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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기

 
생각만 해도 설레는 여름휴가. 자동차 여행도 이젠 식상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빠름 속에 놓친 느림의 풍경이 있는 자전거 여행은 어떨까요. 10주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 다섯째 주에는 자전거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제안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는 섬진강과 강화도 기행, 대전 도심에서 즐기는 짧은 여행, 자전거 타고 떠나는 신혼여행까지…. 지난 7월 9일부터 15일까지 태풍과 집중호우를 뚫고 경북 오지로 자전거 신혼여행을 떠난 '대담한' 신혼부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자전거 축제처럼 열린 우리들 결혼식. 서울에서 결혼식장인 부천까지 자전거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 이수진
 
나 이수진과 최교현은 지난 7월 8일 결혼했다. 평생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만나 연애하고, 동거하고 그러다 결혼식(?)도 치르게 되었다. 우리에게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과 사랑에 대한 약속을 만천하에 알리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규제하는 원칙들을 허무는 행위에 좀 더 가까웠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 '발바리'(매달 한 번씩 열리는 떼거리 자전거 대행진) 모임에서였다. 서로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냥 아는 선후배 사이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전거처럼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간다.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탈 때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속도를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자전거는 늘 현재진행형이고, 내 몸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자전거의 속도는 늘 내가 지나치는 곳의 경치를 살피게 한다. 주변을 느린 속도로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자전거의 속도는 부담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으며, 바로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이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과 닮아 있고, 연애나 사랑의 기술과도 닮은 듯하다. 어쩜 우리 부부는 운이 참 좋은 사람들이다. 자전거가 가르쳐준 그 철학을 느끼며, 관계와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태풍 예보 속 출발] 동해안은 스페인 북부 지형을 닮았다

 
▲ 우리는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날 출발했다. 너무 거창했던(?) 결혼식 피로연 때문. 출발하기 전 풍경이다.
ⓒ 이수진
어디를 가든지 자전거를 이용하는 우리는 신혼여행도 당연히 '자전거로 간다'고 생각했다. 굳이 의논하고 말고도 없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게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런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2004년 6개월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 후, 우리는 너무도 오랜만에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 장마와 태풍이란 기상예보에 산악용자전거(MTB) 대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펴고 접어 버스나 기차에 실을 수 있는 미니벨로를 선택했다.

갈아입을 옷 몇 벌과 비옷, 자전거 공구, 모자, 카메라, 코펠과 버너, 지도 그리고 작은 노트북이 여행 짐의 전부였다. 여느 때 같으면 침낭, 텐트, 매트리스가 필수 목록이었겠지만 이번은 신혼여행이란 핑계 삼아 조촐하게 짐을 쌌다.

신혼여행지는 오지 중의 오지, 경상도 속의 강원도인 '경상북도'로 결정했다. 지금껏 유일하게 안 가본 지역인 데다가 귀농할 장소로 점찍은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와 산, 계곡과 사람들을 만나는 우리의 여행은 7월 9일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동해안이 태풍 영향권 안에 들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동해안은 스페인 북부 지형과 매우 닮아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안국도는 지형이 높고 조금은 험한 산악지형에 가까운 반면,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는 자전거 페달을 멈추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을 가진 것 같다.

동해안에서의 이틀 밤은 간간이 자전거를 탄 것 빼고는, 비에 젖은 바닷소리를 들으며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와 대게 그리고 소주 한 잔 걸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동차 지옥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구주령 넘어 영양군] '개발공화국' 대한민국이 아직 넘보지 못한 땅

 
▲ 구주령을 오르기 전 자전거 두 대를 세우고...
ⓒ 이수진
 
태풍과 바람이 잦아든 3일째 되는 날, 울진 후포항을 출발해 백암온천을 거쳐 구주령에 올랐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경상북도의 지형은 끝도 없는 골짜기와 계곡 그리고 초록의 빼어난 절경으로 이어진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지나 나오는 마을들은 전라도와 다르고 강원도와도 다른 이국적 정취를 품고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들이 4~5km마다 나타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울진은 유기농으로 꽤 알려진 지역이고, 지나치는 논에는 어김없이 오리들이 살고 있었다.

