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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2/25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1)
    없는데요
  2. 2007/12/18
    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없는데요
  3. 2007/12/11
    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없는데요
  4. 2007/12/04
    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해!
    없는데요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따르릉! 따르릉! '

 

네, 민주노총입니다'하고 다소 힘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데, 전화건 아저씨가 다시한번 힘을 빼게한다. 전화건 아저씨 ‘소득공제영수증 때문에 전화했는데요. 홈페이지 소득공제가 안보이네요’하고 묻는다. ‘저, 선생님 우리 민주노총은 소득공제와 관련이 없는데요. 혹시 민주노동당에 전화할려고 하신게 아닌가요. 혹시 민주노동당에 세액공제 기부를 하셨나요’하고 조심스레 답하는 나.

 

내 추측따라 ‘어. 민주노동당하고 민주노총 같은거 아니였어요’하고 말하는 그 아저씨.

 

대선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득표한 3%. 세 번째 출마한 권영길 후보의 기호가 3번이라 3%밖에 받지 못했나! 차라리 무소속 이회창후보의 기호인 12번을 얻었더라면! 별별 가설이 다나오는 내가 참 한심하다.

 

지난주 택시에서의 일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추진 관련 뉴스가 라디오 뉴스에서 연방 나오는데, 기사아저씨가 한소리 하신다. '저거! 꼭 해야될까요. 선거도 끝났는데 그만 하지. 저거해서 먼 돈이 될것이며, 뭔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어. 태안 앞바다를 봐! 에휴...'

 

맞장구를 치며, 당선자에 대한 호박씨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기사아저씨에게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근대요. 걱정이에요. 민주노동당이 못한것도 맞지만 너무나 표가 안나왔어요. 살아남을 정도는 줘야지. 3%는 죽으라는 거 아닌가요. 이제, 삼성에 대한 견제 같은 것은 누가 하나요. 그래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없으면 안되는게 많은데...‘

 

그 살갑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딱 잘라 말한다. ‘거! 누가 (민주노동당에게) 표 주겠어. 다 알어. 봐바. 우리같은 택시기사가 얼마나 불쌍혀. 비정규직들 얼마나 불쌍한겨. 저 사람들 우리한테 (도움)안되는 겨. 있는 노동자들만 지들끼리 등따실라고 그런겨’라고 뚝 잘라서 말씀하는 택시 아저씨!

 

나는 ‘아저씨, 그건 아니에요. 그리고 민주노총 꼭 정규직 대기업노동자들만 위하는 데 아니거든요. 그래도 민주노총 만큼 비정규노동자들 위해서 싸우는데가 어디 있겠어요’라고 항변하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결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구분조차 하지 않는 대다수가 국민인 현실. 노동시장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20대를 일컫어 ‘88만원세대’라고 부르는 현실. 조직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이들을 대표해 제대로 투쟁하지 못하는 현실. 극히 일부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알량한 월급봉투 때문에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해서 구사대로 등장하는 현실.

 

결국 이런 것들에 대해서 국민들이 심판한 거다. 우리에 대한 비판이 설령 ‘조,중,동’식의 언어와 표현을 빌려왔다 하더라도 어쨌든 비판의 빌미는 우리한테 있는 것 아닌가!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한 거다. 노동운동이 비정규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을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라는 거다. 누가 누구에게 감히 돌을 던지랴! 그가 ‘사이비진보’든 아니든 간에 노무현은 노무현이다. 쏟아지는 돌무더기 속에서 우리를 돌아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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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내가 물었다. 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그대여!  오늘 절망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  괜한 기대를 품었다가 매번 허탈과 절망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현실속에선 ‘희망’이란 단어는 오히려 상처고 아픔이잖아. 차라리 절망이 나은 게야.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자넨 희망을 품고 있는가!

 

천오백만 노동자들의 임금총액보다도 땅값 상승에 의한 땅바기 불로소득이 더 크다네. ‘88만원 세대’의 아우성은 들어봤는 가! 그 88만원 세대중 어떤 청년이 비정규직 늘리겠다는 유력대선후보 유세에 나와서 ‘제발 살려주이소’ 하는 그 우스꽝스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삼성의 떡값앞에 온통 떡판 위에서 춤추는 경제관료와 검찰을 보지 않았나! 비정규노동들의 파업 때문에 잔업 못해서 월급 줄었다고 비정규노동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대 자동차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지 않았는가! 윤똑똑이와 부라퀴는 넘쳐나는데, 패배로 지친 동료의 손을 잡아주는 공동체의 연대가 존재하는가!

 

 DJ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공고한 벽 앞에서,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자인 이명박과 또 다른 신자유주의자인 정동영. 탈출구가 있는가! 죽어라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50%와 가만 있어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아도 더 부자가되는 10% 앞에서 넌 희망을 품고 있는가!

 

지난주, 고 정진동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하고 있는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두렵지 않으세요’하고 다른 분이 물었다.

 

‘처음엔 너무 두려웠어. 삼성에 얽혀있는 그 실체적 사실을 접하는 순간 그 사실자체가 두려웠어. 그 다음엔 거기서 희생된 노동자들, 그물망처럼 탄탄하게 얽혀있는 감시망에 대해 두려웠어. 그리고, 마지막으론 우리 사회 전반에 형성된 삼성권력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두려웠어.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아주 편해’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

 

다시 신부님이 말씀하신다. ‘1:8:1이란 규칙이 있대. 이게 뭐냐면 돈을 주면 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고 8명은 받는 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1은 왜 나에겐 돈을 주지 않냐고 와서 따지는 사람이 있대’. 

