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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28
    약삭빠르게 산다는 거 !
    없는데요
  2. 2007/08/21
    민들레
    없는데요
  3. 2007/08/14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1)
    없는데요
  4. 2007/08/14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3)
    없는데요
  5. 2007/08/07
    막무가내 나쁜 심통
    없는데요

약삭빠르게 산다는 거 !

약삭빠르게 산다는 거!

 

 

세상에는 약게 사는 사람이 가끔 있다.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꼼꼼하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만 살펴보고, 그것만을 추구한다.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가다보니, 일관성도 없고 말바꾸기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실속을 챙기는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어른분들 말씀 들어보면 어느정도 통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몇번 어른들에게 ‘너도, 약게 살아라. 니건 챙기면서 다른 사람도 챙겨야지.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 하고 핀잔을 들은적이 있는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약게 산 사람들이 거꾸로 당했을 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아마도, 속으로  고소하다 싶어서 그런지 더 빠르게 입을 타고 전해지는가 싶다.

 

노동운동내에도 이런 사람들도 분명 있게 마련이고, 그중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신화적 존재였고,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권용묵씨의 경우다.

 

그가 어느날 갑자기, 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러나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대세론의 중심이었던 이인제후보진영에 가담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성에 비춰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대세론은 꺽이고 노무현 후보의 돌풍이 시작됐다. 경선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갑자기 정몽준 지지를 선언하고 그의 선거캠프로 합류했다. 이건 너무나 의외였다.

 

 현대그룹 노동운동의 신화와 그 탄압의 중심에 선 회장님의 아들... 언제나 대립의 끝점에서 서로 마주보았던 두사람. 그러나 결과는 싱거웠다. 사상 초유의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정몽준씨가 물을 먹으면서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그는 그와 동시에 떠났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화려한 변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험로를 안주거리로 씹으면서 그의 퇴장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006년인가! 갑자기 ‘신노동연합’(뉴라이트노동연합)을 들고 나타나더니, 현대엔진 위원장 시절 자신을 해고시켰던 이명박씨의 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변신은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으니 그의 약은 선택이 성공할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노동운동을 한지가 꼭 올해로 10년째다. 돌이켜보면 매번 그때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힘들다. 어느것 하나 만만한 것도 없고, 생활고도 여전하다. 나이는 먹는데 이룩해놓은것도 별로 없어 초조해진다.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전과는 늘어나고, 여차하면 징역살이를 해야할 처지다.

 

약게 산다는 건 뭘까!

 

오늘, 뉴스에 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이자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울산 북구청장을 역임했던 이상범씨가 갑자기 손학규씨 품으로 들어갔다. 약삭빠르게 산다는거 그거, 본인은 좋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 한숨만 늘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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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민들레! 그리고 충청타임즈

 

 

사무실 건물 앞 뜨락에 민들레가 벽 모서리와 보도블럭 사이 약간의 틈새를 파고들어 바짝 엎드린 모양새로 싹을 틔웠다. ‘거참 질기기도 하지!’하고 감탄사도 나오지만 좋은 땅 놔두고 꼭 거기다가 싹을 틔워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맞다. 민들레는 꼭 그랬다. 교도소 수감시절. 미결수들이 운동하는 30평정도 되는 운동장의 황토흙과 교도소 건물 벽 사이엔 민들레가 나래비로 있었다.

 

그때, 다른 미결수들이 열심히 뛰 다니고 있을 때 가끔 쭈구리고 앉아서 민들레를 쳐다보곤 했었다.

‘사람 발길 채이는 걸 피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담벼락 밑으로 피신왔나 보구나’ 위안도 전해주고, ‘바보같이 좋은 땅 놔두고 고작 피난온게 고작 교도소 담벼락 밑이냐!’ 하는 질책도 전해주고 그랬다.

 

땅바닥에 잎사귀 까지 붙어 있는 키작은 민들레. 오래간만에 이 민들레를 보면서 또 그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여성용접공 1호, 집회때마다 노동자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씨. 그 김진숙씨가 노동자에게 민들레를 배우라고 했다.

 

‘낮은 곳에 있는 자에게, 나의 눈높이로 올라 와라 하면 이것은 연대가 아닙니다.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는 것이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진다고’

 

민들레를 보기위해선 몸을 낮춰야 한다. 나의 몸을 낮추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 그것이 진실된 노동운동이라고 김진숙씨는 가르친다.

 

가장 낮지만 가장 멀리 씨앗을 날리는 민들레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이다.

