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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맞은 <전영혁의 음악세계> 디스크자키 전영혁

 

 

 

20주년 맞은 <전영혁의 음악세계> 디스크자키 전영혁

 

[씨네21 2006-01-23 09:00]    

 


전영혁은 과묵한 DJ다. 인사말조차 변주에 인색하다. 한결같이 “<전영혁의 음악세계>입니다”로 새벽 2시를 열고, “디스크자키 전영혁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로 3시를 고한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처럼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그가 날마다 반복하는 오프닝과 끝인사는 성경의 “태초에…”와 “아멘”처럼 들릴 지경이다. 그럼 그 사이는? 오직 강 같은 음악의 은총이 넘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살가운 말 한마디 모르는 디스크자키 전영혁의 이름은, 그의 청취자였거나 청취자인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전영혁과 얽힌 기억을 질문받은 사람들의 눈은 순해지고 뺨에는 홍조가 오른다. 음악 때문에 불면의 청춘을 보낸 30대, 40대라면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프로스트식으로 말해 그들에게 DJ 전영혁은 “자작나무를 탔던 한때”의 표상이다. 어쩌면 그들의 서랍 구석에 잠들어 있는 낡은 테이프에는 서툰 녹음 솜씨 탓에 카멜이나 클라투의 음악 끝자락에 묻어난 청년 전영혁의 음성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회고조의 말투는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도 새벽마다 노를 저어 20주년(2006년 4월29일)이라는 푯대에 다가가고 있는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현재를 한낱 후일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냉정한 체하는 디스크자키(전영혁은 가벼운 느낌의 DJ보다 디스크자키라는 또박또박한 호칭을 선호한다)가 20년간 해온 일은 그러니까, 결국 대화였다. 그에겐 말이 아니라 선곡이 곧 청취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엄숙한 비평 행위였다. 전영혁은 지난 연말 손수 돈과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전영혁의 음악세계> 20주년 기념음반’ 1천장을 찍었다. 4장의 CD를 담은 재킷 안쪽에 쓴 글 끝에 전영혁은 ‘새벽의 등대지기’라고 서명했다. 적당한 비유였다. 등대지기와 한번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그 바다를 항해한 이들은 등대의 추억을 공유한다.

전영혁은 김민기, 양희은과 같은 1952년생 용띠다. <월간팝송> 편집장을 거쳐 1986년 KBS 제2FM <25시의 데이트>로 디스크자키 일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간판은 <1시의 데이트> <전영혁의 음악세계>로 바뀌었고, 중도에 시간대 문제로 SBS FM으로 터를 잠시 옮기기도 했지만 전파가 외면한 좋은 음악을 알린다는 원칙엔 미동도 없었다. 공영방송의 관점에서 보나 FM의 본분이라는 관점에서 보나, 귀중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는 방송국 안 누구도 이의가 없으나, 나서서 더 많은 귀가 깨어 있는 시간대로 옮기려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현재다. 마니아를 육성한 마니아 전영혁은 근본적으로 수집가가 아니라 나누는 사람이다. 인터뷰가 결정되자 동료 문석 기자는 <월간팝송> 애독자 시절 잡지에 소개된 데이비드 샌본의 초기 음악이 궁금하다는 엽서를 보냈더니, 전영혁이 공테이프에 샌본의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줬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내가 ‘음악적 자선’이라는 표현을 쓰자 디스크자키는 ‘음악적 YMCA’라는 농담으로 받았다.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생활은 그의 몸에도 흔적을 새겼다. 타고난 예민한 청각과 밤새워 음악을 듣는 습관은 그를 만성적인 불면증 환자로 만들었고 그 불면은 알려진 대로 청취자에게로 감염됐다. 약속 시각 2시간 전, 앞당겨 만나면 일찍 끝낼 수 있지 않겠냐는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나는 그가 녹음 중인 KBS 스튜디오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조심스러웠던 마음은 음악 한곡이 끝나기도 전에 녹아버렸다. 전영혁은 천진하고 뜨거웠다. 동시에 내가 아는 누구보다 ‘순수하게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앞당겨진 약속을 가리켜)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싫어하시나 봅니다.

=그건 아닌데 제가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봐요. 요즘 유서도 썼어요. 내용은 별것 없고 땅이 부족하면 화장을 하라는 정도. 장기이식은 제 몸이 약해 도움이 안 될 것 같고요. 20년 방송을 했으니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건강도 안 좋아졌고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쫓기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싶은 거죠.

-역시 CD로 일일이 음악을 트시네요. 요즘은 파일로 내보내는 시스템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요?

=아, 그건 바쁜 연예인 DJ들이 쓰는 거죠. 그 사람들은 또 TV에 나가 게임도 하고 그래야 하니까. 나는 아무리 바빠도 절대 파일로 안 해요. 청취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 사이에 멘트만 집어넣고 가버리면 그건 도둑이죠.

-한곡씩 트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시는군요. CD도 방송국 자료가 아니라, 개인 소장 음반이죠?

=방송국 라이브러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안 잘린 거죠. (웃음) 음반 구입 예산은 자료실에 책정돼 있는데, 거기에는 제 프로그램에 소용될 만한 음반은 한장도 없어요. 제가 좋아서 자청한 일이라고 여겨 지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지도 모르죠. 별로 슬프게 생각지는 않아요. 원래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모든 것이 슬픈 나라잖아요.

-방송을 하면서 그런 슬픔에 익숙해졌습니까?

=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학교에서 배운 거랑 달랐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거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고, 그냥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디까지 왔나 줄곧 헤아리면서 방송하진 않으셨겠지만 언제부터 20주년이라는 지점을 의식하셨나요?

=15주년부터요. 10주년 되던 해 내가 할 일은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고, 15주년 이후로는 안락사 준비를 생각했어요. (웃음) 제가 <나무를 심은 사람>과 <스노우맨>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전영혁의 음악세계>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으면 했어요. 애청자 중에서 한 사람이 제 후계자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FM으로 돌아가려면 돈이 아니라 음악에 미친 사람들이 해야죠. 그런데 우리 애청자는 음악은 많이 알지만 인지도가 없어 방송국에서 과연 캐스팅을 해줄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몇곡이나 전파에 실어 보냈는지 세어보신 적이 혹시 있나요?

=(담담히) 오늘이 1월5일이니까 6181회네요. 곱하기 평균 10곡 하면 대략 맞을 거예요.

-영화 잡지에서 일하다보니, 어쩌다 거금의 액수를 접하면 “그 돈이면 영화 몇편 찍겠다, 몇편 보겠다”고 무의식적으로 계산을 합니다. 선생님은 시간과 돈을 음반과 음악으로 측정하시겠죠?

=음반 구입비는 한달에 300만원 정도예요. 버는 대로 다 쓰는 거죠. 방송해서 번 돈은 다 음반을 사고 개인 생활비는 원고료로 충당했어요. 1986년부터 1996년까지 5대 메이저 음반사의 해설지를 제가 거의 다 썼거든요. 신문, 잡지의 칼럼도 썼고요. 음반 한장당 10만원쯤 받고 한달에 50장 정도를 썼어요. 그러다 11년째부터 건강에 무리가 와서 원고를 안 썼죠.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한테는 꿈의 라이프 스타일로 들리겠는데요.

=부럽긴 하겠지만, 요즘 애들은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누가 전문가인지 아닌지를 연봉 액수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니까요. 예컨대 박찬호 선수는 LA다저스에 있었으면 엄청난 기록도 세우고 자동으로 더 많은 돈도 받았을 텐데 스콧 보라스라는 매니저를 만나 ‘장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봐요. 진짜 프로는 연봉이 1천만원이라도 잘 던져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제가 한국 최고의 DJ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마 제가 돈은 가장 적게 받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 불만도 없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제 잘못이 아니거든요. 저는 제 잘못이 아닌 것은 신경쓰지 않아요. 전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적은 청취자들에게나마 최고로 인정받으면 성공하는 거예요. 젊은이들에게는 돈은 1억원이면 그것을 목표로 정해놓고 그것이 채워지면 그 다음부터는 벌지 말고 하고픈 일에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인생을 적재적소에 쓰도록 신경쓰는 게 중요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목표를 정했어요. 비틀스가 그때 나왔거든요. 사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왔지만 그땐 제가 아직 목표를 정하지 않았죠.

 


비틀스 듣고 중1 때 인생의 목표를 정했어요

-확실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인생에 가속도가 붙죠. 그렇다면 최초로 산 음반도 비틀스였나요?

=비틀스의 첫 음반이 제가 처음 산 음반이죠. 수련장, 전과 산다고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사러 갔어요. 비틀스 음악을 듣고 학교 선생님들이 왜 고전음악만 들으라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클래식 아닌 음악도 클래식만큼, 아니 더 좋은 곡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죠.

-그 말씀은 클래식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는 의미겠네요.

=부자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가족 모두 음악을 좋아했어요. 제 첫 오디오는 아버지의 축음기였어요. 아버지는 클래식, 형은 재즈를 좋아했죠.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소개해 히트한 쳇 베이커도 큰형이 제 앞에서 트럼펫 연주를 흉내내던 뮤지션이에요. 음악하면 굶는다고 하던 때라 큰형은 다른 전공으로 고려대에 들어가 연고전 때 브라스밴드로 응원을 했죠. 저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덕에 형이나 누나들과 달리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죠. 형과 누나가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제게 음반을 사다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내 음악’으로 적극 발견한 음악은 비틀스가 처음인 셈인가요.

=묘하게도 비틀스는 제 학창 시절과 내내 같이했어요. 비틀스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데뷔해 고2 때 해산했죠. <러브 스토리>에 보면 음대생인 제니퍼가 “난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비틀스를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작가 에릭 시걸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용감한 일이었지만 지금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 중 비틀스를 연주 안 한 오케스트라가 어디 있어요? 클래식은 장르를 불문하고 좋은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보통 한 뮤지션을 좋아하게 되면 그 음악이 다른 음악의 문을 열어주는데요.

=비틀스가 해산했을 때 죽고 싶었어요. 대안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절망했을 때 다행히 나를 구원해준 것이 킹 크림슨이었어요. 가 든 데뷔 음반이 딱 그때 나와 바통을 받은 거예요. 록의 역사가 참 극적이었죠! 저도 웃기는 사람인 것이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3J-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처럼 27살에 죽을 줄 알았죠. 군대 다녀와 백수 생활을 할 무렵인데, 27살의 12월31일 밤 잠도 안 자고 죽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별일없이 28살의 새해가 와서 굉장히 좌절했고, 이후로는 정상인의 생활을 했죠. (웃음) 그때까지는 미친 듯 음악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미친 듯한 생활이 역설적으로 후일 제 자산이 됐죠.

-결정적으로 음악이 구원이나 위안이 된 기억도 있습니까?

=비틀스의 <화이트> 음반이 그랬어요. 지금도 고전음악을 포함한 모든 장르를 통틀어 <화이트>가 최고의 음반이라고 생각해요. 그 음반은 컨셉 자체가 천재적이었어요. 하얀 재킷에 ‘더 비틀스’라고 엠보싱으로 찍어 점자처럼 만져야 알 수 있고요. (동작이 커지고 목소리가 들뜬다.) 게이트폴드식으로 펼치면 네 멤버의 흑백 사진과 곡명이 들어 있고, 비틀스의 사생활에 대한 사진 콜라주와 가사로 이루어진 벽에 붙일 수 있는 종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 음반 한장을 안으면 너무너무 행복해요. 또 그때 음악을 그만하기로 결심한 마지막 음반이라서인지 네 사람의 개인기가 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천재들의 집대성인 동시에 이후에 등장할 후배들- 킹 크림슨의 프로그레시브, 레볼루션 9 같은 전위음악, 헬터 스켈터 같은 헤비메탈 음악까지 제시했어요.

-예나 지금이나 음악 정보를 어떻게 구하는지도 선생님에 관한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일 텐데요.

=음악적 정보. 그게 제일 힘들었죠. 실은 정보를 구하느라 진을 빼서 제가 몸이 약해진 것 같아요. (좌중 웃음) 클래식은 음대도 있고 교수도 있으니 맘만 먹으면 되지만, 팝은 학교도 선생님도 없으니 힘들었어요.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다 명동에서 나왔다고들 해요. 무슨 말이냐면, 예전 명동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음반, 잡지가 유통되는 가게가 수십곳 있었어요. 외국을 나가지 않으면 그 길뿐이었죠. 매일 수업이 끝나면 명동으로 출근을 했어요. 다른 데는 용돈을 쓸 여유도 없었고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첫 직장은 태창영화사 수입부였죠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셨고, 영화사가 첫 직장이셨죠?

=고전음악만 다루는 음대에는 애초 뜻이 없었어요. 언제든 배우고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이 많이 남고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과를 찾다가 운이 좋아 응용미술학과에 합격했어요. 저는 한때 음악, 미술, 문학이 제 생활에서 뗄 수 없는 같은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와 <데미안>을 비롯한 헤세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어려서 작고 약한 사람도 성장해 세상에 나가서는 다른 위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영화도 너무 좋아해서 시험날은 3편씩 영화를 보는 날이었어요. 첫 직장도 영화를 실컷 보고 싶어 들어간 태창영화사 수입부였죠. 제가 입사할 무렵 홍세미를 캐스팅해 70mm 춘향 영화를 찍은 곳이고 김종원 영화평론가, 이호철 작가가 제 상사였어요.

-당시 직접 수입한 영화 중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으세요?