‘우리가 질수도 있어. 이번에 안될수도 있지만,  하지만 우리는 이 싸움에서 딱 한번 이기는 싸움을 하는 거야. 그럼 된거야’

 

다시 원래 애기로 돌아오자. 난 답한다.

 

‘지금보다 나은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해’라고.

 

모두가 절망하면 모르지만 한사람이라도 다른 세상을 상상하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상상해보자! 비정규직 없는 세상, 집걱정, 병원비 걱정, 교육비, 노후 걱정없는 공동체를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미련을 갖지 말자. 간단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나무 한그루를 심자! 투표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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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공식선언했다. 노동자를 위하는 것은 눈꼽만치도 없고, 오로지 ‘反노동’뿐인 사람을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단체에서 지지한댄다.  귀통바기를 한 대 후려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애면글면 활동해온 수많은 선배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전태일 열사’의 사진을 배경으로 서있는 이용득과 이명박의 사진을 접할땐 내 가슴속까지 뭉개졌다.

 

어찌 되었건 이명박씨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통해서 ‘어용득’(御用 得) 하게됐다.

 

‘어용’(御用)이 무슨 뜻이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를 때 ‘어용’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 다르게 임금님이 쓰던 물건을 지칭할때도 쓰인다.

 

후자의 뜻으로 보자면, 임금님이 될 이명박씨가 쓸 물건은 ‘어용’인 것이고, 이용득씨는 그렇게 쓰여지기로 했으니 ‘어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씨가 이용득씨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은 결국 ‘어용(御用) 득(得)’한거다.

 

이명박씨는 ‘어용득’했으니 참 좋겠다.

 

잠깐, ‘어용’의 가계도를 톺아보자. 이 어용의 가계도는 이승만 정권때 ‘대한독립촉성노동조합총연맹’(일명 대한노총, 초대의장 이승만)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이 대한노총뿐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에 대한 해산명령을 내리고 ‘중정’에서 훈련시킨 9명을 통해 ‘한국노총’ 재건을 지시한다. 한국노총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1987년 전두환이가 4.13 호헌 조치를 했을 때 한국 노총은 기꺼이 지지 성명을 냈다. 역시 어용답다. 정말, ‘어용’스럽게 태어나서 ‘어용’답게 활동해왔다.

 

그래서, 뿌리가 중요하다. ‘어용’의 뿌리가 튼튼해야 ‘어용’의 본분에 충실할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은 경험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 결코, ‘어용’은 노동자의 편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어용노총에 버림받고서 나중에 본인이 할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 전태일 열사 이후에, 이땅의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박살내고, 민주노조 건설하자!’라고 외쳤고,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는 이 구호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무릇, 우리 노동자가 심판해야될 것은 집권세력만이 아니다. 입으로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비정규직만 양산한 그 거짓말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 정치집단과 그 집단의 ‘어용’이 된자들에 대해서까지 심판해야 한다.

 

지금, 한평생 노동자를 위해 헌신해왔던 故 정진동 목사님의 따스함이 배어있는 빗줄기가 대지를 적신다. 그가 살아왔던 것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어용’들의 거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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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해!

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하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회자한다. 이말은 ‘20대가 한 달에 88만 원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뜻으로 우리사회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통한다.

 

‘희망’이란 단어는 주머니에 넣어둔지는 오래전이고, 백대일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자신감도 없으면서 도서관에서 공무원 고시생이 되어버린 그들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건 나에겐 엄청난 곤욕이다.

 

그들을 보노라면 ‘안스럽다’거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 ‘미련 곰퉁이’ 같아 보이고 그래서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충동이 막 치밀어 오른다.

 

뻔히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고시생 이외엔 다른 선택을 안하는 그들! 세상이 왜이러냐고 한번 큰소리라도 칠법도 한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해 세상에 쓴소리 한번 안하는 그들!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2년전, 그들이 사회에 최초로 고용되었을 때 보장되던 사회안전망이 정부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을 때 두말않고 거리로 뛰쳐나왔었다. 대핵생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까지, 학생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선생님까지, 그리고 그들의

 

할머니까지 ‘내 손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기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이 뜨뜨미지근한 자세로 방관했지만 나중에는 학생들의 전사회적 연대투쟁의 기세에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즉 학생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간 노동자들을 견인한 것이다.

 

2년전 그렇게 싸웠던 프랑스의 그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대학과 일부 고등학교, 그리고 거리는 학생들에 의해 세워진 바리케이트로 봉쇄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이번 투쟁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미국식 경쟁체제로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의 거세된 ‘88만원 세대’여! 보라! 권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런 과정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100대 1’의 경쟁구조는 비상식이자 비정상이다.

 

 단 백명중 한명만 공무원이 되는 이 비정상의 구조에 대해서 돌을 던지는 것이 맞지, 도서관에서 그 한사람이 되기위해 청춘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판단해야 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한 고등학교 실습생의 산재사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사회가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확실히 알았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지 2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더 공공해지기만 할뿐이다.

‘88만원 세대’여! 사회를  원망하지 마라! 

 

스스로 궐기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

 

‘88만원 세대’여! 충고를 전한다.

 

 “너희가 도서관에서 잠든 사이, 사회와 기성세대, 기득권층은 너희들의 권리를 알음알음 갉아먹고 있다네. 좀 한번 알아주게!  이제 좀 화날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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