 

나는 한가지 공포에 가까운 기억이 있다. 96년 신탄진의 어느 공장 앞. 노조탄압중단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지 40일 정도되는 그 노동자. 서있기도 힘든 그 노동자가 선전물을 들고 공장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가스총을 난사하며 가볍게 제압하는 그 회사의 경비원. 그리고 흐물거리지도 못하는 그 노동자를 담장 밖으로 던져 놓았던 그 장면.

 

그 노동자는 단식하기 일년전에 정체 모를 남자들에게 야산으로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뒤 마지막 의식으로 닭 피를 온몸에 뿌리며 그들로부터 ‘노조를 포기해라’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

지지난주, 그 회사의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그 회사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 공포같은 기억이 떠오르고... 나는, 차라리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민들레의 희망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다시 가지는 희망.  키작은 민들레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간다는 것.
새충청일보가 충청타임즈로 제호를 변경했다. 민들레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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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이게 얼마만인가! 달빛이외엔 의지할것이 아무것도 없는 밤길을 걷는 다는 것. 어두움으로 생긴 막연한 공포는 머리속을 말끔히 비워준다. 바람이 내몸을 감싸주니 몸도 가벼워졌다. 휴가기간동안 단 하루, 저 멀리 변산 공동체 마을로 내려가 보낸 하루가 그 어떤때의 휴가보다도 깊은 휴식이었다.

공동체 마을을 갈때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가질수 없듯이 밥은 나누는 것입니다.’
이 글귀를 볼때마다, 내가 처한 가난조차 부끄러워 지지만 그 부끄럼보다도 더 강렬한 것은 ‘나눔의 미학’에서 나오는 감동이다.
이 글귀 하나만으로 공동체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워 진다.

이 분들이 서울에 밥집을 냈다한다. 이름은 ‘문턱없는 밥집’. 이 ‘문턱없는 밥집’의 점심값은 단돈 천원이다. 그런데 재료값은 오천원 정도가 들어간댄다. 왜냐면 재료가 비료하나 농약하나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농부의 땀방울만 들어간 유기농산물이기 때문이다.

밥집을 낸 취지는 ‘가난한 사람들도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로 잘 짜여진 밥 한그릇을 나누자’는 것이다. 공동체 마을에 쓰여진 그 글귀를 실천하는 거다. 세달전에 윤구병 선생님이 이 밥집을 여시겠다고 했는데, 청주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벌써 수백개의 블로그에 '문턱없는 밥집'이 담겨져있다.

사무실에 한숨이 늘어간다. 우리 사무실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아니라,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옛 하청 조합원들의 한숨소리다.
이들을 한숨짓게 하는 것은 나눔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르는 거대기업의 탐욕이다. 이 거대기업은 우리 하청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일자리를 나누기로 약속했던 적이 있다. 복직은 아니지만 회사안의 각종소모품과 자판기 사업을 운영하게 하는 일자리를 통해서 밥을 나누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한다.

그래서, 한숨을 흘린다.

하이닉스는 정말로 큰 기업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큰다한들 하늘을 혼자 가질수는 없다.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다. 입는 옷도 누더기고 가구당 월 소득도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 연장선에서 착한 소비자 운동같은 것도 생겨났다. 세상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커져간다. 빈 곳간의 쌀 한톨조차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고, 곡식 가득한 곳간의 자물쇠가 늘어가는 기업도 있다. 작은 사람들은 하늘을 품으려 하고, 큰 사람들은 하늘을 혼자 가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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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하이닉스 사장님! ‘문턱없는 밥집’에서 점심한끼 드셔보세요!

이게 얼마만인가! 달빛이외엔 의지할것이 아무것도 없는 밤길을 걷는 다는 것. 어두움으로 생긴 막연한 공포는 머리속을 말끔히 비워준다. 바람이 내몸을 감싸주니 몸도 가벼워졌다. 휴가기간동안 단 하루, 저 멀리 변산 공동체 마을로 내려가 보낸 하루가 그 어떤때의 휴가보다도 깊은 휴식이었다.

공동체 마을을 갈때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가질수 없듯이 밥은 나누는 것입니다.’
이 글귀를 볼때마다, 내가 처한 가난조차 부끄러워 지지만 그 부끄럼보다도 더 강렬한 것은 ‘나눔의 미학’에서 나오는 감동이다.
이 글귀 하나만으로 공동체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워 진다.

