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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해!

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하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회자한다. 이말은 ‘20대가 한 달에 88만 원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뜻으로 우리사회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통한다.

 

‘희망’이란 단어는 주머니에 넣어둔지는 오래전이고, 백대일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자신감도 없으면서 도서관에서 공무원 고시생이 되어버린 그들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건 나에겐 엄청난 곤욕이다.

 

그들을 보노라면 ‘안스럽다’거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 ‘미련 곰퉁이’ 같아 보이고 그래서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충동이 막 치밀어 오른다.

 

뻔히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고시생 이외엔 다른 선택을 안하는 그들! 세상이 왜이러냐고 한번 큰소리라도 칠법도 한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해 세상에 쓴소리 한번 안하는 그들!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2년전, 그들이 사회에 최초로 고용되었을 때 보장되던 사회안전망이 정부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을 때 두말않고 거리로 뛰쳐나왔었다. 대핵생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까지, 학생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선생님까지, 그리고 그들의

 

할머니까지 ‘내 손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기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이 뜨뜨미지근한 자세로 방관했지만 나중에는 학생들의 전사회적 연대투쟁의 기세에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즉 학생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간 노동자들을 견인한 것이다.

 

2년전 그렇게 싸웠던 프랑스의 그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대학과 일부 고등학교, 그리고 거리는 학생들에 의해 세워진 바리케이트로 봉쇄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이번 투쟁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미국식 경쟁체제로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의 거세된 ‘88만원 세대’여! 보라! 권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런 과정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100대 1’의 경쟁구조는 비상식이자 비정상이다.

 

 단 백명중 한명만 공무원이 되는 이 비정상의 구조에 대해서 돌을 던지는 것이 맞지, 도서관에서 그 한사람이 되기위해 청춘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판단해야 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한 고등학교 실습생의 산재사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사회가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확실히 알았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지 2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더 공공해지기만 할뿐이다.

‘88만원 세대’여! 사회를  원망하지 마라! 

 

스스로 궐기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

 

‘88만원 세대’여! 충고를 전한다.

 

 “너희가 도서관에서 잠든 사이, 사회와 기성세대, 기득권층은 너희들의 권리를 알음알음 갉아먹고 있다네. 좀 한번 알아주게!  이제 좀 화날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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