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수학자였다. 1970년에 37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전도유망한 학자였다. 아버지가 몸담은 경북대 수학과에서 펴낸 '경북매스매티컬저널'은 국내 최초의 수학 학술지로 세계 여러 대학의 수학과와 교류했다. 그 덕분에 아버지도 미분기하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나의 아버지는 사형수였다. 1976년에 박정희 유신독재 타도를 위해 결성된 지하조직 ‘남민전’의 중앙위원이었던 아버지는 1979년 10월에 조직이 적발되면서 체포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이들은 세계의 수학자들이었다. 200여 명의 수학자가 구명운동에 나섰고, 그 덕분에 아버지는 2심에서 무기로 감형됐다.
1979년 10월에 터진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된 안재구 교수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남민전 사건 재판 때의 안재구 교수 모습.
'사형수가 된 수학자, 아버지 안재구'
최근에 내가 쓴 책의 제목이다. 아들이 쓴 아버지의 평전은 보기 드물다. 사형수가 된 수학자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검색해 봤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이 책이 특이한 평전인 이유다.
나는 앞날이 창창한 수학자의 길을 가던 아버지가 왜 남민전이라는 지하조직에 가입해 변혁운동의 길에 들어섰는지 그 연유가 늘 궁금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에서 변혁운동을 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실제로 1960~70년대 통혁당, 해방전략당, 인혁당 등 갖가지 조직의 이름이 붙은 사건들이 허다하게 터졌고, 많은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목숨까지 걸게 했을까. 어렵게 쌓아 올린 학문도, 가족도 다 포기하도록 만들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아버지 안재구' 책의 주제다.
경북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안재구 교수의 단란한 가족 사진. 맨아래 가운데가 저자인 막내아들 안영민.
재소자와 면회자로 뒤바뀐 처지
아버지의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세상은 나를 ‘간첩 자식’이라고 냉대했고, 나는 무기수로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가 담장 밖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1988년 12월에 가석방된 아버지와 재회한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1990년 3월 거리 시위에 나선 내가 그만 붙잡혀 구속됐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출소한 대구교도소에 갇혔다. 그때 대구교도소로 면회를 왔던 아버지의 첫마디가 내 가슴속에 아직도 또렷이 새겨져 있다.
“전에는 네가 나를 면회하러 왔는데, 오늘은 정반대가 되었구나.”
당시 어머니는 “어째 감옥까지 대를 잇는단 말이고”라며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10년을 찾아다닌 교도소에 다시 아들을 보러 와야 하는 신세가 참담했으리라.
‘빨갱이 부자’라는 낙인
어머니의 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4년 6월에 ‘구국전위’ 사건으로 아버지와 내가 함께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공안당국은 우리 부자를 동시에 구속시킨 뒤, 아버지와 아들을 서로의 인질로 삼아 간첩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다. 아버지는 다시 무기형을 선고받았고, 나는 2년 4개월의 징역을 살아야만 했다. 그나마 남민전 사건 때는 석방까지 10년이 걸렸지만, 구국전위 사건 때는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공안당국은 아버지와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2011년 7월에 아버지와 나는 다시 간첩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고, 수사와 재판에 시달려야 했다. 불구속 상태라지만 괴롭힘은 무려 7년이나 계속됐다. 2009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이 꼴을 보여드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979년과 1994년, 그리고 2011년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의 세월 동안 저들은 아버지와 나를 참 모질게도 대했다. ‘빨갱이’ ‘간첩’이란 낙인이 대를 이어가며 자행됐고, ‘대를 이은 빨갱이 부자’라는 언급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생전의 안재구 교수(1933-2020)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난 아버지와 아들
2020년 7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평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슴 속에 맺힌 상처로 남아있던 대목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남민전 사건은 이해한다. 너거 아버지도 청춘을 바친 경북대에서 쫓겨났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냐. 박정희 정권이 정말 미웠겠지. 그래서 유신독재 타도하겠다고 조직을 만들고 한 거 다 이해한다. 그런데 구국전위는 왜 또 했을까. 그것도 환갑의 나이에…. 책 쓰고, 강연 다니면서 존경받는 재야인사로 살면 될 텐데 뭣 때문에 또…
.”
어머니는 맺힌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어머니의 궁금증을 대신 풀고자 했다. 그것은 곧 나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수학자이자 민족해방 전사, 통일운동가로 살아온 아버지와의 대화는 2011년의 압수수색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나는 말지와 민족21 기자 시절로 되돌아가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난 우리들의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의 건강 문제가 앞을 막아섰다. 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아버지는 무엇을 위해, 어떤 신념으로, 굴곡지고 험난했던 87년의 생을 기꺼이 감당했을까.
안재구 교수의 조부인 안병희 선생(1890-1953). 안병희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민족해방운동을 하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고, 해방 이후에는 밀양에서 건준 부위원장과 민전 부위원장을 맡아 단독정부 수립 반대투쟁을 벌여 나갔다.
한 번의 사형선고, 두 번의 무기징역을 이겨낸 힘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당신의 할아버지, 내게는 증조할아버지인 우정(于正) 안병희 선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자주적인 인민정부 수립을 위해 고향인 밀양에서 활동하다 갖은 고초를 겪은 분이다. 아버지는 열두 살이던 해방 날, 무장투쟁을 준비하던 밀양의 화악산에서 내려와 청년들의 무등을 타고 밀양 읍내로 들어서던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애국애족의 정신을 키웠다. 미군정의 폭압 속에서 분단을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친 밀양의 아재들과 선배들을 보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당시를 떠올리며 아버지는 내게 ‘지조’와 ‘절개’를 말했다. 아버지에게 증조할아버지는 평생을 지조와 절개를 지키신 분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지조와 절개가 있어야 나라를 되찾겠다는 불굴의 신념도 생기고,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도 나올 수 있다”라고 강조하셨다. 할아버지한테 배운 지조와 절개야말로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이겨낸 힘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무기징역을 감내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아들은 왜 아버지가 걸어간 고난의 길을 뒤따랐을까?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아버지가 걸어간 고난의 길을 어떻게 아들도 뒤따를 수 있었나. 어려서부터 아버지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건 어떤 연유인가. 내가 '아버지 안재구'를 쓴 것은 위 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때는 친일 매국노들이 다시 돌아와 활개를 치던 ‘가짜 해방’의 미군정 시기였다. 지조와 절개를 지킨다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때였다. 변절과 배신이 혼탁한 세상을 살아내는 지혜로 포장돼 정의와 도리를 난도질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길을 묵묵히 따랐다. 평생 ‘진짜 해방’을 추구했고, 이 길에 모든 것을 바쳤다.
1991년 경북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안영민(오른쪽)은 말지와 민족21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통일운동에 나섰다.
내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아버지였다. 푸른 수의를 입고, 높다란 담벼락 너머에 갇혀 있는 아버지의 존재가 나의 청소년기를 규정했다. 하지만 그 길을 따른다는 건 쉽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수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아버지의 모교인 경북대 수학과에 입학한 1987년, 하지만 당시 대학은 청춘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는 연일 최루탄으로 뒤덮였고, 나도 공부에만 몰두할 수는 없었다. ‘수학이냐, 학생운동이냐’를 놓고 갈등하던 나는 결국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1987년 6월의 거리를 가득 메운 민중들의 항쟁이었고, 민주화의 열풍 속에 이루어진 아버지의 석방이었다.
나는 민중항쟁의 역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민중들의 힘을 믿을 수 있었다. 역사의 진보는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하던가. 1987년의 민중항쟁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2000년대로 이어졌다. 촛불항쟁은 다시 윤석열 탄핵을 위해 치켜든 응원봉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현장에서 나는 제국주의 침탈에 맞선 증조할아버지의 시대, 분단과 독재에 맞선 아버지의 시대, 그리고 자주, 민주, 통일의 우리 시대를 넘어 새롭게 펼쳐질 다음 세대의 미래를 확인하는 중이다.
산산이 부서진 그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기억의 힘
그렇게 세대를 이어나가는 역사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기억의 힘이라고 믿는다. 먼저 간 이들의 치열했던 삶을 잊지 않고, 그들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기억의 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밀양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과 해방부터 6.25전쟁까지 밀양의 투쟁사를 생생히 기록한 책 '끝나지 않은 길'을 통해 기억의 힘을 보여주었다. 나는 '아버지 안재구'를 통해 그 작업을 이어갔을 뿐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신념’은 그러한 작업의 결과물일 것이다.
'아버지 안재구' 책 표지. 내일을 여는 책
‘신념’이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며, 현실의 삶과 끊임없이 갈등하며, 집단의 공동체성을 통해 비로소 한 사람의 가치관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념이 그랬듯이 내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념’ 또한 마찬가지다.
집단의 공동체성이 배제된 개인의 신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신념이 아니라 세상을 파괴하는 맹목이 될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왜곡되고 폭력이 된 신념을 ‘극우’라는 이름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그 너머에서 다시 만날 우리들의 세계는 다양한 신념의 존중과 공존 속에 활짝 꽃필 것이다.
헌법재판관을 압박해 윤석열 탄핵 심판을 어떻게든 4월 18일 이후로 넘긴다. 4월 18일만 넘기면 헌법재판관 2명의 임기가 끝난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다. 미뤄오던 마은혁 재판관도 그제서야 임명한다.
새로 3명의 헌법재판관이 임명됐으니, 갱신 절차를 핑계로 2~3개월 시간을 끈다. 6~8월 경 (기각)5:4(인용) 결론을 내려 내란수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복귀시킨다.
국민에게 총을 겨눈 자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꼴을 그냥 지켜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를 이용한 내란세력의 ‘윤석열 복귀 공작’을 저지 파탄내자.
▲사진 왼쪽부터 김복형·정형식·조한창 헌법재판관
헌법재판관이 헌법을 유린하면?
내란세력은 지금 헌법재판관을 볼모로 시간을 끌며 ‘윤석열 복귀 공작’을 벌이고 있다.
오는 2일까지 윤석열 탄핵 선고 기일을 정하지 않으면 헌재가 ‘윤석열 복귀 공작’에 넘어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헌법재판관 일부가 이미 오염됐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명확하다. 탄핵소추된 사실 자체는 딱 하나다. 12.3 비상계엄 선포행위. 포고령이나 국회와 선관위 침탈, 체포조 운영 등은 다 여기에 연결된 행위다. 또 그날 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영상 자료가 있어서 증명에 아무 문제가 없다. 법리적으로도 위헌·위법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변론 종결 후 한 달이 넘었다. 정상적인 사법시스템 내에서의 평의가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판결 지연은 헌법재판관이 스스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는 ‘윤석열 복귀 공작’이 성공하기 전에 헌법재판관 전원을 탄핵함으로써 헌재를 무력화해야 한다. 탄핵 당한 헌법재판관은 자격이 정지됨으로 탄핵 심판을 할 수 없다.
헌법재판관까지 탄핵하면 헌정질서 혼란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내란수괴 윤석열이 복귀해 전쟁을 일으키고, 2차 계엄을 선포하는 것보다는 낫다.
권한대행 체제는 그대로 둘 것인가. 내란수괴 윤석열 퇴진 투쟁을 통해 국민이 직접 내란세력을 타도하는 방향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투쟁 대상이 명확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내란 종식에 나선 국민 편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탄원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탄원 시작 30시간 만에 서명에 동참한 시민은 50만명에 달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4월로 미뤄지자, 헌재를 향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31일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 파면 촉구 긴급 탄원 서명이 이날 오후 3시 30분경 5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 탄원은 비상행동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야8당이 함께 제안한 것이다.
탄원서에는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불의”라며 “우리 주권자 시민들은 헌재가 헌법과 주권자 시민으로부터 부여받은 헌법 수호의 사명을 방기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자 시민으로서 헌재에 우리들로부터 받은 권한을 행사할 것을 촉구한다”며 “주권자 시민의 명령이다. 헌재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고 주문했다.
해당 탄원은 지난 30일 시작해 오는 4월 1일까지 72시간 동안 진행되며, 100만 시민의 동참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탄원 서명이 마무리되면, 참여한 시민들의 명의로 4월 2일 헌재에 제출할 예정이다. 탄원에 참여하려면 이 링크(http://bs1203.net/outnow)로 접속해 간단한 인적 사항을 입력하면 된다.
