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이다. 물론 안 후보 쪽에선 "어렵다"며 거부했다.
"선 정책합의 후 단일화...17일께 공동비전과 정책 보일 수 있을 것"
- 일단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면, 정책연합은 별도로 진행되는가.
"두 개의 트랙으로 되지 않겠나. 정책은 정책대로 만나고, 단일화 방법 등을 다루는 정무쪽끼리 만나서 하지 않을까 싶다. 두 팀이 같이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정책연합 협상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쪽에 5개의 위원회가 꾸려져 있다. 양쪽에서 5명씩 나와 협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물론 안 후보쪽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그쪽에서 추가로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조정도 가능하다."(문재인 후보쪽에는 정치쇄신, 남북경제연합, 일자리,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등 5개의 위원회를 두고 있다.)
- 국가의 공동비전과 정책 합의가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는지.
"안 후보가 정권교체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잘 될 것으로 본다. 왜 지금 정권교체를 해야하는지, 무엇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지, 총론에 먼저 합의를 해야 한다. 국가 비전에 먼저 합의하고, 각 분야별 각론에 따라 공통의 공약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 정책 합의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정책 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국가) 비전 합의하는데는 3일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각론 합의하는 데는 1주일 정도 회의하고, 둘이 합하면 10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협상은 어떻게, 누가, 얼마나 걸릴지 말이다. 단지 학자가 아니라 옛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정책기획 등을 해 본 경험 때문이었을까. 다시 그의 말을 옮겨본다.
"빠르면 내일 모레(7일)부터 정책연합 회의에 들어간다고 하면, 총론 합의에 3일 정도, 이후 비전과 각론 합의하는데 10일 정도 잡으면 17일경이면 양 후보가 공동의 비전과 합의된 정책을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제 기대이지만요. 그때 쯤이면 후보 단일화 시기나 방식도 합의가 되겠죠. 두 사람이 나와서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이 정책은 실천을 하겠다'고 선언하게 될 거예요."
"내가 원래 낙관파...단일화 되면 선거 마지막 3일에 야권으로 표가 모일 것"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전북 익산시 원불교중앙총부에서 열린 종법사 추대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후보 단일화보다 정책연합을 먼저 국민에게 알리는 게 맞다"고 했다. 국민들이 야권 후보의 국가 비전과 정책을 보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先)정책연합, 후(後)단일화가 맞다"고 강조했다.
- 안 후보쪽에선 여전히 민주당의 정치쇄신 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끄덕이며) 그런 것 같다. (안 후보가) 9월에 출마선언 때도 단일화 조건이 정치쇄신이었으니까.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실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정치쇄신도 정책별 논의 과정에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이 위원장은 "내 전공분야가 아니어서 괜히 잘못 말하면 분란만 일으킨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대신 "양쪽 정책팀이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할 것은 합의하고, 못하는 것은 다음 숙제로 남겨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웃으면서) 내가 원래 낙관적이다. 바둑도 낙관파다. 바둑을 두면서 늘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계산하면 지는 경우가 많더라. 물론 현재 국면에서도 결과가 나쁘게 갈 수도 있지만 단일화가 잘 될 것으로 본다."
- 어떤 이유라도.
"역사적 교훈과 경험이다. 지난 87년 (야권 후보의) 단일화 실패로 민주주의를 적어도 15년 후퇴시키지 않았나. 양쪽 진영 사람들이 그 교훈을 배우지 못 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본다. 또 지금 우리 국민 분위기가 단일화를 요구하고 있지 않나. 민의를 거스를 어떤 정치세력도 지금은 없을 것이다."
- 야권 단일화하면 대선에서 이길 것으로 보는가.
"박근혜 후보와 50대 50 승부로 간다. 물론 이긴다고 낙관할 수는 없지만… 50대50으로 가더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5년 전만 해도 우리는 낙담하면서 투표장으로 가지 않았나. 이번엔 희망을 가지고 투표장에 간다. 그 희망이 막판 부동층을 우리 쪽으로 끌어 당겨서 51%를 만들 것이다."
-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단일화해도 박 후보가 1.5%포인트 이긴다'고 했다.
"(고개를 흔들며) 단일화가 이뤄지면 정권교체 희망이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다. 아마 투표일 3일을 남겨두고 야권으로 표가 집결할 것이다. 51대 49로 이길 것으로 본다."
'누구로 단일화 될 같은가'라고 물었더니, 대선 승리만큼이나 확신은 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후보를 돕고 있으니까 (단일후보로) 됐으면 좋겠지만 장담은 못하겠다"고 했다. 이어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될지는 하늘만이 알지 않을까. 앞으로 2, 3주가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12일 공약완결편 때 금융민주화, 사회적 대타협도 들어갈 것"
단일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시계 바늘이 저녁 9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문 후보 공약으로 이야기를 옮겼다. 다음주께 세 후보쪽에서 대선 공약집을 내놓는다. 문 후보쪽도 오는 12일께 최종 공약을 공식 발표한다.
- 12일에 내놓을 대선공약에는 어떤 것이 들어가나.
"이미 발표된 것 이외 새로운 것들이 많을 것이다. 완결편으로 보면 된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선 이미 재벌개혁 등 세차례 발표했다. 이외 금융민주화, 사회적 경제(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지원 등) 분야 공약이 들어간다. 또 노동의 민주화를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이 들어갈 것이다."
- 사회적 대타협이라면, 참여정부시절 한때 이야기 나왔던 것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며) 2003년에 주장했었다. 당시 네덜란드 모델을 두고 보수언론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는데. 이제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사회적 대타협이 한국경제의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 당시에도 과연 네덜란드 등 북유럽 사회모델이 과연 가능한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네덜란드는 노사정 대타협이다. 이번에 준비하는 것은 아일랜드 모델에 가깝다. 그쪽은 노사정에 민(民)이 들어간다.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한국식 모델을 만들 생각이다. 우리 노조 조직률이 10%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정만으로는 타협이 쉽지 않다.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노사 간 양쪽 주장을 듣고 중재와 조정, 심판역할을 하면서 사회적 타협으로 가야한다."
- 경제민주화 이외 문 후보쪽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공약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일자리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문 후보 스스로 일자리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도 있다."
- 만약 집권하게 되면 몇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도 있나.
"글쎄. 일자리의 전체적인 방향은 이렇다. 새롭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일자리) 나누고, 바꾸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일자리 '만나바'라고 부른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낼수 있다. 보육과 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 경제민주화는 공통된 주요공약인데, 박근혜 후보, 안철수 후보와 다른 문 후보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안 후보와 비슷하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도 비슷할 거다. 노동의 민주화, 사회적 대타협이 우리 쪽 상표가 될 것 같다. 이 부분은 안 후보쪽에서 별로 얘기를 안 하더라."
그에게 일자리의 구체적인 개수를 물었지만 딱히 숫자를 내놓지는 않았다.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나 복지 등 큰틀에서 보면 여야 후보 간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문 후보 스스로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안 후보와는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박근혜 후보와는 좀더 따져보면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종인 위원장과는 (나와) 인식이 많이 일치하지만 결국 선거장식용으로 영입된 것일 뿐"이라며 "결국 줄푸세론자들이 중심이 되면서 새누리당이 가지는 보수적 색깔이 드러나게 마련이며, 다시 한국경제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위원장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 공약이 뭐였나요. 747(7%성장, 국민소득4만불, 7대경제대국)이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닥치니까 폐기했어요. 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추진했죠. 결국 우리경제 어떻게 됐나 보세요. 재벌로 경제력은 집중됐고, 골목상권과 서민은 더 피폐해졌어요. 민생이 파탄났어요."
- 줄푸세 공약은 원래 박근혜 후보 것이었는데.
"박 후보의 뿌리가 그것이다. 줄푸세의 기획자가 박 후보이고,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인 셈이다. 국가경제와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정권을 당연히 심판해야 하지 않은가. 또 보수에 정권을 넘기는 어리석은 짓을 (국민들이)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책임론도 나온다.
"(차를 마시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 후보가 반성문을 여러번 썼다. 재벌개혁 실패 등을 인정했다. (웃으면서) 보통 재수하면 성적이 올라가지 않나. 두번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벌·관료문제에 대해선 노무현보다 문재인 인식이 더 철저"
이 위원장은 "재벌과 관료 문제에 대해선 문 후보의 인식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철저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문 후보의 정책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했다. 참여정부시절의 논란거리였던 한미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전면 재협상보다는 투자자국가소송제 등 독소조항에 대한 재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재원 마련도 물었다. 김종인 위원장은 "증세는 선거 전에 이야기할 성질이 아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물론 정부의 4대강사업 같은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 우선이라고 했다. 부자감세 등도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30조 원이나 되는 조세감면 제도를 정비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부족하면 어떻게 할까. 그는 "증세를 하되, 부자감세와 반대로 갈 것"이라며 "부자 증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또 다른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래도 증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앞으로 상속세나 소득세 등을 늘려 나가야 할 거고, 이외 법인세와 금융쪽의 자본시장 등에 대한 과세 등이 필요하죠. 직접세를 늘려가는 것이 조세형평에도 맞구요.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에 손을 대면 오히려 서민들이 고통받아요. 종합부동산세는 좋은 세금이죠. 보수언론에서 '세금폭탄이다' 하면서 잘못 알려져서, 억울한데요. 우선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서 오해를 풀어나갈 생각이에요."
유신 말기인 1977년 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인권단체로 뉴욕에 위치한 프리덤 하우스가 각국 별 언론자유에 등급을 매겨 발표했다. 프리덤 하우스는 당시 세계 145개국의 언론 상황을 1등국부터 7등국까지로 분류했다. 거기서 박정희 정권 아래 한국의 언론자유는 5등국이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니 확연하게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후진국, 부끄럽기 짝이 없는 국가위상이었다.
당시 자유화되기 전 공산국가이던 헝가리 폴란드 유고와 같은 나라들과 동점이었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케냐 수단 등과 동급이었다. 한국보다 언론자유가 앞선 것으로 평가된 나라들 중에는 파키스탄 이집트 레바논 로디지아도 4등국으로 포함돼 있었다. 한국보다 못한 나라라면 그저 북한 소련 중국 루마니아 캄보디아 베트남 정도의 일당독재 공산국가들뿐이었다.
한편 보수언론이 회원으로 가입한 국제언론인협회(IPI)는 군사독재 아래 신음하는 한국 언론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당초 IPI는 이승만 정권 아래서는 한국에 언론 자유가 없다며 회원 가입신청을 거부했다. 그러다가 1960년 말 가입을 승인했다. 그것은 4.19 혁명 덕택으로 언론자유를 쟁취한 결과였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이승만 정권 때보다 훨씬 더 어둡고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던 한국의 언론 상황에 IPI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언론자유에 문제없음"이라는 보증이었다. 왜냐하면 군사독재가 끝난 후 거의 완전히 민주화가 이루어진 노무현 정부 당시 이 단체가 발표한 '한국에 관한 결의안'은 많은 문제 제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오랜 군사독재 시절 아무 말이 없던 그 IPI는 민주화가 확립된 2003년 9월15일 연례 총회에서 이른바 '한국에 관한 결의안'이란 것을 내놓았다. 결의안에 담긴 주요 내용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시장에 대한 독과점 현황 조사가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이었다. 그것은 과거 정부가 방조해 오던 언론의 특권과 일탈행위를 실정법에 따라 바로잡는 정당한 법률행위였다. 그런데도 IPI의 결의안을 보면 구체적 상황 진단은 없고 비난만 드러나 있었다. 이는 IPI의 한국 지부가 낸 보고서를 그대로 전재했다는 증거였다. IPI 한국지부는 주류 보수언론이 주도해 왔다. 2003년 IPI 총회에 참석한 대표단도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MBC, 연합뉴스의 간부들로 구성됐다. 보수언론들은 IPI의 한국 결의안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언론 탄압과 공작이 횡행하던 박정희 정권 시절 IPI가 침묵했던 것도 또 다른 공작이었고 거기엔 보수언론도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그래 보았자 박정희 정권의 공작과 로비가 통하지 않는 국제단체에서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위상은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버드대, 언론인 연구과정 니만 펠로십에 한국 기자 입학 거부
유신 후 87년 6.10까지 "한국 기자는 자유 언론인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언론인 연구과정인 미국 하버드대의 니만 펠로십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한국 기자를 추천받기 거부했다. 박정희가 사망하고도 수년 뒤인 87년 6월시민항쟁 덕으로 한국 기자를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랜 해직생활 끝에 88년 2월 제자리에 돌아가 95~96년 니만펠로십 유학을 마칠 때 쯤 나는 현지에서 그런 사실을 알게됐다. 당시의 책임자에게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얼굴이 화끈거림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그 때의 한국 기자는 자유 언론인이 아니었다"고 분명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선포한 1972년 10월 이후 87년 6.10 시민항쟁이 승리할 때까지 15년간 한국 언론은 그렇게 수모를 겪어야 했다. 유신체제 선포 이전엔 1963년부터 72년 초까지는 매 2년마다 한국의 중견 언론인 중 하버드대 니만 펠로가 선발됐었다.
