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도착한 날은 2007년 4월 20일이었다. 오늘이 5월 19일이니 꼬박 한 달 가량이 지났다. 불로그에 '울산 Diary'라는 폴더를 만들고서 지금껏 단 한 편의 글을 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고 하기에는 그다지 진행된 일이 없고, 한가하게 놀았다고 하기에는 딱히 재미나게 논 것도 없어 억울하다.

 

 

좀 더 꼬박꼬박 올릴 것을 다짐하면서 지난 한 달의 여백을 메워야겠다.

 

 

 

 

울산에 내려오던 날, 서울에서는 봄비가 한창 내리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울산행 버스는 고작 10여 명의 승객만 있었다. 남쪽을 향해 달렸던 것이 버스였을까 아니면 먹구름이었을까. 울산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 도착했을 때 남구 삼산동 지역본부 위 하늘에도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옛날, 그러니까 내가 울산에 내려왔던 1992년도에는 이 남구 삼산동 일대는 그저 빈 들판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1998년인가 현대자동차 성과급 투쟁 즈음에 울산을 방문했던 때에도, 그러니까 터미널과 울산역이 모두 이 일대로 이전한 이후에도 이 일대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삼산동은 울산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곳 중 하나이다. 밤이 되면 삼산동 일대 유흥가에는 취객들로 넘쳐나고 주로 20~30대의 인파로 뒤덮인다. 그 삼산동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아파트 단지 사이에 울산지역본부가 있다.

 

 

 

 

울산지역본부 건물은 울산광역시의 시유지에 지어진 가건물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은 거개가 각 지자체의 땅 혹은 건물에 위치하거나 근로자복지회관 등에 있다.

 

 

이 건물에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만이 아니라 금속노조 울산지부, 공공노조, 화물운수노조 등이 있다. 하지만 공간이 비좁아 뒷편과 주차장 앞에 컨테이너 5대가 들어서 있고 거기에 효성해복투, 금속노조 법률원, 공무원노조 울산지부가 입주해 있다.

 

 

2007년 올해 울산지역본부는 두 가지 핵심사업을 펼친다.하나는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이고 두 번째는 미조직, 비정규 등 10만 조직화 사업이다. 건물 외벽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울산지역본부의 조합원 숫자는 4만 7천여 명인데 이를 올해 사업을 통해 10만으로 늘인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80만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 같은 조직화가 성공한다면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우선 5만여 명을 늘이기 위한 핵심 중 하나는 조합원 1만 8천여 명인 현대중공업에 민주노조가 들어서는 걸 텐데, 이게 참으로 무망하다. 현중노조는 현재 한국노총도 그렇다고 민주노총 소속도 아니다. 상급단체가 없는 노조인데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을 주도했던 그 역사가 무색하게 지금은 의결기구뿐만 아니라 집행부까지 완전히 사측에 장악당했다. 올해 4.25재보궐선거에서 중공업이 있는 동구지역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몽준 계열의 박우신이 민주노동당 이생환을 누르고 당선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박우신은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당시 현대중공업노조 교육부장을 맡고 있다가 9월 7일 구속된 이력이 있다. 

 

 

이처럼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 당시 울산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투사'들의 많은 수는 지금 자본 측에 서 있거나, 죽거나, 이 바닥을 떠났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조차 없게 되었거나 하는 형편이다.

 

 

아무튼 울산에 내려온 날은 지역본부의 한 동지가 출소한 날이라서 거기 잠시 참석했다가 곧장 회의에 갔다가 동구로 옮겨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아침 일찍 동구를 산책했다. 내가 잔 곳은 동구의 일산아파트라는 곳인데 이곳은 소위 '만세대'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1만 세대가 살 수 있는 규모의 아파트 단지인데 1974년 현대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엄청난 숫자의 노동자들이 이 지역으로 유입됐다. 그러자 현대 자본은 이곳에 대규모 사택단지를 조성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만세대'고 이 외에도 현대 계열사들이 만든 사택단지들이 북구, 동구에 걸쳐 조성되었다. '자동차사택', '사천세대', '이천세대', 남목의 '돌안아파트', 염포동의 '현대자동차사택' 등이 그것들이다. 이외에도 '오좌불숙소'나 '문현관', '삼전관', '자동차기숙사' 등의 독신자 기숙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중공업 앞 대로변에 새로 지은 '삼전관'고층아파트 형태로 들어서 있다.

 

 

30년동안 사람들은 이 단지를 이렇게 저렇게 고쳐 썼다. 나 역시 기억나는 것은 1992년 전하동 풍경인데 내 기억으로 당시만 해도 만세대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곳이었다. 지금 모습은 외양은 그때나 비슷하지만 사람들이 부지런히 고쳐 써서 안에 들어갔을 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중공업에서 분진이 날아오기는 하지만 샤시도 새로 하고 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라도 한 대 물고 있으면 '아, 내가 울산에 있구나' 싶다.

 

 

오랜만에 중공업 지프 크레인(대형 조선소의 사마귀 모양의 크레인)과 골리앗 그리고 미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전하동 기슭을 산책하니 한편 반갑고 한편 쓸쓸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토요일 특근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오토바이 행렬이 평일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다음날부터 자료수집과 각종 회의 등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이는 다음 편에 계속 이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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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9 18:57 2007/05/19 18:57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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