해발 0m에서 시작해 해발 600m의 구주령을 오르는 순간, 겹겹이 쌓인 산 너머로 동해바다가 펼쳐졌다. 희미하게 섬 하나가 떠있는데 그것이 바로 울릉도란다. 세상에 내가 울릉도를 육지에서 보게 되다니 묘한 흥분이 심장을 파고 돌았다.

구주령을 넘어 시작되는 곳은 경상북도 영양군이다. 영동에서 영서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태풍이 지난 터라 계곡마다 물은 가득하고, 그 소리와 절경에 지칠 줄 몰랐다.

한국에서 개발이 가장 안 된 곳 중 하나인 영양은 인구밀도가 낮아서인지, 어느 곳에서도 난개발을 찾아볼 수 없었다. 꽤 오래전에 놓인 국도가 여전히 대부분 지역민들의 이동통로이며, 산을 구비구비 넘어야 하는 고개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터널 하나 볼 수 없었다.

 
▲ 영양에서 귀농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 부부(왼쪽), 영양가는 길에 먹은 새참 라면(오른쪽).
ⓒ 이수진
 
개발공화국 대한민국이 아직 넘보지 않는 곳이 있다니 한편으론 너무 다행이라 느꼈고, 한편으로 씁쓸했다. 농번기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불편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영양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날 밤 우리는 귀농한 부부의 환대 속에 시골 정취 서린 훌륭한 저녁식사에 포근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경북 오지 여행] 자전거를 세운 '새만금 여전사'의 비보

다음날 우리는 봉화로 향했다. 경북 오지의 양대 산맥, 영양과 봉화. 개발의 세례를 덜 받은 곳을 여행하는 건 자전거 여행객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국도 변은 자동차의 통행이 적을 뿐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길이 나 있어 대부분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니벨로 네 바퀴가 경북 자연의 품속에서 달리는 동안 우리는 자전거 여행의 맛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봉화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갑작스런 비보를 전해 들었다. 새만금 연안에 살고 계신 언니 한 분이 아침 갯일을 나가셨다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7월 11일 오전 갯고랑에 빠져 익사한 계화도 사람 류기화씨. 오종환 감독이 새만금 방조제 공사 저지에 앞장선 그의 모습을 담아 <갯벌여전사>를 만들었다).

우리 결혼식에 참석했던 언니가 4일 만에 변을 당한 것이다. 나와 내 남편은 여행을 중단할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의논해야 했고, 결국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영주로 가서 자동차를 빌려 전라북도 부안을 다녀온 후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비보를 접하고 우리는 11시간 만에 부안에 도착했고, 죽어가는 새만금에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온 젊디젊은 새만금 여전사의 영정 앞에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영주로 돌아와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만 30시간 만에 돌아온 여행길이었다.

부안에서 돌아와 영주에 살고 계신 남편의 외할머니와 친척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의 미니벨로는 중앙선 기차에 실려 충북 단양으로 향했다. 단양 기차역을 나오자 역 앞을 흐르는 남한강에는 수십 미터 높이까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는 충북의 산천을 가로지르고,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하루를 한 달처럼 보낸 우리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단양 지나 괴산] 몸이 힘드니 자연스레 자전거를 탓한다

 
▲ 남한강 물안개가 곱게 덮인 단양읍내.
ⓒ 이수진
 
단양역에서 단양시내까지는 3~4km 정도인데, 강 따라 그 모양이 길게 늘어진 도시는 특색 없는 한국 도시들에 대한 이미지를 확 깼다. 단양은 마늘축제로 한창이었다. 농민들이 장터에 마늘을 쌓아놓고 며칠 후에 있을 주말 장터 채비로 분주했다.

