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에 출입국으로부터 보증금 1천만원을 내지 않으면 슐레만씨의 보호일시해제를 허락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듣고 절망에 빠졌었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공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출입국으로 쳐들어가 소장면담부터 요구해야 겠다고 결의를 다졌었다. 하지만, 보증금 이야기를 들은 슐레만씨는 의외로 1천만원을 '쉽게' 만들어냈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친구들로부터 빌린 돈이다.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순식간에 이런 큰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가 대단해보였다.

 

오전 일찍 슐레만씨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길었던 오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선 덕이동으로 가서 슐레만씨의 부인인 아끼씨를 태우고 파주 영태리에 있는 무슬림 사원으로 갔다. 슐레만씨가 친구들에게 빌려놓은 돈을 이맘이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맘으로부터 돈을 넘겨 받고는 다시 의정부 출입국으로 향했다. 이미 점심무렵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근처에서 비빔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사무실로 올라가 담당자를 만나 신청서와 보증관련 서류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근처 외환은행으로 가 보증금을 예치하고 다시 사무실로 와서 확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슐레만씨와 통화를 해 보니 혼자 찾아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매우 멀지만 화성외국인보호소로 가서 슐레만씨를 직접 데려오기로 하였다. 들뜬 마음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왔는데 앗! 이게 웬일일인가, 건물 근처에 세워놓은 차가 없어진 것이다. 알고보니 그 사이에 견인이 되어 견인차량보관소에 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견인차량보관소로 가 보관료 3만원을 내고 4만원짜리 딱지를 받아들고 차를 인수하였다.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빨리 가야해서 아무 말 없이 차량보관소를 나왔다.

 

의정부는 경기북부이고 화성은 경기남서부이다. 막히지 않는다고 해도 2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임신중인 아끼씨를 태우고 운전하는 것이 너무 부담되어 처음에는 파주 집에 내려주고 나만 갔다 오려했으나 6시 전까지 데리러 오라는 보호소측의 전화때문에 아끼씨와 함께 가기로 했다. 오늘 따라 차의 상태는 또 왜이리 불안한지....중간에 주유를 하면서 엔진오일을 사서 좀 보충을 했더니 조금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머릿속에 계속 불길한 상상이 떠올라 운전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3시에 출발했는데 화성보호소에 도착하니 5시가 거의 되었다. 꼬박 2시간을 달려 온 것이다. 사무실에 말하고 커다란 철문 앞에서 얼마동안 기다렸더니 슐레만씨가 나왔다. 슐레만씨는 잡힐때 차림 그대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아끼씨와 반가운 해후를 나눌 사이도 없이 우리는 바로 출발을 서둘렀다. 퇴근 시간이 되어 길이 막힐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파주를 향해 차를 몰았다. 중간 중간 막히는 구간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크게 막히는 시간을 용케 피해서 올 수 있었다. 슐레만과 아끼씨의 집 앞에 도착하니 시간은 거의 7시가 되었다. 아끼씨가 내리고 나니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슐레만씨 부부가 집에 들어가자고 했으나 다른 약속이 있어 사양하고 나왔다. 파주에서 일산으로 들어오는 길은 본격적인 정체가 한창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니 훨씬 수월하게 운전했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 시간은 12시. 참으로 기나긴 하루였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위로가 되는 하루였다. 그러나 주차딱지는 여전히 우리집 거실 위에 놓여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3/27 00:50 2008/03/27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