하버드대 니만펠로십은 1938년 월터 리프만에 의해 설계된 후 세계 58개국에 자유언론인 1000여명을 배출했다. 내가 니만펠로에 선발돼 유학할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6월 시민항쟁이 승리해 언론자유가 인정된 덕택이었다. 동급생 25명 중에 미국 기자가 13명, 나머지 12명이 영국 프랑스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공 체코 폴란드 일본 그리고 한국이었고 중국에서 망명 온 반체제 기자도 자유언론인이었다.
2000년대 들어 프리덤 하우스는 세계 각국의 언론상황을 여섯 등급으로 나누고 한국을 2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들은 우리의 언론자유가 1등급이 아님을 강조했다. 당시의 김대중 정부가 언론자유를 옥죄었다는 논조가 깔려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사에 대해 한 일이라면 탈세행위를 법에 따라 처벌한 것뿐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오랫동안 부동산 관리와 세금 문제에 대해 정권 측이 특혜를 주거나 묵인해 왔기 때문에 탈세 처벌도 언론 탄압인 것처럼 왜곡했다. 특혜와 반칙의 교정을 반민주적 언론탄압으로 비판했다. 언론은 이미 사회적 공기(公器)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사적(私的) 도구였던 셈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의한 군사권위주의 정권이 끝나고 하위권이던 언론자유가 상위권으로 올라선 상황에서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보수신문사의 사주와 편집인들은 과거 어두웠던 시절엔 무엇을 했는가. 언론자유를 위해 과연 기여한 일이 있었던가. 유신독재나 5.18 내란 상황에서 정의로운 기자와 논설위원들이 언론자유 운동을 벌였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했는지 조사해 보아야 할 일이다.
당시 자유언론을 실천하려던 기자들을 강제로 해직시킨 사주는 지금 사주의 선대로 같은 족벌이 아니던가. 탈세 처벌을 모면하고 비호하기 위해 언론자유를 들먹이는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다를 게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 이름도 못쓰고 '재야인사'로만 표기한 코미디 언론
박정희 정권이 구사한 가장 반민주적인 통치행위는 언론의 비판에 재갈을 물린 공작이었다. 유신독재 아래서는 수시로 긴급조치를 선포해 특정 이슈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금지했다. 예컨대 1979년 10월 부산마산 시민항쟁도 계엄포고령으로 언론 보도를 금지해 사실 자체의 기록으로 사초(史草)라 할 수 있는 기사가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1973년 8월 도쿄에서 납치돼 온 김대중 씨는 그 후 국내 언론이 이름을 쓰지 못한 채 '재야인사'로만 표기했다. 언론의 암흑기였고 우민화 통치의 극치였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언론 공작 중 가장 비열한 것은 비판적 언론인의 강제해직과 광고탄압이었다. 특정 언론사가 눈밖에 나면 그 광고주들을 겁박해서 수입원을 틀어막았다. 국가안보를 위해 설치한 중앙정보부 같은 국가정보기관이 광고주인 기업인을 겁박하는 야만적 공작을 담당했다.
▲1975년 3월17일 새벽,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편집국에서 자유언론 투쟁을 벌이던 기자들이 회사 측이 동원한 용역 조직원들에 의해 거리로 축출되고 있다. 이때 쫓겨난 130여명의 기자들은 동아투위를 결성해 일관되게 자유언론 운동을 전개했으며 한국 사회의 각계 각 분야에서 개혁적 지식인으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10.24 자유언론 선언을 발표하자 중앙정보부는 이 신문에 광고를 게재해 온 기업들을 압박했다. 동아일보는 곧바로 광고 해약사태에 직면했다. 신문은 광고면을 백지로 둔 채 인쇄됐다. 정권 측의 광고탄압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성원광고들이 답지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성원광고는 지속적으로 장기화할 수는 없다. 그것으로 신문사의 광고 수입을 대체하기엔 턱 없이 모자랐다.
당시만 해도 동아일보사의 총수입은 대체로 구독료와 광고료가 반반 정도여서 지금에 비하면 광고 수입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영상 광고료 수입은 매우 중요했다. 광고 수입의 숨통을 조이는 공작으로 신문사 사주 측은 결국 비판적 기자들을 해직시키면서 중앙정보부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130여명의 기자를 해직시켰다.
박정희 체제폭력의 산물 '동아투위' 각 영역에 큰 족적
언론자유의 재확립과 국민화합 위해서도 명예종결 기다려
당시 동아일보에서 거리로 쫓겨난 기자들이 결성한 동아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언론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 사회문화, 학계 및 교육 분야에서 실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77~78년 엄혹하던 유신독재 말기에도 이들은 '동아투위소식'이라는 제3의 언론을 만들어 배포했다. 제도권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반독재 시위와 인권탄압 사건들을 게재했다. 정권 측이 가만 둘리 없었고 동아투위는 위원장과 총무 상임위원 전원이 불법 연행, 구속, 기소당했다. 안종필 위원장, 장윤환 이병주 위원장 대리, 안성열 임채정 이부영 김종철 정연주 박종만 이기중 양한수 홍종만 기자들이 그들이다. 유신체제 아래서 언론자유의 말살이었다.
동아투위는 그 후에도 일관되게 민주언론시민연대(민언연) 활동을 통해 제도권 언론에 대한 감시역을 했으며 90년대 전후 성역 없는 자유언론의 기수 노릇을 한 한겨레와 월간 말지 창간을 주도했다. 한겨레의 창간 초기 편집위원장과 논설주간을 맡은 장윤환(후에 대한매일 논설고문) 성유보(후에 방송통신위 부위원장)와 논설주간을 맡은 정연주(후에 KBS 사장)가 동아투위 출신 언론인이다.
사회운동에서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정동익과 민언연 이사장 이명순 등이 중심에 서 왔다. 정계에서는 국회의장을 지낸 임채정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한 이부영이 정치개혁에 크게 공헌했다. 출판계에서도 한길사 대표 김언호와 전예원 대표 김진홍 등이 출판언론이라 할 만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학계와 교육계에서 많은 대학교수가 배출됐고 이들은 모두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을 전파시키는데 앞장섰다.
이들이 독재정권에 의해 박해받은 지식인 그룹으로서 고난에 굴하지 않고 혁혁한 사회적 공헌을 해 왔다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희생당한 체제폭력에 대해 보상은커녕 아직 아무런 명예회복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공작적 언론탄압으로 거리로 쫓겨난 동아투위 멤버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제자리에 돌아가고 싶은 기자로 변함없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의한 공작적 해직 또한 체제폭력이었다. 그들은 독재정권의 역사청산과 새 시대의 국민화합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본령인 언론자유의 재확립을 입증하기 위해 명예로운 종결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제17대 국회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등원한 나에게 당 지도부는 언론개혁단장을 맡겼다. 2004년 정기국회 내내 나는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한나라당과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편집권 독립과 신문시장에서 일정한 비율 이상을 점유하는 신문사의 경우 소유지분을 특정 족벌이 독점하지 못하게 분산시키려는 시도는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 갈수록 당 지도부와 다른 동료의원들은 내게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작은 신문사들의 배포망을 지원하는 신문유통원과 지방신문발전위원회, 그리고 언론에 의한 피해를 손쉽게 구제할 수 있도록 언론중재위법을 개정한 것 정도가 실적이었다.
▲2006년 4월2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해방 이후 언론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법'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재홍 의원(국회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회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엔 정일용 기자협회장,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조양진 동아투위 위원,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회 공동대표, 김광석 변호사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 후 2006년 나는 독재정권의 언론탄압 피해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 특별법 제정에 나섰다. '해방 이후 언론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작성하고 토론회와 청문회를 거쳐 문화관광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법안은 문광위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제대로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당 지도부에 매달리고 떼를 써서라도 관철시켰어야 했는데 기가 꺾여 좌절했다. 이 법안이 제정됐어야 동아투위와 80년해직언론인들의 피해구제와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텐데 내가 과연 최선을 다했던가 오랫동안 회한이 남는다. 그러나 해직언론인들의 명예는 민주화로 이미 회복됐다. 오히려 남은 문제는 그런 현실과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해당 언론사들의 정신적 부채일 것이다.
한국의 주류 보수언론은 비판과 타협의 줄타기 경영의 달인들
전두환 내란집단의 80년 언론인해직도 '박정희 수법'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 수법은 1980년 전두환의 5.18광주항쟁을 전후한 내란 과정에서도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강제해직 때 그대로 답습됐다. 하나회 집단은 보안사령부를 내세워 정치군인들의 내란행위에 대해 비판한 기자들의 명단을 작성해 언론사에 내려보냈다.
▲1980년 5월14일 광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국성토대회를 끝낸 뒤 200여 교수들이 앞장서고 그 뒤에 전남대 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신군부의 계엄사 검열단은 이런 사진을 보도불가 조치했으며 검열의 정당성과 저의를 의심케 했다.
당시 내가 소속했던 동아일보사에서는 모든 기자들의 일괄 사표를 제출받은 뒤 선별적으로 수리하는 해직조치가 자행됐다. 불과 3년차 기자에 불과했던 나도 선배들과 함께 거리로 쫓겨났다. 기자로서 막내였지만 자유언론 선언문의 초안 작성을 맡았고 광주항쟁을 싣지 않는 신문제작을 거부했기 때문에 당시로선 피할 도리가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직접적인 언론 탄압은 비판적 언론인들을 수시로 불법 연행해 문초하고 구타하는 방식이었다. 젊은 기자에서 최종 제작 책임자인 편집국장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았다. 편집국에는 중앙정보부 요원이 상시로 출입하면서 감시하고 신문의 편집 제작에 간섭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10.24 자유언론 선언의 한 원인도 그런 정보기관원의 편집국 출입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재벌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수신문사들이 특혜 성장을 누렸다. 정권에 대해 적당히 비판하고 다른 한편 타협하는 줄타기 경영을 하면서 언론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부를 함께 얻었다. 그러나 이른바 주류 언론들의 그런 줄타기 시절 한국의 언론 자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바닥 수준이었다.
11월 3일부터 4일까지 1박2일 동안 미디어 다음에서 주최하는 '수원 화성 파워소셜러 투어'에 다녀왔습니다. 정치블로거이니 이런 투어 행사에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를 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수원에 '수원천'이라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천'은 '청계천'과 함께 복개천 복원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청계천을 늘 성공한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건설회사 CEO 출신의 시장과 환경운동가 출신으로 수원천 복원을 위해 17년간 노력했던 염태영 시장을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의 하천 복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청계천과 수원천,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고, 정부의 수장이 무슨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함께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수원천과 VS 청계천, 무엇이 다른가?'
청계천과 수원천은 모두 복개천을 원래 하천의 모습으로 복원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하천의 복원 모습이나 복원 방법을 보면 전혀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청계천과 수원천 모두, 시민단체가 복원을 요구했던 하천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성공적인 사례로 들고 있지만, 청계천 복원 설문조사를 했을 당시 서울시민 74%가 찬성을 했었습니다. (2002년 3월 리서치플러스연구소 조사결과)
청계천 복원사업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이명박 서울시장 임기 내에 하천을 복원하다 보니 철저히 '행정주도형' 하천으로 조성됐습니다. 이에 반해 수원천은 1990년부터 시작된 수원천 복개사업으로 도로와 주차장으로 변한 하천을 시민운동을 통해 복원한 사례입니다.
처음부터 복원 주최가 다르다 보니 하천 자체가 자연형 하천과 조형하천으로 뚜렷하게 구분이 됐습니다. 서울시는 인공적으로 멋있게 만들려고 했고, 수원시는 철저하게 자연 생태 하천으로 조성했습니다.
▲청계천(출처:오마이뉴스 최병성)과 수원천의 모습
청계천을 보면 아주 멋있습니다. 깔끔한 대리석으로 인공조형물이 수도 없이 조성돼 있고, 조명도 알록달록합니다. 그러나 수원천을 보면 좌우 보행로를 제외하고는 일반 농촌의 하천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수풀이 우거지고 바닥에도 자갈과 모래가 있는 구조입니다.
수원천은 광교산과 팔당댐에서 흐르는 물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했지만, 청계천은 전기를 이용해 펌프로 한강물을 끌어와 조성한 하천입니다. 대리석으로 하천모양을 만들고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왔기에 청계천을 가리켜 '대리석으로 치장된 길게 누운 어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수원천 바닥에는 자갈과 모래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물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자연적으로 조성된 하천은 갑자기 오염된 물만 유입되지 않으면 모래와 자갈,수중식물등으로 정화가 됩니다. 더러운 물을 자갈,모래 등이 있는 병에 넣으면 자연스럽게 깨끗해지는 모습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 어항이나 수조는 반드시 물을 버리고 그 안을 청소하지 않으면 퇴적물이 쌓여 계속해서 물이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원천의 가장 큰 특징이 이처럼 꾸미지 않아 보기에는 깨끗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하천 스스로 깨끗한 물을 만들 수 있도록 자연 그 상태로 최대한 복원했다는 점입니다.
