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4/25
    지구온난화와 자본주의
    레드타임즈
  2. 2005/03/31
    대마초 합법화에 대하여(1)
    레드타임즈
  3. 2005/02/28
    3월 1호>공공의 적2,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레드타임즈
  4. 2005/01/19
    호외>Need Something Red?
    레드타임즈

지구온난화와 자본주의

 

김진태 kissme@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환경재앙

그 주범은 지구온난화!


  해마다 대형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태풍, 호우, 가뭄, 화재는 인류에게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인류에 대한 기후의 공격은 대부분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전반적인 온도가 상승함으로 인해 물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규모가 큰 폭우가 발생한다. 한편으로 높은 온도로 인해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가뭄은 기압의 변화에 영향을 미쳐 거친 폭풍을 일으킨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상기후는 모두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는 없나?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다. 그리고 현재 사용되는 화석연료 중에는 석유가 절대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석유사용량을 줄이면 지구온난화를 상당부분 막을 수 있다.


장애인의 날이 아닌 ‘4.20 장애차별철폐의 날!’

  석유 사용양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존재한다. 이산화탄소를 해양에 저장하여 대기 중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대중교통을 대대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석유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풍력 등의 대체 에너지 개발 또한 하나으로 방법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산화탄소의 배출량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


알면서도 하지 않는 자본가들


  우린 흔히 과학기술의 발달이 필연적으로 환경오염을 낳았다는 견해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 자체가 환경오염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누구를 위해 발전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산화탄소를 그냥 하늘에 내뿜는 것과 해양에 저장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할까? 물론 따로 설비에 돈을 들여도 되지 않으니 하늘에 뿜어내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환경을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동차가 수도 없이 생산되어 팔려나가는 것과 버스와 지하철이 발달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선호할까? 물론 자신의 이윤을 꾸준하게 증대시켜주는 쪽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는 쪽일 것이다. 정부는 자본가들이 제한 없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오히려 법적으로 정해진 환경기준을 넘어선 자본가들에게 대해서도 관대하기 일쑤다.


  자동차 산업의 자본가들, 석유재벌들은 대체 에너지가 발전하는 것을 좋아할까? 자기가 만들어놓은 공장과 석유생산시설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는데 좋아할 리가. 미국의 세계적인 5대 석유기업이 2000년 한 해에 벌어들인 순이익이 400억 달러인걸! 이런 돈벼락을 맞고 있기 때문에 영국 상공부에서 발표한 자료 따위는 간단히 물리쳐줘야 할 것이다. 영국 상공부에서는 ‘풍력을 사용한다면 현재 영국 전기사용량의 40배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낸 적이 있다. 대체에너지생산이 기술적으로 어려우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우리의 상식은 자본가들이 돈과 함께 뿌려댄 헛소리에 불과하다.



  답은 예상만큼이나 쉽다. 자본가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석유사용량을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이려하지 않는 것이다. 돈벼락 앞에 환경으로 인한 재앙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이윤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인류와 환경을 위해 과학기술이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가능할까?


환경재앙을 막아내는 길은 오직!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로 인해 절대다수의 노동자민중의 삶과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눈을 감아도 보일 정도이다. 환경파괴로 인한 위기는 사실 이러한 모습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파괴로 인한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이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 체제를 끝내야한다. 분리수거와 일회용품 쓰지 않기가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전 세계에서 무제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환경오염물질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아내는 것은 결국 이 체제를 넘어설 때 가능한 일이다. 

레드타임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마초 합법화에 대하여

 

김진태 kissme@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부모님에게서 

대마초(大麻草)를 배우다.


  아니 이게 무슨 심슨가족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인가. 부모에게서 대마를 배우다니. 하지만 ‘대마초’를 슬쩍 ‘주도(酒道)’로 바꿔보라. 부모님에게서 주도를 배우다. 아 뭔가 괜찮다. 성인에게만 허용되어있지만 미리 배워두면 좋을만한 것이 술이라면, 대마초는 나이가 어떻든 간에 배우면 미친 녀석 취급받는다. 그래서 신해철이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욕을 먹나 보다. 


