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일부 애국주의 운동권들의 코메디 (추가)

이번 황우석 교수 파동에서 사회운동 진영도 여러 입장에서 접근했다. 쟁점이 복합적인 만큼 나름의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논점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운동진영에서도 매우 '독특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NL 계열의 인터넷 매체인 '자주민보'에 실리고 민주노동당 內 NL도 제기했다고 하는 시각인데, '애국주의'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 내용을 직접 살펴보면서 황당하기 이를데 없었다.

 

아래는 '자주민보' 주요한 기사와 논평들.

피디수첩의 배후를 밝혀라

피디수첩이 살길은 2차검증 철회뿐

우리는 네이처와 섀튼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할 것이다

민족 무시하면 민의 버림받는다

엠비씨의 사과 이정도로 안된다

 

압권은 아래 소위 '논평'

난자기증 연구원의 진심을 믿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서구의 잣대로만 보지 말아야"한다나 뭐라나.. 푸하하..

 

글 하나하나가 코메디다.

"피디수첩의 배후를 밝혀라"라는 글의 부제는,

"아무래도 미국이 의심스럽다"

이다.

 

이들이 비록 NL의 일부분일 뿐이라 하더라도 남한의 주요 사회운동 세력인 이들의 수준이 겨우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대중의 애국주의 열광 그대로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심지어 그것으로부터 '배우라'고 말한다. 애국주의 열광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 미국의 음로로 치부된다. 여성에 대한 천박한 사고를 보면 이들이 과연 사회운동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입장이라면 마치 1920년대 독일의 국가주의적인 좌파들이 나치를 지지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파시즘이 다른 형태로 부활할 위험이 있는 시기에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위험하다.

 

이런 노골적인 애국주의 입장이 아니라도, 민주노동당의 생명윤리 문제제기로 인해서 논란이 커질 때, 이를 '적당히 하라'고 제지한 권영길, 주대환을 비롯한 민주노동당의 주요 인사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권영길 대표는 ‘황우석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보여준 빛나는 성과에 대해 당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후에 당 환경위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황우석 관련 권영길 임시대표 모두발언에 대한 중앙환경위원의 입장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이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은 '국민의 지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런 기회주의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아마도 이후에도 이런 쟁점이 아닌 다른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도 이들은 이런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당내 정치에 있어서나 사회적 쟁점에서나 이런 식의 기회주의로는 영영 3류 정치세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쉽게 대중추수적인 정치행태를 보이면서 진보정당의 정책, 이념적 지향도 희석시켜 갈 것이다.

 

모든 것이 명백히 밝혀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도 '자주민보'류의 '애국자'들은 '진실'이 '미제의 음모'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진실'의 편일지 '거짓'의 편일지가 아니라 '미제'의 편일지 '거짓'의 편일지 선택해야하나? 자기비판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이들이니 또 그냥 넘어가겠지만, 우리 운동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나마 이번 파동으로 인해서, 모든 정치세력의 또 다른 본질이 낱낱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하나..

 

-----------------------------------------------

 

이 글을 쓰고나서 '자주민보'실린 더 황당한 댓글들을 보게 되었다.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데 한번 가서 살펴보면 경악하게 될 것이다.

댓글 살펴보기

 

이들의 '애국주의'에 입각한 황우석 지지 태도를 비판하는 글에 대해서 '이창기'라는 기자의 댓글이 예술이다.

 

"피디수첩 1탄의 의혹정도로는 굳이 언론에 터트리지 않아도 될 문제였으며 영국과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언론보도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1조원이나 주겠다고 하면서 오라는 미국에도 가지않고 민족의 기초과학을 위해 일하는 황우석 교수팀에 대한 예의의 측면에서도 좀 심한 보도였습니다.
피디수첩의 보도가 사실은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진실은 민중과 민족의 이익에 복무할 때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지극히 나라를 사랑하는 한 과학자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아프게 할 수 있는지, 텔레비젼에 나오는 슬픔이 어린 눈을 볼 때마다 아무런 힘을 줄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습니다."

