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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의 저주, 내수붕괴-저출산-결혼기피/ 손낙구

  '거품'의 저주, 내수붕괴-저출산-결혼기피
  [통계로 보는 부동산투기 (5)] 집값 폭등의 부메랑
  프레시안 2005-06-17 오전 9:19:28

 

2. 부동산 투기와 내수경제
  
  ① 부동산 대출금 110조 이자 갚느라 소비 줄여
  
  최근 3년간 수출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바닥을 기는 수출ㆍ내수의 양극화 현상이 한국경제를 시름에 젖게 하고 있다.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최근 수년간에 걸친 내수침체의 원인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필 수 있겠으나, 그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부동산 투기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내수침체의 요인을 꼽는다면 신용불량문제와 부동산 관련 대출금의 이자 부담 문제를 들 수 있다. 저소득계층이 신용불량 관련 카드 빚에 묶여 소비를 못한 반면, 중산층은 2000년 이후 수년간의 제4차 부당산 투기 때 빌린 주택관련 대출금을 갚느라 지갑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신용불량문제가 처음부터 소비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 계층의 문제여서 그 여파가 제한되는 데 비해, 부동산 관련 대출 상환문제는 소비능력이 있는 중간 이상 소득계층의 문제라는 점에서 내수침체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부동산값이 폭등해 가령 내집장만 기간이 10년에서 15년으로 늘어난다면 5년동안 소비가 줄고, 당장 씀씀이도 줄이게 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부동산 가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문제와 맞물려 내수의 구조적인 침체는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9년 200조가 채 안 되던 가계부채 규모는 제4차 부동산 투기 파동이 시작된 2000년부터 급격히 늘어 2004년도 말에는 450조원 규모로 늘었다. 하나경제연구소가 분석한 데 따르면 이 가운데 부동산 관련 대출은 2004년 2분기 현재 전체 가계부채 433조7593억여원의 57.9%에 달하는 265조 2930억여원에 이르렀다. 1999년 1분기 당시 가계부채 중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29.1%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동안 그 규모가 두 배 가량 늘어난 것이어서, 가계가 은행대출을 받아 제4차 부동산 투기에 적극 참가했음을 실감케 한다.
  
  반면 2004년 2분기 현재 카드 빚의 비중은 전체 가계부채의 12.3%를 차지해 ‘카드 빚’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5년 전 수준으로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김광수경제연구소(2004)의 분석에 따르면, 제4차 부동산 파동이 한창이던 2001년 2분기~2003년 3분기 동안 대부분 중산층 이상인 가계부문이 부동사에 투자한 자금의 총 규모는 약 137조~183조원이고, 그 중에서 총 110조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그 결과 지나치게 많은 은행 빚을 짊어지고 그 이자를 감당하느라 중산층 이상의 가구들은 연간 약 -13조원 가량의 금융이자수지 기회손실을 보고 있으며, 이자차이를 메우려 소비를 줄이게 돼 중산층 이상의 가계부문 내수침체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13조원의 기회손실 규모는 GDP 대비 2%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이 기간 동안 2% 정도의 소비가 일어났을 게 없어진 것이다.
  

  부동산을 산 가계들은 자기 집을 갖고 은행에서 대출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으로 전체 소비의 60~70%를 차지하는 계층이어서, 이들이 부동산에 돈이 묶인 채 소비를 할 수 없는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내수경제 회복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전체 가계부채 중 부동산 관련 대출은 57.9%나 되고, 중산층은 소득의 30% 가까이를 부동산 관련 대출 등 은행 빚을 갚는 데 쓰느라 소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0월 하나경제연구소가 통계청의 가계수지를 분석한 데 따르면, 2004년 6월 현재 가계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265조 2630억여원으로 전체 가계 대출 433조 7590억여원의 57.9%이며, 이는 1999년 1분기의 29.1%의 두 배 가량 높은 수치이다. 또한 소득 상위 30~40%(가구당 월평균 소득 323만원)인 중산층이 처분 처분가능 소득의 29.4%를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 중산층의 이같은 부채상환 비율은 전체 평균 23.2%보다 6.2%포인트가 높은 것이다. 중산층의 부채 상환비율은 2001년 까지만 해도 10% 중반으로 전체 평균과 비슷하거나 낮았으나, 2001년 1분기부터 20%대로 올라간 후 급증해 30%에 육박하게 되었다.
  

