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수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팔에서 거는 전화다. 수딘은 여름에 네팔로 돌아갔다. 8년여 동안 지내던 한국생활이었지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가게 되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계속 연락해도 내가 전화를 안받았다고 한다. 결국 몇달이 지난 지금에까지 그 일을 떠올리고 다시 전화를 한 것이다. 내가 그에게 해 준 일은 체불임금을 받는 일을 한 두번 도와줬을 뿐이고 가끔 사무실로 놀러오면 반갑게 맞아준 것 뿐인데...가끔 이런 전화를 받을때면 뭔가 들킨 것처럼 부끄러워진다.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에 비해 내가 이 친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작다는 것을...
거의 모든 대화의 마지막에 들을 수 있는 한마디..."언제 네팔 놀러오세요? 네팔 오면 꼭 전화하세요!"
로또에라도 당첨되면 이런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낮에 EBS에서 해 준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꿈의 구장'을 봤다. 야구광이다보니 야구영화라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듯이 채널을 고정하는 게 습관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야구를 소재로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야구가 주제인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그 보다는 미국 68세대가 그 이전 세대와 야구를 매개로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좀 판타지하게 그린 영화다. 68세대와 그 이전 세대와의 갈등, 진보적인 도시출신의 젊은 세대와 시골의 보수적인 주민들과의 갈등, 아들과 아버지와의 갈등....등 우리가 보기에도 낯설지 않은 갈등들이 등장하고 이것이 절묘하게 야구와 연결되어 해결되어 간다. 어찌보면 좀 억지다 싶은 장면도 많고 판타지적 요소도 많아 야구를 좋아하면서 미국 68세대의 경험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좀처럼 재밌게 보기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나온 대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다.
"미국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또 변해왔지. 하지만 야구만은 언제나 그대로 였어"
야구가 세대간의 갈등을 치유해줄 수 있는 약이길 바라는 건 미국인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프로야구는 군사정부에 대한 반감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만들어졌다는 '원죄' 를 가지고 있다. 더우기 한국의 프로야구는 대부분 재벌들의 광고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프로야구도 미국에서처럼 세대간의 갈등치유제로 사용될 수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야구장에 오는 부모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야구가 사회에 뭔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스포츠라는 이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프로야구팬들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부진하다고 청문회니 뭐니 하는 걸 보면 영국식 훌리건 문화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좀 우려스럽기도 하고....아무래도 새로운 변화는 기존 프로야구 보다는 요즘 관심을 받고 있는 독립리그나 아마야구 쪽에서 기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KBS의 특집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통일 등에 대한 의식 여론조사를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본 것이 아니라서 어떤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추측건데 무역 등을 위해 중국을 오가는 북한주민들을 비밀리에 접촉해서 한 것이 아닐까한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눈에 들어온 내용은 통일된 국가의 체제에 대한 선호도 조사였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포함해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가 절대다수였다. 자본주의는 극소수였다. KBS는 북주민들이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쇄뇌교육을 받은 결과였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관련한 인터뷰에서 북한주민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는 병원도 무상이고 교육도 무상이고...우리가 다 그런 혜택을 받았고...내가 시집올때까지만 해도 다 그랬다"
"...사회주의는 마음이 편안하니까...마음이 안정되잖아...자본주의는 그런게 안되자나..."
".....자본주의는 주민들을 위해 어떤 보호를 해 주는가? 없자나.."
뭐가 쇄뇌교육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구만. 이들에게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어느정도는 돌아가던 사회주의 복지시스템에 대한 기억은 아주 강력한 것이었다.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김정일에 대한 미온적인 지지, 그리고 김정은에 대한 의심스런 지지의 차이는 바로 이 시스템이 온전하게 돌아갔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아닐까?
한편 지난번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사건에 대한 평범한 북한주민들의 반응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은 사건의 책임에 대해 전면 부인하면서 호전적인 언사를 늘어놓는 정도였다. 물론 북한주민들 대부분도 이 사건들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의 자작극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현실적인 문제는 누가 했냐 안했냐가 아니었다. 한 북한주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한의 특공대가 쳐들어온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툭하면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싸이렌 울리고....훈련도 하다 하다 아주 진절머리가 났다"
한반도에 사는 평범한 주민들은 남북한을 떠나 모두 비슷한 처지임을 보여주는 인터뷰였다. 남한주민들도 북한의 특수부대가 공기부양정을 타고 침투한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들어왔는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공포가 가장 두려울 뿐 누구의 잘잘못이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그러면서 한 주민은 이렇게 덧붙였다.
