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느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나 전쟁을 반대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수많은 전쟁이 있어왔고, 독재자나 소수지배자들의 의지로 일어난 전쟁들도 있지만 백성, 국민, 시민, 민중...무엇으로 불리던 다수 대중들의 지지 속에 벌어진 전쟁도 적지 않다. 특히 가장 최근에 인류가 치룬 두 차례의 세계대전 경험은 가장 비극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쟁의 역사에서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권력이나 부를 소유한 소수만이 수혜자였다. 반면 권력과 부에서 소외되어 있는 다수대중들은 전쟁을 통해서 자신들도 이득을 얻을거라고 믿었지만 그런 믿음은 언제나 배신당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대중들이 깨달을 즈음에야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깨달음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깨닫지 못함에 대한 댓가는 가혹하리만치 커져버린 이후이곤 했다. 

2004년에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이라크로 파병된 자이툰부대는 여전히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시민사회진영의 끈질긴 반대투쟁이 있었지만 국회와 대다수 국민은 '전쟁참여'를 선택하였다. 그 후 고 김선일씨와 윤장호하사의 죽음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기독교인들이 희생되었지만 아직도 다수의 국민들은 참전을 통해 자신들이 모종의 이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정부와 조중동이 선전하는 '대규모 건설사업 수주'운운하는 기사를 보며 '거봐 전쟁하기 잘 했지'라며 뿌듯해하는 국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미국의 평범한 국민들을 보더라도 전쟁이 평범한 대중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더 위험해진 세상과 더 어려워진 살림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한 후에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져다 준 경제위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이 가지고 왔다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자본을 위한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상영하는 '하디타 전투'는 이라크에서 일어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학살자로 등장하는 미군들은 단지 가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한 미군병사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를 이곳으로 보낸 장군들과 정치인들이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럽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20살 전후의 젊은이들... 그들은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을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어린나이들이었다.  

미국은 이미 전쟁이 아니고서는 제국을 유지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들이 세계를 향해 윽박지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경제력도, 문화적인 힘도 아니고 B-29 스텔스전폭기와 해병대에 달려있다. 그런데 미국을 추종하며 따라 배워온 한국도 요즘은 방위산업청을 만들고 무기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국군을 파병해 제국을 흉내내기 한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내 재산을 부풀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난 대선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른나라와 전쟁을 벌이는데 다수 국민이 찬성표를 던지는 날이 오지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결국 평화를 원한다면 극단적인 경쟁으로 모든 사람들을 몰아가는 경제구조와 교육제도를 바꾸는 방법 밖에는 없다. 군사전략가 클라우츠제비츠의 유명한 말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틀렸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 이 글은 금정굴인권평화영화상영회 자료집에 싣기 위해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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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00:16 2008/10/02 00:16

금정굴 위령제

from 아무그리나 2008/09/29 00:04

금정굴 위령제에 올해도 참석했다. 고양시에 와서 얼결에 처음 참여했던 회의가 금정굴공대위 회의였고 그 회의가 끝나고 이춘열 회장님을 따라 사진판넬을 옮기기 위해 한밤중에 금정굴 현장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금정굴 사건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내가 살게 된 동네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현장까지 방문하고 보니 더욱 마음에 와 닿았던 듯하다. 하지만 어느 해부턴가 금정굴 위령제라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기 보다는 행사 그 자체를 위해 준비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행사의 내실보다는 외형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은 준비주체들의 모습에 실망해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행사의 내실이란 금정굴 사건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금정굴 사건이 나와는 상관없는 58년전 전시에 벌어진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번 행사에서 깨달았다. 금정굴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운동의 중심인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도록 거창한 위령행사가 치뤄지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지원을 우리는 백안시하지만 정부가 공식지원하고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그럴듯한 위령행사를 올리고 싶다는 것은 유족이라면 당연한 바램일 것이다. 운동권들만 모여서 결의대회식으로 진행되는 행사는 유족들에게 그다지 큰 힘을 주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왠지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유족들이 바라는 행사는 그대로 하더라도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를 매개로 금정굴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행사를 별도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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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 00:04 2008/09/29 00:04
사실 '선전'이라고 말하기는 좀 낯뜨겁지만...-_-;; 첫 출전이었고 급조된 팀, 게다가 국적도 서로 다른 '인터내셔널 팀'으로써 여러가지 불리한 점이 많아음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나쁜 성적은 아니었슴다.
21일 일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가을운동회라는 이름을 무색케하는 무더위 속에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민주노총 고양파주지구협의회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벌써 6회째를 맞는 행사이지만 아시아의 친구들은 올해 처음으로 팀을 꾸려 참가하였습니다.