 

라고 한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이런 태도를 보면 이런 자들이 아무나 '미제의 간첩'이라고 비방하고 숙청하더라도 전혀 양심의 꺼리낌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사고 방식이 한심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우석의 연구결과 조작과 관련된 몇가지[보완]

아래는 퍼온 그림. 해도 해도 이 정도면 너무 치졸할 것아닌가? 포토샵으로 조작해서 다른 사진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건데, 이런 건 도저히 실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의도적인 조작일 수밖에.

 

▲ 한 누리꾼이 공개된 황우석 교수 논문의 사진을 토대로 세포의 동일성 여부를 분석한 사진. ⓒ2005 디시인사이드

링크들 :

+ 이미지 더 크게보기   

+ 그림이 올라와 있던 디시인사이드게시물 (원래는 BRIC 게시판에 올라온 건데, 댓글들을 보면 연구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알수 있습니다. 참담한 거죠.)

 

서울대 젊은 교수들이 재검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버티는 것을 보면, 역시 과학자 사회에도 과학보다 강한 것은 과학자 사회의 권력과 이와 연결된 권력-자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과연 얼마나 더 명백하게 드러나야 검증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할지, 원.

그 밖에도,

* 황우석논란에 대한 정리-펌글 모음(pssp게시판)

* 황우석의혹 총정리 (최원님 게시판) 

* 디씨인사이드에 실린 더 쉬운 버전

* 개념정립을 위한 작은 가이드(디시인사이드)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한 글도 있습니다. BRIC 사이트 게시판에 실린 글 : DNA fingerprinting 데이타 살펴보기

아래는 위 분석에서 논란이 되는 그래프를 포토샵으로 비교한 것

http://board6.dcinside.com/zb40/data/science/1133964234/g12.jpg

황교수팀이 연구를 포토샵으로 했다는 식의 비아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역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토샵이 좋기는 좋군요. 크..

 

디씨인사이드 과학겔러리에 가면 배꼽잡고 웃을 수 있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울할 때 한번 둘러보면 재밋습니다.

 

보도를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오고 있군요. 대략 줄기세포 성공이 11개가 아니라 3개 이하에 불과하다는 것, 혹은 아예 하나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참세상기사: 한학수PD, "진실이 묻혀서는 안됩니다")도 있습니다.

 

김아무개 연구원은 진실을 말하면 검찰수사 대상에서 빠지도록 제보자 보호를 하겠다는 피디수첩의 제의를 받은 뒤 ‘지시를 받고 사진 2장을 10장으로 불렸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서 부담을 느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한겨레신문/국가기관에서 신속한 재검증을]

 

이 내용은 10일 YTN뉴스를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단독] '김선종연구원이 줄기세포 사진조작 YTN에 숨겨'

다만, YTN의 이런 보도는 상당히 치사한 짓인데, 이미 자신들도 알고 있었지만 숨겼던 것을 이런 식으로 번복하려고 하는 것같습니다.

 

한편, 9일~10일 간밤에 새로 제기된 내용으로, 줄기세포 사진들이 겹친다는 것을 밝혀낸 그림들이 있습니다. <링크모음 보기> 이 사진들을 보고 어떤 사람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퍼즐 종합정리: 7=8, 3=8, 5=6, 9=11, 7=11, 5=10, 4=7, 이 방정식을 풀면 3=4=7=8=9=11, 5=6=10, 그런데 2번 줄기 세포와 논문에는 사진 한장 없는 12번 줄기 세포까지 다 넣더라도 최대 가능한 줄기세포는 2,3,5,12로 압축됩니다. 그런데 논문 정정 내용을 보면 5, 6, 7, 8, 12 번 줄기 세포는 마지막 줄기세포 검사에선 fail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3,5,12 는 제대로 된 줄기세포가 아니니까 제외하고 2번 줄기세포도 1차 검증 때 DNA 불일치로 나왔습니다. 그럼 결국 남는 줄기세포 개수는? 0 입니다

 

라는 겁니다. 거참..

(이 내용은 다음날 아침에는 프레시안 기사로 떴습니다. 日인터넷 게시판 "줄기세포 중복사진 3쌍 더 발견"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결국, 황우석 교수가 후속논문으로 검증하겠다는 것은, 막대한 국가적 지원과 대중의 난자공여를 토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도박 혹은 '공격경영'을 하려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번 논문은 다소 무리하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관심을 끌어내고, 추가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그 담에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적 투자와 경영이라는 게 다 그런 방식인데, 다만 그런 논리를 과학연구에(어차피 생명과학도 가장 첨단의 비즈니스가 되었으니까 뭐 마찬가지죠) 도입하려 했겠죠. 황우석은 그런 점에서 과학자라기 보다는 비즈니스맨으로 보이는군요.

