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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이적표현물 대량 배포?

국회에서 이적표현물 대량 배포?
[청문회] 국회의원은 국보법 위반, 변호사는 불고지죄
    박상규(comune) 기자
▲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9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청문회를 열고, `모내기`그림사건과 `한국사회의 이해`사건 등 학문과 사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대표적인 국보법 폐해사례를들며 국보법 폐지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최재천 의원과 성완경 교수가 `모내기`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제의 그림은 북한의 모습을 통일 저해 요소가 없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남한을 미·일제국주의와 독재권력, 매판자본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을 찬양하고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일으켜 연방제통일을 실현하려는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 (1998년 3월 13일 대법원 형사3부 판결문)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이렇게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이적표현물이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 버젓이 전시됐다. 게다가 현역 국회의원인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적표현물을 대량 복제해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그것도 국가 세금으로 말이다. 대학교수를 비롯한 50여 명의 청중들은 최 의원이 나눠준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

국가보안법(국보법)을 위반하는 이런 행위들이 9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벌어졌다. 최재천 의원이 주최한 '국가보안법 1차 청문회'가 그것이다. 이번 행사는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와 1994년 경상대학교 교양교재였던 <한국사회의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최재천 "우리가 국회 돈으로 국보법 위반한 것인가?"

그림 <모내기> 사건은?

1989년 8월 17일, 서울시경 대공과는 민족미술협의회 전 대표 신학철 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1987년 8월 제작 된 그림 <모내기>가 김일성 생가를 그리고 북한의 폭력혁명에 동조했다는 혐의였다. 당시 검찰은 <모내기>가 "북한에서 혁명의 요람이라 일컬어지는 만경대의 김일성 생가를 연상시키는 듯한 무릉도원 같은 시골마을을 그려 넣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주장은 그림 상단부는 북한을 의미하는데 매우 풍요롭게 그려져 있고, 하단은 남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판자본과 독재권력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법원은 1, 2심은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1998년 대법원은 "북한을 찬양하고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일으켜 연방제통일을 실현하려는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는 지난 89년 검찰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기소됐다. 경상대학교 교양교재였던 <한국사회의 이해>도 지난 1994년 이적표현물로 기소됐다가 지난 2005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열린 청문회에는 최 의원을 비롯해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송호창 변호사가 청문관으로 참여했다. 진술인으로는 <모내기> 그림과 관련해 성완경 인하대 교수, <한국사회의 이해> 공동 저자인 장상환 경상대 교수가 나왔다. 김정환 시인과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참고인으로 나와 청문관의 질문에 답했다.

최재천 "이 그림은 국회 돈으로 디지털 복사해서 배포한 것인데 국가보안법 위반 아닌가?"
성완경 "(웃음) 아마 그럴 것이다."


최재천 의원의 질문은 자신의 '범죄'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성완경 교수는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에 대해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물게 민화 같은 느낌을 주는 상당히 대중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성 교수는 "최근 젊은 예술가들은 북한 그림 양식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미술을 자유롭게 차용하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 아직도 국보법이 예술을 평가하는 것은 코미디"라고 말했다.

또한 성 교수는 "신학철의 <모내기>는 통일을 주제로 내용과 형식의 풍요로운 결합을 보여준 민족미술의 한 이정표가 되는 걸작"이라며 "검찰은 압수한 그림을 작가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림을 돌려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노회찬 "저자 중에 피부가 붉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은?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조문논쟁'과 서강대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으로 인해 공안정국이 형성됐다.

7월 27일 경남경찰청은 진주 '우리서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 경상대학교 교양과목 교재 <한국사회의 이해> 등의 서적을 압수하고, 서점 대표 정대인씨를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체포했다.

8월 2일, 대검 공안부는 장상환 등 경상대학교 9명의 교수가 함께 쓴 <한국사회의 이해>가 "계급대립을 강조, 계급혁명과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중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2005년 3월 15일 "교재에는 명시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주창하거나,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하거나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공격적인 내용이 없어 이적표현물이라 할 수 없다"고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1994년 8월 2일 대검 공안부는 경상대학교 장상환, 정진상 등 교수 9명이 함께 쓴 교양교재 <한국사회의 이해>가 "계급대립을 강조, 계급혁명과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내사중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 이후 많은 언론은 앞다투어 색깔론을 유포했다.

"북한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는 충격적 진술과 함께 이 땅에 '붉은 교수'가 있다는 의혹은 차제에 신중하고도 엄중하게 진상을 가려야 한다."

1994년 8월 4일 <중앙일보> 사설의 일부다. 이 사설의 제목은 '붉은 교수 사실인가'이다. 이와 관련 노회찬 의원은 "혹시 공동 저자 중에 피부가 붉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라는 '독특한' 질문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장상환 교수는 "당시 검찰 기소로 신입생들에게 강제로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매도를 당했고 가족들도 많이 당황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장 교수는 "검찰이 학생 6명을 데려가 조사까지 했고, 심지어 시험문제와 학생들이 작성한 답안지까지 가져가 이적성을 조사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한 장 교수는 "10년 6개월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지만 그 사이 <한국사회의 이해> 교양강좌는 폐강됐고, 책도 판매금지를 당해 더 이상 연구를 지속하지 못했다"며 국보법의 학문의 자유 침해를 성토했다.

▲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9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청문회를 열고, `모내기`그림사건과 `한국사회의 이해`사건 등 학문과 사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대표적인 국보법 폐해사례를들며 국보법 폐지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송호창 "검찰의 처분 지켜보겠다"

송호창 변호사는 청문회를 마치며 "국회에서 이적표현물을 대량복사 및 배포하고 전시까지 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이적표현물을 소지했고 신고도 하지 않는 불고지죄를 저질렀다"며 "검찰이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 지 지켜보겠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최재천 의원은 "예술가, 교수, 시인들로부터 국보법 폐지 논거를 확실하게 학습하는 기회였다"며 "법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열린우리당의 국보법폐지 동력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노회찬 의원은 "최재천 의원과 손잡고 법사위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2005년에 꼭 국보법을 폐지시키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밝혔다.

국가보안법 청문회는 매달 1회씩 열릴 예정이다.
2005/05/09 오후 8:14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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