개회식과 선수선서, 그리고 파주무건리투쟁에 대한 소개를 듣고 드뎌 첫경기 세일자동차학원 노동조합과의 족구경기를 치뤘습니다. 세일자동차학원노조는 올해 노조를 결성하자 마자 사측이 직장을 폐쇄해버려 어려운 상황에서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노조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듯 참가자들도 4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세일노조의 어려운 상황에 마음이 아팠으나 족구실력이 별로인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길 수 있겠다'며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은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금방 깨져버렸습니다. 입국한지 3개월도 안된 선수가 2명이나 포함된 우리팀은 규칙도 익숙하지 않아 계속 실점을 거듭하였습니다. 믿었던 한국인선수도 초반 급격한 체력저하로 아웃되어 버리고 막판에 감독이었던 칸반장까지 투입되어 사력을 다했으나 2셋트를 내리내주며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 비디오분석을 해본 결과 네트 앞에서의 플레이 미숙으로 실점을 많이 하였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초반 탈락한 팀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대우를 하는 체육대회였습니다. 오후늦게 치뤄진 단체전때까지 먹고 마시고 누워서 노는 것 밖에는 할일이 없었습니다. 라마단 기간이라 물조차 먹지 못하는 칸반장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들도 눈치보여 잘 먹지 못하고...날씨는 뙤약볕이 내려쬐고 있고....정말 잠시나마 주최측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긴 기다림 끝에 출전한 단체전에서 우리팀은 의외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집단줄넘기는 최저신기록(1회)으로 또 꼴지를 했지만, 줄다리기는 예선을 통과하여 준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물론 예선통과는 상대팀이 기권하는 바람에 부전승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준결승 상대인 우승후보 지하철노조를 맞아 치열한 접전을 펼쳤습니다. 상대팀은 "영차"소리를 박자에 맞춰 지르며 힘을 모았지만, 우리팀은 서로 공통의 구호가 없는 관계로 그냥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내며 줄을 끌어당겼습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지하철노조는 우리팀을 아주 간발의 차로 간신히 이길수 있었습니다. 우리팀은 경기가 종료되었을때 우리가 이긴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팀들도 우리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초반탈락의 아픔과 가혹한 대기시간의 고통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팀도 서로를 격려하며 잘했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올해 처음 참여하는 거라 준비도 부족했고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도 못했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주노동자들 역시 고양파주 지역에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체육대회에 참여한 한국인노동자들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한국인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왠지 아친이 종합우승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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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2 21:28 2008/09/22 21:28
伊서 불법체류자 신고센터 첫 가동
 
등록일 2008-09-03 조회수 45
 
국가명 이탈리아 출처 연합뉴스
 

   (로마=연합뉴스) 전순섭 통신원 = 이탈리아의 한 소도시가 최근 외국인 불법체류자 신고센터를 만들어 시민들이 익명으로 신고를 하도록 하는 조례를 시행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일간 라 레푸블리카가 2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북부 코모시 근교의 칸투시는 최근 북부연맹 소속의 티치아나 사라 시장의 중심으로 이 같은 내용의 조례를 마련, 불법 체류자 색출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불법체류자 문제에 대해 지방 소도시가 전면에 나서 극약처방을 내린 셈이다.

   칸투시는 특히 관할 경찰서에 별도의 전담반을 마련, 경찰이 주민들의 신고사항을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익명의 신고가 가능한 만큼 주민들과 외국인들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벌써부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사라 시장은 "많은 집주인들이 여전히 불법체류 외국인들에게 세를 주고 있어 집을 구하려는 이탈리아 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당초 계획대로 조례가 시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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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2 11:25 2008/09/12 11:25

2008/09/08

from 아무그리나 2008/09/08 00:17

오랜만에 한국어교실 교사회의를 하였다. 덕성원에서 중국음식을 시켜 함께 먹으며 2학기 한국어교실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오기전에 교사들이 미리 모여 고민을 하니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2학기부터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오늘도 학생들이 많이 왔다.

태국에서 온 수찻씨도 오랜만에 왔는데 완나폰씨랑 함께 들어오는 걸 보니 둘이 사귀는 눈치다.

