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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5
    유물론으로 역사보기
    레드타임즈
  2. 2005/04/25
    지구온난화와 자본주의
    레드타임즈
  3. 2005/04/25
    한원cc노동자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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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4/25
    세번째 열린토론회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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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4/25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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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4/25
    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의 독도관련성명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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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4/25
    이러고도 비정규직 '보호'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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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4/25
    115th ma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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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3/31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권리를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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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3/31
    변증법에 대하여
    레드타임즈

유물론으로 역사보기

 

김성렬 tjdfuf@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이제 틀렸어요.

한 때 유행했으나 이제는 아니지”


  우리가 수업 시간에 종종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여기서 놀라운 것은 대부분 이의 제기 없이 수업은 그냥 진행된다는 것이죠. 만일 80년대 같았으면 어땠을까요? 어느새 우리에게 ‘변혁’이란 말은 80년대 선배들이나 가슴에 품었던 애틋한 것으로 전락한 듯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론과 같은 서구의 학문적 풍조마저 유행이 끝났으니. 그럼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목표란 과연 없는 걸까요? 우리는 지금‘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나 걱정입니다.

  하지만 예전에 배운 역사교과서를 보면 영 이상합니다. 교과서는 분명히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대한 서술을 시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사회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던 도구를 중심으로 시대구분을 해 놓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고대 그리스를 설명하며 ‘노예제 사회’라고 하고, 중세 유럽을 ‘봉건제 사회’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란 큰 축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이상합니다. 하루하루 일상의 연속이기만 하고, 무료한 나날에 질리기도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했던 것이죠. 정말 신기합니다.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현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는 변화의 과정일 테니까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이 말은 프랑스철학자인 파스칼이 한 유명한 말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사소한 현상이라도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한 번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과연 개인적 혹은 우연적인 사건들로 역사가 발전하고 지금껏 이어져 온 것일까요? 물론 몇몇 사건들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를 들어 역사를 ‘두꺼운 책’이라고 했을 때, 이러한 요소들은 때때로 단어와 구절을 구성할 수는 있어도 문맥상의 의미를 나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 역사 발전의 동력을 ‘운명․섭리․세계정신’ 등 초자연적인 관념에 두는 의견도 있습니다. ‘관념이 역사발전의 동력이라?’ 언뜻 봐서는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밥상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서는 밥을 먹을 수 없듯이 뭔가 행동이 필요할 테고, 기본적으로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겠죠.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동물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지만 주변에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 조건이 갖추어져야 뭔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분들께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학공식도 사람의 두뇌에서 나왔지만 그 공식들이 순전히 생각에 의해서만 나온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고대부터 건축을 통해 원리를 하나하나 깨우쳐 갔고 기하학과 같은 학문을 시작으로 공식이 나온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발전의 동력을 ‘관념’으로 말하는 것은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방향입니다. 만약 관념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면 저는 당장 산 속으로 들어가 수십 수백 번 생각에만 열중하겠습니다. 이 땅의 가난과 고통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말입니다.

 

여러분 금난전권을 아십니까?