"남한은 왜 자꾸만 우리에게 호전적으로 나오는가? 북주민들도 점점 남한에 대해 안좋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다르게 국방비를 사상최대로 증액해 온 '햇볕정책'을 의심하는 편이지만, 햇볕정책의 진정한 효과는 바로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적대감을 약화시키고 이로 인해 남북한의 호전적 강경파들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북한 주민의 말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이 정부가 북한을 향해 취한 태도가 북한주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데로 북한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로 중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한에 미군이 그대로 존재하고 남한정부가 자신들을 향한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북한에서 어떤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더라도 여론이 남쪽과의 연대로 나아갈 가능성은 지금으로써는 매우 적은 상황인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라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쪽보다는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쪽으로 마음이 움직일 것 같다. 아무리 남쪽이 같은 민족일지라도...
미군을 철수시키고 양측군대의 후방철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력을 가진 집단의 정권장악이 간절해온다.
간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민주노총에서 "건설현장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례와 방향"이라는 기특한 토론회를 한다고 해서 말이다. 원래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부산에서 이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온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토론회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투쟁으로부터 배운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이건 베트남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배우겠다는 말이 아니다. 올해 있었던 국내에서 일하는 베트남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일으켰던 파업투쟁에서 배우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파업투쟁이 알려지게 된 것은 10명의 베트남 노동자들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을 뒤늦게 나마 인권단체 등에서 알게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세상사라는 것이 우연과 필연의 결합이라는 것이 구속된 베트남 노동자의 여자친구가 한 이주인권단체에 가서 상담을 의뢰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어쩌면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이 주최하고 주발제자와 토론자가 대부분 건설연맹 조합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10명이 되지 않았다. 인권단체 등에서 10명 정도 참여해서 총 20명 정도가 참여한 조촐한(초라한?) 토론회였다.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내의 관심정도가 어떠한 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토론회라도 민주노총이 개최한다는 것 조차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니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조금씩 발전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발제는 건설연맹 유기수 정책실장님이 하였다. 지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라 더욱 반가웠다. 발제문의 내용은 베트남이주노동자 파업사건과 관련한 사건경과와 평가가 주된 내용이라 살짝 지루하였다. 하지만 발제문과 상관없이 발언으로 정리하신 내용이 더 좋았다. 발언하신 내용을 살짝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얼마전에도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듯이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드디어 10% 이하로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건설연맹도 200만 건설노동자 중 2.5% 정도 밖에 조직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 조직화가 노동조합의 가장 큰 과제인데 현재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비율이 수도권 같은 경우는 거의 8~90%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하면 노조조직률을 높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최근 건설플랜트노조에 가입한 여수지역건설노조의 경우 이주노동자 도입반대가 공식요구사항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 내에서도 한국어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국동포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베트남 노동자 투쟁을 함께 하면서 다른 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모른채 한 상태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없다.
주 발제가 끝나고 첫번째 토론자로 발표한 건설노조 대구경북 지부장의 발표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발제자는 자신을 이주노동자 내쫓기 사업의 주도자였다고 소개했다. 대구지역 건설노조는 2006년 30일 파업이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려고 했더니 그 자리에 이미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져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주노동자 완전히 몰아내기를 요구로 싸웠고 나중에는 지역주민 80%이상 고용이라는 좀 완화된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이 땅에 온 이주노동자들을 내쫓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조선족 출신 조합원 한명과 함께 현장을 다니며 간담회를 개최하며 노조가입을 독려하였다. 하지만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을 넘어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고 노조가 나타나기만 하면 숨기에 바빴다. 정말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마음을 돌려놓는데 성공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선 내국인조합원들의 동의를 받기가 너무 힘들다. 내국인들 조직화하기도 벅찬데 이주노동자들까지 조직화하려면 배로 힘들다. 상근자 3명인 역량으로 내국인조직화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조합원보다 훨씬 다수인 비조합원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더 적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내국인 조합원 평균나이가 52세이다. 이들만의 힘으로는 현장의 노동강도가 점점 강화되고 근로조건이 열악해지는 것을 막아내기가 솔직히 힘들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의 상황도 조직화가 쉬운 게 아니다. 지금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중 90%가 한족이다. 말이 통하는 중국동포는 10% 정도 밖에 안된다. 90%한족들이 주로 고용되는게 중국동포가 팀장으로 있는 불법하도급업체들이다. 그런데 중국동포팀장들이 한국에서 배운 못된 관습을 그대로 써먹으면서 한족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을 조직하려면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이 조선족팀장들을 통해서 노조의 입장을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입장이 제대로 전달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를 지역차원에만 맡겨놔선 안된다. 건설노조 차원의 명확한 입장이 없다.
