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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8/13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적 입장들
    레드타임즈
  2. 2005/08/13
    민주주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레드타임즈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적 입장들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적 입장들


  일말의 정치 활동과 권리도 보장되어 있지 않았던 한국의 6,7,80년대. 그것에 맞서 국민 대다수가 벌였던 민주화 투쟁과 그 성과들. 그들은 스스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을 선출하는 권리를 쟁취하고, 대통령을 탄핵시키려는 야당의 ‘음모’에 맞서왔다. 그들이 생각하기엔 현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는 조금만 보완하면 거의 완벽하다. ‘진보적’인 사람의 경우라도 국가보안법 정도가 맘에 들지 않지만 곧 폐지될 것도 같으니 봐줄만 하다. 각종 기구 등을 통해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고 어떤 노동자들은 ‘귀족’ 소리 들을 만큼 배불리 먹고 산다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모든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소수의 의견을 배제하지 않고 절충하면서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절대적인 제도가 아니던가!! 어찌 이것을 신봉하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첫 번째, “당신들의 천국”


  하지만 피어나올 변혁의 불꽃을 가슴에 품고 있는 청년 학생들이여. 그대들은 현재 다수의 평등과 소수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행해졌던 모든 것들이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한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현재 사회는 여러 계급들로 분열된 자본주의 사회이며 이를 유지시키는 것은 사유재산제와 임금 노예제이다. 자본가들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들을 고용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을 해 잉여가치를 만들어 냄으로써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렇듯 체제를 굴리는 자들은 노동자 계급이지만 그것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자들은 자본가 계급이라는 점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상식과 역사를 우롱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순수” 민주주의에 관해 말할 수 없는 것이다.1)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평등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순수” 민주주의를 “순진”하게도 부르짖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스승은 카우츠키다. 그는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내세워 1918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팜플렛을 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만만세!!”라는 구호를 세련되게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지금 사회의 새로운 ‘카우츠키’ 들에게 다음의 사례들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더 자세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예 하나. 공권력의 문제. 지난 탄핵 정국. ‘탄핵반대. 민주수호’ 외치며 다양한 단체와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 쏟아져 나왔다. 현 남한 사회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저녁 5시가 넘으면 거리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금지된 시간’에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평화적으로 반대시위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외치는 집회에서는 무장한 경찰들이 마구 폭력을 휘두르며 집회를 진행할 수 없도록 만든다. 집회의 성격이 체제에 反하고, 혹은 위협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모두가 광장에 나와서 자신의 요구를 담은 집회를 할 수 있는 “순수” 민주주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 둘. 부르주아 의회. 국민의 뜻을 하늘 같이 받들겠다며 악수를 청하던 사람들은 모든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반대하는 파견법 확대 개악안을 국회에 상정, 통과시킬 작정이다. 반면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반인권적인 법률이라는 국가 보안법은 아직도 어영부영 하며 폐지 혹은 개정 여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법안을 논하는 와중에도 국회 앞에서 국보법 폐지 기습 시위를 한 청년 학생들은 연행까지 되었다. 이는 단순히 부르주아 의원 몇몇을 잘못 뽑아서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정치인이 있는 나라의 인민이더라도 자본가의 “민주주의”가 선언한 형식적 평등과 프롤레타리아트를 임금 노예로 전락시키는 수천의 실제적 제약 및 사기가 빚어내는 절박한 모순과 어디서나 마주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3)

