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보이는 창 46호 2005년 9, 10월호

 

짝퉁의 힘, 분황사 모전석탑 


이분법은 만물을 분류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에 가장 강력하다. 사람들은 상습적으로 묻는다. “진짜야?” 진짜는 중요하다. 왜 중요한지를 묻는 것조차 의아해할 정도로 진짜는 중요하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묻고 재차 묻고 삼차 묻는다. “가짜 아니야?” 질문들이 던져지면 진위의 이분법 하에 이편과 저편으로 선명하게 갈라서는 대답들이 도열한다. 진짜의 편에 원조와 최초가 나란히 서면 가짜의 편에 모조와 짝퉁이 마주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편과 저편은 대등하지 않다. 진짜의 우월함은 기본 전제다. 이분법은 처음부터 불공정거래 또는 불평등조약이다. 그리하여 우월적 진짜 앞에 가짜는 주눅든다.

 


여기 이분법을 무너뜨리며 우뚝 솟은 탑 하나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 뜻풀이가 필요하다. 모전석탑(模塼石塔), 벽돌을 모방해 만든 석탑이렷다. 전탑처럼 쌓은 석탑인 셈인데, 돌로 만든 벽돌 탑이라고 해도 맞다. 전탑과 석탑 그 사이, 이분법의 경계에 분황사 모전석탑이 홀로 서 있다. 경계에 선 모든 존재는 외로워 보이나 동시에 우뚝한 힘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분법의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모전석탑은 돌을 다듬어 벽돌처럼 만들고―모전(模塼)―그것을 층층이 쌓아 세우는 탑을 말한다. 전탑, 목탑, 석탑.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전탑의 나라로 불리는 중국은 벽돌로 탑을 쌓았다. 진흙이 많았던 까닭이다. 반면 일본은 벽돌을 구울 적당한 흙이 부족한 대신 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목탑이 주 종목이다. 한국은 이른바 석탑의 나라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탑, 그러니까 다보탑, 석가탑, 감은사 탑 같은 것들은 석공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화강암을 쪼아 만들었다. 화강암은 단단해서 다듬기가 쉽지 않다. 공든 탑 중에서도 공든 탑은 석탑이다.

 

그런데 모전석탑 한 기를 세우려면 석탑보다 훨씬 공들여야 한다. 틀에 진흙을 넣고 구워내 만든 벽돌은 하나하나 만들기에는 비교적 어렵지 않다. 반면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는 일은 일반적인 석탑의 재료를 다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전형적인 삼층석탑 하나가 몇 개의 부재를 맞춰서 세우는 것에 반해 모전석탑은 수천 개의 돌을 벽돌 모양으로 쪼아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21세기에 사는 당신에게 망치와 정을 쥐어주고 돌 하나를 던져주며 “벽돌 한 개만 만들어 봐” 한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불공드리는 마음이 아니라면 삼복더위에 졸도할 일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을 세운 석공은 득도할 정도의 공력을 돌 하나하나에 쏟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인 분황사 모전석탑.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그 탑은 그런데 왜 그때까지 늘 만들던 방식대로 탑을 세우지 않고, 그러니까 전탑이나 목탑 같은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세운 것일까?

 

네이버를 뒤지건 고미술사 논문을 뒤지건 모전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한 과도기적 양식이라고 한다. 맞다. 하지만 그건 사후적인 평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분황사 모전석탑을 세웠을까?

 

당시 신라의 왕은 선덕이었다. 여왕 선덕에 이르러 백제가 침공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기도 하고 고구려가 위협을 하기도 했으며 내부적으로도 도전을 받았다. 선덕은 중국에 가 있던 자장율사를 불러들여 대책을 강구했다. 비장의 승부수가 던져졌다. 분황사 창건이 그것이었다. 선덕은 분황사에 올인 했다. 분황사 탑이 세워진 후 불심의 덕을 보았던 것인지 백제군이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는 선덕여왕의 힘이요, 부처님의 힘이라고 여겨졌다. 프로파간다의 힘이다. 요컨대 분황사 모전석탑은 당시의 대내외적 정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선덕여왕의 타개책이었다는 설명이 되겠다. 이 역시 맞다.