 

문제는 대중들이 이미 이런 입장을 수용하면서 윤리적 문제가 있든 없든, 05년 논문이 진실이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다는 식의 입장들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자신을 속인다는 것을 알고도 속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수가 없습니다.

 

여튼간에, 논문의 진위여부도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의심없이 황우석 교수를 맹신하는 대중들을 보면 참 대중의 상상-이데올로기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하는 것을 매번 다시 느낍니다. 과학이든 진실이든 사실이든 아무 관계없다는 식이 반응들인데, 파시즘도 이렇게 해서 가능했겠지요.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상황 일지와 문제점 등에 대해서 잘 정리한 글이 있군요. 추천.

황우석 논문 진위 논란 - 디씨과갤판 그것이 알고 잡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意思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영복, [나무야나무야] 중에서

 

▽ 그림은 '더불어숲'(http://www.shinyoungbok.pe.kr)홈페이지에서 빌려왔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수상자 인터뷰>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정병환 위원장

축하축하! 매일노동뉴스에서 펌.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58357

 

<수상자 인터뷰>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정병환 위원장
"어려운 사람들 절박함이 조직화로 이어져"
 
 ⓒ 매일노동뉴스
 
“없는 사람들 사정이야 어려운 사람이 잘 알지요.” 14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한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의 정병환 위원장은 설립된 지 8개월여에 불과한 신생노조가 전국노동자들의 모범으로 선정된 저력에는 ‘동변상련’의 마음가짐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안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영세 중소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의지하고 힘을 합치다 보니 설립 당시보다 조합원 수가 4배로 늘었다.


12일 전태일노동상 수상식 직후 정병환 위원장을 만나 수상소감과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의 비결,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수상 소감을 밝혀달라.
“죽어가는 세상을 다시 살린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열심히 투쟁하라는 의미로 알고 받았다. 올바른 투쟁, 힘 되는 투쟁에 앞장서겠다.”


- 신생노조라고 들었다. 어떠한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나.
“지방자치단체 소속 환경미화원, 대구지하철 비정규직, 장애인복지관 생활지도사, 놀이공원(우방랜드) 비정규직 등이 가입돼 있다. 쉽게 말해 공공부분 지역산별노조라고 보면 된다.”


- 지난 3월 설립됐다. 설립 취지를 알고 싶다.
“지자체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영세사업장 비정규직들이다. 나 역시 환경미화원 출신이다. 잘 알다시피 비정규직일 경우 노조 설립이 매우 힘들다. 또, 노조를 만들어도 규모가 작다보니 제대로 지켜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지역산별노조는 다르다. 노조를 만들었더니 스스로 노조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역의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결집하는데 산별노조의 강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


- 설립초기 100명의 조합원이 현재 400여명으로 증가했다. 비결은.
“없는 사람들 처지는 어려운 사람이 잘 안다. 우선은 ‘없는 사람들도 좀 살아보자’는 절박함이 작용했고, 이러한 절박함이 투쟁과 연대의 의지로 확산됐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 사이의 의지하고 힘을 보태려는 노력이 노조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 향후 계획은.
“우리는 현재 지역산별노조를 튼튼히 세워내는 과정에 있다. 산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년에는 지역의 단일한 요구안을 만들어 공동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싸우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quot;노무현식 민주주의 실상 보여준 방폐장 주민투표&quot;

경주가 핵폐기장 부지로 최종 선정되었다.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에 대한 독서일기에서, 부안핵폐기장 반대 투쟁의 가장 큰 의미 중에 하나는 민주주의투쟁이었다는 말을 했다. 부안 주민대중들은 자신의 민주적 권리가 유린되는 것에 분노하고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 결과 부안의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대중의 공동체(저자 고길섶은 '절대공동체'라는, 518 광주에서 연유한 개념을 사용한다)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경주 등 핵폐기장 투표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주의가 철저히 유린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하, 포퓰리즘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실상에 대해서 비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딱 맞는 글이 프레시안에 실렸다.

