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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1

호외>레드타임즈가 여러분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레드타임즈가 여러분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레드타임즈는 격주로 발간되는 신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모순들을 학내에 알려나가면서 대안을 밝히고, 그 대안을 향한 움직임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내기 여러분! 입학하고 나서도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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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이주노동자, 다시생각해보기.

 

이주노동자,

다시 생각해보기.


“사장님, 나 한국에 데려가 치료해 주세요”

  이 말은 한 타이 여성노동자가 타이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면서 한글로 쓴 편지글의 일부입니다. 지난 11일 귀국한 이 노동자는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안정장치 하나 없이 일하면서 노말헥산 중독으로 인해 ‘다발성 신경장애’를 앓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이런 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려 하고 은폐/축소시키고자 하는 상황. 이러한 현실이 바로 이 땅 이주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이번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정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한다고 하지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사실상 노예제도에 다름 아닌 ‘고용허가제’를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불법’이란 명목으로 마치 동물을 사냥하듯 이주노동자들을 수십 명씩 잡아서 강제출국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규정으로 사장이나 관리자들의 협박과 눈치를 보며 고된 노동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처해 있습니다. 3D업종이라 불리는 영세한 공장에서 그야말로 혹사에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그 모멸감을 받아가며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장님 나빠요‘하며 희화화시킨 TV 코미디 프로를 보며 마냥 웃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경기 화성시 향남면 요리 ㄷ사에서 일하다가 노말헥산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를 앓고 있는 한 타이 여성 노동자가 지난해 12월 초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아 임시숙소에 들어가고 있다. 이 여성 노동자는 지난달 13일 안산중앙병원에 입원해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제공

 

사회적 갈등은 대화와 타협으로?

우리는 그 동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이른바 ‘제도권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 제도권 교육의 사회교과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회에는 각각의 이해를 요구하는 이해집단들이 있고 집단들의 요구가 상충할 때 사회적 갈등이 야기된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이해의 극단적 대립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인정하면서 절충안을 마련하기 위한 대화와 타협이다. 그리고 갈등이 바람직하게 해결되면 사회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갈등이란 사회발전에 있어 긍정적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논리가 아니었습니까? 따라서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바라볼 때 있어, 대화와 타협이란 잣대를 먼저 우선시 하게끔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논리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빠져있습니다. 바로 각 집단이 서로의 이해를 요구한다면 최소한 그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동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제하지 않는 가운데, 모든 사안들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힘이 더 센 집단에 손을 들어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됩니다. 자국에서는 더 이상 일자리가 없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가진 거라곤 자신의 몸이 전부입니다. 여기에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을 경우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주노동자와 회사 간의 싸움에 있어 우리가 그동안 배워 온 제도권 교육의 논리를 대입하면 이는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회사 측의 입장을 옹호하게끔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땅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며


  고된 노동 속에서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힘들게 살아가는 이 땅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고통에,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차별을 받으며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우리와 전혀 무관한 남의 이야기일까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 디딛고 있는 대학이란 공간에서, 교육은 전체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하며 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앞으로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오늘도 정부의 강제추방정책에 반대하고,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 병들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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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Need Something Red?

 

Need Something Red?

 저희는 오늘 새내기 여러분들에게 조금은 색다른, 지금까지 자주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모 광고 카피에서 조금 변형해서 제목을 ‘Need Something Red?'로 한 번 달아보았어요. 여러분은 Red, 빨간색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새내기 여러분들은 아마도 고대의 상징 색? 아니면 붉은 악마를 떠올리시지 않을까요. 하지만 예전만해도, 아니 지금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빨간색은 으쌰으쌰 데모하는 사람들(속칭 빨갱이;), 폭력시위, 공산주의 등등을 떠올리게 합니다=_=; 사실 이런 거부감들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교육이나 사회 환경으로 인해 생긴 편견들로 인한 것이지요.

