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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삼성’이 떳다. 아주 확실하게 뜨고 있다. 그런데 사실, 뜨는게 아니다. 찬란한 하강을 위해 더 높이 뛰고 있을 뿐이다.  현상황은 ‘대한민국 최고’에서 ‘대한민국최고 부패’가 될지도 모르는 극적반전의 비등점이다.

 

그들은 항상 우리같은 일반인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아픈 사람이 이용하는 휠체어를 ‘법원 출두용’ 회장님의 마차로 사용하는 기발함이나 ‘사과박스에 사과는 결코 없다’는 새로움을 보여준다.

 

겨우 몇십억원의 종자돈으로 1년사이에 수조원의 기업의 지배권을 세금한푼 안내고 세습시키는 대목은 ‘상상력’으로 해결할 범위조차도 뛰어넘었다. 이런건 ‘기적’이라 불러주어야 한다.

사실 삼성의 부패를 애기하기 전에 우리사회가 알아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

 

김성환! 그는 현재 삼성의 부당해고, 노조탄압에 맞서다 ‘삼성그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3년5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그리고 그는 엊그제 19일부터 ‘삼성 무노조 경영’ 등을 규탄하며 9번째 옥중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를 소개하는 책의 표지는이렇게 씌여 있다. “골리앗 삼성 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삼성 재벌이 구속시킨 노동자 김성환, 그를 국제엠네스티에서는 죄가 없다며 국제 양심수로 선정했다”

 

알아야 한다. 부패로 커왔건 과장된 신화였던 간에, 그것은 김성환과 같은 삼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피눈물의 결과로서 ‘대한민국 최고! 초일류 삼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바로 김성환이다. ‘58년생, 3년 5개월의 실형, 9번의 옥중단식, 엠네스티가 선정한 국제 양심수’등 그에게 따라 다니는 수많은 수식어보다 또 다른 김성환인 삼성 노동자들의 삶을 봐야 한다.

한 두해쯤 되었을 터인데 아는 지인이 삼성그룹 계열사의 명함을 가지고 나를 찾와왔다.

그가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이제 개인과 가족을 위해서 살때가 되지 않았나요. ”
도대체 뭔 애기인가 했다. 이해도 안가는 말이라 짧게 답했다. “저, 지금 그럴때도 아니고요. 여기서 일하는게 행복해요”.

 

그는 짧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떳다. “그럼, 다음에 보지요.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것도 가족들한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가 간뒤에 사무실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애기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지금와서도 그때 일은 잘 모를 일이다. 왜 갑자기 그런 애기가 오고 갔는지, 단순히 보험영업 같이 하자는 애기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수는 없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무노조 삼성’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현실, 삼성에 맞선 것 그 자체로 3년 5개월간 옥살이를 사는 김성환과 같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제는 알아야 한다.

삼성에서 사표를 냈더니, 만류하는 그의 부인을 보고서 “당신, 나의 생명보다 수천만원의 연봉을 탐하는 거야!‘라고 고강도 노동의 피곤한 현실을 토로했던  어느 중년 삼성맨의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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