 

[프레시안] "노무현식 민주주의 실상 보여준 방폐장 주민투표"  
[긴급 기고]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보다 
 
민주주의로 가장한 투표행위가 철저하게 대중동원의 기제로 활용되었다. 대중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정치라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이번 경우에 정반대로 도치되었다. 노무현/열우당 등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다양한 정치행위에서 바로 이런 식의 기만을 행해왔던 것이다. 기표와 기의가 철저히 분리되고 대중동원에 유리한 형태로 언제나 편의적으로 왜곡되었다.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공학'이 개입되어왔다.

 

이번 핵폐기장 부지 선정 투표는 그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였다. 이번 투표를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시작되어야한다. 인민주의적인 대중동원의 기재로 활용되는 그들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비판해야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벽]의 홈페이지?

 
'러시아에 관한 명상'이라는 곡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우연히 노래 가사를 하나 검색하다가 발견한 사이트.
 
새벽의 홈페이지 혹은 팬페이지.
 
93년 공연의 전체 실황도 있고 가사도 전부 있는데, 음질은 너무 좋지 않아서 듣기 힘들다.

저 평등의 땅에
 
 
저 하늘 아래. 미움을 받은 별처럼.
저 바다 깊이. 비늘 잃은 물고기처럼.
큰 상처입어. 더욱 하얀 살로.
갓 피어나는. 내일을 위해.
그 낡고 낡은. 허물을 벗고.
잠 깨어나는. 그 꿈을 위해.
.....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저 넓디 넓은. 평등의 땅 위에 뿌리리.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
 
평둥의 땅에. 맘껏 뿌리리.
 
홈페이지의 코멘트 : http://dawn.logosia.com/204-dawn.html
 
 
참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부른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다는 점이 부끄럽다. dimitri형 소개 덕분에 '윤선애씨 어디 계세요"라는 타이틀의 비라이센스(?) 음반' mp3p에 넣어서 열심히 듣고 있는 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이해관] 강성은 언제나 변혁적인가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컬럼. 생각해볼만한 글이라 옮김.
 
전투적 경제주의가 처하게 되는 딜레마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좌파의 정체성을 거기서 찾으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투적 경제주의의 문제설정에 빠져있을 경우에는 협조주의 노선과 거울대당하게 되는 데, 사회적 합의주의를 둘러싼 논쟁에 좌파들이 올 상반기 내내 몰입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장칼럼>
강성은 언제나 변혁적인가 
 
“협조주의 노선은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 아닌 결과”
 
증시에 공시된 바에 따르면, 지난해 KT의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5,130만원이다. 이 금액에는 각종 복지혜택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면, 동일업무를 하는 KT의 하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체로 월 18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 금액은 통신수리공에게 필수적인 통신요금, 차량유지비 등의 비용이 포함된 액수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계산하면, 대체로 KT의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3배가 된다. 순수노동시장의 논리로 얘기하자면, KT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울타리가 제거된 채 노동시장에 내동댕이쳐질 때 임금이 1/3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현 KT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에 노동력 시장가격의 2배 정도의 초과이윤이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이해관
· 1963년생  · KT 해고자
· 전 KT노조 부위원장
·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기획위원(현)
 

물론 이 초과이윤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사실상 유선통신시장에서 독점적 성격을 띠고 있는 KT의 독점이윤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소비자로부터 얻은 초과이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하도급 업체와의 불공정 계약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력 가치에도 못 미치는 초과착취 임금에 기초한 것이다.
 
민영화 이후 KT는 공기업 시절과는 달리 독점적 지위를 적극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엄청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매출은 10조원을 훌쩍 넘어섰고 당기순이익은 꾸준히 1조원대를 유지하며 2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KT 정규직의 임금인상은 KT의 막대한 이익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2~3%에 머물고 있다. 민영화를 위한 해외매각이 시작된 1998년 1억5천만원에 불과했던 1인당 매출이 2003년 3억원을 넘어섰음을 감안하면 KT의 초과이윤 배분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은 매우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고용안정이 먼저냐, 임금인상이 먼저냐
 