  중학교 국사시간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핵심 단어들을 외우고 또 외워야 했습니다. ‘태정태세문단세...’는 기본이죠. 금난전권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금난전권’이냐고요? 바로 여기에 그토록 궁금한 역사 발전의 동력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난전이라 함은 후에 사상으로 발전하는 개인상인들의 상행위를 말합니다. 금난전권은 바로 이러한 난전을 금하는 법입니다. 조선 정부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도성 앞 6개의 시전상인들을 제외한 잡다한(?) 상거래를 금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지요. 상업이 아닌 농업이 최우선이었으니 어쩌면 당시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농업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상품작물이 재배되었습니다. 이제 사회 전반에 걸쳐 단순히 개인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교환하기 위한 ‘상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부에서는 수백 년 째 지속된 금난전권을 유지하기를 바랐으니까요. 그런데 웬걸요. 금난전권을 폐지하라는 대신들과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쳤고 백성들도 시전상인들의 독점횡포로 인해 자유로운 상거래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조 때 금난전권은 폐지되고 말지요.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필수품이 돼버린 MP3를 한 번 볼까요. MP3를 이용하면 정말 편리합니다. 굳이 음반을 사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다운 받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놀랍지 않습니까? 직직 늘어나기 일쑤였던 테이프에서 변치 않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CD로, 이제는 다운 받는 시대가 왔으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적재산권이다 뭐다 해서 음악을 공유하고 다운 받는 것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한다고 하니까요. 정보통신 기술은 이미 ‘미래를 향해’ 앞질러 가고 있는데, 우리의 법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와 같은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감이 오지 않습니까? 바로 날이 지나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생산력’과 이와 관계되어 있는 ‘생산관계’의 모순입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라. 생경한 단어들이지요. 하지만 앞의 예를 보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농업기술의 발달을 시작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생산력’의 향상은 예전에는 정당하기까지 했던 금난전권이라는 ‘생산관계’와 모순을 일으켰죠? 그래서 결국 금난전권은 폐지되었고, 조선 후기 시장은 급속도로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생동하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생산력에 대해 기존의 생산력에 적합했던 생산관계가 서로 공존할 수 없기에 마찰을 일으키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역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기존의 생산력에 적합한 생산관계 속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과거에 안주하게 됩니다.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생산력에 맞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들은 당연히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탄압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 뺏기기 싫을 테니까요. 따라서 새로운 방향으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속에서 이처럼 사람들의 의식적인 노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류가 살아온 발자취, 즉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발전해 온 것이지 다른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어떠한 관점에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역사의 장구한 세월을 보면 결코 정체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류의 역사 속에 자기 얼굴을 드러낸 지 200~30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코 자본주의라고 해서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본주의 역시 모순이 있을 것이고, 이제 그 모순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추천도서]


독일이데올로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쓴 이 책은 사적 유물론의 기본 입장이 훌륭하게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어보세요.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이 쓴 이 책은 무려 9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계급 발생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요. 세계사를 우리가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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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와 자본주의

 

김진태 kissme@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환경재앙

그 주범은 지구온난화!


  해마다 대형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태풍, 호우, 가뭄, 화재는 인류에게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인류에 대한 기후의 공격은 대부분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전반적인 온도가 상승함으로 인해 물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규모가 큰 폭우가 발생한다. 한편으로 높은 온도로 인해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가뭄은 기압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 거친 폭풍을 일으킨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상기후는 모두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는 없나?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다. 그리고 현재 사용되는 화석연료 중에는 석유가 절대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석유사용량을 줄이면 지구온난화를 상당부분 막을 수 있다.


장애인의 날이 아닌 ‘4.20 장애차별철폐의 날!’

  석유 사용양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존재한다. 이산화탄소를 해양에 저장하여 대기 중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대중교통을 대대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석유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풍력 등의 대체 에너지 개발 또한 하나으로 방법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산화탄소의 배출량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


알면서도 하지 않는 자본가들


  우린 흔히 과학기술의 발달이 필연적으로 환경오염을 낳았다는 견해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 자체가 환경오염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누구를 위해 발전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산화탄소를 그냥 하늘에 내뿜는 것과 해양에 저장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할까? 물론 따로 설비에 돈을 들여도 되지 않으니 하늘에 뿜어내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환경을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동차가 수도 없이 생산되어 팔려나가는 것과 버스와 지하철이 발달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할까? 물론 자신의 이윤을 꾸준하게 증대시켜주는 쪽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쪽일 것이다. 정부는 자본가들이 제한 없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법적으로 정해진 환경기준을 넘어선 자본가들에게 대해서도 관대하기 일쑤다.


  자동차 산업의 자본가들, 석유재벌들은 대체 에너지가 발전하는 것을 좋아할까? 자기가 만들어놓은 공장과 석유생산시설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는데 좋아할 리가. 미국의 세계적인 5대 석유기업이 2000년 한 해에 벌어들인 순이익이 400억 달러인걸! 이런 돈벼락을 맞고 있기 때문에 영국 상공부에서 발표한 자료 따위는 간단히 물리쳐줘야 할 것이다. 영국 상공부에서는 ‘풍력을 사용한다면 현재 영국 전기사용량의 40배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낸 적이 있다. 대체에너지생산이 기술적으로 어려우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우리의 상식은 자본가들이 돈과 함께 뿌려댄 헛소리에 불과하다.



  답은 예상만큼이나 쉽다. 자본가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석유사용량을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이려하지 않는 것이다. 돈벼락 앞에 환경으로 인한 재앙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이윤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인류와 환경을 위해 과학기술이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가능할까?