  예 셋. 외교 정책. 어떠한 부르주아 국가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민주적이라고 하는 국가에서도 외교정책은 결코 공개적으로 수행되지 않는다. 외교 문제의 주된 사안은 식량, 파병, 관세 문제 등 인민의 삶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현 남한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안인 쌀 수입에 관련해 정부가 농민들의 의사를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기사4)를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외되는 인민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모든 인민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언론출판물을 내는 것은 인쇄하는 기구나 인쇄 용지의 소유문제와 각종 법적 제제때문에 쉽지 않다. 오로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굴종할 것을 가르치는 제도권 교육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위의 예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정말로 순수하지 않다는 것. 부르주아들만을 위한 민주주의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계급 독재라는 점을 말이다. 이것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나가는 것이 ‘가슴에 불꽃을 품은 자’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우리들의 천국”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소수의 착취 계급이 다수의 피착취 계급을 배격함으로써 오로지 소수만이 잘 살게 되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게 된다. 당연히 우리는 근로피착취인민의 민주주의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확장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혁명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전위 대공장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5) 그런데 흔히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만의 독재’가 되어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않으면 어쩌냐는 기우를 하곤 한다. 걱정마시라. 노동자계급민주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백만 배 민주적이다.6) 노동자 계급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고 할 수 있는 1871년 파리 코뮌7)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맑스가 강조했던 파리 코뮌의 대책8)들이 충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국가기관 봉직자의 월급 수준을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낮추는 등의 대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또한 특정계급이 억압수단인 특수한 권력으로서의 국가에서 노동자·농민과 같은 대다수 인민대중의 일반적 권력에 의한, 억압자에 대한 억압으로의 전환을 보다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의회 선거란 몇 년에 한번씩 자신들을 억압하고 탄압할 자들을 뽑는 것이었던 반면 파리코뮌은 단순한 의회가 아니라, 활동하는 행정기관이면서 동시에 입법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파리코뮌은 부르주아 사회의 부패한 의회제도를, 의사발표의 자유와 토론의 자유가 기만으로 전락되지 않는 기구로 대체했다. 그것은 곧 의회 구성원 자신들이 일해야 하고, 그들 자신의 법에 따라 업무를 집행해야 하며, 실제로 얻어진 결과에 따라 스스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서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의기구는 잔존한다. 그러나 여기서 잔존하는 대의 기구는 결코 입법과 행정의 노동을 분리시키거나 의원들의 특권적 지위와 같은 특수한 체계로서의 의회는 아니다.9)

  그런데 분명 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역시 완벽한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계급 간의 지배와 피지배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계급 사회에서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라 대답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파리코뮌)는 이러한 계급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낡아 빠진 관료기구를 일시에 때려 부수고 관료제의 점진적인 폐지를 가능케 할 일시적인 통치기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계급이 소멸된 사회에서 모든 인민이 완전한 평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과도기의 역할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카우츠키주의자들은 한 술 더 뜬 주장을 제기한다. 착취자는 언제나 극소수의 인구만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절대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굳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다수는 다수이므로 다수가 소수의 “저항을 분쇄”할 필요도 “그것을 무력으로 억누를 필요도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아직도 동화 속 세상을 꿈꾸는 몰계급적·초계급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혁명과정에서도 관료제·국가 기구나 부르주아지를 한 번에 패퇴시키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자신이 소유하고 생산 수단이나 토지 등을 턱하니 내줄 리가 없을뿐더러 그것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또한 항상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를 오가며 줄을 서는 쁘띠 부르주아들이나 각종 반동들에게 공포를 불어 넣기 위해서, 부르주아지에 대해 무장된 인민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적들을 무력으로 억누르기 위해서 독재는 필요한 것이다.10)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 그 독재는 혁명적 폭력을 수반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진정으로 모든 인민의 해방과 평등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에서의 민주주의적 투쟁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체제, 그것으로 유지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 계급에게 민주주의적 제도라는 것은 그들을 해방시킬 충실한 무기이자,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내디던 걸음에 뒤돌아볼 여유가 없으니 구체적 이론 학습과 실천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

 

 

1) <레닌「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28p>

2) 위의 책의 33~35p에서 레닌이 구분했던 방식을 사용.

