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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그 분..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우연히 한겨레신문에서 역사 기행을 간다는 광고를 보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나기로 한게,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 답사'였다.  동학혁명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1994년도 일게다... 잠재적으로 무궁무진한 역마살이 낀 나로서는 학부 시절부터 엠티는 빼놓지 않고 쫓아 다녔으며 9박 10일이라는 기나 긴 농활과 수업 재끼고 데모질 하는건 거의 일상 다반사였다.(근데, 농활과 데모는 역마살과는 관련이 없는거잖아..ㅋ).. 그런 잠재력을 확인이라도 하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1박 2일의 답사를 가기로 결정하고서는 전봉준이 이끌던 농민전쟁이 일어났던 전라북도 고창으로 떠났던게 지금으로부터 딱 14년 전이다..

 

동학혁명이 있은지 1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피비린내 나던 전투 현장을 찾은 것은 말 그대로 '처절한 역사의 현장' 이었다. 학부를 졸업했으나 여전히 가슴한켠에는 세상의 변화와 '혁명의 꿈'을 안고 살아 가던 즈음이었기 때문에 답사지에 발을 딛자마자 나도 모르게 불끈 움켜쥐는 주먹은 이미 나의 의지를 떠나 더욱 굳게 잡혀지고 있기만 했다.. 그 답사를 마치고 나서 여운을 달랠길 없는 뜻있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우니까 "우리 한달에 한번 산에라도 가지 않을래?"라면서 만들어 진게 지금의 '역사와 산'이다.  매월 한달에 한번씩 산에 오르면서 그 산에 얽힌 이야기도 듣고 때로는 답사겸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자는 의도를 깔아 놓고서...무엇보다 박준성이라는 역사학자가 대표로 서게 됨으로써 산행 모임의 성격은 단순히 (놀고 먹는)산악회의 수준을 뛰어 넘는것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 모임을 만드는데 얼떨결에 '초동 멤버'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지만 꾸준히 돌아가는 산악회 중간에 결혼을 빙자한 출산을 이유로 4~5년간 참가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기도 했다)..초기에는 그 산악회가 지금까지 굴러 오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누구도 하지 못했는데 열정 많은사람들의 적극성과 꾸준한 산행계획은 14년이란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후에 대표는 몸이 안좋아(워낙 노동자 교육에 관련한 강의와 오지랖이 넓은 분이라) 선두에서 물러나고 집행부도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이 꾸리게 된 집행부의 현재 대표는 '양병욱'이란 사람이다.  나는 주말에 그 산악회의 165번째 산행(해남 땅끝 마을과 달마산)에 다녀 오면서 다시금 양병욱 대표라는 사람에 대해 팍팍한 삶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인간미란 무엇이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솔함'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흡입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어 두서 없지만 이 글을 쓴다.      

 

그 사람은 우선 나이가 무진장 많다(나의 아버지와 동갑인 43년 양띠이다, 그래서 성이 양가라고 하는 우스개 소리도 했다)..근데, 실제로 보면 전혀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를 만나도 진솔한 모습으로 마치 모두가 자기 자식인냥 허물없이 대한다.  물론, 이런점은 산행모임 이라는 특성상 자연스럽게 몸에 벤 사람을 만나는 기술 일수도 있느나 그에게서는 허허 웃으며 말하는 자체 만으로도 따뜻한 '인간미'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툭하면 내 뱉는 썰렁한 유머를 포함해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을 잘 챙기고 먹을것을 나누어 준다. 그 자신이 살아온 뼈아프게 배고픈 시절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해주고, 오랜 친구처럼 남의 얘기를 진심으로 잘 들어 주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과 얘기 할때 어떤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으며, 산에 오를때 마다 헉헉 거리는 숨을 고르게 다질 수 있는 한모금 시원한 '물'이 되주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산행에 오는 사람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또는 혹은, 몇번 봤는데도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더니, 'ㅇㅇ이는 술을 안먹으면 사람을 못알아 보고, 술을 좀 먹어 줘야 사람을 알아보지..껄껄껄~' 하면서..대꾸하는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썰렁한 유머를 통해 사람을 편하게 해주며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사람의 관용은 도를 넘는다.  지리산 암자길을 산행하기로 한 어느 밤산행에서 새벽 예불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분명히 천주교 신자 였음에도 불구하고 허리 굽혀 앉았다 일어나기를 젊은 사람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진실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어찌나 감동적이면서 예상밖의 모습이었는지 그 날 쏟아질듯 하늘에 박힌 새벽별 보다도 훨씬 빛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어제 산행후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 유난히 마이크를 오래 잡고 있었다.  그 말을 제대로 다 들을수는 없었지만,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떤 비판이나 비평도 함부로 하지 말자고 했으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우리의 힘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희망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실제로 우리 산악회에는 체중이 급격히 초과하면서 앉았다 하면 코를 엄청 심하게 골면서 자는 사람이 있다. 어제는 처음 온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같이 온 딸아이가 잠을 못 잘 정도라고 했는데 대표가 그랬단다.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고, 그 사람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정도 소리쯤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 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거라고...대표의 그 말을 듣던 처음 온 사람 역시 대단한 분이라고 하며 매우 소중한걸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 사람에겐 권위가 없다.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밥집에서 밥이 모잘라 가지러 가려하면 벌떡 일어나 주문을 해주기도 하며, 커피 좀 달라고 해도, 술을 달라고 해도 냉큼 가져다 주신다. 그러기에 거침없이 애교도 부리고 심지어 개기기까지 하는데도 다 받아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마치 친정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가난에 굶주려 몇날 며칠 끼니를 굶던 사람, 그래서 제대로 못 먹어 키가 안 컸다는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사람, 남들의 말을 잘 못 알아 듣는 나를 위해 몇번씩 되물어도 지치지 않고 다시 말해 주는 사람, 밥 때 되면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밥을 챙기는 사람, 65세가 넘어서도 앉아서 밥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 언제나 밝고 맑고 솔직하게 우스개 소리로 남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너그러히 품에 안아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모든 수사로는 불가능한 모습을 지닌 사람을 나는 오늘 존경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많이 배우고, 돈 좀 벌고, 운동 한다고 궁시렁 거리고, 리버럴 하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니고, 착한 척 고상한 척 하는 그런 사람들 보다 이렇게 남모르게 훈훈한 감동과 울림을 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한다.  한달에 한번 언제나 시청 앞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와 늘 짓궂고 밝게 "우리 ㅇㅇ이 오랜만에 왔구나..1년에 두어번씩 오지 말고 좀 더 자주와.. "하면서 나를 반겨주는 그 분이 있기에 한달에 한번 너그러운 아버지를 만나는 듯한 마음으로 산행을 재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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