두번째 토론은 경기중서부 건설지부의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례와 교훈 발표였다. 경기중서부 건설노조의 이주노동자 조합원은 현재 50여명 정도고 2명의 한족을 제외하면 100% 중국동포들이라고 한다. 경기중서부 건설지부는 건설노조 전체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가장 먼저 나선 지부이고 대구경북 지부가 이주노동자 쫓아내기 사업을 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던 곳이다. 경기중서부 지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1. 이주노동자들의 심리불안 : 정부와 사용자들이 입국할 때부터 각종 교육과 의식화를 통해 노조가입을 못하도록 협박하고 있다.
2. 단기성체류로 인한 관심저하 : 단기성체류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평생 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강하다.
3. 이미 나름대로 조직화 되어 있다. : 도급화되어 있고 중간모집책들에 의해 조직화되어 있다. 이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있다.
4. 언어장벽 : 한족노동자들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5. 행정절차 : 취업자격취득 등 각종 행정절차가 걸림돌
6. 숙소의 문제 : 대부분 프로젝트성 사업에 속해 사업완성 후 이동하므로 주거가 불안정
세번째 토론은 이주노조 미셸위원장의 토론발표였다. 하지만 이 토론은 중간에 나와야해서 끝까지 듣지 못했다. 미셸위원장 토론의 주된 내용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근로조건을 저하시킨다는 것에 대한 반박, 한국노조들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미온적인 것에 대한 유감, 그리고 조직화를 하는데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화하지 말고 주체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직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토론회를 나오면서 예전에 한국 석탄광업노조가 이주노동자 유입에 반대해서 싸웠던 게 생각났다. 그때 민주노총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전노협도 이주노동자유입을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석탄산업은 정부의 석유화학중심의 정책때문에 결국 사양산업이 되었고 지금은 명맥이 거의 끊겨버렸다. 하지만 석탄산업 내부적으로도 당시 제조업이 활황이었고 임금단가가 쌨기때문에 노동자들이 더 이상 광산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광산노동자들의 숫자는 줄고 연령은 높아졌으며 당연히 생산성도 따라서 낮아졌다. 결국 정부가 석유중심의 산업구조로 재편하는 것의 정당성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만일 그때 이주노동자유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임금과 근로조건보다 낮은 조건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어땠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오늘의 현실에 빗대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다림출판사에서 청소년용으로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의 책이다. 사니 데리고 어린이도서관엘 갔다가 할 게 없어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참 읽을만해서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900일 넘게 포위되어 있던 레닌그라드(지금은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이름이 바뀐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리스라는 12살난 어린이가 겪었던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의 작가는 네덜란드 사람이지만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당시 레닌그라드에 있었던 러시아 작가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작가의 이름이 바로 보리스이다.
당시 레닌그라드에서는 3년 간의 포위기간 동안 무려 70만 명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죽어갔다. 이 소설은 그 기간 동안에 어린 보리스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전쟁은 한 대에 수백억씩 하는 첨단 전투기가 정밀조준하여 목표물만 날려버리는 영화나 이미지로 흔히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전쟁은 무엇보다 추위와 굶주림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멀건 무스프를 배급받기 위해 길게 늘어서있는 사람들의 행렬, 그 위로 갑자기 쏟아지는 독일군 폭격기의 폭격, 가벼운 질병으로도 어이없이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단지 전쟁의 비참함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긴 하다. 요즘처럼 게임이나 영화를 통해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이 책은 전쟁이 실제로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이 더 깊은 의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비참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인간성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나 기계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인간일 수 있게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인 것 같다.
일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라페스타거리 맞은편에는 아람누리라고 하는 복합 문화시설이 있다. 미술관, 공연장 등이 들어서있고 도서관도 있다. 오늘 그 도서관에 들렸다가 우연히 지하로 내려갈 일이 생겼는데 지하층에 외국도서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와 이런데도 있었네 하며 가보았더니 거의가 영어권 서적들....그런데 사서에게 물어보았더니 다문화도서도 비치되어 있다고 했다. 다문화도서라는 말이 참 우스웠으나 가장 구석으로 가보라는 사서의 안내에 따라 가보았더니 정말 비영어권 아시아 국가의 도서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한 200권 정도 될라나? 왠만한 개인 책장만도 못한 규모의 책들이 '다문화도서'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비치되어 있었다. 사서에게 물어보니 그나마 이 정도의 책이라도 갖다 놓은지 2달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인근에 사는 결혼이주여성들과 최근 아시아 각국을 다니며 관심이 늘어난 시민들의 요구로 이제서야 급하게 마련한거란다.