 

3) 위의 책 34p

 

4)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협상의 종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농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잇따라 개최키로 하는 등 정부와 농민간의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관세화 유예기간을 10년으로 하되 의무수입 물량을 현행 기준 소비량의4%에서 8∼9%로 늘리고, 수입물량의 일부를 밥쌀용으로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선에서 쌀 협상 대상국가들과 이견을 좁힌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전국농민연대 대표들은 지난 1일부터 서울 광화문 시민공원에마련된 농성장에서 국민적 합의없는 쌀협상 중단과        쌀 개방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11월 8일자 한겨레 기사>

 

5)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운동은, 그 시작이 아무리 작고 평범할지라도, 또 그 기회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불가피하게 당장의 목표를 뛰어넘어 구체제 전체와 양립할 수 없게 되며 그것을 파괴하는 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 계급의 처지에 있는 본질적 특수성 때문에, 필사적이고 전면적인 투쟁으로,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모든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는 뚜렷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 토니클리프『레닌1』362p 러시아어판 레닌 전집8권, 426p 재인용>

6)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36p>

7) 제정에 정반대되는 것이 코뮌이다. 파리의 프롤레타리아트가 2월 혁명(1848)을 시작했을 때, ‘사회공화국’ 이라는 최임은 군주제라는 계급지배 형태 뿐만 아니라, 계급지배 그 자체까지도 폐지하려는 공화국의 막연한 염원을 표현한 구호였다. 코뮌은 그런 공화국의 실현형태였던 것이다. 낡은 통치권력의 중심지인 동시에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성채인 파리를, 티에르와 시골지주들이 제정에서 인계받은 이 낡은 통치권력을 부활하여 영구화하려고 한 데 대해 노동자들이 무기를 들고 봉기한 것이다. <맑스. 『프랑스 내전』>

8)  코뮌은 파리의 각 지역에서 보통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방자치 위원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언제나 소환의 대상이 되고, 자연적으로 코뮌 구성원의 대부분은 노동자들이거나, 노동계급의 덕망있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자들이었다. 경찰은 일시에 정치적 속성이 제거되고 책임성 있고 항상 소환될 수 있는 기구로 변하였다.

   <위의 책>

 

9) <레닌 『국가와 혁명』 63p, 65p>

 

10)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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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민주주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김성렬