=<닥터 지바고>요. 흥행 보너스도 많이 받았죠. 우선 음악이 무척 좋았고 제랄딘 채플린과 줄리 크리스티 두 여성의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당시 제가 수입하려던 영화 중에 레드 제플린의 도 있었는데, 군사정권 때라 장발, 퇴폐라고 부결됐죠.

-요즘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자주 영화를 보신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제가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을 무척 좋아해요. 지지난해 부산영화제, 그리고 씨네큐브 앙코르 상영에서 전작을 두번씩 다 봤어요. 특히 최근작 <울부짖는 초원>은 감독의 모든 능력이 응집된 작품 같았어요. 영화를 보면서 음악 정보도 많이 얻어요. 엘레니 카라인드루 음악도 앙겔로풀로스 영화를 보고 소개했고, 왕가위의 <에로스> 음악도 영화보다 먼저 소개했어요. 어렵게 구한 <룩앳미> 음반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제 고등학교 합창단 시험곡이었죠. 반음계가 많아 음치 골라내는 데는 최고거든요.

-좋은 음악이라고 판단할 때와 좋은 영화라고 느낄 때 같은 심미안이 작용하나요?

=비슷해요. 컴포지션, 콘트라스트, 하모니, 앙상블 등 문학과 음악, 미술은 용어도 똑같다고 봐요. 그리고 그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영화가 되고요. 영화도 문학도 음악도 사심없이 미쳐서 만든 것이 역사에 남아요. 앙겔로풀로스 영화도 혹시 나처럼 가슴 저미며 보는 사람이 없나 뒤돌아보면 반은 자요. (웃음) 그러니까 볼 사람만 보라고 만드는 거죠.

-영화사에서 <월간팝송> 편집장으로 이직하셨습니다. 시작은 지인의 제안이었나요?

=51 대 49 정도로 음악을 영화보다 좋아했는데 운명이 다가온 거죠. 영화사 근무 3년 만에 당시 유일한 음악잡지였던 <월간팝송> 편집장이자 동아방송 DJ였던 나형욱씨가 이민 가면서 저를 추천해 서른살에 편집장이 됐어요. 태창영화사 김태수 사장은 흥행 영화를 잘 고르는 저를 내보내기 싫어 엽총으로 위협까지 했었죠. (웃음)

-당시 <월간팝송>이라는 잡지를 이끌어간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추억하십니까?

=일단 지금보다 음악 듣는 사람이 많았어요. 라이선스는 주로 힙합과 댄스만 나오는 요즘보다 좋은 시절이었어요. 게다가 <월간팝송>은 독점지였으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샀죠.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리는 걸 잡지의 기본 방침으로 삼았고, 실제로 마니아를 양산했어요.

-방금 말씀하신 대원칙은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존재 이유와도 다르지 않군요. 뵙기 전에, 선생님이 해설한 옛 LP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잉베이 맘스틴의 <라이징 포스> 뒷면에는 음악을 발견하고 바로 이튿날 방송에 소개했다고 써 있더군요.

=일본의 전문지 에서는 어떤 무식한 사람이 <라이징 포스>에 0점을 줬더군요. 얼 클루 부류만 듣다가 그런 파격적인 기타를 들어서 그런 거죠. 그 음반을 듣고 바로크 음악을 듣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크 메탈’이란 말도 제가 만들어 붙였죠. 성음에서는 자기네 소속 뮤지션인지도 모르고 판도 갖고 있지 않아서 제가 판을 빌려주고 해설을 써서 라이선스가 나왔어요. 메틀리카나 팻 메시니도 마찬가지 경우인데, 그런 뮤지션들이 우리 프로를 통해 인기를 얻고 방한해서 게스트로 출연할 때 보람이 컸죠.

음악은 생명도 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월간팝송>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월간팝송>은 모든 FM 프로그램이 자문을 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운명처럼 존 레넌이 80년 12월에 죽었어요. 이상하게도 제 인생엔 그렇게 일이 맞물려요. 당시 <박원웅과 함께>에 존 레넌 추모방송 요청을 받았고, 그 길로 방송 데뷔를 했어요. 그러니까 비틀스는 저의 구원자죠. 제가 그들을 그토록 좋아한 만큼 제게 돌려준 것 같아요.

-감정이 격하셨을 텐데, 첫 방송이 기억나십니까?

=원고없이 질문하는 대로 존 레넌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 다음부터 하루에 30분씩 고정 코너를 맡았어요. 그러다가 동시간대 라이벌 프로그램 <황인용의 영팝스>의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박원웅씨쪽에서 안 된다더군요. 전 구속하는 사람이 싫어서 박원웅씨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황인용씨 프로로 옮겼는데 그때 소개한 주다스 프리스트, 헬로윈, 잉베이 맘스틴, 조지 윈스턴 등이 모두 대박을 터뜨렸어요. 청취율도 <박원웅과 함께>를 눌러 그 공로로 <25시의 데이트>를 맡은 거죠.

-가끔 음악 관련 기사를 보면 신인 밴드들이 선생님 프로그램을 요람으로 언급합니다. ‘오메가3’ 같은 밴드는 본인들의 음악을 아예 “<전영혁의 음악세계>풍”이라고 묘사했더군요.

=음악인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듣고 공부했다는 사실이 보람있어요. 고교 때부터 가장 열렬했던 애청자가 신해철인데, 지금 제 프로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하고 있죠. 방송에서 “전영혁 때문에 음악을 하게 됐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서울대 갈 수 있는 머리인데 만날 밤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듣느라고 서강대 갔다”고 했대요. 음악인은 아니지만 국민 약골 이윤석, 그 친구도 우리 애청자였어요. 연대 간 애들은 다 우리 프로 듣다 서울대 못 간 거고, 서울대 간 애들은 제 프로 안 들은 거죠. (웃음) 김세황, 이현석 같은 기타리스트들도 고교 때 엽서를 보냈고, 블랙홀은 <새벽의 DJ>라는 노래를 제게 헌정했어요.

-1990년대 초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분들에겐 대중음악을 비평의 대상으로 끌어냄으로써 예술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숨은 욕심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떨까요?

=누가 저더러 대중음악평론가라고 하면 나가라 그래요. 대중이 없는 음악이 어디 있죠? 고전음악도 대중음악이에요. 옳은 용어는 장르 구분 없이 뮤직 크리틱, 아니면 뮤직 큐레이터예요. 가요, 팝, 클래식 한 가지밖에 모르면 평론가가 아니죠. 좋은 음악은 하나고, 오직 잘 만들어진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이 있을 뿐이지요.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선곡 기준은 우선 차트와 무관한 음악, 다른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지 않는 음악인 걸로 압니다. 그런 희소가치 외에 적용되는 선곡 기준은, 오직 방금 말씀하신 ‘좋은 음악, 잘 만든 음악’뿐인가요? 진짜냐 가짜냐는 선생님의 귀로 판가름하는 것이고요?

=그렇죠. 오래 하다보니 음반을 보기만 해도 알아요. 저는 (아는 음반은 이미 소개됐다는 뜻이니) 제가 모르는 음반만 사는데, 재킷에 뮤지션의 자존심이 다 들어 있어요. 아무 정보 없이 재킷 보고 내린 판단이 거의 맞아요. 그리고 곡목을 보면 확신이 서죠. 대개 긴 곡이 좋고요. 10곡 이상 든 음반은 가짜일 확률이 높아요.

-그래도 <전영혁의 음악세계> 나름대로 취향의 변천사가 있지 않나요?

=처음 방송을 시작한 1986년은 하드록, 록, 헤비메탈이 세상을 지배한 시대였어요. 어떤 음악이든 르네상스가 있고 사이클이 있잖아요. 80년대에는 그쪽에서 잘하는 애들이 나왔고, 90년대 들어 댄스뮤직이 득세하면서 헤비메탈이 쇠퇴해 좋은 음악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90년대부터는 ECM 사운드, 크로스오버, 클래시컬한 팝을 중점적으로 소개했죠.

-현재 30대 중·후반들은 선생님 프로그램의 안내로 음악을 발견하고 음반을 구입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 얻는 경로가 넓고 다양한 형태로 음악을 접하는 요즘 세대가 듣기에는 동시대의 음악이 유적도 아닌데 ‘발굴’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이해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 ‘발굴’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기보다 들을 만한 음악을 골라주는 기능을 뜻하는 것이겠죠?

=그게 가장 중요하죠. 사실 음악평론가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감히 평론할 수 없어요. 음악은 생명도 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실제로 제 프로를 듣던 재수생들이 자살하려다가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많은데”라고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들으며 공부해서 대학 간 예들도 있어요. 제가 사람도 많이 살렸죠. (웃음) 음악의 위대함을 알기에 감히 글로 쓰기 힘들어요. 저는 평론가도 디스크자키도 뮤지션이 못 된, 2등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뮤지션을 소중히 여겨야 하죠. 제 임무는 좋은 음악을 만들고도 한번도 방송에 소개 못 된 사람들을 속속들이 찾아서 소개하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철저히 전달자로 남고 판단은 청취자에게 맡깁니다

-음악을 글로 평할 수 없다고 믿으셔서인지 선생님이 쓰신 해설을 보면 음악 해석이나 묘사는 거의 없고 정보로 꽉 채워진 건조한 문체입니다.

=사람들은 음악평론을 한다면서 독후감을 써요. 그 자체가 음악평론을 못 쓴다는 의미죠.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알고 싶은 건 개인의 감정이나 평론가의 취향이 아니에요. 저는 음반을 산 사람이 알고 싶어할 바이오그래피와 디스코그래피를 기본으로 넣었어요. 평론가는 되지 말고 될 수도 없다, 가이드가 되자고 마음먹었죠.

-다른 장르 예술의 비평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평론은 문제가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평론가라기보다 가이드, 큐레이터라는 말이 좋다고 봐요.

-그러니까 선생님에겐 방송을 위한 선곡이 곧 비평이겠습니다.

=음반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 친한 후배들이지만 음악이 함량 미달이면 아무리 부탁해도 안 틀어요. 그래서 인간관계는 별로 안 좋아요. (웃음) 반면, 자라는 한국 뮤지션은 꼭 제 돈으로 사서 틀어줘요.

-문체도 문체지만 방송 스타일도 극히 건조하십니다. 신변잡기는 물론 없고 음악에 대한 감정적 찬사도 거의 없습니다. 애청자 모임(www.fm24.org)의 박신영 대표에 의하면, DJ의 감흥이 음악을 물들일까봐 염려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고 하더군요.

=음악을 틀어줄 때 선입관을 강요하면 안 돼요. 어떤 DJ들은 음악을 들려주기 전에 “명곡 중의 명곡”이라며 5분 이상 침이 마르게 칭찬하기도 해요. 만약 음악이 그 해설에 못 미치면 그 프로그램은 권위가 없어지겠죠. 전 먼저 음악을 던지고 각자 느낀 다음 코멘트는 나중에 간단히 합니다. 시낭송도 마찬가지예요. 철저히 전달자로 남고 판단은 청취자에게 맡기자는 지론입니다.

-시 낭송 코너는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유일하게 비음악적인 코너입니다. 어떤 의도로 포함시키셨나요?

=예컨대 광복절에 종일 방송을 들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그 얘기만 하잖아요. 그건 싫고 무슨 멘트는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는 논픽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초대손님은 프로그램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음악평론을 하시는 송기철씨는 음악적으로는 게스트에게 얻을 도움이 없으니, 일종의 배려라고 표현하시던데요.

=예전에 프로그램이 두 시간이었을 때는 초대손님이 있었어요. 사실 그들이 소개하는 음악이 맘에 들진 않았는데 다 우리 애청자들이니까 배려하는 차원에서…. (웃음)

-애청자들이 방송 시간을 12시로 복원하려는 운동도 열심히 벌였습니다. DJ로서 12시와 2시의 차이는 어떻게 체감하세요?

=사연이 몇배나 많이 올라와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6시 배철수씨가 방송하는 6시대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했다면 최고의 인기 프로가 됐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프로그램의 가요 일변도 현상도 얼마쯤 막았을 것이고요.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편성이 문제예요. 왜냐하면 사람들 귀는 똑같거든요. 좋은 음악은 알아요. 그게 아니라면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소개한 여러 뮤지션의 음반이 왜 많이 팔렸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KBS 제2FM도 광고를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프라임 타임으로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옮겨진다면 프로그램의 본질을 해칠 압박이 오지 않을까요?

=첫째 편성을 옮겨줄 가능성도 적을뿐더러 광고가 안 들어오면 아예 폐지할 수도 있겠죠.


-<전영혁의 음악세계>처럼 인터넷의 ‘다시듣기’가 유용한 프로가 없는데, 지금은 ‘다시듣기’가 폐지됐습니다. ‘다시보기’를 하는 TV쪽 이야기도 들어보면, 요즘은 케이블 재방송, 다시보기, 불법 다운로드까지 시청 경로가 다양해져서 시청률의 의미가 절대적이지 않다고 하더군요.

=‘다시듣기’를 할 때는 네티즌 사이에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청취율 1위였어요. ‘다시듣기’가 없어져 우리 프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어요. 저작권 단체쪽에서 프로그램당 받던 저작권료를 방송회당으로 요구했고, 이에 방송국은 응하지 않은 것이죠. 청취자들만 피해를 봤어요. 저희 애청자 평균연령이 67년생이에요. 1986년 방송을 시작할 때 고3이었던 애들이죠. 다들 기반 잡고 일하면서 음반을 구매하는 층인데, 듣기 힘든 시간대에 방송을 하니 예약 녹음을 해서 듣는 일이 많아요.

-음악산업에 대한 FM의 영향력도 상당히 약해졌죠?

