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ss
- 구르는돌
- 2016
-
- 고병권, <살아가겠다> 발췌독.
- 구르는돌
- 2014
-
- 박재순, <다석 유영모> (현...(1)
- 구르는돌
- 2013
-
- 여왕의 교실 (2013.07.19)
- 구르는돌
- 2013
-
- 나부터 행복하고 보기. (201...
- 구르는돌
- 2013
얼마 전 방송된 골드미스다이어리에서 송은이는
성대모사를 제대로 못하는 신봉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신봉선씨는 능력에 비해 너무 떴어요. ㅋㅋㅋㅋ"
난, 이 말을 미안하지만 우석훈에게 들려주고 싶다.
요즘 그가 수많은 책을 순식간에 뚝딱뚝딱 내놓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 중 몇개를 읽어보고 생각을 바꿨다. 조한혜정이 이 책의 추천사에서 쓴 것처럼 우석훈은 약간 수다맨 기질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딱히 창조적인 수다라기보다는 요즘 가수들이 즐겨하는 리메이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좀 노골적으로 말해서 자기표절의 냄새가 많이 난다. 사실 뭐 자기가 다른 책에서 썼던 문장을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는 없지만, 사실상 비슷한 주장을 말을 다양하게 변주해서 이 책 저 책에 담는 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 실력없는 아이돌 가수도 기획사를 잘 만나면 초특급 스타로 발돋움 하는 것처럼, 그도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니 그 정도 책을 쓰는 것 같다. 물론 출판사가 아무나 붙잡고 '지원 해 줄테니 책 좀 써봐라' 한다고 누구나 그 정도의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몇 년 안에 이렇게 책을 '쏟아낼' 기회가 이 한사람에게 집중되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심각한 듯 하다. 자기가 본 영화, 만화책, 심지어 삼국지 얘기까지 끌어대지만 결국 하려는 얘기는 이 책에서나 저 책에서나 비슷비슷한 책을 써내는 거라면 아무리 뛰어난 수다맨이라도 그에게 이렇게 책 낼 기회가 집중되는 건 좀 아니다 싶다. 노무현 정권 때였다면 그나마 예전에 진중권이 하던 것처럼 방송이라도 하나 따내서 수다라도 떨 텐데 요새 상황이 지저분하니 우석훈에겐 그런 기회도 안 오는 듯... ㅠ.ㅠ
물론 나는 우석훈이 실력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 난 <직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서는 참 많은 걸 배웠다. 생태의 문제를 이토록 보편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처럼 20대의 문제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내가 불편한 것은 그의 장점은 대중적인 '화법' 이상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치 진보담론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 처럼 포장된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서적 출판도 전적으로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88만원세대>를 10만부 이상 팔면 출판사 레디앙을 망하지 않게 할 수는 있겠지만, 우석훈이 말하는 '샤넬'식의 혁명에라도 근접하게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20대 문제에 관하여...
난 이미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20대이고, 앞으로 3년 동안은 계속 20대일 것이다. 그리고 20대 문제를 고민한다는 게 단지 생물학적 20대만이 아니라 소위 '장기20대'를 고민하는 문제라면 내가 사회 초년생으로 버벅대고 있을 30대 초반까지는 그 '장기20대'의 자장안에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20대 문제를 고민하는 어떤 글도 남 얘기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이 20대 문제를 논하는 글들은 항상 대학생 문제만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것도 (명시적이진 않지만) 서울 4년제 대학을 보편적 형태로 놓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도 매우 그렇다.
나는 <88만원 세대>에서 실업계고 졸업한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는 꼭지를 보고 가장 공감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아예 그 부분이 빠져버렸다. (아마 그 부분은 박권일이 썼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연세대 일부 학생들과 함께한 수업의 결과물이라서 그렇겠지만, 그런 만큼이나 이 책이 포괄하는 20대에 대한 논의 범위도 한계적이다.
스펙경쟁과 쿨함으로 무장한 20대의 자기 정체성이 어디가 한계이고, 어디부터가 급진적일 수 있는 것일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떤 대답도 못 내놓고 있다. 그저 알바노조나 만들어 보라는 떡밥만 던질 뿐...
댓글 목록
들사람
관리 메뉴
본문
박권일씨는 뭐하구 계실까요. 박권일씨가 애초 가졌었다던 문제의식을 이 참에 함 독자적으로 펼쳐보이는 것도 좋을 듯한데 말이져.ㅋ전 사실 우석훈씨 보면, 그가 언뜻언뜻 내비치는 '유연한 제스쳐'가 좌파적 실천의 외연 확장을 의도하기보단, 그저 어정쩡해서 그런 것 뿐 아니냔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ㅎ 그렇네 아니네 해도 제 생각에 우석훈씨한테서 건질 거 딱 하나 거론하라면, '계급(혹은 공통된 계급의식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사회성원들 간의 '문화적 부대낌'이란 측면에서 다뤄보려 했다는 점 아닐까 해요. 일테면 어떻게든 정규직노동자로 살아보겠다고 '분투'하는 아버지와, 비정규직노동자로 살게 뻔한 아들이 '하나의 (노동)계급'으로 어울리기 어려운 조건에 대해 어떻든 운을 뗐달까.. '계급'과 '문화'의 접붙이기, 혹은 '어울림의 계급론'이랄 수 잇을라나요?ㅋ; 물론, 맹아적 형태라지만요.