비상행동은 “헌재에 대한 분노와 함께 빠르게 서명자가 많아지고 있다”며 “100만 목표까지 이제 절반 남았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난달 29일 산불대응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총리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일자를 지정하지 못한채 4월을 맞이하면서 여야가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놓고 극한 충돌을 벌일 모양새다. 만에 하나 오는 18일 문형배 이미선 두 헌법재판관의 퇴임까지도 윤 대통령 선고를 하지 못할 경우 탄핵 결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헌재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부작위(미임명)를 위헌으로 판단한 점을 들어 한덕수 대행에 1일까지 마 후보자 임명하지 않을 경우 재탄핵 카드를 꺼내든 상태다. 여기에 헌법재판관 임기를 연장하는 법 개정안도 법안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국민의힘은 임기가 마무리되는 두 재판관 후임 재판관 인선절차를 추진하겠다는 전략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 같은 충돌양상을 두고 동아일보는 헌재가 빠른 탄핵선고를 결정하고 한덕수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해 혼란을 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월18일 마지노선 닥치자 여야 입법충돌 극한대치
한국일보는 1면 기사 <말 없는 헌재…여 “문형배 후임임명” 야 “쌍탄핵” 극한대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4월로 넘어가게 되자, 여야가 일제히 ‘이제는 헌재가 결단할 때’라고 신속한 선고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특히 그간 서둘러 결론 낼 필요 없다고 느긋해하던 국민의힘마저 더는 시간 끌기는 안 된다고 돌아섰다는 점을 들어 한국일보는 “‘탄핵 인용’을 강조하며 애를 태우는 야당과 달리 여당에선 8명 헌법재판관 가운데 기각·각하가 3명이라는 이른바 ‘5대 3 데드록’ 설에 잔뜩 고무돼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2025년 4월1일자 1면
민주당은 한덕수 대행과 최상목 부총리에 대한 쌍탄핵을, 국민의힘은 두 재판관 퇴임 이후 후임 재판관 임명에 착수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나선 점을 들어 한국일보는 “여야가 진영의 유불리와 당리당략에 따라 헌재 제도와 법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뜯어고치며 국정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마은혁은 놔두고 문형배 이미선 후임 인선 요구 “모순”
조선일보는 1면 <與 “재탄핵 땐… 한덕수, 헌재 2명 지명해야”>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오는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하는 방안이 여권에서 검토되고 있다”며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한 대행을 탄핵소추하겠다고 압박하는 데 대한 ‘대응 카드’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통상 (헌법재판관) 임기 만료 두 달 전에 정부에서 임명 관련 청문회 개최 요구서를 제출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야당이 한 권한대행에 대한 2차 탄핵을 추진하면 문·이 재판관 후임자 지명을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최근 국무총리실에 두 재판관 후임자 지명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2025년 4월1일자 1면
한국일보는 1면 기사에서 국민의힘의 이 같은 태도를 두고 “그러나 그동안 국민의힘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몫 재판관도 결코 임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점에 비쳐 자기모순이란 지적이 비등하다”고 지적했고, 경향신문은 1면 <마은혁은 두고 “문형배·이미선 후임 인선하라” 여당의 모순>에서 “헌법재판소가 이미 위헌이라 판단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은 방치하거나 임명을 반대하고 이런 모순된 행태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향방을 염두에 둔 정치적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도 3면기사 <‘마은혁 임명’ 막은 채…‘문형배·이미선 후임’ 카드 꺼낸 국힘>에서 “‘헌재 구성’ 문제가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탄핵 선고 4월18일 넘길 때 대비 ‘재판관 임기 연장 법’도
이에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 18일로 넘어갈 상황에 대비해 헌법재판소 마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패키지 법안도 추진키로 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야당 단독으로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들을 보면 ①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을 시 기존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연장하고 ②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임을 임명하지 못하고 ③국회 선출 등으로 뽑힌 재판관의 임명은 7일 이내로 강제하자는 게 골자라고 전했다. 특히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임기 만료가 예정된 다음달 18일 뒤에 공포되더라도 소급 적용될 수 있게 했다. 해당 법안들은 이번 주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국일보는 내다봤다. 국민의힘은 한 대행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에서 “여야 모두 탄핵 정국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헌법재판관 구성을 둘러싼 줄다리기에 나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김어준 이재명 초선 의원 등 72명 고발
국민의힘은 이날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초선 의원 전원, 방송인 김어준씨 등 72명을 내란음모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주진우 당 법률자문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 기자회견에서 “입법권력이 행정권력을 침탈하는 것”이라며 “국가기관의 정상적 권능 행사를 장기간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위를 모의·결의한 만큼 내란음모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조국혁신당은 이날 주 의원을 무고죄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동아일보 “헌재와 한 대행이 매듭 지어야”
동아일보는 사설 <파국 치닫는 극한 대치… 헌재와 韓이 매듭지을 때>에서 여야의 입법 대치 상황을 두고 “3주도 남지 않은 두 재판관의 퇴임 시점까지 헌재 선고가 나오지 않고 마 후보자 임명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정작 한 대행과 헌재의 침묵은 길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동아일보는 여야의 대치를 매듭지을 수 있는 건 탄핵심판 선고와 마 후보자 임명 권한을 쥔 헌재와 한 대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신문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헌재가 작금의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 국민적 불안을 직시해야 한다”며 “조속한 탄핵 심판 선고로 4개월간 우리 국민을 괴롭혀 온 12·3 비상계엄의 혼란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대행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는 “국가적 리더십 부재 상황의 엄정한 국정 관리자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자신의 부작위가 과연 정치권을 곁눈질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처신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2025년 4월1일자 사설
한겨레 “한덕수 마은혁 임명해 혼돈 수습하라”
한겨레는 사설 <한 대행, 마은혁 임명해 위헌 해소하고 혼돈 수습하라>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무에 복귀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 위헌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며 “지금의 혼란에 큰 책임이 있는 한 대행은 헌법 수호와 국정 안정이라는 본분을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한 대행이 국회 선출 석달이 넘은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명분 없는 헌법 무시”라며 “한 대행은 속히 마 후보자를 임명해 위헌 상태를 해소하고, 헌재는 조속한 결론으로 혼돈을 끝내야 한다”고 썼다.
경향신문 “계엄 잘못이라는 입장도 바꾸나”
경향신문은 사설 <“계엄은 잘못”이라던 입장까지 바꾸는 국민의힘>에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이 길어지면서 국민의힘이 표변하고 있다”며 “ ‘계엄은 잘못’이라던 입장을 바꿔 옹호에 나섰다. ‘내란 정당’ 본색을 노골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내란을 보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이유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며 “국정 안정을 위해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해야 한다 생각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
▲경향신문 2025년 4월1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누구도 납득 못할 비상계엄 선포로 나라를 결딴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는 건지 황당하기 그지없다”며 “요건도 못 갖춘 비상계엄으로 헌정을 파괴한 사실마저 부인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진중권 “尹 복귀시 유혈사태도” 우려에 국힘 답변 들어보니
[영상]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권력을 가질까 생각밖에 없습니까?”
“마은혁 임명거부 위헌 상태 계속 유지해야 하나” 국힘 답변은
조선일보 “여야, 내각 총탄핵과 내란죄 고발 막장 충돌”
조선일보 “한덕수 재탄핵, 헌법재판관 임기 연장 말도 안돼”
조선일보는 사설 <無정부 초래할 韓 대행 재탄핵 철회해야>에서 민주당의 한 대행 탄핵 추진을 비판했다. 조선을보는 “대통령 직무 정지라는 비상 상황에서 ‘줄탄핵’ ‘쌍탄핵’ 같은 말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이렇게 한 대행을 압박하는 것은 마 후보자가 헌재에 추가로 투입돼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자신들 뜻대로 결론 날 수 있다는 다급함 때문일 것”이라며 “그러나 헌재가 민주당의 정략적 탄핵소추를 기각하고 한 대행의 직무 복귀를 결정한 지 일주일 만에 동일한 이유로 다시 탄핵소추하는 것은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법률이 정한 일사부재리에도 어긋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국가를 무정부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는 위협과 다름없다”고 썼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헌법재판관들이 국민을 생각하며 윤석열을 하루빨리 파면시킬 수 있기를.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 천주교 전주교구 유영 스테파노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년 만에 시국미사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했다. 사제단은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고 강조한 교황청 유흥식 추기경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당장 파면을 선고하라"고 했다.
사제단은 내란 118일째인 31일 오후 헌재 인근에 위치한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시국미사에 참석한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은 광장 일대를 빈자리 없이 채웠다.
이들은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엄청난 판결 앞에 우리는 모두 두려운 마음으로 서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당신들만이 오직 대한민국을 살릴 키(key)를 쥐고 있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혼란을 끝내고 후손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를 물려줄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지체 없이 내려달라"고 강조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정의에 중립 없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 뜨거운 눈물들 / 한줄기 강물로 흘러 /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더 넓은 평화의 바다에 /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 성가 <그날이 오면> 중
참석자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그날이 오면>, <평화를 주옵소서>, <함께 가자 우리가 이 길을> 등의 성가를 입 모아 불렀다. 노랫말에 맞춰 '헌재는 선고하라', '주저 말고 파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나 직접 만들어 온 형형색색의 손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오늘 시국미사는 사제단이 1년 만에 재개한 시국미사였다. 그만큼 많은 참석자들이 광장 곳곳을 채웠고, 대부분은 자리가 부족해 인도에 서서 시국미사를 지켜봤다. 오후 6시께는 장백의를 입고 보라색 영대를 두른 신부 수백 명이 줄지어 입장했다. 참석한 신부들의 수가 너무 많아 입장에만 약 10분이 소요될 정도였다. 평신도들은 계속해서 성가를 부르며 이들의 입장을 지켜봤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이날 해설을 맡은 천주교 전주교구 유영 스테파노 신부는 위와 같이 헌법재판관 8명을 한 명씩 호명했다. 이어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들리는 말대로 8명 중 2~3명 때문에 파면 선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녕 사실인가"라고 물으며 "그렇다면 제발 생각을 달리해달라. 지금으로서는 당신들만이 오직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강론(설교)을 맡은 장계성당 주임신부인 송년홍 타대오 신부는 "요즘 국민들은 아침에 일어나 유튜브를 틀고, 페이스북을 보고, 뉴스를 보며 (탄핵심판) 선고일이 언제인가 확인한다"며 "내란 병, 내란 증후군에 걸린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3일 밤부터 윤석열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우리 모두가 봤다.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시키려 하고 계엄군을 헬리콥터에 태워서 보냈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려 포고령을 선포했고, 수거 대상 목록을 만들었다"라면서 "그런데 왜 헌재는 망설이고 주저하는가. 무엇이 무서운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 송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을 소개하며 "양심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양심에 따라 선고하라는 뜻"이라고,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의 최근 담화를 언급하며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 촉구 시국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사제단은 이날 교구별로 윤석열 파면 선고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묵주기도, 오체투지, 삼보일배 등을 진행하자는 다짐을 나누기도 했다. 시국미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오후 7시부터 '윤석열 파면 국힘당(국민의힘) 해산 촛불문화제'에 합류해 집회를 이어갔다.
아래는 이날 참석자들이 시국미사를 마치며 부른 파견성가 노랫말이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 들판 산이라면 / 어기여차 넘어주고 /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 어기여차 건너주자 /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 서로 일으켜 주고 /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 성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지난 12일, 정부는 <취업자 2달 연속 두자릿수 증가…서비스업 고용 증가폭 확대>라는 제목의 '정책브리핑'을 발표했다. 2월 취업자 수가 13만6000명이나 증가했고 고용률과 경활률이 2월 기준 역대 최고라는 것. 실제로 15세 이상 고용률은 61.7%로 전년 동월 대비 0.1%p 상승했고, OECD 비교 기준인 15~64세 고용률은 68.9%로 0.25%p 상승했다.
그러나 취업자 수 증가는 65세 이상에 치우쳐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직접일자리 사업이 연초부터 신속 채용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지난달 65세 이상 취업자는 33만1000명 증가했다. 직접일자리 사업을 진행하면 주로 보건복지와 공공행정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정부가 말한 '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바로 이 두 부문을 가리킨다.
노년층은 그래도 이렇게 취업자 수를 늘리기가 용이한 편이지만, 일자리를 구할 때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는 청년층은 다르다. 지난달 15~29세 청년층 인구는 전년 동월 대비 21만5000명 감소했는데, 청년층 취업자는 23만5000명 줄었다. 청년층 고용률은 44.3%로 전년 동월 대비 1.7%p나 하락했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50만4000명으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경제활동인구를 제외하고 계산하는 청년층 실업률도 7.0%로 0.5%p 상승했다. 청년층이 많이 취업하는 제조업과 도소매업은 취업자가 감소하는 추세다. 어느 지표를 보나 좋지 못하다.
언론은 청년 고용지표 중에서도 청년 '쉬었음' 인구의 증가에 주목했다. 특히 <한국경제>,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한국일보>, <세계일보> 등 5개 신문은 청년 ‘쉬었음’을 사설로 다뤘다.