=FM이 AM화가 됐으니까요. 1시간에 2곡을 트는 프로그램도 있더군요. 무슨 판을 사고 들을지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 <전영혁의 음악세계>밖에 없으니 시장 불황을 부채질하는 비극적 상황이 왔죠.

-음반 매장이 넓어지고 음악을 구하는 경로, 감상이 가능한 공간은 다양해졌는데도 음악 듣는 환경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하기는 힘들군요.

=질적으로는 한 30년 후퇴했다고 생각해요. 70년대 초반 LP 시대에는 광화문에서 프라자호텔을 지나 명동으로 가는 지름길에 레코드 가게가 100곳이 넘었어요. 집집마다 주인의 특색이 있어서 한장씩 사면서 걷는 재미가 대단했죠. 지금은 대형매장에 가면 CD 양은 많은데 우리 프로에 소개할 것은 없어요. 저도 90%는 아마존에서 주문하거나 일본에 가서 사와요.

-LP에서 CD, 또 MP3로 음악 듣는 매체도 많이 변했습니다. 선생님이 느끼는 감각적 차이는 뭔가요?

=저는 LP를 권하고 싶어요. 유럽에서도 ‘로맨티시즘으로의 회귀’라고 LP를 다시 찍어요. CD의 장점은 잡음이 없다는 건데 저음이 나쁘고 소리가 차가운 단점이 있어요. LP는 잡음이 있지만 포근한, 인간의 정서에 가장 맞는 소리예요. MP3로 듣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나중에 LP를 사서 턴테이블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안 들렸던 소리가 들릴 거예요. 또 리모컨만 작동하면 비만의 원인도 되고 사람이 매정해져요. 제가 살이 안 쪘잖아요? (일어서서 실연을 하며) LP는 이렇게 판을 꺼내서 먼지도 닦고 끝난 다음에 집어넣는 자체가 운동이 되니 다이어트도 되면서 훈훈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LP만으로 방송하는 날도 있는데 호응이 더 커요.

-30대 후반이 청취자 평균연령이라면 10대가 주축이던 초기 청취자가 물갈이되지 않고 프로그램과 같이 나이들며 커뮤니티를 형성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15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려고 공간을 빌리는 데도 관계자 중 애청자가 있어 일이 쉬웠다고 들었습니다. 일종의 ‘음악세계’ 서브컬처가 있는 것 같아요. 핵심 애청자들을 ‘수호천사’라고 부르시죠?

=청취자 모임은 유니텔과 네이버, fm25 사이트 세곳에 있어요. 수호천사는 단순한 회원이 아니라 제가 뽑은 30명의 1967년생들이예요. 제 중매로 결혼한 커플도 있죠. ‘수호천사’가 되면 제가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하고 제 라이브러리에서 갖고 싶은 음반을 50장이건 100장이건 뽑아가라고 해요.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정원을 늘려야죠.

 

-선곡 취향의 변화에 반발한 편협한 청취자들이 팬 사이트를 해킹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일이 있죠. “월급 받으면서 왜 그렇게 성의없이 방송하냐. 그만두고 이소라씨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면 1967년생 애청자들이 교통정리를 해요. “이소라씨가 두분인데 어느 쪽을 말씀하시냐?”고 친절한 댓글도 달고. (폭소)

-훗날 방송을 떠난 뒤에도 음악과 무관하게 사는 일은 상상할 수 없겠죠? 수호천사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공간을 계획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인생에는 택일이 필요한데 전 일하다 죽기를 택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방송국에서 내쫓지 않는 한 계속할 거예요. 수호천사들끼리 2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는데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공간을 자기들이 열겠다고 하더군요. 난 오기만 하면 되니 신경쓰지 말라고요.

-아직도 선생님의 손이 닿지 않은 음악이 세상에 많다고 느끼십니까?

=물론이죠.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전문가는 멈추면 안 돼요. 이만하면 많이 안다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가진 걸 퍼내면서 살면 실패하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전영혁의 음악세계> 청취자들도 그 점 때문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것이죠.

 

(글) 김혜리

vermeer@cine21.com

저작권자 ⓒ 씨네21.(www.cine21.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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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 Of Your Love Tab at 911Tab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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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 Of Your Love Tab

 
Artist: Cream Tabs Comments [ 20 ] Tabbed by: stickboy20 Rating: 4 for Sunshine Of Your Love tab by Cream [ 52 vo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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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 Of Your Love Tab by Cream, www.Ultimate-Guitar.Com

Artist: Cream
Title: Sunshine Of Your Love
Transcribed by: Collin Middleton
Email: stickboy20@hotmail.com

Here's an awesome song with one of the most recognizable riffs in music.  
The verse and chorus to the song are pretty easy, but Clapton has a bitching 
solo in there that's quite tough.  I'm pretty sure this is right, or atleast 
the closest thing to correct I've seen.  E-mail me with any comments or questions.