환경재앙을 막아내는 길은 오직!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로 인해 절대다수의 노동자민중의 삶과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눈을 감아도 보일 정도이다. 환경파괴로 인한 위기는 사실 이러한 모습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파괴로 인한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이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 체제를 끝내야한다. 분리수거와 일회용품 쓰지 않기가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전 세계에서 무제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환경오염물질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아내는 것은 결국 이 체제를 넘어설 때 가능한 일이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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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cc노동자와의 인터뷰

 

김성렬 tjdfuf@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병원에 갔을 때, ‘여의사’라는 말은 쉽게 써도 ‘남의사’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노동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사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남성노동자를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만큼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기준은 남성의 시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들의 절반은 여성이며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여성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TV에서 보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용인시에는 유난히 골프장이 많다. ‘~컨트리클럽’이라고 하는 간판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중 한원컨트리클럽(이하 한원CC)이 있다. 대부분 여성노동자인 이곳 경기보조원분들은 작년부터 9개월이 넘도록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비정규법개악을 막기 위한 민주노총 집회 때, 이 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 분들 중 황미경 조합원과 인터뷰를 하며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Q. 파업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A. 작년 7월 5일 사측에서는 자체 규약을 보여주면서 아무것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종이에 서명하라고 했다. 용역으로 전환하려는 기미가 보여서 40여 명이 사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7월 9일 자로 바로 해고됐다. 그래서 파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새벽 농성 중에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8월 21일에는 사내 시위 도중에 경찰이 조합원 50여 명을 강제 연행하기도 했다.


Q.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A. 서울 본사 앞에서 천망 농성 중이다. 투쟁이 장기화 되다 보니까 생계 문제가 가장 크다. 얼마 전 원춘희 조합원이 자신의 손목에 칼을 긋는 일도 있었다. 병원서 이 조합원이 의식을 차린 후, 처음으로 한 말이 “왜 이렇게 빨리 발견했느냐? 나를 딛고 파업투쟁이 승리했으면 좋겠다.”였다. 최근 사측과 교섭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요구 중 하나인 ‘용역화 반대’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그런 상황이다.


Q. 여성노동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힘든 점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A. 골프장 경기 보조원을 흔히 ‘캐디’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여성이다. 근무 도중 남자 손님이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아마 경기보조원의 100%가 이런 일을 다 겪었을 것이다. 사측에서는 남자 손님이 원하는 얼굴과 몸매에 맞게 경기보조를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파업을 하면서 용역깡패들이 “너희들 사는 집 다 안다. 집에 쫓아가서 아이들 죽이겠다.”라고 말할 때면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가슴을 치거나 욕설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많이 힘들다.


Q. 학생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세요?


A. 나는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이다. 하루라도 돈을 안 벌면 생계가 막막하다. 그래도 아이들 생각해서 더 싸우게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는데, 학생들이 지지방문을 오곤 한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이 학생들은 나중에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싸우고 있는 만큼 학생들이 농성장에 많이 찾아와서 함께 연대했으면 좋겠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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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열린토론회에 다녀와서

 

 처음 토론회의 주제를 접했을 때는 최근 일어난 독도 분쟁에 대한 단순한 토론이라는 생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토론에 참가했는데 토론이 시작하고 잠시 후에 무엇인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부제인 ‘좌충우돌 민족주의를 비판한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갔기 때문이었다. 최근 독도 분쟁에 대한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민족적 대응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당연시 여겼는데 이 토론은 그것에 대해 옳은 것인가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는 궁극적으로 민족주의 대한 토론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즉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짚은 것이다. 나조차도 민족에 대한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토론회에서는 이렇게 만연돼 있는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짚고 이에 의해서 감쳐줘 있는 여러 가지 폐해들을 알도록 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마 어떤 새내기들은 대학교에 들어온 후에도 학점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대학생활에 약간의 실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수업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벗어 날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이런 토론과 같은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예전의 지식과 좁은 시야의 한계를 깨나갈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크나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무한히 있는 대학생활이 바로 이전과는 다른 학교생활이 아닐까?)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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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땅?