  "만약 상어가 사람이라면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식물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포함된 각종 먹이를 집어넣은 거대한 통을 바다 속에 만들도록 하겠지. 그 커다란 통 속에는 물론 학교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일은 물고기들의 도덕적 수련일거야. 그들에게는 물고기 한 마리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과, 그들이 모두 상어의 말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특히 상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을 믿어야 한다는 걸 배우겠지. 물고기들은 또한 복종을 익힐 때만 이러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걸 배우게 될거야. 물고기들은 모든 저속하고 유물론적이고 이기적이고 마르크스적인 경향에 대해 조심해야 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가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면 즉시 상어들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배울거야."  -베르톨트 브레히트 '상어가 사람이라면' 中

 독일 출신의 유명한 극작가인 브레히트가 쓴 단편집에서 일부를 인용 해보았습니다. 물고기와 상어에 빗대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교육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는 글이거든요. 넓은 바다가 자본주의 사회라면, 몇몇 상어들은 이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소수의 자본가들을, 작은 물고기들은 상어들에게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키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교육은 어떠할까요? 상어 나라에서처럼 대다수의 물고기들이 몇몇 상어들을 위한, 상어 사회의 유지를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12년,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 우리는 12년  동안 국민교육과정을 찬찬히 밟아왔습니다. 그리고 배워왔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립적이고도 참된 진리만을 담았으니 밑줄 쫙 치면서 달달 외우세요!!@_@ 흐음-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배워왔던 공식 교육제도와 커리큘럼은 자본과 노동자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까요? 뭐 요즘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 만큼, 교과서도 많이 개혁(!)되어서 공정하게 쓰여져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4000만 국민 중 1400만 명이 노동자라고 합니다. 수적으로 본다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잘못된 행동으로, 노동조합을 이기적인 집단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길래? 직접 여러분이 배웠던 7차 교육과정의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속을 들여다봅시다. 사실 여러분들은 물론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에 관하여 배운 기억조차 없겠지요. 왜냐하면 교과서에는 불경스러운 노동자라는 말 대신 ‘근로자’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죠.



-노동자=이익집단, 과격행동은 절대 금물이야!!

단원명

Ⅶ. 정치 생활과 국가/ 2. 사회적 쟁점의 정치적 해결 과정

내용

1) 정치와 사회적 쟁점

(...) 물론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에 따라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권력이나 부,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자원들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하게 되며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대립 중에서 문제에 대한 의견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져 있고, 문제 해결의 결과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사회적 쟁점이라고 한다 (...)

그림 :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쟁점들

      주 5일 근무제를 요구하는 근로자와 이를 외면하는 사용자

      근로자 -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동 시간을 단축하라!

      사용자 - 경제 상황도 안 좋은 데 주 5일 근무제는 안 될 말이야!

2) 정치적 해결의 과정

(...) 이익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정 절차의 민주성이 필수적이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고르게 참여하여, 양보와 타협의 자세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좁혀 나갈 때 원만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과격한 집단 행동이나 실력 행사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 한다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짐은 물론 심각한 사회 무질서까지 초래하게 된다. 한편, 개인과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침해하여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런 경우, 특정 집단의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갈등 해결의 결과가 공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자료: <고등학교, (주)천재교육, 사회 교과서, pp.202-205>


 이 교과서에서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익집단 중의 하나가 노동자? 그리고 그러한 이익집단 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가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팔 것이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을까요? 더불어 교과서는 파업과 같은 과격한 집단행동과 실력행사가 사회 불안정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네요.




-선생님, 파업이 뭔지나 좀 가르쳐 주세요!

단원명

Ⅶ. 정치 생활과 국가/ 1. 현대 정치의 과제/ 1) 다원화된 사회, 다원화된 이익

내용

탐구 활동 - 시민의 힘으로 금융 산업 파업 해결

다음은 2000년 7월에 전국 금융 산업 노조가 파업을 선언한 전후의 은행별 저축성 예금의 동향을 나타낸 것이다.

관련 그래프 : 비파업 선언 은행의 예금과 파업 선언 은행의 예금 대조

                  - 은행별 저축성 예금 동향(00신문, 2000.7.12) -

시민의 힘으로 은행 파업을 해결할 수 있는지 토론해 보자.

- 파업을 선언했던 I은행, J은행이 곧 파업 불참을 선언한 배경을 살펴보자.

*자료: <고등학교, 법문사, 사회교과서, p.125>


이 교과서에서는 금융산업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시민의 힘으로 은행의 파업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탐구활동을 제시하고 있네요. 암묵적으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암묵적으로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묘사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파업 여파를 적극 해결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지요.



-정리해고 문제 해결, 경제계의 우려?!

