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아기 밤새 구금…단속 아닌 ‘사냥’ | |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단속 현장 | |
황예랑 기자 | |
지난달 시작된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최소한의 인권마저 무시한 채 대대적으로 벌어져, 당사자는 물론 국내 인권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주노동자 변호인단,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공동행동 등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출입국관리소의 단속 과정에서 있었던 인권 침해 사례를 고발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소와 국가배상청구소송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고용허가제 시행 3년이 지나면서 취업 기한이 끝난 이주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며 22만5천여명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시작했다.
발목 부려져도 “네 책임이니 참아라” 뭇매
■ 치료보다 단속이 먼저=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왈리드(37)씨는 지난달 23일 일하던 서울 성수동의 한 공장에 들이닥친 단속반을 피해 옥상에서 뛰어내리다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너무 아프니 병원에 데려다달라”고 호소했지만 단속반 직원들은 “도망친 네 책임”이라며 묵살했다. 왈리드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약이라도 달라’고 말했지만, 되레 ‘조용히 있으라’며 여러 차례 맞았다”고 말했다. 6시간 만에 도착한 병원에선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단속반원들은 그를 목동 출입국관리소에 데려가 구금했다. 그는 다음날 석방된 뒤에야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중국인 ㅇ씨가 한 식당에서 일을 하다 생후 7개월된 딸과 함께 연행돼 서울출입국관리소 보호실에 밤새 구금됐다. 아이가 장염 때문에 밤새 고열에 시달렸지만, 출입국관리소는 ㅇ씨의 치료 요구를 묵살했다. 출입국관리소 쪽은 다음날 찾아온 ㅇ씨의 남편에게 보증금 1천만원을 받은 뒤에야 아픈 아이를 풀어줬다. 이어 사정을 알게 된 이주노조가 항의하자 보증금 30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며칠 뒤 ㅇ씨를 석방했다. ■ ‘살색’ 다르면 무조건 연행=지난달 20일 저녁 서울 성수역 부근에 있던 ㄱ(35)씨 등 방글라데시·파키스탄 출신 5명에게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적법체류자였던 ㄱ씨는 “보호명령서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단속반원들은 다짜고짜 연행을 시도했다. 양쪽의 실랑이가 이어지며 몸싸움 끝에 ㄱ씨는 전치 3주의 상처를 입었으나, 출입국관리소는 ㄱ씨의 일행 중 1명이 미등록 상태였다며 ㄱ씨 등 4명을 공무집행방해로 고소했다. 민변의 윤치환 변호사는 “공권력을 행사할 때 ‘살색’으로 차별하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 국가기관 ‘구제’는 뒷전=다음달 귀국을 앞두고 “7년 동안 일했던 공장에서 퇴직금 930만원을 받게 해달라”며 노동청에 구제신청을 냈던 인도네시아 출신 ㅇ씨는 지난달 노동청 근로감독관한테 ‘뒷통수’를 맞았다. 경기지방노동청 수원지청에 ㅇ씨가 출석하기로 했던 당일 사장이 경찰에 ㅇ씨를 신고한 것이다. 수원지청 근로감독관은 ㅇ씨를 보호해주기는커녕 경찰을 피해 지하실로 달아난 그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노동부는 ‘체불임금 청산 등 권리구제가 이뤄진 뒤 출입국관리법 위반 사실을 해당기관에 통보하라’는 지침을 두고 있지만, 근로감독관은 “알지 못한다”고 발뺌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강제퇴거될까 무서워 이주노동자들이 권리구제 신청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사업주가 악용하고 있고, 노동부 공무원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개선책과 해명=이에 민변의 윤치환 변호사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불법체류자 강제단속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고 긴급보호조항을 남용하고 있어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법무부에 관련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인권 침해적 단속을 중단하고 관련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과는 “필사적으로 도주하거나 저항하는 불법체류자를 잡으려다 보니 몸싸움이나 직원들의 부상 등 단속의 고충이 크다”며 “특히 달마다 몇천명씩 불법체류자가 폭증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단속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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