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국가 테러의 미궁

 

양돌규

 

 

스필버그의 메세지는 단순하다. 테러주의에 대한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을 뿐이고 이러한 악순환은 테러의 종식에 있어 근본적 비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메시지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진부하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스필버그와 헐리웃의 반테러 전쟁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이 꽤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보일지라도 사실상 힘의 불균등성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다? 이것이 누가 누구에게 던지는 말이냐에 따라 그 정치적 효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노무현이 죽창을 든 농민 시위대에게 말한다면 그건 생존권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라는 것이고, 부시가 이라크와 아랍 민중들에게 던질 때 그건 일체의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감독 스필버그가 서 있는 입장은 어디인가가 중요해진다. 그는 영화 내적으로는 이스라엘 모사드의 한 요원을 따라가지만 영화의 바깥에서는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는 미군의 입장에서 뮌헨을 9/11처럼 바라본다. 그들은 직접 전투의 현장에서 날아다니는 총탄 앞에 목숨을 걸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애국심과 사명감이 있다. 조국과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있다. 그것이 그들을 전장에 나서게 한 힘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고귀한 명분이었더라도 동료 요원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뭔가 알 수 없는 첩보전의 와중에서는 애초의 사명 같은 건 실종되고 엄습하는 불안감에 몸을 떨 뿐이다. 스필버그가 서 있는 위치는 정확히 여긴데, 그럴 때 폭력의 악순환은 정말 현실적으로 다가오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이면 현실적일 수록 빠져나갈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미궁을 헤매면 헤맬 수록 더욱 깊숙이 빠질 뿐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영화는 반테러 전쟁 속의 인간이 겪는 고통과 불안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의 성취는 딱 여기까지다.


다시 말하지만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라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말이 간과하고 심지어 은폐하기도 하는 힘의 불균등한 현실이 있다. 지배자들이 행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을 또 다른 폭력으로 몰아 버리는 폭력/카운터 폭력의 구도에 나는 찬성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다 같은 폭력일 뿐이라고 보지 않는다. 더구나 그 악'순환'이라는 말에도 동감할 수 없다. 광주 시민군의 총과 80년대 내내 포도에 날아다녔던 돌멩이와 몰로토프 칵테일 없이 1987년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극단적 평화주의의 이념은 시대 초월적일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싸움의 어느 쪽에 서 있는가에 따라 그 전투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뮌헨은 모사드라는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 기관의 요원들이 시달리는 불안감, 죄책감을 잘 보여줬다. 그건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제3세계 민중을 학살한 미군들이 귀국 후 겪은 전쟁 신드롬과 다르지 않다. 그건 국가가 공인한 합법적 범죄 행위자들이 겪는 정신병일 따름이다. 연안가를 부르며 설산대하를 건너 대장정을 마친 나이 어린 홍군들이나 호치민 루트를 따라 해방 전쟁에 참가한 베트남의 전사들과는 다르다. 

 

결국 뮌헨은 포스트 911 이후 미국 사회가 겪는 분열증과 정신적 패닉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대테러전쟁이라는 이름의 국가 테러에 전적으로 찬동할 수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미국의 영화일 뿐이다. 쉰들러가 살려낸 유태인들에게는 돌아갈 가나안의 땅이 있었겠지만 뮌헨에서의 모사드 요원에게는 맨해튼의 국제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건너다 보이는 브루클린 말고는 갈 곳이 없으며, 그마저도 무너져내린 911 이후 스필버그에게는 전 지구가 뮌헨이다. 

 

스필버그는 정말 뮌헨에서 길을 잃고 미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건 미국인의 미궁이다. 딱하긴 하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 불쾌함은 팔루자에서 학살 당한 이라크 민중 앞에서, 장벽이 세워진 가자 지구에서 돌멩이를 집어든 팔레스타인 소년 앞에서, 그가 되뇌이는 '우리도 괴롭다'는 호소 때문이다. 정말 그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원한다면 지구 행성 65억 인류의 편에 단호하게 설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입을 닥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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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14:35 2006/11/07 14:35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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