▲수원천에 살고 있는 잉어와 각종 어류들,
수원천에는 얼룩동사리, 밀어, 피라미, 꾹저구, 버들치, 붕어등의 어류와 수서곤충으로 논우렁이, 게아재비, 물땡땡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식재종 꽃창포 등 17종, 귀화종망초 등 23종, 자생종인 닭장의풀 등 55종, 총 95종의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청계천에도 각종 어류가 살고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섬진강에만 사는 '갈겨니'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 사는 '갈문망둑' 또는,소금물에만 사는 어종들이 섞여 있는 생태학적으로 기네스북이나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올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 수원시도 물고기를 사다가 방류했느냐고 수원시 홍보팀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보니 낚시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사다가 뿌릴 계획도 한 적도 없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남수문내도와 수원시가 복원한 남수문
하천 복원을 하는 이유 중에는 역사적 유물의 복원도 있습니다. 하천은 우리 조상이 살아오면서 건축했던 건축물이 다수 포함된 경우가 많은데 청계천은 수표교와 광통교,오간수문이 있고, 수원천은 대표적인 남수문이 있습니다.
수원시는 2010년 남수문 복원 사업을 시작해서 유실된 지 90년이 지난 2012년 6월에 복원을 마쳤습니다. 처음 수원천 복원을 시작하면서 많은 시민단체가 남수문이 복원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하천 복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지만, 지동 시장이 위치한 남수문 지역은 복잡한 보상문제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남수문은 복잡한 시장을 없애지 않고 주변 지동시장과 연계해 복원을 마쳤습니다.
' 사람이 다르면 하천도 다르다'
'수원 화성 파워 소셜러 투어'에 참석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정치 블로거인 까닭에 염태영 수원시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을 취재하고 싶었던 목적은 염태영 수원시장이 수원천 복개 공사를 반대했던 환경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1994년 시민환경운동단체인 수원환경운동센터를 창립하고 그 이듬해부터 수원천 복개 공사를 반대했습니다. 당시는 1991년부터 시작된 수원천 복개 공사가 1994년 1단계 복개 구간인 매교교~지동교까지 780m 공사가 완료된 상태였고, 2단계 지동교~매향교 간 480m 복개 공사가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 1996년 열린 수원천 복개 반대 시민서명운동과 수원천 퇴살리기 시민토론회 모습
염태영 수원시장은 2단계 복개 공사가 시작된 시기에 수원지역의 모든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를 만들고 사무국장을 맡아, 수원천 복개 공사 반대 시민운동을 벌입니다. 당시 정부가 벌인 복개공사를 반대했던 인물이 수원시장으로 당선되고, 수원천 복원을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 이미 시작한 대통령 공약사업을 중지시킨 사례
1996년 '수원천 되살리기 시민운동본부'는 문화재관리국에 '수원천 남수문 터 복개 중지 및 원형 복원 요청'을 탄원하고, 시민서명을 받고,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시장을 고발하는 등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이에 심재덕 수원시장은 공사진척률 30%의 2단계 복개공사를 전면 중지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수원천 복개사업 중단은 이미 1단계가 끝났고 2단계가 진행됐던 시점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수원천 복개는 노태우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추진되던 국책사업이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4대강 사업을 시작했으니 아무리 반대가 심해도 강행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 수원천 복원 과정과 대입하면 맞지 않게 됩니다. 국책사업, 대통령 공약사업도 원칙이 잘못됐고, 시민이 반대한다면 충분히 재점검해야 하고, 그에 따른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공사를 중지하고 원형을 복원할 수 있음을 우리는 청계천 복원보다 10년이나 더 빨랐던 수원천 복개 공사 중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문화재 복원과 현실의 문제점
남수문은 홍수 때 마다 유실이 생겼던 곳입니다. 그래서 남수문은 원형 그대로 복원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존재했고, 이에 대한 충돌이 산재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남수문외도와 수원시가 복원한 남수문
'화성성역의궤'의 남수도내도를 보면 남수문에 쇠창살이 나옵니다. 남수문자체도 하나의 성곽이기 때문에 쇠창살으로 막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서 이 쇠창살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경구 홍수 때에 흘러나오는 나무나 부유물로 수원천이 범람할 것은 눈에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수원시는 남수문을 복원하면서 쇠창살을 만들지 않았고, 혹시 홍수가 범람해서 나올 수 있는 남수문 파괴에 대비해서 커다란 부유물이 남수문 바로 앞에서 빠질 수 있는 보를 설치했습니다.
남수문은 '화성성역의괘'에 나온 평거형(좌우 석축 윙에 장대석을 걸쳐 만드는 형식)이 아니라, 1846년 중건할 때 관리상의 문제로 바뀐 통홍예(무지개처럼 만든 터널형 둥근다리) 형태를 고증과 전문가 자문으로 선정해서 복원했다.
이처럼 복원을 하면서 원형 그대로 복원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맞는 다양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문화재는 복원이 100% 완벽하지 않기에 중건(다시 지었다)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문화재 복원 과정에서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도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지역을 살리는 행정
청계천 복원 당시 청계천 주변 상인 이주문제는 청계천 복원의 걸림돌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천을 정비하면서 발생하는 민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환경,주민,행정의 충돌이 커질 수도 적어질 수도 있습니다.
▲수원복개천 당시의 모습
하천을 복원하다 보면 지역 상인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소상인이 밀집한 남수문 근처는 복원 당시에도 이런 상인들의 불편과 불만, 보상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수원시는 이런 지역상권과 상인들과의 협상과 의견수렴, 그리고 장기적인 발전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고, 이로써 현재는 사람들이 남수문을 보러 오는 동시에 지동시장을 이용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 남수문쪽에 위치한 지동시장과 수원천 도로변의 노점상들
피터가 찾았던 11월4일 남수문 수원천 주변에는 지역 농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어, 마치 오일장과 같은 시골 정취를 도시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원시 공무원들은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전국에서 순대국이 제일 맛있다고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천 복원을 단순히 환경만 생각해서 밀고 나가다 보면 상인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는데, 완벽하지 않지만 이렇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행정이 존재한다면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끊임없이 시민과 소통하고 변화하는 모습
염태영 수원시장이 환경전문가로 출발했지만, 결국 그도 한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환경만을 고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수원천을 시민과 함께 보존하고 관리하도록 했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수원시장인 그가 직접 듣고 행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즉각 조치하도록 했습니다.
▲ 염태영 수원시장과 시민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느티나무 벤치미팅 모습
수원시에는 수원천을 포함하여 4개 하천을 모니터링을 하는 '금빛봉사회'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하는 '수원천지킴이',도시농업 생태지킴이','문화지킴이' 등이 있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수원천 관련 토론회를 하면서 이런 환경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수원천 인근 자영업자,주부과 수원천 관련 부서인 하수관리과,물관리과,문화유산관리과의 행정부서를 함께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수원천이 단순히 환경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깨끗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함께 공존하는 방안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는 이런 모습은 지자체장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풍경 중의 하나로 생각됩니다.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전시행정과 환경을 생각하며, 그 안에서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함께하는 개발과정을 보면, 왜 요새 수원천 주변의 땅값이 오르고, 사람들이 이사 오려고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수원천이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
수원천을 취재하면서 '피터'의 눈에 몇 가진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보통 팸투어 다녀오면 좋은 얘기만 쓴다고 하지만 피터는 그런 것 없습니다. 피터의 눈에 딱 걸린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 수원천 녹조 현상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수원천이 자연생태하천이라고 하지만 지난 여름 수원천에도 녹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현상일까요?
▲팔당 취수장 한강 하류 녹조현상과 (출처:뉴스1)지난 여름 수원천 일부에 나온 녹조 현상
이유는 수원천을 흐르는 물에 있었습니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나오는 물과 팔당댐에서 오는 물이 흐르게 되어 있는데, 팔당댐에 녹조현상이 생기자, 그 물이 수원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수원천 자체가 문제라는데, 원수가 문제였습니다.)
생태하천 1일 유지수량 2만8천 톤 중 팔당원수와 지하수가 대략 1일 1만4천 톤이 유입되는데, 이처럼 하천 방류수원 자체가 오염이 됐다면 수원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앞으로 수원천이 1급수가 되기 위해서는 하천 방류수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나 다른 대책을 간구해야 하는데, 수원시 담당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하천 방류수원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수원시는 물 자급률이 11%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원천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하천 정화 노력은 물론이고, 수원시의 담수를 장기적 안목에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시민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
수원천에는 남수문과 북수문이 있는데, 북수문은 여름철 장마 때마다 심한 물난리를 겪고 있는 백성을 위해 정조가 물이 흐를 수 있는 7개의 홍예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홍문'이라는 누각을 세워 북수문보다 '화홍문'이라 불립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화홍문에는 가드레일이 없습니다. 화홍문 자체가 문화재라서 가드레일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등의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그린 벽화가 있는 수원천
수원천을 따라 가다 보면 아이들이 그린 아주 멋진 벽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벽화 근처는 다리 아래인지 노숙자들이 잤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노숙자들도 시민이기에 함부로 쫓아낼 수 없지만, 노숙자들이 이곳에 자꾸 상주하다보면 시민이나 관광객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무원들도 힘들겠지만, 경찰 순찰 강화와 함께 노숙자 이전 등의 대책을 강구해서, 수원천을 이용하는 시민이나 관광객이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초를 비롯한 각종 식물이 하천에서 자생하고 있는 수원천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의 후속조처로 3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제2의 청계천'을 39곳이나 만들겠다고 합니다. 오늘 피터가 수원천과 청계천을 비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현대건설 출신이고, 염태영 수원시장도 건설회사 출신입니다. 똑같은 건설회사 출신이지만 그들이 하천을 복원한 방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고 난 뒤에 많은 변화가 있었듯이 수원시도 염태영 수원시장이 당선되고 난 뒤에 주거와 환경,복지가 함께 발전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정치블로거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정치를 비판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와 행정이 바뀌어야 하는지 분석과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원시가 완벽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장이 바뀌면 어떻게 수원시가 변화되고, 앞으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환경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사례로 보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다르면 하천도 달라집니다. 하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이번 수원 취재에서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을 바꾸고 싶다면 올바른 정치인을 선택하는 투표부터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왔습니다.[각주:1]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6 01:05:30 | 최종:2012-11-06 01:20:57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故) 김지태 씨의 유족들이 금주 내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유족들은 박 후보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해 박 후보측에 사과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고소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태 씨의 유족인 5남 영철 씨와 6남 영찬 씨는 5일 오후 <미디어오늘> 기자와 만나 “정치적으로 휘말리고 싶지 않아 (기자회견 이후) 열흘 넘게 박 후보 사과를 기다렸으나 적반하장으로 잘못된 사실을 유포하고 있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며 박 후보를 고소할 뜻을 밝혔다.
▲ 지난 10월 15일 오전 정수장학회를 찾은 고 김지태 씨의 아내 송혜영 씨(가운데)가 오열하고 있다.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헌납 당시 강압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을 때인 지난 10월 21일 박근혜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은 분이었다”, “4·19부터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고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였다”, “(김지태 씨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혔던 것이다” 등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영철 씨는 “금주 내로 박 후보의 공식 사과가 없다면 사자명예훼손으로 대응에 나설 생각이며 이미 법적 검토는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또 영찬 씨는 “박 후보는 전 국민이 보는 기자회견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사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자식 된 도리로서 용납해서도 안 되고 (법적 대응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특히 영철 씨는 “아버지를 두고 부정축재자라 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과 똑같다”며 박 후보를 비판했다. 김 씨는 이어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했다”는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서도 “내가 당시 집에 있었지만 집 앞은 조용했다”며 박 후보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반박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 김지태 씨(오른쪽)와 그가 세운 부산문화방송 사옥
영철 씨는 “만약 정경유착을 통해 부정축재를 했다면 왜 자유당으로부터 탄압을 받았겠나. 자유당과 친했다면 왜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에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의 사진을 실었겠느냐”라고 반문하고는 박근혜 후보의 ‘부정축재자’ 주장을 일축했다. 김지태 씨는 4·19혁명 당시 부정축재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선 부정축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철 씨는 또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모함을 당했다면 박근혜 후보는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법적 대응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유족들은 또 김지태 씨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수년간 근무한 경력을 두고 ‘친일파’ 논란이 제기된 데 대해서도 해명했다. 영철 씨는 “아버지가 상고를 나왔고, 성적순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당시엔 일본인 회사가 아니면 갈 데가 없었다. 그곳(동양척식주식회사)이 조선인을 수탈하려고 만든 곳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아버지로선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부친이)친일파처럼 적극적으로 협력한 일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고법은 지난달 28일 1심에 이어 김지태 씨가 재산헌납 과정에 강압성이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군사혁명정부의 다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중앙정보부가 이 사건 토지를 증여하지 않으면 김 씨나 가족 등의 신체와 재산에 어떤 해악을 가할 것처럼 위협하는 위법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대선이 45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선 구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문 후보와 마주친 자리에서 나온 단일화 이야기에 ‘웃음’을 지어 보였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맨 마지막 순서로 넣어 달라’고 요구해 KBS TV토론이 무산됐다. TV토론 무산 책임을 놓고 벌어진 공방에서 한겨레·경향신문은 박 후보를 비판했고, 조선·중앙일보는 ‘세 후보’의 책임을 언급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를 점쳤고, 여론조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롬니 후보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지지율이 ‘박빙’이어서 결과 예측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증권사들이 소액채권 가격을 7년 동안 담합해 수천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이 부동산이나 자동차를 구입할 때 의무적으로 구입했던 채권의 수익률을 담합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개 증권사들에게 192억3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다음은 11월5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너 왜 화장 안 해, 같이 못 놀겠다”>
국민일보 <다른 후보 비해 ‘뚜렷한 우위’ / 대선승리 □에 해답 있다>
동아일보 <프레너미 G2, 이젠 新패권 시대로>
서울신문 <文 ‘여론조사 단일화’ 수용 시사>
세계일보 <막판 기우는 판세…오바마, 대의원 확보 앞서>
조선일보 <소통 외치는 세 후보, 일방통행 대선>
중앙일보 <문 “단일화 약속만 해달라” / 안, 오늘 광주서 입장 표명>
한겨레 <박근혜 안나온다고…KBS, 다른 후보 개별토론도 취소>
한국일보 <쌀쌀해진 PK…朴 대세론 흔들>
문-안, 단일화 ‘밀당’…오늘 안철수 입장 밝힐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4일 전북 익산에서 마주쳤다.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열린 14대 종법사 추대식에 참석한 자리였다. 행사에 앞서 장응철 종법사가 두 후보의 손을 한 곳에 모아 사진 촬영에 응하자 “(장 종법사가) 단일화를 중재하는 것 같다”는 농담이 나왔다. 문 후보는 “단일화를 꼭 이루라는 뜻”이라고 말했지만, 안 후보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이후 두 후보는 ‘종교’를 주제로 짤막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 국민일보 11월5일자 만평
문재인 후보는 이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저에게 유리한 시기와 방법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모든 방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했다. 문 후보는 “우리가 단일화할 것이라는 원칙, 힘을 합쳐 함께 대선에 임할 것이라는 원칙만큼은 하루빨리 합의해서 국민에게 제시하자”고 강조했다. 언론들은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단일화 방식을 ‘양보’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개혁’ 요구로 이를 맞받았다. 이날 오후 전북 군산 새만금을 방문한 자리에서 안 후보는 “정치개혁 없는 정권교체는 일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단일화를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안 후보는 “정말 국민들이 ‘정치쇄신이 됐구나’ 판단하는 순간이 정권교체 성공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이날 저녁 광주 충장로에서 가진 시민들과의 ‘번개’에서 단일화 여부를 묻는 한 시민의 질문에 “내일 (전남대에서) 강연 기회가 있으니 강연을 들으러 오시라”고 답했다.
