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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까지 중국 농촌지역에 전(前)자본주의적 사회경제관계와 신사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근대중국사의 흐름 속에서 부르주아 혁명운동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번성할수 있느 조건을 만들어내는 역사적 임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유재산 폐지를 목표로 하던 공산당에게 주어졌다. 물론 이런 역사적 역설이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부르주아 정당들의 실패로 농촌의 부르주아 혁명은 볼셰비키가 주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소련역사의 첫 10년은 자본주의적 농민의 등장과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에서 농촌의 부르주아 경제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으며, 농촌의 부르주아 혁명을 완수했던 바로 그 정권이 다시 부르주아 소유권을 파괴하는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갖는 아이러니의 하나는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부르주아 혁명운동의 좌절이 오히려 사회주의에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부르주아 혁명이 이전에,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이 권좌에 오를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조성되기 전에 성공했다면, 두 나라의 농민은 자신의 작은 자작농지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보수세력이 되어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1789년 혁명에서 보여주었던 프랑스 농민의 급진주의는 이후 한 세기 이상 정치적 보수주의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 왕조는 농민왕조다"라는 냉소적인 논평을 했다. 이에 반해 토지혁명이 늦어져 사회주의 혁명과정과 동시에 또는 그 일환으로서 이루어진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러시아의 경우, 새로 탄생한 농민 소지주는 스탈린 정권의 집단화에 저항할 만큼 강한 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중국혁명의 경우 그 정치적 이득은 훨씬 컸다. 러시아의 볼셰비키와 달리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으며 농촌사회 깊숙이 조직적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집단화과정에서 중국농민의 저항은 아주 미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급진적인 사회개조를 적극 지지했다. 중국에서 농업의 사회주의화는 소련과 현저히 다르게 진행되어갔고 그 사회적/정치적 결과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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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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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나죠ㅋㅋㅋ근데 너무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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