[사설] '그냥 쉬었음' 청년 50만명…이대로는 한국號 미래 없다(25.03.12 한국경제)
[사설] 청년 고용 4년래 최악인데 '反기업' 정책 공약 내세운 巨野(25.03.13 서울경제)
[사설] '쉬었음' 청년 50만명, '불안하다'는데 정책은 느슨(25.03.17 헤럴드경제)
청년 50만 명이 '그냥 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25.03.13 한국일보)
[사설] '쉬었음' 청년 43만명, 이들의 희망은 '일자리 재교육'(25.03.13 세계일보)
<한국경제>는 청년 '쉬었음'의 증가가 "기업 투자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교육 체계가 기업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고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 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서울경제> 사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규제를 혁파하고 세제·재정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서라고 했다. 또한 "정규직 보호 중심의 경직된 노동 시장을 유연화해야" 기업들이 청년 채용을 기피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헤럴드경제> 사설은 정부의 적극적인 관리와 "실무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사설도 뒷부분에서는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경직성 이야기를 똑같이 했다. 매번 나오는 주장들이다. 문제가 무엇이든 경제신문들의 해법은 규제 완화와 기업 지원이다.
<세계일보>는 '쉬었음 청년, 그들은 누구인가' 시리즈 연재를 통해 만난 청년들 이야기를 사설에 담았다. 청년들이 다시 일어서려면 일자리 재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일보>는 쉬었음 인구 증가의 원인을 '신성장 동력이 나오지 못한 것'과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찾았다. 두 신문의 사설은 경제신문들의 사설과 논조가 상당히 달랐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취업 공고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쉬었음 청년 증가에 대한 주무부처 장관의 인식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29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쉬었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대책을 설명했다. "국세청에 소득 신고 한 번 해본 적 없는 졸업생들을 직접 찾아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왜 쉬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올해 1월 고용노동부가 '한국형 일자리 보장제'를 내놓았다. 한국형 일자리 보장제란 EU의 청년보장제(Youth Job Guarantee)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4개월 내에 정부가 개입해서 취업 준비 장기화를 예방하는 정책이다.
올해 2월 19일에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긴급 기자회견이 있었다. 청년 고용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 엑소더스 코리아가 얼마나 급속하게 일어나는지 여러분 보시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투자 안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투자 안 하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쉬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자리가 반도체, 고임금, 좋은 거 아닙니까. 고임금이고 연봉 1억 이상, 그다음에 R&D, 연구기술직, 이런 또 반도체 같은 특별한 분야에 대해서 하자는 이것도 안 하면서 먹사니즘을 말합니까?"
그러니까 김 장관의 견해는 '기업이 투자를 안 해서 젊은이들이 쉬었다'는 것으로, 경제신문 사설 내용과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해법은 어떤 논리에 근거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반도체 업계의 고임금 일자리인데, 그 반도체 분야에 주52시간 예외 인정을 안 해서 문제라니…. 좋은 일자리를 장시간 노동하는 일자리로 만들면 '쉬었음'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일까?
몇 마디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3월 10일 김 장관이 세종청사 기자간담회에서 청년 고용에 대해 했던 이야기도 들어보자. "방법이 뭐냐 이거지. 우리가 고용노동부가 안을 내는 게 아니라 기업이 청년 채용해야 하는데 기업이 전체적으로 감원 추세. 삼성, 은행, 건설도 감원. 그럼 어디서 늘릴 거냐. 올해 졸업생도 쏟아져 나와요. (…) 취업 잘 되는 데 정원도 늘리고 해보자. 뭐 그런 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쉬었음 청년한테 가서 5만 명 데이터 가지고 계속 전화해서 취업 박람회 하는데 와보세요, 이런 일자리 있는데 한번 안 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소프트웨어 트레이닝코스 1년짜리가 있는데 다 우리가 돈 주고 약간의 훈련비도 드릴 테니까 들어보시죠. 뭐 이렇게 유인을 하는 거죠. 안내, 유인해 드리고. 그런 거는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게 너무나도 미미한 거예요."
기자 한 명이 '청년고용 관련해서 고용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는 거냐'는 취지로 질문하자 김 장관은 다시 이렇게 답변했다. "안내는 해주지만 일자리 만드는 건 정부 인턴, 그것도 임시거든요. 인턴도 막 늘릴 수가 없어. 더 늘릴 수가 없어. (…) 청년정책도 수십 개가 있는데 내가 들여다볼 때는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 몇 개 늘어나냐, 굉장히 제한적이다. (…) 우리가 하는 것은 중소기업에서 청년 채용하면 지원금 줘요. (…) 10만 명한테 그거 몇 달 준다고 해서 청년들 체감하는 거 아니고 공장이나 이런 데 가는 사람만 주기 때문에 공장에 가기 싫어해서. 기재부에서도 그런 돈을 그렇게 많이 써야 하냐, 그런 여러 가지 한계가 많아요."
고용노동부의 청년고용 정책이 가짓수는 많은데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장관의 설명. 솔직하긴 하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김 장관이 쉬었음 청년에 관한 데이터를 제대로 보긴 했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와 유관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라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김 장관을 위해 다음과 같이 요약도 제공하겠다.
<2023년 11월 기재부가 발표한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
· 2023년 1~10월에 쉬었음 청년은 41만 명에 달했다. 2016년에는 쉬었음 청년이 26만9000명이었고, 그 이후 급증하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 정점(44만8000명)을 찍고 다소 감소하다가 2023년에 다시 증가로 전환했다.
· 쉬었음 청년의 학력은 고졸 이하가 61.8%였고, 직장 경험이 있는 경우가 74.6%였다.
· 이 실태조사에서는 쉬었음 청년을 취준-적극형, 취준-소극형, 이직-적극형, 이직-소극형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단계별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2022년 통계에서 가장 많은 유형은 '이직-적극형'(57%)이었다.
· 이직-적극형 청년들은 "이전 직장보다 나은 조건·경력 등"을 위해 퇴직했고, 재취업 계획은 있지만 바로 진입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 쉬었음 청년 증가의 장기적·구조적 원인은 노동시장 미스매치, 기업들의 수시·경력 채용 경향, 전반적인 이직 증가 등이다. 단기적 원인으로는 코로나 시기 확대되었던 간호, 배달 일자리의 축소와 그리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청년들의 ‘쉬었음’ 유입이 있다.
▲2022년 청년 쉬었음 유형별 비중 – 기재부의 분류에 따르면 '이직-적극형'이 57%, '이직-소극형'이 21%를 차지했다.
<2024년 12월 2일 한국은행,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의 배경과 평가>
· 최근 나타난 쉬었음 증가는 첫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층이 아니라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층이 주도했다.
· 최근 1년간 증가한 청년층 '쉬었음' 인구 중 자발적 사유로 쉬게 된 노동자는 28%였고 비자발적 사유가 72%를 차지했다. 비자발적 사유의 청년 '쉬었음'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
· 비자발적 쉬었음 청년은 주로 중소기업(300인 미만), 대면서비스업에 근무했다. 도소매, 숙박음식업 같은 대면서비스업뿐 아니라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 등 IT 관련 업종에서도 청년층의 비자발적 쉬었음이 늘어나고 있었다.
· 청년층 고용의 질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비자발적 이직에 의한 노동시장 이탈은 "고용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자리에서 주로 나타났"다.
· 또 비자발적 쉬었음으로 이동한 지 1년이 지나면 근로를 희망하는 비율이 50% 내외로 하락했다.
▲청년층 이직사유별 쉬었음 인구 – 2023년 4분기부터 최근까지 자발적 사유의 '쉬었음'도 증가했지만 비자발적 사유의 '쉬었음'이 더 가파르게 증가한 모습이 보인다. 출처: 한국은행 블로그
<2025년 3월 11일 발표, 한국고용정보원의 쉬었음 청년 실태조사+한국노동연구원의 수도권과 지역 간 청년 일자리 격차 조사>
· 1년 이상 쉬었음 상태를 경험한 청년들의 87.7%가 과거 근로소득 경험이 있었다. 이들의 마지막 일자리는 제조업(14.0%)과 숙박·음식업(12.1%) 등의 소기업(42.2%)에 집중되어 있었다.
· 장기 쉬었음 청년들의 마지막 일자리를 기업 규모별로 분류하면 '소기업/소상공인' 비중이 높았다. 평균 임금 수준은 200만 원 이상~300만 원 이하였고 근속기간 평균은 17.8개월이다(근속기간은 '6개월 미만'과 '1년~2년 미만'이 많음).
· 과거 일자리가 저임금·저숙련·불안정할수록, 일경험이 없을수록, 미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쉬었음에 머무는 비중이 높았다.
· 2018년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청년 취업자 격차 비율은 2020년 31.7%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정보통신 전문가 및 기술직 취업자 수에서 지역 격차가 크다.
▲장기 '쉬었음' 청년의 마지막 일자리는 '소기업/소상공인' 비중이 높다(42.2%). 출처: 고용노동부 보도자료(2025.03.11)
이 자료들을 종합해서 그림을 그려보자. 현재 쉬었음 청년의 절반 이상은 고졸 이하 학력이고, 70% 이상은 직장 경험이 있는 상태에서 쉬었음으로 전환했다. 최근에는 자발적 쉬었음보다 비자발적 쉬었음이 더 많이 늘고 있는데, 비자발적 쉬었음 청년 중 다수는 대면서비스 업종의 소규모 사업체에 종사했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직장 경험이 있는 청년보다는 대학교 졸업예정자(연 55만 명)와 직업계고 청년(8만명)의 노동시장 진입을 지원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턴이든 뭐든 일단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가게 만든다. 올해 '졸업생' 대상 예산 175억 원이 새로 배정되긴 했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했다가 이탈한 청년들을 위한 정책은 기존의 도약장려금과 국민내일배움카드 외에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는다. 통계상 쉬었음 청년의 전형인 '제조업이나 숙박음식점업에서 평균 17.8개월 일하다가 쉬었음이 된 청년'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우리 사회와 언론이 만드는 쉬었음 청년의 이미지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고 대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청년들이다. 김문수 장관의 머릿속에도 "국세청에 소득 신고 한 번 해본 적 없는 졸업생들"이 있다. 제조업에 관해서는 청년들이 "공장에 가기 싫어해서"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러나 통계 수치는 고졸 청년들과 비수도권 제조업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져야 함을 가리킨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 고졸 청년들이 소규모 제조업체에 갔다가 안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도권 청년들이 대면서비스업 일자리를 구했다가 그만두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조업과 서비스업, 정보통신업 가리지 않고 비자발적 실직이 늘고 30대 경력직끼리도 구직 경쟁이 붙는 심각한 상황인데 과거와 똑같은 해법으로 대응이 가능할까?
담당 공무원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가 시행 중인 청년 취업 관련된 정책을 다 모아놓으면 가짓수가 정말 많다. 빈 일자리 지원금 같은 정책은 당장 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기재부가 이것도 아까워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매칭 서비스, 심리상담 같은 나열식 청년 정책은 한계가 있다. 기업의 경력직 채용에 대응해서 모든 청년에게 인턴 방식으로 '일 경험'을 시켜준다 해도 그 청년들 사이에 다시 경쟁이 붙는다.
정부는 '한국형 일자리 보장제'를 내놓으면서 EU의 '청년 일자리 보장제(Youth Job Guarantee)'를 참조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EU의 일자리 정책에는 일자리의 '질'이라는 개념도 포함된다. EU에서는 미래 사회 원칙으로 '더 많은, 더 나은 일자리(more and better jobs)'라는 고용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고용의 안정성, 임금 충분, 작업환경 안전, 안전망(4대보험 제도화)과 노동권의 4가지를 갖추면 어떤 일자리든 좋은 일자리가 된다는 개념이다. 일자리의 양을 늘리기 위해 EU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2030년까지 20~64세 인구의 80% 이상이 고용되도록 한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일자리의 질과 양을 모두 중시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ILO에서 정한 '괜찮은 일자리'의 요건도 비슷하다. 적정 소득, 고용 안정성, 일터의 안전. 한국 청년들에게도 이처럼 '좋은 일자리' 또는 '괜찮은 일자리'를 찾을 기회가 지금보다 많이 주어져야 한다. 청년들이 오래 다닐 수 있는 일자리라면 모두에게 좋은 일자리일 것이다.
한국은행은 "청년층 고용의 질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단 청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 단시간 노동의 증가, 미스매치… 다 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현장 노동자들이 문제 제기하는 부분을 잘 들여다보면서 일자리의 질을 챙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직장 갑질과 임금체불, 최저임금법 위반, 하청노동자의 무권리 상태, 가짜 3.3 고용과 교육생 임금 착취 같은 문제들은 노동시장 전반을 짓누르는 동시에 청년들의 이탈에 일조한다. 김문수 장관이 정치적 발언은 줄이고 이런 현안들에 더 관심을 가지기를 권한다.