 

독도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것을 민족주의라고 비판했는데, 애국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민족과 국가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중국인=한족이 아니지만 한국인=한국민족 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도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민족이란 개념이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 사람들이 서로를 민족국가라고 생각했다면 ‘황산벌’ 같은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 예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시대 민중이 적개심을 느끼고 있던 상대는 일본민족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의 지배계급이었다. 일본이 쳐들어와 혼란스러울 때 조선의 민중들은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 전에 먼저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는 노비문서를 태우기 위해 경복궁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민족이란 개념은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근대사회가 태동할 즈음에 생겼다. 즉 민족은 상인층이 발전해 가는 가운데 단일한 판매시장의 필요로 생긴 국가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받았던 제도권교육이나 여러 언론의 역할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효과를 냈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이 체제에서 존재하는 모순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을 생각해보자. 월드컵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이들의 싸움이 묻혔었다. 서울의 노점상들은 외국에서 손님이 오신다는 이유로 장사를 하던 자리에서 쫓겨났고, 발전노동자들의 싸움, 관광노동조합 노동자들의 싸움은 민족의 축제를 훼방 놓는다는 이유로 더 탄압 받았다. 그리고 ‘나라경제가 어려운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라는 논리가 아직도 열악한 조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막는데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민족주의란 것이 교육을 통해서 주입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물론 교육을 통해서 더 강화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국민의례, 애국가를 생각해보라. 학교에서 배웠던 이순신 장군을 생각해보자. 이순신 장군은 학교나 언론에서 민족을 구한 성웅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그 임진왜란 동안 핍박 받았던 민중들은 오히려 식량을 나눠주는 일본군을 더 환영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배웠던 적이 있는가?

  우리는 교육을 학교 안에서의 배우는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교육에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것도 포함되고 있다. 또래집단, 가정, 기타 등등 이런 모든 것들 역시 교육의 개념에 포함된다. 매일 우리가 보는 공익 광고에서도 ‘한민족, 우리국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태어나면서 부터 획득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자라면서 사회화 된 과정들의 일부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라오면서 보고 배웠던 모든 매체, 언론에서는 민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왔고, 우리 민족이 잘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민중들의 투쟁을 ‘나라가 어려운데..’라는 논리로 탄압하고, 억압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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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생각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남북한이 합치면 군사 강국이 된다는 생각. 개성공단을 봐도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을 고용하는 데 월 6만원이면 된다는 것. 그러나 이런 식으로 봤을 때에 통일이 된다면 이 역시 북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을 싸게 사용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의 노동자들을 착취한 이윤을 자본가들이 갖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지금 지배계급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통일 정책과 대동아 허브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노동자들을 더 착취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시기 한민족이라는 생각 하에 이루이지는 통일은 민중들을 더 고통 받게 만들고 지배계급의 배를 불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통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통일을 이뤄야 하는가? 한국 노동자와 일본노동자들이 일본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함께 싸웠던 원산총파업을 생각해보자. 민족을 넘어 하나의 노동자로서 투쟁했던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통일 역시 세계의 압박받는 민중들이 고통 받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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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의 독도관련성명서에 대하여

 

현서 winona@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독도파문과 민주노동당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이후, 전국이 반일 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사람들은 일본을 규탄하고 독도를 지켜내자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정당이라 자임하는 민주노동당 역시 곧바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주한 일본대사 추방, 독도 개발, 그리고 독도 군대 파견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독도를 방문하고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라며 고춧가루 10kg를 독도경비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지난 21일 울릉도에서 독도수호농성을 시작하며 일장기 화형식을 하고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은 그들이 기존에 비판해오던 기성 정치권의 입장보다 훨씬 더 강경한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전쟁 반대, 평화 수호’를 외치며 한국군 파병을 강력히 반대하였던 민주노동당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의 문제가 되자 그들은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도에 군대를 파견하자고 주장하고 일장기 화형식을 하며 이제 그들은 ‘일본 반대, 대한민국 수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 맞습니까?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정부에게도 요구한다. 정부는 과연 침략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우호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한일 간의 우정은 이미 일본이 파기 하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며 일본의 태도를 묵인해 오던 정부의 태도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침략적 근성과 도발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 하며, 대한민국 영토와 주권을 수호하고 한일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되묻고 싶다. 과연 파기된 한일 간의 우정이 무엇인가? 그것이 한국과 일본 자본간의 끈끈한 연대를 말한다면, 그것은 독도 문제와 관계없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미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통과에 영향 받지 않고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통과는 추진될 것이며 중요한 것은 경제이익 극대화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한국 자본이든 일본 자본이든 경제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고 하는 속성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역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르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입장에서 본 우정이며 한일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불타올라야 할 것은 민족적 감정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힘겹게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다. 더욱이 4월 비정규직 개악안의 통과를 앞두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울릉도가 아니라, 바로 일하는 사람들이 절박하게 싸우고 있는 현장이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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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도 비정규직 '보호'입법?