h=hammer-on
p=pull-off
b=bend
~~~~~ = hold note

Song Order:
Riff 1 x 6
Riff 2 x 2
Riff 1 x 2
Chorus x 2
Chorus part 2 x 1

Riff 1 x 6
Riff 2 x 2
Riff 1 x 2
Chorus x 2
Chorus part 2 x 1

Solo

Riff 1 x 6 
Riff 2 x 2
Riff 1 x 2
Chorus x 5
Chorus part 2 x 1

Riff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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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10---12--------------------------------------------------------
------------------------12--11--10------b8------------------------------------
------------------------------------10------10--------------------------------
 It's getting near dawn.....                                                  

Riff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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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10---12--------------------------------------------------------
------------------------12--11--10------b8------------------------------------
------------------------------------10------10--------------------------------
------------------------------------------------------------------------------
  I'll be with you darling soon....                                           

Cho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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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7-7-7-------------5---------5-----------------------------------------------
--7-7-7-------------3---------5-----------------------------------------------
--5-5-5-----------------------3-----------------------------------------------
        I've been waiting so long.......                                      

Chorus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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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7-7-7----------5---------5------7-7-7-7-7-7-7-7-----------------------------
--7-7-7----------3---------5------7-7-7-7-7-7-7-7-----------------------------
--5-5-5--------------------3------5-5-5-5-5-5-5-5-----------------------------
        In this sunshine of your love............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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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b12--b12-------12-b12----b12---12--b12----------b9p7--9--7--b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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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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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7h9--b9---b9----7h9p7-----------b10---b10---b10------------------------
--7h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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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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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0----b10----------10--7--b9-----7---------b9------------7h9---b9----------
---------------------------------9--------------------7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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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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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7hb9---b9--b9--7--9---7h9--7----------14-----12--10--11------10-------------
-----------------------------------------------------------12------12p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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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0--------------------------------------------------------------
-------------------------------------------13---------------------------------
--10h11------------b10-------10--b12-----------b12--12--10------12---12/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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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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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0-------------------------------------------------
------14/12--10---b12--------------b12--10------b10---------------------------
--------------------------------------------12--------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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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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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0--12--12/14-----------14-----------------14/12---
--10----10----10h12-10h12-----------------------------------------------------
--10h12-10h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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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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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0----12p10----12/14----------14-----------------------------14/12--b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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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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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12/14--------14----14---14/12--b10-------------------------
--12--12------------------------------------------------12p10------10h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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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기존질서 엎으려는 ‘국제적 저항’

68을 논하지 않고 현대 서구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8운동 기존질서 엎으려는 ‘국제적 저항’
문화혁명이었나 과격주의자들의 발작이었나
세대반란이었나 카니발이었나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서
따로 또 같이 일어난 ‘저항의 지도’를 되짚어본다
한겨레 오철우 기자
▲ 68운동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들녘코기토 펴냄. 1만2000원
서구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말 가운데 ‘68세대’가 있다. 1968년 절정에 달했던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참여했고 그에 감화받았던 세대다. 세대로 계산하면 벌써 40여년 전 일이니, 어찌보면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아득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68운동’에 대한 분석은 다 끝나지 않는다. “이제껏 세계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그리고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바꾸어놓았다”(이매뉴얼 월러스틴)라는 평가가 있듯이, 그 거대함은 한 세대의 시간만으로 다 어루만질 수 없기에 말이다.

독일 역사학자 잉그리트 길혀-홀타이(빌레펠트대학 교수)가 쓴 <68운동>은 해일처럼 몰아쳐 서구사회의 정신과 제도를 뒤흔들었던 1968년 운동의 기승전결을 되짚으며 분석한 책이다. 비교적 적은 분량에 68운동의 핵심을 빠르게 정리한 이 책은 68운동이 자양분을 준 지금의 서구 시민사회와 저항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만하다.

68운동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지은이 길혀-홀타이 교수가 열거했듯이 ‘학생봉기’, ‘세대반란’, ‘문화혁명’, ‘세계체제 혁명’으로, 또는 ‘카니발’이나 ‘과격주의자들의 발작’으로 이해됐다. 저항하는 젊음의 열병 같은 축제였을까, 정신문명의 새로운 자각이었을까. 한 나라 안의 격동이었을까, 세계 차원의 새 살 움틈이었을까. 평가자들마다 다른 시선들은 그 때마다 다른 이름을 만들어냈다. 지은이는 여기에 또하나의 이름을 얹는 것일까.

길혀-훌타이 교수의 분석은 이전의 68운동 분석들과는 다르게 독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독특함은 68운동이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여러 나라에서 ‘기존 권위에 대한 전사회적 대항의 기획’이라는 닮은꼴로 일어난 국제적 운동이었을 강조하는 대목에 담겨 있다. 지은이는 각 나라마다 ‘따로 또 같이’ 일어난 ‘저항의 지도’를 역사비교의 방법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저항의 과제는 어느 나라에서건 언제나 ‘참여 확대’와 ‘의식 개혁’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국제베트남회의, 혁명을 배태

1968년 앞뒤의 시절에 서구사회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책의 첫 장면은 베트남혁명을 지지하여 1968년 2월 독일에서 열린 ‘국제베트남회의’ 안의 긴장과 활기다. 여기에 참여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의 신좌파 대표들은 구좌파과는 뚜렷히 구분된 새 세대들이었다. 68운동의 중심이었다. 회의 뒤에 1만5천여명이 참여한 다국적 평화행진은 68운동이 바로 이들을 잇는 국제적 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 사건으로 묘사된다.

신좌파 지식인의 새로운 인식은 현실사회주의인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분명한 반기였다. 무력한 선배 좌파들은 새 세대 좌파들한테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반자본의 목소리에 더해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권위와 관료주의는 배격됐다. 또한 신좌파는 실존주의와 심리분석을 그들의 사상 지평에 과감히 끌어들였고, 집단 해방과 더불어 개인 해방을 부르짖었다. 개인의 생활세계, 가족, 성적 관계는 강조됐다.

▲ 비틀즈의 1967년 새 앨범 <페퍼 상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의 표지.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앨범은 히피 문화의 영향이 깊게 베인 작품으로, 당시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자들이 벌인 펜타곤 앞 시위의 모습과 닮아 미국 68운동의 시위문화에 종종 인용됐다. 사진 <68운동> 102쪽에서.
신좌파와 대항문화의 새로운 자각엔 여러 요소들이 접합됐다. 체 게바라와 호치민은 영웅으로 떠올랐고, 히피, 록, 비틀즈, 밥 딜런은 이들의 문화가 됐다. 자유분방한 하위문화는 찬양됐다. 사르트르, 마르쿠제, 프란츠 파농의 책들은 이들의 필독서였다. 대학 캠퍼스에선 대학과 교수사회의 권위에 반발하는 자율과 자치, 평의회의 깃발이 점거농성과 시위 속에서 세워졌다.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과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코뮌 형태의 대안적 집단 생활공동체의 창설이 실험됐다. ‘조직보다 직접행동’을 내세운 그들은 갖가지 깜짝 시위를 동원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미국 민주사회학생연맹, 독일 사회주의학생연맹, 프랑스 혁명적 공산주의청년 같은 신좌파들이 있었다.

참여와 저항의식, 보물로 남겨

지은이는 68운동의 붕괴 과정에서도 닮은꼴을 발견한다. 조직과 폭력의 문제는 붕괴를 촉진했다. “68운동은 조직문제와 대결하는 가운데, 경쟁하는 집단이나 정당, 분파, 하부문화 속으로 용해된다. 나아가 68운동은 폭력문제와 대결하며 분열되고 지지를 잃는다. 행동의 급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문제가 조직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더 첨예하게 만든 것이다.”(154쪽) 예컨대, 미국 민주사회학생연명은 폭력시위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내부논쟁을 벌이다 분열해 1969~70년 해산했으며 무장투쟁을 주장한 일부 그룹은 지하로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붕괴과정에서 “68운동은 그 신성화나 악마화에 관계없이 공히 일상의 정치투쟁을 위해 도구화됐다.”(175쪽)

68운동은 무엇을 남겼고, 68세대는 무엇으로 남았는가. 68운동이 품은 ‘저항의 구상’은 얼마나 실현됐는지를 따져볼 때,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실패와 부분적인 성공’으로 비쳐질 만하다.

신좌파 그룹은 기존 조직에 복귀해 다시금 개인을 집단에 종속함으로써, 자기 결정과 개인 해방을 목표로 삼은 68운동의 반권위주의를 포기하기도 했다. 또 68운동의 정서는 대안적 대항문화의 환경에서 계속됐지만 동시에 그것은 여러 차례 단순화해 때때로 하부문화의 우상화를 낳기도 했다. 68운동의 후계로 등장한 여성운동과 대안운동, 생태운동 같은 운동은 68운동이 그린 구체적 유토피아와 비교할 때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전 사회적 대항의 구상을 펼쳐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값진 경험은 기억의 공동체에 남았다. 지은이는 68운동의 영향이 조직적으로 계승되진 못했지만 서구사회에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한다. “68운동은 이런 의식 전환이 무관심의 타파와 활발한 사회 ‘참여’, 그리고 상품사회와 소비사회에 대한 비타협과 거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나아가 68운동이 선전한 이행 전략은 ‘개인’에서 시작하고, 사회 참여를 통한 개인의 변화가 ‘다른’ 사회를 낳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았던 것이다.”(178쪽) 기존 질서 전체에 맞서는 ‘대항의 구상’을 지닌 것으로는 “최후의 사회운동”이었던 68운동이 남긴 보물은 참여와 저항의 의식이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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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에서 소멸까지 ⑪ - MP3]70대 할아버지에게도 사랑받아요

그렇다. 내게 필요한 것은 20기가가 아니라 30기가짜리였다.

 

 

내 안에 노래 있다, 500곡 넘게
[탄생에서 소멸까지 ⑪ - MP3]70대 할아버지에게도 사랑받아요
텍스트만보기   홍성식(poet6) 기자   
일상에서 쉽게 만나고 소비하는 것들일수록 그것의 원재료가 무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제품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무심히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공정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친숙한 제품의 탄생에서 소멸까지를 직접 제품의 입장이 되어 1인칭 화법으로 서술해보았다. 기획 열 한 번째 기사는 MP3다. <편집자 주>
▲ MP3플레이어는 워크맨의 손자이고, PMP의 아버지다.
ⓒ 코원시스템 제공
하늘엔 매연이, 땅엔 쓰레기가, 강물엔 갖가지 오염물질이 떠다니는 서울.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27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이 도시의 야경은 아름답다. 서른다섯살 노총각 회사원 민호 앞에 앉은 스물세살의 여대생 애인 혜인은 오늘 행복하다. 오빠가 기특하게도 자신이 원했던 것을 꼭 집어 선물했기 때문이다.

'SS501'과 '더 빨강'의 최신 유행곡을 듣는 것은 물론, 녹음기능에 동영상까지 재생이 가능한 나. 평소 아무리 서로 좋아해도 '열네 살의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라며 고민하던 혜인의 걱정을 한번에 해결해준 근사한 선물이었다.

민호 역시 고민이 없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퀸'과 '제네시스'의 사랑노래를 녹음해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함께 들었던 첫사랑 미정과의 추억.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가 사람들의 손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애틋한 첫 여자와의 기억은 사라지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 꼬마 숙녀와의 만남.

하지만, 민호는 현실에 충실하기로 했다. 언제까지나 멀어진 젊은 날의 기억에만 기대 살 수는 없는 법. 지금의 어린(?) 애인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생일선물이 근사한 이탈리아풍 저녁식사와 나였던 것. 나는 세대차이라는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줄 긴요한 매개물이 된 셈이다.

MP3 최초 개발국은 한국... 세계시장 40% 장악

떡볶이집 가래떡 만한 크기의 몸에 자그마치 500곡 이상의 음악을 담을 수 있는 나. 그래 맞다. 난 MP3플레이어다. 날 만지작거리며 민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혜인처럼 나 또한 내 주인마님을 올려다보며 8년 남짓 시간동안 지내온 나와 내 친구들의 삶과 그 삶 속 얽힌 갖가지 사연들을 떠올려 본다.

앞서 언급한대로 나와 친구들의 역사는 일천하다. 애초 1980년대 후반 독일의 음향 분야 과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했으나, 정작 우리들의 시조가 되는 큰형을 제품으로 완성시킨 건 한국 회사다. 1997년 세상에 얼굴을 내민 큰형의 이름은 엠피맨(MPman).

'MP3플레이어' 1호라 불러도 무방한 그 형은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의 대명사로 이야기되는 '워크맨' 만한 크기였다. 지금 만들어지는 내 친구들보다 엄청나게 큰 몸피다. 그 커다란 덩치 탓에 별명도 '탱크'였다. 그 형의 뒤를 잇는 둘째 형의 이름은 '리오 300'. 이 형 역시 우람하고 컸다.