1.탄핵국면이 의미하는 현 남한의 상황


  지난 3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열우당에서는 ‘의회 쿠데타’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도 했으며, ‘진보적’이라고 지칭되는 제 사회민중 단체들의 경우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며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탄핵국면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상처로 남아있는 ‘파시즘’으로의 회귀의 신호탄이었는가? 진정 이 땅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그 자체가 흔들리는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었는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당시 부르주아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해외평가기관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남한 경제관료들은 대통령 탄핵 사태가 결코 경제에 위기를 주지 않을 것임을 느긋하게 강조했으며, 실제로 어떠한 불안정한 흐름도 존재하지 않았다.1) 즉 탄핵사태는 ‘자본주의 체제나 자본가 권력의 위기가 아나라 단지 노무현 정권의 위기였을 뿐이며, 체제의 안정, 피지배계급의 저항운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진, 편안하게 허리띠 풀어놓고 벌인 밥그릇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밥그릇 싸움에 부르주아 한 분파가 노동자와 근로대중을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동원한 것이다. 또한 노사모나 국민의 힘과 같이 탄핵 반대 투쟁을 주도한 세력들은 이 투쟁의 물결이 조금이라도 체제의 울타리 밖으로 넘쳐 날까봐 신경을 썼으며 한 방울도 넘쳐나지 않게 성공([사회주의 노동자 신문, 준비4호] ‘탄핵논쟁, 노동자의 민주주의와 독재, 현종혁)’ 시켰으며, 이 속에서 제 사회민중 단체들의 경우 역시 그/녀들의 의도이건 혹은 그와 무관하게 결국 열우당의 힘들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정치분파 간의 ‘편안하게 허리띠 풀어놓고 벌인 밥그릇 싸움’이었던 탄핵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찻잔 속의 태풍’으로 진행된 탄핵사태는 그만큼 남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안착화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도 사실이다. ‘1987년 이후 부르주아들은 극우와 극좌를 배제한 자유주의 체제를 추구해 왔으며, 90년대 초반 이후 확립되었고,  88년 김용갑과 양동만의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하는 극우궐기론을 전후로 하여 극우 세력은 권력 밖으로 배제되었다. 현재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극우 세력은 권력 밖에서 소규모 사회 운동으로 자신들을 재구축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91년 노태우 중간 평가와 강경대 열사 사건을 둘러싼 투쟁 국면에서 김대중이 군부 쿠데타설로 대중의 좌익화를 막으려 했을 때를 제외하고 파시즘론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군부 쿠데타의 주역 ’하나회‘ 마저 김영삼 정권기에 청산됐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패배이후, 대선 패배의 원인을 당의 보수성과 노후화로 평가하고 최병렬 체제 하에서 초/재선 의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당의 개혁과 인적 청산을 추진([사회주의 노동자 신문, 준비4호] ‘탄핵논쟁, 노동자의 민주주의와 독재, 현종혁)’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에서도 경제위기가 보다 실물화되고 가속화 된다면 어떠한 노동조합, 진보적 사회단체까지도 직접적으로 탄압하는 파시즘이 다시 대두될 수도 있다. 현재 남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안착화 되어 있다고 해서 파시즘이 다시는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 국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 따른 구체적인 판단이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 볼 지점 중의 하나는 ‘민주주의 수호’ 이외에 핵심적으로 제기되었던 진보진영의 대응이었던 ‘국민발의/국민소환제’였다. 국민발의/국민소환제를 당시에 핵심적으로 제기해 들어가며, 외친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였는데2) 이에 대한 간략한 평가 역시 필요할 듯하다. 국민발의/국민소환제는 이미 서구에서 스위스, 미국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이미 도입되어 있는 제도이다. 따라서 남한에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보다 견고히 하는 동시에 노동계급에게 있어 ‘자유’의 확대를 가져오는 국민발의/국민소환제 도입을 반대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봐야 할 지점은 국민발의/국민소환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 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변혁의 과제로 제기되었을 때,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걸고 이에 따른 제반 권리들을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이 독자적인 당파성을 확고히 쥐고 가면서, 그 투쟁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언급은 다음 텀에서 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원칙은 현 변혁의 과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아닌 노동해방이라고 했을 때, 역시나 발현되는 민주주의 투쟁에 있어서도 여기에 개입해 들어가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함에 있어서 기본 전제는, 민주주의 일반이 아닌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적 재산권과 임금노예제가 바탕을 이루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털끝만큼도 전복시킬 수 없으며, 착취와 피착취의 계급사회를 종국에는 끝내기 위한,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국민발의/국민소환제는 그 주장의 맥락에서 ‘투쟁의 급진화’의 한 기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속의 핵심인 ‘노동계급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면서 한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월 당시 울산에서는 故 박일수 열사투쟁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울산지역에서 민노당 총선 준비를 위해 투쟁을 자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노골적인 말까지 나오던 상황에서 탄핵국면은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전선을 한 번에 대중의 최소한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당시에 열사투쟁 전선을 더욱 더 강고히 가져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탄핵국면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열사투쟁을 알리며 보다 깊은 개입을 했어야 했는가 아니면 열사투쟁에 직접 결합하며 그 투쟁을 사수해야 했는가. 이에 대한 판단은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구체적 판단의 분명한 전제는 앞서 강조했던 ‘원칙’이었다.