안진이 더삶 대표
안진이 the삶 대표는 '더 나은 일과 삶'을 위해 플랫폼 기업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노동 현장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the삶 공식 뉴스레터(33레터) 구독 링크 https://the3together.ghost.io/#/portal/signup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여야의 충돌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마 재판관을 1일까지 임명하지 않으면 국무위원 연쇄 탄핵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의힘은 내각 줄탄핵을 하겠다는 것은 국헌 문란이라며 3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초선 의원 등 72명을 내란 음모 및 내란 선동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이미 지난달 25일에 변론이 종결됐는데도 선고는 미뤄지고 있다. 탄핵 심판 사건 접수부터 선고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이 걸렸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12월14일부터 이미 100일이 넘어갔다.
31일 주요 일간지는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안을 1면에 담았다. 다음은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린 탄핵 심판 선고 관련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야 ‘탄핵 선고’ 총력전>
국민일보 <늘어지는 헌재 선고 여야 강경파만 득세>
동아일보 <늦어지는 尹 선고에 與서도 “이번주 매듭 지어야”>
서울신문 <“마은혁 임명 1일 데드라인” “줄탄핵 땐 野 해산”>
세계일보 <與 “馬미임명 땐 중대 결심” 與“내각 전원 탄핵은 내란”>
조선일보 <“내각 총탄핵” vs “野 내란죄 고발” 정국 충돌>
중앙일보 <윤 선고 늦어지자 야당, 한덕수 재탄핵 시동>
한겨레 <끝내 4월…윤 탄핵심판 선고 ‘마지노선’도 불안>
한국일보 <국정마비 불사한 與 ‘마은혁 배수진’>
더불어민주당이 30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게 다음달 1일까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마 후보자를 4월1일까지 임명하지 않으면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다.
▲31일 동아일보 1면.
경향신문은 1면 기사 <야 ‘탄핵 선고’ 총력전>에서 “‘중대결심’은 한 권한대행을 다시 탄핵소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4월로 넘어가자 야권이 가용한 모든 카드를 동원하는 총력전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4면 기사 <“민주당 해산” “내각 줄탄핵” 헌재 바라보다 격해진 여야>에서는 “헌재가 지난달 25일 변론 종결 후 한 달 넘게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당연히 탄핵 인용이라고 관측하던 야당의 초조함이 강경 대응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항소심 무죄 선고 후 탄핵 기각·각하 투쟁을 하는 탄핵 반대파에 당의 무게추가 쏠리면서 민주당에 대한 대응이 격해지고 있다. 전략적으로는 더 이상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기 어려워지니, 민주당 집권의 정치적 리스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31일 경향신문 4면.
한겨레는 1면 기사 <윤석열 탄핵심판 4월18일 넘기는 ‘최악 경우의수’ 우려까지>에서 왜 탄핵 심판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 일정이 4월로 넘어올 정도로 평의가 길어지면서 헌법재판관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커, 결정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며 “막바지 쟁점 정리 과정에서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누군가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이어 “지난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선고에선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헌재는 전혀 힌트를 남기지 않았다. 되레 5(기각)대 2(각하)대 1(인용)로 재판관들의 ‘분화’만 확인할 수 있었다”며 “마은혁 재판관이 채워지지 않은 ‘8인 체제’에서 5 대 3으로 갈려있다면 쉽사리 마침표를 찍어버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또한 한겨레는 “4월까지 밀린 윤 대통령 탄핵 선고의 마지노선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이라며 “4월10일은 두 재판관 퇴임 전 ‘8인 체제’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정기 선고일이다. 헌재는 변론이 종결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탄핵 사건도 ‘8인 체제’에서 결론을 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예상했다.
▲31일 한겨레 1면.
국민일보 “선고 늦어지면서 강경파들 득세…모두 사활 걸고 초강경 대응”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는 여야가 모두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1면 <늘어지는 헌재 선고… 여야 강경파만 득세>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3월 선고가 불발됐는데 헌법재판소는 말이 없자 여의도엔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득세하고 있다”며 “헌재 결정이 늦어지는 배경으로 헌법재판관들 간 탄핵 인용과 기각·각하 의견 충돌설마저 제기되면서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초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서로 고소·고발을 예고하는 등 정치가 스스로 사법 종속성을 키우는 사이 중도 민심은 갈수록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서울신문도 1면 기사에서 “헌법재판소 선고 지연에 정치권도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라고 보도했다. 세계일보 1면 역시 “여야 지도부 모두가 강경론에 휩쓸려 들어가는 추세”라며 “결국 문제 해결이 정치인의 ‘입’보다 사법부의 ‘판결’로 결정되고, 이마저도 진영논리로 해석되며 싸움만 거듭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더 큰 이유는 ‘윤 대통령 복귀 프로젝트’라는 의구심”
한국일보는 1면 <국정마비 불사한 野 ‘마은혁 배수진’>기사에서 왜 더불어민주당이 마은혁 재판관 임명에 집중하는지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한 대행이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건 불과 1주일 전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재차 탄핵으로 압박하는 건 과도한 조치로 비친다”며 “탄핵 사유도 앞서 ‘헌법재판관 미임명’으로 같다. 상황이 이런데도 실제 탄핵에 나선다면 상당한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강행하려는 건 마 후보자 임명에 사활이 걸렸기 때문”이라며 “우선 위헌 상태 해소를 이유로 든다.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마 후보자 임명을 보류한 것에 대해 ‘국회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한 대행 탄핵을 다시 추진해 국회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이라 썼다. 또한 “더 큰 이유는 ‘윤 대통령 복귀 프로젝트’라는 의구심”이라며 “현재 1명이 공석인 8인 체제에서 재판관 2명이 빠진다면 6명으로 줄어 헌재는 탄핵 결정에 필요한 7명조차 채울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5면 기사에서 “마 후보자가 임명된다 해도 윤 대통령에 대판 ‘조속한 파면 선고’를 장담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 측에서 이의를 제기해 정식으로 변론 갱신 절차를 밟아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가뜩이나 늦춰진 선고에 대해 헌재가 또다시 지연할 명분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31일 한국일보 5면.
조선일보 사설 “여야 극단적 대립…멈추지 않으면 통제 불가능한 위기 닥칠 수도”
사설에서도 대부분의 언론이 여야 모두 극단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31일 사설 <‘내각 총탄핵’과 ‘내란죄 고발’이라는 막장 충돌>에서 “한덕수 대행의 복귀 이후 정부가 내각을 재정비하고 여야가 위기 극복에 함께 나서도 부족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시 내각 총탄핵과 내란죄 고발이라는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통제 불가능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고 전했다.
▲31일 조선일보 사설.
또한 조선일보는 이날 <충돌 점점 격화되는데 100일 훌쩍 넘긴 헌재 재판> 사설에서 헌재가 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이런 혼란을 종식시키려면 이제는 헌재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후 약 4개월 동안 우리 사회를 잠식한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줘야 한다”며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와 다른 결론을 원한 상당수 국민은 실망하고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견뎌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정치적 불투명성이 사회 균열과 경제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경고음이 이미 사방에서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 <줄탄핵 협박, 내란죄 고발…선고 지연에 이성 잃은 정치권>에서 “탄핵 찬반 시위대의 대립이 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야 정치권은 자중해야 할 텐데 오히려 더 나가고 있다”며 “자칫 갈등을 부추기다가 헌재 선고가 임박할수록 인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집회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이라도 빚어질 경우 정치권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전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탄핵 심판과 관련한 사설을 쓰지 않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촉구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헌재는 ‘망국적 헌정 위기’ 직시해야>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하염없이 미뤄지면서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으로 헌정을 파괴한 대통령이 넉달 가까이 국가원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또 다른 헌법질서의 파괴”라면서 “한덕수 권한대행도 망국적 사태를 막기 위해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즉시 임명해야 한다. 지난주 한 대행 탄핵심판 선고에서 헌재는 국회 선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게 위헌이라는 다수 의견을 내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 <파국 치닫는 정국, 한덕수가 마은혁 임명해 결자해지해야>에서 “현 상황에서 사태 수습의 책임은 전적으로 한 대행에게 있다. 헌재 결정 취지대로 마 후보자를 임명해 위헌적 상황을 해소하면 된다”고 전했다. 다만 경향신문은 “만약 국무위원 전원의 탄핵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무정부 상태가 되고 국가적 혼란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또한 과연 내란 극복을 위한 책임있는 자세인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31일 경향신문 사설.
최악의 산불에 진화 시스템은 후진적
지난 21일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을 시작으로 경남과 경북 지역에 퍼진 산불이 발생 열흘 만에 꺼진 가운데, 언론은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며 피해 규모가 막대하다고 전했다. 관련해 경향신문은 1면에 <75명 사상·주택3379채 전소…역대 최악 ‘산불 참사’>, 동아일보도 1면에 <불은 잡혔지만 냉바닥 쪽잠 청하는 5581명>, 한겨레 1면 <갈수록 커지는 산불 인력도 장비도 못 따라간다>, 한국일보 1면 <‘괴물 산불’ 예측하고도 당했다> 등의 기사를 배치해 이번 산불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 구조를 지적했다.
한겨레는 1면에 ‘최악 산불 무방비 한국’이라는 주제의 기획 기사를 배치, 후진적 진화 시스템을 살펴봤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이번 산불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대형 살수 헬기 부재, 낡은 장비, 고령의 진화 인력 등 진화 시스템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며 “또 시골 마을 고령층과 농촌 취약 계층이 큰 피해를 보게 돼 지역 불균형 문제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31일 한겨레 6면.
한국일보 역시 1면에 <괴물 산불 예측하고도 당했다>에서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연중화, 대형화에 대비하기 위해 산불 대응체계 강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까지 이행률은 낙제점에 가깝다”며 “더 문제는 산림청 등 재난당국이 기후변화에 따라 대형화·연중화하는 산불의 가공할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관님들, 불초 변방의 한 경제기자가 한 말씀 올립니다. 경제기자가 경제 기사나 열심히 쓰지 뭘 안다고 헌법재판에 관해 떠드느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이렇게라도 한 말씀 올리지 않으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저는 헌법재판이 정치재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간을 좀 보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쪽이라고요. 3월 14일로 기대됐던 선고일이 미뤄졌을 때에도 대충 이해했습니다.
21일을 넘기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재판 이후에 헌재의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뭐 그런 개떡 같은 논리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것도 참았고요. 그런데 28일까지 입을 꾹 닫고 있는 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가 정립한 자아고갈 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폭발 직전이에요. 인내심으로 치면 한 인내심 하는 저조차도 일상이 망가진 지가 너무 오래됐고요.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경제
그런데 헌법재판관님들, 그거 아십니까? 우리 같은 민중들은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들과 달라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도 응원봉 들고 노래 부르며 빠른 선고를 촉구하는 것 외에 달리 뭘 할 방도가 없어요.
하지만 경제는 다릅니다. 제가 이 칼럼의 제목을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라고 붙였는데, 여기서 인내심은 저의 인내심, 혹은 민중들의 인내심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인내심을 말하는 거라고요.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시지요? 복잡한 숫자를 말씀드리면 이해를 못 하실 테니 쉽게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최근 두 달 새 자영업자가 20만 명이 폐업을 했어요. 이게 다 윤석열의 내란으로 연말 특수를 날려버린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이라는 사실은 재판관님들도 아시겠지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헌법재판관 등이 2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5.02.25. ⓒ뉴시스
이게 어느 정도 큰 문제냐? 자영업자가 20만 명이 폐업을 하면요, 대충 그 가족까지 어림잡아 50만 명 정도가 생존의 기로에 섭니다. 50만 명이 어느 정도 숫자인지 감이 잘 안 오시나요? 시흥, 안양, 김해, 평택 같은 수도권 도시 하나가 날아가는 거예요. 지방으로 치면 목포, 경주 같은 도시 두 개가 한꺼번에 죽음의 위기에 빠진 꼴이고요.
일개 경제 기자가 이야기하니 심각성이 잘 안 느껴지실 것 같은데 정부의 공식 발표를 보자고요. 그린북이라는 게 있어요. 기획재정부가 매월 발간하는 경제 종합 보고서입니다. 미국 연준이 발간하는 정기 보고서가 ‘베이지북’이어서 이 책에도 비슷한 별명이 붙은 거죠.
이 그린북은 기재부가 발간하는 것이다 보니 자기 잘난 척을 엄청나게 합니다. 자기들이 운영하는 경제를 나쁘다고 표현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죠. 오죽하면 그린북이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라는 헛소리를 해댔겠냐고요.
그런데요, 내란 이후인 작년 12월 13일 그린북에서 14개월 만에 ‘경기 회복세’라는 표현이 사라졌어요. 그 자리를 ‘경기 하방 위험’이라는 표현이 대신했고요. 이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속된 말로 졸라 위험한 상황인 겁니다. 다른 책도 아니고 그린북이 이렇게 말하면 진짜 안 좋은 거거든요.