이러한 낮은 임금인상에 대해 KT 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 소위 ‘민주파’ 활동가들은 ‘이러한 낮은 임금인상률은 사측의 협조세력에 불과한 무기력한 노동조합 때문’이라며 ‘강력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주장에 KT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정 정도 동의를 표한다. 실제로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의 발전에 비하면 임금인상이 형편없다고 느낀다. 특히 안정적인 고용보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로서는 당장의 임금인상이 절실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다. KT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에 노동시장에서의 시장가격보다 2배 이상의 초과이윤이 포함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다. 그래서 회사 발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인상에 대해 불만을 갖지만, 동시에 KT라는 기업이 제공하는 울타리가 아니면 현재의 임금수준이 유지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케이블TV, 초고속인터넷 등 새로운 유선통신 분야의 등장으로 통신수리공이 부족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와는 달리 지금은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통신수리공들의 임금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격차의 확대는 고스란히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구조조정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줄어든다. 초과이윤의 대부분을 자본이 챙기는 셈이다. 이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높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의 시장가격과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간의 격차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불만이 투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노동자들은 두 가지 노선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나는 강력한 노동조합을 통해 회사의 성장에 걸맞는 임금인상을 쟁취하는 노선, 이른바 ‘강성’ 노선이다. 이는 독점으로 KT가 확보한 초과이윤 배분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늘리자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력의 시장가격과의 차이 속에서 정규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금인상 등을 자제하며 회사 경영에 협조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KT의 초과이윤 창출에 적극 협조하자는 노선인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협조주의’ 노선이 우세해진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거의 동결 수준이어도 격차는 확대되며, 격차가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KT의 초과이윤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의 몫을 투쟁으로 확보하자는 강성노선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그 결과 노조는 점점 협조주의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왔다.
 
'강성' 노선과 '협조주의' 노선은 동전의 양면
 
그런데 많은 활동가들은 거꾸로 현장에서 협조주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강성’ 투쟁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조주의 세력의 강화는 위기의 결과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대기업 노조에서 외형상 매우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노선의 차이는 실제로는 초과이윤을 배분받는 방식 및 배분의 양과 관련된 전술적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두 노선의 외관상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두 노선은 현재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딜레마의 즉자적 반영에 불과하다.
 
협조주의 노선이든 강성 노선이든 두 입장 어느 것도 독점 대기업의 초과이윤의 원천인 독점이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하청 노동자간의 차별구조 그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는 한 지금의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지 않은가!
 
이미 KT의 구조조정 압박은 기업 내적인 데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KT는 여전히 돈을 잘 벌고 있고 부도날 위험도 전혀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하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를 계속 확대시키고 있고, 이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의 강력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은 기업 내 초과이윤 분배 차원을 조금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그 어떤 운동적 개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압박해 들어오는데, 그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이 기업 내적인 초과이윤 분배에 머문다면 승부는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노조원들은 강성 노선이든 협조주의 노선이든 노조가 지금 노동자의 삶의 딜레마에 대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이 차이가 굉장한 차이인 것처럼 주장한다. ‘강성=변혁적’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그래서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을 협조주의 세력 탓으로 돌리고 정작 자신의 운동노선이 초과이윤 내에 갇혀 있음을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초과이윤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 분배 방식에서 강성이냐 아니면 협조주의냐의 차이를 절대적인 차이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강성=변혁세력’임을 자위한다.
 
초과이윤에 안주하는 노동운동과 초과이윤을 문제삼는 시민운동
 
최근 민영화 이후 KT의 경영이 공공성을 외면하는 데 대해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의 문제제기는 KT의 초과이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KT가 막대한 이윤에도 불구하고 요금인하를 하지 않는 데 대해 문제제기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종량제 도입 반대, 사회 공공성을 위한 적절한 공공투자 확대 요구, 주주가치 중심의 고배당 비판 등 여러 각도에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공적 기업인 KT의 초과이윤을 주주들의 사적 소유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사회화 하라는 요구이다.
 