2. 민주주의투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원칙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떤 계급의 입장으로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해 바라보아야 하고, 이를 위한 제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에 개입해야 될까? 바로 이 땅의 진정한 주인, 자본주의 그 자체를 폐기시키고 진정 노동해방의 사회의 건설의 주역인 노동계급이 아닐까? 철저한 유물론적 관점에서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주의와 관련한 여러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이 가져야할 원칙적인 태도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의 역량에 따라 부르주아의 법과 제도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의 힘이 부르주아에게 위협이 될 정도가 되면 부르주아의 수많은 법과 제도들은 단지 형식에 불과했음을 지난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투쟁의 경험 속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아직 봉건제적 질서가 강하게 남아있던 19세기 중반 프로이센에서는 구체제의 유산인 반동적 귀족세력이 실질적으로 군대 등 사회전반을 아우르는 지배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부르주아들에게 있어 정치적 지배권력을 쟁취하는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은 당면과제였지만 노동계급의 그 혁명적 힘의 분출을 두려워하여 소극적인 자세로 머물고 있었다. 이는 프로이센의 공장제 공업의 발전이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덜 발전한 사회/경제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엥겔스는 무엇을 주장했을까? 엥겔스는 봉건적 질서가 남아있는 경우보다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 있어 더욱더 유리한 공간이기 때문에 부르주아들이 요구하는 자유에 관한 다양한 법과 제도들이 노동계급의 무기가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3) 그렇다고 하여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과제는 부르주아의 문제이니 노동계급은 봉건적 질서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지켜만 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엥겔스는 분명히도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에 있어 부르주아들이 반동적인 봉건귀족과 싸우는 과정에서 이를 끝까지 추진하겠는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노동계급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부르주아들의 꽁무니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4) 이는 1905년 러시아의 당면 혁명의 과제인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과정에 있어 레닌의 주장과 전적으로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레닌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에 있어 노동계급의 태도에 대해 정치적 자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함을 주장하였다.5) 그러면서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은 분명 ‘민중의 혁명’이라고 언급하며, 이 속에서도 ‘민중’ 그 자체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들’로 구분해야 하며, 계급적 독자성에 대해 단호하게 주장하기도 했다.6) 그러면서 레닌은 명확한 실천 방향은 러시아의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앞당기는 데 있어서 완전한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적 공화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적 독재 이외에는 다른 길이 현재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 할 수 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며 노동계급과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독재를 제시하였다. 이는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과정에서 혁명의 주체는 부르주아들이니 노동계급은 이에 전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기회주의적 조류와 확실한 선을 긋는 동시에 실제 투쟁에 있어 물리력을 담보하기 위한 무장봉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엥겔스와 레닌의 주장을 살펴보았을 때,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에서 노동계급은 독자적인 당파성을 확고히 쥐고 가면서, 보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계급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풍부한 토양을 만들어가는 데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남한에 적용시키기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얼마 전 탄핵사태를 경험했듯이 부르주아민주주의는 이미 안착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텀에서 자세하게 언급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변혁의 과제 역시 그 당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와 레닌의 주장은 상황은 다를지라도 그 주장에 담긴 보편적인 입장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투쟁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7)



