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추석 연휴 서울에서 본 것들
이번 추석 연휴 나으 목표 중 하나는 서울에서 밀린 미드(특히 나으 A급들)를 때리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도다.
극장가는 후진 영화들로 넘쳐났으니 이준익 따위가 판치는 한국 영화계는 대오각성하여야 할 것이다. 곧 '행복'이 개봉한다니 보아야겠다만, '봄날은 간다'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갔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급습.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을 보았더니 완전 '친구'의 번외편일세. 허, 거참. 뭐 우리가 곽경택한테 뭘 기대하겠어. 하지만 허진호한테는 좀 기대를 하고 있는데... 춥고 긴 겨울이 다가오니 한 편의 진한 멜로, 다소 뻔하더라도 울어줄 최루탄 두 주머니 쥐고 갈 수 있을 터인데, 그래도 나올 때 좀 개운하려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보다는 나아가 줬으면 하는 바람.
- 책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
이번 추석 연휴 가장 공들인 것 중 하나는 책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을 정독하는 것이었다. 물론 논문으로도 읽었고 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일정하게 간여를 하였기에 초고를 검토하기도 했었지만 다시 정독을 할 필요를 느꼈다.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냉대'에 가까운 사회적 '무관심'은 정말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석사 논문으로 제출되었을 당시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소문이 나 여기저기서 찾아 읽던 2006년 가을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비교해보자면 예컨대 구해근의 저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참 심심한 주장을 얼토당토 않은 제목(E.P.톰슨 책에 비견하는 게 가당키나 하나? 물론 이는 구해근의 탓이 아니라 상업주의 아카데미즘으로 가득찬 창비의 탓이지만) 아래 넣은 것에 불과한데도 마치 한국 노동자운동사를 보기 위해서 꼭 봐야만 하는 필독서로 자리았다. 그래, 구해근 책도 읽어야겠지. 그걸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미국 대학의 교과서로 쓴 걸 신광영 교수가 번역한 책이지만, 그거라도 한국 노동운동사에 대한 기초적인 통사가 없으니 읽긴 읽어야겠지. 그런데 어느 정도 형평성이 맞춰져야 하지 않나. 노동운동사처럼 그 복잡한 역사를 통사 한 권 보면 다 꿰어지나?
서평 수준으로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니지만, 잠시 얘기해보자면... 살인적 탄압(91년 박창수 위원장을 보라!) 속에서도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가장 활력에 차 있었던 그 시절이 어떻게 마감되었는지, 각 정파와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자들이 어떤 전략적 선택과 행위를 했었는지, 그 결과가 현재의 참혹하고 앙상한 노동조합운동으로, 민주노총으로 이어졌는지, 그것이 전노협 정신, 다시 말해 7~8~90년대에 걸쳐 소중하게 쌓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붕괴시키고 청산시켰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이 책으로부터 우리의 과거에 대해,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출판사가 제목으로 검토하기도 했던. 스터름탈의 '유럽 노동운동의 비극'에서 따온) '한국노동운동의 비극'이라는 제목이 더 적당할 정도로 집요하게 노동운동사를 추적하고 있다.
추석 연휴 동안 열심으로 정독을 하고 있던 중에 이재영이 레디앙에 이 책에 대한 서평도 아닌 메모 수준의 기사를 올렸다.