여기서 필자는 과연 어떤 운동이 더 진보적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초과이윤에 안주하는 노동운동과 초과이윤을 문제제기하는 시민사회 중 과연 누가 진보적인가! 노동자가 하는 운동이라고 다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의 진보성이 인정되는 것은 노동자가 자본주의에서 가장 착취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들이야말로 가장 착취당하는 존재이기에 자본주의 사회를 가장 철저하게 변혁시켜야 하는 역사적 사명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동자들이 하는 운동이어서 진보적인 게 아니라 노동운동이 보편적 인간해방이라는 역사적으로 부여된 사명을 수행할 때 진보적인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협조주의 세력의 발호 때문도 아니다. 노동운동이 근본적인 자기성찰을 게을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초과이윤 확보 방식을 둘러싸고 전술적 차이만을 절대화 했을 뿐, 사회 보편적인 관점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분할지배전략에 맞서 노동운동의 대응을 모색하지 못한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다.
 
스스로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독점 대기업의 필터를 통해 바라보는데 익숙해진 우리 활동가들의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충실히 실천하는 데서 변혁성을 찾기보다는 협조주의 세력과 대립에서 변혁성을 자위한 우리의 소심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우리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의 울타리 내에서 ‘강성=변혁적’이라고 자족하는 게 아니라, 사회변혁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노동운동을 재구성하려는 진지한 자기성찰이다.
 
 
이해관 전 KT노조 부위원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최원]비극의 의의 혹은 취중결론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에서 최원씨의 인상적인 메모를 퍼오면서 몇가지.
 
글을 옮기기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하자. 내 아이디 '겨울철쭉'은 PC통신이 막 활성화되던 시설에 만든 아이디이다. 당시에는 참세상도 텍스트기반의 '이야기'나 '새롬데이타맨'으로 접속하던 시절이었고 나우누리 '찬우물'은 운동권들의 플라자, 공론장이였다. 이 두 서비스는 한글 아이디를 제공했는데 그 때 만든 아이디다.
 
아이디는 '조국과청춘'이 불렀던 '녹슬은 해방구'의 가사 첫부분에서 따왔다. '조국과청춘' 1집이니까 92년이다. 92년. 지금이나 그때나 정파적 대립에 따라서 즐겨부르는 노래도 달랐지만, 이 노래는 좌파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녹슬은 해방구
- 글,가락 김석준

그 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동지들 흘린 피로
앞서간 죽음 저편에
해방의 산마루로 피었지

그 해 우리 춥지는 않았어
동지들 체온으로
산천이 추위에 떨면
투쟁의 함성 더욱 뜨겁게

산 너머 가지위로 초승달 뜨면
머얼리 고향생각 밤을 지새고
수많은 동지들 죽어가던 밤
분노를 삼키며 울기도 했던

나의 청춘을 동지들이여
그대의 투쟁으로 다시 피워라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조국 해방의 약속을
 
 
이 노래를 들으면 빨치산 투쟁이 마지막으로 치닫던 1953~4년의 겨울을 생각하게 된다.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서는 알수없는 감정에 빠지고는 했는데, 빨치산 투쟁의 그 비극성 때문이었다. 비극성. 그것을 사고해야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비극의 의미에 대해서 달리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예정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딜레마와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것 그 이상은 말이다.
 

비극의 의의는 어떤 혁명적 시도들의 실패의 장렬함을 보여줌으로써 이후 세대들이 유사한 길을 걷도록 촉구하는 데 있지 않다. 또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전 실패의 원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성공에의 보증을 이후 시도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증가시킬 것을 촉구하는 데 있지도 않다.
 
내가 이해하기에, 비극의 의의는 혁명을 원하는 그 모든 동일자의 법칙(혹은 확신)은 예기치 못한 타자의 법칙(혹은 확신)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며, 따라서 그 모든 혁명적 시도들은 항상-아직 '유한한 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만드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비극의 의의는 혁명적 시도 속에서 필연적으로 자신이 빠져들 그 모든 '확신'에도 불구하고, 왜 동일자가, 혁명의 주체가, 여전히 타자를 향해, 심지어 자신의 적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내는 운동을 행할 필요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비극을 실패에 대한 찬양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결국은 마찬가지 이야기겠지만) 끝내 도래하여 그 모든 실패들을 '보상(redeem)'해줄 성공에의 촉구로 이해하는 것은 모두 종말론적이고 결단론적인 비극 이해일 뿐이다. 하이데거와 벤야민이 공유했던 이 위험한 코드를 반복하지 말 것.
 
