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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만(논설위원) / 2008년11월24일 18시07분
그런데, 브레튼우즈체제를 대체하는 개념으로서 신브레튼우즈체제는 자본이동 규제와 자본감독 기능의 강화를 초월하는 개념이다. 미국과 달러중심의 금융질서인 브레튼우즈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신브레튼우즈체제라고 명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신브레튼우즈체제는 확립될 수 있을까?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각국은 꽤 신속하게 공동대응 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동시에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통화스와프를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담을 열고 자유무역에 대한 옹호, 금융규제의 확대에 대한 각국의 공감대를 확인하였다. 이어 23일 폐막한 APEC 정상회담에서도 ‘세계경제에 관한 정상성명’이라는 특별성명을 채택했다. “향후 12개월 내 서비스와 상품 무역 및 투자에서 새로운 장벽을 추가하는 조치 등을 자제키로 한다”며 보호주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G20 정상회의를 지지하며, 금융시장에 대한 더 효과적인 규제와 감독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도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런 각국 정상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브레튼우즈 체제는 요원해 보인다. 여러 문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없다. 문구의 거품을 빼고나면 미국 등 주요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것을 우려해서 (최소 1년간이라도) 자유무역을 유지해 달라는 호소(!)와 금융규제에 대한 ‘공감대’ 뿐이다.
이런 상황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신흥시장국의 힘겨루기 정도로 상황을 왜곡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미국이 양보하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가 확립될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브레튼우즈 체제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하고 금본위제도가 붕괴했다. 2차대전 말기 1944년 미국 브레튼 우즈에서 주요국가들이 모여 순금 1온스=35달러로 금태환을 유지하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미국 달러에 각국 통화를 고정시킨 고정환율제도를 형성하고 IMF와 세계은행을 설립하여 국제금융질서를 확립해 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브레튼우즈 체제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말미에 특수한 상황에서 형성된 국제금융질서다. 1929년 이후 10년간의 대불황이 세계대전으로 발전하였다. 최근 폴 크루그만 교수가 인정했듯이 루스벨트의 공황탈출은 뉴딜로 성공한 정책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재건과정을 통해서 극복되었다. 2차 대정 중에 미국은 대부분의 전쟁 군수품을 생산하였고 이를 금으로 거래하며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전체 금 시장의 72%를 보유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생산과 자본스톡의 엄청난 축소 그리고 미국의 금 보유를 바탕으로 한 기축통화로의 인정 속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 신브레튼우즈체제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형성될 당시와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만족하는 것이 있는가?
전례없는 위기만큼이나 전례없이 확장된 파생금융상품은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른다. 추측키로 파생금융상품 총액은 약 6백조 달러에 달한다. 전세계 총GDP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신용부도스와프(CDS)만 하더라도 90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어느천년에 ‘금융규제’만으로 청산시켜 나갈 수 있는가? 2차대전후 세계경제가 수 십배 넘게 확대되었는데 미국이건 유럽이건 중국이건 그 어느 나라가 과연 금태환을 조건으로 기축통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금태환같은 조건없이 화폐만을 믿고 기축통화로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60년전 브레튼우즈 체제 논의당시 케인스 주장대로 세계중앙은행을 만들어 단일통화체제로 개편할 것인가? 이 구상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세계중앙은행은 ‘상호 합의’ 하에 통화를 어떻게 분배할 수 있을까?
현재 과잉자본과 과잉생산이 일정규모 이하로 청산되지 않는 한, 자본이동의 규제를 강화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는 꿈도 꿀 수 없다. 이 청산은 각국별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임과 동시에, 국가 간에는 총성없는 전쟁과도 같은 대결이다. 게다가 지금은 불황의 초입일 뿐이며 이 대결은 상당기간 벌어질 전망이다. 보호무역에 대한 끊임없는 우려는 거꾸로 이런 상황에 대한 (암울한) 암시적 전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침몰하는 배의 마스트 꼭대기에 앉아서 우리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 백승욱,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中 "옮긴이의 말" 중에서
공지영 저 | 풀빛 | 1989년 12월 초판 발행
책소개
80년대라는 특별한 시기에 20대를 맞아 '정의'라는, 그 추상적이고도 지순한 이름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젊은이들의 이야기. 시대와 역사를 거슬러 올라야 했던 청춘의 방황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겨웠던가를 드러냄으로써 그 '방황' 속에서 일구어내는 어둠 저편의 내일은 또 얼만큼 아름답고 값진 것인가를 이 소설은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작가 소개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창작과 비평〉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시대와 사회의 모순을 개인의 삶 속으로 수용하면서 진지하고 치열하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소설들로 주목받아 왔다.
사회 변혁이라는 거대 명제 앞에서 고뇌하던 80년대 청춘들의 삶을 이야기한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와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을 비롯해 여성 문제를 90년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끌어올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등을 발표하며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밖에도 작품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와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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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공지영 소설에 매료되어 공지영의 초기작품인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까지 읽게 되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 만큼 재밌지는 않은것 같다.
