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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제임스 본드 '다니엘', 잘 할 수 있을까?

 

 

새 제임스 본드 '다니엘', 잘 할 수 있을까?
007시리즈 21편, <카지노 로얄> 내년에 개봉
텍스트만보기   박형준(ctzxp) 기자   
논란이 많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은 애정을 가진 시리즈와 캐릭터를 꼽자면, 역시 007 시리즈와 제임스 본드는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외모는 물론이고 능력까지 탁월하면서 적당히 인간적인 매력까지 안고 있어,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이렇게 친숙한 캐릭터는 생각보다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단한 제임스 본드에게도 다소 거부감이 드는 모습은 있다. 사실 나는 바람둥이로 소문난 제임스 본드가 아름다운 여자들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자들에게 정신을 빼앗기다 뒤통수를 맞고 기절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에 묶여져 있는 그의 모습은 요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느끼한데다가 그 패턴도 너무 일정해서 질린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차이다. 어쩌면 이 장면의 코믹한 분위기 때문에 제임스 본드를 더 좋아하는 마니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주연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던 007 21편 <카지노 로얄>이 드디어 내년에 개봉한다. <카지노 로얄>은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의 데뷔작이자, 그가 제일 아꼈다고 전해지는 시리즈인데, 그래서인지 이안 플레밍은 007 시리즈의 제작자인 해리 샐츠먼-알버트 브로콜리 콤비에게 영화화 판권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카지노 로얄>은 이안 플레밍의 사망 이후 그 유가족이 판권을 미국 측 제작사에 넘겨 엉뚱한 코미디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마니아들은 이 영화를 007 시리즈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카지노 로얄>은 그 시리즈만큼이나 새롭게 6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된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선이 대부분 부정적이라는 것인데, 이전의 제임스 본드들에 비하면 그의 외모 자체도 매력적이지 않거니와 결정적으로 그의 이미지가 독일 병정에 가깝다는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는 듯하다.

사실 그의 캐스팅 이전에 출연이 유력했던 배우는 <엑스맨> 시리즈의 휴 잭맨과 <킹 아더>의 클라이브 오웬, 그리고 <폰 부스>의 콜린 파렐이었다. 특히 콜린 파렐은 피어스 브로스넌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심리적인 연기에 능숙한 배우이기 때문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기 좋은 배우라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기본적으로 그 액션의 소화나 긴 촬영 기간, 그리고 실패 이후의 뒷감당 등 고려할 부분이 많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유명배우들이 기피하기도 한다.

▲ 6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된 다니엘 크레이그
ⓒ2005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

숀 코네리도 007 시리즈에 출연하기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고, 스타로 부각된 이후에는 여러 번 출연 의사를 번복했던 전례가 있었다. 그가 이따금씩 출연을 번복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힘들어서'였다고 한다.

게다가 로저 무어는 이안 플레밍의 추천이 말해주듯이 '너무 잘 어울려서' 이미지 변신에 실패했고, 조지 라젠비와 티모시 달튼은 '너무 안 어울려서' 실패한 이후, 지금까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연기 변신에 성공해 노년기에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숀 코네리는 다양한 영화에 다양한 캐릭터로 출연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지금의 그 위치를 만든 것이다. 콜린 파렐이나 기타 많은 배우들의 거절에는 그런 이면이 숨겨져 있다.

M과 Q, 그리고 미스 머니페니가 없다면 제임스 본드는 없었다

▲ 가장 매력적인 '미스 머니페니'였던 로이스 맥스웰
ⓒ2005 MGM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007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혼자서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고 만들어지는 시리즈가 아니다. 제임스 본드의 곁에는 M이 있고, Q가 있었으며, '미스 머니페니'가 있었다. 이들은 등장하는 시간은 짧지만, 언제나 제임스 본드의 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양념의 역할을 하면서 시리즈의 재미를 만드는 일조해왔다.

이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캐릭터는 당연히 '미스 머니페니'라고 볼 수 있겠다. '미스 머니페니'로 출연한 로이스 맥스웰은 원래 남편이 심장병에 걸린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테렌스 영 감독에게 출연을 사정해 '미스 머니페니' 역을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로저 무어와 애매한 로맨스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말할 수 없이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이후의 '미스 머니페니'인 캐롤리안 블리즈와 사만다 본드는 '미스 머니페니'라고 보기에는 다소 경박해 보인 덕분에 결국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캐롤리안 블리즈는 하필이면 그 당시의 제임스 본드가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티모시 달튼이었기 때문에 그 시너지 효과(?)가 만만치 않았다.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은 현재 중견 여성 배우인 쥬디 덴치가 맡고 있다. '여성'이라는 그 자체에서 이색적이었던 쥬디 덴치는 놀라울 정도의 품위와 냉철함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캐스팅으로 평가받는다. 쥬디 덴치의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중견 탤런트인 반효정 씨와 다소 비슷해 보이는데, 이렇듯 품위와 냉철함을 겸비한 여성 배우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때로는 통제가 안 될 정도로 톡톡 튀는 제임스 본드를 능란하게 제어하는 그녀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또한 Q라면, Q로 등장한 데스몬드 리웰린의 영화 인생 그 자체였다. 007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인 그는 2편부터 19편까지, 총 18편의 007 시리즈에 출연해 특유의 재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왔는데, 만 85세의 나이로 007 시리즈 19탄인 <언리미티드>에서 간접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작고했다고 한다. 배우로서는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그에게 몰렸던 많은 애도에서는 007 시리즈에서 보였던 노익장과 함께 톡톡히 양념의 역할을 해주던 그의 엉뚱하면서도 순수한 유머를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아쉬움의 뜻이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이루어진 Q의 소개로 새로 무기발명가 역할을 맡은 R역의 존 클리즈는 영국의 유명 코미디 그룹인 '몬티 파이손'의 멤버라는 사실에서 말해주듯이 원래부터 코믹 연기에 능숙한 인물이기 때문에, 다행히 Q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어느 정도 해갈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쥬디 덴치와 존 클리즈의 맹활약을 기대한다.