그래도 지난달에는 베트남 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방문하여 이 곳에 있는 베트남어 도서들의 목록 등을 확인하고 조언하기도 하였단다. 사서의 이름과 이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주단체들이 조금씩 가지고 있는 아시아도서들의 목록이 정리되어서 공공도서관과 연결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예전에 경향신문의 한 칼럼에서 이주민이 유입되면 그 동안 없었던 새로운 갈등요소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다문화사회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하는 대학교수의 글이 있었다.
그렇다. 갈등이 생길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갈등 없는 곳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갈등이 무서워서 사람을 들이기 싫다는 논리는 부부싸움이 무서워서 결혼하기 싫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렇다. 결혼하게되면 필연코 부부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죽이기까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부부싸움을 한다고 해서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갈등은 집단이나 사회에게 건겅한 자극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경영학자들 중에는 조직의 활력을 늘리기위해 갈등을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기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그렇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면 배우자와 갈등을 겪을 일이 원천적으로 방지된다. 하지만 수도하는 성직자가 아닌 이상 그렇게 얻어진 '평화'를 누가 과연 좋아할까?
어제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운동'이라 함은 사회운동 같은게 아니고 스포츠를 말한다. 마침 회원 중에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집에서 모여서 먹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임금체불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고 식당을 운영중인 이 회원도 전에 일하던 직원과 관련한 사건이 있어서 노동부 근로감독과에 나가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참고로 이 회원은 인근에서 식당을 3개나 운영 중이고 직원도 30여명이나 된다. 무슨 일로 조사를 받았냐고 물어봤더니 퇴직금 건이라고 했다. 연봉제로 계약하면 퇴직금을 다달이 정산할 수 있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만둔 직원이 어느날 와서는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노동부를 왔다갔다하며 이리저리 많은 걸 알아봤는데 법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지급해야하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동법이 악덕사업주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나같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들어내서 아주 불합리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뭐가 불합리한건지 들어봤다. 우선 자기는 다달이 퇴직금을 이미 정산해주었는데 또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다른 식당보다 임금도 더 주고 달마다 회식도 빠방하게 해주고 낮에 손님없는 시간에는 낮잠시간도 보장해주는 등 나름대로 직원복지를 위해 애썼는데 직원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먹었던 음식이 다 토해질뻔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직원고용에 대한 세무신고도 안하고 4대보험도 가입안되어있었는데 무슨 직원복지를 신경 썼다는 건지.
하여튼 사장들은 다 똑같다. 내가 그동안 이주노동자 관련한 상담을 하면서 들어왔던 이야기와 100% 똑같다. 사장들은 자기가 생색내며 줄 수 있는 건 주면서도 의무적으로 줘야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생색내며 주는 건 직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쪽으로 바로 이용할 수 있지만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노동생산성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퇴직금 같은 건 이미 퇴직한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더더욱 노동생산성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장들은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같은 건 최대한 안내려하고 대신 성과급이나 포상금 같은 형태로 생색내며 돈쓰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사회전체적으로 보면 부자들의 기부문화가 활발한 미국의 복지시스템이 그토록 후진적인 것이다. 가진자들의 기호에 맞춰 설계되는 사회복지시스템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결코 공짜가 아닌 것이다. 부자들의 사회적 공로와 뛰어난 인품 그에 대비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능력함과 거지근성을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해주는 댓가를 치르고 지불되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님이 인근 파주에 오신다고 해서 강연이 열리는 해솔중학교에 다녀왔다. 강연의 내용은 그동안 각종 인쇄매체를 통해 계속 주장해오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곧 진보신당의 당대표가 될 상황이라 공식정치인이 되기 전 마지막 강연이라는 점이 의미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미 한겨레 논설위원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직을 그만두셨다고 한다. 중립성 시비가 있을 수 있으니까.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홍세화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홍세화 선생님은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바로 내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의도된 생각만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낮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이 떠올랐다. 