3.현재 제기되고 있는 민주적 제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흐름에 대해


  12월 1일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 지침 3호를 전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국회에서 비정규 법개안이 일단 유보됐으니 이제는 권리보장 입법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면서, ‘국보법 철폐, 국민연금법 개악 저지, 파병연장 동의안 저지, 사립학교법 민주적 개정, 언론 관련법 개정, 용산미군기지 이전 비용 전면 재협상, 기업도시법 저지’를 위해 함께 싸워나가자고 하였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지침 3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실관계 확인에 있어 정말 비정규 법개악이 유보되긴 했는가? 백 번 천 번 뒤로 물러나 양보를 해서, 사실 유보되지 않은 비정규 법개악이 민주노총의 말대로 유보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는 결국 제자리걸음이 아닌가? 왜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하게 끔 한 98년에 통과된 파견법을 더 개악한 것이 이번에 나온 비정규 법개악이라고 했을 때, 비정규 법개악 유보는 결국 기존의 파견법의 범주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 법개악을 철폐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회에서 유보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유보되었다고 기만적으로 속이며 1차적으로 승리했다고 자축하는 것은 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그 자체이다. 이 와중에 권리보장 입법쟁취를 위해 이제 싸워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그들의 기만을 가리기 위한 면피에 불과하다. 총파업이 무산되기 전까지 운동진영에서 권리보장 입법쟁취를 내 건 것은 (현장에서 점차 민주노조 운동이 어용화 혹은 전투성에서 탈각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전반적인 운동의 퇴조기8)라는 조건 속에서) 이 법안의 주요 골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어 사활이 걸린 요구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 법개악 저지’라는 수세적인 측면을 넘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능동적인 투쟁 참여와 더불어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를 받아 안게 함으로써 보다 공세적으로 투쟁하고자 하는 점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과는 달리 민주노총에서는 순전히 총파업을 무산시킨 자신들의 과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를 내걸고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정신을 바탕으로 전국의 노동계급이 싸우기 위해 비정규 법개악 저지 전선에서 가장 유효한 수단은 총파업이었다. 공허한 공문가가 아닌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나서야 했던 민주노총에서 이렇게 총파업을 무산시킨 것은 운동의 퇴조기를 더욱 가속화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비판만 한다고 현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대중투쟁 속에서 기회주의적인 지도부를 끌어내고 진정 투쟁하는 지도부를 건설하는 것이지 결코 지도부 비판만으로 운동의 상황이 급진화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앞으로의 투쟁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적인 총파업 전선이 사실상 사라진 현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입장대로 투쟁 지침 3호에 나와 있는 다양한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 투쟁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9) 아직 학생이기에 우리는 현장의 외곽에서 투쟁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전체적인 운동의 흐름에 대해 면밀히 판단할 자료도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는 조건에 놓여있기도 하다. 하지만 원칙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다. 노동계급 대중에게 있어 가장 사활이 걸린 사안과 투쟁에 대해 끝까지 함께 하며 이를 학내에 광범위하게 알려내는 것을 말이다. 현재 비정규 법개악 저지 총파업 국면은 사실상 소실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급 대중과 괴리된 상층 중심의 민주노총식 투쟁방향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방하며 활동해 들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국적인, 전 계급적인 투쟁을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부터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학생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를 항상 고민하면서 그러한 투쟁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 지지/엄호하는 활동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원칙 아래 학내에서 활동하는 것과 맞물려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해 나간다면 운동의 퇴조기라는 객관적 조건에 머무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주체적 의지로 모든 것을 돌파하겠다는 식의 양 편향을 극복해 나가며 작지만 소중한 유의마한 활동들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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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핵소추 10일] 탄핵 충격과 경제 (2004년03월20일)

당초 우려와 달리 탄핵 사태가 경제에 미 친 충격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2일만 해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으나 투자 주체들의 심리적 동요가 진정되면서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탄핵안 가결 당일에는 국가 지도력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헌정 초유의 사태가 시장 불안으로 확산되면서 국가 경제 전반이 밑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장중 한때 47.88포인트나 폭락하며 공황 조짐까지 보였고 원/달러 환율은 12원이나 치솟았으며 선물시장에서는 선물지수의 폭락으로 일시 매매 중 단(사이드카)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경제 부처에는 비상이 걸렸고 다급해진 대통령 권한대행 고건 총리는 탄핵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 장관회의에 앞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따로 불러 '책임지고 경제 부처를 통괄해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닦은 금융시장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들을 숨 가쁘게 밟아 나갔고 재경부와 금융 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관계 기관들은 즉각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이 부총리는 은행장을 비롯한 금융기관장 회의를 소집해 손절매(추가 손해를 막 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하고 주식을 처분하는 것) 등의 금융시장 불안 조 성 행위를 자제하도록 당부했다. 또 민생과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영세 상공인을 적극 배려하고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에 적극 나서는 등 금융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힘써 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국제 신용평가회사와 외국 기관투자가 등 1천명에게 e-메일을 보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은 여전히 강하며 정치 불안은 일시적인 만큼 투자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국인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총력을 경주했다. 결국 금융시장의 키를 잡고 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요는 없었고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더 이상 심리적 공황에 빠지지 않고 중심을 지켜 탄핵 사태 후 첫 월요일인 15일에는 금융시장이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재경부를 비롯한 경제 부처는 가장 걱정했던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다른 분야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탄핵안 가결 6일째인 17일 비상 체제를 해제 했다.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 경제의 체제와 기본 체력, 국민의 의식이 과거와 달리 정 치적 격변에 크게 영향 받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윤근영 기자


 