단원명

Ⅶ. 정치 생활과 국가/ 3. 민주 정치 발전과 시민 문화

내용

 

사례 탐구2 - 정치 원리에 따른 갈등 해소

 

정리 해고 문제를 놓고 노동계와 사용자의 대리전으로 치달았던 H 자동차 사태가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해결되었다. 3개월에 걸쳐 6차례의 파업과 4번의 조업 중단이라는 극한 대립이 겨우 풀린 것이다. 노사 양측은 합의문에 서명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화합의 모습을 보였지만, 해결 방법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았다

 

갈등 해결 과정에서의 법과 정치의 기능

  H 자동차를 둘러싼 정리 해고 문제의 해결은 정치권의 개입으로 조정되었다. 정부나 여권에서는 노사 간의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신노사 문화 창조의 모델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사태 해결 방식을 염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계의 우려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 과정은 노조가 정리 해고를 저지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될 수 있으며, 앞으로 기업의 구조 조정과 외국 자본의 유치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법적으로 하면 일시적으로 효율성을 잃을 수도 있으나 갈등 해결의 원칙이 확립되어 사회적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갈등 해결을 정치적으로 하면 구체적 타당성을 얻어 융통성 있게 해결할 수는 있으나 원칙이 무너져 사회적 불안이 생길 수 있다.

*자료: <고등학교, 법문사, 사회교과서, pp.234-235>

이 교과서에서는 노사분규를 해결하는 제 3자로 중립적인 정부를 설정하고 있고, 친절하게도 경제계의 우려까지도 담아내고 있네요. 하지만 노동자들이 왜 정리해고를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기하게도 단 한 줄도 없습니다.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한 순간에 해고되어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입장은 온데간데 없고, 자본의 입장만이 편향적으로 서술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중앙진흥교육연구소 교과서 355쪽에는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조 조정과 관련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삽화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정부의 반노동자적 정책만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호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사협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두산교과서도 있지요. 이렇게 교과서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끈끈한 노사협조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발전의 디딤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타 등등

이 외에도 천재교육 교과서의 경우 ‘일상생활에서의 정치’라는 주제 아래 사회 갈등의 여러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다른 사례들의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예를 선정하였으나, 노동과 관련해서는 ‘노동조합의 집행부 사람들이 주도권을 둘러싸고 싸움을 하였다’라는 유달리(!)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예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이러한 것들은 사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이러한 예, 삽화 하나하나가 바로 하나의 이미지로 쌓여 졸업할 때쯤이면 누구나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린 빨간을 원한다.

빨간 닷 컴.

 공통적인 것은 어떤 사회과 교과서를 보더라도, 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말하는 대신,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노동자들의 파업은 사회 전체에 손실을 주는 이익행위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요. 따라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은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바로 우리들처럼, 노동자와 파업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은 전혀 가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그동안 몇몇 상어들을 위한 파란 나라에서 파란 책을 들고 파란 내용들만을 공부해왔으니 조금만 다른 시각의 내용들만 접해도 빨갛게 *_* 보이는 것이지요. 저희는 다시 한 번 되묻고 싶습니다. 빨간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오히려 몇몇 상어들에게 좌지우지 되는 사회가 아니라 많은 물고기들을 위한 사회가 되는 것이 빨간이라면, 우리는 파란이 아닌 빨간을 원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이야기들 많이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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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세계화에 대한 자유포럼의 입장을 비판한다!

::대자보 REVIEW::

 

세계화에 대한 자유포럼의 입장을 비판한다!

 

 

/우, 진보/보수 개념부터 정리하자고 하는 자유포럼의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자유포럼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고민의 중심은 ‘사회의 질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 역시 정립될 것이다. 하지만 자유포럼은 한 가지 놓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한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잉여생산물이 생긴 이래로 누군가는 더 많은 부를 위해 착취하고 누군가는 착취당하는 역사의 반복이 아니었는가? 역사에 있어 착취와 피착취가 존재하는 계급사회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극복되었는가? 착취와 피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는가? 우리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 역시 이 지긋지긋한 계급사회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아가야 할 우리의 미래가 있기에 자본주의 체제는 계급사회의 종착역이라고 판단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뿐이기에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가혹한 노동강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과 착취하는 자본가계급이 존재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지난 역사의 계급투쟁에서 직접 목도해 왔던 것이다.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아닌 다수의 노동계급이 계급 그 자체를 폐기시키며 모든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해방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유포럼에서 말하는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아닌가? 바로 이것이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 질적인 변화라는 것인가?

 

 

유포럼에서는 ‘세계화’가 변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세계화 그 자체는 우리 역시 사회 발전에 있어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는 노동해방 사회로 감에 있어 보다 높은 물질적 토대로 훌륭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화 자체를 현 자본주의 체제라는 계급사회에서 어느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가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론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이는 ‘진보’를 가장한 채 자본의 이해에 굴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계화는 분명 사회발전에 있어 바람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질 때만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유포럼에서도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세계화를 얘기한다면 우리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세련된 언어 수사학에 불과하다면, 노동계급의 이해에서 벗어나 ‘진보’를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호히 비판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비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에 의해서 체제를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실천으로 투쟁으로 논쟁해 나갈 것이다.


