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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학생위원회의 독도관련성명서에 대하여

 

현서 winona@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독도파문과 민주노동당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이후, 전국이 반일 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사람들은 일본을 규탄하고 독도를 지켜내자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정당이라 자임하는 민주노동당 역시 곧바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주한 일본대사 추방, 독도 개발, 그리고 독도 군대 파견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독도를 방문하고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라며 고춧가루 10kg를 독도경비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지난 21일 울릉도에서 독도수호농성을 시작하며 일장기 화형식을 하고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은 그들이 기존에 비판해오던 기성 정치권의 입장보다 훨씬 더 강경한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전쟁 반대, 평화 수호’를 외치며 한국군 파병을 강력히 반대하였던 민주노동당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의 문제가 되자 그들은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도에 군대를 파견하자고 주장하고 일장기 화형식을 하며 이제 그들은 ‘일본 반대, 대한민국 수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 맞습니까?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정부에게도 요구한다. 정부는 과연 침략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우호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한일 간의 우정은 이미 일본이 파기 하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며 일본의 태도를 묵인해 오던 정부의 태도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침략적 근성과 도발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 하며, 대한민국 영토와 주권을 수호하고 한일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되묻고 싶다. 과연 파기된 한일 간의 우정이 무엇인가? 그것이 한국과 일본 자본간의 끈끈한 연대를 말한다면, 그것은 독도 문제와 관계없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미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통과에 영향 받지 않고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통과는 추진될 것이며 중요한 것은 경제이익 극대화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한국 자본이든 일본 자본이든 경제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고 하는 속성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역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르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입장에서 본 우정이며 한일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불타올라야 할 것은 민족적 감정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힘겹게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다. 더욱이 4월 비정규직 개악안의 통과를 앞두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울릉도가 아니라, 바로 일하는 사람들이 절박하게 싸우고 있는 현장이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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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대학생회의 <노동해방학생연대의 사범대비판은 부당하다.>에 대하여

 

현서 minx@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지난 2월 말, 노학연 고대모임에서는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작성하여 게시하였다. 대자보를 통해 우리의 새터를 돌아보며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주었던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감을 주는 폭력이 되었다는 것을 학우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했고, 더불어 새터 주체인 사범대 학생회에서 평가를 통해 보다 실질적인 교양과 대책을 마련하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사범대 학생회에서는 <‘노동해방학생연대’의 사범대 비판’은 부당하다>는 답변 대자보를 붙였다. 이번 대자보 리뷰에서는 집중적으로 '성폭력이다/아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전문은 nohak.jinbo.net) 