박, TV토론 ‘퇴짜’…“마지막 날 아니면 못해”
대선이 4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들은 후보자들을 TV 토론에서 만나지 못하고 있다. TV 토론이 처음 도입된 1997년 대선에서 18차례, 2002년 83차례, 2007년 44차례(중앙선관위 자료, 중앙·지역방송 전체 횟수)에 걸쳐 각각 TV 토론이 열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최근 추진되던 KBS 주최 토론회가 박근혜 후보의 불응으로 취소됐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각각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올렸지만, 논조는 달랐다.
문재인 후보 측 김현미 소통2본부장은 4일 브리핑에서 “KBS에서 타운홀미팅 방식의 토론회에 문 후보를 초청해 1일 승낙서를 발송했으나 2일 박 후보가 불참한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를 통보해 왔다”며 “이번 대선에선 선거법에 규정된 3차례 토론외엔 어떤 TV토론도 못 보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 측 정연순 대변인도 “KBS가 안 후보에게 세 후보 순차토론을 제의해 수락했는데 KBS측에서 일정을 취소했다. 박 후보가 불응하자 KBS 내부에서 나머지 두 후보의 순차 토론도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 측 이정현 공보단장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토론회를) 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두 야권후보가 단일화를 하려 하니 두 후보 먼저 하고 우리가 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박 후보 측은 13~15일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던 TV 토론에서 맨 마지막 날짜인 15일 출연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경향신문 11월5일자 만평
앞서 김찬태 KBS 대선방송기획단 선거방송전문PD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는 토론회 참석 조건으로 ‘13~15일 가운데 하루 중 잡는 건 안하겠다, 기본적으로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이었다”며 “예를 들어 (편성이 확정된) 사흘이 아닌 다른 날(17일 등)을 주거나 마지막 날(15일)을 주면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서 “한국방송(KBS)이 13~15일 사흘간 열려고 추진했던 대선후보 초청 개별 토론회(대담)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쪽의 불참 때문에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KBS 선거방송기획단과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각각 회의를 열어 문재인 안철수 후보 만으로라도 토론회를 진행하자고 결론 내렸지만, 이는 이화섭 보도본부장 등 고위 간부들에 의해 뒤집혔다. ‘박 후보 쪽을 설득해볼 테니 기다려 보자’며 토론회를 연기한 것이다.
한겨레는 사설 <실망스런 박근혜 후보의 TV토론 기피증>에서 “박 후보 쪽이 야권 단일화가 되기까지 3자 토론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개별 토론마저 이를 핑계로 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결국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기 싫은 말은 안 듣겠다는 태도”라며 “토론을 겁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박 후보를 비판했다.
▲ 한겨레 11월5일자 사설
조선, “세 후보 모두 불통”…노골적 ‘물타기’
조선일보는 1면에서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올해 대선이 유력 대선후보 3명이 자기주장만 전달하는 일방통행식 선거로 흘러가고 있다”며 3후보 모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내걸며 ‘불통’의 책임을 뭉뚱그려 세 후보에게 돌린 대목이다. 틀리지 않은 지적임에도, 박근혜 후보의 KBS TV토론 회피에 대한 명확한 비판이 먼저 필요한 상황에서, 세 후보 모두에게 '불통'의 책임을 묻는 방식은 일종의 '물타기'로 읽힐 수 있는 의제 설정이다.
이 신문은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이나 TV와 신문의 개인별 인터뷰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각 후보는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매일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신문 인터뷰를 '불통'의 소재로 삼았다. 이 신문은 “신문 인터뷰의 경우 박 후보는 지난 8월20일 당 후보로 확정된 이후 한 차례만 인터뷰를 했다”고 전하는 한편 “문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는 여러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으나 당 공식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는 두 차례 인터뷰를 가졌다. 안 후보는 TV·신문과 개별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11월5일자 1면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선 후보들이 후보 확정 이후에 개별 신문들과 인터뷰를 갖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신문과 인터뷰를 할 경우 대번 ‘우리 랑도 하자’는 요구가 빗발칠 게 뻔하다. 이는 후보와 언론사 모두에게 부담이다. 방송사 TV 토론이 후보 검증의 ‘무대’로 꼽혀왔던 이유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토론회 무산에 대한 ‘책임 공방’을 들어 세 후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이 신문은 “공방만 벌이고 있는 후보들의 모습은 정책선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많은 유권자가 후보들이 토론회에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당선확률 83.7%”…美 언론, 오바마 재선 점쳐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점치고 나섰다. 동아일보(18면)와 서울신문(1면), 세계일보(1면), 한국일보(1면) 등의 보도다.
동아일보는 “그동안 워낙 지지율 경합이 치열하고 양 후보 측이 승리를 장담하고 있어 주요 언론은 승부를 점치는 것을 꺼렸다”며 “그러나 유세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 오바마 우세를 보여주는 여론조사가 잇달아 발표되고 오바마에게 유리한 호재들이 계속 나타나면서 언론은 오바마 승리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미 언론 집계를 종합하면 박빙의 지지율 속에서도 오바마는 대의원 확보에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 동아일보 11월5일자 18면
이에 따르면 뉴스위크는 3일 “롬니의 패배가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고,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당선 확률을 예측하는 선거분석 온라인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확률이 83.7%라고 분석했다. 경합 주에서의 지지율도 오바마 대통령이 앞선다. 뉴욕타임스의 통계 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경합 주 격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오바마 우세가 최근 열흘간 계속된 데다 롬니가 역전하기엔 시간이 촉박해 현재 경합 주 판세가 투표일까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3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이 초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이내인 지역이 대부분이라 어느 후보도 승리를 확신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서로 피보지 맙시다”…증권사 ‘담합’으로 일반국민은 손해
국내 20개 증권사들이 소액채권의 수익률을 6년 동안 담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국민이 아파트나 자동차 등을 등록할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준조세 성격의 국민주택채권 등 소액채권의 금리를 담합해 싼 가격에 채권을 사들인 뒤 비싸게 시장에 되파는 방법으로 4000여억원의 부당 매출을 거뒀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들 증권사에 192억3300만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일부 증권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1,2종 국민주택채권, 서울도시철도채권, 지방도시철도채권, 지역개발채권의 수익률을 담합한 20개 증권사에 총 19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 중 대우 동양 삼성 우리투자 한국투자 현대증권 등 6개사는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증권사의 담합을 제재한 건 1995년 이후 17년 만이다. 조사 과정에서 최소 2곳 이상의 증권사가 자진신고(리니언시)를 해 검찰 고발을 면제 받거나 과징금을 감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신문 11월5일자 16면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증권사는 2004년 3월경부터 지난해 12월10일까지 매 영업일마다 오후 3시반을 전후해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에 접속해 한국거래소에 제출할 소액채권의 수익률(금리)을 ‘합의’했다. 한국거래소는 증권사들이 제출한 수익률 중 상위 20%와 하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70%의 수익률을 산술평균해 수익률을 결정한다. 문제는 수익률이 높아지면 채권 가격이 떨어져 이를 판 소비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피해 사례자들을 모아 1차적으로 해당 증권사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단체 소송이나 공동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연맹은 홈페이지(www.kfco.org)를 통해 피해사례를 접수할 방침이다.
반면 증권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신문(16면)에 따르면, 한 증권사 관계자는 “관행적인 정보 교환조차 담합으로 간주하면 걸리지 않을 사안이 어디 있느냐”며 “정부 지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담합한 측면도 있는데 이런 사정을 무시한 채 (공정위가) 조직적인 담합으로 몰아세웠다”고 성토했다. 검찰에 고발당한 6개 증권사는 행정소송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초반 대거 만들어진 임대아파트에는 기초수급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산다. 하지만 관리 소흘, 낙후된 이미지 등이 겹쳐 지금은 '도시 속 외딴섬'이 돼 버렸다. 저소득층에 안정적 주거를 제공했지만 사후 관리를 위한 정책적 고려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잇따른 자살, 미라로 발견된 독거노인 등의 뉴스는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대선 후보들은 임대아파트를 늘리겠다는 공약만 내세울뿐, 기존 임대아파트에 관한 정책은 일언반구도 없다. 진보신당 서울시당과 <프레시안>은 공동기획으로 현재 임대아파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모색해본다. <편집자>
박인서(가명·61)씨는 1993년에 지금 사는 임대아파트에 들어왔다. 그전에는 판잣집에서 살았다. 판잣집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았다. 박 씨가 사는 임대아파트는 재개발 철거민을 대상으로 지어졌다.
총 96세대다. 보증금으로 540만 원이 들었다. 8평이다. 조그마한 방 하나에 부엌이 전부다. 딸과 함께 사는 박 씨는 딸에게 방을 내주고 자신은 부엌에서 잔다.
아내는 1997년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실종신고를 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아니, 찾고 싶지도 않았다. 부인은 도박으로 진 빚이 상당했다. 도박 중독자였다. 가출하기 전에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보험금 때문이었다.
부인은 박 씨 몰래 아이 앞으로 보험을 가입해놓았다. 그러고는 방과 후 집에 온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변기에 얼굴을 집어넣고 질식시켜 죽이려 했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후유증으로 딸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됐다.
한 달 49만 원으로 딸과 생활하는 박 씨
부인이 집을 나간 뒤로는 박 씨와 딸, 단둘이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찾지도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쁜 일은 연달아 온다고 했던가. 딸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집에 놀러 온 박 씨 친구에게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
박 씨 친구는 징역 8개월 형을 받았지만, 딸은 충격으로 1년 동안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정신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박 씨 딸을 딸의 동네친구들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일부터, 심지어 성매매에까지 손을 댔다. 급기야 경찰에 신고가 접수돼 박 씨 딸은 1년간 징역을 살기도 했다. 지난 9월에 출소했다. 박 씨는 그런 딸을 보면 자신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딸을 위해 딱히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박 씨다.
몸이 불편해 '막노동'도 그만뒀다. 까막눈이다. 그래서 딸이 구치소에 있을 때 몇 번 편지를 썼지만, 답장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했다. '죄송하다', '사랑한다'는 딸의 표현을 이웃사람의 목소리로 들어야만 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다. 거동이 불편해 일주일에 3번 동사무소에서 청소 일을 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약간의 돈을 받는다. 그 돈을 다 합하면 한 달에 49만 원이 된다. 이 돈으로 딸과 한 달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5만 원이다. 관리비도 6만 원이나 한다. 겨울엔 도시가스 비가 장난이 아니다. 따뜻하게 지내려면 가스비가 한 달에 30만 원 넘게 나온다. 겨울이 되면 간이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놓고 생활하는 박 씨다. 그래도 관리비가 30만 원 넘게 밀렸다. 인근 교회에서 쌀, 반찬 등의 도움을 주기에 겨우 생활해나간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보증금 540만 원짜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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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10월, SH공사((Seoul Housing Corporation)는 박 씨에게 그가 살고 있응 임대아파트에서 나갈 것을 명령했다. 이유는 박 씨 부인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임대아파트는 자신이나 배우자가 집을 소유하면 입주자격이 박탈된다.
