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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의 이의와 영향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의 의의와 영향

장상환(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05년 3월11일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무죄판결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여 무죄를 확정 판결함으로써 1994년에 시작된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이 11년 만에 마침내 끝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교재는 사회과학의 한 방법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인식틀을 수용하여 한국사회의 현실을 분석한 외에, 노동자, 농민 중심의 사회변혁 등 사회적 행동을 주장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 명시적으로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하거나 노동자계급의 폭력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등의 대한민국의 안전 존립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내용이 없는 이상 이적표현물로 볼 수 없고 이 내용을 강의한 것을 두고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사필귀정’으로 당연한 판결이지만 11년이라는 오랜 기간 시달려왔기에 실로 감회가 크다. 무죄 확정판결을 접하면서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의 의의와 이 사건이 한국사회와 집필 교수들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1.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은 미래의 진보로 향하는 진보적 연구자의 발걸음을 과거시대의 잔존물인 국가보안법으로 가로막으려 한 것이다.

경상대학교 교양교재 [한국사회의 이해]와 강의에 대해 지배세력은 보수 지배이념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김영삼 정권은 집필교수가 문민정부에 대해 이완된 파시즘이라고 규정한 것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고, 보수언론은 한국사회의 이해를 공동 강의한 교수들을 이념적 편향을 가진 교수로, [한국사회의 이해]를 삼류 교과서라고 폄하했다.

또 진주지역의 기득권세력은 [한국사회의 이해] 과목을 공동 강의한 교수들이 참여하고 활동한 민주화교수협의회의 사회비판활동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경상대학교 내의 일부 수구적 교수들은 [한국사회의 이해] 수강생이 많은 등 자신의 이해관계에 위협을 느낀 것인지 [한국사회의 이해] 집필교수들을 ‘빨갱이 교수’로 몰아서 학교에서 축출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공안세력, 지역사회 수구세력, 경상대학교내 수구적 교수들이 힘을 합쳐 구시대의 잔존물인 국가보안법을 동원해 진보적 연구자들인 집필교수들을 학교에서 축출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썩은 동아줄로 한창 자라나는 나무를 동여매어 성장을 막으려 한 것처럼 무모한 행위였다.

2.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은 국가보안법의 조기 무력화에 기여했다.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이 벌어지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진보학계와 문화예술계, 지역 민주화운동세력은 이 사건의 해결에 적극 노력하여 성명서 발표, 집필자와 해당분야 연구자들의 의견서 제출 등을 통해 검찰의 사법처리에 저항했다.

다수 경상대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인근 학교 평교수들도 저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반대하는 뜻을 성명서로 표명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집필교수 정진상, 장상환에 대해 구속을 시도한 것에 대해 창원지방법원 최인석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제동을 걸었고, 검찰은 결국 두 명을 불구속기소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의 시도는 실패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 기득권세력 안보에 악용되고 있고, 학문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률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다수 국민들도 인식하게 되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보안법의 무리한 이용이 국가보안법의 위신을 저하시킨 것이다. 집필교수들이 몸으로 곤욕을 치루기는 했으나, 국가보안법의 효력 약화, 실질적 무력화에 기여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의 변화로 적어도 학문의 세계에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또한 당시 일각에서 추진되었던 [태백산맥], [천국의 계단] 등과 같은 문학작품에 대한 사법처리 시도는 중단되었다. 국보법 약화에 의한 표현의 자유 신장은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고 오늘날 드라마와 영화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는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은 집필교수들의 진보적 연구의지를 강화시켰다.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을 겪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교수들은 학술활동에서 자신의 글과 표현에 대해 자진검열을 하는 등 정신적 위축을 겪게 되었다. 교수들은 거의 완성된 저서의 출간을 포기하거나 기존 저서의 개정을 미루기도 했다.

그러나 수구 보수 세력들의 부당한 공격에 직면하여 이에 대처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안으로서 집필교수들은 내적으로는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위치를 강화하고, 사회적으로는 진보적 정치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진보적 연구자들은 우선 개인적으로 양적, 질적으로 연구논문 쓰기를 확대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이해] 집필교수를 포함한 진보적 연구자들의 연구모임인 ‘진주사회과학연구회’(진사연)는 1989년에 시작되어 격주로 세미나를 가져왔으나 사건 이후 강화된 응집력을 바탕으로 매주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연구의욕이 더 커졌다. ‘진사연’은 15년 이상의 활동을 통해 2005년 3월 현재 280회 이상의 세미나를 누적하고 있으며, 현재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세미나 경비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진보적 연구자들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를 연구 중심기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사회의 이해] 초판의 집필교수인 정성진 교수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소장으로 재직하였고, 2003년부터 정진상 교수가 원장(2001년 사회과학연구소가 연구원으로 명칭 변경)을 맡고 있다. 사회과학연구원은 2001년부터 사회과학연구총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제1권 [마르크스의 방법론과 가치론]을 시작으로 하여 현재까지 17권의 연구총서를 내었다.

그리고 1999년부터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선정을 지원하여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선정 탈락을 딛고 꾸준히 노력하여 2001년에 드디어 중점연구소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사회과학연구원은 중점연구소로 지정된 이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노동문제와 노동조합 실태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학술대회와 출판사업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사회과학연구원은 한국 진보사회과학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역할을 자임하여 2004년부터 전문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반년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4.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은 집필교수들과 진보정당의 결합을 강화시켰다.

교수들조차 국가보안법의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므로 노동자, 학생, 일반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보안법의 제약은 더욱 크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줄이고 나아가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지탱하고 악용하는 보수 일색의 정치 및 이데올로기 지형이 보수와 진보의 병립구도로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강화하는 길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한국사회의 이해] 집필교수 다수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교수들은 민주노동당 사업의 한 부분을 직접 담당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예컨대 필자는 1997년 국민승리21의 대통령 선거 공약 작성과 1999년 진보정당 준비위원회의 강령 제정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2000-2003년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으로, 2004년 10월부터는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장을 맡아 진보정당의 출범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법학과 이창호 교수는 상당기간 민주노동당 진주지구당 정책위원장을 맡아서 활동해왔다. 정진상 교수는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 교육 분야 핵심공약인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 정책을 연구를 주도했고, 현재 제4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노동당 참여교수들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사회적 약자들인 노동자․농민․도시서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넘어서,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연구 분야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5.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 종결로 집필교수를 포함한 진보적 연구자들은 자본주의적 모순의 해결이라는 과제에 본격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향후 과제로서 국가보안법은 실질적임 힘에서는 상당히 무력화되었으나 여전히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 폐해가 크기 때문에 하루속히 폐지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위력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기득권세력이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 근본적 개정 반대에 그렇게도 매달리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과제로서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해서 본격적인 대결을 해나가야 한다. 외국자본의 진출 확대와 재벌과의 ‘긴장적 협력관계’의 형성으로 빈곤과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자 확대, 경제 불안정의 심화 등 자본주의적 모순이 급격히 심화되었다. 파시즘적 지배를 넘어서 이것보다 더욱 강한 자본주의적 지배가 한국 사회에 구축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해나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걸림돌에 불과하다. 이 걸림돌이 약해졌기 때문에 집필교수들은 진보적 연구자로서 자본주의적 모순의 해결을 목표로 삼아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활동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민중적 입장과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방법을 견지하면서 그동안 크게 변화한 한국사회를 분석하여 [한국사회의 이해] 교재를 알차게 개정함으로써, 수강학생들과 민중들이 한국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고 자신의 권익을 옹호하는 실천을 하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200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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