 

김성렬 tjdfuf@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4월 1일은 만우절이 아니라

노동자의 날이었다!


  4월 1일 전국의 노동자들은 일을 멈췄다. 그리고 하나 둘씩 모였다. 서울 국회 앞 3천여 명, 울산역 광장 2만여 명을 비롯하여 광주와 부산에서는 각각 6500여 명과 2600여 명이 모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머리띠를 묶고 목이 터져라 외치기 시작했다. “비정규법개악 막아내고 비정규직 철폐하자!”라고. 노동자들이 이렇게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낯설게 들리는 ‘비정규법개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날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은 모두 10만 여명에 달했다. 규모로 보나 뭐로 보나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들의 요구가 너무 절박하다.


정부의 법안은 왜 ‘개악’안 인가?


  지난 1998년 IMF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정부는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고통분담은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틈타 사업주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아닌 용역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공급받는, 즉 파견근로를 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예전에도 비정규직이 있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된 결과 비정규직은 급격히 늘어나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고 말았다. 이렇듯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004년 하반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며 새로운 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법안을 살펴보니 정부의 말은 순전히 거짓이었다.

  무엇보다 파견업종이 대폭 확대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업종에서 정규직 임금의 절반 이하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욱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임시직 2년 후 정규직으로 채용’이라는 조건이 3년으로 1년 더 연장되었다. 사업주가 바보가 아닌 이상 2년 동안 실컷 부려먹고 그 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는커녕 바로 해고할 텐데, 1년 더 임시직으로 마음껏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란 형식상 개인 사업주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주에 종속되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화물차 기사나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학습지교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우리가 봐도 보통 노동자들과 다를 게 없는데, 새로운 법안에서는 노동자임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보호입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존의 법안 보다 훨씬 더 ‘나쁘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비정규법개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4시간 경고파업을 넘어

실질적인 총파업이 중요하다!


  지난 1일 파업은 4시간 경고파업이었다. 정부가 4월 임시국회 때 비정규법개악을 통과시킨다면 무기한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그야말로 ‘경고’였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 기죽을 정부가 아니다. 따라서 파업에 대해 선언이나 경고가 아닌 실질적인 행동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법안을 막아낼 수 있다. 1500만 노동자들 중에서 이미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이제 싸울 때다. 지난 1일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그 함성을 4월에 실제로 행동할 일만 남았다. 우리도 여기에 힘찬 박수를 보내자!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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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th may day!

 

김진태 kissme@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기네스북으로 본 메이데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 의해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노래가 무엇일까? 바로 ‘인터내셔널’이라는 노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외침과 함께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모든 노동자민중이 ‘참 자유 평등의 길로 힘차게 나갈 것’을 주장한다. 아니 사랑얘기도 아닌데 어떻게 기네스북에 오르기 까지 했을까?

   바로 메이데이라는 국제적인 날에 불린 노래이기 때문이다. 메이데이는 매년 5월 1일에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날이다. 1890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하여 올해로 115주년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누가 왜 메이데이를 제정했을까?


노동자와 자본가, 극단의 시대


  19세기 후반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은 정말 비참했다. 놀기만 하는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만들어 넣고, 100달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며, 애완견에게 1만 5천 달러짜리 목걸이를 해주도 있는 동안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루 12~14시간 일한 노동자들은 30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다락방 월세 15달러조차 내기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아동, 여성 할 것 없이 아무런 보호 시설 없는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노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이데이의 유래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아가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했다. 투쟁의 성과로 8시간 노동법이 제정되었으나 실제로 지켜지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이에 미국노동자들은 1886년 5월 1일을 기해 모두 파업을 할 것을 약속하고 집회를 연달아 개최한다. 이 흐름은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5월 1일에는 34만 명이 집회에 참여하고 19만 명이 파업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파업 농성 중이던 한 공장에서 경찰이 노동자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 커져 5월 4일에 헤이마켓광장에서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다. 이 집회를 진행하던 중에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경찰과 법원은 집회 주동자들의 행위라고 주장하며 주동자들에게 모두 검거, 사형 혹은 징역형을 내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폭발사건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음모사건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러한 미국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리며 국제적으로 8시간 노동을 실질적으로 쟁취하기 위한 흐름은 이어졌다.  1890년에 전 세계 노동자당의 협회인 ‘제 2인터내셔널’에서 5월 1일을 메이데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도록 제정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1일 8시간 노동확립을 위한 국제적 시위를 만들어나가기로 약속한다.