더 미뤄지면 호흡기 떼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기자이긴 하지만 저는 웬만해서는 경기 예측을 부정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어요. 보수언론의 “우리나라가 곧 망한다”는 호들갑이 민중들에게 어떤 협박으로 작용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2월 14일 발표된 그린북에 “내수 회복이 지연됐다”는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감이 잘 안 오시죠? 진짜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기재부가 이 사실을 그동안 결사적으로 부정했거든요.
사실 내수 부진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수많은 연구기관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줄기차게 경고한 거였어요. 그런데도 그린북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더라고요. 윤석열 정권이 뭘 잘못하고 있지 않다는 억지 주장을 편 거지요. 그러다가 2월에 마침내 그린북이 이를 인정한 겁니다.
3월 14일 발간된 그린북의 입장은 진짜 심각해졌어요. 내수 부진을 인정한 건 물론 ‘수출 증가세 둔화’라는 표현이 새로 추가됐거든요. 그린북에 수출 부진이 언급된 건 2023년 6월 이후 무려 21개월 만이어요.
윤석열 집권 이후 내수 부진은 오래된 일인데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 지표는 수출로 겨우 버티는 형국이었어요. 그런데 수출이 박살 났다니까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기재부 말이 그렇다고요. 제 경험상 그린북이 이 정도 표현을 한다면 한국 경제는 삐뽀삐뽀 상황인 겁니다.
헌법재판관님들의 시급한 선고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원래 내수는 소득과 소비심리의 2차 함수 문제여요. 이 정도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그 중 소득이라는 변수는 당장 어쩔 수가 없어요. 윤석열이 망쳐놓은 저소득 구조가 하루 이틀 만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소비심리는 다릅니다. 정치적 지형이 안정되면 미래에 대한 소비자들의 두려움이 줄어요. 당연히 지갑을 엽니다. 게다가 헌재의 선고가 나오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거잖아요? 설마 재판관님들이 탄핵을 기각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요.
그렇게 대선이 시작되면 어떤 후보건 자영업자들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어요. 거기 표가 얼만데요? 당연히 이런저런 공약들이 나올 겁니다. 지금 문제는 한덕수-최상목 듀오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자빠져 있다는 겁니다. 이러면 소비심리가 살아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대선이 빨리 시작돼야 한다고요. 저는 지금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지된 정부 기능에 파워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후보들이 너도나도 정책을 제시하는 그런 국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헌법재판관님들, 진짜 이러다가 경제가 골로 가는 수가 있습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어요. 하지만 지금부터 하루하루는 진짜 소중한 시간이에요. 두 달 동안 20만 명의 자영업자가 폐업을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루에 3,000명입니다. 1분에 두 명꼴로 개인사업자가 망하고 있다고요.
재판관님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 더 미루잖아요? 하루 3,000명, 가족까지 하루 7,000~8,000명이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려요. 제발 더 이상 한국 경제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한국 경제가 그런 인내심을 갖출 정도로 단단하지가 않다니까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전광훈 목사 주도 집회에 윤석열 지지자들이 참석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부근 미대사관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권우성
한 손엔 태극기, 다른 손엔 성조기를 들고 "탄핵 기각"을 외치는 시위대. 과연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지키려는 한미동맹에 가장 큰 상처를 낸 인물이 바로 윤석열이라는 사실을.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은 미국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했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였다. 조약 제2조는 위기 시 양국 협의를, 제3조는 공동 대응을, 제4조는 주한미군의 주둔 권리를 명확히 규정한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의를 생략한 건 동맹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중대한 배신이었다.미국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사전 통보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고,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이를 "위법이며 심한 오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며 충성을 맹세하던 윤석열의 돌발적 행동에 미국 정부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주한미군이 우리 정부와 상의 없이 북한을 상대로 독자적 작전을 벌였다면, 우리는 어떤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 감정을 떠올려 보면 바이든 정부의 당혹감이 이해될 것이다.
동맹도 예외 없는 미국의 정보 전략
▲미국 버지니아 랭글리에 위치한 CIA 본부 내부 모습.EPA/ 연합뉴스
한 국가의 정보 수집 능력은 그 나라의 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은 이 분야에서도 단연 압도적이다. 미국이 우리 정부와 청와대 주요 인사들을 도청해 왔다는 사실은 해제된 기밀문서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1976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청와대를 도청해 정보를 수집한 사건이다. 이는 '박동선 사건'으로 알려진 코리아게이트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2023년 4월 국가안보실 도청 사건이 있었다.
당시 미국 언론이 공개한 비밀문건에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을 논의한 대화가 상세히 담겨 있었다. 정보 출처는 '신호정보(SIGINT·시긴트)'로 명시돼 있었다. 미국이 전자감청을 통해 우리 외교·안보 수뇌부의 통신을 도청했다는 직접적 증거였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지난해 10월까지도 '위조 문서'라며 도청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미국 법원은 해당 기밀문서를 유출한 잭 테세이라 일병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문건이 실제 기밀이라는 점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미국의 정보 수집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공개된 위키리크스 문서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일본 아베 신조 총리까지 동맹국 정상들의 통신도 감청해 왔다. 정보의 세계에는 적과 동맹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정황이 여럿 있다. 폭로된 문서들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미 국무부 외교전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내부 논의, 북핵 대응 방침, 통일 시나리오까지 미국과 실시간으로 공유되거나 도청된 기록이 존재한다. 이것이 한미동맹의 또 다른 얼굴이다.
미국의 글로벌 정보 수집 체계
미국은 주한미군 정보부, CIA, NSA, 국방정보국(DIA)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한국 내 정보를 수집한다. 이 정보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에서 통합·분석되어 대통령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보고된다.
특히 미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운영하는 정보동맹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통해 전 세계 통신을 감청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 네트워크의 핵심은 NSA가 주도하는 '에셜론(ECHELON) 프로젝트'다.
에셜론은 1970년대부터 운영된 감청 시스템으로, 위성 통신, 해저 케이블, 인터넷 교환 지점을 통해 전화, 이메일, 인터넷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한다. 2013년 전직 NSA의 컴퓨터 전문가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그 실체가 확인됐다. 이 시스템은 키워드 검색과 음성 인식을 통해 특정 인물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NSA의 또 다른 프로그램인 '프리즘(PRISM)'은 인터넷 통신을 광범위하게 수집하며, 에셜론과 연계되어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특정 인물이나 기관을 표적 삼아 통신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다. 한국 내 주요 인사나 기관도 이 감시 대상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의 정보 활동과 결합될 경우, 미국은 한국 내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확보하게 된다.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후에도 개인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통화 내용이 도청에 취약했음을 보여준다. 설령 계엄 관련 내용은 비화폰을 사용했다 해도, 미국이 비상계엄 전후 한국 상황에 대해 언론 보도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고급 정보를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계엄 선포 이후, 추락한 한국의 신뢰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지정 관련 긴급 현안보고 및 질의에서 답변하고 있다.남소연
지난 1월, 바이든 정부는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 이는 국가 안보, 핵확산 방지, 테러 방지 등 전략적 우려가 있는 국가에 부여되는 분류다. 미국 에너지부는 구체적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 배경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점, 그로 인한 정치 불안, 그리고 국내 일각의 핵무장 논의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더는 믿을 수 없는 동맹'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 한국 정부 인사들은 트럼프 정부와 협의하면 쉽게 해제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 중에 유일하게 '민감국가'로 지정된 현실 자체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측도 '민감국가' 해제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미국 내에서 초당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신호다.
더 심각한 것은 외교적 배제다. 바이든 정부뿐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유력 인사들 역시 계엄 사태 이후 한국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번 달에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하와이, 괌, 필리핀, 일본을 방문했고, 국가정보국장 털시 개버드는 일본, 태국, 인도, 프랑스 등을 순방했지만 한국은 일정에서 빠졌다.
미국 정부는 "일정 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상은 명확하다. 동맹의 기본을 무시한 윤석열 정부를 더 이상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이라는 제도적 틀에 대한 신뢰와 윤석열이란 인물에 대한 불신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층이 윤석열과 결별해야 하는 이유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창문을 열고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는 한미 간 신뢰 체계를 무너뜨렸고, 미국이 동맹으로서의 한국을 재평가하게 만든 중대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극우 세력은 그의 복귀가 오히려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현실을 외면한 집단적 망상에 가깝다.
그들의 말대로 진정 '강한 동맹'을 원한다면, 오히려 윤석열과 결별해야 한다. 그가 직무에 복귀하면, 트럼프 정부, 나아가 미국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한국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과 그 가족, 나아가 국내 거주 미국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내용을 아무런 사전 조율 없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동맹국 지도자를 신뢰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보수우파라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정보기관은 윤석열의 계엄 시도에 대해 많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손으로 하늘을 모두 가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맹국 지도자가 신뢰를 저버린 상황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아무런 대가 없이 과거와 같은 관계로 돌아가 줄까?
"한덕수 총리가 4월 1일까지 마은혁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중대한 결심을 할 것이다. 한 총리와 최상목 부총리가 헌재 정상화를 막고 내란수괴 단죄를 방해, 국가를 위기로 내몬 죄는 매우 크고 무겁다." (30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마은혁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보류가 심각한 국헌문란 상태라고 판단하고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과 마은혁 헌재 재판관의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다." (28일, 국회의장실 보도자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경북 의성군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산불대피소를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2025.3.24. [국무총리실 배포] 시민언론 민들레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자의적, 정치적으로 거부하며 헌법재판소의 정상 가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와 국헌문란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헌재를 상대로 국회와 민주당이 최후통첩을 보냈다. 헌정질서 수호의 책임을 갖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과 헌재가 스스로 헌정질서 혼란을 유지하는 상황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박찬대 대표는 30일 "대한민국이 직면한 최대 위기는 헌정질서 붕괴 위기다. 한 총리와 최 부총리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라면서 4월 1일을 시한으로 최후의 행동 돌입을 공개 경고했다. 박 원내대표는 30일 국회 본청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 총리와 최 부총리를 상대로 "우리 헌정사에 이렇게 헌재 선고를 무시한 사례가 없다. 자신은 불복하면서 국민에게 헌법과 법률을 따르라 뻔뻔하게 말하는 한덕수, 최상목이야말로 대한민국 헌정질서 파괴의 주범"이라면서 이같이 경고했다. 이어 "그가 4월 1일까지 마은혁 재판관 임명이라는 헌법 수호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주어진 모든 권한을 다 행사하겠다"라고 못 박았다.
이날로 국회의 헌재 재판관 후보자 3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가결한 지 95일째, 헌재가 마은혁 임명 거부가 위헌이라고 선고한 지 32일째, 국무총리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복귀한 지 7일째. 박 원내대표는 권한대행 "한덕수의 마은혁 재판관 임명 거부는 철저하게 의도된 행위"라고 지적했다.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는 4월 18일까지 고의로 미룬 뒤 권한대행일 뿐인 그가 선출직 대통령의 몫인 재판관 2명을 임명,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을 만들려는 공작"이라는 것.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많은 시민들이 헌정위기의 조속한 종결을 요구해 온 지난 며칠 동안 한가하기 짝이 없는 국무총리실의 보도자료들. 헌법재판소가 "국회 의결 헌법재판관 임명부작위는 위헌"이라고 결정했음에도 의도적으로 딴전을 피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25.3.30. [국무총리실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박 원내대표는 이날 '중대 결심'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덕수에 대한 재탄핵 결의 및 최상목에 대한 탄핵 결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국회 안팎에서는 한, 최에 대한 쌍탄핵은 물론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승계할 차순위 국무위원들마저 임명부작위를 한다면 연쇄 탄핵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4월 1일까지 한 총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내용을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4월 18일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의 임기를 연장하는 법 개정 가능성이 논의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대 결심에는) 필요하면 법률 개정을 관철하는 행동도 포함돼 있다"라고 확인했다.
민주당은 31일부터 '4월 1~3일 본회의 개최'를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다. 야당이 이미 발의한 최 부총리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보고되면 24시간~72시간 안에 표결이 이뤄진다.