테이프가 늘어나고 몸집이 크다는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의 단점을 극복하고 CD에 가까운 깨끗한 음질을 재생하는 나 MP3플레이어.

'고음질 오디오 압축기술'이라 불리는 MP3는 음악 속에서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영역만을 압축해 재생한다. 초기 단계 내 형들은 건전지로 작동되는 것이라 재생시간이 짧았지만, 요사이 시장에 선보이는 친구들은 30분 충전으로 20시간 이상 음악재생이 가능하다.

▲ 초기의 MP3플레이어.
ⓒ 코원시스템 제공
뿐이랴, 초기에는 200~300MB에 불과하던 내 메모리용량도 최근에는 괄목상대할 만큼 늘어나 30GB(1GB=1024MB)를 자랑한다. 노래 한 곡의 평균 5MB이니 최대 600곡의 노래를 내 안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크게 플래시메모리형과 하드디스크형(HDD)으로 구분된다.

플래시메모리형은 날씬하고 작음 몸에 디자인이 세련된 것이 많아 한국 사람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용량이 적다. 하드디스크형은 다소 큰 몸집이 단점으로 지적되기 하지만, 상대적으로 용량이 커 외국인들이 좋아한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나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질이 최고"라고 평가받는 코원시스템은 내수용 플래시메모리형과 수출용 하드디스크형을 각각 40%와 60% 비율로 생산해 연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레이콤과 삼성전자 등 20여 개 회사가 나와 내 친구들을 생산한다.

전세계를 통틀어 나의 시장규모는 3700만대.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9억 달러다. 한화 5조원 규모의 엄청난 시장이다. 한국에서는 코원과 레인콤, 삼성전자 등 3사가 전체 매출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메이저 제조업체로 거론된다.

몸집큰 '탱크형' 워크맨부터 영화도 보여주는 PMP까지

이동하면서 음악감상이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소니가 개발해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워크맨은 내 조상 격이다. 자고로 음악이란 근사한 오디오 기기를 갖추고 집에서만 듣는 것이라는 인식에 일대전환을 가져온 제품.

워크맨은 그 탄생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1978년 소니는 녹음기기 생산부서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다. 더 이상 이익 창출이 어렵다는 경영진의 판단 앞에 이들은 악전고투의 노력을 경주했고 그 결과물로 손바닥 크기의 녹음재생기를 내놓았다.

소니의 회장 모리타는 이 제품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마침내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의 대박 신화를 이뤄낸다. 이 제품이 바로 워크맨. 워크맨은 일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보다는 혼자만의 고독에 익숙한 뉴욕의 여피족과 입시와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 있던 한국의 중고교생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 지금으로 20여년 전인 1980년대 이야기다.

한국에서 나와 내 친구들이 사랑받는 건 민족적인 기질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노래 듣고 노래 부르는 것을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즐기고(당신 주위의 노래방들을 보라),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만 가지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한국인의 성정. 그런 배경이 '엠피맨'이라는 내 큰형을 만들었고, 거리를 각종 MP3플레이어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만든 게 아닐지.

워크맨이 내 조상이라면 나의 가장 진화된 형태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다. 음악재생 기능과 보이스레코더 기능은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고,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텍스트를 읽는 것까지 가능한 이 기기는 나의 진화가 과연 어디까지 가닿을 것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요사이는 PMP도 상용화단계에 이르러 지하철을 타면 나를 가진 대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코원 홍보실 측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시한 'A2'라는 PMP는 40여만원이라는 고가임에도 한 달에 1만여대씩이나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개가 물어뜯어도 멀쩡한 한국 MP3의 맷집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자제품의 기술력과 품질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만만찮은 수준이란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나 역시 그렇다. 게다가 내 친구 하나는 튼튼함까지 갖춰 세계의 네티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지난 연말. 미국의 한 네티즌이 개가 물어뜯어 완전히 파손되기 직전의 상태까지 간 내 친구 하나의 사진을 전자기기 전문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다. 그 사연이 놀라웠는데 완파 직전까지 간 내 친구가 멀쩡히 작동했다는 것. 이 제품은 한국의 MP3플레이어 제조사가 만든 것이었다.

이 게시글과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내 친구의 튼튼함과 품질에 찬사를 보냈고, 이 사연은 태평양을 건너와 한국의 신문에까지 보도됐다.

▲ 최신형의 MP3플레이어.
ⓒ 코원시스템 제공
마지막으로 세상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 하나를 풀어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사람들은 보통 나를 사용하는 이들이 10~20대 학생들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주고객층은 그들이 맞다. 하지만, 전혀 의외의 사용자도 없지 않다. 코원 고객센터를 자주 방문한다는 70대 할아버지 이야기는 진정한 음악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내 친구들을 4대나 소유하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딱 한번 짧게 소리를 들어보는 것만으로 기기의 종류를 알아 맞추는 마니아. 제품 하나 하나의 특징을 너무나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기에 고객센터 직원들도 이 할아버지에게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가끔씩은 고객대기실에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루종일 음악에 빠져있다는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소설가 장정일이 <아담이 눈뜰 때>에서 서술한 바 있는 '뮤직 러버(Music Lover)'를 떠올리게 한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그 음악을 재생해주는 기계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춘 백발의 노신사. 예술을 그 자체로 아끼는 할아버지의 낭만적인 삶을 닮고싶은 직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내 친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이것 봐라. 혜인이 민호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낀 채 같은 노래를 듣고 있다. 리처스 샌더슨(Richard Sanderson)의 '리얼리티(Reality)'다. 어젯밤 민호가 다운받아 내 몸에 저장한 곡.

민호가 영화 <라붐>의 삽입곡인 이 노래에 빠져있던 중학생 시절. 혜인은 기저귀를 차고 다니던 아기였다. 그 막막한 시간의 간극을 내 몸 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이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나이 차이 많은 연인들을 이어주는 사랑의 타임머신 역할을 하게 된 오늘. 'MP3플레이어'로 태어난 내 운명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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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커버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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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8-27 9:40 pm (변경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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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otown Cover Album
2. 리바이벌 곡 리뷰

1. Motown Cover Album

  * [판자랑] 6편. *

  6. THE BEST OF THE BEATLES SONGS SUNG 
     BY MOTOWN'S GREATEST STARS

  BEATLES하면 아무리 대중음악에  무지한 사람이라해도 그 명성을  알
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노래를 몇 소절정도는 흥얼거리지  못할 사람
도 상당히 드물  것이다. 음악인이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지녀 전
성기때뿐 아니라 꽤  오랜 세월이 지나서까지 끊임없는  칭송을 받는다
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인데 BEATLES는 그것을 이루어낸  몇 안되는 
현대의 음악인들중 하나이다.  특히 초기에 전위적이고 어려운  음악을 
하다가 갈수록 대중적이고  쉬운 음악을 하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반대
로 이들은  틴아이돌로 시작하여  점점 나아갈수록 실험적이고  어려운 
음악을 해왔다는 것이 더욱 고무적이다. - 'YESTERDAY'나  'LET IT BE'
같은 대중적인 곡이 말기에 나왔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식으로 꼬
투리잡지 말자. -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에 수많은  음악인들이 이들의 
곡을 다시 부르거나  혹은 연주했다. 각자가 그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
고 BEATLES의 명곡들을  새롭게 소화해낸 것이다. 대강  생각나는 사람
들만  몇명 적어보자.  AEROSMITH  (COME TOGETHER),  MOTLEY  CRUE U2 
(HELTER  SKELTER), TESLA  (WE  CAN WORK  IT OUT),  JOAN  BAEZ JOHN 
DENVER (LET IT BE),  CORONER (I WANT YOU, SHE'S SO  HEAVY)... 게다
가 검디 검은 MOTOWN의 사람들도 이 행렬에 참여했다.

  A. A HARD DAY'S NIGHT - DIANA ROSS AND THE SUPREMES
     ELEANOR RIGBY - FOUR TOPS
     WE CAN WORK IT OUT - STEVIE WONDER
     HEY JUDE - THE TEMPTATIONS
     YESTERDAY - MARVIN GAYE
     THE LONG & WINDING ROAD - DIANA ROSS

  B. MICHELLE - FOUR TOPS
     AND I LOVE HER - SMOKIE ROBINSON & THE MIRACLES
     SOMETHING - MARTHA REEVES & THE VANDELLAS
     LET IT BE - GLADYS KNIGHT & THE PIPS
     IMAGINE - DIANA ROSS
     MY LOVE - JR. WALKER

  내가 이 음반을  접하게 된것은 몇년전 메카에서  라이센스를 열심히 
뒤지며 버벅대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흑인 음악 음반들이  꽤 많이 
들어왔고, 아저씨는 그  LP들을 틀어보고 있었다. 갑자기  귀에 들려오
는 친숙한 멜로디! 하지만 그것은 내가 평소에  듣던 그것과 완전히 달
랐다. 완벽하게 흑인의 것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듣던  당시는 그리 큰 
감회가  없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희안한  감회가 떠올랐다.  그 
후... MUSIC WORLD에서  다시 만나 접하게 될떄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음반의 특징을 단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백인의 음악을 철저하게 
흑인이 부르고  있다'라고 할수  있겠다. 여태까지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해온 BEATLES 곡들의  재생산품은 대부분 백인에 의한  것이었다. 아
일랜드 인이건, 유태인이건, 미국인이건, 독일인이건  그들은 백인이었
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모두 철저한 흑인들이다.  MICHEAL JACKSON
처럼 흑인이면서 백인  음악을 하거나 MICHEAL BOLTON처럼  백인이면서 
흑인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흑인  음악' 그 자체를 연주
하고  있다. 한때는  BEATLES의 작품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SOUL MAN]이라는 영화에서처럼  그들은 '검어지는' 약품을 몸에  골고
루 바르고 당당히  우리 앞에 나선 것이다. 물론  소수민족에게 주어질 
장학금을 노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개 곡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필요없다. 이  음반은 어느 곡을 들어
도 '황당'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파격적인 편곡  떄문이라고 
할까? - 요즘은 MODERN ROCK이라는 이름 아래에  '황당'한 것이 엄청나
게 잘  팔려 나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 그래서 정통적이고  친숙한 
BEATLES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거부감'을  주기까지 
한다. 특히  흑인 계열의 음악은 그리  큰 추앙을 받지 못하고  있어온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 STEVIE WONDER같은  거물은 물
론 THE TEMPTATIONS의  음반도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  실정이다. 기껏 
좀 팔린거라면 [MY GIRL] 정도...? -  서울음반에서 MOTOWN과 계약하고 
있을 당시에 내놓은  이 음반은 판매고에 있어서 그리 큰  효자 노릇을 
하지 못한것 같다. - 잘 아는 음악쪽 선배에게  이 음반을 생일 선물로 
진상했더니 한번 듣고 제일 구석진 곳으로 던져버린  엄청난 일이 있었
다. '진성아, 이게 뭐냐!'라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이러지 않
으리라는 보장은 차마 못하겠다. -

  채이는 일상 생활에  쫓겨 METAL만 듣다 보니 손에서  약간씩 멀어지
고는 있지만 구입 당시에는 엄청나게 좋아했던  음반이다. 구하기가 상
당히 힘들지만 가능만 하다면 즐겨볼만한 가치가 넘쳐  흐르는 꽤 좋은 
음반이라는 것이 지극히도  개인적인 견해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극도
로 강력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니 다소 주의하여야 한다.

  그럼 이만.
  mrkwang 白

2. 리바이벌 곡 리뷰

 송상헌   (FAB4    )
비틀즈의 리바이벌 곡들 -1-                   08/01 16:11   39 line

리바이벌을 듣는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죠...
이미 알고 있는 곡들을 다른 분위기에서 즐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부터는 비틀즈의 곡들을 보다 다른 분위기로 즐길수 
있는 곡들을 하나하나 꼽아가려구 하는데...
쩝...
아마 이 글들이 계속 되면서 논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그렇죠 뭐..이 글이 계속 되다보면 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는 그런 음악들이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틀즈에 관련된 글들을 실으려면 여기 밖에는 없어서.쩝..
나중에 운영진 여러분들이 판단하시기에 글이 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면 메일을 주시기 바라면서...
비틀즈의 곡들의 리바이벌에 관한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히...
일단 권해드릴 곡은 JEFF HEALY BAND가 리바이벌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추천하구 싶군요...
원래는 WHITE에 실려 있던 곡이었죠...
비틀즈의 활동이 중기를 넘
어서면서 조지 해리슨은 초기시절부터 받아온 폴과 존의 영향으로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앨범 REVOLVER에서 부터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때는 인도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절이라..
시타를 가미한 인도풍의 곡들도 작곡을 하는데...
이러한 조지의 노력은 화이트 앨범에 이르러 비로소 
작곡가로서의 성숙기를 맞이하게 되고..
그때 발표된 곡이 바로 이 WHILE MY- 입니다..
당시 조지와 친분이 깊었던 에릭 클랩튼이 기타에 참가해준 것으로도
유명한 곡이며 조지의 대표곡중 하나이죠..
이 곡을 리바이벌한 JEFF HEALY는 캐나다 출신의 맹인 부르스 기타리스트로
데뷔 당시부터 힘있는 연주로 호평을 받았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이 곡은 그들의 2집인 HELL TO PAY에 수록되있던 곡으로..
이 곡의 원작자인 조지 해리슨이 직접 어쿼스틱 기타와 백보컬을 
맡아주고 있습니다..
원곡에 비해 _?른 템포로 구성되있는 이곡은 ..
전편에 펼쳐지는 제프 힐리의 날카로운 연주와 허스키한 보컬이
아주 뛰어난 리바이벌이었죠...
블루스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들어보실 만한 곡입니다..
히..
그럼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구 오늘은 이만...


 송상헌   (FAB4    )
비틀즈의 리바이벌 곡들 -2-                   08/03 00:39   44 line

쩝...비틀즈의 리바이벌 곡..오늘은 무슨 야그를 할까..히...
오늘은 프로그레시브 쪽으로 야그를 좀 해볼까요???
1976년 프로그레시브 록 계의 두뇌파 기타리스트로 일컬어지는
필 멘제네라는 브라이언 이노, 사이먼 필립스와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을 모아 공연을 벌이게 되는데...
이 실황을 음반으로 엮은 앨범이 801LIVE라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으로 그들은 
비틀즈의 TOMORROW NEVER KNOWS란 곡을 연주하죠..
이 곡은 비틀즈의 5대 명반중의 하나이자..
초기와 후기를 이어주는 중요한 앨범인 REVOLVER의 수록곡입니다..
이 글과는 관계없는, 여러분들도 다들 잘 아시는 야그지만..쩝..
중기 비틀즈의 야그를 잠깐 하자면...
영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를 몰아 미국에 상륙하게된 비틀즈는
거의 전설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기속에 그들은 점차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과
무명시절에 가졌던 순수한 음악에의 열정을 그대로 발휘할 여유조차 
잃어버리게 돼죠..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들의 활동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 비틀즈는 순회공연의 중단이라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66년이었나요..지금 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들은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모든 공연활동을 중지하고 스튜디오에서 
그들만의 음악성으로 새로이 팬들의 앞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초기 비틀즈의 마지막이자 실험성 짙었던 중기의 시작이었죠..
흔히 중기 비틀즈의 음반은 RUBBER SOUL과 REVOLVER 이 두장으로 분류하는데

러버소울이 초기시절의 여러 획기적인 사운드를 발전시켜 
연주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구사했던데 반해..
리볼버에 이르게 되면 가사면에서도 점차적으로 사회성이 드러나고
그때 마약의 영향을 받게되어 싸이키 델릭적인 사운드도 구사하게 되죠..
이 두장의 앨범에서 일구어진 그들의 음악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 화려한 후기를 알리며 꽃피우게 되는데...