유포럼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현재 남한에서의 좌/우, 진보/보수라는 개념은 너무나 모호하며 엉켜있다. 노동해방 사회로 가는 길의 명확한 대안인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말로는 과격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는 보다 명확하게 노동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옹호하며 이를 학내에서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선동하고자 한다. 자유포럼에서 말하고 있듯, 미래지향적인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고민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해 나갔으면 한다. 앞으로 더욱 많은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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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결코 '예쁘지'않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반대투쟁

 

::여성주의 칼럼::

결코‘예쁘지' 않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여승무원?


 ‘여승무원’이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그림이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젊고 날씬하고 예쁜데다가 상냥한’ 여자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한 달에 300시간을 일하면서 밤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 비정규직 여승무원 노동자들이 근무 2년 만에 집단적으로 해고를 당했을 때, 이런 부당하지만 보편적인 의식은 투쟁해야할 대상이었다.  

 


해고통지, 투쟁의 시작.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승무원 근무 2년째. 2003년 투쟁에서 여승무원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철도청과의 약속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철도청에서는 이 약속을 내팽기고 ‘3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 함부로 해고하지 못한다.’라는 법조항을 피해가기 위해서 3년이 되기 전에 31명을 집단해고 한 것이다. 이에 노동조합원도 아니었던 여승무원들이 철도노조와 함께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결국 힘찬 투쟁을 통해 전원 고용승계를 쟁취하였다. 비록 정규직화를 쟁취한 것은 아니지만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절반의 승리를 쟁취한 이 투쟁이 비정규직여성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해고에 숨어있는 성차별적 의식


  철도청에 소속된 같은 승무원인데도 남자는 정규직이고 여자는 비정규직이다. 성차별적 의식에 근거하여 노동자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 성차별적 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여자는 젊어서는 직장을 갖고 일하다가도 결혼을 하면 애 낳고 기르고 해야 되는데 어떻게 직장을 다니느냐는 것이다. 출산휴가 등이 충분하기는커녕 법적으로 보장된 것도 지켜지지 않고, 휴가를 요구하면 오히려 해고당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하면 사회적인 강제에 의해 직장생활에 종을 치게 된다. 게다가 여‘승무원’이라는 직업이기에 계속해서 ‘젊고 날씬하고 예쁜’ 여성으로 교체해야 마땅하다는 생각 또한 이번 문제에서 드러난 성차별적 의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위협은 남성노동자에 비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손에 손잡고,

 철도노조의 남성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이러한 성차별적 의식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심지어 철도노조의 간부도 ‘예쁘지, 몸매 되지, 해고될 이유가 하나 없습니다.’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문제제기와 의견교환을 통해서 남성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성차별적 의식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집에서 애나 봐야 할 여자’가 아닌 자본주의에 맞서 함께 투쟁하는 ‘동지’로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해고당한 여성노동자들이 정규직화 투쟁의 중심에 서야하고 남성노동자들은 이에 더욱 강하게 연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해고자들만의 문제, 해고자들을 동정하며 연대해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투쟁은 철도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비정규직문제를 내건 중요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철도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와 이에 맞서는 철도노조 투쟁의 패배로 인해, 앞으로 인력충원에 필요한 5000여명의 인력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철도노조가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승무원 정규직화 투쟁을 통해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나가고, 앞으로 있을 철도노조의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어갈 불씨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가의 벽을 넘어서!


  24시간 맞교대로 1년에 수십 명씩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는 철도현장. 근무 2년 만에 단체협상에서 약속한 것 마저 폐기하고 일방적으로 해고통지를 날리는 철도현장…… 사람 잡는 철도현장을 바꿔보고자 전개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10억 손배가압류’ 판결을 내린 오늘, 우리는 자본가와의 투쟁 앞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노동자-여성노동자가 동등한 주체로서 단결해야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한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아침 10시 반에 집회 및 선전전을 진행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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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004년 마지막 열린토론회 이야기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난 7일 저녁 7시 서관316B에서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번 토론회는 04년 한해를 총결산하는 의미로 마련된 것으로, 대통령탄핵과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 등 올해 큰 화제였던 ‘민주주의’를 주제로 삼았다.