박권일씨가, 더구나 일찍이 세대론적 접근법이 '불가피하게' 입힌 당의였다고 밝혔던 차에, 우씨는 뮝기적대는 이런 측면을 끝까지 밀고 나가봤으면 좋겠다 싶은 게 바로 그래선데.. 글쎄, 어떨는지.ㅋ
부가 정보
구르는돌
관리 메뉴
본문
계급형성이라는 주제를 사회성원들 간의 문화적 부대낌이란 측면에서 다뤄보려 했다는 것은 무슨 말이죠? 저는 그런걸 잘 못느꼈는데... 어떤 책의 어떤 부분을 보고말씀하시는 건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가 정보
들사람
관리 메뉴
본문
아, 그런가요. 하긴, 우씨가 낸 책이 몇 권인데 막연하게 말해서야 누구한테도 득될 건 없겠네여.ㅋ; 그거야 물론, 박권일씨보단 우씨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줬던 <88만원 세대>를 두고서 하는 말입죠. 제 생각으로는, 20대인 친구들에 초점을 맞춰(바꿔 말함, 분명 20대만 겪고 있다곤 할 수 없는) 1987/92년 이후 '발전'된 축적의 사회적 조건과 맥락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에 그런 쪽으로 논의를 확장시킬 단초들이 있다고 봤거든요. 맹아적이라고 했다시피, 그런 확장된 논의가 이 책에서 이뤄졌단 얘긴 물론 아니구요.^^:좀더 구체적으론 이 책 2부 1장 내용에서 그런 단초들을 봤어요, 전. 더 까놓고 말하면 문체상 우씨가 아니라 박권일씨가 집필한 게 확실해 보이는 대목들에서요.ㅋ 박씨는 우석훈씨와의 대화를 통해 배운 많은 것들이 집필을 뒷받침했다고 에필로그에 썼고 그래서 고맙다고도 했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게 자문만 받고 단독저자로 원고를 썼음 메시지가 더 분명했겠다고 할까.
전 우씨가 자신이 '경제학자'라는 일종의 인식론적 전제를 의도 여하를 떠나 강조하는 것이, 경제'학'적 틀 내에서 분석해도 현실은 얼마나 문제적인지 보여주려 함인 건 알겠지만 그 바람에 '해법(들)'이라 할 만한 게 모호해지는 문제를 아울러 안고 있다고 보거든요. 정말 중요한 건 주류 경제학 문법에 자신이 얼마나 능숙한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푸는 '현실적인 해'가 그 문법만으론 도출 불가능하다거나 적어도 매우 불충분함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자꾸 전자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논지 자체도 모호해지는 거 같구요. '경제학적 균형'을 추구하게 마련인 주류경제학적 공진화 논의가 '세대간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학적 균형의 뉘앙스와 자꾸 겹친달까요. (다른 책에서도 그렇지만) 어떤 땐 살짝, 별 쓸모 없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도 같고.ㅋ 뭐 물론, 자칭 3류 경제학자라고 하는 게 이런 방법상의 난점을 스스로 알기에 둘러치는 수사적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요.
실재하는 정치경제 비판이 층위가 다른 언어적 실재라 할 주류(정치)경제학 비판과 불가분의 관계인 이상, 우씨가 최신의 경제학 논의를 통해 현실을 다루려 하는 건 그 자체론 문제가 아니죠. 부르주아지 이론 진영의 담론적 갱신 상황을 소개한다는 면에서 보면, 분명 미덕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도 봐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럼에도 우씨의 이런 논의는 박권일씨가 펼쳐보이려는 지도를 안정되게 받쳐주는 탁자의 위상 정도였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거죠.ㅋ
요컨대, 차라리 우씨 논의는 옅게 깔고서, 박권일씨가 펼친 논지와 주장들을, 계급과 문화가 "제3종 근접조우"할 수 있는 실천적인 해는 뭘지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서 밀고 나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 비판'이 지닌 장점은 커지고 단점을 작아지는 식으로 얘기가 펼쳐질 수도 있잖았을까.. 하는 거죠.
저로서야, 꿈보다 해몽 아니냐는 힐난을 각오하곤 있지만, 적어도 그런 꿈을 꾸려는 시도로서 봐줄 순 없겠나 싶더라구요.^^: 이를테면 "세대론이야, 아님 계급론이야?" 식의 익숙하고도 어찌 보면 좀 난감한 질문 방식에서 쏙, 빠져나와서 말이죠.ㅋ 소위 '세대 차이'의 발생 맥락을 내적으로 고려하는 계급형성 이론은 과연 불가능하겠냐는 얘기기도 합니다. 그저껜가요? 블로그진에 올랐던 에릭 올린 라이트의 글에서도 나왔지만, 계층론적 접근의 '합리적 핵심'을 계급론적 접근에 녹여낸다 해서 계급론적 접근 특유의 분석적, 실천적 유효성이 약화, 상쇄되는 건 결코 아니잖겠냔 얘기기도 할 테구요.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