단양 시내로 들어올 수 있는 자전거 길은 남한강을 따라 이어졌고 그 길은 단양과 남한강을 느낄 수 있는 재미난 곳이지만, 지역 자전거 정책과는 무관하게 관광지 냄새가 너무 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고수동굴을 지나 천동동굴이 있는 천동계곡의 한적한 민박집에 머물렀다. 보기에는 평지이나 가다 보면 오르막인 업힐(Up-hill) 구간이다. 산이 많은 지역의 특징인 것 같은데 이런 길은 내게 쉽지 않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다음날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밭에서 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밭 옆으로 즐비한 서양식 펜션들을 보고 이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 속리산 속으로
ⓒ 이수진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충북 괴산. 단양에서 버스를 타고 충주호를 지나 살미면에서 내렸다. 괴산을 향해 가려는데 드디어 미니벨로 한 대가 말썽을 부린다. 지금까지 잘 참았다 싶었는데 작은 바퀴가 몸무게와 험한 길, 습기를 못 이기는 것 같았다. 페달 안쪽 나사가 계속 풀리는 문제였는데 해결이 쉽지 않았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자전거를 수리하고 괴산으로 향했다. 괴산은 옥수수 축제를 하고 있었다. 지역마다 농산물축제로 한창이지만, 손님 없는 잔치라고나 할까? 단양 마늘이 그랬고, 이곳 옥수수가 그런 것 같다. 마음이 아팠다. 친구는 속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송면이라는 동네에 산다. 그곳에 가려면 속리산을 종단해서 소금강과 쌍곡구곡 길을 넘어서도 20여km를 더 달려야 한다.

속리산은 신기하게도 산 한가운데를 종단하는 길이 2차선 지방도다. 국립공원에 도로가 있어 당황했지만 충주와 문경 그리고 상주를 이어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이었던 것 같다.

쌍곡구곡 역시 완만한 경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며칠간의 고된 여행 때문인지 몸이 맘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힘드니 난 자연히 미니벨로를 탓했고, 가엾은 내 미니벨로는 주인의 핀잔을 반항 하나 없이 듣고 있어야 했다.

[충북 괴산에서 서울로] 그야말로 달콤함 우중 산속 생맥주 맛

 
▲ 소나기를 피해 산속 생맥주집으로...
ⓒ 이수진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나기가 몰려올 기세여서 우리는 산속에 있는 호프집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우중 산 속 생맥주 맛은 그야말로 달콤하고, 피곤함을 적실만큼 충분히 감동이었다.

속리산 내 지방도를 따라 꼭대기에 이르니, 거기에서부터 다운힐(Down-hill)이 펼쳐졌다. 내가 힘든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한 신나는 내리막길이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서 우리는 귀농한 친구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드디어 서울행이다. 산에 둘러싸인 분지지형인 이곳에서 괴산읍까지는 25km 정도 되는데 넘어야 할 고개가 2개나 되었다. 지도상 표시된 길로 가니 비포장도로가 펼쳐졌다. 국도 중 비포장은 처음 만났다. 비포장 길을 한참 오르는데 그 길 옆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알고 보니 새 도로를 만들고 터널을 뚫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길이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새 도로를 내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여행 중에 자동차가 다니기 좋은 길을 만드는 공사를 여러 번 봤다. '대한민국은 도로 건설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건설교통부는 자동차 도로 이외에 다른 상상력은 떠오르지도 않는 모양이다. 자동차 중심 정책에 중독된 대한민국이다. 거기엔 어디도 사람을 중시하는 도로나 자전거를 우선하는 도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이제 서울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괴산터미널로 가는 최교현.
ⓒ 이수진
 

동해와 경북에선 '행복', 충북 지날 땐 마음 아팠다

우리의 최종 여행 종착지는 '발바리'였다. '떼잔차질'이 있는 그날(7월 15일) 우리는 서울에 돌아왔다. 서울에는 장대 같은 비가 내렸으며, 30여명의 사람들은 폭우에도 떼잔차질에 나섰다. 자전거에 미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깃발을 휘날리며 도심 한복판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가르고, 두 발과 두 바퀴로 페달을 밟는 발바리 사람들. 정말 아름다웠다. 경북과 충북의 산간지방을 돌고 마지막으로 발바리에 도착했을 때 왜 우리가 도로 위에서 이렇게 달려야 하는지 더 강하게 느꼈다. 교통수단으로써 자전거의 존재를 알리는 건 바로 이 도로 위를 달리는 그 순간임을 알았다.

동해안을 달리고, 경북을 달리고, 충북을 다니며 여행의 깊이와 고민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동해와 경북에서의 여행을 행복, 만끽, 유쾌함으로 표현한다면, 충북을 여행할 땐 가슴에 묵직한 뭔가가 생겨버린 듯하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도로건설과 농민들의 한숨을 만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신혼여행을 마쳤다.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동시에 이용한 퓨전 자전거 여행이 끝났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공간 이동해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에서 보냈고, 우린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자연을 만났으며, 두 바퀴를 굴렸다. 그리고 세상을 보았고, 마음이 아팠고, 그러면서도 감동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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