제문은 ‘자본주의 시대에 진짜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와 ‘민주주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렇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발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과거에 비하면 정치적 활동을 마음껏 벌일 수 있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계급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란 필연적으로 지배계급, 부르주아지의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소수인 자본가들이 다수인 노동자들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발제문에서는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리 코뮌 등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선 노동자권력이 필수적이라는 것과 그것을 통해 진정한 인민의 해방과 평등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을 결코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두 번째 발제에서 지적하고 있었다. 이 글은 탄핵국면이 의미하는 현재의 남한의 상황을 간단히 짚고 나서, 이 과정에서 있었던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노동 계급의 원칙적 입장을 말하였다. 19세기 중반 프로이센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는 노동계급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독자적인 당파성을 갖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원칙을 배제한 채 현재 민주적 권리들을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 흐름(비정규직 권리 보장 입법 쟁취)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투쟁 회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입장을 통해서 운동의 퇴조기 속에서 당면한 계급투쟁을 지지/엄호할 수 있도록 연대투쟁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단한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위의 발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고 갔다. 심도 깊게 논의되었던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당면한 혁명의 과제가 부르주아 혁명인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인지에 대해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자, 발제자는 현재의 상황이 사회주의로 향해 가는 물적 토대, 생산관계, 사회관계라고 대답을 했으며, 이는 반드시 노동자계급 정치권력 쟁취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 탄핵 국면에 몇몇 단체에서 제기하였던 ‘국민소환, 국민발의제’ 에 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국민소환, 국민 발의제를 주장하였던 배경을 살펴보며,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계급’ 문제에서부터 논의가 진행되었다. 질문자가 ‘계급투쟁은 계급 실존에 우선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발제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계급이 실존 한다’고 대응하였다.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계급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은 맞으나, 이것만으로는 계급투쟁이 계급 실존에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은 관념적인 얘기라는 것. 지금의 체제는 자신의 노동력 밖에 가지지 못한 노동자 계급과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가 계급으로 분명히 나누어져 있다는 것. 잉여가치가 만들어지면서 불평등하게 계급이 분화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 즉, 계급이 체제의 물적 토대를 반영하며, 그 실존에 입각해서 계급투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지금이 자본주의는 금융세계화를 통해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성질이 다르므로 위와 같이 다르게 봐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 발제자는 자본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모순은 결국 동일하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지적하며 대답하였다.


은 논쟁이 오가면서, 격렬하게 의견 대립을 보이기도 했으나,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이러한 유의미한 토론을 풍부하게 벌여나갈 것을 다짐하며 04년 마지막 열린토론회를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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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여러분께 송년인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노동해방의 희망을 열어가고자 하는 레드타임즈.

여러분께 송년인사드립니다.

 

즘 날씨가 정말 춥네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04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노동해방학생연대에서 격주간 발간한 Red Times도 벌써 6호를 맞았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진행하고 있는 열린 토론회 이야기와 투쟁 소식들, 여성주의 칼럼으로 신문을 냈었습니다. 많은 학우분들에게는 21세기에 노동해방을 외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하는 저희의 이야기들이 생뚱맞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변함 없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을 위해 이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해에도 많은 노동자들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고대에서 파업을 진행하였던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에서부터 건설 노동자들의 투쟁, 택시 노동자들의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린 우리당 점거투쟁....그리고 민주노총 총파업. 사실 1년 동안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어느 싸움 하나 제대로 이기지 못했습니다. 귀족 노동자니 집단 이기주의니 이야기하면서도 왜 노동자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언론과, 물리적으로 탄압하고 짓밟는 공권력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협조와 타협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질곡 되는 것을 보고 분노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자본의 거대한 힘을 실감하고 물러서야만 했습니다. 비록 싸움은 패배로 끝이 났지만,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교훈들을 남겼습니다. 얼마 전 1년간의 농성투쟁을 정리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았듯이, 당장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더 긴 싸움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긴 싸움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만큼 노동허가제 쟁취가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이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싸움들은 계속되고 있고, 내년에도...그리고 자본가들의 착취가 끝나는 그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런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열심히 결합하고, 열린 토론회와 Red Times를 통해 학우 여러분들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것입니다.  


난 한 학기동안 열린 토론회와 Red Times에서는 때로는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기도 했고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실천 방향에 있어 충분히 유의미했다고 생각합니다. Red Times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학우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 또 건강한 비판들 모두모두 환영할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부족했던 점들을 방학 동안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해서, 다음 학기에는 정말로 새로운(!) 내용과 발전된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시라! 그럼 다음 Red Times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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