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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9
    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없는데요
  2. 2008/01/22
    영화 ‘식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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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1/15
    들어나봤나! 기업살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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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1/08
    '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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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1/01
    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없는데요

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당시 구조본 내 임원들은 김성환 위원장을 두고 '구속시켜야 하는데'라며 고민했다"며 "나는 속으로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구속을 시키더라" 이는, 김용철 변호사와 한 인터넷 신문(프레시안)사이의 대담 내용이다.

 

여기 나오는 김성환 위원장은 다름아닌 ‘삼성일반노동조합’의 위원장이다.

 

그는 2005년 2월 검찰이 삼성SDI가 불법적으로 행한 노동자 위치감시추적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려진 뒤,  1주일만에 다시 구속됐다. 삼성이 그에 대하여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를 했고 법원은 검찰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법정구속했기 때문이다.

 

삼성하면 ‘무노조 경영’이고, 이 거대 골리앗의  ‘무노조경영’에 맞선 다윗의 투쟁이 그의 삶이었다.

 

그랬던 그가 올 1월 1일, 구속된지 3년만에 석방됐다. 엊그제, 일면식도 없던 그를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덥수룩한 수염, 작은 체구, 오랜 수형생활로 인한 잦은 기침. 그의 인상은 그랬다.

 

그가 감옥에서 3년만에 출소하던 날, 소주 한잔을 마시고 기절하듯 쓰러졌다는 그에게 석잔쯤을 강권하고 그다음날, 떠나는 인사를 하는 그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바로 그의 투쟁을 엮은 ‘골리앗 삼정 재벌에 맞선 다위의 투쟁’이란 책에다가....

 

그때  내가 무슨 심보로 그랬는지 모른다. 그는 간결하게 서명을 남겼다. ‘치사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1799년이면 아주 오래전일까!

 

그때, 영국에는 ‘단결금지법’이라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즉 노동조합을 만들면 법으로 처벌한다는 거다.

 

얼마후엔 그 이웃인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쟁의가 발생하자 왕정에 대한 청원을 통해서 이 법률을 만들었고, 이 법률에 근거하여 몽둥이로서 노동자들의 쟁의를 제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자 더 많은 노동자들의 저항과 피흘림이 있었고 생긴지 25년만인 1824년에 이 법은 폐지됐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삼성의 무지막지한 공작, 그리고 그것을 교묘히 에둘러서 뒷받침 하는 대한민국의 사법당국.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박물관으로 가버린 ‘단결금지법’의 현대판에 다름아니다.

 

삼성권력은 대한민국 제일의 권력이다. 18세기 절대왕정의 권력에 비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으로도 유지되지 않는 것이 무수히 많다. 현대판, 아니 삼성판 ‘단결금지법’도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움켜쥘수록 빠져버리는 모래알처럼, ‘무노조’를 움켜쥘수록 ‘부끄럽지 않게, 치사하지 않게’ 살아가는 더많은 김성환을 만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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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코’

영화 ‘식코’


‘저기, 아무개가 올해 안으로 결혼 한다메!’.  ‘ 그 아무개가 ○○이랑 결혼 한다며!’.  ‘ 아무개와 ○○이랑 날 잡았다며!’. 하루만에 전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이 풍문 때문에 우리 사무실 사람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아침에 ‘올해 안으로 결혼을 한다 더라’ 에서 시작한 이 풍문은 그새 ‘누구와 날까지 잡았더라’까지 발전했으니, 만약 당사자가 해명하지 않았다면 저녁쯤이면 아마 청첩장까지 받았으리라.

이것은 눈덩이 불어나듯 한칸 한칸 옮겨질때마다 점점커지는 말과 소문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리라.

 

이런 류의 '무엇 무엇 하더라'통신은 정말로 그 위력이 대단할진대, 최근에 가수 나훈아씨의 잠적에 대한 여러 풍문만 보더라도 야쿠자, 유명 여성 연예인까지 등장하며 급기야는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상황까지 발전했다.

 

근거도 없고, 사실도 명확지는 않지만 이 '하더라' 통신은 그 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하더라'통신이 무조건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끔직하거나 공포스러운 것도 있다.

 

'잘린 손가락 두 개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는데, 치료비가 7천만원이라 더라. 그래서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하더라’식의 애기를 듣는 당신의 반응은 어떨까!

 

당신은 담방에 ‘미친×’ 하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애기는 영화속 애기다. 영화는 ‘픽션’이다. 그래서 당신은 안심할지도...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가 실제상황을 다룬 ‘논픽션’이라는게 문제다.
 