청천에 날벼락이었다. 아내는 이미 1997년에 가출을 했고,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혼서류에 도장은 찍지 않았으나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서울시에 하소연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나마 '겨울이 다가오니 동절기가 지나는 2월까지 시간을 준다'는 '시혜'를 베풀었다.
하지만 박 씨에겐 11월에 나가나 2월에 별 차이가 없다. 보증금 540만 원으론 어디에서도 집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인서 씨는 "도박 빚 때문에 딸을 죽이려던 여자가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와 내 딸이 임대아파트에 있어선 안 된다고 한다"며 "이게 어느 나라 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씨는 "여기서 나가라는 건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며 "여기서 절대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 짓기만 하면 끝인가
이런 일은 박 씨에게만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박 씨와 비슷한 이유로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는 이는 상당히 많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남춘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임대료 체납으로 퇴거당했거나 명도소송이 진행 중인 임대아파트는 3528가구다.
이 가운데 501가구가 강제 퇴거됐고 1253가구는 자진퇴거했다. 올해 강제 퇴거되거나 자진 퇴거한 가구는 224가구에 이르고 퇴거를 지연시키기 위한 명도소송 중인 가구도 2007년 이후 1774가구에 이른다.
임대료를 체납 중인 가구는 영구 임대아파트 4703가구와 임대아파트 1만9296가구 등 2만4000여 가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만여 가구 증가한 것이며 임대료 체납액은 영구 임대아파트가 47억300만 원, 임대아파트가 66억3400만 원이다.
나경채 진보신당 관악구의원은 "박 씨와 같은 사유를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임대아파트는 박 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목적이 퇴색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나 의원은 "서울시 등은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인력과 재정을 투자해 박 씨와 같은 억울한 사람들이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며 "박원순 시장은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을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선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녹색당은 원자력 발전 등 국가 에너지 정책 전환을 화두로 던집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리와 월성 원전에서 고장사고가 자주 발생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획 '원전을 버리자'를 통해 안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원전 문제는 우리 일상, 그리고 미래와 관련이 깊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안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제 나이 26살에 이곳에 터를 잡고 한평생 자식 6남매 낳고 온 식구 배고파 가면서 손바닥만한 땅을 평생 일구어 이제 늘그막에 영감 할멈 마음 편히 살아보려 했는데, 난데없이 고압 철탑이 웬말입니까. 나는 피땀 흘려 가꾼 이 논밭과 우리 목숨을 이 철탑과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를 죽이고 철탑을 세울 겁니까. 누구를 위한 법입니까. 만약에 이 늙은이의 뜻이 받아들여진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지금 남편은 병이 들어 어디로 가서 살 데도 없습니다. 우리는 보상도 필요 없고 옛날처럼 밭에 채소 일구면서 지금 이대로만 살게 해 주세요. 이 늙은이를 살려 주세요. 부탁하옵나이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에 사는 구화자 할머니가 쓴 탄원서다. 초고압 송전철탑이 들어서면 "죽는 길 밖에 없다"며 "지금 이대로만 살게 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 밀양시 산외, 부북, 상동, 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나이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 사진은 구화자 할머니의 탄원서.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가져가기 위해 송전선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간에 변전소를 연결하는 송전선로다. 우선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부터 진행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될 경우 환경 훼손뿐만 아니라 전자파로 인해 동식물과 사람까지 살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송전탑 건설 이야기가 나온 7년 전부터 땅값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매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
주민들은 끈질기게 싸우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고 이치우(74) 어르신이 분신자살했으며, 지금은 밀양 단장,산외,부북,상동면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해 싸우고 있다.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움막과 천막을 설치해 놓은 현장은 9곳이나 된다. 주민들은 밤낮으로 교대로 보초를 서다시피 해왔다.
한국전력은 송전탑 건설 공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송전탑 건설 부지 수용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 한국전력과 주민대표들이 10월말부터 대화를 진행하면서 현재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그동안 두 차례 '사전 실무회의'가 열렸지만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갈등은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대책위, 법원에 낼 주민 탄원서 받아
765kv 초고압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고 있는 밀양 단장,산외,부북,상동면 주민들이 자필로 탄원서를 썼다. 모두 30장 정도다. 이 탄원서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고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가 법원에 낼 목적으로 받아둔 것.
탄원서에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 자필로 쓴 이 탄원서들은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지만 의사 전달은 충분하다. 어르신들은 탄원서에 주소와 이름을 적은 뒤, 붉은색 손도장을 찍어 놓았다.
탄원서에 한결같이 나오는 문구는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것. 그들은 이곳에서 살다가 죽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마치 유서와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국전력공사 측은 공사를 막는 주민들에 대해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주민대표들이 지난 10월 30일 열린 '실무회의' 때 한국전력 측에 고소고발 취하를 재차 요구했지만, 법적 문제는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한국전력측은 한 달 소득이 50만원도 안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손배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손배를 왜 걸었을까 생각해보면 겁박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탄원서에 대해 이계삼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비슷한 말을 써놓았다. 오직 이대로 살다가 죽게 해 달라는 것이다"며 "탄원서를 읽어 보면 가슴이 뭉클한 내용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어르신들이 쓴 일부 탄원서의 내용이다.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사진은 구덕순씨의 탄원서.
"철탑 공사를 강행한다면 한 목숨을 바쳐 막을 것이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민으로서 고향 산천을 지키려는 서민의 마음을 제발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진해권).
"철탑 때문에 땅이 매매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지가는 터무니없이 내려가서 제가 땅 매입시보다 막대한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부디 철탑이 서지 못하도록 하여 주십시오"(김서백).
"17살에 시집 와서 80평생 농사지으면서 자기(자식) 낳고 살고 있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조상님한테 죄가 되는 짓 같아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땅 우리가 지키는 것이 죄가 됩니까. 도와 주십시오"(손희경).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움막에서 밤을 새우며 송전탑을 막는 것은 우리의 자손들이 행복한 고향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송전탑이 들어선다면 난 불 살고 죽을 겁니다"(박순연).
"아무리 국가기간산업이라 할지라도 연로하고 병약한 농촌의 청정마을마다 엄청난 규모의 송전선로가 건설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물적·정신적 피해가 발새알(발생할) 것이며, 특히 화악산 평밭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소득을 일구며 살아온 지역으로 송전사업의 환경훼손으로 생업 활동에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희암).
"불안합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몇 안되는 동네 분들과 싸워여 하는 고통을 누가 안단 말입니까. 살이 떨립니다. 처음 겪어보는 불면증을 앓고 있습니다. 한전과 정부가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언제까지 싸워야할지 걱정입니다. 날마다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날만 새면 산으로 미친듯이 철탑 막으러 달려 나옵니다. 집안 일은 엉망이 된지 1년이 넘었습니다"(배수철·전혜영).
"우리는 요대로만 살고 싶습니다. 보상을 더 받으려고 공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송전탑이 꼭 필요한 전기공사라면 사람이 안 사는 먼 곳으로 공사를 하든지 백지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땅갑 하락과 생명에 지장을 주는 전자파의 위험에서 제발 살게해 주시기 바랍니다"(정임출).
"이 노파는 81세 된 할머니입니다. 너무나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어서 거친 글이나마 펜을 들었습니다. 화악산 기슭 오솔길. 비가 오면 돌부리에 발가락 차여 아파하며 10리길을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남편 없이 4남매를 (키웠습니다.) 내 온몸 수족이 굳어 쓸 수 없이 병에 걸려 죽을 판에(지경이 되어) 이곳에 와서 병이 다 회복되었습니다. 삼년 전 일인데 아득합니다. 내 생명을 연장하여 우여곡절 끝에 잘 살아가고 있는데, 아니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이 푸른 숲으로 녹색이 꽉찬 이 유명한 화악산에 765kv 송전탑이 웬말입니까. 한전 사장이 정부와 짜고, 이렇게 무참히 우리집 뜰 앞으로까지 재산을 송두리째 강탈을 당하고 너무너무 억울합니다. …"(이금자).
"이 할매들(한테) 이 나라가 이렇게 고통을 줍니까. 매일 같이 산에서 생활해야 하니 죽을 지경입니다. 송전탑이 세워지지 않으면, 농사만 지으면서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 할매는 욕심이 없습니다. 오직 요대로 살다가 죽도로 해주십시오"(구덕순).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사진은 이금자 씨의 탄원서.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5 00:31:21 | 최종:2012-11-05 00:43:18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과 MBC 관계자의 대화내용 도청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이들의 '비밀 대화록'을 보도한 기자에게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해 향후 이 사건과 관련된 검찰수사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고흥 부장검사)는 4일 '비밀대화록' 보도 이후 MBC로부터 도청 혐의로 고발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 대해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4일 “소환 통보를 했지만 확답이 오지 않아 현재 조율 중”이라고 <연합뉴스>가 4일자에서 전했다.
검찰은 최근 관련자들의 통화내역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지난 10월8일 오후 5시께부터 최 이사장과 MBC 관계자들이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계획을 논의하던 때에 최 이사장과 최 기자의 휴대전화가 장시간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최 기자를 불러 휴대전화를 통해 대화내용을 듣고 녹음한 것인지를 물어볼 계획이며, 최 이사장에게 휴대전화 조작 실수로 전화가 연결돼 있었는지도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수장학회 비밀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 인터넷 기사(10월 12일자)
<한겨레>는 지난 12일자 인터넷판(본판은 13일자)에서 최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만나 정수장학회 소유 MBC 지분을 매각해 부산-경남지역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기로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회동 대화록을 공개한 바 있다.
MBC는 이날 저녁 ‘뉴스데스크’에서 “(한겨레)기사에는 양측의 대화 내용과 다른 부분도 있으나 현장에 있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어 도청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MBC는 주주인 정수장학회와의 정상적인 업무협의내용이 도청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의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MBC 사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 “MBC는 최필립 이사장의 사무실에서 이뤄진 면담 내용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되었는지, <한겨레>가 ‘녹취록’을 누구로부터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지 등 의혹에 대해 수사의뢰 등을 포함해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이뤄졌다면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행 단계에 이르기까지 가담한 이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하며, 녹취록이 어떤 절차로 <한겨레>로 보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밝혀져야 한다”고 거듭 도청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15일자에서 도청 의혹을 부인하면서 적절한 때 취재경위를 밝히겟다고 해명했다. MBC는 <한겨레>의 해명이 있은 바로 다음날(16일) 문제의 녹취록을 보도한 <한겨레> 최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MBC는 고발장에서 “최 기자는 직접 불법감청 혹은 불법녹음을 했거나 제3자가 불법녹음한 자료를 획득해 기사를 작성했음이 분명하다”며 “정수장학회 소유 MBC 지분의 처분 등과 관련한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MBC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의 대화 석상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MBC의 고발이 있은 지 열흘만인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소재 정수장학회가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 빌딩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을 통해 건물 내부의 CCTV 등을 조사해 ‘비밀회동’ 내역과 당시 취재 정황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같은 사안에 대해 같은 시기에 언론노조가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본부장 등이 모의한 지분매각 및 부산경남지역 장학금 지급 및 노인정 지원사업 계획 등 공직선거법상 매수알선행위에 대해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도 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은 오늘 검찰의 압수수색이 정수장학회와 MBC 측의 박근혜 후보 지원 선거법 위반의혹 덮기용 액션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위원장 이강택)는 지난달 18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MBC 김재철 사장,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등을 공직선거법과 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서는 여태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어 편파수사라는 비난을 샀다.
▲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전략당 사건) 희생자인 권재혁 선생 43주기 추모제가 4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그는 당시 보기 드물게 노동운동을 한 지식인이었다.”
4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전략당 사건) 희생자 권재혁 선생 43주기 추모제에 모인 참가자들은 고인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이같이 회고했다.
고인의 묘는 공원묘지 초입에 있는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지나 공원묘지 관리소로 들어가는 오솔길 중간에 있었다.
이날 추모제는 이형숙 추모연대 사무처장의 사회와 고인의 큰아들 권병덕 씨의 참배로 시작됐다.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고인이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해 12월 돌연 귀국했다”면서, 특히 고인이 “외세에 의해 분단된 나라에서 외세가 군부독재정권을 비호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동지들을 규합해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전개했다”고 강조했다.
☞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란?
1968년 7월 30일 중앙정보부는 통일혁명당 사건 수사과정에서 권재혁 씨 등 13명을 강제 연행해 3∼53일간 불법구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권 씨 등이 가져 오던 친목모임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남조선해방전략당으로 둔갑됐고 그해 8월 24일 간첩사건으로 발표됐다.
이들 관련자들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에서 사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권재혁 씨는 반국가단체 구성 및 수괴죄, 내란예비음모죄, 간첩죄가 적용돼 1969년 9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 두 달 만인 11월 집행됐다. 다른 연루자 이일재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88년 8·15 특사로 출옥했으며, 이강복 씨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 1971년 10월 암으로 옥중에서 사망했다.
▲ 전략당 사건 관련자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전략당 사건 관련자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이 세상을 돌아가신지 43년이 지난 지금 두 개의 상반된 상황을 볼 수 있다”고 말문을 떼었다.