이 소설에서 민수라는 여자는 흡사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보는 것같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리고 운동써클에 들어가 사회와 역사의 모순에 눈을 떠 데모질에 나서고... 짭새들에게 잡히면 아버지 빽으로 훈방되고... 여기에 적절한 삼각관계 연예까지... 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방황'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방황하고 있다. 열성적인 운동꾼이었던 인경은 돈많은 남자와 결혼하려고 하면서도 옛 애인인 지섭과 그와 같이 했던 치열했던 고민했던 시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섭은 군대를 제대했지만, 인경은 다른 남자와 결혼 하려 하고 주위에 수많은 동료들은 소리없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끌려가선 주검으로 돌아오고, 몰락한 집안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민수를 비롯한 야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넌 기꺼이 민중이 될 수 있겠니? 기꺼이 노동자가 될 수 있어?" 라는 어이없는 선민의식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공지영의 초기작품이 잘 다듬어 지지 않아서 일까? 인물들은 계속해서 푸념만 늘어놓는다. 술마시고 토악질을 해가며 치열하게 문제의식을 쌓아가긴 하지만...
민수의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의 방황은 이해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이 어두운 죽음의 시대에 결코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고."
그래... 우리에게 방황은 더이상 미덕이 아니다. 나에게도 내 방황이 아름답길 바라던 그런 시기는 이제 없다. 나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박노자 저 | 한겨레신문사 | 2002년 06월
저자소개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책소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박노자가 두번째 책을 펴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박노자는 이번 책을 통해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노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다. 특히 외국 매춘부들의 인권까지 지식인들의 주요 의제가 되고 있는 지식인 사회의 선진성과 교육, 병역, 인권 등 사회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목차
1부 또 다른 세계 북유럽
북유럽을 가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
유럽사회의 이면
제3세계에 대한 이중 잣대
인종차별과 민족주의
3부 반폭력 평화를 위하여
악의 씨앗, 폭력에 반대한다
테러리즘을 보는 또다른 시각
양심의 권리가 더 신성하다
폭력을 거부하는 마음은 인간의 동심이자 본심이다
- 보론 :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노르웨이, 유럽,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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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빌려온 정말 재미없게 생긴 두권의 책(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자본론 연구)을 뒤로하고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박노자 선생님의 책을 먼저 읽었다. 역시 박선생님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다. 정말 감동 감동★☆♥♡♣♧
흔히 우리가 서양 역사를 볼때 주로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보곤 한다. 영국은 초기 자본주의에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던 나라로서, 독일은 악명높은 파시즘 히틀러 때문에, 프랑스는 현대 시민사회를 추동한 각종 혁명이 있었던 나라로서...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노르웨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추상적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정도로??
이 책만 보면 노르웨이는 정말 세계 최고의 인권, 복지, 평등, 자유의 나라이다. 왜일까? 그건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기" 때문이다. 좌우, 그러니까 사상과 신념의 차이는 인정하고 그래서 보수정당도 있고, 사회주의 좌익당도 있지만, 상하관계, 체통과 체면, 권위를 중요시하지 않는 노르웨이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공산당 기관지에 보조금을 지급할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시위와 데모가 일상적인 사회생활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 누가 학생이고 누가 교수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민주적이며, 학생이 교수의 수업방식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을 해도 결코 피해를 받지 않는다.
이 책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노르웨이 사회의 장점, 또는 그 이면일수도 있고, 이를 통해 고찰 해 볼 수 있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전쟁, 평화, 폭력, 양심적 병역거부, 여성문제 등등등....
박노자의 책을 보면 일관되게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서구의 사회진화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근대화를 이룬 서구 사회는 그 논리를 그대로 제3세계 아시아, 중동 등에 이식하려 한다. 그러면 꼭 그는 한국 근대사를 집고 넘어간다.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등 개화파 근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근대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서구의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배껴와선 한국 민중들을 핍박하고 압박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당연히 친일, 친미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고, 우리 고유 문화의 가치들을 너무나도 쉽게 용도 폐기 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전통문화의 보수성'이란 생각도 조금은 재고 해 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이 있어 소개하겠다. 노르웨이의 의사인 길베르트와 후숨은 아프간 탈레반 테러리스트들의 행위에도 나름의 명분이 있다라는 주장을 해서 노르웨이에서 이슈화 된적이 있었다. 그들은 이런 예를 든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무자비하게 침략한 1982년에 나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그때 환자 중에 '타리크'라는 레바논 소년이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아이의 부모와 가족, 친척과 친구들을 섬멸해 버렸다. 타리크는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 수술을 여러 번 거듭한 끝에 그를 어느 정도 치료했지만 끝내 오른손은 못 쓰게 됐다. 그런데 그 애는 말도 안 하고 음식도 안먹었다. 완전히 절망한 것이다. 어느날 나는 그에게 의욕을 주기 위해 '왼손으로 총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아니는 그야말로 살아났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싸움에 몰두하다 죽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 '싸우지 말라'난 말을 할 수 있는가? 싸우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그 아이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박완서 -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 중단. 1970년「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나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단편집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한 말씀만 하소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이 있고,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이 있다.