박 원내대표는 권한대행 한덕수가 쿠데타 수괴 전두환의 정권 찬탈을 도운 최규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럼에도 내란을 이어간다면 국민적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동석한 김민석 최고의원도 헌재 선고가 비정상적으로 늦어지는 현 상황을 "윤석열 복귀와 제2 계엄을 위한 총체적 지원작전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윤석열의 복귀는 계엄이 일상화되는 군사통치의 시작이겠지만 "대한민국은 눈 뜨고 당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헌재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기한 임시 지위 가처분 신청을 신속히 인용할 것"을 촉구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있다. 2024.12.14. 연합뉴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도 지난 28일 권한대행 한덕수의 마은혁 재판관 임명보류는 심각한 국헌문란이라는 판단에서 권한쟁의 심판과 마은혁 헌법재판관에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우 의장은 헌재가 권한대행들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미임명이 위헌, 위법이라고 잇달아 판단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럼에도 임명하지 않는 위헌상태가 장기화되는 것은 '중대한 상황'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헌재는 지난 2월 27일 국회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기획재정부장관 간의 권한쟁의 사건(2025헌라1)에서 헌재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결정으로 "마은혁 헌법재판관 미임명은 국회의 헌재 구성권을 침해한 위헌 행위"라고 판결했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2024.헌나9)에서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도 헌법재판관 미임명에 대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결정했었다. 이번 권한쟁의 심판 및 가처분 신청에는 (헌재가) 헌법재판관 9인의 온전한 상태에서 권한쟁의 심판뿐 아니라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등 국회가 당사자인 사건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는 취지가 추가됐다.
우 의장은 또 헌재를 상대로 "승계집행문 청구 및 국회법 제122조에 의한 대정부 서면질문 등 위헌 상태 해소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적극 강구하겠다"고 천명했다. '승계집행문'은 국회와 최상목 간 권한쟁의 판결의 효력이 한덕수 권한대행에 승계됨을 확인하는 절차로 민사집행법을 준용해 신청한 것.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5일 정부 서울 청사에서 방한한 마이크 던리비 미 알래스카 주지사와 환담하고 있다. 2025.3.25. 연합뉴스
민주당의 '쌍 탄핵' 추진 시사 및 헌법재판관 임기 연장을 위한 법률 개정 움직임, 또 국회의장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 및 가처분 신청은 그동안 헌법학계가 촉구해 왔던 행동이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역임한 황치연 한국법치진흥원장은 지난 26일 자 <시민언론 민들레> 기고문에서 "국무총리 한덕수가 국회의장 또는 국회의원들의 마은혁 재판관 즉시 임명 요구를 거부한다면 그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과 함께 권한쟁의 심판 및 재판관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당장 청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원장은 "피청구인 한덕수가 국회 권한 침해 또는 위헌 확인 결정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다면 "헌재 결정문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 (마 재판관이) 임명된 것으로 본다"고 결정하는 비상 입법 기능까지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28일 국무총리 한덕수와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에게 서면질문서를 각각 발송했다. 권한대행 한덕수에게는 △최상목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부작위가 위험임을 헌재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임명하지 않는 사유 △국무총리는 이러한 부작위 탓에 위헌상태가 계속되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마은혁 후보자를 미임명하는 위헌상태를 계속 방치할 계획인지, 또 위헌상태 해소를 위한 계획이 있는지와 있다면 어떤 구체적 일정과 내용인지 등 세 가지 질문을 보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27 [기획재정부 제공] 연합뉴스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에게는 △국회와 최상목 부총리 간 권한쟁의 사건(2025헌라1)에서 최상목의 마은혁 후보자 임명부작위가 국회의 헌재 구성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결정에 따른 처분의무가 한덕수 총리에게도 승계되는지 △한 총리의 임명부작위가 2025헌라1 결정 취지에 반해 국회 권한을 침해하는 위헌인지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2항은 부작위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인용 결정이 있으면 피청구인은 "결정 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바 한 총리의 임명부작위가 헌재법을 위반한 것인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일정에 대한 헌재의 입장은 무엇인지 등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국회의장과 민주당의 결정은 12.3 위헌, 위법 계엄령 탓에 시작된 헌정 중단 기간을 무작정 늘리고 있는 권한대행 한덕수와 최상목의 위헌, 위법 부작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 특히 헌정 위기를 방치하면서 산불 현장 방문 등의 민생행보로 딴전을 피고있는 권한대행 한덕수를 겨냥한 특단의 조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3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인간은 탐욕의 동물입니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는 정치인 암살과 테러,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독재자와 쿠데타 세력은 정적을 살해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선 경쟁자였던 조봉암 진보당수를 사형시켰습니다. 사법 살인이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을 군사재판에 회부해 사형시켰습니다. 사법 살인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대선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의원을 납치해 죽이려 했습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발표하고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8명을 사형시켰습니다. 사법 살인이었습니다.
1980년 5·18로 집권한 전두환도 김대중 전 의원을 내란죄로 체포해 사형시키려고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비로소 야만의 시대와 사법 살인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군인들이 물러난 공간을 법조인들이 채우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법조인은 과거를 재단하는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 결정하는 일을 잘합니다. 흑백논리나 선악 이분법에 빠지기 쉽습니다.
판사는 심판관입니다. 판사를 오래 하면 자신을 무오류의 심판자로 착각하고 남을 함부로 심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사는 칼잡이입니다. 승리욕이 강합니다. 검사를 오래 하면 다른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1996년 4월 11일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발탁했습니다. 1997년에는 대표로 발탁했습니다.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회창 대표는 법조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선 후보가 됐지만, 아들 병역 문제로 지지도가 추락했습니다. 다급한 그는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정치자금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던 이회창 후보는 정치자금을 범죄로 인식했습니다. 그가 뒷날 정리한 회고록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밤새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여러 가지 이해타산을 접고 내가 지녀온 한 가지 원칙, 즉 무엇이 정의인가를 가지고 결단하기로 했다. 자료대로라면 김대중 총재의 이러한 비자금 조성과 관리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정치판이라 해도 이러한 거짓과 위선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판단했다.”
이회창 후보 나름의 ‘정의로운 결단’은 김영삼 대통령이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수사 유보를 지시하면서 제압됐습니다. 그랬던 이회창 총재 자신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차에 실어 통째로 넘겨받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정의로운 결단’은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회창 후보의 디제이 비자금 사건 폭로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1996년 16대 총선부터 주로 보수 정당을 통해 국회에 쏟아져 들어온 법조인들은 정치에 자꾸 사법적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툭하면 검찰에 고소·고발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급속히 진행됐습니다. 그만큼 정치의 영역이 좁아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런 흐름에 올라타서 최정점에 다다른 사람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그는 반정치주의자입니다. 총선에서 참패하자 비상계엄을 선택했습니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으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얄팍한 법률 지식을 활용해 감옥에서 풀려났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기각·각하 결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전혀 없는 파렴치한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판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애초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항소심 재판부에 인신공격과 색깔론을 퍼부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입니다. 보수가 법원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자기 부정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3월 28일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파기자판’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도 3월 27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 29일 치 신문에 “대법원이 이 사건 직접 재판해 유·무죄 확정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어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파기자판이 뭘까요? 형사소송법 396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고 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에 그 소송 기록과 원심법원과 제1심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판결하기 충분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피고 사건에 대하여 직접 판결을 할 수 있다.”
1심과 2심은 사실심이고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입니다. 원심판결이 잘못됐다고 대법원이 판단하면 파기환송을 합니다. 파기자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무죄라고 대법원이 판단하면 상고를 기각하면 그만입니다. 유죄라고 판단하면 파기환송해서 재판을 다시 하도록 하면 됩니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의 파기자판 요구는 이재명 대표 유죄와 피선거권 박탈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이재명 대표의 조기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목숨을 끊어달라고 대법원에 청부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살인 청부입니다. 법치를 명분으로 주권재민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공할까요? 대법원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입니다. 주진우 의원은 검사 시절 ‘윤석열 사단’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비서관을 지냈습니다.
국민의힘에는 이들 이외에도 법조인 출신이 너무 많습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가 검사 출신입니다.
보수 정당을 장악한 법조인들의 가장 큰 폐해는 역시 정치의 사법화를 가속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왜 나쁜 것일까요? 민주주의를 무너뜨립니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런데도 이회창 총재는 검찰의 수사로 대선판을 뒤집어엎으려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국회를 해산하려고 했습니다.
미국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나라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몇 가지 신호를 찾아냈습니다.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라는 것이 책의 결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그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미리 내다보고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언론도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경고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항소심 무죄 선고 다음 날 아침 동아일보 사설은 “여야 ‘정치의 사법화’ 지양하고 국정 혼란 수습에 진력해야”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중앙일보도 그 다음 날 사설을 쓰면서 “여야, 상대방에 승복 요구하다 수틀리면 불복 행태” “갈등 조정 능력 잃은 정치의 사법화가 낳은 희비극”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텔레비전 영상 갈무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치의 사법화는 법조인 출신들이 법치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첫째, 국민 저항권 발동입니다. 우리는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2016∼2017년 촛불 혁명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법조인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면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그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둘째, 탈리오의 법칙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12·3 비상계엄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최대로 활용한 쿠데타였습니다.
국회는 야당이 다수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을 모두 탄핵소추 해서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없으면 국회가 법률을 마음대로 제정하고 국회의장이 법률을 공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바람직한 방안은 아닙니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신속히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는 것이 최선입니다.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헌재 인근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33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이 12·3 내란을 일으킨 지 117일째,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106일째,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된 지 33일째다. 헌재가 내란 수괴에 대한 파면 선고를 머뭇거리는 사이 윤 대통령은 법조 카르텔로부터 구속취소라는 전무후무한 특혜를 받고 사실상 '탈옥'했으며, 내란공범 혐의를 받는 한덕수 국무총리조차 그 사이 탄핵 기각으로 풀려나 다시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로 돌아갔다. 헌재는 한 달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란 세력들의 집권만 연장시켰다. 이에 100만 시민들이 헌재를 향해 "마지막 경고"라며 "윤석열을 즉시 파면하라"고 외쳤다. 그동안 광화문에서 투쟁해왔던 시민들은 주권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헌재 앞으로 총진군했다.
"기각이면 항쟁이다" "윤석열을 타도하자"
2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 안국역 1번 출구에서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주최한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33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가 주말 집회의 포문을 열었다. 촛불문화제에는 6만여 명(주최 쪽 추산)의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안국역에서 경복궁 동십자각까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졌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마지막 경고다,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기각이면 항쟁이다, 윤석열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헌재 인근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33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여는 발언에서 "지금 헌재는 위임된 권한을 권력처럼 행사하며 내란을 연장시키고 있다"며 "그러라고 준 권한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고 했다. 김 공동대표는 헌재를 향해 "지금 당신들이 석 달 넘게 만지작거리는 그 탄핵심판은 이미 국민들이 결론 내린 것"이라며 "당신들은 그 결론에 손을 대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헌재는) 헌법상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가 침해됐는지만 보면 된다"며 "주제 넘게 최종심판자 역할을 하지 말라"고 했다.
김 공동대표는 "우리 국민들은 항쟁준비를 끝냈다. 그 항쟁 대상이 될지 아닐지는 (헌재) 당신들이 결정하라"며 "그 시간은 지난 석 달처럼 길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공동대표는 김남주 시인의 '종과 주인'을 인용해 "낫놓고 ㄱ자(기역자)도 모른다고/주인이 종을 깔보자/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바로 그 낫으로"라며 "헌법을 무시하는 내란 세력 방치하면 그 낫을 들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12월 3일 이미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헌재 인근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33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에서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처음으로 촛불문화제 무대에서 발언했다. 강 의원은 "4월 18일 2명의 헌재 재판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친 척,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 끝까지 미루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누가 시키는 일인가. 내란 수괴 윤석열의 명을 따르는 건가"라고 했다. 이어 "내란 동조, 내란 가담이다. 우리는 그런 협박과 겁박에 우리 민주주의를 내놓을 수 없다"면서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강 의원은 "문형배·이미선·정계선·김형두·정형식·정정미·조한창·김복형 재판관 8인은 귀를 열고 들으라"며 "죽은 자들의 핏값으로 살려놓은 민주주의를 비겁하게 시간끌기로 도로 갖다 바칠 것인가. 대한민국 지옥으로 만들 것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뭉개고 있느냐"며 "국회는 국회의 권한을 총동원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월요일부터 매일 본회의를 열겠다. 윤석열과 '법꾸라지'가 우습게 아는 법이, 진짜 힘이 뭔지 우리가, 국회가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헌재 인근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33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가 발언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 씨는 "윤석열이야말로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는 파렴치한 반국가세력이라 생각한다. 반국가세력 윤석열과 국힘당을 처단하라"며 "헌재의 무기한 시한이 양심을 넘어서지 않길 국민 한 사람으로서 경고한다"고 외쳤다. 진영미 대구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미국은 자국 이해관계를 앞세워 윤석열 파면 여부와 시기 결정에 압력 넣는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가수 김원중 씨와 함께 소설 <소년이 온다>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무대에 올랐다. 김 씨는 "5·18 때 광주는 천대받고 서러웠다"며 "이 엄마같이 그런 일이 없도록 바란다"고 말했다. 가수 김원중 씨와 김길자 씨는 문재학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엄마 안 보고 싶었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일부 시민들의 슬픈 노랫말에 눈시울을 붉혔다. 김원중 씨 외에도 민중가요를 부르는 가수 최도은 씨 등이 무대에 올라 집회 열기를 올렸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헌재 인근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133차 전국집중 촛불문화제'에서 가수 김원중(오른쪽)씨와 소설 '소년이 온다'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무대에서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야5당 "헌재 무력화 간악한 시도 막는다"
오후 4시부터는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이 주최한 '야5당 공동 비상시국 대응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이어졌다. 범국민대회에서도 윤석열 탄핵 선고를 지연시키는 헌재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와 함께 국회 차원의 구체적인 대응책도 예고됐다.