그런데 완나폰씨가 월급을 받지 못해 상담을 요청해왔다. 완나폰씨는 타이맛사지 업소에서 일했는데 사업주에게 말하지 않고 그만두었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한달 반 동안 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맛사지 업소에서는 한 시간에 2만원, 두 시간에 3만5천원을 받는다고 한다. 손님이 내는 돈을 사업주와 반반씩 나눠갖는 식이다.

이번주부터 사법연수원생들이 2명씩 찾아와 법률상담을 도와주었다. 오늘은 파주병원에서 하는 무료진료장소로 가서 법률상담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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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00:17 2008/09/08 00:17
사회주의정치연합이 서울시경 보안수사대에 털렸다. 오세철 교수와 오민규도 잡혀갔다. 요 몇년 사이 거의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8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버젓이 일어났다.
사정련 같은 단체가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 그 실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경찰이 발표한 혐의사실이 엄청난 과장임을 알 것이다. 경찰은 이 단체를 과대광고해주는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단체를 공격하였으니 그 보다 더 큰 이득이 있다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아직도 이런 '빨갱이'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으니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필요하고 촛불집회같은 건 빨갱이들이 개입해서 만든 작품이라는 걸 국민들에게 선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물만난듯 하고 있는 놈들이 있는가본데...이런 분위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오버맨들이 또 위대한 역사를 만들려하는 것 같다. 나 같은 미천한 민중들은 그들의 위대한 역사창조가 시작되면 액스트라 역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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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23:19 2008/08/26 23:19
나이 40을 바라보게 되니 슬슬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40대인 차미경대표가 몸이 아파 고생하는 걸보니 더더욱 경각심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로 나갔다. 한 6개월만인 것 같다. 그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더니 기본적인 장비들 - 장갑, 화이바 - 도 잘 보이지 않았다. 타이어도 바람이 빠져있어 다시 채워야했다. 탄현쪽으로 나가서 교하신도시 건설현장을 거쳐 금촌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금촌까지 대략 12km 정도니까 10km/h 정도의 평균속도로 달린 것 같다. 중간에 두 번 정도 쉬어 가야할 만큼 나의 체력은 많이 저하되어 있었다. 그래도 갈때는 괜찮은 편이었고, 돌아오는 코스가 훨씬 힘들었다. 올때는 2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체력저하도 문제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엉덩이쪽 고통이다. 그래서 남성자전거 선수들에게 고환암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사무실로 오후에 방글라데시 가정이 찾아왔다. 남편과 부인 그리고 3살짜리 남자아이였다. 부인이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병원비가 많이 나와서 의료공제회에 가입하려고 온 것이다. 아이까지 있는 방글라데시 부부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는 우리 산이 동갑이었는데 너무나 이쁘게 생겼다. 하지만 좀 마른편이라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 부부는 둘째 뿐만 아니라 셋째도 나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기가 세 개는 되어야 한다"고 남편이 힘주어 말했다. 한국말을 못하는 부인은 그냥 웃고만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아이 하나도 키우기 힘들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는데, 팍팍한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아이를 셋이나 나을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내 가치관으로는 얼른 이해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 부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끔찍해서, 한국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도 방글라데시에 물이 많아 아이들이 자주 빠져 죽기때문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주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또한 처음 보았다.
내 눈에는 이 부부의 앞날에 드리워져 있는 온갖 어려움들이 보였으나, 이 부부에게는 희망만이 가득한 듯 하였다. 어쩌면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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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23:13 2008/08/25 23:13
서울 도심에서 오랜만에 이주노동자집회가 있었다. 지난2월 이명박 취임 전날 있었던 집회가 가장 최근에 열린 집회였다. 물론 그 사이에 외노협에서 노동절기념 실내집회를 한 적이 있긴하지만 실외집회로는 그 이후 처음이다.
고용허가제 시행 4년이 되는 8월17일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이날 대학로에서 집회가 있었다.
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처음부터 만만치않은 집회였다. 8월15일은 촛불100일 기념집회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오랫동안 계속된 촛불집회와 최근 기륭노동자투쟁으로 연대단위들을 조직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이주노조 역시 활동이 많이 약화된 터라 이주노동자들의 참여 역시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집회였다.
예상대로 집회에는 200여명만이 참여하였다. 그 중 절반이 전철연 회원들이었다. 그동안 이주집회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오던 다함께 동지들이 맑시즘2008행사와 겹치는 바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전철연을 제외하면 학생동지들과 동인연 정도가 조직적인 참여를 하였고, 나머지는 대체로 개인수준이었다.
반면 서울출입국은 집회 시작전부터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우리를 감시하였다. 눈으로 확인되는 인원만 10명 정도였다. 오반장이라는 단속반 반장과 부하직원 한 명만이 자신이 출입국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나머지는 시민을 가장하고 앉아 있었다. 어떤 몸이 무척 건장한 인간 하나는 시민단체에서 나왔다고 해 꼬치꼬치 묻자 대한체육회에서 나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들의 비겁함과 치졸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 회원들도 이들 사이 사이에 함께 있으면서 틈만 나면 끼어들며 시비를 걸거나 사진을 찍는 등 대담하게 행동하였다. 이들은 행진도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었고 정리집회 장소였던 종로타워 맞은 편에서 불법체류자추방촉구 집회를 열기까지 하였다.
대오도 많지 않고 위험한 변수들이 곳곳에 있어 거리행진을 강행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으나 결국 거리행진은 그대로 진행되었고, 다행히 별다른 사고 없이 정리집회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한국사회의 극우집단들이 점점 더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하루였다. 그에 비해 우리편의 힘이 예전보다 오히려 위축되는 것 같아 앞으로의 일이 무척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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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00:33 2008/08/18 00:33