하여간 이 리볼버에는 싸이키델릭 사운드가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 곡들로 꼽히는게 SHE SAID, SHE SAID...I'M ONLY SLEEPING등의
곡들인데 역시 리볼버에 등장하는 사이키 델릭의 명곡이라면
바로 이 TOMORROW- 이죠...
특히 이 곡에서는 테이프 역회전 재생음을 사용하여 보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필 멘제네라는 이 곡을 보다 싸이키 하게 리바이벌하고 있죠...
역시 브라이언 이노와 사이먼 필립스라는 걸출한 뮤지션과 함께한 
연주라 전반적으로 탄탄한 연주위에 
브라이언의 키보드 연주와 그리고 기타로서 낼 수 있는 소리의 한계에
도전하는 필의 연주가 잘 어울어진 대곡입니다..
원곡의 분위기를 심화시켜 좀 더 싸이키델릭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을
뿐더러 원곡보다는 연주에 보다 중점을 둬서 기타와 키보드에서 들려줄 수
있는 사운드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곡입니다..


 송상헌   (FAB4    )
BEATLES - SGT. PEPPER'S... 보충...           08/04 00:51   174 line

오랜만에 게시판에 비틀즈에 관련된 글이 올라왔더군요...
희주님의 멋지고 성의있는 평들과 함께말이죠...
커..
정말 반가왔어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대한
약간의 자료랄까..하여간 다들 아실지 모르는 야그지만 좀 끄적거릴까 
합니다..히..비틀즈는 제 전공이걸랑요...

정말이지 이 앨범이 발매된 67년은 록계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해이죠..당시 플라워 무브먼트는 절정에 이르러
THE SUMMER OF LOVE에는 젊은 세대에 의해 실험적인 음악과
사회참여적인 음악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미 헨드릭스와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67년ㅇ 데뷔하게되고..
롤링스톤즈는 그들의 대표작의 하나인 BETWEEN THE BUTTONS를 발매했고.
THE WHO의 컨셉트 앨범인 THE SELL OUT도 이때 발매됬습니다..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 역시 67년에 데뷔앨범을 발매하게 되죠..
커..
이러한 상황들로 짐작해볼때 67년의 음악적 분위기를 대강 짐작하시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때 후기 비틀즈의 화려한 막을 올리며 록계의 역사적인 음반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죠..

이 앨범은 67년 6월 1일 영국에서 발매됐고 뒤이어 6월2일 미국에서도 
발매됩니다..이것은 66년 12월 하순에서부터 67년 4월 하순에 걸쳐
4개월간 700여 시간동안 스튜디오에서의 산고끝에 발매되는 것이었죠
프로듀서는 다른 앨범과 마찬가지로 GEORGE MARTIN이 맡아주었고..
제프리 에머릭이란 사람이 엔지니어링을 맡아주었습니다..
그는 이 앨범으로 67년도 그래미에서 최우수 엔지니어상을 받게되죠..
비틀즈 외의 참가 뮤지션은 그리 주목할만한 사람은 눈에 띠질 않는군요..
하여간..
이 앨범이 발매된 후 3개월간 전세계적으로 25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75년 8월까지 1100만장을 돌파한 앨범입니다..
앨범 발매 이전에 영국에서 예약 판매만도 25만장을 기록했구요..
영국 멜러디 메이커 지에서는 차트 1위로 진입해 22주간 1위를 기록했고..
미국 빌보드 지에서는 차트 8위로 등장해 그 다음주부터 15주동안 1위를 
기록하며 6월 15일에는 RIAA공식 골드 디스크를 획득하는등
이미 RUBBER SOUL과 REVOLVER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앨범 판매고를 유지한 자신감에서 좀 더 성숙한 음악을 
구사했던 비틀즈는 이 앨범에서는 더더욱이나 화제를 뿌리며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해나갑니다..

앨범 발매당시 주요 미디어들은 모두 비틀즈를 '진지한 예술가'라고
극찬을 하며 당시까지의 대중음악을 예술의 수준으로 올려놓은
비틀즈의 창조성을 극찬했습니다..
뉴스위크지는 비틀즈를 영국의 새로운 계관시인이라 칭하면서 
그들은 테니슨, 해롤드 핀터, T.S 엘리어트에 필적한다고 
극찬했으며 
타임지는 그들을 커버 스토리로 다루며 '이 앨범은 팝 음악에 
진정한 혁명을 가져왔다. 이로서 팝 음악은 지금까지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것, 바로 예술의 위치로 올라섰다'라고 평했습니다..
또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틀즈의 사운드는 바하의 푸가에 필적하는 미를 
가졌다..여러가지 의미로 볼때 그들은 금세기 최고의 작곡가이다. 
금세기의 슈베르트나 헨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화려한 평에 걸맞게 앨범의 자켓도 무진장 화려했는데..
67년도 그래미 상에서 베스트 앨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초기의 비틀즈의 모습을 인형으로 배치해서
새로운 비틀즈의 탄생을 환영했죠..다시말해 지난 모습을 손수 매장하고
새 비틀즈를 선언한 자켓이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인 자켓의 아이디어는 폴의 아이디어로 비틀즈 멤버 4명이 각기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하여 합성사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쩝...이거 정말이지 할 일 없을때 자켓을 들여다 보며 자기가 아는 사람을 
찾는것도 재미있는 일인데..히...뭐 그냥 바도 마릴린 먼로, 말론 브란도
봅 딜런, 토니 커티스, 칼 마르크스,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드가 앨런 포,
프레드 아스테어, 루이스 캐롤, 마를레네 디트리히, 아인슈타인..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등등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죠..
히...
존 레논은 간디, 히틀러 심지어는 예수의 모습까지 넣으려고 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걱정한 EMI간부의 간곡한 부탁으로 
막판에 제외됐다는 후문도 있더군요....(역시 존 다운 발상이죠??)

이 앨범은 비틀즈 최초의 컨셉트 앨범이었고 이 앨범의 발매이후
록 계에는 다시한번 컨셉트 앨범의 선풍이 불기도 했죠..
이 앨범에서 비틀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사에 얽힌 모든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질수 있는 고독, 우정, 성(SEX), 사랑, 세대간의 갈등, 소외,
공포, 악몽등의 관념적인 문제들을 명료한 가사속에 담고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자켓에서 말씀드렸지만 이 앨범은 초기 비틀즈를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매장했는데...
바로 첫 곡에서도 초기 비틀즈의 모습을 페퍼상사의 밴드로 표현을 
하며 다음곡을 부를 BILLY SHEARS란 가수를 소개하며 앨범을 시작하죠..
바로 이 BILLY SHEAR란 가수는 정말이지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칠
비틀즈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앨범의 엔지니어를 담당했던 제프리 에머릭은 
'오늘날의 스튜디오 테크놀로지는 모두 이 앨범을 녹음할 때 우리가
사용한 방식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원시인들처럼
그 작업을 그 작업을 수행해냈습니다..'란 말을 했죠..
말 그대로 오늘날 처럼 신디사이저 마저도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
이러한 사운드의 구성은 한마디로 기적같은 일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HORN을 넓게 도입했고..오케스트라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리볼버에서도 들을 수 있었겠지만 ..악기소리가 전반에 나오고
에코가 있는 보컬이 넓게 나오는 엔지니어 방식을 채택했고..
많은 사운드 믹싱을 사용했습니다..
음...앞에 제가 비틀즈의 리바이벌 곡들이란 글에서 연재한 바와 같이..
TOMORROW NEVER KNOWS 라는 곡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테이프 역회전 
재생음이 이 앨범ㅇㅅ
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특히나 비틀즈의 최고 걸작인 A DAY IN THE LIFE에서 
폴과 존의 보컬이 엇갈리는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이상한 
사운드는 18트랙으로 녹음한 것입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한계가 17트랙이라니까...
당연히 그 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겠죠...히...
뿐만아니라..오케스트라에 근거한 편곡이나 전반적인 컨셉트 적인 흐름등은
이 앨범을 한층 더 값지게 만든 요소들입니다...
쩌비~!!~
이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이러한 앨범을 글로 표현하려는 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네요...
이거 뭐 이렇게 위대한 앨범을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겠어요..
말로는 정말 표현하지 못할 그런 위대함들이 곳곳에 배어있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의 컨셉트적인 구조와 각각의 곡들에 대한 분석(?)-음악에 분석이란
있을 수 없지만-은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이 앨범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나열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리차드 페리(프로듀서)
수록곡 하나하나마다 걸작인 앨범은 나에게 이것이 처음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것은 MASTERPIECE다. 
한장의 레코드로 전세계의 모든 사람과 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작품..

필립 글래스(싱어송 라이터)
노랫말 뿐만 아니라 '음악'의 측면에서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도록 만든
첫 레코드이다.
대중음악이 이토록 진지해질 수 있다면 
진지하고 심각한 음악이 왜 대중적일 수 없단 말인가???

다니엘 라노이스(프로듀서)
음악에 대해 열광적인 젊은이에게 학교는 진정한 음악적
교훈을 줄 수 없다. 
'페퍼상사'같은 앨범을 통해 그것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브라이언 윌슨(비치보이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기절할 뻔했다. 
나는 우리의 앨범 PET SOUNDS가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엇다. 
그러나 '페퍼상사'를 들고 나온 비틀즈는 우리를 밀어냈다.

조이 라몬
A DAY IN THE LIFE의 마지막 피아노 코드는 무어라고 
표현할 말이 없다. 
노랫말과 그 상상의 세계가 너무 좋다.
요즘은 이런 노래가 없다. 

리처드 골드스타인(뉴욕 타임즈 평론가)
20년전 이 앨범이 나왔을 때 
나는 '별 볼일 없는 노래 모음집'이라고 썼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정정하겠다.
이것은 놀랄만큼 성공적인 작품이다.

지미 이오빈(프로듀서)
이 세상의 누구라도 '페퍼상사'와 같은 앨범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에지(U2)
작년 더블린에서 THE JOSHUA TREE를 레코딩하는 동안
내내 '페퍼상사'를 들었다. 

레니 케이(프로듀서)
'페퍼상사는 록 음악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모든 록 음악이 이 앨범의 영향을 받았다. 
그 앨범속에 간직된 '자유'의 개념을
사람들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 앨범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모든것이 가능하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준다. 
어려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래, 우리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왜 못해??
비틀즈는 해냈는데!!!!!!'라고...

커...
클났네요...
이거 잠깐 쓴다고 그냥 온라인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길어졌나봐요...
어떻해~!~!
낼 새벽에 또 부대에 출근해야되는데....
전화요금은 어쩌고~!!~!~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3-          08/05 23:17   40 line

음...
오늘은 비틀즈의 곡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사람을 소개드릴까 합니다..
밑에서 희주님도 페퍼상사의 고독 클럽 밴드란 글에서 잠깐
소개를 한 곡인데...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란 곡을 
허스키 보이스의 대명사 조 카커가 리바이벌을 함으로써
데뷔를 하게 되죠...
이 곡은 SGT. PEPPER'S...의 수록곡으로 링고가 보컬을 맡았던 곡이죠..
링고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나는 레논이나 메카트니 만큼 음역이 넓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를 위해서 부르기 힘들지 않은 노래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해준 곡이 바로 이 곡이죠...
평범한 링고를 위해 만들어준 소박한 우정의 곡...
원곡은 사실 아주 단순 명쾌한 곡으로 링고의 보컬이 아주
잘 어울렸던 곡이죠...
음..뭐랄까..SGT. PEPPER'S...같은 대작에 수록되기에는 
너무 소박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곡이었는데...
이 곡을 조 카커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블루스적인 분위기로 훌륭히 바꿔 냅니다..
이곡은 ..일전에 우리나라에서 케빈은 13살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그널로 쓰여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진 곡이죠..
원곡의 소박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여성 코러스를 사용하기도 하고..
링고의 보컬과 조의 보컬이 너무나 상반된 보컬이기 때문에
이 두곡을 비교해서 들으면 재미있을겁니다..

무명의 조 카커는..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에서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올라섬으로써..
전 세계에 그의 멋진 허스키 보이스를 들려주었고...
그로 인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는 조 카커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되죠..
한가지 재미있는점은..
대부분의 비틀즈 곡의 리바이벌이 존이나 폴이 보컬을 맡았던 
곡들인데 조 카커는 유독 링고가 보컬을 맡았던 곡을 리바이벌
했다는 점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드럼과 건반으로 구성된 원곡이 
여성 코러스를 전편에 내세운 블루스 곡으로 변형되어 발표됬다는데서
여러분들은 리바이벌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겁니다..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4-          08/10 00:30   48 line

안녕하세요...
오늘도 역시 비틀즈 리바이벌곡에 대한 글을 올리러 
야심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접속을 했습니다..커...
(이거 낼 출근 걱정되네..쩝...)
이렇게 계속 쓰다보면 어디까지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1964년 I WANNA HOLD YOUR HAND를 필두로 미대륙을 강타한
비틀즈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죠...
그야말로 단순한 팝 그룹의 도를 넘어서 그들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자리잡습니다..
그야말로 비틀즈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기사거리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면서 비틀즈는 정말이지 무지 바쁜 일정에 시달리게 됩니다..
영화 A HARD DAY'S NIGHT의 촬영이후 그들은 더욱 바_?지게 되는데..
그러한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네번째 앨범인
FOR SALE을 발매하게 됩니다..
사정이 사정인 만큼 사실 짜집기한 면이 눈에 많이 뜨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이 자켓에 보이듯 피곤한 그들의 모습이
음악에도 많이 반영된 앨범이었습니다..
사운드가 전반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활기가 떨어지죠...
그래도 역시 귀여운 분위기의 곡들이 간간히 삽입됬던 앨범인데..
그중 하나가 EVERY LITTLE THINGS란 곡입니다..
폴과 존의 하모니가 잘 어울어진 곡이죠..물론 조지의 기타도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한 몫하지만..
이 곡을 엄청 길게 리바이벌 한 그룹이 있습니다..
영국의 프로록 그룹인 YES죠...
예스의 데뷔 앨범에 바로 이 EVERY LITTLE THINGS란 곡이 원곡에 비하면
엄청나게 긴 곡으로 변신을 해서 등장하게 됩니다..
크리스 스콰이어의 묵직한 베이스 연주가 초반에 등장하며..
RUBBER SOUL의 수록곡이었던 DAY TRIPPER의 전주부분이 도입됩니다..
뭐랄까 원곡이 잘 연계되는 보컬에 중점을 뒀다면..
이 곡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소절을 도막도막 끊어서 불러주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듣기에는 좀 이상할 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존 앤더슨의 보컬과 하모니(오버더빙에 의한..)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매끄러운 화음진행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런 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곡의 재미있는 점이라면...
EVERY LITTLE THINGS와 DAY TRIPPER와 그리고 GET BACK이 한 곡에 공존한다는

점인데..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반부의 DAY...의 전주 도입도 그렇지만..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들어보면 GET BACK을 연상시키는 그런 
곡입니다...
초기 예스의 상큼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고...
비틀즈의 노래도 들을 수 있는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일석이조란 말이 거짓말이 아니더라니깐요..히...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5-          08/10 22:17   37 line

쩝...김기리다님도 비틀매니아셨나요???
커...무지 반갑습니다..
쩝..근디 기리다님이 제 자본을 많이 까먹으셔서..난 이제 뭐 묵고살죠??
흑흑흑...
그렇다고 절망할 상헌이가 아니죠!~!~
오늘도 비틀즈 리바이벌은 이어집니다..

기리다 님께서 ..
딥 퍼플의 help를 말씀하셨는디...
그래서 생각난 곡이여요..(감사!~!~)
비틀즈가 HELP!를 발매할 무렵에 역시 발표된 곡인데
WE CAN WORK IT OUT이란 곡이죠...
가사도 무지 좋고...
탬버린이 전편에 깔린 아주 멋진 곡입니다..
이 곡을 원곡과는 정 반대로 만든 곡이 바로 딥 퍼플의 리바이벌이죠..
원곡이 탬버린을 전편에 깔며 전반적인 어쿼스틱 사운드 위주로 나간
곡이라면 딥 퍼플은 퍼플 답게 리치의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일렉트릭 위주죠..
이 곡은 그들의 2집인 BOOK OF TELYESIN(스펠링은 확실하지 않음.)
영국 시인인데..이 텔리에신이란 사람..스펠링 아시는 분 계세요??
하여간..
이 앨범은 뭐랄까..아직까지 갈피를 못잡은 딥 퍼플의 과도기적 
작품이라고나 할까..
APRIL의 예고편 격이라고 할만한 ANTHEM을 제외하고는 
불르스적인 색채가 강한 앨범이었어요..
데뷔앨범이 사이키 델릭의 색채가 강한것에 비하면 재미있는 변화죠..
하여간 존 로드의 블루스적인 키보드 연주에..
투박한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사운드..
그위에 굵직한 로드 에반스의 보컬이 얹어진 그런 사운드였는데...
이 WE CAN WORK IT OUT도 그런식으로 리바이벌 됬죠..
그들의 초기 곡으로 유명한 KENTURKY WOMAN을 들어보신 분은
그 곡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여간 어쿼스틱사운드를 일렉트릭으로 변모시킨 딥 퍼플의 
WE CAN WORK IT OUT 역시 인상적인 비틀즈 리바이벌중의 하나입니다..

P.S 기리다님~! 언제한번 술이나 한잔 하면서 
비틀즈 야그나 찐~!!~하게 하자구요!!~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6-          08/15 02:49   57 line

안녕하시렵니까..커...
요즘 비틀즈에 관련된 글이 많이 눈에 띄네요..히...
하여간 반갑네요..비틀즈에 관련된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69년 1월에서 2월에 걸쳐 비틀즈는 LET IT BE라는 앨범을 녹음하죠..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하면 비틀즈의 사운드 트랙 앨범입니다..