  ② 주택ㆍ교육비 감당 못해 저출산 → 내수침체
  
  세계 최고 수준의 땅값집값 때문에 주거비는 교육비와 함께 우리나라 국민의 지출비중이 가장 큰 항목이다. 대한민국 생활인들은 집값과 교육비에 죽고 산다. 빚을 지게 된 이유 중 68.9%가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이고, 저축을 하는 이유 중 70.5%가 교육비와 주택마련비 때문이다. 결혼비용의 68.5%가 주택마련 비용에 들어가니,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이 돈을 마련하느라 결혼연령도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결혼 후 내집을 장만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0년이 넘지만 이는 부모나 가족의 도움을 받고도 빚을 지고서 가능한 기간이다. 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자신의 힘으로 2억이 넘는 25평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15년, 고등학교만 나은 경우 20년이 훨씬 넘는다. 더구나 정규직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에서 내집을 마련하기란 평생의 숙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아이 하나를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최소 1억 이상이 드는 엄청난 교육비를 감당하자니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생활인의 서글픈 현실이다. 1년간 태어나는 아기는 1970년 100만명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5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 결과 1960~70년대 0~4살 유아수가 45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3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주거비 부담은 40~50대 보다 출산 가능성이 높은 20~30대 가계에서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 비싼 부동산 가격이 아이조차 낳을 수 없게 한다는 논리는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또한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상대적으로 많은 집세를 지불하는 것으로 집계돼 여유가 있는 부자들은 자식을 낳고 싶은 대로 낳을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자식조차 마음대로 낳지 못하는 현실이다.
  

  저출산의 여파는 당장 유아시장으로 번졌다. 국내조제분유 판매량은 최근 5년간 35%가 줄어드는 등 유아 관련시장이 20%이상 축소됐다. 유아복은 4년간 매출액 대비 20% 시장규모 대비 17%가 줄어들었고 아동ㆍ청소년복도 하락추세에 있다.
  
  자동차, 냉장고, 에어컨 등 내수시장 각 분야에 단계적으로 저출산의 여파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주거문제와 교육문제에 짓눌려 자손조차 낳지 못하는 상황은 내수경제를 구조적인 침체상황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③ 고령화 사회, 부동산 못잡으면 내수침체 장기화
  
  고령화 문제와 연관해 봐도 부동산 문제는 내수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로, 고령화 속도는 세계 유례없이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0~14살, 15~64살, 65살 이상 인구 구성비는 19.1:71.8:9.1로 중간나이는 34.8살이지만, 2050년에는 9.0:53.2:37.3으로 56.2살이 중간나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는 우리사회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는 데 노동공급 감소나 취업인구 노령화는 물론이고 소비침체를 가져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먼저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노동기간에는 저축률이 높지만 은퇴한 뒤에는 저축을 소비로 전환하는 경향이고 그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됨에도 거꾸로 저축률은 오르고 소비는 줄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중고령자들의 노후불안이 확산되면서 55살 이상 가구주의 저축률은 2002년 이후 급속히 높아져 2003년의 경우 전체 평균저축률(가처분소득-소비지출/가처분 소득)은 25% 수준인데 55살 이상 가구주의 저축률은 33%에 이른다.
  
  1991년 소비지출액을 100이라고 할 때 전체 평균 소비지출액과 55살 이상 가구주의 소비지출액은 1998년까지 거의 같았으나 2003년 전체 평균 소비지출액은 250인 반면 55살 이상 가구주는 200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소비위축 추세가 앞으로 더 심각해져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한국경제 전반이 구조적인 내수침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이 너무 젊은 나이에 노동자들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켜 ‘젊은 노인’들을 양산하기 때문이고, 설사 계속 일하고 있다 하더라도 40대 이후부터 임금을 더 적게 주거나 주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어 소득이 줄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0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였지만 2020년에는 5명이 1명을, 2040년에는 2명이 1명을 부양하게 됨에 따라 생산가능인구의 소비여력도 줄어들게 돼 고령화 추세는 이래저래 내수경제에 큰 도전이다.
  

  따라서 고령화에 대비해 일자리, 임금, 복지 등 종합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내수침체는 한국경제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 역시 중요한 항목으로 고령화에 대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지어 한 가지 짚어볼 문제는 노령층의 경우 소비능력이 있는 층이라 하더라도 대체로 재산이 집 한 채 갖고 있는 정도라는 점이다. 행정자치부 통계를 보면 50대 이상의 중고령자가 전국 개인 소유 땅의 70%를 갖고 있고, 집을 포함한 건물의 경우도 면적 기준으로 47%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50대 이상 중고령자가 한 평생 일해 모은 재산의 대부분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재산이 주택에 묶여 있어 소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영구임대주택을 충분하게 공급해, 주택에 묶인 돈을 소비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한다면 당장 내수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부동산에 묶인 중고령세대의 돈이 풀리면 노후세대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져 복지 비용 부담도 줄어 재정건전화에 도움이 되고, 증권이나 기업에 투자되는 자금도 늘어 부동산투기 중심의 자산경제구조가 기업경영활동 중심의 생산경제구조로 전환되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고 한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미국, 일본, 유렵 등 선진국의 사례를 빌어 각광받는 실버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와 조기퇴출, 비정규직 확산, 임금삭감 등으로 소비여력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는 사상누각이다. 부동산 문제를 포함해 종합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고령화 시대 내수경제의 주역이 되어야 할 고령자가 저소비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고, 그 결과 내수침체가 장기화돼 한국경제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울 가능성이 높다.
   
 
  손낙구/심상정의원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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