그는 “하나는 이렇게 우리가 권 선생님의 묘소 앞에 모여 조촐한 제사상이라도 올릴 수 있게 세상이 민주화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여전히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라면서 “남은 우리들이 권재혁 선생의 정신에 흠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남민전 사건 관련자이기도 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저는 권재혁 선생을 생전에는 뵙지 못하다가 남민전 사건 관련자이신 김병권 선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서 “권 선생님의 삶을 보면 조직된 노동자만이 이 나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으며, 또 지금처럼 계급해방이니 민족해방이니 하며 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치된 이 나라의 모순으로 바라보면 해결하려 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권재혁 선생님이 편히 대학에서 교수만 했다면 저들이 사형까지 시켰을까요?”하고 묻고는 “권재혁 선생님의 삶의 목표는 교수가 아니라 새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참세상을 만들고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하고는 “그것만이 고인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고인의 장남 권병덕 씨(맨 좌측)가 유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어, 유가족을 대표해서 권병덕 씨는 인사말을 통해 “염려했던 비가 내리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면서 “차가운 날씨인데도 이렇게 먼 걸음을 해주신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아버님이 바라시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날 추모제에는 권재혁 선생 유족을 비롯해 전략당 사건 관련자인 이일재․이형락 선생 유족들, 전략당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던 노중선 선생, 김영옥 범민련 고문, 황만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국장, 전략당 사건을 조사했던 전명혁 위원, 권오봉 선생, 전해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해고자복직투쟁 특별위원회) 회원들, 박재민 유가협 사무국장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 이날 추모제에는 권재혁 선생 유족을 비롯해 전략당 사건 관련자인 이일재․이형락 선생 유족들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한편,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 사건’과 함께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간첩 사건’으로 발표했지만, 별도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권재혁 등 13명을 연행해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실화해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지인들 간의 친목모임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명칭과 강령을 가진 반국가단체로 확대 과장해 조작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한 검사작성 피의자 신문조서나 자술서 등은 임의성이 의심이 있는 억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 판단되어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 내지 내란예비음모 등의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도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인의 유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9년 서울 고등법원에 재심신청을 하였으며 2011년 1월 24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다시 대법원에 항소를 한 상태이며, 대법원은 22개월이 지나도록 이 건을 방치하고 있다.
문정현 신부가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무대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해군기지, 용산참사 등 문제해결을 요구해 온 '2012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우리의 요구가 민심이자 천심"이라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향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선포했다.
3일 오후 6시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 행사를 열어 한 달여간 진행된 대행진의 끝을 장식했다. 이들은 "우리의 행진은 서울광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며 "꿈과 희망 실현되는 세상올 때까지 연대의 바탕을 다지고 범위를 넓혀나가 다양한 현장에서 직접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지난달 5일 제주를 출발해 목포, 인천 등 45개 도시를 돌아 한 달여간 대장정을 이어왔다. 이들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족들을 중심으로 쌍용차문제 등 해결을 촉구하고 있으며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제주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용산참사 진상규명 ▲노후 핵발전소 폐기 ▲4대강 사업의 진상 규명 ▲강원도 골프장 건설 중지 ▲농업포기 정책을 농업증진 정책으로 전환 ▲중소상인 생존권 보장 장애인 ▲이주노동자 권리 완전 보장 등 요구안을 내놨다.
"굶고, 올라타고, 많은 길 걷고 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어"
ⓒ김철수 기자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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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2천여명(주최측추산)이 참석했으며 문정현 신부, 최헌국 목사 등 종교계 인사들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 김재연 의원, 강병기 비대위원장과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 등 정치인들도 찾아왔다.
행사는 주로 투쟁현장 별 주요인사들의 발언으로 진행됐으며, 가수 MC스나이퍼와 킹스턴루디스카의 무대, 쌍용차 노래패, 노래를찾는사람들 등의 문화공연 또한 주를 이뤘다.
무대에 오른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박살내자"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쌍용차 문제의 국정조사를 촉구하면서 25일째 단식중으로, 말을 하는 내내 숨을 헐떡였다.
김 지부장은 "전 국토가 피바다로 피울음으로 울부짖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냐"며 "굶고, 올라타고, 많은 길을 걷는 등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쌍용차 청문회 통해 국가폭력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들이 밝혀졌음에도, 반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너무도 야속하다"며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는 것 같다.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진실을 위해 힘차게 투쟁하자"고 했다.
"정부를 바꾸는게 우리의 몫"
ⓒ김철수 기자
문정현 신부가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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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스크린에는 '노동자, 농민, 서민 힘없는 자의 '지상지옥''이라는 문구와 함께 지난 5년간 쌍용차, 용산참사, 제주강정주민, 4대강사업, 원전, 강원도 골프장 건립 등 주변에 있던 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보여졌다.
문정현 신부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신음, 고통, 아픔을 확인하고 이자리에 왔다"며 "이 미친정부는 사람을 죽이면 끝이날 줄 알았나보다. 두고보자 이명박이 청와대에서 나오는 그날이 온다. 단 하루라도 임기전에 끌어내자"고 강조했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전재숙 씨는 "(행진을 하면서 문제점이)파헤쳐진 곳 많고 울음 바다였다”면서 "정부 바꾸는게 우리 몫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해 달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후 4년형을 받았지만, 모범수로서 형을 3개월 남겨두고 가석방을 받은 용산참사 철거민 김재원씨는 "안에서는 정신적인 고통 좀 있었지만, 밖에 있는 분들과 같이 뛰지 못하고 앉아 있어서 부끄러웠다“면서 ”앞으로도 함께 해 주셔서 용산 진실 밝혀지고 우리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외에도 현장에서는 생명대평화행진단 참석자 들 중 삼척, 고리, 밀양, 청도, 덕성그린시티, 지리산댐, 강원도골프장 등 문제현장의 조합원 등은 무대에 올라 각각의 문제를 설명했다.
한편 행진단은 한 달여간 대행진을 마무리 한 뒤에도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거점투쟁을 전개하고, 대선주자들에게 요구를 전달하고 답변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현장의 목소리를 내기위해 집회와 행진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철수 기자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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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기자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문규현 신부와 참가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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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기자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와 강병기 비상대책위원장, 김재연 의원 등이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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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기자
문규현 신부가 3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2 생명평화대행진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캠프 요원들이지 싶다. 그들은 암울했던 과거와의 단절을 가시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고 참신한 이미지로 1%라도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니 24시간도 모자랄 게다.
이번에는 누구를 찍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험난한 단일화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가 확정되는 걸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말지만, 글쎄 나는 지금 세 후보 중에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지? 그 이유는? 오늘 아침에도 한 후보의 시민캠프를 꾸리는 데 함께해주기를 청하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단일화를 위한 일이라면 그러마고 했다.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그 후보의 사람이 되는 것인가? 발뺌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예수 캠프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수 캠프? 내가 지금 어쭙잖게 예수쟁이 티를 내고 있나?
각 대선 캠프의 목표는 동일하다. 수장을 청와대로 보내고 자기들도 그 주변에 포진하겠다는 것이다. 며칠 전 재야 원로들의 원탁회의가 야권의 두 후보에게 ‘이기는 단일화’ 말고 ‘바꾸는 단일화’를 주문한 것은 대권에 눈멀지 말고 국가의 앞날을 생각해서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국민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투표하도록 하라는 엄중한 명령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 캠프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 좋은 말이다. 마음을 비워야 이기고, 이겨야 바꿀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네가 비워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래도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과는 달리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큰 떡인가 보다.
반대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는 조직이나 사회라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박 캠프의 사람이 문 후보를 치켜세운다거나 안 캠프의 사람이 대놓고 박 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이적행위까지 방관하거나 두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거의 패배를 목적으로 침투시킨 상대 후보의 세작이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후보자나 조직을 위해서 마땅히 솎아내야 한다.
내가 속한 교회공동체를 나는 예수 캠프라 했다. 예수 캠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를 수장으로 모시고 날마다 그분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조직이다. 수장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캠프 요원들의 기본 임무다. 문제는 우리의 수장이 2012년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하니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밀어 우리의 수장에 버금가는 통치력을 행사하도록 할 것인가? 고민과 심사숙고는 당연하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후보들 가운데 여러 면에서 수장과 가장 닮은 인물을 선택하는 것.
그런데 실제로 우리 캠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원들의 생각이 수장의 뜻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국면에 접어들면 특히 더하다. 수장은 가난한 이들과 우는 이들의 편인데 캠프에는 부유한 이들과 희희낙락하는 이들의 편에 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정치도 종교도 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거늘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무얼 배웠기에 수장의 뜻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할까?
한 캠프 안에서도 그렇거니와 대구와 광주가 다르고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서로 다른 게 예수 캠프의 실상이다. 어느 예수, 어느 캠프의 사람들이 진짜일까? 선진통일당의 이인제 의원은 일찌감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손을 잡았다. 국민통합 운운은 개가 웃을 일이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자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가 예수 캠프의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학생들이 넓은 운동장에는 축구를 하고 있다. 노랗게 핀 국화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면 환하게 웃고 있는 학생과 교사의 사진, 그리고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장이 진열되어 있다. 볕이 잘 드는 교실에서 누군가는 질문하고, 누군가는 답을 한다. '즐거운 나의 집'을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오늘 점심은 뭘까. 허기를 자극하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평화롭다. 정말 평화로운 학교다.
그런데 살짝 의심이 든다. 혹시 '가짜 평화'는 아닐까.
중학교에서 7년, 고등학교에서 4년을 생활한 조영선 교사가 생각하는 학교는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지만, 어느새 '살아남아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누가 진짜 일진인가 -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을 주제로 '교육공동체 벗'과 '알라딘'이 주최한 두 번째 강연에서 그는 "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며 현직 교사 바라본 학교와 그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학생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현재 그는 서울시교육청 인권교육센터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바로 가기:'교육공동체 벗' 온라인 커뮤니티)
'멀쩡한 가정'에서도 폭력 가해자 나올 수 있다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부터 구분하고, 교사는 가해학생을 불러 "그 애(피해자) 고통에 대해 생각해봐라", "너는 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배려할 줄 모르니?"라고 훈계한다. 하지만 조 교사는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은 오히려 학교폭력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은 때리고 협박하고 맞고 헌납하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새어나온 폭력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공감, 배려' 같은 단어는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일 수 있다는 게 조영선 교사의 말이다.
조 교사는 "이제는 단순히 학부모들에게 자식 단속 잘하고, 교육 잘하라고 한다고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가 가해학생의 엄마가 인터넷에 익명으로 쓴 글을 재구성한 EBS <지식채널e>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의 마지막 부분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가 가해학생이라는 사실은) 공감능력이 떨어지지 않아도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학교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학교에서 내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학교에 들어가는 게 힘들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손에 땀이 차오르고 머리는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안 걸리도록 귀는 보이게, 마이(교복 겉옷)는 들고…. 상기된 시선들이 날 쳐다본다.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내 눈은 멈춰 있다. 두 주먹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눈은 땅을 계속 주시하며, 마치 경보를 하듯 빨리 지나간다. 19명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들어오는 순간의 쾌락, 심장은 요동을 치고 피가 너무 빠르게 요동친다. 주먹은 꽉 쥐고 팔자 주름을 새기며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온다. 그때는 아무것도 머리에 없다.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은 기분이다. 다시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한마디 한다. "야, 내가 걸릴 머리냐? 안 걸려." 긴장을 안 한 척한다.
평범한 학생이 쓴 '학교에서 긴장되는 순간'이다. 조영선 교사는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매일 겪는다"라고 말했다. 모범생이든 아니든, 노는 아이든 아니든 학교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학생들은 감시의 대상이 된다.
복장 단속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는 복장단속을 한다고 잠바 '노스페이스(노스)'를 압수하지만, 노스를 입어야 비로소 당당해지는 학생들의 마음을 잡지는 못한다. 명품 가방을 들어야 집 밖에 나오는 화성인처럼 노스를 입어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을 만큼 학생들의 마음은 황폐해졌다. 조 교사의 말대로 "이들의 마음은 누가 헤아릴 것인가".
노스 패딩
겨울이 오면
모든 학생들이 노스 패딩을 입는다.
새까만 노스,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눈에 띄는 가슴팍 상표
왜 노스만 입을까? 다른 패딩들도 많은데
노스는 비싼데, 담배 빵 당하면 터지는데
노스는 간지템, 비싼 노스 안에 내 몸을 숨기고
무엇이라도 된 듯하게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다.
한겨울엔 노스만 입어도 무서울 게 없다.
- 조영선 교사의 반 학생이 쓴 시
감옥 닮은 학교, 아이 내면에 폭력 심는다
감시와 억압을 받는 상황은 1971년 진행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서 잘 나타난다. 이 실험은 독일(2001년)과 미국(2010년)에서 <엑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21명의 참가자들은 동전을 던져 가짜 교도관과 가짜 죄수로 역할을 나눴다. 그 결과 교도관을 맡은 사람들은 갈수록 폭력적이 됐고, 감시받는 죄수들은 긴장을 넘어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조 교사는 "이는 특정 공간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래서 학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가 폭력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 즉 감옥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교도관과 죄수로 단순화될 수는 없지만, 학교가 '자유와 선택'보다는 '감시와 억압'에 의해 구성된 공간이라는 점은 주지할 만하다.
심지어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삼십 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엄마가 보고 있다" 등 교실에 걸린 '교훈'에도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이고 있다.