한민수 민주당 의원은 "왜 헌재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을 외면하는가. 좌고우면 하지 말라"며 "오로지 윤석열에 대한 파면선고만이 이 대한민국의 일상을 되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한 의원은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당신들이 갖고 있는 권한은 당신들이 갖고 태어난 천부적 권한이 아닌 국민들이 맡긴 일시적 권한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당 박정현 의원도 헌재 재판관을 향해 "당신들이 두려워할 사람은 여기 광장에 모인 우리들"이라며 "8명의 재판관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할 일을 하라"고 촉구했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야5당 공동 비상시국 대응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국보법에 대한 8번의 합헌 결정, 군형법 92조의 6(성추행)에 대한 합법 결정, 통진당 해산결정 등 사회적 논란, 반발이 컸던 헌재 결정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동안 헌재 역할을 지켜줬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헌재가 헌법수호의 의무를 저버리고 헌법파괴 세력을 돕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국민 다수의 뜻 아닌 헌법 파괴세력 입맛대로 헌정질서 붕괴를 선택한다면 존재하게 할 이유가 있는가"며 "국민을 배반한 국가기관과 그 구성원은 심판받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과 내란 세력이 그대로 지켜보겠는가. 모든 힘을 동원해서 헌법재판소를 흔들 것"이라며 "만일 그런 (헌재가 6인 체제로 붕괴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한덕수 대행을 통해서 대통령 몫 2명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우리는 설마했던 상황을 계속 목도하고 있다"며 "대통령 권한 대행은 헌법재판관을 함부로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을 헌재법에 명시해서 저들의 간악한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야5당 공동 비상시국 대응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깃발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한 대표는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 5당은 이에 대해서 2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절대 임명할 수 없다. 둘째, 9인 헌법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헌재 재판관의 임기는 계속된다. 이 2가지 헌재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저들이 더 이상 헌정질서를 유린하지 않도록 이 2가지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 발언대로 헌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2명이 퇴임일인 4월 18일 이후에도 임기가 이어지므로 헌재가 시간 끌기로 공석을 만들어 스스로 무력화하는 상황은 차단된다. 또 마은혁 재판관까지 임명하면 최대 9인 체제 완전체로도 심판이 가능하게 된다. 다만 한덕수 권한대행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헌재법 개정을 앞두고 내란공범 내각을 전부 일괄 탄핵해서 국무회의를 사전에 무력화해야 한다는 방안이 나온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야5당 공동 비상시국 대응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100만 시민, 헌재 앞으로 총진군 "윤석열 파면"
이어서 오후 5시부터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는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이 열렸다. 범시민대행진에는 3주 연속 100만 명(주최 쪽 추산)이 참가했다. 시민들은 "선고 일정을 잡지 않는 당신들은 재판관이 맞는가"라며 "주권자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 "내란심판 지연하는 헌법재판소 규탄한다" "헌재는 윤석열을 지금 당장 파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재하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공동의장은 여는 발언에서 "헌재에 엄중하게 경고한다. 민심에는 한계가 있다. 경고가 누적되면 헌법재판소는 민심으로부터 퇴장될 것"이라며 "120년 전 나라 팔아먹고 대대손손 낙인찍힌 을사오적처럼, 내란세력에게 민주주의를 팔아먹은 2025년 을사오적이 되지 않길 헌재 재판관에게 강력히 경고한다"고 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서십자각 인근 차도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 참가자들로 채워져 있다. 2025.3.29. 연합뉴스
이어 김 공동의장은 "윤석열과 내란세력이 무엇을 노리는지 이제 선명해지고 있다. 헌재에서 기각이거나 아니면 4월 18일까지 질질 끌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수아비 한덕수를 내세워 윤석열과 김건희가 임기 말까지 대통령 놀음하고자 하는 게 저들의 의도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면서 "저들과 우리의 투쟁은 중간도 없고 타협도 없고 흥정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헌재를 대상으로 전면적인 총력 투쟁이 필요한 때"라며 "비상행동은 제4차 긴급행동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국회 앞, 남태령, 한남동에 이어 마지막 고비는 헌재 앞"이라며 "남은 힘을 기울여 헌재 앞으로 모여달라"고 했다. "헌재 앞을 제2의 남태령과 한남동으로 만들자"며 "우리는 강추위, 눈보라를 뚫고 남태령 넘고 한남동 넘어 승리를 쟁취했다. 헌재로 달려가 우리의 모든 것을 퍼붓자"고 외쳤다.
29일 서울 종로구 서십자각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연합뉴스
이승훈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비상행동은 4월 1일부터 2일까지 양일에 걸쳐 24시간 집중행동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3월 31일부터 4월 5일까지 4차 긴급집중행동 기간을 선포하고 서울시내 및 전국 주요거점에서 행진하며 주권자 의지를 모을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서명과 전국 방방곡곡 방송차 선전 캠페인을 통해 더 넓게 연결하고 더 강하게 연대할 것"이라며 "더 큰 민주주의 파도를 만들기 위해 국회 내외를 가리지 않고 제 정당들과 적극 협력할 것"고 했다.
이 공동운영위원장은 그러면서 헌재를 향해 "윤석열에게 악몽과도 같았던 비상계엄의 면허증을 다시 내어줄 것인지, 광장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봄을 선사할 것인지 판단과 책임은 오롯이 헌재의 몫"이라고 경고했다.
집회에서는 시민 자유 발언도 이어졌다. 대구에서 온 직장인 박다연 씨는 "경북은 불 타도 할 말 없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 동지들이 동성로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고 있다. 수많은 동지들이 대구 광장을 채운 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성별·장애·학력, 어떤 이유로든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며 "(차별하지 않는 세상이) 누군가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불에 타 죽어도 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파면하고 평등 세상 만들자"고 외쳤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한국노총 조합원 노유근 씨는 아들과 집회에 참가했다. 노 씨는 "예전의 저는 주말이면 아들과 캠핑 가거나 테니스를 치면서 시간 보냈다. 지금은 이 자리에 서 있다. 바로 이 자리가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켜온 이 자리,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미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며 "시민 여러분 목소리가 저를 이끌었듯, 저 또한 여러분께 힘이 되어 끝까지 꺾이지 않겠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직장인 최유정 씨는 "4월 초에 생일인데 생일쯤 되면 윤석열이 파면되고 대화주제가 대선으로 바뀐 비교적 평화로운 일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 주나 질질 끄는가"라며 "명백한 내란 수괴 선고에 긴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대체 뭐가 있는가. 이 지지부진한 내란으로 일상이 무너졌다"고 탄식했다. 최 씨는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다"면서도 "소중한 일상을 되찾고 영위하기 위해 광장에 (힘을) 쏟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라서 이길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교육노동자이자 해병대 예비역연대 명예회원이라고 소개한 김부미 씨는 "헌재 재판관들에게 묻는다. 12월 3일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던 것이냐"며 "당신들이 정시퇴근, 주말약속 지킬 때 사적 행복을 포기한 이 수많은 국민이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재판관들을 향해 "여러분들은 윤석열 한 개인을 벌하시는 게 아니라 파면으로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라며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들만 생각해주라"고 촉구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라"라고 외쳤다.
김경호 강남 향림교회 목사는 "도대체 헌재 재판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그들이 뭐라고 나라의 운명을 그들에게 맡겨야 한단 말인가. 온 국민이 생중계를 봤다. 이 뻔한 결론을 내리지 못해 나라를 정지 상태로 만든다는 말인가"라며 "헌재는 스스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윤석열을 파면하라"며 "제발 깨어 있어라. 검은 것을 희다고 억지부리지 마라. 역사의 범죄자가 되지 마라"고 했다.
29일 오후 서올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7차 범시민대행진'에 참가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이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고 있다. 2025.3.29. 사진 이호 작가
국회의원들도 무대에 올랐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헌재가 헌법 파괴자 윤석열을 단죄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이 나라가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님, 이제 결단하십시오. 김형두, 정경미 재판관님, 즉시 선고를 내리십시오. 김복형,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지 마십시오"라며, 일일이 재판관 이름을 부르면서 윤석열 파면을 촉구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연된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라며 "조국혁신당은 108배, 삼보일배 안 하겠다. 호소할 때가 아니다. 결단하고 행동할 때이다"라며 "국민이 부여한 국회 권한을 몽땅 다 싸그리 온몸을 던져서 행사하겠다"고 했다. 신 의원은 "한덕수 최상목 두 사람 동시에 즉각 탄핵하자. 내란 국무위원들도 원칙에 따라 모두 책임을 묻자"며 "비상입법 조치도 서둘러야 한다. 헌재가 선고 불능상태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자"고 외쳤다.
22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 참가자들이 집회를 마치고 행진하고 있다. 2025.3.22. 연합뉴스
이날 범시민대행진에는 포크음악가 연합, 민중가수연합, 가수 정태춘 등이 무대에 올라 민중가요 등을 부르며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 열기를 끌어올렸다.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연대투쟁가' '92년 장마, 종로에서' 등의 민중가요와 운동곡 등을 따라 불렀다. 일부 시민들은 투쟁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시민들은 본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에서 출발해 종로 1가~3가 일대를 돌아 안국역 헌재 인근을 둘러쌌다.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윤석열을 지금 당장 파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헌재를 압박했다. 시위대는 오후 8시 10분쯤 해산에 들어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집회를 마쳤다.
"별것 아니다."(It's not a big deal)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 국가'(Sensitive Country) 리스트에 올린 데 대해 조셉 윤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이렇게 논평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셉 윤은 1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미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의 한미 관계 발전 방향' 좌담회에서 이렇게 사안의 '중대성'을 축소하고 "마치 큰 문제인 것처럼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된 것이 유감"이라고까지 했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3.18 연합뉴스
조셉 윤 "민감 국가 별것 아냐"
야당·언론 침소봉대 불만 토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 1월 굳이 동맹국인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것을 두고 윤석열 정권의 무모한 핵무장론과 불법 계엄령 선포를 그 주된 이유로 지목한 한국의 야당과 언론이 사안을 '침소봉대'한다는 식으로 불만을 드러낸 모양새다.
좌담회에서 밝힌 조셉 윤의 설명을 종합하면 △ 민감 국가 리스트는 에너지부 연구소에 국한돼 있고 △ 에너지부 산하 여러 연구소에 많은 한국인(작년 2000명 상회)이 방문하며 △ 한국의 리스트 등재는 일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취급 부주의, 즉 연구소 외부로 유출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셉 윤은 "언론에서는 이를 (한국) 정책 때문이고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협력)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는 데 틀렸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한미가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을 (1월) 체결했다"며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별일이 아닌 만큼 양국 간 원자력 등 첨단 기술 협력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문제와 관련 현안질의 등을 위해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안경을 쓰고 있다. 2025.3.24 연합뉴스
조태열 "기술 보안 문제라는 답,
내가 한 말 아닌 미국이 한 말"
이는 전날인 17일 외교부가 늦은 저녁에 기자단에 보낸 '공지'의 내용과 같다. 외교부는 공지를 통해 미국 측과 접촉한 결과 "외교정책 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조셉 윤이 외교부에 얘기해줬다는 뜻이다. 실제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긴급 현안보고 답변에서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미국이 한 말이다. (미국이) 기술 보안 문제라고 답을 했다"라고 털어놨다.
미 국무부 본부의 답변은 주한미대사관의 조셉 윤의 설명과는 사뭇 뉘앙스가 다르다. 태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한국의 민감 국가 리스트 등재 이유를 묻자 "에너지부가 지정한 것이므로 에너지부에 문의해달라"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그리곤 "미국은 과학적 연구 협력에서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라거나 "한국과 견고한 과학적 연구 분야에 대한 협력이 계속되길 고대한다"라는 등의 원론적 언급을 하는 데 그쳤다.