2) ‘국민발의/국민소환제’관련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한 논쟁은 ‘사회주의 노동자 신문’ 홈페이지에서 진행되었던, ‘최원-현종혁씨 논쟁’을 참고했으면 한다. 발제문에서 이 논쟁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토론회의 위상 상 무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논의 시간에 논점으로 제기된다면 논의/논쟁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3)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고 그것을 헌법과 법률에 표현한다는 것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무기를 쥐여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지는, 태어날 때부터 구별되는 과거의 신분들에 대립하여 인권을, 쭌프트 제도에 대립하여 상업과 영업의 자유를, 관료적 후견에 대립하여 자유와 자치를 자신들의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 따라서 그 당연한 귀결로서 그들은 보통 직접 선거권,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소수 주민 계급에 대한 일체의 예외법의 폐지 등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게 요구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부르주아지에게 부르주아지이기를 중지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물론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시키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언론의 자유, 집회의 권리와 결사의 권리로써 보통 선거권을 획득하고, 이 보통 직접 선거권으로써, 그리고 아울러 위에 적은 선동 수단들로써 그 밖의 모든 것을 획득한다.” (‘프로이센의 군사문제와 독일 노동자의 당’ [저작선집2] p.58~59)

 

4)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반동파의 앞치마 밑으로 숨어들고 노동자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자신의 적대 분자의 힘에 호소하는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 그러한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노동자 당에 남아 있는 방도는, 부르주아적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권리에 대한 선동과 같은 부르주아지가 저버린 선동을 부르주아의 뜻에 상관없이 추진해 나가는 길 밖에 없다. 이러한 자유들이 없이는 노동자 당 자신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다. 노동자 당이 이러한 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신들 본래의 생존 요소, 자신들이 숨을 쉬는 데 필요한 공기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모든 경우들에 있어 노동자 당이 부르주아지의 단순한 꼬리로서가 아니라 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당파로서 행동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자 당은, 노동자들의 계급 이해는 자본가들의 그것과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것과 노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르주아지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노동자 당은 부르주아지의 당 조직에 맞서 자신의 조직을 확고히 유지하는 한편 계속 단련시킬 것이며, 하나의 권력이 다른 권력과 교섭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만 부르주아지의 당 조직과 교섭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노동자 당은 당당한 지위를 확보하고 개별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계급 이해에 눈뜨게 할 것이며, 혁명적 폭풍 - 그리고 이 폭풍은 상업 공황이나 춘분․추분시 폭풍우와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회귀를 하게끔 되어 있다 - 이 불어올 때에는 행동태세를 완비해 놓은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프로이센의 군사문제와 독일 노동자의 당’ [저작선집2] p.60~61)


 

5) 러시아 민주주의혁명은 그 사회적, 경제적 본질에 있어서 부르주아혁명이다. 그러나 이 올바른 맑스의 명제를 반복하여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 명제는 올바르게 이해되어야 하며 정치적 슬로건에 적절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생산관계,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기초로 한 모든 정치적 자유는 부르주아적 자유이다. 자유에 대한 요구란 주로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의 대변자들은 이러한 요구를 제일 먼저 내세운다. 부르주아지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획득한 자유를 어느 곳에서나 주인처럼 행사하면서 자유를 온건하고 소심한 부르주아지의 것으로 변형시켜서, 평화적 시기에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대단히 교묘하게 억압하고 격동의 시기에는 이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는데 이 자유를 이용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이 부정되거나 또는 비난받아야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오로지 나로드니크 폭동주의자들, 무정부주의자들, 경제주의자들뿐이다. 이러한 인텔리적이며 속물적인 교의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지에 반하여 그들을 기만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잠시일 뿐이다. 정치적 자유가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힘을 배가시키고 조직을 꾸리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며 그것도 다른 어떤 세력보다도 강렬하게 요구한다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계급투쟁을 회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범위, 계급투쟁의 의식, 조직, 결연함을 확대시키는 데 있다. 정치투쟁사업을 경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사회민주주의자를 민중의 보호자라는 지위에서 노동조합의 비서로 전락시키는 사람이다. 민주주의적 부르주아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업을 경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사회민주주의자를 민중혁명의 지도자의 지위에서 자유노동조합의 지도자로 전락시키는 사람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녹진. p.122~123)


 