  한반도의 노동자들이라고 처지가 달랐을 리가 없다.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시작한 20년대에는 18세 미만 미성년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이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었다. 이에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가 시작되면서, 일제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과 함께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연대에는 일본노동자들이 함께 하기도 했다.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메이데이!


  많은 사람들이 ‘메이데이’를 ‘근로자의 날’로 알고 있다. 네이버 사전에서도 ‘근로자의 노고를 생각해서 하루 쉬는 날’로 설명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권리를 쟁취하는 날’이라는 원래 의의와는 거리가 멀다. 메이데이의 정신이 이렇게 변질된 것은 남한  노동운동이 억압에 의해 사라지고 이승만 정권이 성립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투쟁은 끝날 수 없다. 대한노총과 한국노총이 기득권에 빌붙어 오히려 노동자 투쟁을 억압했지만,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결국 1989년 메이데이 100주년을 맞는 날에는 70년대의 전태일 열사에서부터 시작된 의식적인 노동자들의 힘으로 메이데이를 기념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어 115주년을 맞는 것이다. 이렇게 115년 동안 지속된 국제적인 노동자연대의 날에 함께 해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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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권리를찾기 위해!

 

  봄 날씨라 하기에는 얄밉게도 차가운 바람이 여전히 우리의 손과 발을 얼어붙게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역 안에서 집회를 진행하곤 하던 철도 여승무원 집회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역 광장 계단에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권리 찾기 결의대회” 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여러 연대 단위와 여성 노동자들이 참여한 그 자리에서 비록 많은 이들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안과 밖의 노동으로 이중 착취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특히 부당해고를 당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철도 여승무원 투쟁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여승무원 동지의 발언은 참 인상 깊게 남았다. 집회에 나가면 자르겠다는 철도 공사 측의 말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제발 잘라줘서 모두가 함께 더 힘찬 투쟁을 하게 해달라고!! 이 땅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으로 고용되지 못하는 사람들, 남편과 자녀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떨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다시금 권리를 찾고 새롭게 일어서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결의를 다졌다. 실제로 여성은 미약한 존재가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불의의 힘에 대항해 저항할 수 있다. 아니, 현 사회적 구조가 만든 그 틀 안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보다 이중 삼중의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투쟁의 의지와 힘을 더 크게 불사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려는 철도 여승무원들이 있는 한 - 비정규직의 이름으로 또 여성 노동자의 이름으로 끝까지 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동지들이 있는 한 결코 자본과 정권에게 영원한 승리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의대회에 참여하면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단순히 형식적으로 단 하루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날을 시작으로 새롭게 더 새롭게 그동안 있어왔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대해 대항해가야 할 것이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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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에 대하여

 

현서 minx@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변증법이라..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교과서에서 제대로 배운 적은 없을 테고, 헤겔을 배울 때 ‘정-반-합’에 밑줄 한 번 치고 넘어갔을 거라 예상됩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변증법에 대해 ‘하나가 맞는 게 있으면(정) 틀린 것도 있고(반) 각각의 장단을 모아 중립(합)이 있다.’고, 변증법이 마치 ‘중용의 도덕’이라도 되는 듯 잘못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변증법은 복잡하게 움직이는 세계를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한 과학적 방법이랍니다. 자, 이제 제대로 알아봅시다.