미국의 월가점령시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는 남자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그 남자는 직업을 3개나 가지면서 밤낮 없이 일해서 국가에 세금을 내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월가점령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사회복지비용만 축내는 47%이고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53%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그런 시위를 할 시간이 있으면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해서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비아냥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중산층들이 꽤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월가점령시위자들이 주장하는 세금인상은 1% 부자들 뿐 아니라 고소득의 중산층들에게도 꽤나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1% 부자들은 주요 소득이 주식 등 금융상품에서 나오는데 여기에 대한 세금은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반면 중산층들의 주수입원인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싼 세금이 매겨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산층들이 젊었을때 열심히 벌어서 은퇴할 무렵에 큰 돈을 만드는 비결이 바로 주식투자 등을 통해서인데 그 수입으로 나머지 여생을 편하게 먹고 사는게 지금까지의 '정상적인' 루트였단다. 즉 자신이 부자로 될 가능성을 월가시위자들이 가로 막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예전에 미국민주당이 대선캠페인 구호로 1%에 맞서자는 것을 채택했었는데 대선에서 공화당에게 패배하고 말았던 적이 있다. 그 원인을 미국 중산층들의 마음 속으로 1%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그 구호에 동감하지 않았기때문이라는 분석을 읽은 기억이 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단지 생각을 지배당하기 때문에 20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보다는 이 사회의 구조가 피라미드식으로 되어 있고 이 계층구조의 사다리에서 한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래칸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만 위를 쳐다보며 20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단지 의식개선만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은 386세대들이 진보적인 의식을 가졌으면서도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 인터넷 뉴스검색에서 가장 눈에 띈 기사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들, 세대간 부 더 벌어졌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난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면서 지금 20대들은 부자아빠에게 용돈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그 아랫세대로 가면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다.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야 하나? 그런데 할아버지가 준 용돈의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연금마련을 위한 세금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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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가계금융 조사]
30代 순자산은 찔끔 는 반면 장년층 세대주, 훨씬 더 늘어
한국사회 富로 인한 세대 갈등… 젊은 층 갈수록 쪼그라들어
서울 강남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 지배인으로 일하는 김민성(29·가명)씨. 월급이 250만원가량이지만, 요즘도 할머니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받는다. 대학 시절 받았던 학자금 대출 상환금을 내고 오피스텔 월세를 치르고 나면 저축하는 돈은 한 달에 50만원도 안 된다. 그는 "2년 동안 일하며 모은 돈이 1000만원도 안 된다"면서 "결혼과 내 집 마련은 꿈도 꾸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직장을 가진 손자에게 용돈을 보태주는 할머니 이복선(69·가명)씨의 마음도 편치는 않다. 이씨는 "나야 남편이 남긴 아파트와 저축이 있고, 개인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쳐 매달 80만원을 넘게 받지만 손자의 앞날이 걱정"이라고 했다.
장년층이 청년층보다 자산도 많고 현금 흐름도 좋아 세대 간 부(富)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가계금융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새 30대가 세대주인 가구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수치)은 1억5716만원에서 1억6124만원으로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증가율이 가장 낮다. 김씨 같은 20대는 순자산이 1년 새 6.2% 늘었지만, 이는 전세난 탓에 '자산'으로 잡히는 전세보증금이 올라간 '착시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대 이하 가구주의 금융자산은 작년 4213만원에서 올해 3912만원으로 7.7%가 줄었다. 전 연령대에서 유일한 감소세다.〈그래픽 참조〉
반면 50대가 세대주인 가구의 자산은 작년 3억151만원에서 올해 3억2663만원으로 8.3%가 불었고, 60대의 순자산도 작년 2억5815만원에서 2억7013만원(4.6% 증가)으로 늘었다.
청년층의 부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근거는 또 있다. 보험연구원은 13일 '2040세대의 부각과 보험산업 과제' 보고서를 통해 40대의 주택 보유율이 2005년 57.3%에서 2010년 52.3%로 5년 새 5%포인트가 줄었다고 발표했다. 30대 가구주의 주택 보유율도 같은 기간 2.5%포인트 하락했다. 또 20·30대가 보유한 주식 시가총액 비중은 2006년 19.5%에서 2010년 12.7%로 줄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2040세대(젊은 층)와 5060세대(중노년층)를 구별하는 기준이 과거 개발 연대의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에서 이제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들'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 불평등을 형성하게 될 주요 축(軸)은 바로 세대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책 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장에만 들어가도 신분 상승이 보장되던 5060세대와 달리 지금 젊은 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산 축적 기회가 제한된다. 게다가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비 부담이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더 커져 세대 간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근 기자 t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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