마약 중의 마약은

대마초가 아니라 담배


  만약에 대마초가 막걸리보다 덜 마약스럽다면. 그런데 정말 그렇다. 약물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알아볼 수 있는 의존성, 금단성, 내성, 강화성, 독성 부문에서 대마는 알코올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담배와는 비교도 안 된다.(담배는 모든 수치에 있어서 헤로인, 코카인에 맞먹는다.) 다시 말해 없으면 미치게 하고 몸을 병들게 하며 점점 찐한 것을 찾는 증상은 술, 담배가 훨씬 심하다는 것이다. 오해와는 달리 환각물질도 아니며, 흡입 후에 난폭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순해진다.

표 1) 필립힐츠의 NIDA보고서에서

명칭

금단성

강화성

내성

의존성

독성

니코틴

4

4

5

6

3

알코올

6

4

4

4

6

대마초

1

2

1

1

3

코카인

3

5

3

4

4

 

그런데 왜 금지하는데!


  이제 대마초 금지의 장구한 역사를 알아보자. 수천 년 전부터 인류는 대마초를 재배했다. 한 때 종이, 섬유를 만드는 원료이기도 했기에 대마 유통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마초를 약물로 사용한 역사도 길기만 하다. 힌두의 신 시바는 “인간에게 기쁨과 광명을 주기 위해 대마를 히말라야로부터 가져와 인간에게 주었다.”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대마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거기서 종이 등이 아니라 약물만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도 대마초를 폈겠지.


  이렇게 인류와 함께한 대마초의 금지는 1937년의 ‘마리화나 세금법’에서 시작된다. 대마초를 통해 종이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자, 펄프를 통해 종이를 생산하던 화학자본의 이해에 충실했던 정부 인사들이 이 법을 제정한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대마초는 불법화되어 있다.


  자본의 이해와 대마초 금지와의 관련을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마초가 합법화 되면 지금의 담배 사업은 100% 다 망할 것으로 예측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대마초가 건강에도 훨씬 좋고, 위험하지도 않고, 신경질을 가라앉히며, 게다가 저렴하다. 그런데 어떤 미친 인간이 건강 버리고 돈 버리면서 신경질 나게 하는 담배를 피우고 있겠는가. 하지만 담배로 돈을 짭짤하게 벌고 있는 세계의 모든 담배자본이 이를 그냥 놔둘 리가 있나. (참고로 담배 광고에 쓰이는 돈이 담배의 폐해를 알리는 교육에 쓰이는 비용의 30배가 넘는다고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대다수 노동자민중들의 건강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자본가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세상이 자본주의, 자본가 세상이다.

  

반전운동과 대마초


  대마초를 불법화했던 자들은 인종차별을 이용했다. 그 당시 언론은 대마초를 억압하기 위해 계속해서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백인 여자를 강간하는 멕시코인과 흑인’이라는 이미지를 유포했다. 이 이미지는 성공적으로 유포되어 대마초와 흑인, 멕시코인, 그리고 폭력이라는 이미지는 하나로 연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억압됐던 대마초는 60년대의 거대한 반전운동, 저항운동과 결합하면서 혁명의 상징이 된다. 그 당시 진보운동가들이 그냥 대마초를 조금 한 정도가 아니었다. 기득권세력과 진보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는 항상 대마초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기득권세력은 진보세력을 탄압하는 구실로 대마초를 걸고 넘어졌고, 진보세력은 대마초를 혁명의 상징으로 만들고 있었다.

  

  


마약으로 보는 자본주의


  대마초는 의약품으로 쓸 수 있는 여러 효능이 있다.  그리고 전 인류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는 담배를 대체할 아주 좋은 기호식품이 바로 대마초란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능은 불법화로 막혀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마약은 거대한 마약자본에 의해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대마초와 같은 마약이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란 것들이 대개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극심한 빈부격차, 가혹한 노동환경 등 자본주의가 주는 스트레스는 실로 막대하다. 이로 인해 어려서부터 본드, 가스에 손을 대는 사람들은 대개 빈곤층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술, 담배, 마약…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것들에 손을 대게 하는지 돌아보자. 물론 자본주의가 주는 스트레스를 완전하게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투쟁’뿐이다.

 레드타임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3월 1호>공공의 적2,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노동해방학생연대 회원 영현

 

 

공공의 적2,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 <공공의 적2>를 보았다. 천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실미도> 이후, 강우석 감독이 자화자찬하며 내놓은 신작이다. <공공의 적1>에서 꼴통형사로 출연하였던 설경구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정의 검사 강철중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동창생이기도 했던 사학재단 이사장 한상우(정준호 분)에게서 수상한 냄새를 맡고 그를 잡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것이 영화의 줄거리 전부이다. 전작에서 그러했듯이 권선징악을 메시지로 전개되는 스토리도 변함이 없었다.