변증법과 형이상학


  변증법은 소박하게는 ‘만물은 변화한다.’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스토스는 “만물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만물이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 있다.” 라고 말했죠. 그리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라면 불교의 삼법인설 중 제행무상(‘모든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한다.’), 제법무아('모든 현상적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변증법의 기본은 세계를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또 영원히 운동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이와 대비되어 세계를 고정불변의 것, 정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관점이 있습니다. 즉, 자연 및 인간 사회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었든 간에 일단 존재하기 시작한 이상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A 아니면 B, 긍정 아니면 부정, 삶 아니면 죽음’, 이와 같은 고정불변의 대립이죠. 그렇기 때문에 ‘A는 A인 동시에 A가 아니다’고 말하는 변증법적 사유방식은 생뚱맞게, 또 비과학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질학,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 각 분야에서 과학의 발전은 자연이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변화와 운동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주었죠.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기 전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원숭이랑 인간이 어떻게 같은 부류일수 있다는 말이냐, 원숭이나 인간은 신이 만들어 준 그대로다”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이제 유인원에서부터 인간으로 진화과정을 통해 발전되어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어떠한가요?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정확하게 어떤 시점’에서부터 생명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까요? 또 죽음은? 대략적인 합의조차 힘들 정도로 여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합니다. 왜냐하면 생명도, 죽음도 끊임없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자연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도덕, 가치, 진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모든 시대에 보편타당한 진리는 있을 수 있을까?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는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다.’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인류 역사를 보면 함께 소유하고 함께 분배했던 계급 발생 이전의 역사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변증법적으로 보자면 진리라는 것 또한 상대적이며, 시대에 따라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기에 ‘이것이 절대 진리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죠. 이와 같이 변증법은 자연과 인간 사회의 역사로부터 도출되는 ‘끊임없는 연관, 연쇄, 운동, 생성과 소멸’의 사유방식입니다. 변증법을 하나의 사유방식으로 체계화 한 것이 헤겔의 위대한 공로이긴 하지만, 변증법 자체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처럼 헤겔 머리 속에서 나온 발명품은 아니라는 것이죠. 


변증법의 세 가지 법칙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모든 자연과 인간 사회의 모든 사물들은 내부에 서로 대립하는 측면들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배척(투쟁)하는 것, 즉 모순을 원동력으로 하여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기 위해 우리 인간의 역사를 한 번 봅시다. 중세 봉건제 시대에 봉건영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립물, 농노가 있었죠. 그리고 잘 알겠지만 농노제 하에서 신음 받던 농민들과 영주 사이의 격렬한 계급투쟁이 있었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통일관계, 체제가 생겨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자본주의 역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대립 관계를 갖고 있죠..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의 법칙(양질전화)

이것은 단순한 양적 변화가 일정한 시점에 도달하면 질적 차이로 전도된다는 법칙입니다. 쉽게 말하면 만약 머리카락이 많은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낸다면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계속 뽑다보면 어느 시점에 도달해서 질적 변화를 가져와 대머리가 된다....이런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물의 온도를 계속 높이면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 있는 변화가 보이지 않다가, 100도에 이르면 증발하기 시작하면서 액체였던 물이 기체로 질적 변화를 보이게 되죠. 온도를 낮추어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질적 변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새로운 질적 상태에 맞는 법칙들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파악이 될 수가 있게 되죠.


-부정의 부정의 법칙

한 번 부정하고, 또 부정한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는 부정의 부정을 긍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변증법적 부정은 단순한 이중 부정이 아닌 나선형적 구조로의 ‘지양’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낡은 것이 단순히 파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상태가 극복이 되면서 긍정적인 측면들은 보존되면서 ‘발전’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하나의 보리낟알을 심는다면 조금 있다가 싹이 트겠지요. 즉, 처음의 낟알은 부정이 되면서 식물이 자라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보리는 자라면서 꽃이 피고, 또 열매를 맺으며 계속해서 부정을 거듭하다가 끝에는 다시 보리 낟알을 생산하게 되죠. 하지만 이 보리 낟알은 처음의 그 낟알이 아니라, 수백 배에 달하는 것이지요. 식물에 따라서 부정의 부정의 과정에 의해 빠르게 질적 개량이 되기도 하죠.


  헤겔이 완결된 체계로 정리했던 변증법을 맑스는 유물론적으로 재정립하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 인간의 역사를 분석하게 되는데요, 아마 다음 레드 타임즈에서 만나시게 될 겁니다. 변증법에 대해 더 궁금한 분들은 아래 책들을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조지노백,《새롭게 보는 논리학》

  우리에게 익숙했던 형식 논리학과 변증법을 대비하면서 쉽게 변증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새내기 여러분께 추천^^


-프리드리히 엥겔스,《자연변증법》

  19세기의 자연과학적 발견들을 통해 자연과 사회에 변증법적 법칙이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한 책입니다. 과학의 제 분야들에 대한 무수한 예들이 많아요.


-프리드리히 엥겔스,《반듀링론》중 제 1편 철학

  맑스주의를 왜곡했던 오이겐 듀링에 대한 반박을 통해 맑스주의 세계관을 총정리 한 책입니다. 그 중에서 철학 파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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