말도 안 되는 팝콘 영화로 변질된 007 시리즈의 해답은?

한편으로 007 시리즈는 그 액션과 스펙터클의 비중이 커지면서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스펙터클의 확대에 치중하면서 지나치게 말이 안 되는 설정은 물론이고, 악당조차도 매력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우주복을 입고 있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이 이 영화의 황당함을 말해준다.
ⓒ2005 MGM
007 시리즈의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는 영화는 11편인 <문레이커>다. <문레이커>에서 제임스 본드는 전 세계도 좁은 것인지 활동 영역을 아예 우주로 확장한다. 무중력 공간에서 열심히 악당을 물리친 뒤, 늘 그래왔듯이 '본드걸'과 포옹을 나누는 장면은 007 시리즈의 마니아가 봐도 더 이상 할 이 없는 장면으로 손꼽히기로 유명하다. <문레이커>는 그나마 덩치가 어마어마할 정도로 크고, 힘도 무척 셌던 악당인 '죠스'가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소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이색적이었기 때문에, 무난한 영화로 기억남을 수 있었다.

17편인 <골든 아이>의 악당도 언론 조작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킨 뒤,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에 불타는 미디어 재벌이 등장하면서 그 황당함의 깊이를 더했다. 제임스 본드의 존재 근거였던 '스펙터(SPECTRE)'와 냉전 체제가 사라진 뒤, 그 정도가 더 심해진 악당들의 황당함은 결국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북한의 등장과 함께 절정에 달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공상 과학 영화처럼 변질돼가고 있는 007 시리즈의 새로운 화두는 '복고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쿠엔틴 타란티노가 '피어스 브로스넌이 다시 출연한다면'이라는 조건과 함께 연출을 원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많은 기대가 몰렸던 이유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상 복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굳이 007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스펙터클과 액션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시대에서 원래부터 정통 스파이 영화였던 007 시리즈가 무리하게 스펙터클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007 시리즈가 다른 영화와의 구별되는 뚜렷한 개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정 그렇게 믿을 만한(?) 악당이 없다면 다시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부활시켜 다니엘 크레이그와 대결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블로펠드는 역대 007 시리즈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악당이었고, 그런 만큼 향수까지 느껴지는 악당이기 때문에 부활이 이루어진다면, 마니아들로서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면 가장 개성적이었던 악당인 '죠스'도 다시 모습을 선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라는 것은 주인공도 그렇지만, 일단 악당이 벌이는 일이 기본적인 현실성이 깔려 있어야 하고, 악당들이 '현실 속에서 살아 있어야' 더 큰 매력이 느껴진다. 지금의 007 시리즈의 악당들이 벌이는 일은 너무 말이 되지 않아서 관객으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내용들이 많은 편이다.

영화는 그 규모가 작더라도 얼마든지 깊이를 추구할 수 있는 장르다. 007 시리즈의 초기작 3편은 시끄러운 총성과 화려하게 펑펑 터지는 폭발 없이도 인상적인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모범답안이 된 영화다. 결국 007 시리즈는 그렇듯 미래를 위해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숙제가 남겨진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 크레이그는 어려운 때에 '독이 든 성배'를 들게 된 셈이다. 제임스 본드는 과거의 전형성과 함께 본인의 개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진정한 성배를 들 수 있는 어려운 캐릭터다. 하지만 <골든 아이>의 연출 경험도 있는데다가 조로 시리즈를 통해 액션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마틴 캠벨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안 플레밍이 가장 아꼈다는 시리즈라는 사실에서 <카지노 로얄>의 경우 하드웨어는 잘 받쳐주는 영화다. 이 하드웨어의 매력을 잘 살릴 수 있는 핵심은 결국 배우, 그중에서도 새롭게 중심에 선 다니엘 크레이그가 얼마나 무난하게 제임스 본드를 소화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몰리고 있는 부정적인 견해엔 한편으로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우리의 예측은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에 비하면, 의미를 찾기 힘든 해답 없는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독이 든 성배'를 다니엘 크레이그는 어떻게 마실까? 영광스러운 술이 담긴 성배로 만들어 마실지, 아니면 독을 마시며, 티모시 달튼의 뒤를 이을지, 그 이후는 오직 그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조금 더 풍부한 표정으로, 그리고 조금 더 여유 있게.'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으면서 잊어서는 안 될 좌우명이다. 그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처럼 어둡고 경직된 분위기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다면, 그 이후는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모든 것은 그에게 달려 있다. 그가 숀 코네리만큼이나 최고의 제임스 본드가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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