이 분들이 서울에 밥집을 냈다한다. 이름은 ‘문턱없는 밥집’. 이 ‘문턱없는 밥집’의 점심값은 단돈 천원이다. 그런데 재료값은 오천원 정도가 들어간댄다. 왜냐면 재료가 비료하나 농약하나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농부의 땀방울만 들어간 유기농산물이기 때문이다.

밥집을 낸 취지는 ‘가난한 사람들도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로 잘 짜여진 밥 한그릇을 나누자’는 것이다. 공동체 마을에 쓰여진 그 글귀를 실천하는 거다. 세달전에 윤구병 선생님이 이 밥집을 여시겠다고 했는데, 청주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벌써 수백개의 블로그에 '문턱없는 밥집'이 담겨져있다.

사무실에 한숨이 늘어간다. 우리 사무실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아니라,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옛 하청 조합원들의 한숨소리다.
이들을 한숨짓게 하는 것은 나눔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르는 거대기업의 탐욕이다. 이 거대기업은 우리 하청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일자리를 나누기로 약속했던 적이 있다. 복직은 아니지만 회사안의 각종소모품과 자판기 사업을 운영하게 하는 일자리를 통해서 밥을 나누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한다.

그래서, 한숨을 흘린다.

하이닉스는 정말로 큰 기업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큰다한들 하늘을 혼자 가질수는 없다.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다. 입는 옷도 누더기고 가구당 월 소득도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동체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그 연장선에서 착한 소비자 운동같은 것도 생겨났다. 세상은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커져간다. 빈 곳간의 쌀 한톨조차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고, 곡식 가득한 곳간의 자물쇠가 늘어가는 기업도 있다. 작은 사람들은 하늘을 품으려 하고, 큰 사람들은 하늘을 혼자 가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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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나쁜 심통

막무가내 나쁜 심통

 

일곱 살된 큰 아이와 바둑놀이를 하다가 결국은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아이 녀석은 무조건 자기가 아빠의 돌을 잡았다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데 도통 내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자기 멋대로인 아들에게 '너랑은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를 설득할 요량이 부족한 나의 주변머리를 탓하기 보다 손쉽게, 놀이중단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지금까지도 아이는 나를 '나쁜 아빠'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나도 합리적 규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이의 막무가내 심통에 대해선 도통 화해가 되질 않는다. 여전히 그 심통이 괘씸하기만 하다.

 

그런데, 아이만 막무가내 심통인가! 내 아이와 더불어 노무현 정부와 이상수 노동부장관도 완전히 귀와 입을 틀어막고 있다. 바로 이름하여 '비정규보호법'에 대해서 말이다.

 

파견노동의 폭을 무한정으로 열어주는 순간 기업은 정규직화 대신에 손쉽게 외주용역으로 전환할것이라고  노동계에선 그렇게 누차 지적해 왔것만 그들은 이것을 인정치 않았었다. 그리고, 이랜드 사태가 발생하고 그것이 현실화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실을 인정치 않고 있다. 오히려 이랜드 사태쯤을 '옥의 티'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쯤되면 정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노동부가 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기업의 비정규대책' 설문조사에서 더 가혹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300인 이상의 규모가 있는 766곳이 이 설문에 응답했다. 결과를 보면 기업 열곳중 세곳은 아예 아무런 대책조차 없다고 답변했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의 59%가 정규직화 대신, 파견노동자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계속 파견노동자를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규직화를 해야하는 2년이 되는 시점에서는 기업의 30%가 해고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래도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은 시정하지 않았냐고 그들은 자화자찬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비정규법이 시행된지 한달이 지난 지금, 차별을 시정해달라고 접수된 사례가 몇건이나 되나! 지금까지 단 한건! 어떤 비정규직노동자가 뱃심이 좋아서 감히 차별을 시정해달라고 노동위원회에 접수를 한단 말인가!

 

한달전에 우리 사무실에 8명의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이유는 이들이 일요일날 모여서 사장에게 임금인상을 건의해보자고 논의를 하고 월요일날 출근했더니, 사장님께서 '니들 다 필요없다. 오늘부터 해고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사장에게 고자질을 했던 모양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미, 현재의 '비정규보호법'은 전혀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 판가름 났다. 그렇다면, 실효성이 전혀 없는 이법을 폐기하고 새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과 이상수 장관은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앵무새처럼 자신들의 애기만 자화자찬하고 있다. 애꿋은 비정규노동자들만, 아니 또다른 이랜드 여성노동자들 속 시름만 깊어가고 해고불안에 잠못드는 밤만 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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