 

 

보여주지..법보다 돈이 세단 걸..

 내 영화 평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국정홍보처 제작영화’ 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결코 과한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옆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근데 저런 사람(강철중 같은..) 없잖아.” 그렇다. 관객이 바보가 아닌 이상 국정홍보처 광고에나 나올법한 강철중식 정의검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한상우의 말처럼 세상은 ‘법보다는 돈이 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자기 밥줄을 내놓으면서까지 사회정의를 추구하려는 검사가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뭐...설사 그런 사람이 몇몇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부패한 법조계를 개혁하고, 정말로 신심에서 검사의 본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에서처럼 돈이 아닌 정의를, 권력이 아닌 서민을 위한 공권력이라는 환상은 결코 현실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기구는 결코 중립적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기구, 공권력은 철저히 자본을 위해 움직이며 노동자민중을 탄압하는 곳이다. 때문에 강철중 같은 검사가 수십 명이 있다고 해도 이러한 본질은 결코 변할 수가 없다. 영화에도 나오듯 평검사는 부장검사, 검사 출신 변호사, 검찰로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검찰, 국회, 법원, 정부, 군대까지..이들의 끈끈한 커넥션은 결국 자본가들과 연결이 된다. 뭐든 돈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결국 국가기구는 이 한국 사회가 자본을 위한 사회가 되어 더 잘 굴러가도록 작동을 하는 곳이며, 만약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불순분자(속칭 빨갱이들)가 있을 때는 총출동해서 때려잡게 된다. 

 

 

진짜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어쨌든 정의의 검사 강철중은 공공의 적 한상우를 때려잡기 위해 노력한다. 한상우가 ‘그냥 나쁜 놈’보다 한 수 위인 ‘공공의 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평생 일구어놓은 사학재단을 매각해서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즉, 강철중이나 관객들은 돈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 몰라보고 패륜아 짓을 서슴지 않는 것에 한 번 분노하고, 조국을 배신하고 저 하나 잘 살자는 이기적인 인간임을 보고 민족적 감정에 욱하여 또 한 번 분노한다. 이런 점에서 <공공의 적2>는 현 사회체제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그리고 ‘진짜 공공의 적’을 겨냥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한상우 개인에게 몰아가면서 사회의 모순들과 진짜 공공의 적들을 은폐시키고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상우의 계략에 당하는 그의 아버지는 평생 교육을 위해 헌신한 캐릭터(선)로 나오며, 이에 대비되어 한상우는 교육자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돈에 눈이 먼 이사장(악)이다. 고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사학재단의 현실인데 말이다. (이런 면에서는 ‘두사부일체’가 차라리 낫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볼까, 여기서 강철중 검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돈 없는 것들은 자격지심 때문에 부자는 다 때려잡으려고 한다는 한상우의 말에, 강철중은 “너같이 나쁜 놈(악)때문에 착한 부자들(선)까지 욕을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 강철중 검사님! 몰라도 한참을 모르십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한 자본가가 어디 있답니까. 착한 자본가는 곧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그것은 곧 파산을 의미 할 뿐이다. 경쟁과 이에 따른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자본가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자본의 본능적인 생리에 따른 것이다.

 

 

관객 여러분, 어디를 향해 분노하고 있으십니까?

 <실미도>가 국가주의를 공격하는 듯하면서도 오히려 강하게 그것을 호소했던 것처럼, <공공의 적2> 역시 관객들에게 정의로운 국가와 강력한 공권력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또, 비판의 화살을 ‘부도덕한 개인’에게 모음으로써 자본가들과 그에 붙어먹는 국가기구라는 진정한 공공의 적을 은폐시킨다.
 혹자는 이런 나의 영화 평을 보고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재미로 보는 건데 말이다. 그렇다. 본인도 영화를 재미로 본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재미로 본 영화들이 의도한대로, 흘러가는 대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공공의 적2>를 보며 다시 한 번 대중문화에 무의식적/무비판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외>Need Something Red?

 

Need Something Red?