그들의 레코딩 과정을 촬영한 다큐멘타리 영화였던 LET IT BE의
사운드 트랙 앨범이었죠...
음...
원래 이 앨범은 GET BECK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될 예정이었는데...
앨범 발매 직전...먼저 해적판이 나돌아서 발매가 연기됩니다...
거기에 여러 문제가 겹치게 되어 이 앨범은 70년 5월에 발매되죠..
그래서 LET IT BE는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이 됩니다...
하지만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은 ABBEY ROAD죠...
이 앨범은 폴의 사망설로 인해 발매 초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입니다..첫해 판매량이 500만장인데..이게 69년 9월 26일에 발매됬으니까
..
3개월 여만에 5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 되는거죠...
물론 발매 한달만에 골드 레코드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비틀즈의 3대 명반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앨범은...
제 개인적인 견해인지는 몰라도 비틀즈의 앨범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치밀한 앨범의 구성이라든지..후기앨범에서 보여주던 기술상의 
진보의 완성도라든지..작사,작곡, 연주 면에서의 발전도..
그리고 각 멤버간의 조화가 그야말로 이 앨범을 명반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앨범이 비틀즈가 붕괴되는 시기에 나온 앨범이라는 사실도
전혀 믿겨지지 않습니다..
A면과 B면은 완전히 다른 구성을 보이는데...
A면이 당시 초기 불르스와 록큰롤로 회기하려는 존의 성향이 반영됬다면..

B면은 좀더 새로움을 추구하는 폴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하여간...
링고의 드럼연주가 절정을 이루는 COME TOGETHER 라든지..
조지의 창작력의 완성을 보여준 SOMETHING이나 HERE COMES THE SUN..
그리고 진한 불르스 연주를 들려주는 I WANT YOU,
비틀즈 화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BECAUSE...
그리고 역시 이 앨범의 노른자위인..
YOU NEVER GIVE ME A MONEY에서 THE END로 이어지는 메들리가 
인상적인 앨범입니다...
이 앨범을 자켓까지 통째로 리바이벌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재즈 기타리스트 이자 보컬리스트인 조지 벤슨이었죠...
기타를 옆에 끼고 길을 건너는 조지 벤슨의 사진을 자켓으로 한
이 앨범의 타이틀은 ANOTHER ABBEY ROAD입니다...
커...
당최 믿기지 않는 것은..에비로드라는 엄청난 비중있는 앨범을 
통째로 리바이벌 하려고 했던 사실보다도...
이러한 어려운 주제를 무리없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소화해낸
조지 벤슨의 재능입니다...
특히 B면의 메들리를 재편곡해서..(원곡의 메들리에서 보다는
몇 곡 삭제되기는 했지만..) 재즈풍으로 들려주는 그의 솜씨는
거의 환상이죠...
그 외에도 에비로드의 주요 곡들을 잔잔한 보컬과 신선한 기타솜씨로
리바이벌 해주고 있는 앨범입니다...
쩝...
재즈 풍으로 듣는 에비로드...
정말 매력적입니다...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7-          08/15 23:49   55 line

안녕하세요...
오늘 새벽에 쓰고 오늘 또 쓰네요..키...
일단 성진님하구 기리다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구요...
비록 성진님하구 기리다님께서 제 밑천을 까먹으셔도..
오늘도 비틀즈의 리바이벌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키...

성진님의 글을 보고서...
쓸까 말까 하던 글을 오늘 쓰려고 합니다...
바로 폴이 리바이벌(?)한 비틀즈의 곡이죠...
히..
이걸 리바이벌이라고 부르기는 뭐하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폴 메카트니의 비틀즈곡 재해석판..이라고 
붙이는게 맞는 것 같은데...
폴 메카트니가 84년에 제작 감독 주연한 영화였던..
GIVE MY REGUARD TO BROAD STREET 이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 담겨진..
비틀즈의 곡들이 바로 그것이죠...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폴 메카트니의 위대한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대우 비디오를 통해 나왔던 영화였는데...
대충의 스토리는 뭐 도둑맞은 필름을 찾는데 얽힌 이야기였는데...
영화의 스토리 진행과는 상관없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B급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던 영화였는데...
영화뿐만 아니라 사운드 트랙역시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였어요..

바로 비틀즈의 곡들을 새롭게 녹음해서 벌어진 일이었죠..
여기에는 YESTERDAY..GOOD DAY SUNSHINE..FOR NO ONE..
ELENOR RIGBY..LONG & WINDING ROAD..HERE THERE&EVERYWHERE등이
원작자인 폴 메카트니에 의해 다시 불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틀즈의 곡이 광고에 쓰이지 못하게 할정도로..
비틀즈의 곡을 보호하는데 힘쓴 폴 메카트니 자신이..
그의 곡들을 망쳐놓았다..'라는 혹평을 했었죠...
이에 대해..
조지 마틴은 '왜 딴사람들이 자신의 곡을 재녹음하는 것은 
가만있으면서 폴에게만은 그렇게 비난을 하는가..'라고
반문했었는데...
하여간 이 앨범을 들어보면...
좀더 현대적인 감각으로 녹음된 비틀즈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죠..
폴의 TUG OF WAR에서 쓰인 탁월한 신디사이져는..
HERE THERE & EVRYWHERE와 FOR NO ONE에서 관현악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북돋아주고 있고...
GOODDAY SUNSHINE은 보다 흥겨운 리듬으로 구성되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관현악 부분을 과감히 죽여버리고 재즈풍으로 다시 편곡된..
THE LONG & WINDING ROAD였죠...
여기서 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폴의 재즈에 대한 관심은
후일 FLOWERS IN THE DIRT에 수록된 DISTRACTIONS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하여간 원래의 클래식컬한 분위기를 감소시킨 반면..
약간의 잔잔한 현의 울림과 함께 재즈풍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킨 
이 곡은 아주 매력적이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앨범이 그렇게도 비난의 대상이 됬던 것은..
바로 이 THE LONG & WINDING ROAD에서 관현악 부분을 제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8-          08/23 00:44   47 line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 며칠간 바빠서 비틀즈 리바이벌 야그를 많이 못했네요..
물론 딴 게시판에도 글을 못 올렸구요...
아마 이번달 말부터 담달 초까지는 계속해서 글을 못 올릴 것 같은디..
쩝...
어쩔 수 없는 일이구..하여간 오늘도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가겠습니다..
제가 재수하던 시절에 즐겨들었던 비틀즈의 노래가 있었는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드릴 BLACK BIRD란 노랩니다..
WHITE ALBUM의 수록곡으로...
어쿼스틱 기타의 톡톡 튀는 듯한 경쾌한 반주에..
폴의 절제된 목소리가 잘 어울렸던 곡이죠...
이 곡을 자코 페스토리우스가 리바이벌 한 적이 있었어요...
그의 두번째 솔로 앨범인 WORD OF MOUTH란 앨범에 수록됐죠..
이 앨범은 81년에 발매된 그의 두번째 솔로 앨범으로..
전작 JACO PASTORIUS에 비해 좀더 전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앨범이었습니다..
웨더 리포트 시절의 웨인 쇼터라던가..
잭 디 조넷..톰 스콧..등등 재즈계의 일류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이 앨범은 정말이지 자코의 진면목을 보여준 명반이죠...
테크닉도 테크닉이려니와 코드의 진행이나 곡의 구성에 있어서의
독창성은 이 앨범을 더욱 빛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코는 BLACK BIRD를 아주 전위적으로 연주해주고 있는데...
음....
처음부터 요란 시끌벅적하게 시작을 해서...
전체적으로 하모니카와 베이스의 2중주로 주 멜러디를 진행하며..
베이스의 애드립과 변주를 통해 3분이 채 못되는 시간을 
알차게 꾸며나가고 있습니다...
비틀즈의 원곡이 넓직한 들판을 날아다니는 새를 노래했다면
자코의 리바이벌은 열대의 우거진 숲에서 노래하는 새를 
묘사했다고나 할까???
완전히 틀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이 앨범에서 BLACK BIRD에 접속되어 나오는 타이틀곡인
WORD OF MOUTH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BLACK BIRD가 한참 이어지다가 갑자기 드럼이 나오면서
WORD OF MOUTH로 넘어가걸랑요...)
하지만 하필이면 자코가 왜 이 곡을 리바이벌까지 하면서
접속곡으로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쩝...뭐 묻고 싶어도 이미 자코는 술마시고 깽판부리다가..
한대 맞아서 뒤로 쓰러졌는데...
그때 뇌출혈을 일으켜 젊은 나이에 저 세상에 가는 바람에..
물어볼 수가 없네요...
하여간...
이 곡을 듣다보면 가사와는 반대로 젊은 나이에 
날개가 꺽여져버린 젊은 천재 자코의 삶과 너무 대비되는 바람에..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는 없네요...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9-          08/28 00:39   51 line

여러분 안뇽하세요~!~!
하..거의 닷새만에 글을 올리나보네요...
참 이 글을 쓰면서 저도 이제 10곡도 못넘기고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이거 어째야 할라나 고민도 되지만...
그래도 오늘도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는 계속 이어집니다~!!~

얼마전에 U2도 신보를 발매했고 하니까..
오늘은 U2가 리바이벌한 HELTER SKELTER나 한번 소개해볼까요??
이 HELTER SKELTER는 화이트 앨범 수록곡이죠...
물론 이 화이트 앨범은 비틀즈의 3대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이죠..
이 화이트는 3대명반중 나머지 두장과는 달리..
일관성없는 아주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그 특징이죠...
뭐랄까..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화이트 앨범에서 비틀즈는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들을 소화해내고 있죠..
바로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로은 창작의 날개를 편 점이
바로 이 화이트 앨범의 강점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비틀즈는 R'N'R에서 부터..
R&B..컨트리...포크...뮤지컬..클래식..등등에 이르는 음악들을 
하고 있는데...
이 헬터 스켈터는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한 헤비 메틀(좀더 정확이 말하자면

하드록이겠죠??)
을 수요한 곡입니다...
HELTER SKELTER란 영국의 휴양도시 MARGATE의 드림랜드 파크에 있는
큼지막한 미끄럼틀의 이름이죠...
원래 이곡은 25분간 파열음으로 가득 찬 곡이었는데..
앨범의 발매 직전 다시 편집되어서 발표됩니다...
아마 이곡의 끝부분에 나오는 잡소리들이 편집되기 전 녹음부분인 
것 같던데...
하여간...
날카로운 기타연주로 시작되서...기타의 강렬한 파열음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 나가고 있고..거기에 폴의 쥐어 짜는 듯한 보컬이 
잘 어울어졌던 곡입니다...

이곡은 U2말고도 머틀리 쿠루가 리바이벌 했었는데...
어떤 앨범인지는 잘 생각이 안나기는 하지만...
머틀리의 리바이벌은 너무 어색하게 됬죠...
원곡을 거의 망쳐놓은 리바이벌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U2의 리바이벌은 비틀즈의 리바이벌곡중에 제가
최고로 쳐주는 몇몇 곡중의 하나입니다...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에서 보여주던
그 기타소리로 시작되서...
뭐랄까..메틀곡인 이곡을 정말이지 U2의 스타일로 잘 소화해주고 있죠...
거기에 보노의 열정적인 보컬도 아주 뛰어난 곡입니다..
LIVE UNDER THE BLOOD 란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곡인데...
라이브라는 장점을 잘 활용해서 아주 멋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주 멋있죠...
뭐 딴거 쓸말이 있었는디..쩝...
기억이 잘 안나넨요...
나중에 기억이 나면 게시판에 보충론을 올리죠 뭐...
그럼 이만!~


 송상헌   (FAB4    )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10-         08/29 23:32   43 line

안녕하세요~!!~
음...그리 폭발적인 호응이 없는 것 같지만..그럭저럭 쓰다보니까..
드디어 '비틀즈 리바이벌 누가누가 잘했나' 가 벌써 2자리수에 
접어들었군요...
크..역시 상헌이는 뻔뻔스러워..키...
하여간 각설하고 오늘도 비틀즈 리바이벌 시리즈는 이어집니다..

오늘은 엘튼 존의 리바이벌을 소개할까 합니다..
어느 앨범에 들어있는 곡인지는 제가 자료를 찾아봐야 알겠구요..
엘튼 존은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리바이벌 했죠..
원곡은 SGT. PEPPER'S.....에 들어있었던 곡입니다..
SGT. PEPPER'S.....에 대한 설명은 일전에 게시판에 올렸으니까
여기서는 과감히 생략을 하기로 하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희주님의 글이 아주 잘 되있더군요...
이 곡은 곡의 제목의 약자를 따면 LSD가 된다고 해서
논란이 많이 됬었던 곡이었고..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지곡으로 묶였던 곡이죠...
사운드나 가사 모두 환상적인 곡입니다..
테이프 역회전 재생음을 이용해서 보다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들려줬고..
환상의 세계속에 있는 루시라는 여자를 노래했었죠...
뭐 노랫말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니까..
가사의 정확한 의미를 밝히기는 좀 힘들겠네요...
하여간 이 노래를 엘튼 존이 리바이벌했었죠...
특히 이 리바이벌에는 곡의 원작자인 존 레논이 기타와 코러스를 맡아주고
있습니다..
원곡이 테이프 역회전 재생음과 불규칙적인 화음을 이용해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를 위주로 했다면...
이 리바이벌은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원곡보다는 좀더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부드럽게 만들어진 곡입니다..
전반적으로 클래식적인 편곡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중간에 레게 리듬을 도입을 하기도 하고...
기본적인 R'N'R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하는등 한 곡에서 다양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엘튼 존의 리바이벌 답게 LUCY IN THE SKY의 변주가 들어있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곡에서 존이 기타와 코러스를 맡아준 댓가로..
엘튼 존은 후일 존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공연에 등장합니다..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하여간 엘튼의 이 리바이벌은 존 레논이 참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원곡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맘껏 구사한 
아주 멋진 리바이벌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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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의 금지 앨범 디자인

www.tabootunes.com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의 금지 앨범 디자인
[팝뉴스 2005-12-22 13:11]

비틀즈, 마마스 앤 파파스, 롤링스톤즈 등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뮤지션들이 내놓았다가 퇴짜를 맞은 ‘앨범 디자인’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과 레이트유어뮤직닷컴 등 음악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알려진 ‘금지 앨범 디자인’들은 5~60년대 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의 뮤지션에서 U2 등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뮤지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 중 금지 처분이 내려진 앨범 디자인의 대부분은 외설, 폭력, 신성모독 등 갖가지 사연을 담고 있는데,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금지 처분이 지나친 경우라는 의견도 있어 눈길을 끌기도.

‘금지 앨범 디자인’ 중 비틀즈가 66년에 발표한 ‘Yesterday" ... and Today’는 분해된 아기 인형을 들고 있는 비틀즈 멤버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등 너무나 잔인하다는 이유로 ‘평범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고 또 비좁은 화장실 욕조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담은 마마스 앤 파파스의 앨범은 사진이 일부 잘리는 비운을 맛봤다.

또 롤링 스톤즈의 1968년 발매 앨범인 ‘Beggars Banquet’는 낙서로 가득한 지저분한 화장실 모습을 앨범의 전면에 내세웠다가 퇴짜를 맞았고 ‘The Beautiful South’의 앨범은 관객을 애견으로 묘사한 디자인을 제작했다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김건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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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딸, ROCK으로 독일을 흔들다

 

 

 

광부의 딸, ROCK으로 독일을 흔들다
[(개)좆선일보 2005-12-22 03:08]    


록밴드 보컬리스트… 한국계 2세 조지인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

유럽 대륙의 록(Rock) 음악 강국(强國) 독일. 최근 ‘크립테리아(Krypteria)’라는 신예 4인조 밴드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Liberatio’라는 노래로 독일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며 ‘스타’ 반열에 오른 이 밴드 멤버 중 관객을 휘어잡는 여성 보컬리스트가 뜻밖에도 재독 한국인 2세 조지인(28)씨다. 조씨는 30여 년 전 독일에 건너온 파독(派獨) 광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치원 때부터 대중 가수를 꿈꿨다는 그녀는 쾰른 음악대학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고서도 록 밴드 멤버를 택했다.

현악 위주의 웅장한 클래식 선율과 강렬한 록 비트가 결합된 음악을 내세운 밴드 ‘크립테리아’에서 ‘코리안’ 조지인은 건장한 독일 남성 멤버들 연주를 등에 업고, 신비스러우면서 강단 있는 목소리로 밴드를 이끈다. 조지인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적잖이 더듬거렸지만, 또렷한 한국어로 의사를 전달했다.

“벼락 인기를 얻게 되어 저도 얼떨떨해요. 록이라고 해서 꼭 요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음악에 담아 보자는 생각으로 곡을 만들고, 노래했는데 뜻밖에 관심을 얻었어요.”

그는 음대 졸업 후 대중가수가 되기 위해 색다른 선택을 했다. 한 방송사가 주최하는 신인 연예인 캐스팅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 여기서 우승한 그는 ‘비컴원’이라는 밴드를 거쳐 ‘크립테리아’에 들어갔다.

그는 “록·팝 음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클래식이 기본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음대에서 공부했다”며 “일단, 지금 제 마음속을 두들기는 소리를 솔직하게 드러내기에는 록이 제격인 것 같다”고 했다.