혁명은 '목표'가 아니라 '정세'일 뿐이라는 점, 우리는 혁명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정세로서의 혁명 속에서 수행하거나 수행할 수 없는 다수의 곤란한 목표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볼 것. 그리고 혁명 속에서 수행하거나 할 수 없는 다수의 목표들이 문제인만큼, 혁명은 여전히 어떤 '정치'가 가능해야할 공간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것. 만일 혁명이라는 정세가 정치가 불가능해지는 정세로 둔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혁명이 아니며 가장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것. 혁명 속에서 무엇이 정치를 가능하게 만드는가, 혁명 속에서 정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또 다른 정치는 어떤 것인가를 사고할 것.
 
"우리에겐 반역해야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인식하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강물 에어컨이라는 아이디어

티코님의 [강물 에어컨] 에 관련된 글.
 
덧글을 따라가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강물에어컨, 강물을 이용해서 도시를 식히자는 아이디어라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외국의 대도시에서 이미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름철 냉방용으로만 쓰기 위해 25조원 이상을 들여 12개의 원전을 만들어 가동시키고 있는 셈이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거 원, 원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은 다양하게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원전을 또 짓자고 방폐장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놈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침해월례특강21 - 인민주의(populism) 비판

과천연구실에서 새책이 나오나 보군요. 아침해가득핀땅에서 월례특강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
 


인민주의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가와 정치제도를 '적'으로 규정하는 '원한의 정치'를 통해 대중을 동원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경제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파괴적인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인민주의는 대중의 능동적·자율적 진출을 확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민주의 정치는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표방하는 사회운동과 이단점을 형성합니다.

강의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인민주의를 역사적으로 규명합니다. 먼저 소유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분화되는 자유주의·보수주의·사회주의라는 현대 정치의 3대 이념과 구분되는 인민주의의 특성을 추출합니다. 인민주의는 '장기 20세기'를 특징짓는 축적체계의 순환에 조응하여 나타나지만, 각각의 국면에서 정치적 내용을 달리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20세기 말 유럽통합에 대한 부정적 대응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유럽 인민주의를 분석합니다. 인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유럽통합에 저항하는 세력의 일부이지만, 배타적 인종주의와 퇴행적 민족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대안세계화 운동과 이단점을 형성합니다. 유럽에서 예외적으로 집권에 성공한 인민주의자의 대표적 사례로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미디어를 활용한 이미지 정치의 가능성과 동시에 정치위기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부분은 인민주의적 전통이 뿌리깊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분석합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인민주의 세력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따른 경제위기가 극심한 상황에서 대중의 원한을 효과적으로 동원합니다. 이 지역 인민주의 세력은 인민주의적·민족주의적 수사를 활용하여 도탄에 빠진 인민의 구원자임을 자임하지만, 집권과 동시에 다른 어떤 정부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추진합니다. 이는 인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한 정치적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네 번째 부분은 남한의 인민주의를 간략하게 발제하고, 이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토론을 진행합니다.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인민주의(populism) 비판
과천연구실 - 정인경, 박정미, 박상현, 윤종희

일시: 8월 29일부터 2주간 월,화,수요일 오후 7시 ∼오후 11시 (총 6회)
8/29(월), 8/30(화), 8/31(수), 9/5(월), 9/6(화), 9/7(수)

:::::::::::::::::::::::::::::::::::::::::::::::::::::::::::::::::::::::::::::::::::::::::::::::::

- 교재: 정인경·박정미 외, {인민주의 비판}, 공감출판사 (근간)

- 일정
1강 8월 29일 인민주의의 역사 / 정인경
2강 8월 30일 유럽의 인민주의 / 박정미
3강 8월 31일 이탈리아의 인민주의 / 박정미
4강 9월 5일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 박상현
5강 9월 6일 아르헨티나의 인민주의 / 윤종희
6강 9월 7일 종합토론

---------------------------------------------------
- 정원 : 40명
- 회비 : 50,000원 (사회단체 활동가 및 대학생 30,000원)
- 예약 : 070-034522-04-017(기업은행 김상일) 입금 전후 연락 바랍니다.
---------------------------------------------------

문화카페 아침해 가득 핀 땅
우 151-834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6동 858-5 (2호선 서울대입구역 8번 출구 첫 골목 15m)
전화 885-6905 전자우편 citizencafe@chollian.net
http://civilite.hihome.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