 저희는 오늘 새내기 여러분들에게 조금은 색다른, 지금까지 자주 접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모 광고 카피에서 조금 변형해서 제목을 ‘Need Something Red?'로 한 번 달아보았어요. 여러분은 Red, 빨간색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새내기 여러분들은 아마도 고대의 상징 색? 아니면 붉은 악마를 떠올리시지 않을까요. 하지만 예전만해도, 아니 지금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빨간색은 으쌰으쌰 데모하는 사람들(속칭 빨갱이;), 폭력시위, 공산주의 등등을 떠올리게 합니다=_=; 사실 이런 거부감들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교육이나 사회 환경으로 인해 생긴 편견들로 인한 것이지요.

  "만약 상어가 사람이라면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식물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포함된 각종 먹이를 집어넣은 거대한 통을 바다 속에 만들도록 하겠지. 그 커다란 통 속에는 물론 학교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일은 물고기들의 도덕적 수련일거야. 그들에게는 물고기 한 마리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과, 그들이 모두 상어의 말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특히 상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을 믿어야 한다는 걸 배우겠지. 물고기들은 또한 복종을 익힐 때만 이러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걸 배우게 될거야. 물고기들은 모든 저속하고 유물론적이고 이기적이고 마르크스적인 경향에 대해 조심해야 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가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면 즉시 상어들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배울거야."  -베르톨트 브레히트 '상어가 사람이라면' 中

 독일 출신의 유명한 극작가인 브레히트가 쓴 단편집에서 일부를 인용 해보았습니다. 물고기와 상어에 빗대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교육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는 글이거든요. 넓은 바다가 자본주의 사회라면, 몇몇 상어들은 이 사회를 좌지우지 하는 소수의 자본가들을, 작은 물고기들은 상어들에게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키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교육은 어떠할까요? 상어 나라에서처럼 대다수의 물고기들이 몇몇 상어들을 위한, 상어 사회의 유지를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12년,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 우리는 12년  동안 국민교육과정을 찬찬히 밟아왔습니다. 그리고 배워왔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립적이고도 참된 진리만을 담았으니 밑줄 쫙 치면서 달달 외우세요!!@_@ 흐음-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배워왔던 공식 교육제도와 커리큘럼은 자본과 노동자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까요? 뭐 요즘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 만큼, 교과서도 많이 개혁(!)되어서 공정하게 쓰여져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4000만 국민 중 1400만 명이 노동자라고 합니다. 수적으로 본다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잘못된 행동으로, 노동조합을 이기적인 집단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길래? 직접 여러분이 배웠던 7차 교육과정의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속을 들여다봅시다. 사실 여러분들은 물론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에 관하여 배운 기억조차 없겠지요. 왜냐하면 교과서에는 불경스러운 노동자라는 말 대신 ‘근로자’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죠.



-노동자=이익집단, 과격행동은 절대 금물이야!!

단원명

Ⅶ. 정치 생활과 국가/ 2. 사회적 쟁점의 정치적 해결 과정

내용

1) 정치와 사회적 쟁점

(...) 물론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에 따라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권력이나 부,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자원들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하게 되며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대립 중에서 문제에 대한 의견이 여러 가지로 나뉘어져 있고, 문제 해결의 결과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사회적 쟁점이라고 한다 (...)

그림 :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쟁점들

      주 5일 근무제를 요구하는 근로자와 이를 외면하는 사용자

      근로자 -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동 시간을 단축하라!

      사용자 - 경제 상황도 안 좋은 데 주 5일 근무제는 안 될 말이야!

2) 정치적 해결의 과정

(...) 이익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정 절차의 민주성이 필수적이다.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고르게 참여하여, 양보와 타협의 자세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좁혀 나갈 때 원만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과격한 집단 행동이나 실력 행사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 한다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짐은 물론 심각한 사회 무질서까지 초래하게 된다. 한편, 개인과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침해하여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런 경우, 특정 집단의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갈등 해결의 결과가 공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자료: <고등학교, (주)천재교육, 사회 교과서, pp.202-205>


 이 교과서에서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익집단 중의 하나가 노동자? 그리고 그러한 이익집단 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가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팔 것이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을까요? 더불어 교과서는 파업과 같은 과격한 집단행동과 실력행사가 사회 불안정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네요.




-선생님, 파업이 뭔지나 좀 가르쳐 주세요!