'금품 갈취'하는 학교…'일진' 보다 못하다
▲ 조영선 교사. ⓒ프레시안(최형락)
조영선 교사는 <오늘의 교육> 3·4월호 "평화로운 학교는 없다"라는 글에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품 갈취, 폭행, 심부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금품 갈취. "국가안보를 이유로 방위성금도 걷고 주기적으로 폐휴지도 걷는다. IMF가 왔을 땐 금을 모으기도 했고, 겨울이 되면 군군 장병을 위한 성금이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거둔다. 이렇게 돈을 걷을 때 겉으로는 학생의 동의를 받는 척한다. 하지만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암묵적인 강요와 협박이 뒤따른다."
다음으로 폭행.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하는 곳이 학교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야단치기 위해 볼을 꼬집거나 머리를 툭툭 치는 신체적인 접촉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렇다 보니 신체를 가학하는 것이 때로는 재밋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바쁜 선생님들을 대신해 학생들은 수시로 '심부름'을 한다. 아이들이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이라며 이야기한 내용들인데, 이쯤되면 학교폭력의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학교 그 자체가 '일진'가 다름없다. 아니, 경우에 따라선 '일진'보다 더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게 학교와 교사다.
▲ 한 학생이 쓴 "내가 당한 학교폭력"을 표로 정리했다. 조영선 교사는 "학생들은 교사가 휴대 전화를 압수하면, '사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가 학생에게 해 왔던 일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이뤄지면 '학교폭력'"
조 교사는 학생이 쓴 것 중 '금품 갈취'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글을 쓴 학생은 "(교사가) 한 번도 자기에게 불우이웃을 어떻게 도울 건지 물은 적이 없다"며 "그 집에 가서 청소해 줄래? 말벗이 되어 줄래?"가 아니라, 무조건 "1000원 낼래? 2000원 낼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생에 따르면 "그래도 일진 형들은 '너 용돈 받았어, 안 받았어? 안 받았으면 1000원이고, 받았으면 2000원이야'라고 말한다"고.
"그동안 학교폭력 논의들을 보면 가해자들의 행동만이 '폭력'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들이 한 행동들은 사실 그동안 학교가 학생들에게 '교육' 혹은 '훈육'의 이름으로 해 온 일이다. 현재의 학생 간 폭력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해 온 폭력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위의 책, 17쪽)
학교와 교사가 자신들에게 한 일을, 그대로 옆자리 친구에게 반복하면 학교는 '학교폭력'이라고 호들갑 떤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아이들에게 별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힘에 대한 예의'만 가르치는 학교"
이에 조 교사는 "학교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힘에 대한 예의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누가 약자인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예컨대 교장은 강자이고, 기간제 여교사는 약자다. 지난 7월에는 고등학생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누나, 사귀자"라며 어깨에 팔을 올리고 목 부근을 감싸는 동영상(제목 "선생님 꼬시기")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힘에 대한 예의'만 배운 아이들이 저지른 폭력이다.
▲ 조영선 교사가 직접 만든 "학교 안 힘의 피라미드". 여기서 '관리자'는 교장과 교감 등을 말한다.
"'관계'에 의한 폭력, 신고하기 어렵다"
학교폭력은 사건이 터지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눈앞에 드러났을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학교에 지금 어떤 폭력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학생들의 '신고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실제로 요즘 학교폭력을 둘러싸고 나오는 대책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신고정신'을 키우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폭력이 터졌다고 해서 아이들이 '이거 신고해야지'라고 생각할까?" 조영선 교사의 물음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닌 친구가 날 때렸다고 갑자기 신고할 수 있을까? 그는 "남편이, 부모가 날 때렸다고 갑자기 신고할 수 없"는 것 같은 경우라고 했다. 학교폭력은 대부분은 '관계'에 의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논다'는 아이들이 소외된 아이와 놀아주면 실제로 그 아이는 약간의 안정감을 느낀다. 서로 뭘 사주기도 하면서 둘 사이에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다 '나 오늘 돈이 없다. 네가 사줘'라는 말에 아이는 '우리는 친구라는데 같이 놀기도 하는데 안 사주면 쪼잔해지나?'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안 사줘?'라고 협박하면 무섭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지만 일이 진행되는 방식은 굉장히 고요하다. 셔틀(집단 폭력)을 하는 아이들이 소리칠 일이 없다. '야, 사줘. 나 돈 없다'라는 몇 마디에 이미 '관계'가 규정됐기 때문이다."
"폭력을 '참으라'고 가르쳤던 학교, 학교폭력이 감춰지는 이유"
조 교사는 "권력관계가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학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폭력이 일어난 초기에 '내가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감각이 있어야 하지만, 학교의 가르침은 "네 잘못이야. 네가 감당해"라고 한다. 결국 "센 폭력이 다가와도 참아야 하는 건지,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분간하기 어려운, 폭력에 아주 둔감해진 상태가 된다".
▲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교실 자리 배치도". 교탁을 중심으로 앞에는 '스터디 그룹'이, 양 옆에는 '중상위권 평범파'가 자리한다. 그리고 벌점을 받은 '일진'들은 제일 뒷자리에 포진해 있다. 조영선 교사는 "우리는 교실을 균등하고 일반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많은 힘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치료하자는 말은 왜 안 할까?"
"개인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런 문제를 만들고 있는 가정과 학교도 치료가 필요하다. 학교폭력 가해자나 피해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왜 학교를 치료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걸까."
학교폭력 문제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 없이 해결은 불가능하다. 폭력을 일으킨 가해학생을 학교에서 솎아내도 학교는 이미 평화로운 곳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조영선 교사가 '학교'라는 공간의 해결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실제 학생들은 공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조 교사는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버스'를 통해 공간의 변화에 따른 아이들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새탈(새벽 탈출)'한 아이들을 돌본다.
번화가에 있는 나와 버스에 있는 나는 다른 것 같아요. 번화가에서는 사람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시비 붙지 않으려면 센 척해야 해요. 가오도 좀 잡고, 담배도 피우고, 침도 뱉고, 욕도 좀 해야 하거든요. 근데 버스에서는 많이 자제하죠.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근데 전요, 버스에서의 제 모습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버스가 더 기다려지는 것 같아요.
- 새탈 청소년이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버스' 방명록에 남긴 글
공간에 따라 행동 달라지는 아이들,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
조 교사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따라 아이들은 달라진다"며 "교사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센 척하고, 거친 폭력을 써야 하는 공간과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있는데, 도대체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공간인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교사가 억압적인 얼굴을 유지할 때 지금의 학교에서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교사들은 매년 3월 2일 입법을 한다. 지각 3000원, 청소 안 하고 도망가면 일주일 청소 등과 같은 규칙을 만들어 입법한다. 그리고 꼭 3월 2일 날 "동의했지?"라고 물어야 한다. 3월 둘째 주가 되면 위반자가 하나둘 생긴다. 입법한 사안에 따라 사법을 집행해야 한다. 경찰 출동해서 위반자를 잡아내고, 벌을 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 집안 내력도 조사하고, 성적도 들먹이며 행정을 한다. 삼권분립이 안 된 절대왕정, 절대권력이다."
교사를 괴물로 만드는 학교
학교는 학생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권위'를 세운다. 교사와 학생 모두 센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 학교. 조 교사가 "나도 '괴물'이 될까 두렵다"고 말한 이유이다.
"반복되는 시험과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확인시키는 교육,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에겐 스스로를 해하거나 남을 해하는 것 외에 인간다움을 유지할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는 사회, 그런 학교와 사회를 견디다 못해 일어난 단 한 번의 실수도 삶 전체를 송두리째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혹한 시스템(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 등).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기만을 바라는 가정, 학교 속에서 학생들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던 인간다움마저 잃어버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을 때려잡는다고 교사인 나도 괴물이 될까 두렵다."
"멍청한 제겐 한국교육에서의 영원한 '자퇴'가 꿈"
조영선 교사는 "학교에서 좀 노는 아이들이나 대학에 가기 어려운 고등학생 대부분이 '졸업하면 군대에 가겠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군대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해'라고 했던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3학년 학기 초, 1등부터 꼴등까지 아이들은 잠깐 공부를 한다. 3월 모의고사 보고 나면, 2학년 때 조금 공부했던 아이들은 내신에 희망을 걸고 4월까지 공부를 한다. 그렇게 반 일부가 중간고사 대비를 한다. 하지만 이후 아이들의 인생은 확연히 갈린다. 수시입학 공고와 함께 대입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아이들은 이미 같은 인생이 아니다. 아이들끼리도 "잰 공부하는 애잖아, 내버려둬"라고 한다.
'대학'이라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소수 아이들 외에 다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언어 3, 수리 4, 외국어 4, 탐구 5' 정도의 내신 4.25등급인 한 아이도 "이 모든 것이 제 잘못이겠죠?"라며 자신을 탓한다. 그 아이는 "멍청한 제겐 한국교육에서의 영원한 '자퇴'가 꿈"이라고 말한다.
'공부 열심히 해봤자 별 볼 일 없다'는 사실 아는 아이들
중학교 1학년만 돼도 아이들은 "나는 우수? 보통? 미달? 전국 2만 등?"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내가 전국 몇 등인지' 끊임없이 상기하는 현실. 그의 말대로 "이런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오면, 공부해서 뭐가 되겠다는 바람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아이들은 이미 "자기 주변에서부터 '학벌 신화'가 깨진 것"을 보고 자란다. '대학 합격이 모든 걸 보상해줄 테니, 지금은 무조건 참으라'라는 논리는 아이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한 학생의 말이다.
"우리 누나 공부 잘했잖아요.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160만 원 받아요. 저요, 샘. 대형마트에서 하루도 안 쉬고 방학 내내 뛰면 130만 원 받거든요. 8등급인 제가 지금 공부한다고 2등급 되겠어요? 20~30만 원 더 벌자고 지금 공부해야겠어요?"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3 21:39:12 | 최종:2012-11-03 22:25:35
“박근혜는 생식기만 여성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최근 한 종편에서 쏟아낸 이 한 마디가 정치권 안팎을 뒤흔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를, 그것도 여성인 박근혜 후보를 두고 “생식기만 여성”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박근혜 후보는 겉모양만 여성이고 실지로는 여성이 아니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한 친박 단체는 황 교수가 사과하지 않을 경우 ‘3단계’에 따라 압박을 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최근 '생식기 발언'으로 논란이 된 황상익 교수가 <채널A>에 출연한 모습
우선 황 교수 발언의 경위를 간단히 살펴보면, 지난달 31일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생식기가 남자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박 후보는 그런 상황이냐?”고 반문하는 말끝에 문제의 발언이 튀어 나왔다. 황 교수의 발언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박종진: 어머니, 누나. 황상민: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봤다는 거죠. 누나는 조금 틀려요. 누나는 6살짜리 누나도 누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생식기가 남자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할. 그 역할 대표적인 게 언제 나타나죠?
박종진: 결혼하고. 황상민: 결혼하고 나타나죠. 애를 낳고 애 키우고. 그러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죠. 그걸 보고 여성이라고 이야기하지 생식기가 다르다고 해서 여성이라고 안해요. 그런데 박근혜 후보 그 상황입니까? 그 여성과 일치하는 범주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박근혜 후보 결혼했나요? 애 낳았나요? 애 키웠나요?
박종진: 그래도 여성성을 갖고 있죠. 황상민: 그거는 생식기의 문제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거(는 없다).
박종진: 그래도 모성애가 여성으로서 본능적으로 있지 않습니까. 애를 낳지 않았지만. 황상민: 그래서 박근혜 후보를 공주라고 이야기 하고 여왕으로서 대통령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지, 왜 뜬금없이 여성이 나옵니까. 남성이라도 여성적 입장에서. 대한민국 여성이 남성에 비해 능력이 뛰어나요.
황상민 교수 “‘여성’의 본질은 생식기적 차이가 아닌 ‘역할’”
문맥의 흐름을 놓고 보면 문제의 발언은 황 교수가 박 후보에 대해 욕설을 하기 위해 내뱉은 말은 아니다. 여성 고유의 역할, 혹은 여성성 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식기’를 거론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일자 황 교수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방송에서 섹스라는 표현을 쓰면 거부감을 일으킬 것같아 ‘생식기’라는 표현을 택했다”고 해명했다. 즉, 황 교수는 ‘생식기’는 저급하거나 성차별적이거나 성적 표현이 아니라 ‘여성’의 본질은 생식기적 차이가 아닌 ‘역할’의 차이임을 전달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은 황 교수 발언의 전후사정은 제쳐둔 채 총공세를 폈다. 여성CEO 출신의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2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의 발언은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인격 말살이고 여성 전체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며 “그런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 교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당장 다음 주에 (연세대)총장께 공개적으로 황 교수의 퇴직을 요구하러 가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2일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분의 발언 내용을 도저히 제가 입으로 옮기지를 못하겠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어떤 것이냐면 2006년도 지방선거 당시에 박근혜 후보가 신촌에서 테러를 당했을 때, 딱 그 테러 때 느낀 충격을 받았다”며 “박근혜 후보 얼굴에 70바늘을 꿰맸던, 거의 그때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목격했을 때 받은 테러 충격 이상의 충격을 느꼈다”고 강력 반발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모임인 '근혜동산'의 창립1주년 기념식 장면(2009.11)
또 박근혜 후보 팬클럽 박근혜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 ‘근혜동산(회장 김주복)’은 2일 황상민 교수 규탄 성명서를 통해 “생식기는 무슨 말이며,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결혼한 여성은 여성이고, 미혼인 여성들은 중성이란 말인가?”라고 묻고는 “11월 6일까지 박근혜 후보와 여성계에 사죄하지 않을 경우, 3단계에 걸쳐서 행동으로 보여줄 것임을 천명한다.”며 황 교수를 규탄하고는 황 교수의 사과를 촉구했다.