조지인은 로커(rocker)의 길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래는 휘트니 휴스턴,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은 마돈나, 춤은 재닛 잭슨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그는 “경력을 쌓은 뒤, 솔로 가수로 독립하고 싶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후원도 큰 몫을 했다. 그녀가 클래식 공부를 중단하고, 대중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현재 제약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는 아버지나 지금도 간호사로 근무하는 어머니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 조씨는 “제가 노래를 하며 생계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전적으로 후원하겠다는 게 부모님 뜻이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어머니가 근무 끝나고 공연장이나 스튜디오를 찾아오실 때가 많아요. 특히 녹음 들어가기 전에는 목에 좋으라고 보약 같은 것도 지어오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어머니는 제게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되, 먹고 살 계획은 항상 세워 놓아라’고 말씀하시고는 합니다.”

크립테리아의 앨범은 내년 초 한국에도 소개된다. 그는 “이 앨범이 한국에서도 호응을 얻으면 작은 무대에서라도 고국 팬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12년 전에 한국에 온 뒤로 한 번도 한국에 못 왔다는 그는 ‘떡볶이’, ‘호떡’ 등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최승현기자 [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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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민들, 존 레논의 '스트로베리 필즈'를 부르다

 

 

 

뉴욕 시민들, 존 레논의 '스트로베리 필즈'를 부르다
존 레논 피살 25주년을 맞은 8일 '이매진' 기념터의 현장 스케치
텍스트만보기   론다 허벤(news) 기자   
"스트로베리 필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레논의 삶을 기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음악가가 세상을 뜨면 뉴올리언즈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요."

레논의 팬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사람들은 지난 8일 저녁(동부시간) 존 레논을 추모하기 위해 뉴욕 센트럴 파크에 모였다. 레논은 25년 전인 1980년 12월 8일 이 부근에 있던 집 근처에서 총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그가 죽은 지 5년 째 되는 날 센트럴 파크 한 구석은 ‘스트로베리 필드’로 명명됐고 그 한 가운데 길 들이 교차하는 조그만 광장에 ‘IMAGINE’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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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매진 기념터를 지나간 사람은 내가 본 것만 해도 족히 1000명은 넘을 것이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세대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어깨에 무등을 타고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고 기념터를 찾았다. 호주에서 온 사람도 있고,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수많은 종류의 언어가 한 자리에서 들렸다.

경찰 저지선이 기념터까지 길을 내고 있었다. 경찰은 사람들이 기념터 앞에서 빨리 사진을 찍고 이동하도록 안내했다. “사진 찍으셨으면 바로 이동하세요.”

내 옆에 있던 사람은 “각자 원하는 대로 레논을 추모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왜 경찰이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우리 중 몇몇은 기념터 반대쪽까지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스트로베리 필드’ 등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군중 틈에 합류했다. 40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어두움이 깔리고 추운 공기가 휘감는 그 곳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가져온 초에 불을 켰고, 꽃이나 기념터에 놓을 다른 기념품들을 가져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부시 대통령, 제발 그만해요”라고 쓴 포스터를 가져왔다. 또 다른 사람은 “존, 고마워요, 당신이 이 세계와 나를 위해 해주고 간 모든 일에 대해서요”라고 쓴 것을 가져왔다.

기념터 위에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올려놓은 사람도 있었다. 트리 꼭대기에는 작은 장미로 장식된 레논의 사진이 있었다.

공원 밖으로 나오는 길에서는 기타를 치며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는 남자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들기도 했다. 어떤 여성은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병사의 숫자를 써 넣은 커다란 포스터를 가지고 왔다. “지금 세어보면 숨진 군인이 더 많을 거예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지나가다 그 포스터를 본 사람들은 포스터 위에 서명을 하고 각자 적고 싶은 메시지를 적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국 출신인 레논이 미국으로 왔고 베트남 전쟁을 멈추게 하려는 반전 운동에 참가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레논은 전쟁에 대해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 또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도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전쟁이 왜 끝나야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레논에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FBI가 그를 조사했고, 관련 서류 중 일부는 그가 숨진 지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레논은 자신이 할 수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오늘 세계 각지에서 센트럴 파크로 모여든 사람들은 레논이 한 일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매진 기념터에 놓인 한 푯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존, 우리는 당신이 보고 싶어요, 2005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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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 허벤(Ronda Hauben)은 뉴욕에 사는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입니다. 영문원고는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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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박정희는 머릴 잘랐고, 전두환은 판을 뺏었다”

 

 

 

전인권 “박정희는 머릴 잘랐고, 전두환은 판을 뺏었다”
억압받은 반자유 속에서 저항과 포용 배우다
입력 :2005-12-02 16:13   조은영 (helloey@dailyseop.com)기자
▲ 한국 록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전인권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답변 “어린 시절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등학교까지 그만 두었다.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림 속엔 나의 생각과 초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레진 않았다. 그런 내가 음악에선 가슴 뛰는 그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음악을 외면 할 수 없던 이유인 것 같다”

1979년 '맴도는 얼굴'을 발표하며 시작된 전인권의 음악인생은 올해로 26년이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로 회자되는 그룹 들국화의 리드 싱어였던 그는 허성욱, 최성원, 주찬권 등과 함께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으로 해외 뮤지션들과의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으며 어두운 사회 현실이 그물처럼 마음을 옥죄던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바람 같은 위안이 되었다.

때문에 그의 이름은 흔히 어두운 터널로 표현되는 80년대를 지나온 청장년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한 시대의 상징적 의미가 되어버린 전인권은 들국화의 해체 이후 몇 차례 마역 복용과 연루 되면서 한동안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최근 왕성한 음악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 그가 올 초 갑작스럽게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젊은 여배우와 사랑했었다고 고백하면서 ‘네카시즘’(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 공공의 적이자 2005년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되었다. 어쩌면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추억을 공감해 줄 수 없었던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나이주의, 외모주의를 돌아보게 한 사건이었다. 그는 요즘 공연을 할 때면 관객들 앞에서 “제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신나죠?” 하고 소리 지른다고 했다.

참 걱정 없고 솔직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낙천적인 성격은 타고나는 것 같다. 순간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겨내고 마치 착한 초등학생처럼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던 조세현 작가의 사진 속 전인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삼청동 사운드

▲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작은 목소리에 말 없는 소년이었던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작은 형 덕분에 팝송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한 후 소문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음악 공부에 매진하던 20대는 전인권 스스로도 정말 모범적인 음악생활을 했던 시기라 평하기도 했다.

“나는 19살 때 음악에 관해 10년을 계획했다. 어떻게 보면 고맙게도 나는 산이 만든 가수이기도 하다. 북악산에 올라 대마초를 피며 기타 하나 메고 밤새도록 노래 불러도 좋았던 삼청동 시절은 내 음악 바탕의 전부다. 나는 그로부터 12년만에 내가 원하는 음악 들국화로 성공할 수 있었다.”

전인권은 자신을 사람 좋아하며 지극히 낙천적 인물로 소개한다. 그의 말처럼 주변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뛰어난 음악인인데도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삼청동의 대부 춘길이 형님을 필두로 엄인호, 최성원, 조덕환 등 엄청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거래하는 방법을 몰라 힘들어 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거래해야 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할 것이다. 많은 가수들이 세상과 거래하긴 하지만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악하고만 거래하길 원한다. 물론 세상과 맞춰 나갈 때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도 솔직히 음악이나 마약과 거래하는 것이 더 편하다.”

세상과 마주서기 전 가장 자유로웠던 삼청동 시절이 그의 음악적 이데아이자 뿌리였다는 단언을 이해할 것도 같다.

음악을 위한 자극

▲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음악이든 미술이든 표현을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다.

전인권은 자신의 노래 대부분이 약물의 힘을 빌어 만들어 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때 마약과 관련하여 4번씩이나 구속되었던 전인권은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고 4번씩이나 잡아 가두나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노래를 느낌으로 부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도 하지만 때론 공연장에 모인 5000여명의 관중이 가수 하나에 집중하면서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되받고 견디기 위해 어떤 초인적 힘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대마초 합법화 논란이 일 때마다 대마초는 필요한 것이라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사랑은 탐구하는 것

전인권은 아름다운 퇴폐란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의 4집 수록곡 중 “나는 사랑하고 싶다. 영원한 숙제라지만 사랑이 진리라면 난 탐구하겠다.”란 가사를 들려주며 정말 열심히 노래한 뒤 필요한 건 사랑이고 연인 아닌가란 질문으로 되묻는다.

여전히 그에겐 지치지 않는 존재가 사랑인가 보다. 20대에 만나 불같이 사랑하며 거의 4년 동안을 매일 함께하다 결혼한 여자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그에게 사랑은 정말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기억들이 타인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것이 슬프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히려 이은주 사건은 화끈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다만 그렇게 나를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정말 사랑이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지 궁금해 졌다고 한다. 그다운 대답이다.

▲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내 인생의 자유, 반자유

전인권의 자유는 모험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모험심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물론 음악적 자유를 얻으려면 테크닉을 가져와야 하는 것처럼 자유는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것을 몸에 담고 그 이후에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언젠가 그는 TV에서 서태지가 지붕 없는 차를 타고 초코렛을 먹으며 “자유란게 별건가요”란 카피가 뜨는 광고를 보았다. 순간 우리가 자유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또 얼마나 힘들게 찾은 것인데 저렇게 얘기 할 수 있는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자유지만 자유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마음껏 탐험해 보는 것처럼 자유가 멋있는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는 내 나이 열아홉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 머리를 자르고 나보다 어린 군인에게 개머리판으로 맞았다. 5공때는 들국화 음반을 심의에 넣었는데 말도 안되는 이유로 모두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자유 속에서 반항적인 성향과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힘 모두를 얻었다.”

영원한 록커

지금 활력과 핏기를 잃어버린 음악시장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채 가장 고통에 시달리는 장르가 록은 아닐까?

그 역시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히트곡이 있던 때문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러한 난관을 연습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신도 30년째 아주 작은 새싹 같은 희망으로 록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록이 소중하게 돼 버렸다며 웃었다. 어쩐지 그 웃음에 뭉클함이 느껴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 전인권은 3일 평택을 시작으로 4개월간 전국 10개 도시를 도는 투어 공연을 갖는다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전인권은 지금 4개월간의 전국투어를 앞두고 있다. 늘 상 연말공연에 이야기 콘서트를 열었던 것처럼 이번 투어 역시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란 주제를 두고 어린 시절부터 전성기 때 활동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생각이다.

장기 투어인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2800회 이상의 공연을 해왔던 자신은 공연과 살아온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록 음악이 시장성은 없지만 록에 충실한 공연을 만들 생각으로 작지만 멋진 여행을 기대하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이번 투어엔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전인권과 감동적인 합동 무대를 꾸몄던 드렁큰 타이거가 내년 1월 중순까지는 전인권의 전국 투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동참을 결정하였다. 드렁큰 타이거는 내년 5월 선보일 전인권의 새 앨범에서도 랩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휴먼엔터테인먼트는 “오는 12월 3일 경기도 평택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천안, 수원, 부산 전주, 광주, 청주, 안산, 제주 등 10여개 도시를 도는 전국투어가 4개월간 계속 된다”며 “큰 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서도 전인권의 오리지널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강조했다.

▲ 사랑 앞에서 그는 늘 외로운 영혼이었다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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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1)  
 
zzz
2005-12-02 오후 11:26:00
(210.216.207.*)
  전인권이
머리카락 자른

박통이

먼저

잘렸군-----------

박통 지가 무슨 권리로

시민에게 선생질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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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전성기시절 술·여자에 묻혀살았다”

이미 다 알려진 얘기

재밌는건 아래 리플

 

 

비틀스 전성기시절 술·여자에 묻혀살았다”
[세계일보 2005-12-02 19:36]
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사진)의 인터뷰 녹취 테이프가 35년 만에 라디오 전파를 탈 예정이다.

영국 BBC방송은 2일 레넌이 1970년 12월 영국 연예잡지 ‘롤링스톤스’와 했던 인터뷰의 녹취 테이프를 3일 자사 라디오 방송에서 공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인터뷰에서 레넌은 비틀스 멤버로서의 삶을 ‘퇴폐적인 고대 로마시대’에 비유했다. 레넌은 “비틀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우리 곁엔 늘 술과 여자, 마약이 넘쳐나 퇴폐적인 고대 로마시대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레넌은 인터뷰에서 밴드생활의 어두운 부분과 개인적인 고뇌도 털어놨다. 레넌은 “비틀스가 가는 곳마다 뒤를 따르는 ‘오빠부대’가 없으면 술집 여종업원도 고용했었다”며 “천재로서의 삶은 재미있지 않으며 고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레넌은 1980년 12월8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 있던 열성팬 마크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김보은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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