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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의 반론

지행네트워크의 하승우씨와 네 글에 대한 이태경씨의 반론이 오늘 프레시안에 실렸다.

 

"언제까지 반자본·도덕적 엄격주의인가"

 

뒤의 '도덕적 엄격주의'라는 공격은 아마도 내 글을 향하고 있는 듯 하다. 솔직히 나도 지난번 기고가 게재된 이후에 좀 마음이 찝찝하긴 했다.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분석을 인용하면서, 사유는 인간의 '의무'라는 점을 분명히하는데까지는 좋았으나, 뒤에서는 약간 오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 나는 '인간'이라는 용어를 얼마간 철학적인 개념으로 사용한 건데, 읽는 사람 입장에선 그저 '저 놈은 인간도 아니야'라는 비난성 멘트랑 다를 바 없이 읽힐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나는 별 생각없이 '임직원'을 직원은 빼고 임원만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했는데, 사전적 의미도 그렇고 다른 이들의 글에서도 그렇고, 그 단어에는 삼성의 일반 노동자들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오 마이 미스테이크!!! 혹여나 나의 글을 읽고 불편하셨던 삼성의 노동자들에게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글쓰기의 세밀함이 부족했던 문제였던 것이고, 그 표현이 단지 세밀함의 부족인지, 진심인지조차 구분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태경씨의 '삐툴어진 사상' 덕분인 듯 하다. 그는 글 말미에서 "실존적인 인간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가 진보ㆍ개혁진영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겨우 내가 지향하는 인간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라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만다. 대체 이런 변명이 인간의 실존적 이해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냥 솔직히 말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건 아니고? 김용철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도 그 놈의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 구조본 간부의 이야기가 실렸던 기억이 난다. 다들 그런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산다. 이태경씨는 혹시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걍 닥치고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닌지?

 

언제까지 반자본, 도덕적 엄격주의를 고집할꺼냐고 다그치는데, 오히려 나는 언제까지 그렇게 자기 편한대로만 문제를 선별해서 보고 근본적 문제를 우회하는 '사상적 기회주의'를 고수할거냐고 묻겠다. 사실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특정 개인을 찝어내어 "저 놈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 만큼 속 편한게 어디있겠나? 그런 면에서 反MB나 反이건희나 다 똑같긴 매한가지다. 무노조 경영과 황제식 경영으로 대표되는 삼성식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건희가 만들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군산복합체를 앞세운 전쟁기계 미국이라는 제국은 조지 부시 혼자 만들었나? 조지 부시 물러나고 나니 미국은 좀 살림살이 나아졌나?

 

삼성경제연구소는 괜히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삼성 장학생들도 허수아비는 아니다. 걔들이 이건희가 물러난다고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하면서 낙향해서 인생을 관조하며 살려고 할까? 정말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이건희의 황제식 경영이 없어지면 삼성은 좋은기업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지배구조의 문제는 얼마간 해결될지 모르겠으나, 삼성이 초일류 그룹으로 성장하려 하면서 빚어낸 '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태경씨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구?" 지금까지 그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들만 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답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이윤을 위해 노동력을 구매하여 잉여를 수취하는 활동은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문제될게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혹여나 그 과정에서 부당한 문제들(이를테면 박지연씨 사례 같은 것)이 발생한다면 그건 부당한 지배구조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노동과 자본과의 관계에선 처음부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니 결국 그는 하승우의 '자본주의 너머를 꿈꾸자'는 주장도 탐탁치 않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몇 십년동안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맹신하던 일본의 경제학자가 최근 경제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라는 제목의 책까지 쓰는 마당에 자본주의 너머를 꿈꾸는게 무슨 쌍팔년도 구닥다리 유품 뒷다리 만지는 것이라도 되는냥 말하는 그의 확신에는, 확실히 21세기 자본주의 변화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자신의 정세에 대한 둔한 감각 때문에 자기 상상력을 제한하는 거야 말릴 수 없지만, 남이야 자본주의 너머를 꿈꾸든 말든 제발 냅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웃긴건 "혹시 하 활동가가 자본주의 체제 하의 국가를 마르크스가 말한 "부르주아지들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라고 하는 부분이다. 그게 왜 염려되는가? 자기 말대로 자본주의 국가는 북구 유럽처럼 국민들의 집합적 의지에 의해 조직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러면 그건 그냥 생각이 다른거지 염려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가만 보면 이 양반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비슷한 구절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 같다. 부디 그대안의 색깔론을 성찰해 보시길 바라오.

 

게다가 "사익추구집단으로부터 권력을 탈환해 대한민국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 의무가 있는 진보ㆍ개혁 진영이 반(反)자본주의 혹은 포스트 자본주의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집권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러 말 필요없이 이런 대답이 필요하다. "집권이 그렇게 좋으면 혼자 하세요." 사익추구집단으로부터 권력을 탈환한다고? 이 사람의 권력과 집권에 대한 상상력은 딱 구소련적이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가 권력을 탈환한다면 그들은 또 다른 사익추구집단일 뿐이다.

 

반론 글을 또 보낼 생각은 없다. 프레시안 지면상에서 이태경씨가 너무 수차례 까여서 좀 불쌍하기도 하고, 지면상에 그의 이름이 수차례 거론되는것도 그닥 좋은 일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끝으로 이태경씨 글에 대한 댓글 중에 완전 공감되는게 있어서 옮겨적는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삼성만한 기업은 수없이 많았고 사라진 기업도 부지기수다. 불매운동과 상관없이 저물어가는 삼성이 보인다. 삼성의 정점은 이미 끝났다. 지금의 서프라이징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환율조작, 납품가 압박을 통해 국민의 이익, 하청업체의 이익을 갈취한 것에 불과한 것이고 혁신에 의한 결과가 아닌것만 봐도 삼성은 이미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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