2008/07/28

from 아무그리나 2008/07/28 18:24

처음으로 도시락을 쌌다. 반찬이 생각보다 부족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 매일 아침마다 조금씩 일찍 일어나야겠다.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 준 미정씨에게 참 미안하다.

 

오늘부터 사법연수원 법률봉사팀이 새로 교체되었다. 오늘 오신 분들은 5명인데 정말 변호사들처럼 생기셨다. 지난주까지 오셨던 분들은 복장도 자유롭고 얼굴 생김도 '친근'하게 생겼었는데, 이 분들은 하나같이 '모범'적으로 생기셨다. 지난 팀들에 이어 이번 역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이번주 스케쥴을 함께 맞춰보았다. 그리고 상담케이스들을 함께 이야기해보며 해결지점도 찾는 작업을 하였다.

 

오후에는 경기도립 파주병원에서 외국인 무료진료와 관련한 유관단체 회의가 있어 참석하였다. 그동안 국공립의료시설에서 무료진료와 같은 사업을 해주길 바랬는데 드디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회의때마다 자주 나타나시는 목사님도 오셨고 처음뵙는 수녀님이나 아프리카계 외국인도 오셨다. 평화바람 신부님도 참석하셨다. 평화바람은 앞으로 파주로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 친하게 지내는 단체가 온다니 훨씬 힘이 난다.

회의내용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 외국인(아마도 선교사인듯)이 에이즈검사에서 양성반응시 강제추방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하였다. 이에 대해 한 선교사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하는 일'이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는 강제추방을 통해 자국민보호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양성반응자들을 음지로 몰아넣어 병을 키우는 일만 만들뿐이라고 즉시 반발하였다.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으나 파주병원 관계자가 대충 얼버무리며 마무리지었다. 회의때마다 나타나서 '깨는 소리'를 하는 그 목사인지 전도사인지하는 남자는 정체가 궁금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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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8:24 2008/07/28 18:24

양일석당원 재판을 다녀왔다. 오늘 재판은 증인채택만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부상을 입었던 의경이 얼마전 합의에 극적으로 동의해주면서 증언까지 약속했기에 양일석의 석방은 코 앞으로 다가온 듯 했다. 오늘 재판에서 그 의경이 증인으로 채택되기는 했으나, 판사의 태도가 영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판사는 부상의경이 처음부터 "때린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고 진술했기때문에 그가 증언을 하는 것이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것처럼 말했다. 오히려 합의과정에 대해서 들어보고자 하였다.

변호사는 경찰측 동영상을 본 부상의경이 양일석이 잡혀가는 장면에서 자신도 옆에서 서있는 걸 확인했다고 재차 강조했으나, 판사는 "부상의경이 폭행을 당하고 바로 후방으로 빠진게 아니라 팔에 힘이 빠지는 걸 느껴서 뒤로 빠져서야 팔이 부어있는 걸 확인했"으므로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결과가 어떤식으로 나올지 아무도 모르겠으나, 사실상 무죄판결은 받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무죄판결을 받아야 그동안의 경제적 피해 등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이번 재판선고에서 집행유예를 받는 것도 감지덕지인 듯 하다.

이제는 달관한 듯한 일석씨 부인 영인씨의 모습이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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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0:13 2008/06/18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