영화 ‘화씨 911’로 유명한, 감독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실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도 당신은 안심하는가! 그저 먼 발치의 남의 나라 미국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만일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다음달이면 대통령으로 취임할 이명박 당선자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당선자는 공공연히 지금도 애기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건강보험증 하나면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전국 아무   병원에서도 보험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상황은 전적으로 바뀌게 된다. 어떤 병원에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그곳은 미국식의 고가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만을 치료한다.
 

무섭다. 영화 식코(Sicko)는 정말로 무서운 애기고, ‘무엇무엇 하더라’가 아니라 우리가 처해질지도 모를 ‘미국식 선진화’의 함정이다.

 

그래서다.  영화를 보자! 그리고 소문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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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나봤나! 기업살인

들어나 봤나! ‘기업살인법’

 

자본주의의 모국 영국에서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이 오는 4월부터 시행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입장에선 도무지 납득할수 없으니  분개하시라! 그리고 경악하시라!  왜냐! 이법의 내용이 그렇기 때문이다. 노동재해는 기업의 ‘과실’이 아니라 ‘고의’에 해당되는 만큼 중대 노동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요지다. 이런 법의 내용물을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걱정된다! 자본주의의 모국에서 하필이면 ‘기업살인’이란 용어를 쓰나! 기업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킬 것이 뻔한데 말이다.

 

정말로 남의 나라 애기다.  그래서 천만다행이다.

 

남의 이야기 말고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 이야기를 하자!

 

‘그 새끼들 깡패새끼래요. 괜시리 그 놈들 만나고 하면 돈 뜯기고 뒤통수만 맞아요’. 여기서 그 새끼는 ‘민주노총’이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하이닉스 A-Project 건설현장의 담당자이시고 이 귀한 말씀을 들으신 분은 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유족중 한분이다.

 

그리고 그 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사망에 대한 보상합의금조차 이런 저런 경비가 들어갔다고 하면서 1/3정도를 빼고 지급했어요. 민주노총 연락처조차 그 사람들이 다 뺏어서 찢어버리드라고요. 그놈들 깡패새끼라면서...’

 

속에서는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 바깥에선 난리다. 하이닉스 산재사망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애써 취재했던 내용이 데스크에서 짤렸다고 했다. 무슨 건설협회인가 하는 데에서는 이런 저런 인맥을 통해서 민주노총이 충북경제를 말아먹는다고 그래서 자제를 부탁한다는 소리를 연방 전한다.

 

그래서 안심이다. 남의 나라는 남의 나라고, 그래도 우리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이다.

 

나는 지금  두장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공에서 파이프에 두 발을 딛고 ‘곡예’를 하는 우리나라의 신축공사장 사진과, 작업을 위해 계단과 통로를 완벽한 구조물로 설치한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한 아파트신축공사장의 현장사진.

 

그런데 도무지 납득이 안간다.

 

노동안전과 보건에 관한 법률만 480개에 이른다는 자본주의 모국인 영국, 그리고 ‘작업공기’는 생각지도 않고, ‘다칠수 있는 작업은 아예 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애기하는 스웨덴의 어느 청년노동자.

‘반기업정서’가 판쳐서 문제라고 하는 우리나라도 걱정인데, ‘기업살인’ 운운하는 저 나라가 망하지 않는게 이해가 안간다.

 

에둘러 애기했다.

 

‘죽지않고 안전하게 일할수 있는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 다.

그 권리 앞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필요없고, 그 어떤 경제논리도 필요없다. 이 애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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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이천냉동창고, 40명이 죽었다. 아직 살아남은 노동자들 속에는 내일을 기약할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내 옆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한명의 노동자가 산재상담차 방문해 있다. 그에게 따듯한 커피를 건네자 그가 한 첫마디는 이랬다.  ‘미쳤지요. 우레탄 작업을 하면서 용접작업을...’

 

“안전(安全)은 또 질식당했다”(조선일보). “곳곳에 시너․LP통 … 그곳은 ‘화약고’였다”(중앙일보). “3박자 갖춘 … 예견된 ‘人災’”(쿠키뉴스). “공사장 안전불감증이 화마 불렀다”(YTN).

 

충격이 커서였던가!

 

언론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아니 사후약조문(死後藥弔問)이 대단하다. 그래선가! 이번주 한주 만큼은 우리 민주노총과 심지어 보수언론조차도 ‘한마음 한뜻’이리라!(딱 한주만큼만)

 

지난해, 하이닉스청주공장 신설현장에서만 3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노동자가 죽어나갔던 12월, 노동부청주지청은 무엇을 면피하려고 그랬는지 작업현장을 세웠다. 이 결정이 오래가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딱 일주만에 '역시나'였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세상을 가릴수 있겠는가! 공사재개의 근거로 제시된 각종 안전대책수립 및 보완은 새파란 거짓말(왜 꼭 거짓말은 ‘새빨간’이라고 해야 하나!)이라는게 드러났다. 사고나기 이전의 그 공간 그대로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고, 그 장면이 담긴 수십장의 사진을 통해서...