신호탄은 이재오의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
그러면 ‘여성대통령론’ 논란의 뿌리는 어디일까? 처음 시작은 새누리당에서 시작됐다. 구체적으로는 친박-비박 간의 당내 갈등에서부터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친이계’의 좌장격이자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불참한 이재오 의원은 지난 6월 1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여성대통령론을 묻는 일본 <산케이신문>의 질문에 대해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을 폈다. 이는 사실상 박 후보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이 잇따랐고 결국 박 후보도 이에 가세했다. 그 다음날(19일) 박 후보(당시는 비대위원장)는 이재오 의원의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에 대해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며 한 마디로 깔아뭉갰다. 일격을 당한 이 의원이 그냥 지나갈 리 없다. 이 의원은 다시 그 다음날 “21세기에 (한국 말고) 분단국가 있느냐?”며 한국의 분단 현실을 앞세워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새누리당 여성의원 몇 명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는 세 명의 여왕이 있었다”며 이 의원 공박에 가세하기도 했다.
이 정도에서 끝나는가 싶더니 ‘여성대통령론’이 다시 불거진 것은 박-문-안 ‘3자 구도’가 굳어진 10월 중순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은 10월 14일 선대본부회의에서 “스스로 폐족이라고 칭한 친노 정권이나, 경험없는 아마추어 정권이 나서면 대한민국은 더 큰 위기와 불안을 빠져 국민을 고생시킬 것”이라며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싸잡아 비난하고는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위기를 극복할 유일 후보가 박근혜 후보”라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성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 정치에서 최고의 쇄신”이라며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후보의 최초 여성대통령 선출은 그 자체가 통합과 쇄신의 출발이고 행복한 국민, 글로벌 한국의 상징”이라며 “한류와 지적재산 강국의 비전은 섬세함과 감성을 갖춘 여성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양극화와 지역-세대간 갈등, 남북번영을 위해서는 여성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거듭 ‘여성대통령론’을 폈다.
김무성 10년 전 ‘여성총리 불가론’으로 역풍 맞아
김무성 본부장
그런데 김 본부장의 발언은 한 순간에 김이 빠지는 동시에 역풍을 맞았다. 그의 10년 전 발언이 화근이 된 것. 김 본부장은 국민의정부 시절인 지난 2002년 7월 12일 장상 신임 총리서리에 대해 “대통령 유고시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로는 직무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파문이 일자 그는 다음날 “국방을 걱정해 한 말이지 여성을 비하할 생각은 없었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태였다. 이를 놓고 SNS에서는 10년 전 ‘김무성 설화’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는 ‘여성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대선 전략으로 밀어부쳤다. 10월 28일 중앙선대위 여성본부 출범식에서 “모두가 변화를 얘기하고 쇄신을 주장하지만 여성 대통령만큼 큰 변화와 쇄신은 없다”며 이틀 연속으로 여성대통령 탄생이 쇄신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1일 한국외국어대학 국제관에서 가진 ‘전국 대학언론인과의 토론회’에서 대처 영국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을 거론하며 거듭 ‘여성대통령론’을 폈다. 여성대통령의 특장점은 ‘강하면서 부드럽고 권력싸움, 밀실정치, 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언론인 김종철 씨(전 한겨레 논설위원, 연합뉴스 사장)가 2일자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과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반응을 소개한다. 우선 김 씨는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불가론이나 시기상조론을 펴기보다는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 ‘자질론’을 문제 삼았다. 또 문 후보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의 ‘자격’을 거론했는데 전체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 가운데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 씨는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가 남성이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 박정희는 새누리당의 ‘원조’인 민주공화당을 만든 사람이고,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그 정당의 인적 기반을 고스라니 이어받은 집단들”이라며 “새누리당은 ‘남성대통령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국정 운영을 잘못해서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현 집권 여당의 국정파탄 책임을 먼저 짚은 것이다.
언론인 김종철 “남성후보 차별론이자 흑백논리”
문재인 후보 “새누리가 그런 주장할 자격 있나?”
박근혜 후보
이어 김 씨는 “새누리당의 박근혜도 통합진보당의 이정희도 진보정의당의 심상정도 유권자 다수가 인정하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는 “박근혜라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노르웨이, 핀란드, 아일랜드처럼 ‘탄탄한 복지제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새누리당 총괄선대위원장의 주장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노르웨이와 핀란드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정책임자와 정당, 그리고 국민들이 힘을 모아 ‘선진적 복지체제’를 이룬 것이지 ‘걸출한 여성’ 혼자서 그런 업적을 낳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투표시간 연장 문제에 대해 박 후보가 반대 입장인 것을 두고 김 씨는 “박근혜가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투표 시간 연장에 기꺼이 동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급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성 가운데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은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장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황당한 논리이자 경쟁자인 남성 후보들을 얕잡아보고 비하하는 차별론인 동시에 흑백논리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야권의 두 후보 가운데 문재인 후보도 ‘여성대통령론’에 대해 한 마디 했다. 그는 2일 ‘여성대통령론’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본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성이나 모성, 이런 정치를 주장하는 건 좋은 일”이라면서도 “다만, 그런 주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하고 싶은 건 그동안 새누리당의 여성정책이 없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특히 문 후보는 “새누리당은 여성부도 폐지하려고 했고 지금까지 여성정책에 대해 제대로 신경 써오지 않았다는 비판의 말은 할 수 있다”며 새누리당이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대통령 후보를 두고 여성, 남성 성별로 가르는 것은 어느 누구의 주장이냐를 떠나 온당치 못하다. 대통령선거의 초점이 정책이나 인물됨이 아니라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놓고 따지기 시작한다면 그건 조잡하고 저급한 논쟁밖에 나올 게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여성대통령의 등장이 마치 ‘구세주’나 되는 듯이 선전하는 것은 그리 우수한 선거전략이 아닌 듯싶다. 황상민 교수의 ‘생식기 발언’도 새누리당이 여성대통령을 지나치게 강조한 가운데 돌출적으로 나온 것으로, 박 후보에겐 순풍이 아니라 역풍이 될 공산이 크다. 박 후보는 자신이 존경하는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남성'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3일 오후, 25일째 단식 중인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을 만나 '정리해고에 대한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옆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분향에 앞서 문 후보는 주황색 넥타이에서 검은색으로 바꿔 맸다. 조문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분향소는 쌍용자동차 사태로 노동자와 그의 가족 23명이 숨진 것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굳은 얼굴로 조문을 마친 문재인 후보는 25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정우 지부장을 예방했다. 문 후보는 초췌한 얼굴의 김정우 지부장 두 손을 꼭 잡으며 "국정조사만큼은 새누리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여야 합의릍 통해 이번 정기 국회 때 (국정조사를)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이어 문 후보는 "정권교체를 하면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상조사와 함께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도 엄격하게 만들 것"이라며 "불가피한 정리해고는 이후에 경영이 호조되면 최우선적으로 복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리해고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문 후보는 김 지부장의 건강을 염려하며 "오늘로 25일째, 이제는 위험하다. 사람이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며 "이미 국민들에게 충분히 환기됐다"고 단식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하지만 김 지부장은 힘없는 목소리로 "진전이 없으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문 후보가 "정권교체 얼마 안 남았으니 이번 고비만 잘 넘기자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부탁하자 김 지부장이 "새누리당을 압박하든지 이번 회기 내에 국정 조사 해달라"고 요구했다.
문 후보는 "제가 약속을 할테니 오늘로 단식을 풀어라"며 "갑자기 쇼크가 올 수 있다.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김 지부장은 대답 없이 두 눈을 감았다.
김 지부장은 지난달 10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늘어나는 희생자 숫자가 아니라 낱낱이 파괴되는 개인들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며 "아파하고 고통받는 이 사회 모든 노동자의 목소리를 가슴 열고 들어달라"고 밝히며 단식에 돌입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조선로동당 김정은 제1비서가 준공을 앞둔 류경원과 인민야외빙상장, 로라스케이트장과 여성들을 위해 준공한 유선종양 연구소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4일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산원에 새로 건설 된 유선종합연구소와 대규모 휴양시설인 류경원과 야외빙상장, 로라스케이트장을 방문한 소식을 1면에 보도햇다.
로동신문은 김정은 제1비서가 문화후생시설인 류경원을 먼저 방문한 소식을과 함께 "류경원은 선군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연건축면적이 1만8,379㎡(약6,000평)이고 지하 1층과 지상 4층으로 되어 있다"고 규모를 소개 한 뒤 "류경원은 대중목욕탕, 가족목욕탕, 개별목욕탕, 치료 체육실, 이발실과 미용실, 오락장, 식당, 청량음료실, 지하차고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루에 7.200여명을 수용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의자에 앉아도 보시고 주단을 깔아놓은 바닥도 자세히 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고급목재로 바닥처리를 더 잘해 주자고 말씀하시었다."며 김정은 제1 비서의 동향을 전했다.
로동신문은 김정은 제1 비서가 야외빙상장을 돌아 본 소식을 전하며, "연건축면적이 6.469㎡(2,000여평)인 인민야외빙상장에는 사철 스케이트를 탈수 있는 1,800㎡(약600여평)의 빙상홀과 스케이트내주는 곳, 대기 및 휴계실, 의료실, 방송실, 감시실 등"이갖추어져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첨단기술이 도입된 빙상장을 꾸려놓으니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이 여름한철에 남방셔츠를 입고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희한한 풍경이 펼쳐지게 되었다고 기쁨을 표시하시었다."며 "얼음판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얼음판의 질이 좋아 빙상선수들도 이곳에서 훈련을하고 싶어 한다는 일군들의 보고를 들으시고 인민야외빙상장은 철저히 일반근로자들이 이용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고 전해 선수들의 훈련이 진행 될 수없음을 시사했다.
로동신문은 김정은 제1 비서가 로라스케이트장을 돌아 본 소식을 전하며 "지난 5월 인민야외 빙상장이 자리잡고 있는 대동강 기슭에 로라스케이트장을 건설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풀어주시는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었다"며 김정은 제1비서의 발기로 로라스케이트이장이 건설 되었음도 알렸다.
신문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지난 7월 28일 착공의 첫삽을 박은 군인건설자들은 짧은 기간에 부지면적이 1만3,300여㎡(약 4천여평)에 달하고 하루 2,000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로라스케이트장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건설하였다."며 규모와 시설, 이용객들의 정형을 소개했다.
로라스케이트장은 기본주로면적이 2,250㎡인 로라스케트장에는 로라호케이장, 기교장과 로라스케트내주는 곳, 남,녀탈의실, 청량음료점 등이 갖추어 졌다고 알렸다.
이 매체는 김정은 제1비서가"우리 나라에는 체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들이 원만히 갖추어져 있고 날이 갈수록 체육에 대한 전사회적인 관심이 높아가고있다고 하시면서 누구나 체육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라의 체육을 하루빨리 세계적인 수준에로 끌어올리는데 적극 이바지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고 보도해 김정은 제1 비서가 체육 부분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이날 김정은 제1비서의 방문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동지,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인 김기남동지,최태복동지,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비서인 김양건동지,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 리영수동지,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들인 김병호동지,량청송동지,박춘홍동지가 동행"했으며 "현지에서 체육상 리종무동지,체육성 당위원회 책임비서 리주봉동지와 건설에 참가한 군부대지휘관들이 맞이했다"고 알려 김정은 제1 비서의 부인인 리설주 여사는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로동신문은 같은 면 기사에서 조선로동당 김정은 제1비서가 새로 건설된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돌아 본 소식을 전했다.
로동신문은 평양산원에 건설 된 유선종양연구소가 김정일 위원장의 발기에 따라 김정은 제1비서의 지도로 건설 된 의료기지라며 "유선종양연구소가 여성들을 위한 종합적인 의료봉사기지,과학연구기지로 건설됨으로써 우리 여성들은 사회주의 보건제도의 혜택을 더욱 뜨겁게 받아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유관내시경실, 유선촬영실, 초음파실, 심전도실, 입원실 등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건설정형과 의료설비들의 성능과 특성,연구소의 관리운영 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꾸려진 홀에 들어 서시어 마치 궁전에 온것 같다고 하시면서 가장 우월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 보건제도의 혜택 속에 건강한 몸으로 만복을 누려갈 우리 여성들의 행복넘친 모습을 그려보시며 환하게 웃으시었다."며 김정은 제1비서가 만족감을 표시한 소식을 상세히 알렸다.
이어 "유선종양연구소의 치료대상 범위를 어떻게 정했는가를 물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평양시 뿐만아니라 먼거리 의료봉사체계를 통하여 전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봉사를 할 수 있다는 해당 부문 일군들의 대답도 기쁨 속에 들어주시었다."고 언급한 부분은 유선종양연구소가 전국을 대상으로한 병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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