단원명

Ⅶ. 정치 생활과 국가/ 1. 현대 정치의 과제/ 1) 다원화된 사회, 다원화된 이익

내용

탐구 활동 - 시민의 힘으로 금융 산업 파업 해결

다음은 2000년 7월에 전국 금융 산업 노조가 파업을 선언한 전후의 은행별 저축성 예금의 동향을 나타낸 것이다.

관련 그래프 : 비파업 선언 은행의 예금과 파업 선언 은행의 예금 대조

                  - 은행별 저축성 예금 동향(00신문, 2000.7.12) -

시민의 힘으로 은행 파업을 해결할 수 있는지 토론해 보자.

- 파업을 선언했던 I은행, J은행이 곧 파업 불참을 선언한 배경을 살펴보자.

*자료: <고등학교, 법문사, 사회교과서, p.125>


이 교과서에서는 금융산업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시민의 힘으로 은행의 파업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탐구활동을 제시하고 있네요. 암묵적으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암묵적으로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묘사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파업 여파를 적극 해결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지요.



-정리해고 문제 해결, 경제계의 우려?!

단원명

Ⅶ. 정치 생활과 국가/ 3. 민주 정치 발전과 시민 문화

내용

 

사례 탐구2 - 정치 원리에 따른 갈등 해소

 

정리 해고 문제를 놓고 노동계와 사용자의 대리전으로 치달았던 H 자동차 사태가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해결되었다. 3개월에 걸쳐 6차례의 파업과 4번의 조업 중단이라는 극한 대립이 겨우 풀린 것이다. 노사 양측은 합의문에 서명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화합의 모습을 보였지만, 해결 방법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았다

 

갈등 해결 과정에서의 법과 정치의 기능

  H 자동차를 둘러싼 정리 해고 문제의 해결은 정치권의 개입으로 조정되었다. 정부나 여권에서는 노사 간의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신노사 문화 창조의 모델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에서는 사태 해결 방식을 염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계의 우려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 과정은 노조가 정리 해고를 저지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될 수 있으며, 앞으로 기업의 구조 조정과 외국 자본의 유치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법적으로 하면 일시적으로 효율성을 잃을 수도 있으나 갈등 해결의 원칙이 확립되어 사회적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갈등 해결을 정치적으로 하면 구체적 타당성을 얻어 융통성 있게 해결할 수는 있으나 원칙이 무너져 사회적 불안이 생길 수 있다.

*자료: <고등학교, 법문사, 사회교과서, pp.234-235>

이 교과서에서는 노사분규를 해결하는 제 3자로 중립적인 정부를 설정하고 있고, 친절하게도 경제계의 우려까지도 담아내고 있네요. 하지만 노동자들이 왜 정리해고를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기하게도 단 한 줄도 없습니다.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한 순간에 해고되어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입장은 온데간데 없고, 자본의 입장만이 편향적으로 서술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중앙진흥교육연구소 교과서 355쪽에는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조 조정과 관련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삽화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정부의 반노동자적 정책만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호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사협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두산교과서도 있지요. 이렇게 교과서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끈끈한 노사협조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발전의 디딤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타 등등

이 외에도 천재교육 교과서의 경우 ‘일상생활에서의 정치’라는 주제 아래 사회 갈등의 여러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다른 사례들의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예를 선정하였으나, 노동과 관련해서는 ‘노동조합의 집행부 사람들이 주도권을 둘러싸고 싸움을 하였다’라는 유달리(!)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예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이러한 것들은 사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이러한 예, 삽화 하나하나가 바로 하나의 이미지로 쌓여 졸업할 때쯤이면 누구나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린 빨간을 원한다.

빨간 닷 컴.

 공통적인 것은 어떤 사회과 교과서를 보더라도, 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말하는 대신,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노동자들의 파업은 사회 전체에 손실을 주는 이익행위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요. 따라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은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바로 우리들처럼, 노동자와 파업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은 전혀 가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그동안 몇몇 상어들을 위한 파란 나라에서 파란 책을 들고 파란 내용들만을 공부해왔으니 조금만 다른 시각의 내용들만 접해도 빨갛게 *_* 보이는 것이지요. 저희는 다시 한 번 되묻고 싶습니다. 빨간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오히려 몇몇 상어들에게 좌지우지 되는 사회가 아니라 많은 물고기들을 위한 사회가 되는 것이 빨간이라면, 우리는 파란이 아닌 빨간을 원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이야기들 많이 나눠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