 

두려운게 있다. 어제 그 전조가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온 충북 무슨 건설협회 대표자라고 했던 그사람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따져 물었다. ‘어렵게 살아난 충북건설경기인데 이런식으로 민주노총이 발목을 잡으면 어떻게 하냐는 거냐’고, ‘그리고 당신들이 (생계를) 책임질수 있냐’고... 

 

하이닉스 청주공장은 ‘신앙’같은 존재다. 이 공장이 빨리 들어서야만 청년 실업자에게 일자리도 생길 것 같고, 서민들에게 돈이 돌 것 같고, 경제특별도가 된댄다. 그래선가! 도지사, 청주시장이 나서서 노동부의 공사중지명령을 반대하며 ‘신앙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발벗고 나선다. 그런 사이에 노동자들의 안전문제는 뒤로 게눈감추듯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두렵다.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건처럼 노동부와 언론이 우리노동자들과 딱 일주일만 동거하는게 두렵다.

 

한 건설노동자가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했다.

 

 “떨어져서 죽고, 질식해서 죽고, 부딪혀서 죽고, 감전되어서 죽고... 그렇게 하루에 2명이 죽습니다. 흔히들 건설현장은 이판사판 공사판이라고 합니다. ‘이판’은 이승이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판’은 저승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건설노동자 이지경의 편지중에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고 하니 한벌 웅얼거려 본다. 이제, 건설노동자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365일 관심을 가져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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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문제를 냈다. '여러분, 여기 사과가 열 개 있어요. 그런데 지금 철이가 세 개를 먹었어요. 그럼 몇 개가 남았을까요?'

 

한 아이가 답했다.

 

'세개가 남았습니다!'. 틀립 답이라는 신호를 주고, 다시 아이들에게 '몇개가 남았을까요?'하고 재차 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계속해서 '선생님 세 개라니까요'라고 소리를 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선생님, 그래도 교육자의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서 '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 왈 '우리 어머니가 먹는게 남는거랬거든요. 세 개를 먹었으니 세 개가 남은 게 맞잖아요'

 

이 아이는 아마도, 교실에 선글라스낀 아저씨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의 사진이 걸려있던 시대의 학생이었다면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맞았을 것이고, 요즘 같으면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혹은 창의적이다는 운좋은 칭찬도 받을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어찌됐건 난처한건 아이보다는 선생님일게다. 아이의 답이 나온이상 수학적 논리로 아이의 대답을 오답으로 처리할건지 아니면 아이가 부모로부터 학습받은 '구전명제'속에서 정답처리를 해야할것인지 선택은 선생님이 해야 하니까!

 

지난 몇 달전쯤에 '참여정부평가포럼' 같은 노비어천('盧飛御天) 집단이 생뚱맞게 각종 수치를 국민들에게 들이댄적이 있다. 성장률이 얼마고, 주식시장의 주가지수가 어떻고... 그러면서, 참여정부가 경제를 못했다는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질문을 받은 국민들은 수학적 논리, 경제적 논리는 완전 제쳐두고, 경포대,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참평 선생님들은 이 우민(愚民)한 국민들에게 대포(대화포기)를 쏴대다가 그들만의 근거지로 숨어가 '盧飛御天歌'만 불렀다.

 

새해가 밝은 지금, 민주노동당을 한번 보자.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참혹할 정도의 냉정한 국민들의 평가를 받은 터이다.

 

그런데도 내부에는 책임지는 세력이 없고 세상과는 동떨어진 자기최면의 평가가 난무한다. 모든 비판은 유령을 대상으로한 비판이고, 이렇게 된건 '짝퉁좌파, 위장좌파'인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에 동반피해를 입었다는 거다. 이렇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게된다. 이 기대상실의 이유는 '지지율 3%'라고 하는 국민들의 창의적의 대답을 인정치 못하는 교조적, 신앙적 집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운동 또한 마찬가지다.

 

대기업노동자 혹은 내가 속한 기업의 울타리라는 허위의식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상, 내 월급봉투에 잔업수당이 빠짐없이 빼곡히 채워지는 것에 안주하는 이상 우리는 고립을 빠져 나올수 없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노동운동에게 보내는 비판의 수위를 넘은 살기(殺氣)에 대해 정말 창의적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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