  우리는 첫 번째 대자보를 통해 "모과의 남학생이 웃통을 벗으며 FM을 했고, 웃통을 벗은채 장내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바지도 벗으라며 환호했다." 는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상황을 두고 그 자리에 있던 상당수의 학우들은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사범대 학생회는 자보에서 "사범대 학생회는 두 번째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학우들이 불쾌했을 수는 있으나 웃통을 벗은 것이 ‘폭력’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성차별이나 여성억압도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좋고 싫은 취향 문제입니다. 그것을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사범대 학생회의 성폭력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자보를 통해 "모과의 남학생이 웃통을 벗으며 FM을 했고, 웃통을 벗은채 장내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바지도 벗으라며 환호했다." 는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상황을 두고 그 자리에 있던 상당수의 학우들은 불쾌해했다. 하지만 사범대 학생회는 자보에서 "사범대 학생회는 두 번째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학우들이 불쾌했을 수는 있으나 웃통을 벗은 것이 ‘폭력’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성차별이나 여성억압도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좋고 싫은 취향 문제입니다. 그것을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대자보 작성 이후, 이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사범대 학생회장은 “예를 들어 예전에는 여성들이 전신을 다 가리고 다녔는데, 이후에 팔을 내놓고 다니는 여성을 보고 ‘성적 보수주의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박하였다. 그렇다면 속칭 "바바리맨"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내놓는 것을 보고 성적수치심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도 성폭력이 될 수 없는가라고 되물었더니, 그 경우에는 "가해자의 목적/의도가 다르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하여서는 ‘정치적 차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우리는 사대 학생회 측이 성폭력에 대해 어떻게 개념정의를 내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유/무형의 모든 행위(물리적, 언어적, 환경적)를 포함하는 것이며, 앞서 언급한 상황은 불쾌감을 느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명백한 성폭력적 상황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 대한 사범대 학생회 측의 논리는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에 불과하다. 일부 사람이 그것을 폭력으로 느끼는 것에 대하여 ‘좋고 싫은 취향의 문제’로 말한다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성폭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인가? 또 그것을 성적 보수주의로 빗대 말하는 것은 각 사회문화적 환경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문제제기자(피해자)를 ‘성적 보수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성/남성들이 온 몸을 내놓고 다니는 것에 대해 성폭력이라 말하지 않으며, 서구에서 인사를 할 때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것에 대해 성폭력이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여의 위계적 구조가 뚜렷하여 여성이 웃통을 벗고 다니면 ‘미친년’ 소리를 듣고, 사소할지도 모르는 스킨쉽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성희롱을 당하는 한국여성들의 상황에서 이러한 논리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사범대 학생회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직장동료에게 친근함의 표시로 포옹을 하고 스킨쉽을 행하는 것에 대해 여성이 문제제기 할지라도 성폭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불쾌해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이 ‘성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들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완전한 기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피해자는 피해자의 입으로 피해자의 불쾌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경우 대다수는 “피해자가 너무 예민해서 그렇다. 가해자는 의도가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라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사실을 부인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한다는 것은 가해자 중심의 위계적 관계에 대항하여, 피해자의 느낌과 감정을 존중하고 긍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 가해자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피해자의 불쾌감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새터에서 있었던 일 또한 피해자들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상황에 대하여, 분명히 성폭력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해자 논리에 대하여 사범대는 학생회 차원으로 사과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소수일지라도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여성/남성/성적소수자, 장애인/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대학 문화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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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호>누가 뭐라 해도 군대는 문제라니까 -유쾌한 정치의 <총보다 꽃을>에 대하여

노동해방학생연대 회원 김진태

 


  ‘인분 사태’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예비역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는 공공연하게 들어볼 수 있는 얘기였지만 언론에 공개적으로 폭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육군은 그야말로 ‘개망신’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욕을 먹어놓고선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사람이 있더라.  

“실제 중대장이 한 행위는 오른손에 잔변을 묻혀서 두 차례  입에 넣었다 빼게 시킨 것이고 … 분명한 것은 삼킨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 <육군훈련소 소장 허평환>

  이런 사람들을 제외하면 군대에 다양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유쾌한 정치>는 그 중에서도 불필요하게 군력을 증가시키는 정부를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군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모두가 군비를 증강시킨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보장 할 수 없으며 이러한 경쟁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할 뿐이다. 한국군은 국방의 의무를 빌미로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무의미한 군력증강을 그만 두어야 한다.」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군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10여 년 전 강제징집과 의문사를 보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분사태도 봤고, 공익요원 얼차려 사망사건도 봤다. 이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모두 다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군대를 별 말 없이 인정해왔다. 왜? 국방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국방은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가 외침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 뿐일까? 그 뿐인데 사람이 인분도 먹어야 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해야 되나.  

  우리 주변에서 지겹도록 듣는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말과 함께 답을 구해보자. 애초에 비장애인 남성을 제외한 여성, 장애인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없는 존재로 못 박고 있는 이 말은 군대의 성격이 어떤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군대를 다녀와야 일도 걱실걱실 잘하고 쓸데없는 말썽을 안 일으킨다.’ 하지만 레드타임즈는 이렇게 해석한다. ‘군대를 다녀와야 위에서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따르고, 나라 중요한 것도 알게 돼서 감히 장성백 같이 설치지 않는다. 물론,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 여타 인간들 보다 우월하다.’