 

다시 문제는 왜 하필이면 모전석탑이었느냐는 것이다. 왜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의 탑을 세웠느냐는 것이다. 모험이다. 그것도 위험한 모험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덕의 정치적 모험은 신라 탑의 양식사적 모험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여자가 왕이라니, 여자가 어떻게 왕이 된단 말인가, 라고 신라 귀족들은 탄식했을 터이다. 개명천지한 21세기에도 여자 대통령 없는 세상에, 역사적으로도 수천 년 동안 여왕이 단 세 명이었던 나라에서, 경천동지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여자 왕 선덕. 그것은 시대의 기운을 바꿔놓는 일대 사건이라 할만했다. 지배계층이 동요했고 주변국도 요동했다. 상대등 비담이나 염종 같은 이들이 호시탐탐 권좌를 넘봤고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 땅으로 짓쳐들어오곤 했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병사들을 청했지만 당태종 또한 남자인지라 여자가 어찌 왕 노릇을 하느냐 조롱에 찬 독설을 뱉어냈다.

 

무릇 이분법이란 음험하다. 남자가 왕이 되어 다스려야 살림이 편안하다는 법도의 배면엔 여자란 그저 밥을 지어 사내에게 거안제미해야 한다는 음험함이 똬리를 틀고 있기 마련이다. 구습은 선덕을 겨냥했고 내외의 적이 선덕을 위협했다.

 

선덕의 정치적 승부수는 배짱 좋게 던져졌다. 김유신을 중히 써 무력을 손에 쥐게 하고 김춘추로 하여금 외교를 전담하게 했다. 능수능란한 선전술도 한몫했다. 백제군이 쳐들어왔던 밤, 선덕의 꿈에 개구리들이 요란하게 울자 급히 잠에서 깨어 개구리가 울었던 곳에 군사를 보내 적을 격퇴했다고 한다. 물론 선덕의 ‘구라’다.

 

구라가 효과를 발휘할 때 그건 더 이상 구라가 아니다. 재능이며 총기이다. 한 시대의 순환이 마감된다는 것은 그때까지 통용되던 질서와 믿음이 붕괴하며 새로운 기운이 충만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덕의 시대는 새로운 운(運)과 명(命)이 혁(革)하는, 말 그대로 혁명의 시대가 아니었겠는가. 그 시대 아우라의 미술사적 귀결이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서라벌 어디서든 보일 수 있도록 높게 새로운 양식의 석탑을 세움으로써 선덕은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걸 말하고자 했었을 터이다. 선덕의 정치적 모험이 신라 탑의 양식사적 모험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 진짜와 가짜의 이분법이 무너지면 짝퉁은 다른 이름을 얻게 된다. 독창성. 여왕의 독창성과 모전석탑의 독창성이 교호한다. 더 이상 여왕을 부정하는 반역은 성공할 수 없고 진압된다. 더 이상 모전석탑은 전탑을 모방한 것이 아니게 되고 그 자체 독특한 양식으로 튼튼하게 선다.

 

이분법의 잣대로 모전석탑이 ‘전탑의 짝퉁’에 불과하다는 시각은 모전석탑의 미술사적인 혁명성을 몰각하는 것이다. 이분법이 보지 못하는 지점, 즉 맹점은 새로움을 몰각한다는 것에 있다. 모전석탑의 새로움은 맹점을 부수고 시대의 한계를 돌파했다.

 

분황사 모전석탑 앞에 서면 나는 짝퉁의 힘, 아니 시대의 독창성을 빚어낸 그들의 반역적 힘에 안온함을 느낀다. 변화에 대한 믿음이 역설적으로 천 년을 끄떡 않고 버텨낸 탑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변화의 영원성에 대한 미술사적 증거로 분황사 모전석탑 만한 것도 없다. 모든 변화는 기존의 것을 전복하고 새로운 것, 독창적인 것을 빚어낼 때 가능한 것이다.

 

사람도 탑과 같다. 사람은 무릇 다 다르다. 다만 다 다른 자신을 긍정하고 정을 치고 모를 다듬어 새로운 탑, 자신만의 탑을 세우느냐 아니면 기성품과 복제품으로 수렴되어 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상에 자신을 맞춰서는 안 된다. 기성품으로 살면 안 된다.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해도 새로운 인간들의 출현은 어렵고도 드문 일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이 들려주는 천 년 세월의 이야기는 한 시대의 극한을 어떻게 건널 것인지에 관한 혁명가 같은 탑 하나의 무용담이다. 그 무용담에 흠뻑 젖어 삼복더위 끈적한 여름을 건너는 건 어떠하랴. 아니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는 건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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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6 14:12 2007/04/06 14:12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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