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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진 밥상?

   월요일 오전이면 우리는 사무국회의 라는 명목으로 회의를 한다.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 사전에 미리 공지를 하고 문자까지 보내고 또 보내도 기껏해야 모이는 사람은 다섯명을 넘지 않는다.  부랴부랴 회의 시간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은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전화통을 돌리면서 회의는 시작되고...알리고 또 알렸는데도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어린아이 달래듯 해가며 독촉하는 듯한 방법을 취할거냐, 며 윽박지르는 사람이 야속한 듯 회의는 시작이 되고, 이런 저런 일정을 공유하고, 계획하고, 반성하고, 회의를 마친뒤 바로 점심시간이 닥친다.  그럭저럭 점심상을 차리고 회의 참가자들은 숟가락을 뜨면서 먹으려고 하지만, 한 사람(대표)은 숟가락 들다 말고 또 전화를 걸기 시작!  "왜 밥먹으러 안와?? 빨리와! 밥 먹게..." 와야 할 사람이 눈에 안 보이면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단다...ㅠㅠ 휴~~ 제길~! 도대체 언제까지 나이 삼사십이 넘은 사람들을 챙기고 어르고 달래야 하는건가?? 회의에 와라, 밥 먹어라, 모임에 가자, 집회에 가자, 엠티에 가자.... 솔직히 말하면 이 단체에서 하는 일의 7~8할 이상은 그사람들과 만나서 그사람들의 입장과 수준에 맞춰 모든 것을 오픈하고 모든것을 공유 시키느라 책임자 두명은 모든 에너지를 소비해야한다고 해도 것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소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 사람은 그냥 '일상적'인 패턴일 뿐인 것이다. '소진'과 '일상'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과연 알고나 있을까가 의심 스러울 정도로.. 나의 입장에서는 그저 뼈저리기만 할 뿐인데..나는 문제제기 하나를 하면서도 이미 그/녀의 '일상화'된 모습들과 어떻게 하면 내가 문제 푸는 방식과 일맥상통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내 뱉는 말인데, 한사람은 내가 왜 힘들어 하고 문제제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과연 얼마만큼 염두에 두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절망스럽기 그지 없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 사람(대표)의 판단기준은 언제나 우리 사무실에 오는 사람들(노숙인이나 쪽방촌에 거주 하고 있는 사람)로 부터 출발한다. 얼마나 그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를 잘하는지, 얼마나 사소한 얘기들을 잘 들어 주는지--그것도 아주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내가 보기에도 (유치할만큼)질투심을 가질 정도이다. 그런데도 내가 가진 핸디캡(나는 청력이 좋지 않으므로 언제나 의사 전달은 문자로만 해야 하고, 말할때 표준어를 써야 더 잘 알아 들을 수 있고,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등등)에 대해서는 수십, 수백번 얘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늘 간과하고 넘어 간다.  그럴때마다 나는 나대로 (나의 핸디캡에)적응 하느라 시간이 걸릴테지 하면서 이해 하려고 하지만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실수를 하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심하게 말하면 온몸의 실핏줄이 터질 것 처럼 화가 엄습해 온다는 말이다.  그동안 내가 만나고 경험했던 평범한(?) 사람들은 한번만 얘기하거나 한번으로 모자라서 두번까지 얘기 하면 바로 그 다음 부터는 나를 배려해 주는 소통의 방식을 사용하는데...  

  

   차려진 밥상 이라고 하는 것은 이럴때 쓰는 말일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만나 왔던 사람들은 물론 이념이나 가치관의 측면에서는 갈등하거나 차이가 있는 사람들 이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배려나 책임(회의를 통해서 결의된 사안--예를 들어서 분명히 언제 몇시에 어디에서 만나 수련회를 가기로 했는데, 특별한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휘둘려서 쟤가 맘에 안들어서 이미 결의된 수련회에 가는 당일 날, 간다느니 안간다느니 하는 언쟁--...)에서 만큼은 충분히 간과하지 않는(100%는 아니더라도) 사람들 이라고 생각 하는데, 여기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같이 단체를 꾸려가야 할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경험들에 비추어서 기대치를 갖는데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생의 최하위층 나락(노숙, 쪽방거주)까지 갔다가 이제 겨우 추스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운동권 단체 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원활동을 하게 된 것까지는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들의 모든 생활패턴이나 활동방식이나 소통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 과연 내가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버텨 내면서 자기최면(?)을 걸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파고 드는 시간이다.

 

   때마침, 진보넷 블로그에 진보넷에서 함께 일할 상근 활동가를 구한다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진보넷은 내가 몇년 전 부터 함께 일해보고 싶은 단체중의 하나 였었다. 나는 다른 어떤 사회단체 보다도 진보넷의 민주적이고 공개 되어 있으며, 열린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고 어떠한 작은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 하지 않고 그것들을 존중하려는 모습을 지닌 단체 규약을 접해 보지 못했다. 오만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나라면 충분히(?)그 단체에 미약하나 힘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거라고 스스로 판단 했었기에 더더욱...(활동해 보고픈)욕심이 나는 단체이다. 포스팅 내용을 보니까 전혀 나의 '기대'(??)에 벗어 나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더라. 실제로 활동하면 또 어떻게 평가 내릴지 모르지만(물론 나라는 인간은 간사 하기 그지 없는 인간이기에 ㅠㅠ)..암튼!   

 

   좋지 않은 저울질 이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잘 차려진(??) 밥상 위에서 언제든지 숟가락만 하나 들고서 덤비면 그럭저럭 운동할 수 있고, 최소한 상식은 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이것과 비교해서 지금 내가 일하는 단체를 비하 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지만,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챙기고 점검하고 또 챙기고 점검하고 사소한 것에 상처 받지 않을까를 염려하고 밥상 머리에 없으면 굶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일까지, 이 모든 것을 내가 해야만 한다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번거롭고 기운이 빠지게 하는 일인것 만큼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이정도도 각오하지 않고 덤볐다는 것이 순진한 착각에서 범한 오류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한발 짜욱도 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것 만큼은 확실하다.  이후에 어떤 위험과 결단의 순간이 온다고 해도...그렇지만, 나도 인간인데, 나라고 왜 조금 더 편한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으랴는 말이다.. 나도 잘 차려진 밥상에서 숟가락 하나만 들고 밥 먹으려는 '공주과'의 속물적 근성, 없지 않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이 싯점이 사실은 너무 쪽팔린다...하지만,  밥 다 먹고 치울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얼굴에 철판을 깔기는 틀린듯...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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