  군대는 수많은 20대 남자들에게 상명절대복종정신을 불어 넣는다. ‘군대에서 한 일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이 무엇입니까?’ ‘삽질이요.’ 하지만 중공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굴삭기를 사용하지 않고 왜 하필 삽질을 해야 했는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다. 심지어 아침에는 땅을 파게 하더니 밤에는 다시 묻으라는 명령까지 수행한다고 한다. 위에서 시키는 것은 군말 없이 해야 된다는 이러한 철칙은 직장, 학교 등에서 재생산된다. 학교에서는 ‘선배의 키스는 후배의 원 샷’이라는 둥, FM못하는 후배에게 ‘군기가 빠졌다’는 둥의 얘기들이 비일비재하다. 힘들고 꼴 보기 싫어서 도저히 사랑해줄 수 없는 이 회사를 그래도 사랑하게 만들고, 매한가지로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 나라를 ‘애국’하게 된다. 그리고  군대 내에서 한 해 100~200여명 건의 자살사건과 3000명 정도의 정신이상발생이 보여주듯이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군대에서건 사회에서건 살아가기 힘들다.

  이렇게 대다수 20대 남성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과 위계질서를 불어놓는 것과 함께, 반체제적인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억압하는 도구로써 군대는 존재해왔다. 80년 광주에서 있었던 노동자민중들의 해방을 향한 움직임을 총칼로 잔인하게 짓밟은 것은 바로 한국군이었다.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을 봐도 알 수 있다. 한국군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지켜내고, 독립을 원하는 이라크 민중들을 살육하기 위해 파병되었다.

  군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내외에서 이윤이 최고인 현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그 앞에서는 인권도 소용없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소용없다. 군대가 더 이상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한번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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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세계화에 대한 자유포럼의 입장을 비판한다!

::대자보 REVIEW::

 

세계화에 대한 자유포럼의 입장을 비판한다!

 

 

/우, 진보/보수 개념부터 정리하자고 하는 자유포럼의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자유포럼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고민의 중심은 ‘사회의 질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 역시 정립될 것이다. 하지만 자유포럼은 한 가지 놓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한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잉여생산물이 생긴 이래로 누군가는 더 많은 부를 위해 착취하고 누군가는 착취당하는 역사의 반복이 아니었는가? 역사에 있어 착취와 피착취가 존재하는 계급사회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극복되었는가? 착취와 피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는가? 우리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 역시 이 지긋지긋한 계급사회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아가야 할 우리의 미래가 있기에 자본주의 체제는 계급사회의 종착역이라고 판단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뿐이기에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가혹한 노동강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과 착취하는 자본가계급이 존재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지난 역사의 계급투쟁에서 직접 목도해 왔던 것이다.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아닌 다수의 노동계급이 계급 그 자체를 폐기시키며 모든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해방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유포럼에서 말하는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아닌가? 바로 이것이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 질적인 변화라는 것인가?

 

 

유포럼에서는 ‘세계화’가 변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세계화 그 자체는 우리 역시 사회 발전에 있어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는 노동해방 사회로 감에 있어 보다 높은 물질적 토대로 훌륭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화 자체를 현 자본주의 체제라는 계급사회에서 어느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가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론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이는 ‘진보’를 가장한 채 자본의 이해에 굴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계화는 분명 사회발전에 있어 바람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질 때만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유포럼에서도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세계화를 얘기한다면 우리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세련된 언어 수사학에 불과하다면, 노동계급의 이해에서 벗어나 ‘진보’를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호히 비판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비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에 의해서 체제를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실천으로 투쟁으로 논쟁해 나갈 것이다.


유포럼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현재 남한에서의 좌/우, 진보/보수라는 개념은 너무나 모호하며 엉켜있다. 노동해방 사회로 가는 길의 명확한 대안인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말로는 과격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는 보다 명확하게 노동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옹호하며 이를 학내에서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선동하고자 한다. 자유포럼에서 말하고 있듯, 미래지향적인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고민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해 나갔으면 한다. 앞으로 더욱 많은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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