그런데 정말 불성실로 가득찬 그러나 자기 할 말은 다한, 이 책의 가치를 크게 폄훼한 악의에 찬 기사였다.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은 그 당시의 내로라 하는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자들, 예컨대 단병호, 심상정, 권영길, 노회찬, 김영대, 노재열, 박준석, 박태주, 배남효, 배석범, 백순환, 양규헌, 이목희, 정윤광, 주대환, 천창수, 최용국, 최은석, 한석호, 허연도, 허영구 등을 인터뷰하고 녹취를 풀고 분석을 한 이후에 전노협 백서와 내 사랑 마창노련처럼 1차 문헌에 가까운 책들을 참고로 쓴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꼼꼼하게 쓰여졌다. 그걸 몇 마디 말로 자르듯이 무질러버리는 이재영의 무논리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각설하고. 일촌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
- 영화
2 Days In Paris
한국에서의 제목은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 프랑스 여인답게 늙어가는 '비포' 시리즈의 언니 줄리 델피가 메가폰까지 잡은 영화. 내 분류식대로 하면 '수다 영화'와 '뉴욕, 파리 영화' 장르에 들어가는 영화로 그 프랑스식 유머법이 어찌나 킥킥스럽던지. ★★★★☆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이건 시리즈물이니 당연히 하나로 처리해서 말해야 하는데... 내 분류식대로 하면 '기억 영화'의 장르에 분류되는 것으로서... 수많은 기억 영화의 장르 속에서 보자면 '기억'에 대해 별 성찰 없는 그저 그런 영화이나, 관습대로 '액션 영화'로 보자면 꽤 수작. 그러나 A급들과 비교하자면 좀 떨어지기는 하는데... 쌈박질은 '007 카지노 로얄'보다 못하고 자동차 추격씬은 불행히도 이 영화를 보기 직전 타란티노 '데쓰 프루프'를 본 관계로 긴장감 현격히 떨어졌음. 그래도 시간 죽이기로는 최고. 왜? 시리즈니까. 6시간 정도는 조질 수 있음. ★★★☆☆
데쓰 프루프
개인적으로 타란티노의 유머법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라 땡기지는 않았으나 둘째 편에서의 그 엄청난 추격씬은 봉복하고 절도할, 포복하면서 절도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드리머'의 그 의젓한 커트 러셀이 나초를 먹는 장면은 가히 압권인데 식사 전이라면 보기를 권하지 않겠다. 참고로 둘째 편에서 자동차 광으로 나오는 트레이시 톰스가 너무 반가웠고 (그녀는 내가 광팬인 미국 B급 드라마 '콜드 케이스'의 형사역을 맡은 바 있다.) 시드니 포이티에의 딸이 나와서 또 한 번 반가웠다. ★★★★☆
사랑
곽경택의 사랑은 또 한 번 '부산 마초들'의 사랑이었으니 예상에서 전혀 벗어남이 없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 죽을 때까지', 이게 마초들의 사랑관이라는 건데 그게 실제 마초들과 어찌나 다른지 아마 마초들도 모를 것이다. 이는 실제 자신과 자신의 세계관이 불일치한다는 건데 거기서 바로 '마초 판타지'가 발생하며 그걸 주구장창 그려내면서 마초들을 위무하는 게 곽경택이다.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게 '멍청한 짓'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죽자, 마초처럼' 이렇게 말한다면 '너나 태종대에 몸 던져라'라고 말하고 싶다는 거다.
박시연 완전 미스캐스팅. 얘가 할 줄 아는 건 눈 퉁퉁 붓도록 울어 분장사 당황하게 만드는 거? 김민준은 일취월장. 연기 못하는 애들은 악역 좀 많이 하면서 깊이를 채워야 한다는 걸 적나라하게 증명하였음. 돈 들여 볼 가치 없음. ☆☆☆☆☆
-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2~시즌3 에피소드 1, 2
최고 A급 미드지만 시즌3로 가면서 다소 진부해진다는 느낌. '석호필, 또 감옥이야? 지겨워' 뭐 이런 느낌이랄까. 또 하나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인 건 대통령이 사임했는데도 '컴퍼니'는 건재하다는 건데, 대통령이 정점이 아닌 '컴퍼니'라는 건 리얼리티 상으로는 납득이 가지만 극적으로는 납득이 안 간다는 거. 시즌3 만들려는 어거지라는 혐의. 첨 계획대로 시즌1까지가 최고였음. 자칫 잘못하면 B급 미드로 밀려날 수도. ★★★☆☆
로스트 시즌3
'디 아더스'의 실체가 밝혀질수록 더욱 미궁에 빠지는 느낌. 'the others'를 타자인지 동일자인지 분명히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X파일처럼 타자로 때로는 동일자로 갈팡질팡할 전략?
사소하게는 잭이 태국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시즌3의 에피소드9의 제목인 를 성경 출애굽기의 모세와 결부시켜 재해석하는 리뷰들이 재밌긴 하던데, 여전히 로스트의 지엽적인 해석보다는 큰 해석을 놓고 보는 게 중요할 듯.
다른 미드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뒷심이 딸리고 매 시즌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데 반해 로스트는 (물론 그런 점이 없지는 않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풍부한 해석이 가능한 꺼리를 던져주고 있음. 드라마는 장기전이고 장기전에서 핵심은 역시 서사 능력이 관건이라는 것! 로스트에게 건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