또한 동화집 <부숭이의 땅힘>, 수필집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살아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노릇 사람노릇>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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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인가...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꿈꾸는 인큐베이터"란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된 농담이야 좀 느낌없이 읽었지만,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게 만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글이었다. '낙태'를 경험하는 한 여성이 겪게되는 갈등과 고통, 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뤄지는 생명에 대한 단절... 이것이 얼마나 한 개인의 삶의 곡선에 상처를 입히는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꿈꾸는 인큐베이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출판연도는 "그대 아직도..."가 좀 빠르긴 하지만 어쨌든...) 상처한 한 남자 혁주와 이혼한 여자 문경의 만남. 그리고 그들간의 불행을 암시하는 듯한 정사. 여자는 임신까지 했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외면하고 돈많고 순종적인 여성과 재혼한다. 그러나 재혼한 여자는 매번 딸만 낳고 결국엔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까지 하게 되어 더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런데 혁주와 그의 어머니는 문경이 끝내 고집을 피워 낳은 자식이 아들임을 알고 다시 문경에게 접근하는데...
"그 애에게 거는 저의 가장 찬란한 꿈이 뭔줄 아세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여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능멸해도 된다는 그 천부의 권리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남자로 키우는 거죠. 그 꿈을 위해서도 그 애는 제가 키우고 싶어요." - 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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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 -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1988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1999년 '늪'으로 21세기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원미동 사람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슬픔도 힘이 된다>, <모순>,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천년의 사랑>, <천마총 가는길> 등의 소설과 산문집 <따뜻한 내 집 창 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삶의 묘약>, 장편 동화 <누리야 누리야 뭐하니>, 육아 에세이집 <엄마노릇 마흔일곱가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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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검색하다가 이 책의 제목을 문득 발견하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본 제목인데... 아, 내가 고등학교때 읽었던 소설이었다. 주말드라마 소재로 많이 나올법한 내용인데... ㅎㅎ 그냥 그 때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뭐 그리 나쁘진 않았던 듯...
우리누나는 디빵 재미없다고 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정가 - 7,000원
출판사 - 작가정신
지은이 -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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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자면... 전대협 & 한총련 소설이다. 한총련 아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는 90년대 학생운동에 불어닥쳤던 온갖 파도와 바람이 뒤엉켜져 있다.
사실 이 소설도 살짝 기분이 나쁘다. 어제 서점에서 봤던 최영미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었을때랑 비슷한 기분이다. 뭐 책에 딸린 서평에는 숱한 후일담 문학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하지만(다르긴 한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공지영의 소설처럼 가슴아픈 기억으로 절규하는 그런 내용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땐 그랬었지, 그리고 그 다음은 여백으로 처리해 버리는 위트를 발휘했다고 평하면 될까?), 후일담 문학과는 다른 씁쓸함을 남긴다.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건 도대체 뭔가? 역사는 돌고 돈다? 80년대 학번들이 90년대 학번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90년대 학번들이 2000년대 학번들에게, 그것도 그 낡은 틀인 '한총련'을 부여잡고 있는 후배들에게 최영미의 시에서 처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를 외치는 것 같았다. 그래,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지... 다인이가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서 386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깜이 떨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그녀가 십여년전에 간직했던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는 이유는 뭔가?
71년생 다인이가 그런 정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 출생의 시기가 전태일열사의 분신, 유신체제 등장, 그리고 고3때 쯤 선생님들이 전교조한다고 잡혀가고... 뭐 이런 이유때문인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렇다고 마치 운동의 한 순환이 마감했다는 듯이 씁쓸한 표정으로 2000년대를 바라보는 그 소설적 재치가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소설 말미에 여운을 남기긴 했지만.... 다석이가 다시 다인이 누나처럼 열혈 운동권이 되어서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
아, 하지만 이놈의 소설이라는 것들은 왜 이렇게 맨날 운동을 이렇게 오래 씹어서 지겨워진 껌처럼 뱉어내기에만 바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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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재미없어?난 요즘 공지영 책보면서, 초기작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초기작부터의 공지영의 흔적들을 추적하면서
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지금의 나의 생각들은 어떻게 변해갈까를
좀 점쳐볼려고-
처음에는 명예와 돈과, 권력들을 모두 우습게 비웃었던 사람이
'작가가 되려면 돈을 벌어라'라고 (물론 글자 그대로 읽으면
심대한 오독이야ㅋㅋ)말하기 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 궁금해... ㅋ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