미국 에너지부(DOG) 감사관실이 미 의회에 보낸 반기보고서. 2025. 03. 17. 연합뉴스
미 국무부 본부 '원론적' 답변
야 의원들, 국회서 집중 추궁
조셉 윤과 외교부가 각각 "민감한 정보 취급 부주의"와 "보안 관련 문제"라면서 별것 아니라고 치부했지만, 사안은 자못 심각하다. 미국이 이날 공개한 에너지부 감사관실(OIG)의 반기보고서 중 해당 사안을 요약하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한 도급업체 직원이 수출통제 대상인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정보를 한국으로 빼돌리려다 적발됐고, 미 수사기관들은 '외국(한국) 정부'와 소통 사실 확인하고 수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기간이 2023년 10월 1일부터 2024년 3월 31일 사이라는 점에서 정확하게 한국의 윤석열 정부를 가리킨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국의 "합동 수사" 대상이 단순히 기술적, 보안 관련 문제라고 우기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이에 24일 국회 외통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야당 의원들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의문점들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27일 오후 주한미국대사관 앞 광화문 광장에서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파면 결정을 요구하는 시민총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5. 03. 27. 시민언론 민들레
"한국의 핵개발 경계하던 차,
핵 보안 사고를 계기로 결정"
민주당 위성락 의원은 "의문은 단순 보안 문제라면 개개인을 처벌하면 되지, 왜 동맹인 한국이란 나라를 민감 국가로 지정했는지다"라고 말했다. 위 의원은 민감 국가 지정 이면에 "한국은 핵개발 추진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나라"라는 미국의 인식이 깔려 있다고 봤다. 한국은 과거 핵 개발 문제로 미국의 지적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핵물질 추출 전력이 있을 뿐 아니라, 여당 지도자들에 이어 대통령까지 핵무장론을 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 의원은 "이번에 발생한 보안 사고도 핵과 관련이 있다. 핵 관련 정보다"라면서 "미국으로선 한국의 핵개발 가능성에 경계심을 갖던 차에 핵 관련 보안 사고 등을 계기로 (민감 국가 지정을) 결정하게 됐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국당의 김준형 의원은 외교부가 미국 말만 옮기면서도 핵무장은 아니라는 단 한 가지만 너무 확신한다면서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핵무장 때문이라고 보면 증거와 근거는 차고 넘친다"면서 윤 대통령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핵 관련 발언을 할 때마다 바이든과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그 즉시 '쐐기'를 박은 사례들을 열거했다.
특히 외교부와의 협의를 통해 핵무장론을 폈던 한국계 수미 테리가 작년 7월 기소된 것과 관련해 김 의원은 "수미 테리 조사는 11년간 지속했는데, 왜 저 시점에 얘기했을까. 핵무장에 대한 미국의 경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이 1월의 민감 국가 지정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문제와 관련 현안질의 등을 위해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재정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2025.3.24 연합뉴스
'민감 국가' 관련 보안 강화한
미 국방수권법 4월 15일 발효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에너지부 산하 국가 안보 연구소들에 대한 '민감 국가' 관련 보안 강화를 담은 2025 회계연도 미국 국방수권법(NDAA)이 작년 12월 18일 미 의회를 통과한 사실을 소개한 뒤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고, 자체 핵무장을 계속 주장하는 국가원수가 있는 대한민국이었다면 그 어떤 방식의 제재를 받았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태열 장관은 "꼭 국방수권법의 규정이 한국을 타깃으로 해서 들어간 것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면서도 "무겁게 보고 있다.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4월 15일 발효되는 개정 국방수권법에 따르면, 민감 국가 출신 외국인 방문자의 접근이 제한되는 시설은 핵무기 생산·연구, 관련 기술을 보유한 에너지부 산하 17개 국가안보연구소, 미 해군 함정의 원자력 추진력 관련 기술, 물질 관리 시설 등이다. 다만 에너지부 장관이나 국가핵안보국 수장(개정법에 추가)이 해당 개인에 사전 신원조사를 완료한 경우는 예외다.
김준형 의원이 입수한 2022년 에너지부 행정명령의 최소 규정을 보면, 민감 국가 출신 연구자는 특정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 불가, 특정 기술·정보 접근 금지, 일부 계약 및 협력연구 배제, 과거 10년간 상세한 경력, 정보 제출 및 방문자 사전 승인 등의 '제약'을 받게 된다. 김 의원은 25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에너지부 산하에 17개의 국립연구소가 있는데 그중에 한국이 지금 참여하고 있는 게 14개다. 조셉 윤이 직접 얘기했듯이 작년에 여기에 방문한 한국인만 2,000명이다. 다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안이 이렇게 중대한데도 조셉 윤이 지정의 주된 이유로 윤 정권의 핵무장론을 거론하지 않고 단순한 '기술적 보안 문제'로 축소하는 배경에 의구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미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실험용 원자로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YS 때 비핵화 선언한 다음에
미국, 한국 민감 국가서 해제
이와 관련해 위성락, 김준형 의원은 1970년대 박정희의 핵개발 시도 때도 미국이 민감 국가 지정 사유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미국이 진짜 사유는 숨기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이들은 봤다.
위 의원이 공개한 1993년 12월 9~10일 제1차 한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 관련 외교문서에는 "민감국가로 지정되는 여러 이유들이 나열되어 있으나, 어떤 이유로 지정되었는지가 불분명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아국(한국)이 포함된 것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70년대 아국의 핵정책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임을 감안, 아국이 비핵화 선언을 통해 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핵연료 재처리 및 농축시설 보유를 포기한 점을 설명"했고, 지정 해제를 요청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자 10여 년간 지정 사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던 미국은 민감국가 리스트 등재가 핵 관련 문제임을 인정하고 비로소 해제에 응했다는 게 위 의원의 설명이다.
위 의원은 "미국이 보안 사고다. 특별히 협력에 큰 제약이 없다고 말하는 건 한국을 무마하고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외교(적 수사)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도 "(조태열 장관이) 한미 협력에 제한이 없다는데, 뭐 하려고 심각하게 대응하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가세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한승주 외무장관(1993년 2월~1994년 12월)은 "이 문제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우린 핵무장에 뜻이 없고 비핵화를 약속함으로써 6개월 만에 (민감 국가에서) 해제된다"고 지적하고 "(조태열) 외교장관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얘기하고 비핵화를 확정하는 게 리스트에서 빠지는 가장 첩경이다"라고 조언했다.
문제는 윤 정권의 핵무장론이 민감 국가 지정의 주된 사유인 게 거의 확실한데도, 조셉 윤이 무슨 의도로든 그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다른 부작용을 촉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감 국가 지정의 원인이었던 윤 정권에게 면죄부를 줄 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직 파면 시 뒤이을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주자들이 핵무장론을 계속 펴도록 부추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 경우 민감 국가 지정 해제 가능성은 그만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김 의원은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핵무장을 계속 주장하려고 (민감 국가 지정 이유가) 핵무장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머지않아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큰 시점에 조셉 윤이 민감 국가 지정 사유가 "별 것 아니다"라고 일축한 것은 윤 정권의 핵무장론을 문제 삼을 경우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후보들에게 반사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는 조셉 윤으로 추정되는 '가장 가까운 국가의 대사급 인물'이 헌재의 윤석열 탄핵 선고 지연 분위기를 조성하고 '윤석열-이재명 동반 아웃'을 희망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는 최근 민주당 박선원 의원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5.03.29. 08:13:03 최종수정 2025.03.29. 08:50:34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 사태에서 주목받는 보수 논객 두 명이 있다. 조갑제와 정규재다. 한 명은 '이념 보수', 다른 한 명은 '시장 보수'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석열의 내란은 이념 보수에게도, 시장 보수에게도 천시받고 있다.
조갑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조선일보 '전통 반공'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정규재는 재벌 대기업이 주인인 한국경제신문 주필 출신이다.
조갑제는 90년대 후반 조선일보에 박정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연재했고, 월간조선 편집장·대표(1991년~2005년)를 지내면서 조선일보의 '이승복 조작 보도' 의혹에 대한 반박 기사를 냈다. 민완 기자로 이름을 떨친 기자 조갑제는 90년대 북핵 위기를 거치면서 반공주의에 천착했다. '조갑제=월간조선' 시절 '김대중 사상 검증'은 유명했다.
2005년 "친일(親日)보다 더 나쁜 건 친북(親北)"이라고 주장했다가 월간조선에서 경질된 후엔 서정갑 등 '반미주의자(?) 노무현'에 저항하던 '아스팔트 우파' 투사들과 결합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 조갑제는 노무현이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고 한미FTA를 추진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조갑제는 '정통파(?)' 반공 보수다. 그러면서도 '팩트'를 신성시하는 반음모론자다. 김정일을 '민족 반역자'로 규정한 그는 어쩜 민족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활개친 전향 운동권 출신 극우주의자들인 뉴라이트 세력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기자 조갑제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반공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며 일부 뉴라이트나 극우 세력의 '북한군 5.18투입설'엔 팩트 자체가 틀렸다며 경기를 일으킨다. 식민지근대화론 등 식민사관에 대해서도 꽤나 비판적이다.
그 조갑제는 윤석열의 12.3비상계엄을 인정할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면서 경제지들은 자수성가한 대기업 CEO 출신의 등장에 열광했다. 이념 반공의 시대가 저물면서 보수는 여러 갈래로 분화했다. 특히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보수 논객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정규재는 눈에 띠는 인물이었다.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해 경제부장, 편집국 부국장, 논설실장 등을 지내며 칼럼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칼럼은 독설로 가득했고, 자유 시장 경제에 반하는 세력이라고 판단되면 누구든 차가운 도마에 올렸다. 2012년 12월 31일자 한국경제 칼럼에서 그는 "공정사회나 동반성장론의 폐해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유시장 위에 길드 사회주의를 심으려는 아주 오래된, 그리고 허망한 발상"이라고 비난했고, "박근혜 신정부의 국민행복론이나 경제민주화도 좌편향 이념"이라며 "행복은 국민의 자유권으로 선포된 것이다. 이 자유권을 정부의 의무요 국민의 청구권이라고 뒤집어 생각한다면 이는 국가주의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2011년 11월 14일 칼럼에서 그는 "다양한 복지 정책들은 국가에 대한 대중의 청구서요 국가가 대중에게 살포하는 뇌물이다"라고 주장한다. '자유 지상주의자'처럼 보이는 그는 국가의 시장 개입 시도 자체를 불경한 것으로 본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조폭 경제학"이라고 비난하고 전광훈류의 윤석열 구명운동에 대해 "종말론적"이라고 독설을 쏟아낸다. 국정농단 수사를 두고서는 "반재벌 프레임의 광기에 사로잡힌 검사들"이 기업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단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정규재가 이재명의 '말'을 선거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기업인의 '투자 실패'까지 업무상 배임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관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정규재는 윤석열의 계엄을 "시장자유와 정면에서 충돌"한다고 말한다.
조갑제의 보수는 체제 위기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의 산물이다. 북한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우리의 머리에 내재된 무의식과 같은 것이다. 정규재의 보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순수한 형태에 가깝다. 인간성이 거세된 경제적 자유 역시 우리 머리 속 한편에 내재된 무의식을 대변한다. 이들은 좋든 싫든 대한민국이라는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두려움이요, 욕망이다. 그들의 논리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그들과 병존하는 세상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리고 한국의 진보 세력과 리버럴 세력은 그들과 부딪히고 토론하며 최소한의 '룰'안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치 게임을 이끌어왔다.
이들이 중시하는 건 체제와 자유다. 보수의 특질이다. 그 두가지를, 윤석열의 계엄이 박살냈다. 조갑제와 정규재와 같은 보수 이데올로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무슨 변절이니, 진영이니 하는 말은 전부 거추장스런 것들이다.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그리고 그의 전신이었던 정당들)은 한때, 이 두 보수 세력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전광훈류 사이비 보수의 광신도가 되어 윤석열의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저지하려 광장에서 폭력을 부추긴다. 보수 진영 내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영혼이 빠져나간 국민의힘은 보수의 가치를 팽개친 채 그들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전광훈은 과거 개척시대 미국의 복음주의 부흥운동가를 연상시킨다. 영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복음주의 운동가(목사)들은 스스로 학식 없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종교 버전인 이런 문화는 미국을 지금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원동력 중 하나였을지 모르지만, 트럼프 시대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반지성주의' 병폐의 원인 중 하나로로 꼽힌다.
전광훈과 같은 자는 철지난 전근대의 복음주의적 종교 부흥회를 21세기 한국 정치에 접목시켜 '반지성주의'를 보수에 이식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반공 보수와 시장주의 보수마저 '배신자'로 규정하고 체제 전복을 선동하며 '국민 저항권'을 운운하는 '진격의 거인'이 되어버렸다. 윤석열은 그 괴물 위에 올라탄 망상가 돈키호테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섬 하나(바리타리아)를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말에 혹해 돈키호테를 모시며 따라다니는 좀 모자란 종자 산초다.
차라리 조갑제, 정규재와 반공, 신자유주의를 두고 논쟁했던 과거가 더 좋았다. 그들은 최소한 반지성주의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광훈.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