6) 그렇다. 민중의 혁명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민중’이라는 말이 부르주아적이며 민주주의적으로 남용되는 것에 대해 싸워왔고 지금도 대단히 훌륭하게 싸우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이 단어가 민중 내부의 계급적 적대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회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서는 완전히 계급적 독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호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민중’을 ‘계급들’로 구분하는 것은 진보적 계급이 그 자체 내에 머물거나, 좁은 한계 내에 그 자신을 한정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세계의 경제적 지배자가 후퇴하지 않을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 행동을 마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간계급들의 미지근함, 동요, 주저함 등과 인연이 없는 진보적 계급은 모든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전 민중의 대의를 위해서 전민중의 선두에 서서 싸우도록 하기 위해 ‘민중’을 ‘계급들’로 구분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녹진. p.123)


 

7) 04년 하반기에 제기되고 있고 지금까지 일부 시민단체와 학생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 중의 하나는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이다. 이들은 부르주아들도 인정하는 ‘인권’에도 훨씬 못 미치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완전폐지’를 주장하며 계속해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노동계급이 중심이 되어 싸워나가지 못하고 있다. 즉 현장의 노동자들과 괴리된 채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본가계급의 절대적 힘의 우위 속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상승/발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패배해 가는, 즉 정치적 주체로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분명 노동계급의 투쟁에 있어 ‘친북-좌익-용공’으로 몰아붙이면서 탄압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누구보다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의 운동적 흐름을 만들어 가야할 노동계급은 뒷전에 있고. 시민단체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노동계급의 역량에 대한 현 주소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 과연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지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우리는 해 봐야 한다. 부르주아 정치권에서 말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논란은 어디까지나 ‘형법대체입법/파괴활동금지법’ 등 법률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하여 사실상 제 2의 국가보안법을 준비한 상태에서 개혁성을 가지고 말싸움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단체에서 벌이는 투쟁은 단순히 상징적인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렇지는 못하다. 대부분은 시민단체에서는 ‘인권’ 운운하며, 국가보안법의 인권침해를 부각시키며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는 것을 주된 활동으로 가져가고 있어서 국가보안법이 가지고 있는 그 본질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폭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노동계급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르주아의 법과 제도를 개선시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체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계급은 노동계급뿐이며, 노동계급이 투쟁에서 나서지 않는다면 부르주아의 법과 제도는 개악되면 개악되었지 ‘개선’조차 따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개/폐에 대한 논란에 있어서도 진정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즉자적인 실천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검증된, 늦지만 가장 빠른 길을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8)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남한에서 노동운동은 자본과의 치열한 싸움에 있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식으로 ‘전투성’을 획득하며 뭉치게 되었다. 이는 전노협의 기본 정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와 자본은 예전과 같이 물리력을 동반한 탄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노동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키고자 회유와 협박을 해 들어갔다. 이는 자본의 입장에서 파업을 하는 것보다 일정 정도 떡고물을 나눠주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노동운동 내에서 자본의 하위파트너를 자처하는 세력 역시 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었고 노사협조주의는 점차 만연해 갔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반대하며 일어선 97년 총파업, IMF 구조조정 관련 ‘정리해고제, 파견제’에 반대하며 일어선 98년 투쟁이 노사협조주의로 어이없이 패배하면서 노동운동은 계속해서 힘들어져만 갔다. 이후 98년부터 02년까지 구조조정 분쇄투쟁으로 전국적으로 투쟁이 일어났지만 명확한 전망없이 전투적으로 싸운다는 것만을 강조할 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며 역시 패배로 귀결되고 말았다. 결국 04년 현재의 상황은 자본의 힘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운동이 ‘퇴조기’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 물론 이 말이 다양한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을 기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것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역시 필요하고 정당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병렬적으로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는 식의 투쟁과제가 과연 올바른 방향이겠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투쟁해야 할 과제’라고 한 것은 이 투쟁 역시 민주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겠지만 전국적이고도 전 계급적인 투쟁으로 상승/발전할 수 있는 투쟁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지칭한 것이다. 결코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과 배치되는 노동해방의 직접적인 요구를 담고 있는 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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